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개정2판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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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민주주의란 한 사회의 중심을 다원화하는 경향을 발전시키는 힘이어야 한다. 권위주의, 절대주의, 전체주의 등 비민주적 사회의 특징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 권력과 영향력이 단일일 중심으로 응집되어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는 이들 응집된 힘의 요소들을 해체하고 다원화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2쪽

냉전반공주의가 헤게모니적 영향력을 갖는 정치적 대표체제에서 서민의 이익은 대표되지 못한다. 서민층이 정치 수준에서 대표되지 못한 결과, 사회 수준에서 서민층에 대한 상층계급의 오만과 차별은 강화되고, 못사는 사람에 대한 공공연한 비하가 가능해진다. 이런 조건에서 계층구조의 상향 이동에 대한 열망과 상층계급의 문화적 표지를 갖고자 하는 노력은 필사적이게 된다. 이른바 ‘명품’에 대한 맹목적 선호는 그 한 예이다. 이런 조건에서 생존경쟁의 가열화, 처절한 출세지향적 행태가 일반화되어 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계층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으면 한 인간으로 대우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외양을 중시여기고 획일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러한 현상의 다른 한편은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이 부재한 상황, 인간내면의 황폐화로 나타난다.-34쪽

정치는 정당에 의해 주도되기 이전에 언론에 의해 틀이 짜인다. 정책 아젠다와 이슈를 설정하는 것도 언론이다. 대통령에서부터 국회의원, 장관에서부터 정치참모와 고급관료의 일이란 심하게 말하면 언론의 보도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맞춰 가는 것이다. 기껏 이들이 내리는 결정이란 언론이 그 결정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예상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만큼 정부의 업적, 정당의 업적, 정치인과 관료 개개인의 업적을 평가하는 언론의 정치적 기능은 막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언론은 준사법적 기능을 한다. 정치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의 도덕성과 불법성에 대한 판단은 언론에서 먼저 내려진다. 정당과 의회 자체의 정화기능이나 검찰과 사법부의 결정은 그 이후의 일이며, 대체로 그것은 사건을 정리하는 단계에서의 절차일 뿐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언론은 한 개인의 정신과 내면의 영역까지 임의적으로 개입하고 판단하여 ‘좌파’니, ‘사사이 의심’스러우니 하는 일제식민체제나 전체주의체제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사상검증’을 자유롭게 해 댄다.-36쪽

현재 한국정치의 최대의 균열은 사회적 기반이 없는 정치적 대표체제와 이에 대표되지 못하고 저항하고 있는 비투표 유권자 사이의 균열이다.-41쪽

대학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사회 역시 우리 사회의 보수적인 집단 가운데 하나일 뿐 그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문해 보게 된다. 신문에 기고된 우리 사회 지식인의 칼럼을 보면서 나는 언론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정치만이 아니라 지식사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과 정부, 정당에 대한 이들의 경멸과는 대조적으로 이들은 언론과 재벌을 비판하지 않으며 심화되는 계급구조화 과정에서 희생되고 있는 계층과 집단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43쪽

한국에서의 중앙집중화는 정치권력이 서울에 집중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사회의 모든 주요 영역에서 자원이 지리적 공간적으로 서울이라는 한 곳으로 집중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지리적 공간적 자원의 집중화가 곧, 사회 제 분야에서의 기능적 집중화를 동반함으로써 집중화와 집적화가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단순한 집중화가 아니라 초집중화hypercentralization로 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이해가 된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영역에서의 엘리트 집중이 서로 중첩되는 동심원cocentric 구조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엘리트구조의 안정성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엘리트로 상승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만들어 냈다.-59쪽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주도했던 분단국가 형성 과정에서 하나의 제도적 세트로 도입되었다. 즉, 민주주의는 분단국가의 제도적 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토착적 기반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그 제도적 형식만 들여온 필연적 결과, 그 내용을 채울 역사적 정신적 이념적 면을 결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71쪽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를 통하여 새로이 성장하기 시작한 사회의 두 중요 집단이 있었다. 하나는 4.19의 주역이라 할 학생이었고, 다른 하나는 5.16 군사쿠데타의 주역인 군부 엘리트였다. 민주화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이 두 그룹은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래에 계속)-93쪽

(위에서 계속)
군부 엘리트들이 자립경제의 달성과 민간정부들이 보여준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개혁 이슈를 행동의 대의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문제의식은 ‘민중적 성격’을 갖는다. 이들은 스스로 군부 엘리트가 중심이 되어 국가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20세기 초 청년터키당이나 1950년대 중반 이집트 쿠데타의 주역 가말 압델 나세르를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모델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민주화와 산업화가 통일되지 못하고 각기 대립적인 관계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군부 엘리트들은 학생과 교육받은 지식인집단이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충분히 제기하지 못했던 경제발전 문제를 그들의 중심적 이슈로 삼았다. 군부 엘리트들이 집권했을 때 그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한편으로는 경제성장을 위한 모든 사회적 자원을 동원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자원의 동원가능성을 봉쇄하려고 시도했다.
-93쪽

국가권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율적이었던 언론의 역할은 유신체제에 이르러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유신체제는 권위주의적 억압과 배제를 강화했지만 일상적인 법률체계와 경찰력을 통해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매우 취약한 체제였다. 한마디로 유신체제는 대통령이 발령하는 긴급조치와 그에 따른 군대조직의 동원을 통해 유지되었던 체제였다. 비상체제로서의 유신체제는 약간의 반대라도 허용하면 존립이 위협하는 매우 허약한 체제로서, 미세한 병균의 침투만 있어도 생존을 위협받는 면역능력이 결핍된 인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왜 1979년 중반 200명 남짓한 YH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의 농성이 정치 사회적 연쇄반응을 통해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는가 하는 문제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아래에 계속)-113쪽

(위에서 계속)
요컨대 이런 조건 때문에 언론매체가 체제를 비판하는 것은 절대로 허용될 수 없었다. 따라서 언론의 비판적 기능은 유신체제를 거치면서 완전히 봉쇄되었다. 오늘날 보게 되는 한국언론의 기본적인 구조와 성격은 1980년대에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 언론과 국가권력의 유착이 심화되면서 언론이 권위주의 국가의 정당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동원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언론과 국가의 유착이 강화된 결과는 심대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결과로 일부의 언론기업은 거대 언론자본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는 억압과 특혜의 교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113쪽

앞에서 우리는 한국정당체제의 기원이랄까, 어떻게 1950년대를 통해 여당과 야당이 형성되었는지에 대하여 살펴본 바 있다. 그것은 냉전반공체제의 산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정당간 경쟁이 극히 협애한 이념적 스펙트럼 내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여야당을 포함한 한국정치의 대표체계가 사회의 이익과 요구를 광범위하게 대변하지 못하고 사회의 가장 기득적인 보수층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래에 계속)
-128쪽

(위에서 계속)
이러한 체제가 가져온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권위주의 집권당이 야당보다 더 개혁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에서 그러한데, 여당과 야당은 다같이 대중정당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명사정당과 같은 엘리트 정당적 성격이 크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집권 정부로서 많든 적든 국민의 지지와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민적 요구에 일정하게 부응해야 할 인센티브를 갖는다. 이것은 집권 엘리트들에 의한 ‘위로부터의 개혁’의 동인이다. 다른 한편 야당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제약과 조직구조의 전근대성으로 인하여 사회경제적 요구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지지를 동원하고자 하는 의지도 능력도 인센티브도 갖지 않았다.
-128쪽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운동권이 지녔던 이념은 대체로 사회주의나 급진적 민족주의처럼 도식적이고, 낭만적이고, 교리적이고, 비경험적이고, 추상적인 것이었다. 강력한 군부독재와의 투쟁 속에서 그들은 가장 급진적이고 강력한 이론에서 투쟁의 무기를 발견하려고 했다. 운동권의 이러한 이념적 급진성은 선거경쟁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함께 선거불참여주의적 경향 또는 선거에 소극적인 태도를 갖게 했다. 이러한 이념적 급진성은 운동권 내에서의 분파주의를 강화하고,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현실을 경험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문제를 낳았으며, 무엇보다도 정치 세력화에 장애요인이 되어 기존의 보수적 정당들과는 다른 대안적 이념과 비전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했다. 다시 말해 운동권의 이념적 급진성은 운동권의 강함의 반영이 아니라 약함의 반영이었다. 그 결과 대통령선거가 다가오게 되자 운동권은 독립적 위치를 상실하고 기존의 제도권 야당의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해체되고 말았다.-144쪽

만약 우리가 갈등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사회의 어떤 집단이 경쟁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정당을 강조하는 까닭은, 정당이 시민 사회의 영역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시민사회를 국가에 매개하는 역할을 갖기 때문이다.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이 약한 것, 즉 민주주의가 약한 것은 서구 민주주의 정당의 제도화와는 달리 정당이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의 균열에 뿌리를 두지 않기 때문에 선거경쟁에서 정당간의 차이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정당과 사회적 균열 사이의 연계가 약하기 때문에 선출된 공직자는 투표자에 대해 책임성을 갖지 않는다. 책임성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인의 말은 유권자와의 약속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수사와 공약을 수 없이 토해내지만 그 말에 책임을 지도록 사회와 투표자에 의해 구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리에 계속)-183쪽

(위에서 계속)
정당이 엘리트 이익과 사인적 보스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이러한 상황은 곧 기득 이익의 헤게모니를 보장해 주는 상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냉전 반공주의와 접맥되어 있는 낡은 정당체제를 해체하는 것, 다시 말해 정당의 기반과 구조 자체를 급속하고도 광범위한 사회변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갈등구조에 뿌리내리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83쪽

한국의 시장이 서구의 시장과 근본적으로 상이한 경로를 거쳐 형성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장이 먼저 민간부문에서 생성 발전한 것이 아니라, 주요 정치적 계기들을 통해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시장은 그 이전에 존재하던 시장적 요소가 발전하고 변화되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사실상 국가에 의한 권위주의 산업화 과정에서 창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중략) 권위주의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시장은 크게 세 가지 특성을 갖는다. 첫째는 국가가 경제의 성장 목표를 설정하고 여기에 민간기업을 동원하여 자원의 할당과 분배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한 국가주도성이다. 둘째는 이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육성된 소수의 거대 기업이 국가의 거시경제정책이 성장목표를 대리 추진하면서 국민경제를 지배하는 재벌 경제체제이다. 셋째는 노동의 배제이다. 이는 생산적 자원의 할당과 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서나 보수독점의 정치적 대표체제에서 사회의 대표적인 생산자 집단인 노동의 참여와 대표가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191쪽

무엇보다도 재벌 중심의 시장경제구조는 정치의 민주주의 틀과 상충하는 것이다. 권위주의정권과 재벌 간의 연합은 지난날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것은 동시에 권위주의 구가의 핵심적 기반이었다. 그러므로 이 체제가 유지된다는 사실은 사회의 한 집단에게는 기득 이익과 특권을, 다른 집단에게는 소외와 배제를 되풀이함으로써 권위주의하에서의 사회 분열과 균열을 그대로 유지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재벌 중심 체제의 다른 모습인 정경유착은 부패, 부정, 비리, 탈법, 비정상, 비효율의 발원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재벌기업에게 시장에서의 특권적, 독점적 지위를 보장했고 여타 경제 주체들의 발전과 창발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민주화 이후에도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거대한 부패구조를 지속시킨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193쪽

민주주의의 정치적 틀에 조응하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없다면 한 사회에서 시장의 부정적 역할을 제어할 힘은 없다. 효율성을 중심 원리로 하는 시장은 한 사회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하위 체제의 하나일 뿐이며, 그것이 전 사회의 운영원리가 될 수는 없다. 만약 한 사회가 신자유주의의 교리처럼 효율성에 기초하여 생산적 부의 축적만을 목적으로 운영된다면, 가난한 사람의 복지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과 같이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영역 역시 부자들의 자선에 의존하게 될 뿐이다. 역사를 통해 인류가 합의에 이르게 된 사회운영의 원리는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에 기초를 둔 국가만이 어느 한 하위체제의 과도함을 제어하며 하위 체계간의 자율성과 균형을 유지하면서 전체 사회의 복리와 벌전을 도모할 수 있다. 계급구조화의 심화, 소득불평등, 하층 집단의 광범위한 소외와 정치적 배제 등 오늘의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유능한 민주주의 국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214쪽

정당이든 대통령후보든 그것은 일종의 대안 정부로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현재의 정부가 실패했을 때는 현재와는 다른 대안이 존재하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정책적 대안이나 이념이 먼저 제시되고 이를 둘러싼 경쟁을 통해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기보다는, 아무 정책적 대안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고, 그리고 나서야 정책대안을 만들고 새로 통치이념을 만든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정치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도, 안정적이 되기도 힘들다. 어느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후보가 되고 총리도 되고 장관도 되는 등 의외성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가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49쪽

정당이란, 갈등을 동원함으로써 갈등의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할 때 민주주의에 기여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은 갈등을 동원하고 사회하기는커녕 있는 갈등도 무시한다.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에 유리한 갈등만 동원하고 대표하려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정치인들이 즐겨 동원하는 지역감정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250쪽

최근 삼성의 급성장은 지금까지의 재벌문제와는 다른 특별한 문제임에 분명하다. 10대 그룹 내에서 1/3에 달하는 매출 비중과 순이익 비중, 국가 전체 수출의 1/5을 넘는 수출기여도, 8~10%에 이르는 세수 비중, 1/4에 가까운 시가총액 등으로 나타나듯, 단순히 재벌의 성장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른바 ‘슈퍼재벌의 등장’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의 성장은, 5대 그룹 내에서 자산, 부채, 자본, 이익이 2001년의 30~40%에서 2004년 모두 50%를 넘어서는 등 지난 수년 동안 가속화되었다. 세계에서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갖는 나라에서 한 기업이 이렇듯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는 없다. (중략)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거대한 경제권력의 출현이 민주주의를 변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거시적인 사회구조의 차원에서 볼 때, 슈퍼재벌을 정점으로 하는 생산체제의 구조화는 민주주의 발전의 조건이라고 할 다원주의 즉, 사회의 구조적 힘을 배분함에 있어 분산적이고 수평적인 체계의 발전을 어렵게 한다.-271쪽

경제권력의 집중화를 상징하는 슈퍼재벌의 등장은 여러 형태로 민주주의의 작동을 저해하고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먼저 돈의 힘 그 자체와 이들의 대변기구인 언론매체들이 선거과정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이 있다. 다음으로 민주정부가 성립된 이후 정부정책의 중요 결정과정은 거대기업들의 강력한 로비에 영향을 받는다. 슈퍼재벌이 발휘하는 영향력의 핵심 중의 핵심은 국가의 세 부서, 즉 행정 입법 사법부 모두에 걸쳐 인적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능력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국가와 사적 이익영역 간의 경계를 가로질러 광범한 삼투적 영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와 민간 기업부문, 공적영여과 사적 여역 간의 경계는 이 슈퍼재벌이 가진 권력자원을 통해 쉽게 허물어졌다.-272쪽

슈퍼재벌의 이익 실현에 필요하다면 국가는 법을 바꾸거나 법의 침묵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정책에 능동적으로 포섭되기에 이르렀다. 법 앞의 평등과 법의 지배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조건이며, 자유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하이예크가 강조하고 있듯이 시장의 작동을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의 상황에서 민주정부는 적어도 슈퍼재벌과 관련해서는 법의 지배를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 법의 지배가 강력하게 관철되는 영역은 지극히 선별적이다. 정부-삼성의 연합 혹은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은 이러한 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출범 초기 개혁적일 것으로 기대되었던 민주정부가 슈퍼재벌과 연대하는 모습만큼 한국민주주의의 변형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패러독스는 없을 것이다.-273쪽

정치를 둘러싼 규칙과 제도가 아무리 민주화되었다 하더라도, 구질서하에서 국가를 만들고 작동시켰던 권위주의적 정향, 가치, 관행과 실천들,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인식들 그리고 인적구조가 자동적으로 민주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민주정부의 능력이 필요하고, 선출된 민주정부를 대표하면서 그 중심에 위치하는 최고지도자의 능력과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느냐의 문제는 능력 있는 민주적 리더십이 발휘되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고려할 때 우리는 간단한 도식을 그려볼 수 있다. ‘맨 왼편에 선출된 민주정부’(G) - '중간에 행정관료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S)' - 오른편에 시민사회 기득이익의 헤게모니’(H)가 있다고 가정하자.
(아래에 계속)-281쪽

(위에서 계속)
민주주의의 힘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움직이고, 현상 유지를 원하는 기득이익의 힘은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움직인다고 가정할 때, 국가는 이 양자의 힘이 미치는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국가를 충분히 민주화하기 위해서는 선출된 리더십의 힘이 강하게 작용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는 헤게모니의 힘이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선출된 정부에까지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앞서 슈퍼재벌에 관한 논의에서 이러한 구조를 말한 바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선출된 정부가 유능한 정부가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는 문제이다. 그것은 선출된 정부가 어떻게 사회로부터 민주적 동력을 끌어내고 사회적 요구를 얼마나 잘 대변하여 넓은 지지기반을 형성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281쪽

현대 민주주의에서 민주 정부의 유능함이 엘리트주의 내지 전문가주의가 아닌 민중적 동력과지지 기반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게 만드는 결절점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 끊임없이 강조하였듯이 그것은 정당이 중심이 되는 정치체제이다. 민주 정치란 정당을 중심적 메커니즘으로 하여 사회의 갈등과 균열을 폭넓게 표출하고 대표하는 방법을 통해 다수의 힘을 동원하고,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권력을 획득하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정책적 대안을 실현하고, 그 실현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지지를 동원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집단적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284쪽

(노무현 정부의) 문제 중의 하나는 대통령 스스로가 정치의 경계를 좁히고, 탈정치화를 앞장서 실천하면서 이를 민주적 개혁이라고 주장해 왔다는 것이다. 3김정치를 극복한 탈권위적 리더십이니, 정치는 당에 맡기고 정책은 책임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국가 전체적 과제에 집중하겠다는 등의 논리나 당정분리, 원내정당화, 정책정당화 등 현 정부에 들어와 자주 사용되는 개념들은 정치논리를 부정적으로 보는 反정치의 정치관을 집약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치관은, 정치란 파당적 자기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갈등과 대립을 일삼고 당리당략의 추구에 몰두하는 영역이라는 인식, 다시 말해 민주화 이후 강화되어 왔던 지배적인 정치관이랄까 헤게모니와 내용적으로 궤를 같이 한다.당정분리라는 말이 표현하듯, 대통령은 정부와 사회를 매개할 수 있는 정당과의 관계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거리를 두었다.
(아래에 계속)-285쪽

(위에서 계속)
대통령은 정당을 기반으로 선거에서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당이 갖는 특정의 정치적 관점 내지 이념을 발전시키거나 그에 기초하여 사회의 갈등과 균열에 접근하는 정당의 지도자로서 행위하기보다, 사기업 조직의 CEO와 같이 정부조직의 혁신과 생산성을 높이는 관리자 혹은 파당적 쟁투로부터 벗어난 국가 전체의 지도자로서 행위하는 데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의 권력과 권위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뒤얽혀 있는 사회로부터 발생하며, 그의 리더십과 수행능력은 일차적으로 그를 선출한 다수투표자들의 이잉꽈 요구를 대표하고 반영하되 그것이 사회 전체이익과 병행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조하시키는 데서 발휘된다. 이를 위해 정당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인식을 공공연히 드러내거나, 이를 우회 혹은 초월하여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한 지도자의 결단을 강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병행하기 어렵다. 이러한 정치에 대한 이해의 방법, 리더십 스타일은 결국 정당정치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그럼으로써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임이 분명하다.
-285쪽

이 책의 중심적 테마는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정치를 활성화하고 바로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중심적 메커니즘이 정당과 정당체제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힘은 정치의 내부로부터 창출되는 것이지 정치 바깥의 어떤 제3의 제도 또는 힘에 의한 것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밖의 자유주의나 공화주의와 같은 어떤 외부의 이념에서 이를 보강할 자원을 찾기보다, 그 내부로부터 이념적, 제도적, 실천적 자원을 발전시키고 풍부하게 하고 강화시키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념이나 제도를 따라 그 모델이 외부로부터 발견되고 계도된 경로를 따라가기보다 스스로 발전시켰던 요소가 더 중요하다는 것으로, 정치에 대한 현실적 접근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아래에 계속)-299쪽

(위에서 계속)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희구하고 투쟁했던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실망하고, 이를 비판하는 ‘소극적 시민’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민주주의를 만드는 과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적극적 시민’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영역을 구축하는 데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함께 민주파로서의 집합적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일이 절실하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투쟁과 민주주의를 만드는 과업은 다른 성격의 문제라는 전제 위에서, 정부가 된 민주주의가 강한 사회적 기반을 가지면서 유능하게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를 말해야 하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실질적인 내용을 갖고 발전할 수 있는 경로를 찾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민주화의 과제를 안고 있다.-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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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2-12-05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우리 나라는 이렇지? 라는 오랜 의문에 대한 꽤 그럴듯한 대답.
 
엄청나게 시끄러운 폴레케 이야기 1 - 오늘 나는 그냥 슬프다 일공일삼 69
휘스 카위어 지음,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11년 11월
품절


우리 반에 진짜 네덜란드 사람은 카로와 나, 둘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이다. 카로의 아빠는 ‘아이아(아주 이상한 아빠)’이고, 우리 아빠는 ‘이아(이상한 아빠)’이다. 내 생각에 네덜란드 아빠들은 모두 이상한 아빠들인 것 같다. 엄마 말로는, 네덜란드에도 옛날에는 정상적인 아빠들이 더러 있었단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맥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는 아빠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아빠들은 이제 더 이상 없는 것 같다.
요즘 아빠들은
아빠가 아닌 사람이 아빠이거나,
아빠는 아빠인데 다른 집에 살거나,
아빠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 사는지 모르거나,
시험관 아빠라 누가 우리 아빠인지 모르거나,
시험관 아빠가 누구인지 알지만, 엄마의 남편을 아빠라고 불러야 해서 시험관 아빠를 아빠라고 부를 수 없다거나,
시험관 아빠가 엄마의 남편은 아니지만 시험관 아빠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거나,
아빠가 누구고 어디 사는지 알지만 찾아가면 안 된다거나,
아빠가 남자를 좋아해서 졸지에 아빠만 둘이라거나,
엄마가 레즈비언이라서 여자 아빠만 둘인 경우이다.
다들 자기 아빠는 어디에 속하는지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27-28쪽

아빠가 엄마와 결혼했을 때 아빠한테는 벌써 자식이 둘이나 있었다. 이름은 디륵과 엘케, 그러니까 내 오빠와 언니다. 그러나 아빠와 엄마는 내가 세 살 때 이혼했고, 아빠는 지금 지나 아줌마네 집에서 산다. 디륵 오빠와 엘케 언니 그리고 지나 아줌마의 아이들인 피케와 하이스와 함께. 그리고 아빠와 지나 아줌마 사이에는 태어난 지 삼 년 육 개월 된 딸, 힐레트가 있다.
정리하자면 힐레트는 내 이복동생이지만 피케와 하이스는 아니다. 그 애들은 지나 아줌마의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났으니까. 디륵 오빠와 엘케 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 이복형제들이다. 이만하면 다들 알아들었겠지?
(아래에 계속)-28-29쪽

(위에서 계속)
처음에 나는 우리 아빠를 빼앗아 간 지나 아줌마가 무지 싫었다.
엄마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내게 이런 질무을 던지곤 했다.
"너, 아빠가 왜 그 여자랑 같이 사는지 아니?"
그러면 나는 순진하게도 번번히 되물었다.
"왜 같이 사는데? 말해 줘."
"그건 그 여자가 엉덩이를 잘 흔들기 때문이야. 남자들은 다 그래. 내 말 믿어."
나는 엄마 말을 믿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지나 아줌마는 엉덩이가 별로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기로 치면 도리어 엄마 엉덩이가 더 컸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 이유를 모른다.
언젠가 내가 할머니에게 물었을 때,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남자랑 여자가 싸우면 그냥 남자가 잘못했다고 해야 해. 그래야 일이 복잡해지지 않거든."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음보를 터뜨렸다. 할아버지가 숨을 못 쉴 정도로 웃어 대는 바람에 할머니는 할아버지 등을 세게 두드려 줘야 했다.-28-29쪽

우리 아빠는 비록 ‘이아’지만 아주 멋진 사람이다. 정말이다. 아빠도 나처럼 시인이다. 나와 아빠의 차이라면, 나는 시를 쓰지만, 아빠는 쓰지 않는다는 정도다. 아빠는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다. 하지만 아빠는 시인 그 자체다. 생김새나 걷는 모습, 말투만 봐도 누구나 대번에 ‘아, 이 사람 시인이군.’하고 알아챌 수 있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하지만 그런 아빠가 딱 한 번 시를 쓴 적이 있다. 내 시집에, 나를 위해 쓴 시였다.

열쇠를 꽂으라고
열쇠 구멍이 늘 비어 있듯
내 마음 한구석에도
우리 폴레케를 위한 자리가
늘 비어 있다네.

정말 멋진 시 아닌가! 나는 이 시를 읽고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왜냐고? 폴레케 앞에 적힌 ‘우리’라는 단어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말이다.
(아래에 계속)-38-40쪽

(위에서 계속)
아빠가 멋진 이유는 또 있다. 누가 아빠에게 ‘뭐하세요?’ 하고 물으면 아빠는 "장군이에요.", "시인입니다.", "소방수예요." 따위의 케케묵은 대답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
"전 지금 숨 쉬는 중인데요!"
사실 아빠는 숨 쉬는 일 말고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는 게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왜냐하면 아빠는 왼손만 두 개 달린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아빠가 만지는 물건은 뭐든 죄다 망가졌다. 아빠가 물기를 훔치려고 접시를 집어 들면 그 접시는 어느새 "쨍그랑"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창문을 닦으려고 걸레를 갖다 대면 창틀이 벌써 삐걱거렸다.
-38-40쪽

방과 후, 엄마한테 아빠가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빠가 체포되었다고 한다. 경찰 말로는 아빠가 마약 거래를 했단다. 맞는 말이다. 아빠는 대마초를 팔았고, 지금은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나는 당장 자전거를 타고 구치소로 향했다. 내가 설명해야 한다. 경찰은 아빠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일분일초라도 빨리 아빠를 구치소에서 나오게 하려고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 십오 분 만에 구치소에 다다랐다. 초인종을 누르자 다행히 금방 문이 열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유리방 안에 아저씨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수위 아저씨였다.
"우리 아빠 때문에 왔어요. 이름은 스픽이에요. 여기 갇혀 계신데, 경찰이 완전히 실수하는 거예요."
수위 아저씨가 대답했다.
"그래? 거참 안됐구나. 이름이 뭐라고?"
"스픽이요. 진짜 이름은 헤리트예요."
"경찰이 실수로 네 아빠를 여기 가뒀다고? 너한텐 참 안된 일이구나."
"그래서 제가 아빠를 데리러 온 거예요. 아빠가 마약 거래를 하는 건 사실이지만 다 좋은 일을 위해서거든요."
(아래에 계속)-64-66쪽

(위에서 계속)
내가 설명했다.
"마약 거래를 안 하면 아빠는 대마초를 살 돈이 없고, 대마초를 못 사면 아빠는 시를 못 지어요. 아빠는 시인이에요. 그러니까 좋은 일을 위해서 그런 거예요. 아빠는 갇혀 있는 걸 못 견딜 거예요. 그래서 제가 데리고 나가려고요. 여기 갇혀 있으면 속병이 날 거예요. 그럼 다시는 시를 짓지 못할 거라고요."
나는 수위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수위 아저씨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제야 나도 내가 내뱉은 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말았다.
여덟 살 때는 좋은 일을 위해 마약 거래를 한다는 아빠의 말을 정말로 믿었다. 아홉 살 때도, 열 살 때도. 하지만 나는 이제 열한 살이고 더 이상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수위 아저씨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를 그곳에서 꺼내야 했다.
나는 복도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빠! 스픽! 어디 있어요? 어서 집으로 가!"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허약한 모습을 보이는 나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바보 멍청이 울보 같으니라고.
(아래에 계속)-64-66쪽

(위에서 계속)
수위 아저씨가 유리방에서 나오더니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아, 내 자신이 얼마나 싫던지. 조금만 대차게 행동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 내가 엉엉 우는 소리는 거의 그레트예 수준이었다.
수위 아저씨가 물었다.
"너, 이름이 뭐니?"
내가 코를 훌쩍거리며 대답했다.
"폴레케요."
"그래, 폴레케. 넌 참 착한 아이구나. 잠시 아빠를 만날 수 있는지 내가 가서 한번 물어봐 줄까?"
나는 여전히 흑흑거리면서 "네에, 네에." 하고 소처럼 울부짖었다.
수위 아저씨는 허락을 받지 못했다. 아빠를 만나려면 면회 시간에 다시 와야 했다. -64-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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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2-11-1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한 살 폴레케의 '이아(이상한 아빠)'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적어 둔다. 숨쉬는 일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노숙자들과 어울리고 마약 거래를 하다가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하는 이 '이아'는 세 명의 여자에게서 네 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은 네덜란드의 훌륭한 복지정책 덕으로 제법 잘들 자라고 있다. 아이는 엄마와 국가가 키우니 아빠는 자유롭게 숨만 쉬고 살아도 되는 나라라... 이걸 부럽다고 해야할지 한심하다고 해야할지...;; 깔깔 웃으며 즐겁게 읽었지만 덮고 나서 조금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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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년이 어떤 아가씨에게 연정을 품고, 날이면 날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그녀를 따라다니며, 모든 정력과 재산을 쏟아부으면서, 자기가 그녀를 위해 온몸을 바치고 있음을 줄곧 나타내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때 속물 하나가, 즉 어떤 공직에 종사하는 남자가 나타나서 그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여보시오, 젊은 양반, 내 말 좀 들어봐요! 사랑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단 인간다운 사랑을 해야 돼요. 자기의 시간을 둘로 나눠서 한쪽은 일하는 데 쓰고, 다른 한쪽, 즉 쉬는 시간을 여자에게 바치도록 해야지요. 당신의 제산을 헤아려보고 꼭 필요한 경비를 뺀 다음, 나머지를 가지고 여자에게 선물을 하는 것쯤은 나도 말리지 않아요. 그것도 너무 자주 해서는 못쓰고 여자의 생일이라든가 세례일 같은 날에만 해야지요.>
(아래에 계속)-24-26쪽

(위에서 계속)
만약에 그 젊은이가 그런 충고에 따른다면 그는 쓸만한 인물은 될 것이다. 나도 그런 젊은이라면 어떤 영주에게나 직원으로 채용해 달라고 추천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애인으로서의 그는 그것으로 끝장이다. 만일 그가 예술가라면 그의 예술도 마지막이지. 아아, 나의 벗들이여, 무엇 때문에, 천재의 물결이 둑을 뚫고 터져나와 큰 홍수를 이루며 콸콸 쏟아져 내려와서, 그대들의 영혼을 뒤흔들어놓는 일이 이렇게도 드물단 말인가! 사랑하는 벗들이여, 천재의 흐름 양쪽 기슭에는 태연자약한 신사들이 산다. 그들은 자기들의 亭子나 튤립 꽃밭, 채소밭 등이 혹시나 못 쓰게 될까 봐, 서둘러 둑을 쌓고 토목 공사를 하는 등, 앞으로 닥쳐올 위험을 미리 방지하고 있다.-2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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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2-11-0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물 다섯 살의 괴테가 쓴 자기파괴적인 사랑의 기록.
솔직히 읽는 내내, 이런 게 좋냐? -_- 라는 느낌이었다.
난 그냥 천재의 물결이 정자와 튤립꽃밭과 채소밭을 망치지 않도록 둑이나 쌓으련다. ^^
 
전쟁과 평화 3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 일신서적 / 198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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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이미 절반이나 정복당하고 모스크바의 주민들이 멀리 떨어진 여러 縣으로 피난하고 조국의 방어를 위해서 민졍이 잇따라 궐기했을 때 모든 러시아인은 노소의 구별 없이 한결같이 자기를 희생하는 것과 조국의 위급을 구하는 것과 조국의 비운을 한탄하고 눈물 흘렸을 것이라고, 당시에 살아 있지 않았던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를 전하는 이야기와 記事들도 전부 예외 없이 러시아 국민의 자기 희생과 조국애와 절망과 비애와 영웅적인 행위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우리들이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의 사건 속에서 다만 당시의 일반적인 역사적 관심만을 보고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관심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는 현재의 모든 개인적인 관심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관심보다 훨씬 중대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그 때문에 일반적인 관심은 조금도 느껴지지 못할 정도이다. (아니,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계속)-154-156쪽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태의 전반적인 推移 따위엔 주ㅢ를 쏟지 않고, 다만 눈앞의 개인적인 관심에 의해서만 움직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러한 사람들이 당시에 있어서의 가장 유익한 動力이었던 것이다.
사태의 전반적인 추이를 알려고 시도하거나자기 희생 정신과 영웅적 행위에 의해서 시국에 참여하려 했던 사람들은 당시의 사회에 있어서 가장 무익훈 분자였었다. 그들은 온갖 것을 뒤집어 보고 있었다. 그들이 나라를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한 짓은 모조리 무익한 망동이라는 결과로 끝났다. 이를테면 피예르나 마모노프가 기부한 연대는 결국 러시아의 마을들을 약탈하고 돌아다닌 데 지나지 않았으며, 또 모처럼 귀부인들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한 번도 부상자에게 닿지 않았던 린트 천 같은 것이 그것이었다. 영리한 체하거나 悲憤慷慨를 좋아하고 러시아의 현상을 말하기를 일삼던 사람들까지도 부지불식간에 말에 겉치레와 허위를 동반하고 혹은 누구의 죄도 아닌 것에 대한 책임이 지워진 사람들에 대한 무익한 증오와 미묘한 감정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154-156쪽

모든 역사적인 사건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분명한 교훈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다.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다만 무자각한 활동뿐이며, 역사적인 사건에 있어서 무엇인가의 역할을 하는 사람도 절대로 사건의 의의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설사 그 의의를 알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무익함에 놀랐을 뿐인 것이다.
당시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의의도 사건 가까이 참가했던 사람들은 더 그 의의를 몰랐었던 것이다. 페쩨르부르그를 비롯하여 모스크바에서 떨어진 모든 지방에서는 상류의 부인들이나 의용병의 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러시아와 그 수도의 비운에 눈물을 흘리고 자기 희생이라는 것을 운운하고 있었으나, 모스크바 뒤쪽으로 퇴각한 군대 중에서는 거의 한 사람도 모스크바에 대해서 말하거나 생각하는 자도 없고 맹렬히 타오르는 모습을 보아도 누구 한 사람 프랑스 군에게 복수를 해야겠다고 맹세하는 자도 없었다. 도리어 모두가 다음의 넉 달치의 봉급이라든가, 다음 숙영지와 주보의 처녀 마트료쉬카의 일이나, 그와 같은 류의 하찮은 일을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계속)-154-156쪽

니콜라이 로스토프도 자기 희생이라는 따위의 목적은 하나도 없고 다만 군대에 복무종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우연히 조국 방어에 직접 오랫동안 관계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절망하지도 않았을 뿐 더러 비관적인 결론도 내리지 않고 당시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던 사건을 태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러시아의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었다면, 그는 그것에 대하여 그러한 것은 자기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고 그걸 위해서 쿠투조프 같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들은 바에 의하면 각 연대는 병력의 보충을 하고 있는 모양이니까 전쟁은 더 길계 계속될 것 같다. 지금 같은 상태로 밀고 나아가면 한 이 년 뒤에는 자기도 일 개 연대를 맡는 것쯤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고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사태를 이처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사단의 馬匹 보충을 위해서 보로네쥐로 출장을 명령받았을 때 최근의 전투에 참가할 기회를 잃은 것을 슬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크게 기뻐했다. 그리하여 그 자신도 그 기쁨을 숨기려 하지 않았고 동료들도 그 기쁨의 원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154-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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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터키사 -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 터키 처음 읽는 세계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중고생용 자습서에 나오면 딱 맞을 듯한, 간결하다 못해 유치하고 무미건조한 문장에 몇 장 읽지도 않아 질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딴에는 야심차게 써 보려고 한 듯한 상상의 대화 장면이 실소를 자아낸다. 특히 콘스탄티누스가 개종하는  장면에서는 "성령을 입은 것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내게 승리를 주셨다. 나는 이제부터 하나님을 숭배할 것이다." 어쩌고 하며 기독교인 티를 내는 저자에게 짜증이 솟구쳤다.

  연표와 사진과 지도는 괜찮으니 조금만 참자고 자신을 타이르며 책장을 넘겼지만,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을 소개한 대목을 읽다가 그만 분노가 폭발해서 리뷰까지 쓰러 들어오게 되었다. 아니, 살인 사건을 다룬 미스테리 소설을 소개하면서 범인이 누구고 살인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탈탈 다 까발려버리다니 제 정신인가?! 불운한 어떤 독자가 기본적인 매너도 없는 이런 책을 읽은 탓에 터키가 자랑하는 노벨상 수상 작가의 대표작 중 한 편을, 역사와 인간에 대한 풍부한 성찰을 담은 매력 넘치는 미스테리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날려버린다면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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