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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징조들 그리폰 북스 2
테리 프래쳇.닐 게이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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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토요일 퇴근길에 들른 대형서점 구석에서, 수트 정장 차림으로 쭈그리고 앉아 다섯 시간만에 독파했다. 수시로 낄낄거리며 뒤로 넘어가기까지 했으니 옆에서 봤으면 미친 사람으로 오해하기 딱 좋았을 것이다. 정말 오랫만에 아무 생각 없이 유쾌하게 웃었다.

먼저 칭찬하고 싶은 것은 작가의 예사롭지 않은 유머감각이고, 그 다음으로 칭찬하고 싶은 것은 외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문화적 코드를 조금이라도 통하게 해 보려고 많이 노력한 번역이다.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했다는 것이 팍팍 느껴졌다. 배경지식이 부족하여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지만, 역주들이 없었다면 이만큼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픽션의 성패는 캐릭터가 결정한다고 믿는 편인데, 천사와 악마, 마녀와 마녀사냥꾼, 적그리스도와 '놈들', 그리고 '개'까지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잔뜩 나와서 즐거웠다. 거기에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전개, 마음으로부터 공감할만한 메시지, 어떤 장면(지옥의 전사들과의 마지막 결전 장면 같은 것)은 퍽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6월의 해리포터 5학년 이후 넉달만에 만난 최고의 오락소설이다. 이번 주말에도 서점에 읽으러 갈까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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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10억 만들기 - 10억을 모은 사람들의 돈 버는 기술
김대중 지음 / 원앤원북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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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직장 생활 반 년째. 월급의 60% 이상을 받자 마자 만기 5년이 남은 장기주택마련저축에 넣고, 남은 돈을 쪼개어 건강보험에 들었다. 하는 김에 엄마 앞으로도 하나 더. 그러고 남은 돈을 더 쪼개어 겨울 옷을 사려고 모으는 돈이 이제 40만원을 넘었다. 군것질은 당연히 못하고 비싼 음악회 대신 싼 미술관 쪽으로 취미를 확장하는 중이고, 그 좋아하던 책 사기도 마음대로 못해 동네 시립 도서관의 단골이 되었다. 덧붙여 도서관까지의 전철 두 정거장 거리는 걸어다닌다.

주위의 반응은 썰렁하다. 쟤가 왜 저렇게 돈독이 올랐냐고 어이 없어하는 부모님도 그렇지만, 백화점에서 예쁜 옷, 예쁜 가방, 예쁜 화장품, 예쁜 그릇 등을 사는 게 취미인 동생 녀석은 나의 인생관에 대해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왜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냐고. 서점에 서서 이 책을 다 읽어버리고 서평을 쓰러 알라딘에 들어왔다가 '작가의 말'에 있는 저자의 동생 얘기에 그만 웃어 버린 것은 내게도 그런 동생이 있기 때문이다.

알라딘 사이트의 '작가의 말'도 그렇지만 이 책 안에는 마음에 팍팍 와닿는 이야기가 정말 많다. 재테크 방법들을 찾아 다니기 전에 본업에 충실하라는 충고와 먼저 자기에게 투자해서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라는 충고는 꼭꼭 새겨 두었다. 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이니까. 번 돈을 나누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부의 대물림이 가능하더라도 빈곤의 대물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내가 뽑은 이 책의 best 구절이다. 열심히 일한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그래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정말로 행복할 거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내 집 마련을 꿈꾸며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아둥바둥 사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 든든하다. 화려한 백화점에서 신용카드로 즐겁게 쇼핑하는 것이 삶의 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자. 소득이 적으면 지출을 줄이면 된다는 낡은 신념을 여전히 소중히 품고, 오늘도 동전을 세며 가계부를 쓰고 있을 나의 가난한 동지들께 마음을 담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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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8-03-17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부동산 시세 검색을 하다 알았는데 내 자산이 10억이 됐다. 아파트 값이 오른 덕을 많이 봤지만, 15년 간 꾸준히 절약하며 살아온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
 
일리아스 - 희랍어 원전 번역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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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에는 모든 것이 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희랍 군의 최후 방어선이 뚫리고 트로이아 군에 의해 배가 불태워지기 시작하는 절대절명의 위기 상황을 보라. 따뜻한 가족애?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이별 장면은 어떤가? 투구가 무서워 어린 아들이 울음을 터뜨리자 투구를 벗어두고 아이를 안아 어르는 트로이아 최고의 용사. 냉정한 현대인들도 눈시울이 붉어질 만하지 않은가? 음모와 암투? 제우스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아카이아 인들을 도와주려고 동분서주하는 헤라의 행보를 따라가 보라. 스캔들? 남편을 버리고 애인과 도망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스캔들의 화신 헬레네가 일리오스의 성안을 활보한다. 개그? 성스럽고 아름답고 우아한 여신들이 인간들의 전장까지 우르르 밀고 내려와 서로에서 '개파리야!'라고 욕설을 퍼붓는 장면은 어떤가? (개는 비겁함 파리는 무모함의 상징이란다. 외워서 경음화된 욕설 대신에 활용해보자. ^^) 로맨스? 플라톤도 칭찬했던 시대의 로맨스가 여기 있다! 희랍 최고의 용사답게 최고로 오만하던 우리의 미청년 아킬레우스가 연인의 사후에 보이는 격렬한 슬픔과 분노는 보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나니.

이제까지 세 종류 이상의 번역판 일리아스를 읽어보았지만, 번역의 충실함에 있어서나 감동의 깊이에 있어서나 이 책을 따라올 만한 번역은 없었다. 산문체 번역으로는 노래로 불리어진 원작의 느낌을 알기 어렵다는 점도 있지만, 우선 분량에 있어서도 차이가 확연하다. 비상시 적을 내리치는 무기로 사용해도 충분할 듯한 이 원전 번역이라면, 구석구석 숨어 있는 범상치 않은 재미들을 자칫 놓쳐버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희랍신화에 어느 정도 익숙한 독자에게 특히 추천한다. 불핀치의 '줄거리만 간단한' 신화로는 채워지지 않던 갈증을 확실하게 풀어준다. 단, 너무 어린 독자에게 추천하기에는 다소 망설여지는데, 알고 보면 뜨거우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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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률 VOCA 어원편
이찬승 지음 / 능률영어사(참고서)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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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모 과학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밥 먹을 때도 들고 다니던 바로 그 책입니다. 교육과정이 쉬워지면서 단어 수준도 많이 쉬워지고 단어 수도 줄었더군요. 그건 그런대로 괜찮지만 연습문제가 없어진 게 아쉬워서 별 하나를 깎을까 말까 좀 고민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좋은 책임에는 변함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이 책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대학 다니면서 과외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꼭 보게 했습니다. 하루에 30분, 시간을 정해 놓고 공부하는 것이 좋은데, 저는 식사 시간이나 밤에 졸리는 시간대를 이용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그러기를 권했어요. 60일만에 끝내는 걸 힘들어 하는 학생도 있지만, 완벽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들이기 보다는 잊어버릴 때 잊어버리더라도 매일매일 그날의 진도를 끝내는 게 중요합니다. 끝까지 한 번 다 본 후에 처음부터 다시 외우세요. 두 번 볼 때 다르고 세 번 볼 때 또 다릅니다.

열심히 하면 고등학교 1학년 동안 다섯 번도 더 볼 수 있죠? 그 정도 하면 수능 영어는 거의 걱정 없습니다. 수능 독해가 요구하는 문법이나 구문 지식이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단어만 알면 뜻이 보이는 게 보통이에요. 단어부터 잡아 놓고 남은 2년은 학교 수업 즐겁게 들으면서 느긋하게 수험 준비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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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밭 엽기전
백민석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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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 작가가 아키노 마츠리의 '펫숍 오브 호러즈'를 읽었는지가 궁금해진다. 안으로 들어갈 수록 점점 더 알 수 없어지는 근원적 공포의 공간인 '펫숍'과 어딘가 인간을 초월한 듯한 '삼촌', 그리고 의심을 품고 다가오는 형사의 존재가 아무래도 저 작품을 연상시킨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불만이 스며 있는 것 역시 공통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넘쳐 나는 원색적이고 동물적인 폭력의 에너지는 '목화밭 엽기전'과 '펫숍 오브 호러즈'를 비교하는 일 자체를 망설이게 만든다.

'그래 우리 소풍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 '16 믿거나 말거나 박물지', '불쌍한 꼬마 한스'를 모두 재미있게 읽었지만, 작가의 전작들과 비교해도 이 작품의 파괴적인 피냄새는 두드러진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강자의 약자에 대한 사정 없는 폭력이다. 여기에서 강함은 곧 남성성과 통한다. 남편을 조종하며 권력에 편승하려던 박태자의 비참한 최후는 '남성=강자=폭력의 주체', '여성=약자=폭력의 대상'이라는 공식에 쐐기를 박는다. 더 남성적인 놈일수록 더 강한 이 위계의 피라미드가 남성 동성애와 맞물려 있는 것은 인상적이다. 더 이상 자식을 낳아 사회를 유지하는 생산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낭만적 사랑의 환상과도 결별한 채, 짐승같은 힘겨루기의 상징이 되어 버린 성행위는 독자의 상식에 대한 또 하나의 주먹질인지도 모른다.

거기에 걱정스럽게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뱃 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야만성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노예 노동을 연상시키는 '목화밭'은 우리 안에 잠재된 짐승의 성향, 폭력 유전자의 존재를 끊임 없이 일깨워준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상냥하고 약자를 보호하며 질서를 사랑하는 강자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성이라는, 학문이라는, 도덕이라는 이름의 바벨탑 안에서 자연의 본성으로부터 몸을 숨긴 채 죽는 날까지 안온하게 지내고 싶은 작은 소망을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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