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의 아가씨 - 이마 이치코 걸작 단편집 3
이마 이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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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마이치코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별 세 개를 주려니 가슴이 아프다. GAME에서처럼 호기롭게 별 다섯을 클릭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문조 이야기와 흡혈귀 이야기는 꽤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수준을 따져 점수를 주자면 역시 별 셋. 이 작가의 작품은 모두 산다! 라는 나같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야겠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이번 작품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는 남자같은 여자 캐릭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씩씩한 여전사 타입의 여주인공과 지적인 미남인 남주인공이 서로 반하는 이야기라니 너무 뻔한 순정만화가 아닌가;; '백귀야행'의 사촌누나들이라든지 '어른의 문제'의 나오토네 엄마, 'GAME'의 교수 사모님이 보여준 인상적인 모습들에 비해서 이 작품집의 여자들은 어딘지 어색하다. 드문 재능을 가진 작가인만큼 보이즈러브로 타입화 되는 것은 아깝지만, 억지로 순정 연애물을 그릴 필요도 없다고 본다. 특별히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작가에게 거는 나의 기대는 굉장히 높고, 이번 작품집은 그 기대치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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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색일대남
이하라 사이카쿠 지음, 손정섭 옮김 / 현실과미래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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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 개를 준 이유는 이 책이 무지무지하게 재미있어서도 특별히 감동적이어서도 아니다. 이 책에 사실적으로 묘사된 인물들과 상황이 너무나 특이해서인데, 그런 점에서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쿠가와 문학의 최고봉'이라느니 '일본인이라면 학창시절 반드시 접하는'이라느니 하는 뒷 표지의 광고문구들은 사실 여부가 조금 의심스럽다.그렇지만 내가 이 책의 제목을 알게 된 것도 역사책에서였으니 풍속을 어지럽힌 죄로 감옥살이도 했다는 이 작가가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문제의 인물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서문을 쓴 작가의 친구는 이웃 농사꾼 아주머니가 이 책 이야기를 듣고 며느리 욕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전하는데, 확실히 밝고 유머러스하긴 하지만 21세기의 한국인에게 그 정도로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다.

주인공 요노스케는 일곱 살 때부터 예순 살 때까지 초지일관 호색한이었으며 일생 3724명의 여자, 725명의 남자와 자고는 마침내 배를 만들어 야한 물건들을 잔뜩 싣고 전설에 나오는 여자들의 섬을 찾아 일본을 떠난다. 이 54년 간의 엄청난 호색행각이 매년 그 해를 대표하는 짤막한 꽁트 한 편씩으로 묘사되는데, 희대의 플레이보이 요노스케가 꼭 승승장구하는 것만은 아니어서 재미있다. 집에서 쫓겨나 거지꼴로 방랑하기도 하고 갑자기 자기 행동을 반성해 절에 들어가기도 하고(결국은 금방 파계하고 다시 호색의 길로 들어서지만) 유부녀를 유혹하다 남편에게 얻어맞기도 하고 유곽 여인에게 망신을 당하기도 하는 등 실패의 에피소드가 더 많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새로운 여자 뒤를 쫓아다니는 주인공이 어떨 때는 대견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유곽의 여인들에 대해서 섣불리 경멸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초일류 호스티스인 타유에 대해 언급할 때는 존경심마저 느껴진다. 사회의 온갖 도덕과 근엄한 모든 것들을 조소하는 듯 보이는 작가도 한편으로는 나름의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그가 유곽의 여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손님에 대한 성실한 자세이다. 역시 '직업의식 투철한 일본인'이라는 걸까? 짤막한 글들이 모여 있어서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각 장마다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익살스러운 그림이 붙어 있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든다. 어른을 위한 유쾌한 농담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읽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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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 부인 혜원세계문학 15
플로베르 지음 / 혜원출판사 / 199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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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관계에 불성실한 남녀의 이야기는 문학의 단골 소재이다. 동양에서는 남편의 부정이 서양에서는 아내의 부정이 많이 다루어진다는 말도 들은 적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엠마 보바리의 스캔들은 고전이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철저한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하는 이 소설은 생생한 현장감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시골 아낙네들이 수군거리는 마을의 소문에 귀 기울이는 느낌으로 빠져들다 보면 쉽게쉽게 책장이 넘어간다.

냉정한 분석과 함께 독자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엠마의 감정적인 언행은 독자를 객관적인 관찰자로 만든다. 그의 몰락을 담담하게 지켜 보면서 독자는 차분하게 여러 생각들을 해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도덕적이고 교훈적이다. 여기에 내가 얻은 교훈들을 정리해 본다.

1) 부부 관계에는 성실해야 한다.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애인들은 정작 힘들어 졌을 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걱정해 주고 이해하려 애쓰는 것은 애 낳고 같이 사는 배우자이다.
2) 인생에 대해 지나치게 낭만적인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 특히 연애에 대해서는 더욱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감정적으로 폭주하다 보면 당연히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인들의 마음이 이미 멀어진 후에도 혼자 들떠 있던 엠마나 아내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샤를을 그저 바보라고만 몰아붙일 수 없는 상황이 나에게도 생길지 모른다.
3) 경제 문제에는 단호해야 한다. 자신의 경제적인 권리는 설령 배우자에게라 하더라도 양도해서는 안된다. 아내도 잃고 재산도 모두 잃고 어린 딸을 고아 노동자로 만든 샤를의 과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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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일본의 근대 이산의 책 14
마루야마 마사오+가토 슈이치 지음, 임성모 옮김 / 이산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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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친구에게서 논문 쓰기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학부 때부터 영어 교과서를 배우면서 일상적으로 영어 용어를 써 왔기 때문에, 전문 용어를 한글로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더란다. 고민 끝에 이것저것 책들을 찾아 가며 어색하게나마 바꿔 넣었는데 일본에서 나온 연구들에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걔들은 웬만한 건 다 한자로 바꾸거든.' 마루야마 마사오 씨와 가토 슈이치 씨가 근대 일본의 번역에 대해 나눈 대화를 따라가면서 나는 그 친구의 말을 생각했다.

300년 쇄국을 포기하고 서양 문물의 홍수 속에 파묻히면서 일본인들은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고민했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외국어를 그대로 쓸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개념들을 한자로 번역하여 쓸 것인가. 결국 그들은 후자를 택했다. 에도 유학의 전통을 이은 것이기도 했고 난학과 관련이 있기도 했지만, 이 선택은 이후 일본의 사상과 학문이 독자성을 가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고,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새로운 세력 판도로까지 이어졌다. 패전 이후의 일본어는 일견 범람하는 외래어로 몸살을 치르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어딘가에도 번역의 전통이 남아 있어서, 21세기의 공학도가 한국어로 전공 논문을 쓰면서 일본 용어를 참조하기도 하나 보다.

왜 굳이 번역을 해야 하는가, 영어로 쓰면 편리한 것을 어색한 한자어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군가 정색을 하고 질문한다면 솔직히 대답이 궁하긴 하다. 그러나, 아주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든다. 용어를 바꿈으로서 외래의 학문에 우리의 사고를 투영할 수 있지 않을까, 음역만 해서는 그저 남의 카피에 불과할 것을 우리 말로 바꾸어 논의하면서 진정한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마루야마 씨와 가토 씨는 서양 문물의 전래를 말하면서 계속 일본 유학의 전통을 돌아 본다. 박식한 두 지성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더구나 낯설기만 한 일본 전통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속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일본인들의 고민을 느껴보는 것, 그리고 그 고민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전환시켜 보는 것은 확실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칭찬할만 한 역주가 이 고생스럽지만 재미있는 여행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음을 지적해야겠다. 각각의 역주 앞에 표제어를 명시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일본 근대에 대한 즐거운 읽을 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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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퇴전문 2006-05-22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에 대한 문제 의식이 희박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죠. 얼마전에 나온 서울대 권장도서 해제집 이란 책을 보니까 몇몇 교수들이 서양 고전을 소개하면서 '가급적 원서를 읽을 것을 권한다, 책은 무릇 원서를 읽는 것이 좋다' 는 식의 발언을 한게 생각나네요. 재밌는건 그분들이 언급한 '원서' 가 대개 영어책이라는 겁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출신의 사상가가 자신의 모국어로 쓴 저작도 말이죠.

1700년대의 일본인들은 네델란드의 해부학 교재를 자신들만의 힘으로 번역해 냈죠. 원서로 보면 될 것을, 해부학 교재라면 독자층도 협소하고 분야마저 전문적인데 (한국의 법학과 의학계 등에서도 듣게 되는 논리죠, 자신들이 쓰는 모종의 언어를 정당화 하기 위하여..), 뭐하러 그런 수고를 했는지 모를 일이죠. 다만 이런 소회는 남습니다. 당대에 숱한 '개화사상가들' 이 있었지만 대개 '정치인' 만이 있었을 뿐, 제대로 된 번역 하나 남긴 진짜 '사상가' 가 없었던 한일합방 전후의 조선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고요. 그럼 오늘날엔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있느냐고 자문해 본다면.. 선뜻 긍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죠. 가령 세로쓰기 시대의 케케묵은 번역본만 있거나 아예 역서 자체가 없는 책들을 권장도서로 소개만 할 것이 아니라, 2006년 버젼의 전면 번역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정상이겠죠. 그것이 옳은 일이고, 또한 필요한 일이기도 하구요.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
소포클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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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했던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니 엘렉트라 컴플렉스니 하는 말들이 널리 쓰이고 있는 시대이지만 정작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을 읽었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데 왜 읽어야 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질문을 잠시 미뤄두고 일단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운명의 격류에 휘말려 극한의 극한에까지 내몰린 인간이 그럼에도 간직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찡한 감동을 독자에게 전한다.

개인적으로 소포클레스의, 특히 '안티고네'의 인물들의 인간적인 갈등을 좋아한다. 여자에 대한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연애감정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하이몬의 안티고네에 대한 격정은 어지간한 순정만화 못지 않다. 권력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죽음으로 관철시키는 어린 소녀 안티고네는 드물게 보는 희랍 히로인이다. 한편으로 춘향이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안티고네의 용기 쪽은 자신과 가문에 대한 굳건한 자부심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어딘지 동기가 의심스러운 춘향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최악의 불행을 겪었던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이지만 이 딸에 대해서만은 당당하게 자랑해도 되겠다.

상당히 멋진 글임에도 불구하고 별 다섯 개를 줄 수 없는 것은 이 책의 이상한 구성 때문이다. 아가멤논과 오이디푸스왕이 모두 3부작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씩을 빼놓고 수록한 것은 이 책의 결정적인 약점이다. 저 3부작이 모두 같은 날 공연된 한 세트임을 생각하면 더더구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자의 해설이 제대로 수록될 페이지도 갖지 못하고 책날개로 밀려난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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