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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의 내가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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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장 좋은 눈물은 가장 작은 눈물일지도."

생과 사, 그 끊임없는 순환의 신비를 말하고 있는 듯한 현호정 작가의 단편 소설집 " 한 방울의 내가 ".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꿈의 세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책이다. 화분에 갇혀있어야 하는 무기력한 존재인 식물이 피를 마신 후 말도 하고 걸어 다니기도 한다. 누군가의 눈물에서 비롯된 작은 물방울은 전생을 기억하는 독자적인 존재가 되어 세상을 탐험하며 사랑하는 그 누군가를 찾아다닌다. 삶과 죽음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샴쌍둥이 같은 것. 살기 위해 먹어야 하지만 죽어야 누군가의 먹이가 되어 그를 살릴 수 있다. 마치 거대한 수레바퀴 같은 생과 사의 이야기 - [한 방울의 내가]

<라즈베리 부루>

계단 밑 지하에 숨어서 살아가는 나. 그 누구의 눈길에도 들키지 않은 채 마치 식물처럼 살아가는 "나"는 언젠가부터 작은 라즈베리 나무에 "부루"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에게 자신의 피를 나눠준다. 피를 준다는 것은 생명력을 주는 행위. 그로 인해 마치 인간처럼 말할 수 있게 되고 걸어 다니게 된 부루는 마치 식물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죽어가는 "나"를 돌봐주는데.... ---- 식물을 먹는 인간 그러나 죽은 후 우리는 땅이 되어 다시 식물에게 양분을 준다. 자연은 거대한 어머니이고 우리는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간다. 식물에게 생리혈을 나눠준다던가 하는 그로테스크한 면이 없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거대한 잎사귀 틈에 잠든 주인공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해서 뭔가 아련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

<물결치는 몸, 떠다니는 혼>

액자식 소설 같은 이야기이다. 카페에서 일하는 K와 부랑자의 대화 속 이야기. 부랑자는 아직 오지 않은 지구의 속삭임을 듣게 된다. 미래의 어느 순간 지구는 끔찍한 재난을 맞이하고 물에 잠긴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난다. 온갖 쓰레기들이 떠다니는 더러운 바다. 먹을 것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물속을 떠다니는 흰 부유물을 먹고 살아가는데, 알고 보면 그건 이미 죽은 자들의 몸이다. 재난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몸에 돋은 종기와 같은 기생체와 함께 살아가게 되지만 어느덧 기생체들은 자생체보다 더 크고 힘이 세지게 되는데...... ---- 내가 평소에 상상하던 디스토피아 속 지구를 매우 그로테스크하게 잘 그려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 원래 몸보다 훨씬 더 비대하고 강력해진 기생체들을 상상하니 머리끝이 쭈뼛 서는 느낌이랄까... 이 작품도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죽은 뒤 누군가의 먹이가 되는 순환을 그려낸 듯.

<한 방울의 내가>

전생에 "메이"라는 한 인간의 눈물방울이었던 "나"는 땅으로 떨어진 후 세상에 이리저리 휩쓸린다. 빗방울이 되어 다른 빗방울들과 함께 춤을 추며 세상에 스며들었던 "나"는 이생에서는 작은 웅덩이가 되었다. 오리와 이야기하고 바람의 소리를 듣는 등 여러 정보를 종합해 본 결과 "나"는 물의 중심을 이루는 작은 구슬 "온"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래 큰 물과 작은 물이 동화의 춤을 추다 보면 더 작은 쪽 온이 사라지게 되는 게 원칙이지만 "나"는 자신의 온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반드시 이 생에 메이를 만나야 하기에..... --- 그저 물일뿐인데 이제는 "온"이라는 생명 에너지를 가진 하나의 존재로 보게 된다. 전생의 기억을 간직한 채 거대한 흐름에 합쳐지길 거부한 물방울. 과연 물방울 "나"는 메이를 되찾을 수 있었을까?

뭔가 상당히 독특하고 기묘한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왔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 등등 생명의 거대한 주기 혹은 순환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소설집 <한 방울의 내가>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탄생이라는 것, 그리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먹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는 것 같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개도 꿈에서는 납득되는 것이 사실이다. 연필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거나 죽은 이의 부유물이 둥둥 떠다니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끔찍한 상황이라도 꿈속이라면 가능하다. 라즈베리 나무가 식물 같은 인간을 돌보고, 자신만의 "온"을 품은 채 전생의 연인을 찾아헤매는 물방울의 모습이 묘사되는 이야기, 기묘하고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이지만 신비롭고 아름다운 꿈속 세상 같은 이야기로 이끄는 단편 소설집 <한 방울의 내가>를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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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익스프레스 - 한 권으로 빠르게 끝내는
김영석(써에이스쇼) 지음, 김봉중 감수 / 빅피시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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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순으로 큰 흐름을 잡고.

사건으로 한 번 더 깊게 읽는다!"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굉장히 위트 있고 재미있으셨던 분이라 우리는 수업 시간 내내 빵빵 터졌었다. 선생님 덕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국사보다는 세계사를 더 좋아했었고 특히 유럽 중세 시대의 경우, 매혹될 정도였다. 흑사병이나 십자군 전쟁 그리고 마녀사냥 같은 뭔가 불길하고 어두운 느낌을 주는 사건들이 많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좀 더 극단적이고 다이내믹 (?) 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후 종교개혁이나 영국의 산업 혁명 같은 사건들도 이 세상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사건으로 여겨져서 흥미진진했다. 과거는 반복되는 것!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뭔가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의 흐름을 보는 눈을 기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된 후에는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읽게 된 책 <세계사 익스프레스>가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현재 유튜브 채널 "써에이스쇼"를 운영하고 있는 김영석 저자가 집필한 것인데, 동서양을 넘나들며 길고 복잡한 역사를 단숨에 정리해 주는 역사서라고 한다. 크게 2개의 파트로 나뉘어있는데, 첫 번째 파트는 전체 세계사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주요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나열해 놓았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일반 독자들도 알만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요약들이 소개된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들이 요약해놓은 족보 같은 느낌이라서 아주 쉽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두 번째 파트에는 일종의 심화과정으로 강대국의 주요 역사가 펼쳐져 있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복잡한 국제 정세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사건들이 소개된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미국이 어떻게 세계 초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 러시아가 가장 넓은 땅을 가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 등등 지금도 세계 각지를 주무르는 굵직한 사건들이 나와 있다. 나의 경우, 대학생 시절에 이스라엘에 다녀온 적이 있어서 사실 중동 지역에서의 내전과 갈등 등을 실제로 겪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내게는 202쪽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갈등을 다루는 "종교 갈등은 어떻게 전쟁이 되는가"의 내용이 흥미로웠고 눈에 들어왔다.

먼 옛날 나라를 잃은 후 유럽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 그러나 흩어져 살면서도 민족과 종교를 잊지 않았던 이들은 19세기 말 조상의 땅이자 약속의 땅인 팔레스타인 지방에 그들만의 국가를 세우고자 했고 이 운동이 바로 '시오니즘'이다. 처음에는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이 평화로운 공존을 이뤘으나 영국의 이중 계약과 나치의 박해 등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몰려들었고, 팔레스타인을 아랍 국가와 유대 국가로 분할하는 유엔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결국 갈등이 시작된다. 사실 미국에 살고 있는 부유하고 권력 있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어서 어쩌면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에 대한 도발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가서 보면 경제적 불균형이 심각하고 특히 가자 지구는 경제적으로 폐쇄된 것이나 다름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빈민으로 전락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뭔가 정의롭지 못한 상황........ 과연 중동에서의 갈등이 해결될 수 있을까?

나는 솔직히 역사보다는 과학을 더 좋아한다. 역사서는 승자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적힐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뒤흔든 어떤 사건을 겪고 나서는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현재는 과거의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해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그런 큰 흐름을 짚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 바로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은 그 사건도 미래에는 하나의 기록으로 남아서 우리의 후손에게 교훈이나 배울 점을 전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라고 하면 외워야 하는 자잘한 사건들과 인물로 가득해서 어렵고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런 독자들을 위해서 쓰인 책이 바로 이 <세계사 익스프레스>이다. 정말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아주 간단하게 잘 요약정리가 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역사를 탐구하고 싶어 하는 모든 독자들이 첫 단계로 읽어볼 만한 책 <세계사 익스프레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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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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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삶을 바꾼 테크놀로지의 거인

혁신적인 비즈니스 리더이자 자선 사업가

빌 게이츠의 첫 회고록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억만장자 사업가인 빌 게이츠. 명문 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하고 젊은 나이에 자신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하고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의 운영체제를 만든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수장이고 현재는 기후 변화, 세계 보건 그리고 자선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두뇌도 천재적이겠지만 사업적으로도 성공한 이 사람의 삶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리고 오늘의 빌 게이츠를 이끈 과거의 경험이나 삶의 원동력 같은 것들을 알고 싶어졌다. 그런 부분을 잘 보여주는, 빌 게이츠의 첫 회고록인 이 책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은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사회적으로 많은 활동을 했던 열혈 어머니 아래에서 성장한 빌 게이츠. 아버지는 성실하고 온화한 편이었지만 어머니는 자식 교육에 신경을 많이 썼고 아이들도 절도 있는 삶을 살도록 엄격히 통제하는 편이었다. 빌 게이츠의 누나인 크리스틴은 모범생 체질이라 부모님 말씀을 잘 따랐지만 어릴 적 빌 게이츠는 주관이 확실했고 반항기가 많았다. 어린 나이부터 자신을 통제하려는 어머니와 충돌이 많았지만 상담 선생님의 중재 덕분에 빌 게이츠는 일찍부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자유와 자율성을 좀 더 부여받게 된다.

이 책은 지금의 그를 만든 삶 - 가족, 학교, 경력 등등 -에 대한 빌 게이츠의 기억을 기반으로 서술된 회고록이다. 일단 나는 가정 교육이 그의 삶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빌 게이츠의 부모님 두 분 다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사람들이었는데, 영향력이 있는 만큼 사회적으로도 공헌을 많이 한 것으로 보였다.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기에 비교적 넉넉하고 여유 있는 삶을 누린 것도 맞긴 하지만 신앙을 기반으로 엄격하게, 그러나 이웃에게 봉사를 실천하고 자식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이 있었기에 지금의 성공한 빌 게이츠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상류층 자제들이 모인 레이크사이드 스쿨에 진학하게 된 빌 게이츠.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대단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선 굉장히 지적이고 정치에 열렬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친구 켄트 에번스와 훗날 마이크로소프트를 함께 창립하게 된 폴 앨런을 만나게 된 것. 그와 친구들은 컴퓨터실을 점령하고 미친 듯이 프로그래밍에 빠져들게 된다. 낮이고 밤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미친 듯이 빠져드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이 결국에는 자신의 경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작지만 끈끈한 공동체처럼 유지되던 레이크 사이드에서 열심히 공부한 후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대학교 생활이 그다지 자신에게 맞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마침 우연하게도 워싱턴 주립 대학교를 다니고 있던 친구 폴 알렌도 도전적이지 않고 갑갑하기만 한 대학 생활에 불만족을 느끼게 되면서 결국 둘은 의기투합을 하고 그들이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매진하게 되면서 결국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개인용 컴퓨터를 위한 소프트웨어가 탄생하게 되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컴퓨터 전문 용어가 나와서 좀 힘들었지만 전반적으로 이 책은 매우 흥미로웠다. 뭔가 베일에 가려져있다는 느낌을 줬던 인물 빌 게이츠의 일생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아주 똑똑했지만 반항심도 많고 일종의 똘끼 (?) 도 있었던 어린 빌 게이츠. 그러나 사회적으로 영향력도 있고 부유한 가정을 만든 부모님 덕분에 여러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수학에 대한 열렬한 관심, 좋아하는 일에 미친 듯이 빠져드는 열정, 그 와중에 만나게 된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이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를 빚어낸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게 참 중요한 것이구나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생각보다 참 흥미진진했던 책 [소스 코드 : 더 비기닝]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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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그 깊은 독백 - 익숙했던 것과의 결별 바람이 지구를 흔든다
박갑성 지음 / 예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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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낡고 벌거벗은 시간 위에

생이 자꾸만 비틀거린다

바쁘게 살아가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인생의 전성기는 지나가고 자꾸만 과거를 곱씹는 나이가 되었다. 너무 예민하고 불안했던 젊은 날이었기에 오히려 약간은 감각이 둔감해진 요즘이 나는 더 좋다. 나는 아직 정년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다가올 미래이기에 누군가가 맞이할 정년이 궁금했다. 이 책 [정년, 그 깊은 독백]은 한 직장에서 30년 넘기 근무한 박갑성 저자의 책이다. 치열하고 경쟁적인 회사라는 조직에서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었다는 건 저자가 남다른 인생관과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내 예상대로, 책에서 마치 향기가 난다고 느껴질 정도로 깊고 은은한 글솜씨가 빛나는 책 [정년, 그 깊은 독백]

이 책은 일종의 에세이이고 내면을 들여다보며 성찰하는 명상서적에 가깝다. 프롤로그 후에 이어지는 글은 여름에서 시작하여 겨울로 끝을 맺는다. 2024년 7월에 정년을 앞두고 있는 저자는 2023년 7월부터 매일 한 꼭지씩 글을 쓴 것으로 보인다. 각 글의 주제는 인생, 가족, 직장 생활 등등 다양하고 각 주제에 대한 저자의 생각, 느낌, 기억 등등이 잘 내린 커피향처럼 은은하게 풍긴다. 아이 셋을 키우느라 고생했을 아내에 대한 미안함,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한 어머니, 그리고 직장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는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 등 특히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이 두드러지는 글이어서 좋았다. 그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들의 고충을 잘 들어주는 인간적인 상사란 느낌도 받았다.

저자가 젊은 시절에 아마도 시인을 꿈꾸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글을 구성하는 언어가 아름답고 표현력이 뛰어나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5시에 출근할 만큼 정신없이 바쁜 직장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꾸준하게 이렇게 좋은 글을 써오셨다는 게 놀라웠다. 표현이 아름답고 닮고 싶은 인품이 묻어나는 책인 만큼, 발췌하고 싶은 대목들도 많았는데, 예를 들자면 33쪽 "가까운 사람일수록 호저의 거리가 필요하다. (...)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중요한 행위이면서 보석처럼 아름다운 일이다." 나 38쪽 "삶의 버거움을 느낄 때, 버거움을 뛰어넘는 고통으로 행복해지는 들숨과 날숨, 절망은 생각보다 쉽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와 같은 구절은 삶에 다소 회의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힘이 있다고 느꼈다.

가족과 직장 외에 저자가 관심을 가진 영역이 바로 "등산"이라는 것을 알아챌 만큼, 이 책에는 산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아마도 매 순간 등산하듯 살아오신 분이라서 산에 끌리지 않았나?라는 재미있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73쪽 "맨발로 지양산을 걸었다. 길 위에 밤송이가 떨어져 굴러다니고 가을 향기가 산을 덮자, 사람들의 얼굴에 가을이 물든다." 와 91쪽 "가을 단풍은 머리 위로 내려앉아 있고, 바람이 불면 자작나무는 하얀 속살을 드러내어 순백의 세상을 보여준다"와 같은 구절은 울긋불긋한 색깔로 가을을 드러내는 산의 경치를 잘 묘사한다는 느낌이다. 책의 중간중간 계절을 보여주는 예쁜 장면들을 찍은 사진들도 있어서 글들이 좀 더 돋보인다.

프로필에 저자의 고향이 경남 남해라고 소개되어 있다. 나와 신랑은 휴가 때마다 가고 싶은 지역으로 꼭 남해를 고른다. 바다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운 남해 지역 출신이라 그런지 저자의 글에는 자연이 숨어 있다. 회색빛 도시 속에서 벼가 익어가는 풍경을 찾아내고 시간을 내어 한양도성 근처 길을 걸으면서 오래된 경치를 만끽하는 저자. 그 와중에 저자는 생과 사를 고민하고 삶의 무게와 존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디지털 세상으로 점점 굳어지는 한국, 그리고 대도시 서울 안에서 삶을 노래하는 음유 시인이라는 느낌도 들었달까? 하여간 상당한 문학적 재능이 있으신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정년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실 것 같은 박갑성 저자의 에세이 <정년, 그 깊은 독백>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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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역사 - 이해하고 비판하고 변화하다
니알 키시타이니 지음, 도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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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한 새로운 관점과 이론

그리고 다양한 경제학적 논쟁의 실체

학창 시절에 교과 과목 중에 정치 경제라는 과목이 있어서 배우긴 했지만 사실 "경제"라는 말만 떠올려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게 느껴질 만큼, 경제라는 과목은 나에게 어렵게 다가오는 학문이다. 이해하기 힘든 여러 이론들뿐만 아니라 숫자와 그래프들이 더해지면 수업 시간은 그야말로 악몽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읽게 된 <경제학의 역사>는 굉장히 쉽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대중들의 수준(?)을 십분 고려한 듯한 쉬운 설명과 인류 역사의 흐름과 함께 서술한 논리적인 배치가 글 읽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 같다.

이 책은 특정 경제학자의 이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기보다는 인류 역사의 흐름 전반을 살펴보면서 당시의 경제 상황과 주요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살펴보는 식으로 정리가 되어 있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시기부터 자본주의가 첨예하게 발달한 현시점까지의 경제학 내용이 실려있는데, 누구나 알 것 같은 굵직 굵직한 경제학자 -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즈 등 -의 이론에서부터 영향력은 나름 있었으나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경제학자의 이론에까지 매우 다양하고 폭넓은 경제학 이론이 정리되어 있다. 어떤 이론은 그냥 이론에만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이후 인류의 경제 체제에 기초를 다지거나 아주 크나큰 영향력을 끼친 경제학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경제 서적인 "국부론"을 쓰고 "보이지 않은 손"이라는 경제 이론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스코틀랜드 철학자 출신인 그는 흥미롭게도 사회를 축구팀에 비유한다. 훌륭한 선수라면 팀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상업 사회가 인간의 좋은 품성과 연관이 있다고 믿었고 분업과 사익 추구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 체제를 주장함으로써 자본주의의 기틀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국부론을 읽으며 성장한 리카도라는 경제학자는 그 유명한 "비교 우위"이론을 만든 사람이다. 말하자면 각 나라가 비용 대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물품을 생산하고 적극적으로 대외무역을 하자는 입장이다. 이 분의 비교우위론은 현재 경제학에서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원칙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굵직한 경제학자들 이론 외에도 오언이나 푸리에 같은 사상가들이 그려낸 "유토피아"에 가까운 모습의 공동체 사회 이론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인간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실패한 이론으로 남은 게 아쉬웠다. 굵직한 경제학자들 중 마르크스를 빼놓을 수 없다. [공산당 선언]을 통해 자본주의의 종말을 경고하고 시위를 주도했던 마르크스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그를 받아들인 영국에서 연구를 계속 헤 나간다. 그의 이론에서는 기본적으로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봤고 결국 공동체가 재산을 소유하고 개인은 배급을 받는 공산주의를 이상적으로 본다. 많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결국엔 경제 체제 면에서 실패했지만 어쨌든 마르크스의 이론은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후대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놀라운 통찰력의 소유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이란 사람의 이론이 대단히 흥미로웠다. 그는 사람의 선택을 제대로 보려면 본능과 습관을 봐야 한다고 했고 현대 사회를 고대 부족사회와 비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완전히 합리적인 사람처럼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물건을 산다는 것. 살아생전 관습을 따르지 않은 베블런의 경제학 연구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의 이론이 대단히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명품이나 외제차를 구입하는 현대인의 과시용 쇼핑을 그대로 설명해 주는 이론이 아닐까? 싶다. 이 책 [경제학의 역사]는 발전하고 쇠퇴하고 다시 부흥하는 인간 문명처럼 변화하는 경제학 이론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소개된 점이 좋았던 것 같다. 경제에 관심 있지만 아직은 초보라고 느끼는 모든 독자들에게 추천하고픈 책 [경제학의 역사]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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