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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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해 주셨던 이야기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경우가 있다. 그 시간에 배웠던 교과 내용은 벌써 예전에 깨끗이 지워졌는데, 이야기만은 오래 남는다. 비단 기억의 문제만이 아니다. 공부하기가 지겨워서 몸을 비틀며, "선생님, 재미있는 얘기 해 주세요~"라고 조르던 기억,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미야베 씨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이러한 '이야기' 자체의 재미가 극대화된 책이 <괴이>이다.

소설의 재미를 만드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회 현상에 대한 통찰력과 날카로운 문제 제기가 서늘한 파문을 남기기도 하고, 인물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독자를 끌어당기기도 한다.  감칠맛 나는 문체나 독자를 쥐고 흔드는 서스펜스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스토리' 자체에 매력이 넘치는 소설, 그리하여 인물을 바꾸고 배경을 바꾸어도 여전히 재미있을 것 같은 소설을 만나는 것은 분명 귀중한 체험이다. 

<괴이>에 실린 아홉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이들을 언젠가는 바꾸어서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무서운 이야기', '귀신 이야기' 를 한 도막 해야 할 상황이 있지 않은가? 배경은 에도 시대지만 꼭 에도 시대가 아니어도 좋다. 인물은 가게의 심부름꾼 소년이지만 꼭 심부름꾼이 아니어도 좋다.  보편적인 원한과 보편적인 공포, 인간의 마음 속에 깃들인 보편적인 어둠을 이토록 은근하면서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라면 어디의 누가 나오든 한결같이 재미있을 것이다. 몇 번이고 정성들여 다시 읽어, '나의' 이야기 주머니 속에 소중하게 갈무리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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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과 민중언어 창비신서 88
미하일 바흐친 지음, 전승희 외 옮김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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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련의 진술들의 끝은 실상 후에 헤겔에 의해 정식화된 소설이론으로 맺어진다. (중략) 첫째, 소설은 다른 상상적 문학장르들에서 사용되는 의미에서 '시적'이어서는 안된다. 둘째, 소설의 주인공은 서사시 혹은 비극에서 사용되는 의미에서 '영웅적'이어서는 안되며, 그 자신 속에 긍정적인 모습뿐 아니라 부정적 모습도, 고상한 모습뿐 아니라 미천한 모습도, 진지한 모습뿐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함께 지녀야만 한다. 세째, 소설의 주인공은 이미 완성되어 불변하는 인물로 묘사되어서는 안되고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는, 삶으로부터 배워나가는 인물로 그려져야 한다. 네째, 소설은 당대 세계에 의해 고대 세계에서의 서사시의 우치와 같이 되어야 한다.-26쪽

나는 그 원칙에 있어서 소설을 다른 장르들과 근본적으로 구별해주는 세 가지 기본적 특징을 발견한다. 첫째, 소설에 실현된 다중 언어적(multi languaged)의식과 결부되어 있는 소설의 문체상의 삼차원성. 둘째, 소설이 문학적 형상의 시간적 좌표에 야기하는 근본적 변화. 세째, 문학적 형상들을 구조화하기 위하여 소설에 의해 개방된 새로운 영역, 즉 모든 미완결상태의 현재(당대 현실)와의 최대한의 접촉영역.-27쪽

하나의 장르로서의 서사시는 편의상 세 가지 구성적 특징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한 민족의 서사적 과거 -괴테와 쉴러의 용어로 하면 '절대적 과거'- 가 서사시의 주제로 사용된다. 둘째, 개인의 경험과 그것으로부터 자라나온 자유로운 사상이 아니라 민족적 전통이 서사시의 원천으로 사용된다. 세째, 절대적인 서사시적 거리가 서사시적 세계를 당대현실로부터, 즉 음유시인(작가, 그리고 그의 청중)이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분리시킨다.-29쪽

희극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가까와져야 한다. 우리를 웃게 만드는 모든 것은 가까이 있는 것이고 모든 희극적 창조성은 최대한의 근접영역에서 발휘된다. (중략) 웃음은 대상 및 세계를 친숙하게 접촉하는 것을 통해 그것을 완전히 자유롭게 검토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을 마련해줌으로써 그것에 대한 공포심이나 충성심을 파괴한다. 웃음은 세계를 리얼리스틱하게 접근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대담성의 전제조건을 마련하는 하나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웃음이 대상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친숙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웃음은 그 대상을 대담한 탐구적 실험의 손 -과학적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인- 에, 그리고 자유로운 실험적 상상의 손에 인도한다. 웃음과 민중적 언어를 통해 세계를 친숙하게 만드는 일은 자유롭고 과학적으로 해독할 수 있으며 예술적으로 리얼리스틱한 창조성을 유럽문명에 가능하게 하는 데 있어서 지극히 핵심적이고 필수불가결한 한 단계였던 것이다.-41쪽

하나의 전체로서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문체구성적 단위체의 기본유형은 다음과 같다.
1. 작가에 의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문학적 예술적 서술 및 그 변형들
2. 다양한 형태의 일상구어체 서술의 양식화 (skaz 이야기)
3. 다양한 형태의 준(準)문학적 (문어체의) 일상서술의 양식화 (편지나 일기 등)
4. 작가에 의한 다양한 형태의 비예술적 문예언어(윤리적, 철학적, 과학적 진술이라든가 수사학적, 인종학적 묘사, 비망록 등)
5. 작중인물들의 독특한 개성이 담긴 발언.
위와 같은 이질적인 문체적 단위체들은 소설 속에서 결합하여 구조화된 하나의 (단일한) 예술적 체계를 형성하며, 그 결과 전체로서의 작품이 지니는, 위의 어떤 문체적 단위체와도 동일시될 수 없는 보다 차원 높은 문체적 통일성에 종속하게 된다.-67-68쪽

우리는 여기서 이중의 강조와 이중의 문체를 가진 전형적인 혼성구문(hybrid construction)을 보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혼성구문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은 그 문법적 성문적(compositional) 표지로 보면 단일한 화자에게 속해 있는 것이면서도 실제로는 그 안에 두 가지 발언, 두 가지 어법, 두 가지 스타일, 두 가지 '언어', 두 가지 세계관(의미 및 가치상의)이 혼합되어 있는 발언을 말한다. 거듭 말하지만 이같은 두 가지 발언과 스타일과 '언어'와 세계관 사이에는 어떠한 형식적 경게 -구문에 있어서나 화법에 있어서나- 도 없다.-116쪽

디킨즈의 소설 전체가 이와 같다. 실로 그의 작품 전체가 사방에서 밀려드는 다양한 언어의 파도로부터, 작가의 직접적 발언이라는 점점이 흩어져 있는 조그만 섬들을 구분해주는 인용부호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용부호를 실제로 삽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하나의 어휘가 동시에 작가의 말이자 타인의 말인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120쪽

희극소설에서 발견되는 언어적 다양성과 그것의 문체적 활용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징을 뚜렷이 보인다.
(1) 소설 속에는 다양한 '언어들'과 언어 이념적 신념체계들, 즉 장르별, 직업별, 계급 이해집단별로 각기 세분되는 언어(귀족언어, 농민언어, 상인언어, 농업노동자의 언어 등)와 경향적 일상적 언어(소문의 언어, 사교계 잡담의 언어, 하인의 언어 등) 따위가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어어들은 대체로 주인공이나 작중화자 따위의 특정한 인물들에 의해 대변되기보다는, 작가에 의한 직접적 담론과 번갈아 나오면서(이런 언어들과 작가의 직접적 담론 사이의 형식적 경계는 분명치 않다) '작가'로부터 직접 유래하는 단일한 객관적(비개성적) 형식 속에 통합된다.
(2) 작중에 삽입된 언어들과 사회 이념적 신념체계들은 작가의 의도를 굴절시켜 표현하는 데 활용되는 한편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들은 그릇되고 위선적이며 탐욕스러운 어떤 것이자 한계가 분명하고 설혹 합리적인 경우라도 편협하게 합리적인 어떤 것, 현실에는 맞지 않는 어떤 것임을 드러냄으로써 파괴된다. (아래에 계속)-124-125쪽

(위에서 계속) 이미 완성된 형식을 갖춘 공인된 언어로서 권위주의적이고 반동적인 지배언어인 이러한 언어들은 실생활 속에서 대부분 사멸과 대치의 운명에 처해 있다. 소설 속에서 그에 포함된 언어들에 대한 다양한 형식, 다양한 정도의 패러디적 양식화가 지배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124-125쪽

소설을 소설로 만들어주며 소설의 문체적 고유성을 보장해주는 근본적인 조건이 바로 말하는 사람과 그의 담론이다. 이 말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측면을 주의깊게 구별해야 한다.
(1) 소설에서는 말하는 사람과 그의 담론이 언어에 의한 예술적 묘사의 대상이다. (중략)
(2) 소설 속의 화자는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역사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개인이며, 그의 담론도 '개인적 방언'이 아닌 (맹아 상태의) 사회적 언어이다. (중략)
(3) 소설 속의 화자는 언제나 어떤 정로도는 이념인(ideologue)이며, 그의 말은 언제나 이념소(ideogeme)들이다. 소설 속의 특정 언어는 언제나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 방식이며, 따라서 사회적 의미를 추구하게 마련이다. -150-151쪽

서사시의 주인공이 말하는 담론은 이념적으로 경계를 정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형식면에서, 즉 구성이나 플롯에 의해서만 구분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작가의 담론과 합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 또한 자기 자신의 이념적 경계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능한 한 단 하나의 이념인 공동체의 이념과 융합한다. 서사시에는 단 하나의 일원론적이고 단일한 신념체계만이 존재한다. 반면 소설에는 그러한 신념체계가 여러 개 있으며, 주인공은 대체로 자신의 체계 내에서만 행동한다. 이런 연유로 해서 서사시에는 다양한 여러 언어들의 대변자들로서 기능하는 화자들이 없다. 서사시에서 화자는 본질적으로 작가뿐이며, 서사시의 담론은 단일하고 일원론적인 작가의 담론이다.-152-153쪽

유럽소설 발달양식의 첫번째와 두번째 흐름은 둘 다 각기 그 나름의 방식대로 일련의 특수한 문체상의 변형태들로 나누어진다. 두 가지 흐름은 서로 교차되며 여러가지 방식으로 서로 뒤섞이기도 한다. 즉 궁극적으로는 소재의 양식화와 다양한 언어에 의한 교향화 사이에 통일성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이다.-201쪽

모든 담론에는 그것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소유자가 있다. 모든 사람이 그의미를 공유하는 말이나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말이란 없다.-231쪽

피카레스크 소설은 아직은 그 자신의 의도들을 말 그대로 교향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에 자신을 억압했던 무거운 파토스와 모든 죽어버린 강조와 거짓된 강조로부터 담론을 해방시켜서 담론의 무게를 덜어주고 어느 정도는 담론을 비워줌으로써 그같은 교향화를 위한 필수적 준비를 해나간다.-240쪽

문학사 속에서 재강조의 과정은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다. 각 시대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전(前) 시대의 작품들에 대해 새로운 강조점을 부여해왔다. 고전적 작품들의 역사적 삶이란 사실상 끊임없는 사회 이념적 재강조의 과정이었다. 그러한 작품들은 작신들 속에 내재해 있던 의도상의 잠재력 덕분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때마다,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갱신의 과정을 밟고 있는 대화적 배경 속에서 항상 의미의 새로운 측면들을 드러낼 수 있었던 작품이다. 그들의 의미 내용은 문자그대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며 스슿로를 재창조해나가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작품들이 후대의 창조적 제품들에 미치는 영향에 도 불가피하게 재강조가 포함된다. 문학상의 새로운 형상들은 종종 제전의 형상들을 재강조함으로써, 즉 형상들을 어떤 한 강조체계로부터 다른 강조체계로 (예를 들어, 희극적 평면에서 비극적 평면으로, 혹은 그 반대로) 옮겨 뫃음으로써 창조된다. -255쪽

위대한 소설적 형상들은 그것들이 창조되고 난 이후에도 계속 자라고 발전한다. 그 형상들은 자신들이 처음 태어났던 날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다른 시대에도 거듭거듭 창조적 변형을 겪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의 담론" 끝 (인용자주)-257쪽

이 글에서는 문학작품 속에 예술적으로 표현된 시간과 공간 사이의 내적 연관을 '크로노토프(chronotope)라고 부르겠다. (중략) 문학예술 속의 크로노토프에서는 공간적 지표와 시간적 지표가 용의주도하게 짜여진 구체적 전체로서 융합된다. 말하자면 시간은 부피가 생기고 살이 붙어 예술적으로 가시화되고, 공간 또한 시간과 플롯과 역사의 움직임들로 채워지고 그러한 움직임들에 대해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두 지표들간의 융합과 교차가 예술적 크로노토프를 특징짓는 것이다.
문학작품 속의 크로노토프는 본질적으로 장르를 규정하는 의미를 지닌다. 크로노토프야말로 장르와 장르적 차이점들을 결정하는 요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바, 그것은 문학작품 속의 크로노토프에 있어서 주된 범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크로노토프는 형식적 구성범주로서 문학작품 내의 인간 형상(image)도 크게 좌우한다. 인간형상은 언제나 본질적으로 크로노토프적이다.-260-261쪽

만남의 모티프가 공간적 지표와 시간적 지표의 통일성이라는 면에서 만남의 모티프와 유사한 이별, 탈출, 획득, 상실, 결혼 등등의 모티프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은 특별히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만남의 모티프가 길(大路)의 크로노토프 및 길에서의 만남과 관련한 다양한 유형의 크로노토프와의 사이에 가지는 밀접한 관계는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길의 크로노토프에서는 시간적 지표와 공간적 지표 사이의 통일성이 대단히 정확하고 명백하게 드러난다. 문학에서 길의 크로노토프가 지니는 중요성은 지대하다. 거의 모든 작품이 이 모티프의 변형태를 포함하고 있으며 많은 작품들이 길의 크로노토프 및 길에서의 만남과 모험을 직접적인 기반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
만남의 모티프는 또한 다른 중요한 모티프들, 특히 인지,비인지의 모티프와 같이 문학(가령 고대 비극)에서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는 모티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276-277쪽

악한과 광대와 바보는 그들의 주위에 자신의 특별한 小세계, 즉 자신의 크로노토프를 창조한다. (중략) 첫째로 이 인물들은 문학 속에 자신들과 더불어 광장의 간이무대나 가면극의 무대장치에 대한 생생한 연관을 끌어들인다. 그들은 평민들이 모이는 광장이라는 대단히 특수하고 극히 중요한 영역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이들의 존재 그 자체는 직접적인 의미가 아닌 은유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들의 외양과 그들의 언행은 직접적이고 無매개적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반드시 은유적으로 파악되어야만 한다. 그들의 의미는 때로 뒤집어질 수조차 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그들과 그들의 겉모습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세째로 그들의 현존은 다른 어떤 것의 존재양식을 반영한 것이며, 그나마도 간접적인 반영이다. 그들은 삶의 가면극배우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존재는 그들이 맡은 역할과 일치하며 이 역할을 벗어나면 그들의 존재는 곳 없어진다. (아래에 계속)
-351-354쪽

(위에서 계속)
이 세 인물은 대단히 중요한, 동시에 하나의 특권이기도 한 한 가지 특징 -이 세계 속에서 '타자'가 될 권리, 즉 현존하는 인생의 범주들 중 어느 하나와도 협력하지 않을 권리- 를 지닌다. 그 범주들 중 어느 하나도 그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데 그 까닭은 그들이 모든 상황의 이면과 허위를 보기 때문이다.(중략)
소설가는 그가 바라본 삶을 公表할 수 있는 위치뿐만 아니라 그가 삶을 바라보는 위치를 결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어떤 본질적이고 형식적이고 장르적인 가면을 필요로 하고 있다. 여러가지로 변형된 광대와 바보의 가면들이 소설가를 돕게 되는 곳이 바로 여기이다. (중략) 그것들은 삶에 참여하지 않아도 될 유서깊은 바보의 특권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유서깊은 거친 언어를 통해서 민중과 유대를 맺는다. (중략) 마침내 사적인 삶을 반영하면서 그것을 공적인 것으로 만드는 특수한 형식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351-354쪽

고대적인 복합체의 모든 측면들 중 웃음만이 여하한 방식(종교적, 신비적, 철학적)의 승화도 겪지 않았다. 웃음은 결코 공식적인 성격을 띤 적이 없었으며, 문학에서도 희극적 장르는 가장 자유분방하고 가장 통제가 적은 장르이다. (중략) 웃음은 생명없는 관료주의에 조금도 오염되지 않았다. 따라서 웃음은 다른 진지한 형식, 특히 비장한 형식처럼 왜곡되거나 허위에 찬 것으로 될 수 없었다. 웃음은 비장한 진지함이라는 껍질로 덮여 있는 공식적 허위의 외부에 존재했다. (중략)
웃음이 가장 다양하게 현현하는 곳은 바로 말이다. (중략) '일차적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활용하는' 시적 언어 사용, 즉 비융화 더불어 언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웃음을 표현하는 많은 다양한 형식들이 존재하는바, 풍자나 패러디, 해학, 농담, 다양한 형태의 희극적인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중략) 말에 포함된 관점은 재해석되며 언어의 양식 및 언어와 사물의 관계, 그리고 언어와 화자의 관계 또한 재해석된다. (중략) 말로 웃음을 표현하는 이런 모든 특징들이 대상을 둘러싸고 있는 허위에 찬 언어적, 이데올로기적 껍데기를 벗겨내는 저 특별한 힘과 능력에 기여한다.-442-443쪽

작품 및 그 작품 안에 재현된 세계는 실제 세계의 일부가 되어 그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며, 한편 ㅎ실제 세계는 작품이 창조되는 과정의 일부로서, 그리고 그 결과 작품이 지니게 된 생명의 일부로서 청중과 독자의 창조적 인식을 통해 작품을 끊임없이 쇄신하면서 작품과 그 작품 속의 세계로 침투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러한 교환 과정은 크로노토프적이다. 그 과정은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사회적 세계 속에서 발생하며 변화하는 역사적 공간과의 접촉을 항상 유지한다.-463쪽

문학의 영역, 더 넓게 말해서 문화의 영역은 문학 작품과 그 안의 작가의 위치에 필수불가결한 맥락을 구성하는데, 이 맥락을 떠나서는 작품이나 그 작품에 반영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작가와 다양한 문학현상 및 문화현상과의 관계는 대화적 성격을 띤다. 이것은 문학작품 속의 크로노토프들간의 상호관계와 유사하다.-4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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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 비극 - 희랍어 원전 번역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단국대학교출판부 / 1999년 1월
품절


<메데이아> 230-233
메데이아: 생명과 분별력을 가진 모든 것들 가운데 우리들 여자들이 가장 비참한 존재들이에요. 첫째 우리는 거금을 주고 남편을 사서 우리 자신의 상전으로 모셔야 해요.-22쪽

<메데이아> 294-297
메데이아: 분별있는 사람이라면 자식들을 너무 영리하게 가르쳐서는 안 돼요. 그들은 태만하다는 비난을 듣는 것말고도 시민들로부터 미움과 시기를 사게 될 테니까요.-24쪽

<메데이아> 407-409
메데이아: 우리들 여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일에는 서투르지만 온갖 악한 일에는 가장 영리한 장인(匠人)들이 아닌가!-29쪽

<메데이아> 569-575
이아손: 그대들 여자들은 어떤가 하면, 결혼 생활만 원만하면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결혼 생활에 무슨 불상사라도 생기면 가장 훌륭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조차 가장 적대적인 것으로 여긴단 말이오.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자식들을 낳고 여자 같은 것은 없어져 버렸으면! 그러면 인간들에게도 불행이란 것이 없을텐데!-35쪽

<알케스티스> 669-672
알케스티스: 노인들이 살아온 긴 세월과 노령에 대하여 불평을 늘어놓으며 죽기를 기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아무도 죽기를 원치 않고, 노령도 그들에게는 더 이상 짐이 되지 않으니까요.-175쪽

<트로이아의 여인들> 509-510
헤카베: 그대들은 행복한 자들 중에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믿지 마시오. 그가 죽을 때까지는!-307쪽

<엘렉트라> 938-940
엘렉트라: 너 자신도 모르게 너를 속인 가장 큰 기만은 네가 돈의 힘에 의하여 스스로 위대해졌다고 우쭐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돈은 아무 것도 아니며 잠시 우리 곁에 머물 뿐이다. 확실한 것은 타고난 인품이지 돈이 아니다.-464쪽

<엘렉트라> 426-431
농부: 그런 점들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손님을 접대하고 병든 몸을 치료할 비용을 대는 데 있어 돈이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된단 말이야. 그러나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야. 배불리 먹은 사람은 부자든 가난뱅이든 똑같은 몫을 받은 셈이니까.-4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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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소설담론연구
우한용 / 삼지원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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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의 소설론을 일별해 볼 때, 장편소설의 경우 발생 배경으로서의 사회사, 작중인물의 계층의식이나 세계관, 소설이 그리고 있는 사회의 면모 등이 검토의 항목이 되어 왔다. 텍스트 자체에 대한 언급이라도 그것은 자체의 구조ㅓ에 시각을 집중하기보다는 텍스트가 보여주는 대상에 대한 일종의 지식이라는 데에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1910년대에서 1920년대에 걸쳐 나온 루카치, 가세트(Gasset)등의 소설론에서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소설을 부르주아 사회의 서사시라고 한 헤겔의 방법론이 있고, 헤겔과 루카치에 연결되면서 소설과 사회의 구조가 상동성을 띤다는 상동성이론에 의해 설명하고자 하는 골드만 등이 뒤를 잇는다. 이러한 이론은 소설을 기법 차원으로 설명하는 이전의 방식을 뛰어넘는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1920년대 소설론을 대비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20년대 서구 소설론은 주로 기법론으로 기울어진 경향을 드러내었다. P 러보크라든지 헨리 제임스, EM포스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이론은 미국의 신비평과 시카고학파의 소설이론을 거쳐 프랑스의 구조주의에 이르게 된다. (아래에 계속)-32-34쪽

(위에서 계속) 이러한 이론에서 문제삼는 것은 스토리의 구조, 즉 플롯, 시점, 문체, 거리와 분위기 등의 항목이다. 텍스트의 구조를 주로 문제삼게 되는데 의도의 오류나 효과의 오류 등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는 텍스트를 만들어낸 작가나 텍스트가 그것을 읽는 독자에게 미치는 감동 등의 주관적인 측면을 벗어나 문학연구의 객관성 혹은 과학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문학연구의 객관성을 어느 정도 보장해 준다고 하더라도 소설의 장르특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헤겔에 이어지는 방법론이 극단적인 이데올리기적 추상성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면 기법론 계열의 이론은 형식적 추상성에 빠지고 만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한 비판은 양자의 통합과 지양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방법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기호론이 언어의 사회성을 바탕으로 하여 마련한 바흐찐의 소설기호론 혹은 소설담론의 이론이다. 이는 의사소통을 문제삼는다는 점에서 기호론에 기울어지고, 소설을 언어적인 이념의 실천 양상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담론의 이론이 된다. -32-34쪽

인간은 남과 더불어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게 된다. 인간의 의사소통을 매우 세련되고 자유롭게 수행하는 하나의 양식으로 우리는 소설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 담론을 통한 공감의 산출, 주체의 결단, 이념의 실천 등을 도모하는 장으로 소설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결국 소설이 기호론적인 실천의 양상을 띠지 않을 수 없는 이유에 해당한다.-36쪽

기호론적 소통구조는 서사텍스트의 이야기감(histoire), 이야기(recit), 서사체(texte narratif)의 세 차원에 관여하는 주체들로 구성된다. 이 주체들은 각각 작가, 서술자, 작중인물 등이 된다. 작가는 독자에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서술자를 동원하여 이야기를 전달한다. 서술자는 작중인물들의 행동과 배경을 서술한다. 작중인물들 사이에도 이야기가 오간다. 서술자의 이야기를 피서술자가 듣는다. 피서술자는 숨겨진 독자의 의식을 겨냥한다. 피서술자, 숨겨진 독자의 이야기를 직접 읽고 파악하는 것은 실제 독자이다. 이러한 서사체의 기본구조는 작품마다 변이형으로 나타나게 된다.-45쪽

소설의 다층성과 이질언어적 특성 그리고 대화적 속성은 소설의 담론을 형성하는 기본 특성이다. 이들의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는 문체는 담론의 이론으로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소설의 문체론에서 전망해 볼 수 있는 사항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방법론적 측면에서 소설언어의 기본 속성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중략) 둘째, 장르적 관점에서 문체를 연구하는 것이다. (중략) 셋째, 국어 문체론 혹은 표현의 문체론과 소설의 문체론이 만날 수 있는 논리를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중략) 넷째, 문체론의 적용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문체론을 비평에 연결짓는 방법을 통해 분석과 해석의 낙차를 좁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략) 끝으로 문체론이 문학교육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52-53쪽

"만무방"은 서술자의 개입으로 작중인물의 시각과 서술자의 시각이 넘나드는 가운데 현실적 언어를 동원하여 소설의 리얼리티를 살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의미의 역전 형상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의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의 가장 바람직한 삶의 조건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은 의미의 공유와 생성이 원활한 세계일 것이다. 이는 개인과 전체 사이에 언어적 소통이 원활한 세계를 뜻한다. 그러한 세계에서라야 개인과 전체 사이의 소통작용이 원활해져 의미공유가 수월하고 그 결과 소외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의미의 소통이 장애를 받거나 의미공유가 이루어지지 안흔ㄴ 사회나 의미가 역전되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어느 사회의 언어병리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그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98쪽

소설을 서사론 차원에서 볼 경우, 넓은 의미의 이야기 문학의 한 갈래일 뿐이다.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이 행동을 보여주며, 행동이 구체화되는 배경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소설을 서술하는 방법이 문제가 된다. 시점이라든지 서술자의 유형 등이 문제되는 것은 이러한 영역에서이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을 택할 경우 형식주의적 방법으로 기울게 된다. 소설을 장르론적 관점에서 보는 경우 소설은 그것이 탄생된 사회 역사적 조건을 고려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는 시대와 이념의 문제를 고려하는 방법 즉 소설사회학적 방법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리얼리즘 소설론에서 중요한 방법론으로 활용하는 전형개념이라든지 세계관 등이 이 방법론의 중요한 검토 항목이 된다.-100쪽

액자유형의 소설은 전달되는 이야기 내용에 대한 작가의 불간섭을 원칙으로 함으로써 작품 세계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현실과 괄호치기를 함으로써 현실이 작품에 행사하는 영향을 배제하고 예술적 독립성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액자유형을 택하는 것은 소설에서 내용으로 다루고 있는 세계의 속성과 맞아떨어질 때라야 기능적일 수 있다.-104쪽

"무녀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모티프 가운데 하나가 '근친상간' 모티프인데, 이는 금기위반이라는 원형적 의미를 지닌다. 근친상간은 앞에서 논의한 절대세계, 무한대의 혼란을 수용하는 세계를 표상하는 모티프이다. 근친상간은 가족관계의 혼란과 함께 폭력과 성스러움의 역학관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종의 희생제의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낭이를 욕망의 대상으로 하여 모화와 욱이는 서로 경쟁자가 되는 것이다. 낭이는 모화가 섬기는 수국 용왕의 딸이란 점에서 모화가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이 된다. 집을 나갔다가 돌아와 이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존재로 변해 있는 욱이는 모화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다. 욱이는 낭이에게 하느님을 증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경쟁관계 속에서 지라르가 말하는 짝패(le double)가 되는 것이다. 짝패의 관계는 일종의 심리적 모방의 관계인데, "경쟁자가 대상을 욕망하기 때문에 욕망주체는 그 대상을 욕망한다."-100-111쪽

무녀에게 있어서 넋을 건지는 일은 곧 자기 세계의 핵심을 건지는 행위이다. 따라서 넋을 건지는 일에 실패한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에 패배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할 때 자신의 세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죽음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런 점에서 모화의 죽음은 본질에 도달하는 길이다. 모화의 죽음이 재생의 제의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죽음이 세계의 완결로 된다는 데에 이 소설의 의미가 드러난다. -118쪽

한국 근대 소설사에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계열성을 선명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구인회'의 성립으로부터이다. 민족주의 문학과 대타적인 관계에 있던 계급주의 문학이 카프의 해산으로 인해 긴장력을 상실한 시점에서 구인회는 성립된다. 표면적으로는 카프의 세력이 약화되어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그들이 탐색해 온 이론을 실천으로 보여주던 시기이다. 주류를 상실한 평단에 등장한 '구인회'의 성격은 자연스럽게 리얼리즘과 대립적인 위치에 놓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설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두 계열로 분화하게 된다. 소설에서 모더니즘이 가능해짐으로써 소설의 언어적인 조건이 검토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마련된 것이다. 즉 소설에서 현실의 반영보다는 자체의 언어적 조건에 대한 반성이 가능해진 것이다.-120-121쪽

담론은 일차적으로 언어행위를 띃ㅅ한다. 언어행위는 정확한 문장을 만들어 낸다든지 화자의 의도를 분명히 전달한다든지 하는 차원에 멈추지 않는다. 언어행위는 최소한 실천의 개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행위에 대해서는 심리학과 철햑 영ㅇ역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언어행위를 이루는 여러 요소 가운데 주체의 문제는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되었다. 특히 일상언어학파의 원조가 되는 오스틴 등의 관심은 기왕의 언어학적 분석과는 또 다른 관점을 이룩할 수 있게 하였다. 오스틴은 언어행위를 다음의 셋으로 구분하고 있다. 발화행위, 발화수반행위 그리고 발화효과행위 등이 그것이다. -151-152쪽

"미의 가치는 주, 객 어느 일면에만 돌릴 수 없는 바, 한편으로는 대상의 형상과 형태에 의존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의 태도와 활동에도 의존한다. 이러한 두 가지의 조건이 서로에게 미적 가치의 성립을 가능케 하며 또 그것의 높고 낮음을 규정한다. ......미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체험된 대상은 주체의 의식을 초월하여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미적 대상은 인식 대상과 달리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미학사전" 논장, 1988, p291-184쪽

은유적 발상법이란, 명제의 형식에서 종차를 제거하는 것이다. 종차가 제거되면 동일률이 무너진다.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과 경계를 잃게 된다. 그것이 넝어로 나타날 때는 A=B라는 공식으로 정리된다. 그 결과 정의항과 피정의항이 동일 차원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은유적 발상법은 논리가 아니라 生理 차원을 지향한다. 이것은 논리적 억압을 뚫고 나가는 힘이 되기도 하고 그 자체가 논리를 무시하는 데서 언어가 곧 사물인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동원되기도 한다.-224쪽

소설은 문학적인 장에 자리잡은 하나의 담론체계이다. 소설을 통해 작가의 체험과 세계관을 드러내고 그것이 수용자의 세계 구성의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소설텍스트는 그 자체가 담론의 이중적인 체계가 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수용자인 독자는 소설텍스트를 통해 세계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수용자는 담론의 주체로서 자기교육을 수행해 나간다. 소설의 담론은 의사소통만을 가맏ㅇ하는 텍스트가 아니다. 소설 자체가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과정이고 결과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자연어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담론체계를 소설 속에 변형하여 문체화한다. 그러한 점에서 소설텍스트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닌다. 이데올로기는 "그 밑바탕에 어휘적 레퍼토리, 의미론적 대립과 약호화된 분류들 및 여러 행역자 모델과 한 사회어의 서술적 진행이 깔려 있는 일종의 이차적인 모델화의 체계'로 규정된다. (아래에 곟속)-264-265쪽

(위에서 계속) 이러한 담론을 다루는 솟헐 담론에 대한 메타담론으로서 소설 연구와 교육은 한 단계 위의 상위담론(meta-discourse)이 된다. 즉 작가의 문학적인 장과 독자의 문학적 인식의 장이 역동작용을 하는 가운데 문화적 이념을 실천하는 것이 소설교육의 진정한 모습이다. 여기에 우리는 소설의 교육이 이데올로기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시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소설 담론의 체계에 대한 설명이나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이 길든지 짧든지 간에, 수용자의 문학적인 감수성을 확대하고 의식의 변화를 촉구하며 삶에 대한 이념을 구성하도록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264-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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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3-10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학기 수업 받으면서 여러 번 들춰봐야 하는 책인 것 같다. 특히나 개별 작품 분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것만 봐서는 아직도 막연하기만 하구나. 걱정이다.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이스퀼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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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스: 헬라스 땅을 떠나 함께 싸움터로 간 백성들의 집집마다 꿋꿋한 마음으로 슬픔을 참고 견디는 모습 역력했다네. 실로 가슴 아린 일 많았으니, 그들이 떠나보낸 이들이 누군지 알건만 집집마다 돌아오는 것은 사람 대신 단지와 유골뿐이었다네. 시신을 황금과 교환하는 아레스. 창검의 싸움터에서 저울질하는 그이 일리온으로부터 사람 대신 유골 든 단지만을 가족들에게 돌려보내니, 불에 타고 남은 재, 들기에는 가벼우나 애통의 눈물 참기에는 너무 무겁구나. 그리하여 가족들은 그들 각자를 찬양하며 말했다네. "이 사람은 전투에 능했고, 저 사람은 사람 잡는 싸움터에서 영광스럽게 전사했지. 남의 아내를 위해서." 이런 불평을 속삭이는 백성들 소송의 주역인 아트레우스의 아들 형제에게 원한에 찬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네.
<아가멤논> 429-451-46쪽

코로스: 여인의 명령은 하도 그럴싸해서 잰걸음으로 퍼져나가지만, 여인이 낸 소문은 금세 시들어 자취를 감추는 법이지.
<아가멤논> 485-487-48쪽

코로스장: 내 그대의 말에 압도되었소. 하지만 유감은 없소이다. 노인들도 배울 수 있을 만큼은 항상 젊으니까.
<아가멤논> 582-583-51쪽

캇산드라: 저기 어린아이들이 꿈속의 환영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집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이지 않으세요? 친족들에게 살해된 어린아이들이네요. 손에는식탁에 올랐던 자신들의 살점을 잔뜩 들었어요. 그리고 그들 아버지가 먹어치운 끔찍한 내장덩어리를 든 모습도 또렷이 보이네요. 그래서 누군가 복수할 음모를 꾸미고 있어요. 어떤 비겁한 사자가 집 안에 도사리고 앉아 침상에서 뒹굴며 돌아오는 주인에게, 내 주인에게 -내가 그분의 멍에를 져야 하니 그분은 내 주인인 셈이지요- 음모를 꾸미고 있단 말예요. 하지만 함대의 사령관이요 트로이아의 정복자인 그분은, 더러운 암캐의 혓바닥이 음흉한 아테처럼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럴싸한 말을 길게 늘어놓자 악의 축복을 받으며 그녀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려 하는지 모르고 있어요.
<아가멤논> 1217-1230-78쪽

클뤼타이메스트라: 해묵은 불화를 끝내줄 이 결전을 나는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었고 이제 드디어 성취했을 따름이오. 그를 내리친 자리에 나는 서 있소. 일을 끝내고 말이오. 그가 자신의 운명을 피하거나 막지 못하도록 나는 이렇게 해치웠고 부인하고 싶지 않소. 나는 끝없는 그물을 고기잡이 그물처럼 그의 주위에 던졌소. 재앙으로 가득찬 이 옷 말이오. 그러고는 그를 두 번 쳤소. 그러자 두 번 신음 소리를 내고는 그는 그 자리에 사지를 뻗었소. 그가 쓰러지자 세 번째 타격을 가했소. 세 번째 타격은 사자(死者)의 구원자인 지하의 제우스에게는 반가운 제물이었지요. 이렇게 쓰러지며 그는 자신의 목숨을 토해냈소. 그리고 그는 단검처럼 날카롭게 피를 내뿜으며 피이슬의 검은 소나기로 나를 쳤소. 그래서 나는 이삭이 팰 무렵 제우스의 풍성한 비의 축복을 받아 기뻐하는 곡식 못지않게 기뻤소. 일이 이러하니 여기 있는 아르고스의 원로들이여, 기뻐할 테면 기뻐하시오. 나는 이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오.
<아가멤논> 1377-1394-84쪽

클뤼타이메스트라: 여기 제 아내를 모욕하고 일리온 앞에서 크뤼세이스들을 농락하던 사람이 누워 있소. 그리고 창으로 얻은 그의 포로며 점쟁이며 그의 충실한 첩이었던 여인도 누워 있소. 이 연인은 그의 잠자리 친구였으며 함선 위에서는 나란히 앉아 있었소. 이들은 응분의 보답을 받은 셈이오. 그는 내가 말한 그대로 죽었고, 그의 애인이었던 그녀는 백조처럼 자신의 마지막 만가를 부르고 나서 여기 누웠소. 그리하여 그녀는 나의 성대한 잔치에 맛을 더하는 양념이 된 셈이오.
<아가멤논> 1438-1447-87쪽

코로스: 아아, 이 집안에 뿌리내린 저주여. 재앙이 내리치는 피투성이 채찍의 곡조 없는 노랫소리여. 슬프도다, 참을 수 없는 불행이여. 슬프도다, 가실 줄 모르는 고통이여.
고통을 멎게 할 약은 집 안에 있어요. 바깥의 낯선 사람들이 아니라 집안 사람들만이 피의 불화를 내쫓을 수 있으니까요. 지하의 신들께 이 노래를 바치나이다. 지하에 계신 축복받은 이들이여, 두 남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이 승리하도록 도움을 보내주소서.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466-478-460쪽

다레이오스: 나는 지하의 어둠 속으로 내려갈 것이오. 노인들이여, 잘 있으시오. 비록 재앙을 당했어도 그날그날 즐겁게, 그대들은 마음 편히 지내시오. 부(富)는 죽은 자들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으니까.
<페르시아인들> 839-842-232쪽

에테오클레스: 우리에게는 그 자의 허풍 역시도 이익이 될 뿐이다. 한 인간이 교만한 허욕으로 가득 차게 되면 다름 아닌 그 자신의 혀가 고발인이 되기 때문이다.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장수> 437-439-264쪽

다나오스: 모르는 무리를 꿰뚫어보자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주해온 사람은 누구에게나 나쁜 말을 듣게 되고, 모함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탄원하는 여인들> 993-995-338쪽

프로메테우스: 서로 미워할 경우 적의 손에 고통당하는 것은 치욕이 아니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1041-1042-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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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3-06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로 아이스퀼로스도 끝냈다. ^^
BC472년의 "페르시아인들"부터 458년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까지. 전해지는 것은 모두 8편. 소포클레스에 비하면 신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 눈에 띈다. 경건함과 조화와 화해를 지향하는 것도 개인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고통이 강조되는 소포클레스와는 다르다.
8작품의 원제는 "Persai", "Hepta epi Thebas", "Hiketides", "Prometheus desmotes", "Agamemnon", "Choephoroi", "Eumenides"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