우리 중 하나가 다음이다
캐런 M. 맥매너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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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목하십시오, 베이뷰 고등학교 학생 여러분. 규칙을 이번 딱 한 번만 설명하겠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하게 될 진실게임의 규칙을요. 내가 딱 한 사람에게 지령을 하나 보낼 거고, 받은 사람은 아무에게도 얘기해선 안 됩니다. 놀라는 재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이걸 망치면 나는 짜증이 날 텐데, 짜증이 날 때 나는 전혀 친절하지 않답니다. 24시간 안에 여러분의 선택을 문자로 보내주십시오. 진실을 택하면, 내가 여러분의 비밀 하나를 폭로할 겁니다. 도전을 택하면, 나는 여러분에게 미션을 줄 겁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약간의 재미를 맛보고, 덜 지루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겠죠.”

이 책 [ 우리 중 하나가 다음이다 ] 는 전편 [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 의 속편이라고 한다. ( 어디서 찾아본 결과, 전편의 등장인물이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속편이라기 보다는 같은 소재를 가지고 재창조한 이야기에 가깝다고 합니다 ) 전편의 내용을 약간 살펴본 결과, 아이들의 비밀을 들추는 앱을 만들어 모두를 난처한 지경에 만들고 공공의 적이 된 사이먼이라는 한 고등학생이 누군가의 교묘한 수법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이야기였다. 사이먼은 땅콩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그가 들고 있는 물컵에 누군가 몰래 땅콩 기름을 발라놓았던 것. 물론 악의적인 장난을 친 사이먼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알레르기를 이용해서 죽이다니,,,, 참으로 사악하면서도 소름끼치게 똑똑한 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 책은 사이먼이 죽은 후 약 18개월 정도 지난 후에 시작된 일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전히 그 사건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있는 베이뷰 고등학교의 아이들. 사실 전편에 나왔던 베이뷰 4인방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주된 역할을 맡고 있지는 않다. 속편에는 메이브 로하스, 녹스 마이어스 그리고 피비 로턴이 중심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들은 익명의 소시오패스가 보내는 문자를 받게 되는데 그 악한은 베이뷰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실게임을 제안한다. 전편에서 맥없이 죽어버렸던 사이먼은 그냥 장난으로 앱을 깐 것일 뿐이지만 이 놈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협박까지한다.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진실을 폭로하겠다고.. 과연 아이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나같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사실 이 책의 속도감은 그리 빠르지는 않다. 작가는 다소 천천히 이곳 저곳에 떡밥을 뿌리면서 이야기를 일정한 속도로 진행시킨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중간쯤에 독자들은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 그리고 각각의 아이들이 겪는 갈등 요소들은 모두 미묘하게 얽키고 설키어 있다. 누군가의 비밀 그리고 누군가의 위협을 따라가다보면 책의 마지막에 어마어마한 반전이 드러나면서 독자들은 갑작스런 흥분과 스릴을 한꺼번에 느끼게 된다. 소름이 돋을지도 모르니 미리 경고합니다.

장르소설의 특성상 내용에 대해서 많이 언급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소설은 플롯에 비해서 등장인물 캐릭터 조성이 매우 흥미롭다. 메이브는 똑똑하면서도 동시에 백혈병에서 살아남은 강한 여학생이고 녹스는 약간 범생이이긴 하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전형적인 미국 고등학교 남학생 같지 않아서 좋았다. 피비는 인기있는 여학생이긴 하나 아버지의 사고 이후 가족들이 경제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상실감을 겪으면서 방황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영어덜트를 다룬 소설답게 10대들의 불안감과 고민 그리고 비밀 등을 다룬 면과 가족들과의 충돌 갈등 그리고 화해 등을 다룬 면도 좋았던 것 같다.





메이브와 녹스는 정말 호감가는 캐릭터라 그들의 이야기와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해프닝들 그리고 학우 중 한명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수사능력이 뛰어나서 그들의 활약을 보는 동안 너무너무 흐뭇했다. 그리고 작가가 진실 게임을 이 책의 장치로 제시한게 신의 한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실 게임 때문에 독자들은 긴장감과 스릴감을 내내 느낄 수 있다. 만약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추악한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나의 운명은 이 비열한 고등학교의 가십 주제로 전락해버릴 수 있는 것. 피비는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그녀에게 과연 무슨 일이 발생할까?

책에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면 3명의 화자 사이에 반복되는 1인칭 시점의 독백 서술 형식 때문에 다소 정신이 없다는 것. 그리고 사실 이런 사이버 폭력이나 가상의 공격 등은 범죄의 본질이 그러하듯 주요 등장인물과 범인 사이에 직접적인 만남이나 대치가 없어서 조금 심심한 느낌도 들었다. 그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과 그 속에서 발생하는 가족 , 친구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누가 누군지 조금 헷갈리기도 했다. 다음번에는 조금 등장인물의 수를 줄여주셨으면 한다. 어쨌든 이런 이야기가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일인지에는 다소 의문이 가기는 하나 작가가 구성을 정교하고 촘촘하게 잘 배치했고 끝에 드러나는 엄청난 반전을 동반하는 결말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전편 [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 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도 한번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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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틀 케이스릴러
주영하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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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싸운 건 결코 이길 수 없는

SNS 라는 괴물



SNS 가 범람하는 현대사회. 사람들은 손바닥 크기 밖에 되지않는 스마트폰 속 가상의 공간 속을 들여다보면서 나와 다른 이들을 비교하며 우리의 현주소를 파악한다. 현실이 온라인을 지배하는게 아니라 온라인이 현실을 지배하는 모순 가득한 세상이 되어버렸다고 할까?



다른 이의 SNS 속 행복에 질투하고 감탄하고 선망하는 우리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SNS 속 사진들과 글에서 비춰보이는 부와 행복이 과연 진실일까? 속으론 울고 있으면서 남에게 보이기위한 행복을 우리가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유독 행복하다고 자부하는 몇몇 나라들의 국민들이 높은 비율로 우울증을 호소한다는 사실도 있듯이,진정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을 자랑하지 않는다. 현실이라는 더러운 세탁물을 덮어둔 채 방금 구매한 고급 장식장의 사진을 sns 에 올리는 여성의 눈동자에 기만과 거짓이 그리고 슬픔이 보인다면 그것이 나의 착각일까?



겉으로 보이는 부와 행복 속 온갖 추악한 비밀과 위선, 기만 그리고 거짓말로 가득 찬 sns 를 고발하는 이야기

[ 행복배틀 ] 속으로 들어가본다.



마케팅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미호는 홍보물로 쓰일 사진에서 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다. 그녀는 아주 오래전 친했던 그러나 이제는 기억속에 없는 고등학교 친구 유진이었다. 두 딸과 배에 품은 아이 그리고 남편의 손을 잡은채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고급 아파트와 훈훈한 남편 그리고 아름답고 우아한 유진의 모습에 잠시 과거의 쓰라린 기억을 떠올린 미호. 그녀와의 씁쓸한 기억을 뒤로 한채 휴가에 들어간 미호는 뉴스에서 충격적인 보도를 접하게 된다. 바로 홍보물에 등장했던 동창 유진의 죽음. 그녀는 아파트 난간에 걸쳐진채 잔뜩 피를 흘리며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고 그녀의 남편도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간 상태이다.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소식에 그녀의 죽음을 외면할 수 없었던 미호는 한달음에 장례식으로 달려가고 거기서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게된다. 강남 부유층의 고급 아파트 하이프레스티지 입주민들, 즉, 유진과 함께 어울렸던 엄마들 무리 사이에서 유독 섞이지 않은 두 여인과 다른 무리들끼리 미묘하게 부딪히는 분위기를 발견하게 되고 거기에 유진의 죽음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 미호. 그녀는 왠지 겉도는 듯한 정아와 나영메게 접근한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미호에게 경계심을 드러내보이던 그들, 그들이 경계심을 보였던 이유는 뭘까?



고즈넉이엔티에서 출간되었던 다른 K 스릴러처럼 이 [ 행복배틀 ] 도 책을 드는 순간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또 이야기의 주제가 최근 한국 사회의 논란 거리 ( SNS 과도한 사용, 부유층의 부의 과시, 특정집단의 집단 이기주의 등등 ) 라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이야기 속에는 온라인 왕따나 악성댓글과 같은 사람들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을 수 있는 사악한 행위가 펼쳐진다. 남을 무너뜨리면서까지 행복을 과시하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과연 행복이란게 뭘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이에게 행복하다고 알려야하고 남의 행복을 짓밟아야할 정도가 된다면 그는 이미 지옥에 발을 들인게 아닐까?



유진의 끔찍한 죽음으로 시작된 미호의 사건 추적은 결국 17년전 그 사건에 대한 추적으로 이끈다. 그냥 덮어두고 살았던 비극은 줄줄이 엮인 굴비처럼 유진의 죽음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중심에는 바로 미호 자신과 어머니가 있었다. 유진은 죽었으나 그녀에게는 해결할 과제가 남았다. 추악한 비밀과 거짓말을 먹고 살아남은 그 사건.... 그녀는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영화로 만들어져도 정말로 재밌을 것 같은 소설 [ 행복배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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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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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기로에 섰을 때, 혹은 도무지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절로 떠오르는 곳을 고향이라 부른다면,

아오세에게는 숫제 고향이 없었다.

남은 건 빛의 기억뿐이다. 부드러운 빛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이 솟아오를 때가 있다.

떠돌던 건설 현장의 숙소에는 희한하게도 북쪽 벽에 큰 창이 나 있었다.

새어 들어오는 것도,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아닌, 왠지 조심스레 실내를 감싸 안는 부드러운 북쪽의 빛.

동쪽 빛의 총명함이나 남쪽 빛의 발랄함과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듯 고요한 노스라이트(north light).

공간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다. 사람들은 집을 고를 때 빛이 많이 들어오는지 혹은 디자인이 아름다운지, 사는 사람의 동선에 맞춰 설계가 잘 되었는지 꼼꼼히 살펴서 집을 고르곤 한다 . 그만큼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집 혹은 공간이다. 이 책 [ 빛의 현관 ] 에 등장하는 아오세도 건축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영혼을 담아서 집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한때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현재 그것이 모두 무너져버렸다는 것.

버블 경제였던 일본 경제가 무너지고 불황 때문에 사람들이 실직을 하여 뿔뿔이 흩어지면서 아오세도 힘든 나날을 겪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지금의 사무소 소장. 비록 중소 규모의 사무소이지만 꽤 탄탄한 커리어를 걷고 있는 사무실이다. 그리고 경제의 불황과 함께 가정도 무너져버렸다. 자진 퇴직 이후 자존심의 하락을 겪던 아오세와 아내 유카리와 살얼음을 걷는 듯 매일매일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급기야 이혼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아오세의 삶에 건축이라는 것은 하나의 빛이고 등불이다. 그는 특히 노스라이트에 입각한 집을 많이 지었다. 새어들어오는 것도 아닌 쏟아져들어오는 것도 아닌 실내를 살며시 감싸안는듯한 노스라이트. 그는 이전에 요시노라는 사람의 의뢰를 받아서 시나노오이와케라는 곳에 북향쪽으로 창이 나있는 목조식 주택을 지었었다. 건축 잡지에 실리며 순식간에 인기를 끈 주택이었지만, 주택 완성 이후 감탄을 하던 건축주 요시노가 한번도 연락이 없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끼는 아오세.

그러던 어느날 사장으로부터 충격적인 전갈을 듣게 되는 아오세, 현재 시나노오이와케의 Y 주택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것. 주택이 완성되었을 때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던 요시노 부부의 얼굴과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면서 아오세의 머리에 물음표가 반짝이게 된다. 건축가 아오세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그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지어주길 바란다고 했던 건축주 요시노. 아오세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도면을 그렸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집을 지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직접 두눈 으로 확인을 하기 위해 시나노오이와케로 달려간 아오세.

마치 모델하우스처럼 텅 빈 채 사람의 온기가 없었던 집. 별 가구가 없이 덩그러니 집만 존재하던 그곳에서 아오세는 문제 해결의 단서가 될 만한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브루노 타우트라는 독일 건축가가 만든 의자였다. 그는 나치스 정권의 박해를 피해 일본으로 망명했고 일본에 공예품 보급과 디자인 향상에 이바지한 인물이었다. 아무리 연락을 해도 받지 않는 요시노의 행방을 추적하는데 이 의자의 발견이 도움이 될까?

유명한 작품인 [ 64 ]를 쓴 요코하마 히데오 작가, 그는 이번에는 건축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완성하였다. 건축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지 노년에 나치스의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 건축을 한층 발달시킨 독일의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가정과 직장을 잃은 아오세, 돌아갈 고향이 없는 아오세는 타우트의 삶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계기를 가진다. 망명을 거듭해야 하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훌륭히 쌓아올린 타우트, 아오세는 그를 떠올리며 다시 건축가로써의 마음 자세를 다잡는다.

결국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건축 그 자체가 중요하기 보다는 집을 짓는 건축가의 마음 자세, 그리고 그 집에서 살게 될 사람들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의 중간 중간, 자신 때문에 세상을 등지게된 아버지에 대한 아오세의 회상과 이제는 거의 남남처럼 되어버린 아내 유카리와의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문득문득 떠올리는 아오세를 지켜보며 마음이 참 아팠다. 그가 집과 노스라이트에 집착했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고향을 다시 찾고 싶다는 마음, 어디론가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곳으로 회귀하고 싶다는 마음. 고독과 무명을 겪은 예술가의 끊임없는 예술을 향한 의지, 고향을 떠나 망명한 나라에서 자신의 건축혼을 불태운 노년의 외국인 건축가 등등을 보며 아오세와 독자들은 함께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인생이 상실과 고독을 건네주더라도 결국 수용하고 자신의 소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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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 죽음의 미학,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이문열 엮음, 김석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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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아들 ],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등등 인간 세계를 냉철하게 꿰뚫어보고 예리하게 분석한 글을 많이 쓰신 이문열 작가님이 선별한 단편들이 모인 [ 이문열 세계명작 산책 ] 이 재출간되었다. 대중적일 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주제의식도 가지고 있는 이문열 작가의 작품들은, 한때 큰 히트를 쳤었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었었다. 이번 세계명작 산책 중 [ 죽음의 미학 ] 은 바로 " 죽음 " 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때론 불길하게 때론 어둡고 공포스럽게 여겨지는 죽음, 그러나 빛과 어둠처럼 인간의 삶을 논할 때 이 " 죽음 " 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 죽음의 미학 ] 에서는 어떤 작품들이 독자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졌다. 언젠가는 우리가 필시 만나게 될 " 죽음 ",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나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톨스토이의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이 작품은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을 잘 드러낸다. 그는 작가라는 제 삼자의 눈으로 평범한 한 인간의 생애를 관찰해가면서 그의 평온했던 삶을 “ 죽음 ” 이라는 것이 어떻게 산산조각을 내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반 일리치는 판사로 재직하면서 평탄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내는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했고 아이들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물론 아내와 약간의 다툼이 있긴 했으나 살아가면서 약간의 불행의 요소들은 참아낼 수 있었다.

“ 그들은 그렇게 살았고, 이렇다 할 변화도 없이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갔다. 인생은 즐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

그러던 어느날 이반 일리치는 옆구리에 원인모를 통증을 느끼고 입에서 알 수 없는 끔찍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인생의 정점에서 더 이상의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던 순간 갑자기 그에게 다가온 고통이라는 낯선 방문객. 그는 하루하루 병이 깊어감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하지만 그가 병으로 조금씩 죽어가자 사랑하는 가족들은 모두 그를 외면한다. 마치 투명인간을 대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는 충성스런 하인 한 사람 밖에는 없다.

“ 그는 자기가 그들에게 성가신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 이런 거짓말 - 죽음을 앞둔 그에 관해 날조된 거짓말, 죽음이라는 무섭고도 엄숙한 행위를 사교적인 방문이나 커튼이나 만찬 때 먹는 철갑상어 수준으로 타락시키는 거짓말 - 이 이반 일리치에게는 지독한 고통이었다 ”

단편 [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은 고독하게 죽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질병의 고통 때문에도 힘들어하지만 사람들의 외면과 차가운 위선 ( 그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위선 ) 을 목도하는 것이 더욱 더 괴롭다. 이 뿐만 아니라 이 단편은 인간이 “ 죽음 ”을 대할 때 거치는 과정을 이반 일리치의 모습을 통해 잘 보여주는 듯 하다.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의 단계를 힘겹게 거치는 이반 일리치. 죽음까지의 여정은 힘겨웠으나 결국 죽음을 맞이한 이반 앞에,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구원인가?

“죽음 대신 그 자리에는 빛이 있었다. 죽음도 끝났어. 이젠 죽음도 없는 거야 "



스티븐 크레인의 [ 구명정 ]

스티븐 크레인의 단편 구명정은 그야말로 인생의 축소판과 같은 소설이다. 구명정을 타고 있는 4명의 남자들은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떠 있다. 선장, 기관사, 요리사 그리고 신문사 특파원으로 구성된 그들은 조그만 구명정이 파도에 뒤집히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그들이 발견한 육지에 다다르려 노력한다. 하지만 암초에 의해 번번히 해변에 도달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방해를 받게 된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이 생생한 노력 와중에 그들의 슬픔과 공포, 좌절 그리고 절망감이 가감없이 느껴져서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자연은 그들에게 무심하고 자신들은 바다에 버려진 먼지 같다는 느낌 그리고 신이나 그 누구에게도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이 그들의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 만약 내가 물에 빠져 죽을 거라면........ 내가 만일 물에 빠져 죽을 거라면....... 내가 만일 물에 빠져 죽을 거라면, 바다를 지배하는 미친 일곱 신의 이름에 걸고 묻겠는데, 도대체 왜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해서 모래와 나무를 살펴볼 수 있게 했단 말인가? 내가 막 삶의 신성한 열매가 내뿜는 향기를 맡으려는 바로 이 순간에 내 코를 억지로 돌려놓기 위해, 단지 그러기 위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단 말인가? “

내 생각에 크레인은 우리로 하여금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길 원했던 것 같다. 우리는 왜 사는가? 만약 인간이 어파치 죽어야 한다면 애초에 인간은 왜 사는가? 인간 존재는 이 우주에서 중요하기나 한건가? 우리가 이렇게 의미없는 존재라면 우리의 인생은 어떤 중요성을 띄고 있는 것일까? 필연적인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희망을 품는다는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결코 닿을 수 없는 해변을 그냥 보는게 나을까? 아니면 해변에 닿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죽는게 나을까? 그리고 생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왜 어떤 사람들은 ( 그들의 선함과 악함에 상관없이 ) 살아남고 다른 사람들은 결국 사라지게 될까?



해변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하다하다 지치고 또 지쳐 무표정해진 사람들 속에서 신문 특파원은 문득 한 구의 시를 떠올린다. 그는 자신이 이 시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을 정도였지만 갑작스럽게 시가 그의 뇌리를 스친다.

외인부대의 한 병사가 알제에서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네.

돌보는 여인의 손길 하나 없었으며, 여인의 눈물 한 방울도 없었다네.

하지만 전우가 그의 옆에 다가와 섰고, 그는 그 전우의 손을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네.

” 나는 내 고향, 내 고향 땅을 다시는 못 볼 거야 .“

처음으로 그는 시 속의 군인을 하나의 사람으로, 외딴 곳의 해변에서 죽어가는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놓인 한 인간으로, 그리고 그는 시 속의 군인과 동질감을 느끼고, 죽을 수 밖에 없는 모든 인류와 동질감을 느끼고 가엾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그는 자신이 개별적 존재라기 보다는 필연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류의 한 부분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한없이 추상적으로 들리는 " 죽음 " 이 생생하게 다가올때 비로소 인간은 겸허해지는 것 같다. 신에게 분노하면서 종주먹을 들이대다가도 그것이 운명이라면 ( 여러 과정을 거치지만 ) 결국 " 죽음 " 을 받아들이게 되는게 인간인 듯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기에. 결국 " 죽음 " 을 아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지 않은가? 이런 명작들을 통해서나마 간접 체험을 하면서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책을 읽는 동안 안타깝고 슬프고 우울하다는 느낌이 계속 있었긴 했지만 정말 훌륭한 작품들로만 모아놓은 단편집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못 읽어본 나머지 단편들도 빨리 읽어보고 싶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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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스튜어트 터튼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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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책을 빨리 읽어버릴 줄 몰랐는데 어쨌든 단숨에 읽어버린 책 –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니까 그냥 쉼없이 달려올 수 밖에 없었다, 왜? 결말이 너무너무 궁금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강렬하고 신비스러운 에너지가 머리 속에 가득차는 걸 느꼈다.. 원작이 훌륭한 책들은 보통 영화로 만들어지긴 하지만 이 책이 과연 영화화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만큼 복잡한 플롯과 복선을 가진 영화이다.

책의 화자는 습기로 가득찬 숲 속에서 깨어나는데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공포스런 어둠이 깔려있는 숲이다. 그는 누군가가 계속 따라온다는 느낌을 받는데 보이지 않는 시선이 그의 등으로 계속 내리 꽂힌다.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전혀 기억이 없고 그 숲 속에 어떻게 도달하게 되었는지도 전혀 감 잡을 수 없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머리 속에 떠오른 이름은 바로 Anna.

한참 후에 그는 자신의 이름이 Aiden Bishop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왠 낯선 자의 몸에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영혼이 갇혀 있는 걸까 ) 곧이어 마스크를 쓴 정체모를 인물이 다가와서는 풀려나고 싶으면 한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내야 한다고 퉁명스럽게 이야기한다.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그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 날을 8번 되살아야하는데 매일 아침 다른 자의 몸에서 깨어난다는 것도 특징이다. 만일 그가 살인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실패하면 그는 첫째날로 되돌아가고 기억은 깨끗하게 지워지며 그는 이전에 수없이 했던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그런데 Aiden 만이 이 복잡한 시간의 흐름에 갇힌 유일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더욱 더 복잡해진다. 두 명의 다른 사람들이 이 무한대의 시간대에 또한 같이 얽혀있고 그들을 쫓는, 미지의, 칼을 휘두르는 남자가 있다. Aiden 과 Anna 그리고 익명의 경쟁자들은 게임판 위의 말들이고 모든 것들은 위태위태한 상태이다.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이라는 이 책은, 살인 사건이 없는, 아름답지만 혼란스러운 살인 미스터리이다. 밀실 스릴러이자 동시에 독자가 조금 이해하기 힘든 타임 워프 이론이 중심을 차지한다. 잘 균형잡힌 이 책의 플롯은, 천천히 그러나 매우 신중하게 책 속에 숨겨진 미스터리와 비밀들을 드러낸다. 작가가 매우 정교하게 설정한 문장을 매우 신중하게 살펴봐야 이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가 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길을 헤매는 느낌이 들었는지 모른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작가가 설치한 덫에 갇히게 된다. 그 속에서 뺑뺑이 도는 내 모습이란.... ( 이해하지 못하고 방황함 )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거나 넘어지거나 겨우 탈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흩어져 있는 이 모든 단서들은 결국 어떤 결말로 이어질 것인가?

신인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필력도 뛰어난 소설이다. 그리고 인물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도 놀라왔던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미세한 변화, 그들의 선택 그리고 그로 인한 파급력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끊임없이 뿌려지는 떡밥 ( 복선들 ) 과 퍼즐 조각들도 놀라웠다. 매우 정교한 스토리 라인과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보고, 한 사람의 머리에서 이 책의 구성이 나왔다는 사실도 또한 놀라웠다.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은 주로 Aiden Bishop 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가 돌리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함께 걸려있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수레바퀴가 천천히 돌면서 다른 누군가의 삶과 운명도 바뀐다. 이야기는 영혼이 머무르는 각 몸, 즉 숙주의 기억에 머무르는데, 그 묘사가 마치 누군가가 풀장에 잠시 몸을 담구었다가 나온 것처럼 묘사된다. Aiden 의 영혼이 머무르는 각 숙주들은 각각 비밀을 품고 있고 거짓투성이의 삶을 살고 있는데 Aiden 의 자아정체성은 그가 잠시 머무르는 이 비열한 성격의 숙주들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 성차별주의자, 이기주의자, 비열하고 남을 조종하며 학대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런 캐릭터들... 도저히 호감이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독자들의 흥미를 끌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는 면에서 작가의 필력이 빛나는 듯하다.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치 소용돌이치듯 독자들을 미스터리 속으로 밀어넣는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방향을 잃은 채 헤매던 Aiden 의 노력 덕분에 결국 이야기의 전말이 드러나고, 독자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결론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결말이라니..... 작가가 마지막에 터트린 반전에 놀라서 나는 열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긴 숨을 쉬었던 것 같다. 도대체 이 괴물같은 작가는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와 인셉션이 만났다 “ 표지의 홍보문구처럼 이 책은 읽는 독자에 따라서 호불호가 진짜 많이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가 싫은 사람들은 이 책도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SF를 좋아하는 사람들, 특히 타임워프나 잠재의식에 대한 주제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추천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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