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시 2 - 석양에 빛나는 감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장세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12월
절판


"모리가 전속신청서를 냈어. 자네, 모리에게 뭔가 들었나? 전속 희망처는 오오시마(大島), 니이지마(新島), 미야케지마(三宅島), 하치조지마(八丈島), 오가사와라(小笠原)...."
고다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역시’라는 생각이었다. 몇 달 전이었다면 화가 났겠지만, 동료의 심정을 헤아려 줄 마음의 여유가 지금 자신에게 없다는 것이 먼저 절절히 느껴졌다. 그러나 ‘역시’라는 생각 주변을 별다른 형태도 없는 분한 마음이 느릿느릿 소용돌이쳤다. 원래라면 전속신청서는 주임인 고다나 아즈마에게 제출해야 하는데, 모리가 직접 하야시에게 건넸다는 것도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자신보다 어린 부하가 조직 내에서 자신의 몸을 둘 방향을 한 벌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충격이었다. 저 상승지향 덩어리 같았던 모리가 조직의 현재와 자신의 능력이며 성격을 생각하고, 생활의 검소한 안정을 생각하고, 누구와 의논하는 일도 없이 혼자서 고민한 끝에 미래의 승진이라는 길을 버렸다는 건가. 그런가, 저 모리가 섬으로 간다는 건가? 그럼 나는, 히노데 부두에서 종이테이프나 던지며 배웅하는 것인가?-177-179쪽

집이 있는 38동에 도착하니 1층 우편함에 있어야 할 하루치 조간과 석간이 보이지 않아 가노 유스케가 들렀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께 미토에서 본 옛 처남이 일부러 걸음을 했다면, 짐작 가는 용건은 하나였다. 하치오지 서에 들어온 불시 감사에서 들킨 관련조회 부정이, 또다시 전광석화처럼 그의 귀에 들어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뿐이라면 전화로 호통을 치면 끝날 것을 옛 처남은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존재 때문에 기요코와 옛 매제의 관계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이미 사라졌을 촛불을 고다가 없는 사이에 다시 피워 올리기 위해서 걸음을 하는 것이었다. 각각의 용건은 전부 그것의 구실이었다. 그것은 이미, 어느 정도는 쌍둥이 중 다른 한쪽이라는 입장에서 발현하는 특별한 심상이라고 해도 태반은 가노 유스케라는 남자의 감정이 어떠한가의 문제였기에, 단적으로는 여자보다 다루기 ‘번거로운’이라는 데서, 고다 자신의 머리도 정지해 버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중략) 불을 켜니 주방 테이블 위에 신문과 복사용지 한 장이 있었다.
(아래에 계속)-181-189쪽

(위에서 계속)
B4사이즈의 용지는 하치오지 서 형사과의 문서건 명부를 복사한 것이었다. 어제 아침, 고다가 거짓 번호를 매긴 문건 중 다이요 정공의 총무부장에 관한 조회처가 실려 있는 부분의 옆에는 "모처로부터 입수. 할 거면 좀더 능숙하게 해"라는 옛 처남의 갈겨쓴 글이 있었다. ‘모처’는 불시 감사를 담당한 1계의, 경찰청과 이어져 있는 누군가인가? 복사물은 하야시에게 전해진 것과는 다른 경로로, 눈짓 한 번으로 몇 군데의 손을 거친 후 봉투에라도 넣어져, 검찰합동청사의 옛 처남의 책상으로 전해졌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고다는 정관계의 거대한 그물망이 쳐진 권력기구의 한 구석에서, 먼 친척의 사소한 죄를 왈가왈부하는 괴문서가 날아다닌다는 시시함에 감명을 받고, 그곳에 있는 가노 대신 어이없어했을 뿐이었다. 확실히 그가 남긴 말대로 ‘할 거면 좀더 능숙하게’ 해야 했다. 준법정신과 함께 지금까지 살았을 남자가 하는 말이니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그에 대한 빈정거림도 실망도 힘없이 끊었다가는 이내 진흙 같은 한숨에 녹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래에 계속)-181-189쪽

(위에서 계속)
아니, 아무리 가노 유스케라도 역시 화가 났을 거라고 잠시 생각을 고쳐 보기도 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제는 교정도 할 수 없는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과, 그 타인이 자신의 감정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거듭 실망을 해도 여전히 끊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여동생 기요코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그런 불분명함을 타인인 남자에게 말하려다 못했던 자신의 그런 불분명함을 타인인 남자에게 말하려다 이루지 못한 것, 그것을 유스케는 화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直裁인지 韜晦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소유자와 지금도 만남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 생각하자, 마지막에는 또 여자보다 ‘번거로운’ 이라는 것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 뭔가 실망하고, 단념하고, 어느 날 결단하더니 냉큼 남자 둘을 버리고 간 기요코에 비하면, 남겨진 남자 둘의 미련이나 집착은 눈뜨고 봐줄 수 없다는 얘기일 뿐이다.
(아래에 계속)-181-189쪽

(위에서 계속)
(중략) 고다는 차례차례 떠오르는 기요코의 모습이 굉장히 흐릿해졌다는 사실에 새삼 큰 충격을 받으며, 위스키의 힘을 빌려 계속해 생각했다. 자신은 왜 결혼을 한 것인가? 왜 기요코였나? 왜 파탄이 난 건가? 11년 전 봄, 갑자기 수식이라도 하나 풀렸다는 얼굴로, 우리들 결혼해요 하고 기요코가 말을 꺼냈다. 그때 고다는 너와 난 어울리지 않아 하고 대답했는데, 그것은 본심에 충실한 것이었다. 또한, 신중함이 어느 정도 결여된 기요코의 돌진에는 오빠 유스케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밀착된 관계로부터 도망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상대는 꼭 자신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고다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튼 스물셋의 남자가 보는 인생의 모습에는 한계가 있었고, 친형제도 없는 고독을 메우는 데 결혼은 가장 가까운 선택지였다. 뭔가가 일그러졌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결국 알지 못한 채, 마지막에는 결혼하면 매일 기요코를 안을 수 있다는 정도의 애매한 희망이 이긴 것이다.
(아래에 계속)-181-189쪽

(위에서 계속)
다만 형사과에 배속된 지 얼마 안 된 신참 형사와 석사논문과 박사논문 준비로 바쁜 학생의 조합은, 3일에 한 번 얼굴을 마주칠 수 있을까 말까 한 현실이었고, 거의 생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생활이었다. (중략) 아니, 실제로는 사소한 충돌은 몇 가지나 있었고, 그 하나하나가 서로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더했던 점만은 세상 사람들과 비슷했다고 고다는 생각을 바꾼다. 어떤 계기로 싸움을 하게 되었을 때, 어두운 주방 의자에 돌처럼 앉아있던 기요코의 등. 혹은 며칠 만인가 돌아왔는데 기요코가 없던 한밤의 집의 오싹한 어두움. 부부가 모두 집을 비우기만 해서 곰팡이가 핀 욕실. 거둬들이지 않고 발코니에서 젖어 있던 세탁물. 아니, 어느 순간 자신은 기요코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끓어오른 그 순간의 구토감이야말로 ‘절정’이었던가. 아니, 절정은 그후 기요코에게 연구자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찾아온 역겨운 안도감 쪽인가. 아니면, 이미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술회가 들어갈 여지도 없던, 자신의 냉혹감 쪽인가.
(아래에 계속)-181-189쪽

(위에서 계속)
아니, 냉혹할 뿐이라면 그나마 나았다. 한 여자에 대한 감정이 육체에서 태어나 육체로 끝난 것은 결국 자신이 그것을 바랐다는 얘기라며 고다는 더욱 생각해 보았다. 사실 자신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게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잔혹한 것을 바란 것일지도 모른다. 소극적인 듯이 굴며 자신의 욕정만을 채우고, 그 이상의 것은 거부하며 받아들이지도 베풀지도 않앗다. 그저 자신의 자의식을 지킴으로써 간신히 상식적인 사회인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나라는 남자였다. 그렇다면, 기요코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했고, 기요코 도한 빠른 시간에 그렇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어느 순간 스스로 단념하고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181-189쪽

요즘 무료하게 <신곡>을 다시 읽으며, 생각한 것이 있어. 단테를 이끄는 것은 베르길리우스이지만, 자네가 어두운 숲에ㅔ서 눈을 떳을 때 만난 것은 사노 미호코였어. 단테가 "당신이 사람이든 그림자이든, 나를 도와주십시오"하고 베르길리우스를 부른 것처럼, 자네는 정신없이 그녀에게 말을 건 거야. 그리고 그 이후부터 그동안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며 방황해 왔던 자네가 지금, 淨化에 대한 의지의 출발로써 통한과 공포의 단계가지 온 것이라면, 거기까지 인도해 준 것은 사노 미호코이자 노다 다쓰오였던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그건 그렇고, 나도 인생의 중반에, 이미 오래 전부터 어두운 숲을 헤매고 있지만, 아직 불러 세울 만한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네.
10월 15일. 가노 유스케(加納祐介).-360-3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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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3-01-28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리야.... ㅠㅠ. 난 모리도 되게 좋았는데, 섬으로 가다니 쇼크. 그래, 수사1과 수라장에서 고생하느니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출세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자연 속에서 맘편히 살려무나.
 
조시 1 - 석양에 빛나는 감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장세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12월
품절


미토까지 약 한 시간 반, 상쾌하다고는 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낸 끝에 도착한 옛날 집의 잘 정돈된 넓은 현관 마루에, 가노 유스케는 명주로 만든 우아한 약식 기모노를 입고 서 있다. (중략) 둘 다 모두 18,9세였던 시절부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몇 달 연장자라든가, 교양이며 가문 같은 사회적 기반의 차이 등을 이유로 들며 고다의 비호자를 맡아 왔고, 지금은 그것이 습성이 된 영원한 귀인이자 형님인 가노 유스케였다. (중략) 잘 닦인 복도와 창, 문의 윤기, 빛바랜 노송나무의 짙은 갈색, 매년 새로 칠하는 장지문의 흰색, 채광창의 조각에 쌓인 먼지의 깊은 색, 안뜰의 이끼와 물그릇의 물 냄새, 서고에 쌓인 장서들의 냄새. 그 어느 것이나, 자신과는 인연이 없는, 삶이나 전통이라든가 혈통이라든가 움직이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는 것을 젊은 고다로 하여금 느끼게 했다. 고다 자신은 그것에 대해 어떤 경의를 표한다는 형태로밖에는 반응하지 못했다. 자신이 동화되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아래에 계속)-410-422쪽

(위에서 계속)
(중략) 하지만 목욕을 하고 유카타로 갈아입은 무렵에는, 자신도 이제는 어딘가에 정착해야 할 텐데 하는 쪽으로 생각은 옮겨졌고, 이내 그 생각이 너무나 현실성이 없어 질리던 차에, 툇마루 쪽에서 "어이, 토마토를 차게 해 뒀어!" 하고 부르는 옛 처남의 목소리가 울렸다. 옛 처남은 자신의 방에 접한 툇마루를 활짝 열어젖히고 위스키를 준비하고 있었다. 관리인 부부의 밭에서 딴 토마토와 오이가 얼음이 든 통에 담겨 있고, 풍로 위의 석쇠에는 역시 얻은 것이 틀림없는 가자미와 대합이 얹어져 있다.(중략)
"그런데 건설회사 뇌물수수사건 쪽은 여름휴가인가?"
"여름휴가라고 할까, 중간휴가라고 할까. 나가타초를 의심병으로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아래에 계속)-410-422쪽

(위에서 계속)
옛 처남은 너무나도 특수검사다운 말투로 슬쩍 넘겼다. 10년 전에는, 마치 책에 손발이 자란 듯한 모습의 그가 지검 내부에 있는, 소득 없는 권력 다툼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어느새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습은 물론 두꺼운 얼굴까지 어엿하게 몸에 익히고 있다.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반석같은 가노 유스케였다.
"그래서, 네 쪽은 아직 하치오지 살인 사건인가?" 하고 물어와, 고다는 "뭐, 그렇지" 하고 대꾸했다.
"막힌 거야? 얘기라면 들어줄게."
"싫어. 위스키가 맛 없어져."
"그보다, 도박장 같은 곳은 나가지 마."
예상했던 말이 나왔다. 지검 내부의 은밀한 권력 다툼 속에서, 한 번은 친척이었던 형사 한 명의 신변까지 이야깃거리가 되어 날아다니고, 옛 처남의 귀에 들어간다. 일상적인 일이기는 했지만, 본 적도 없는 누군가의 악의며 중상보다도 옛 처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신경을 거슬렸다.
(아래에 계속)-410-422쪽

(위에서 계속)
(중략)옛 처남은 "그럼 마시자" 하고 새로운 위스키를 두 개의 잔에 부었다. 기요코와 이혼한 이후, 어느 쪽이나 서로의 신경을 서슬리는 곳까지는 건드리지 않는 습관이 들어, 누군가가 그만두자고 하면 그만둔다. 마시자고 하면 마신다. 이 정도면 두 사람은 꽤나 어른이 되었다고 할 만했다. 그렇게 다시 마시기 시작하자 옛 처남은 이번에는 고다의 왼손을 잡고 손금 보기를 시작했다. 잠깐 동안, 그만둬라, 싫다 하며 아이 같은 실랑이가 이어졌다.
"봐, 요전에 봤을 때보다 꽤나 주름이 늘었어.....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뭔가 계속 생각하고, 고민을 담아두면서 가만히 움츠리고 있는 아이의 손이야."
고다는 "원숭이도 고민은 한다" 하고 말하며, 이번에는 그가 옛 처남의 손을 쥐고 들여다보았다. 역시 가는 주름이 가득 한 섬세한 손바닥이었다. 그것도, 기요코와 매우 비슷한 손바닥이다.
(아래에 계속)-410-422쪽

(위에서 계속)
그것 봐라. 남들이 모르는 고민의 깊이라는 의미라면, 이 남자는 자신보다 훨씬 위일 터다. 그리고 그 눈. 기요코와 똑같은 눈. 본가의 깊이 있는 고요함 속에서, 쌍둥이밖에 알 수 없는 은미한 정념을 담고 있던 남매의 눈. 기요코와 고다의 사이에서, 이성의 지휘봉을 휘둘렀지만 실은 남모래 두 사람에 대한 질투의 불꽃을 태우던 남자의 눈. 아무리 이성이라는 덮개를 씌워도, 반드시 애증과 고뇌의 소양이 떠오르는 눈.
고다는 자신과 상대, 서로에 대한 풀어낼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를 인정하며, 비틀어 뭉개고 싶은 마음으로 자신의 손 안에 있던 또 하나의 손을 꽉 쥐고, 그리고 뿌리쳤다. 하지만 그때 처남은 전혀 다른 것을 생각했음에 틀림없는 것이, 조금 사이를 두고 너무나도 그다운 방식으로 마음을 숨겨 보인 것이었다.
(아래에 계속)-410-422쪽

(위에서 계속)
"통한은 改悛의 의식의 시작이니, 기뻐하면 된다. 갑자기 영혼을 덮치는 의지야말로 淨化의 유일한 증거라고 이야기한 단테의....."
"스타티우스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에게 한 말이지. 연옥의 몇 번째인가의 회랑에서."
"하지만 정말 의지의 문제일지 어떨지."
옛 처남은 스스로 말을 꺼내 놓고선 그답지 않게 말을 흐렸다. (중략)
"자네에게도,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있나?"
"눈앞에 있는데."
"그런 진지한 얼굴로 말하지 말아 줘. 흠칫하잖아....."
고다는 그다지 정확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아래에 계속)-410-422쪽

(위에서 계속)
새벽 3시 무렵, 옛 처남은 먼저 침대에 드러누웠다. 툇마루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다는 스물한 살의 가을에 그 침대에서 기요코를 처음 안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가노 유스케가 사법시험의 3차 구두시험을 위해 도쿄에 남고, 2차에서 떨어진 고다는 기요코가 권하는 대로 이 집에서 연휴를 보냈다. 기요코와 둘만 있게 된 첫 기회였다. 고다가 원하고 기요코가 응하는 형태로 서로를 안았을 때, 둘이서 이제부터 시작될 미래의 정신적 修羅場을 예감한 것은 각자의 입장에서 유스케를 따돌린 것에 대한 통한의 마음과 전혀 상관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남매의 인연이나 남자 사이의 어떤 종류의 친밀한 인연을 단숨에 와해시켰던 그 침대에서, 자신이 설 곳이 없어진 점이나 질투 같은 것과 홀로 타협해 오던 남자가 지금은 느긋하게 팔다리를 내던지고 잠들어 있다. 그리고 그를 도다시 배신하며 이제는 기요코가 아닌 여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410-4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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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3-01-2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꿉친구에게 밀려 이번에는 출연이 적었던 가노 검사님의, 양보다 질로 승부하는 심야의 기모노 씬ㅋ.
 
마크스의 산 2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정다유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3월
품절


러시아워라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오전 7시, 도쿄 역 야마노테 선 플랫폼에는 부쩍 낮아진 가을 햇빛이 비쳤다. 한손에는 서류 가방, 한손에는 조간신문을 든 가노 유스케가 막 문을 연 가판대 옆에 서 있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이다. 가노는 고무 밑창의 스니커를 신은 발이 옆으로 다가오자 조간신문을 향하고 있던 눈길을 한 번 들어 올린 뒤 다시 신문으로 떨어뜨리며 말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
고다도 답하자 바로 가노가 말을 받았다.
(아래에 계속)-6-7쪽

(위에서 계속)
"이상한데. 왜 이런 식인 걸까?"
고다는 그건 이쪽이 할 말이라고 생각하며 "아아"라고만 답했다. 둘 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 하며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공사 현안을 함께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렇게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맞댄 뒤 하는 첫마디가 ‘좋은 아침’이라니, 그리고 그 말에 이어진 것은 당면한 일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생각해보면 이 남자와는 옛날부터 추상적인 논의는 산더미처럼 했으면서도 일상 대화는 대체로 빈약하고 어색했다. 그것을 기요코는 항상 비웃었다. 게다가 길지 않은 결혼 생활의 끝이 보일 무렵에는 말없는 남자 둘이 모였으니 입 다물고 산이라도 탈 수밖에 없겠네 하고 냉랭하게 조소했다.-6-7쪽

다마카와를 포함한 각 서에서의 보고가 끊기자 고다는 한두 시간 선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동안 계속 뭔가가 가슴에 걸린 듯이 숨이 박혔다. 꿈속의 얕은 안개는 헤쳐도 헤쳐도 그대로였다. 어떤 순간에는 조사 중인 인간을 죽게 한 특수부 검사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고 있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전 4시 무렵, 다마카와 서의 정찰에서 돌아온 마타사부로가 문밖에서 날아든 냉기와 함께 코앞을 지나가고, 이어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 목소리가 고다의 귀와 잠을 한동안 침식한 탓이었다.
아무래도 사에키는 자살로 결정난 것 같아, 하고 마타사부로의 목소리는 말했다. "어젯밤은 감시하고 잇던 오지 사람들에게 지검의 강제 진입 지시가 있었던 것 같아. 경찰이 발이 닳도록 사에키를 찾고 있는 동안 지검 놈들은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사에키가 자살할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는 거야.
(아래에 계속)-138-140쪽

(위에서 계속)
그놈들은 오지에게 진입 이유도 말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실컷 경찰 수사를 방해해 놓고 사망자가 나오면 난 모른다는 얼굴은 놈들의 전형이지. 사에키건설은 몇 달 전부터 지검의 조사 대상이었다고 하는데 어차피 우리 쪽 사건에 자살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도망칠 작정이겠지. 어쩌면 아직 수사 착수 전이었던 사안이니까 검찰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하겠지. ....아, 주임님. 일어났어요? 주임님이 아는 사람 얘기가 아니에요. 혹시 몰라 하는 얘기지만."
고다는 깨어 있지는 않았다. 정확하게는 신경은 깨어 있었지만, 신체는 반쯤 잠든 채 꿈의 입구인가 출구에서 이 녀석을 때려눕혀 버릴까, 두 번 다시 입을 열지 못하도록 해줄까 하고 외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래에 계속)-138-140쪽

(위에서 계속)
지검에는 지검만의, 밖에서는 알지 못하는 내부 분쟁이 있다. 사에키의 가정부 여성이 사에키에게 ‘근간 수사 당국의 사정청취가 있을 거니까’ 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것은 특수부 내에서 가노 쪽 팀의 조사를 뭉개는 힘이 움직여 사에키를 궁지에 밀어 넣기 위한 정보가 고의로 유출되었다는 것이리라. 신경을 짓누르는 긴장과 압력을 받아가면서 특수부 검사는 계산기를 두들기고, 형사는 발이 닳도록 돌아다닌다. 어느 쪽이든 짓눌릴 때는 짓눌리고, 외부를 향해서 침묵하며 각자 자신의 흉중에 담아두는 것도 똑같다. 도망치는 것은 상층부고 현장 요원들이 대신 골탕을 먹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어이, 마타사부로. 내가 아는 사람이 어쨌다고?"
"듣고 계셨습니까. 지검 놈들이 너무 열 받게 해서요."
"한번 소개시켜 줄게. 이름은 가노다. 느긋하고 반듯한 괜찮은 남자야."
"그거 고맙군요."
마타사부로는 현장에 있던 10계의 데라시마 주임에게 받았다는 메모 한 장을 눈앞에 내려놓고 그대로 나가버렸다.-138-140쪽

형식적인 1과 과장의 지령이 끝난 후, 예상대로 충신 다케우치가 "그리고, 고다 경부보는 나중에 서장실로"라고 한마디 덧붙였다. 고다는 올 게 왔다고 생각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그때 아즈마의 손이 재빨리 팩스 용지 한 장을 내밀어 왔다. 방금 전 히몬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용지에 자동적으로 기록되는 발신원에 아카사카의 편의점 이름이 있는 팩스에는 대외비의 표시와 함께 ‘다이칸야마에 대해서’하고 손으로 쓴 짧은 제목이 있었다. 발신자는 도쿄변호사협회이고 수신자는 도쿄 지검 형사부장. 일자는 헤이세이 원년 7월 29일.

다이카야마 건, 지난 28일 경시청 시부야 서에서 송치된 피의자 미즈사와 히로유키에 대해서 귀청 담당자의 수사 방법이 부적절하고, 경미한 절도사건 및 초범임에도 불구하고 강도죄로 기소가 검토되고 있는 점에 대해 피해자 아사노 츠요시 씨의 인권침해라는 제기가 있었기에 본 협회는 즉각 선처하도록 요청드립니다.

(아래에 계속)-185-187쪽

(위에서 계속)
고다는 신중하게 쓰인 내용을 읽었다.
"즉, 피해자인 아사노 츠요시가 미즈사와의 기소를 부당하다고 신청했다는 겁니까, 이건....."
"그런 모양이야. 어쨌든 헤이세이 원년 다이칸야마의 사건에서도 위에서는 이런저런 압력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 아사노 츠요시도 교세이 대학 OB지? 다섯 번째 인물이 등장한 걸지도."
아즈마가 조용히 말했다.
아카사카의 편의점에서 팩스가 전송된 시각은 오후 2시 52분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고다는 경찰 내부에서 퍼진 신발 자국의 일치라는 소식이 그 단순한 사실 이상의 어떤 비밀과 이어져 순식간에 하지만 은밀히 가스미가세키로 흘러든 상황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들은 가노 유스케가 가지고 있던 정보를 이렇게 팩스로 흘린 상황을.
(아래에 계속)-185-187쪽

(위에서 계속)
"어쨌건 그것과 똑같은 팩스는 사쿠라다몬에도 도착했을 테니까."
아즈마는 전에 없이 의욕적인 어조로 그렇게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아즈마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것 같은 하야시지만 슬쪽 눈길을 건넸을 뿐 마찬가지로 먼저 나갔다. 과거에 체포했던 적이 있는 인간의 허실을 형사로서 꿰뚫어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중대한 범행을 용인했다는 사실에는 보신을 위한 변명은 통용되지 않는다. 또한 그런 변명을 허락할 만한 아즈마나 가노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처럼 없는 동정이나 援護의 손길이 슬며시 자신에게 뻗어 있는 것을 느끼자 고다는 새삼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또한 그 이상으로, 예전의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던 자신이 몸담고 있는 경찰 조직의 현실에 대한 불쾌감이 겹쳐졌다.-185-187쪽

5년 전, 28세의 가을 기요코가 집을 나갈 예정이었던 날도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 어떤 사건의 수사본부가 만들어져 있었다. 한밤중 본부에서 빠져 나와 근처의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갔을 때였다. 기요코는 이미 집을 나갔을 테지만 혹시 하는 생각이 들어 망설이기 시작하니 수화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부스 안에서 유리에 번지는 빛을 계속 바라만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가, 그날도 비가 내렸던가. 고다는 그렇게 사소한 사실을 다시 떠올렸던 것이지만 당시에는 있었을 심신의 진동은 따라오지 않아, 어쩐지 모르는 남자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아래에 계속)-224-245쪽

(위에서 계속)
잠깐 든 옛 생각 때문인지 고다의 기분은 조금 진정되었다. 고다는 전화카드를 다시 넣고 또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 요가의 마사공원 옆 공무원주택에 사는 특수부 검사는 아직 귀가하지 않아 부재중 전화가 응답했다. 이번에는 말을 골라 천천히 말했다.
"오늘, 팩스 봤다. 뭐랄까..... 뭐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처음에는 좀 곰곰이 생각했어.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은 게 분하다고 할까, 뭐 그렇다. 실은 오늘 사건에 변동이 있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조금 무섭다. 진실을 앞에 두고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내가 다른 사람 같아. 그래도 어쩌면 너는 훨씬 전부터 조직 속에서 이러한 공포를 경험해 왔던 걸까.....? 자네를 안 지도 오래 됐는데 이해가 부족했던 게 부끄럽다. ......밤중에 미안. 사람이 붐비고 있어서 오늘밤은 이만."-224-245쪽

아카바네다이 단지 38동에 도착했을 때, 1층 우편함에 흘러넘칠 터인 신문이 보이지 않아 전 처남이 또 들렀다 갔나 생각하면서 5층에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와는 다르게 가노가 안에 있었다. 스웨터에 바지라는 평상복으로 가노 유스케는 바닥에 흩어진 산더미 같은 책을 정리하고 있었고, 부엌 테이블에는 마시다만 위스키가 있었다.
"오늘은 관사의 가을 축제라서 말이야. 시끄러워서 있을 수 없어서 왔어."
그래, 오늘은 일요일이었던가 하고 떠올리면서 한낮에 전 처암의 모습을 이렇게 보는 것은 꽤나 오랜만이라고 고다는 멍하니 생각했다. 그건 그렇다 해도 일요일에 관사를 빠져나와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전 매부의 아파트라는 것은, 이 남자에게도 집은 집이 아니고, 생활은 생활이 아니다.
(아래에 계속)-390-394쪽

(위에서 계속)
똑같이 서른도 넘어서 남들만큼의 인생을 여전히 가지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자신과 기요코의 이혼에 있다는 것은 싫을 정도로 알면서,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태만함은 서로 마찬가지이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곤혹스러움도 서로 마찬가지였다.
"지난 번 자네가 남긴 부재중 전화를 들었어."
가노는 말했다.
"일이 힘들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는 거야, 아마도. 그건 이제 잊어줘. 그것보다 나는 지금부터 고후 행이야. 실은 범인이 기타다케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면 가노는 상황의 혹독함을 즉각 판단할 수 있을 터였다. 살짝 검사로서의 얼굴을 보였지만, "시간이 있다면 잠깐 좀 씻겠어? 바로 물 데우지"라는 말만 하고 욕실로 자취를 감췄다.
(아래에 계속)-390-394쪽

(위에서 계속)
그다지 서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서둘러봤자 어떻게 되지도 않았다. 고다는 식탁 의자에 잠깐 앉아서 품에 들어 있던 복사용지 뭉치를 테이블에 두었다. 욕실에서 돌아온 가노에게 "이거, 너도 흥미가 있을 거야. 읽어도 돼"하고 말했다.
가노는 입수 경위는 묻지 않고 노무라 히사시를 기타다케 산에 묻은 남자의 유서를 한동안 쳐다보다 읽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고다는 벽장에 잠들어 있던 배낭이나 방한구 상하, 우비, 아이젠 등을 준비한 뒤 부엌의 가노에게는 말을 걸지 않은 채 먼저 목욕을 했다. 어느 쪽이나 유달리 키가 큰 성인 남성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기에는 오래된 공단주택은 너무 좁아 지나치게 숨이 막히는 것을 오랜만에 느끼고 그게 새삼스럽게 갑자기 겸연쩍어진 탓도 있었다.
그러나 가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래에 계속)-390-394쪽

(위에서 계속)
(중략)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전 매부에게 넌지시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사건의 배경을 알려온 남자의 진의는 일관되게 진실을 추구하는 것에 있었다고 고다는 믿었다. 현장 형사와 비교도 되지 않는 파벌 투쟁 가운데에 몸을 두면서 직접적으로 사건과 관련이 없는 부서에서 어떻게 해서 개인의 양심이나 사회정의를 지킬까, 자신의 직업과 인생을 지킬까 가노는 가노 나름대로 고군분투했던 것이라고. 그리고 그건 그렇지만 이미 각자 학생 시절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다른 지붕 아래 있으면서 이렇게 지금도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 한 남자를 보고 있는 자신은 ‘마크스’ 다섯 사람과 어디가 다른 걸가도 생각했다.
(아래에 계속)-390-394쪽

(위에서 계속)
고다가 목욕을 끝내고 나왔을 때, 가노는 부엌 마루귀틀에 앉아서 전 매부의 등산화를 닦고 있었다. 오랫동안 신지 않아서 가죽에 조금 곰팡이가 피어 있었던 놈이었다. 가노는 거기에 크림을 문질러 바르면서 등을 돌린 채, "산이란 건 뭘까...."하고 한 마디 중얼거렸다.
"그러게. 뭘까....."
고다는 똑같은 말로 답하면서 문득 자신의 가슴을 스치고 가는 게 있다는 걸 깨닫고서는, 잠깐 동안이지만 전 처남의 등을 보고 있었다. 결혼 생활이 점점 위태로워졌을 무렵, 사건의 계속으로 좀처럼 돌아갈 수 없었던 집에 가끔 돌아가면 기요코가 똑같이 마루귀틀에 앉아 남편의 신발을 닦고 있었다. 기요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고다도 기요코에게 건넬 말이 없었다. 그때, 그 한마디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지 한순간 생각하다 결국 서로 입에 담으면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그런 어떤 덩어리였던 것만 다시 떠올리고 나서, 고다는 전 처남의 어깨를 두드리며 "어이!" 하고 말을 걸고 있었다.
(아래에 계속)-390-394쪽

(위에서 계속)
"정월까지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까, 한잔 하자고."
"허어. 등산 약속 기억하고 있었나."
"잊을 리가 없잖아."
오후 3시 가노가 마시던 스카치위스키를 가볍게 한 잔씩 비웠다.
"무리만은 하지 마."
가노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방을 나섰을 때, 고다는 이유 없이 자신의 심신이 조금 진정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390-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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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3-01-28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렁각시 유스케 씨.... 사랑스러워라. ㅋㅋㅋ
 
마크스의 산 1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정다유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3월
품절


공장 정문 앞에는 경찰차 한 대가 서 있었고 젊은 남자 한 사람이 보닛에 엉덩이를 걸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남자는 하얀색 반팔 노타이셔츠에 하얀색 스니커라는 시원해 보이는 가벼운 옷차림이어서 설마 동업자는 아니겠지 하고 생각한 그 때, 스모그 낀 하늘을 보며 담배를 피던 그는 손끝으로 담뱃재를 가볍게 튕겨 날려 보내자마자 "어이" 하고 사노 일행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여기는 출입금지다."
(아래에 계속)-87-88쪽

(위에서 계속)
남자는 돌연 기계가 말했나싶을 정도의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간사이 사투리인가? 사노는 귀에 닿은 그 어두컴컴한 울림에 순간 거슬리는 기분을 느끼며 노타이셔츠를 입은 목소리의 주인공 쪽으로 새삼스레 시선을 고정시켰다.
나이는 서른 전후이리라. 아직 청년의 냄새가 남아 있는 청량한 얼굴 생김에 비해 무기질적인 돌을 연상시키는 안광도, 그 목소리도 항간의 동년배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노는 30년도 더 전에 경찰학교에서 몸에 밴 어떤 냄새, 어떤 견고함, 어떤 고양을 순간적으로 되살리면서 역시 동업자인가 하고 생각을 달리했지만 이미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간 지 오래인 무언가의 기백에 약간 압도당하는 동시에 위화감도 느꼈다.-87-88쪽

그날 밤에는 나흘분의 신문과 함께 밀봉된 편지가 한 통 도착해 있었다. 벌써 몇 년간이나 가까운 친척도 없는 일개 형사 앞으로 사적인 편지를 보낼 법한 기특한 인간은 한 사람밖에 없어, 보낸 사람의 이름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편지를 보낸 가노 유스케(加納祐介)는 대학 시절부터 지기였고 한때 그의 친누이와 결혼해 호적상으로 처남이 되었다가 그 후 고다가 이혼함으로써 다시 타인이 된 인물이다. 그러나 그간의 경위도, 다양하게 뒤틀린 감정도 최근에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어 1년에 몇 번 상대가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이유도 지금에 와서는 깊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는 거의 2년마다 지방 전근을 되풀이하는 검사이며 지금은 교토에 있다. 지난달인가 그 전달에는 ‘사가 두부’ 운운하며 속세에서 벗어난 유유자적한 이야기를 써 보냈다.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할까 하는 생각에 편지를 열면서 고다는 자신이 변한 것일까 하고 한순간 생각했다. 몇 년 전이었으면 열어 보지도 않고 버렸을 텐데 최근에는 내용에 따라서는 답장을 쓰자는 마음마저 드는 것은 스스로도 이상한 기분이었다.
(아래에 계속)-113-115쪽

(위에서 계속)
그날, 전 처남의 편지는 ‘허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게을러서 그만 연하장을 보내지 못하고 실례했네’라는 달필로 적힌 첫머리에 ‘얼마 전 두개골에서 복원된 얼굴 사진이란 것을 볼 기회가 있었어’라고 이어졌다.

...그것은 실로 추악했어.애당초 흙으로 돌아간 육체의 복원이라는 것은 몽타주 사진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 생생한 요철이 있는 점토로 된 얼굴을 눈앞에 두면 누구든 스스로의 知力에 위기감을 느낄 거야. 눈앞에 형태를 이루고 있을 뿐, 닮았지만 다른 물건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여겨지게 되는 것은 그야말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혜의 한계라는 것이지. 그러나 항간에는 더욱 추악한 이야기가 있네. 내가 들은 바로는 그 청년이 행방불명이 된 직후 이쪽 공안 당국은 청년이 미나미알프스 방면으로 나갔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거야.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에 대해서 각 관련 경찰에 연락은 고사하고 본격적인 수사도 행해지지 않았네.
(아래에 계속)-113-115쪽

(위에서 계속)
이것은 명백히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혜의 한계 안의 이야기야. 사정 여하에 관계없이 이와 같은 일은 일어나서는 안 돼. 어찌되었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의 흰머리는 또다시 느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자네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신년 벽두부터 뭔 소리를 써 보내는 거냐’ 하는 생각을 하며 고다는 가노의 젊디젊은 미모를 떠올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국가기관인 검찰관의 원칙이 가노라는 남자 안에서는 명실상부하게 존속하고 있다. 그 결과가 흰머리지만 앞으로 십여 년만 참으면 그것도 아름다운 ‘로맨스그레이’가 될 것이리라. 똑같이 사생활은 최저지만, 아직 자네 쪽이 낫다고 생각하며 고다는 나흘 분의 위스키를 한꺼번에 들이킨 김에 서툰 답변을 적었다.-113-115쪽

오전 6시 20분. 창밖의 흐릿하게 밝은 하늘에서는 내리다 말다 하는 비가 내렸다. ‘발자국의 흙이나 부착물은 떠내려갔겠군.’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고다 유이치로(合田雄一郎)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일어섰다. 33세 6개월. 일단 일을 시작하면 마치 경찰관 직무집행법이 옷을 입고 걸어 다니는 것 같은 규율과 인내의 덩어리가 된다. 관할서와 본청을 오가면서 수사를 해온 지 10년, 수사 1과 230명 중 누구보다도 말수와 잡음이 적으면서, 누구보다도 단단한 시선을 지닌, 그늘 속에 숨은 돌 중 하나였다.-149쪽

차 안에서 사건 이야기는 할 수 없는 탓에 고다는 수첩에 휘갈겨 적은 피해자의 이름, 나이, 조직의 이름을 양 옆의 부하에게 보여주었다. 올해 30세의 순사부장 모리 요시타카(森義孝)는 지병인 아토피가 그날 아침에도 기승을 부리는 듯한 무뚝뚝한 얼굴로 ‘알 리가 없죠’하고 답했고 7계의 베테랑 부실장인 히고 가즈미(肥後和巳) 순사부장도 무뚝뚝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건 그렇고 당신들 오늘 아침엔 어떤 일이야. 우연히 만났나?"
"역에서. 아침부터 음침하게 등을 웅크리고 걷는 놈이 있어서 얼굴을 봤더니 오란이어서..."
히고는 자기 일은 제쳐두고 실실 웃어보였다.
(아래에 계속)-151-153쪽

(위에서 계속)
‘란마루’라는 별명을 가진 모리를 7계 사람들은 농담 삼아 ‘오란’ 등으로 부르곤 했는데, 부임한 지 5년 만에 순사부장 승진 시험에 합격한 그의 우수함을 동료들이 싫어한다기보다는 마치 너무나 간단해 거푸집에조차 담을 수 없는 쓸모없는 콘크리트를 처치 곤란해 한다는 것이 진심에 가까웠다. 그런 돌출된 자존심과 강렬한 권력 지향을 뱃속에 감추고 매일 아침 고다 다음으로 일찍 출근하는 모습은 히고를 비롯한 본청의 고참들에게는 절호의 먹잇감이었지만 전혀 신경 쓰는 기색도 없는 것이 바로 모리라는 남자였다.
(아래에 계속)-151-153쪽

(위에서 계속)
한편 히고 쪽은 모습을 드러낸 시간이 유난히 빨랐던 것을 보면 그날 아침도 다마의 자택이 아닌 오기쿠보의 애인 집에서 출근한 것이 틀림없었다. ‘어차피 뻔히 아시면서’ 하는 두꺼운 낯짝에 자조를 섞으며 히고는 고다가 담배를 물자 재빨리 자신의 라이터 불을 내밀었다. 고다가 거절하자 살짝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43세가 되는 히고에게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린 경부보에게 아첨을 빼트리지 않는 세상 물정에 밝은 샐러리맨 근성과 좋든 나쁘든 고참다운 오만함이 동거하고 있어, 꽤나 얕볼 수 없는 다마의 늙은 너구리였다.-151-153쪽

그 혼란 옆으로 드디어 7계의 동료 중 한 명인 아리사와 사부로(有沢三郎) 순사부장이 뛰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일단 사건이 일어났다 하면 밤중이라 해도 하치오지의 집에서 지갑 사정도 돌아보지 않은 채 택시를 타고 어떻게든 현장에 첫 번째나 두 번째로 달려온다. 그 모습이 문자 그대로 질풍같은 느낌이어서 바람의 마타사부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35세. 수사1과 제일 미남자라고 거리낌 없이 자칭하는 두꺼운 얼굴과 탁월한 말솜씨, 뛰어난 수완, 젊음과 체력 등이 있는 만큼 어떤 의미로는 히고 이상의 강자였다.-161-162쪽

그 사이 시체가 있는 천막에는 7계의 나머지 사람들이 차례차례 달려오고 있었다. 7계 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제대로 된 차림을 한, 유도 7단의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조용조용 움직이는 히로타 요시노리(広田義則) 순사부장. 올해 35세로 더스터코트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이 교양 시사 책 아니면 시부사와 다츠히코라는 기묘한 조합도 물론 그렇지만, 아키타 출신의 뽀얗고 탱탱한 피부를 놀린 ‘유키노조’라는 별명에는 개인적인 깊은 사정도 있었다.
(아래에 계속)-163-165쪽

(위에서 계속)
이어서 유일한 20대인 십자매 마츠오카 유즈루(松岡譲) 순사. 요즘 젊은 세대는 형사 생활을 3년이나 해도 볼도 전혀 패이지 않고 위도 망가지지 않는다. 붙임성도 많고 배려도 잊지 않으며 대답도 명량하게 한다. 금색 버튼이 달린 블레이저를 입고 짹짹 날아다니는 얼빠진 건강우량아는 모리 요시타카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고다 세대로서는 다루기 어려운 신인류였다.
(아래에 계속)-163-165쪽

(위에서 계속)
그리고 36세의 아즈마 테츠로(吾妻哲郎) 경부보. 통칭 ‘페코’라 한다. 그 이름처럼 밀키라는 과자 상자에 붙어 있는 인형 그림을 빼닮은 가히 두렵기까지 한 동안과는 대조적으로 도쿄대를 졸업한 복잡기괴하게 비틀린 두뇌는 1년 내내 그야말로 사방팔방으로 이채를 내뿜고 있었다. 학생이던 20세에 결혼을 해 21세에 아이를 낳았다. 사법시험보다 밤중에 기저귀를 가는 생활을 우선시하며 아내는 학업을 계속하게 하고 자신은 졸업과 동시에 생활이 안정된 공무원의 길을 선택했다고 하는데, 권력 중에서도 신체와 직결된 가학적인 희열로 가득한 경찰이라는 조직의 분위기가 의외로 본인과 맞았던 것은 틀림없었다. 그날 아침도 역시 무신경과 자신과잉의 상징 같은, 여전히 번들거리고 있는 비단벌레 색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벌서 아랫배가 나오기 시작한 자그마한 체구를 분주하게 흔들며 천막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예상대로 현장은 30초도 되지 않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아즈마의 독무대가 되었다.
(아래에 계속)-163-165쪽

(위에서 계속)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천히 살금살금 기척 없이 나타난 7계의 계장, 하야시 쇼조(林省三) 경부. (중략) 수사 1과에 있는 열여덟 명의 경부 중 최고령인 53세로 말단부터 기어 올라온 전형적인 형사다. 하지만 정년까지 이제 승진은 없다. 2년 전 위를 절제하고 3개월간 휴직해, 모두가 1과로 복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돌아온 터프함과 강운은 7계의 부적 같은 존재였지만 부적은 때로 몸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마는 법이다. 그만큼 존재감이 희미하고 목소리도 작은데다 흉중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잘 알수가 없다. 본명을 비튼 ‘모야시(콩나물)’라는 별명은 병에 걸리기 전부터 붙어 있었지만, 정말로 콩나물 같은 남자인지 어떤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에는 매일의 업무가 지나치게 많고 과격해, 그 별명의 진의를 찬찬히 헤아릴 만한 여유는 누구에게도 없었다.-163-165쪽

흔한 의문들을 생각한 것도 잠시, 마타사부로가 다시 살짝 ‘저기’ 하고 턱으로 가리킨 뒷문에서 한눈에 봐도 형사와는 행동거지가 다른 남자들 세 명이 나오는 게 보였다. 그중 가장 뒤에 있는 한 사람은 자신의 몸 하나를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무료한 모습으로 살짝 고개를 숙였고 키가 큰 몸을 새벽 바람에 표표히 나부끼고 있었다. 어라 싶었더니 그쪽도 느껴지는 게 있었는지 고다 쪽으로 시선을 향하자마자 씨익 웃어보였다. 그는 봄의 인사발령에 따라 도쿄 지검으로 옮겨온 가노 유스케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얼굴을 마주친 당혹감을 이렇게 먼저 한발 앞서 웃음으로 흘려보내고 마는 구석이 실로 노회한 전 손위처남다웠지만 고다는 당신까지 뭘 하러 왔냐고 무의식중에 소리를 낼 뻔 했다.
(아래에 계속)-244-247쪽

(위에서 계속)
즉시 눈치 빠른 마타사부로가 ‘호오, 지검에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하는 눈빛을 건넨다. 고다는 몸에 새겨져 있었을 철저한 공사 구분이라는 불문율이 한순간이라도 자신의 안에서 사라졌던 것에 남몰래 당황해하고 초조해 했다. 잰 걸음으로 등을 돌리고 사라지는 가노의 담담한 뒷모습은 전 매부의 당혹감 따윈 상관없다는 듯해, 검찰이 경찰 앞마당을 밟을 때는 이유가 있는 거라고 내뱉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것은 단순히 검사와 형사라는 유사하지만 다른 입장에서 오는 갈등인 걸까, 그렇지 않으면 학생 시절부터 이어진 개인적인 인간관계가 꼬이고 꼬인 끝에 오는 감정인 걸까. 고다는 잠시 생각하다 자신도 휙 등을 돌리고 ‘철수한다’ 하고 마타사부로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중략) 시발 열차가 출발하기 전의 인적이 없는 플랫폼에는 독특한 냄새가 있다. 고다는 오사카의 보잘것없는 외근경찰관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 중학 시절에는 공부를 하면서 신문배달을 했다.
(아래에 계속)-244-247쪽

(위에서 계속)
동트기 전의 거리를 자전거로 달리면서, 제방 위를 달리는 긴테쓰 전철의 시발 열차 불빛을 올려다보며 자신은 아버지처럼은 되지 않겠다고, 양복을 입고 전철로 출근하는 직업을 갖겠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술을 뒤집어쓰듯이 마셔댄 아버지가 재직 중에 간경변증으로 사망한 날, 밤을 샐 준비를 하기 위해서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베노 역에서 어머니와 둘이서 시발 열차를 기다리면서 이대로 어머니를 데리고 어딘가 멀리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 뒤 어머니의 고향인 도쿄로 이사한 지 15년, 예전에 시발 열차를 바라보던 때의 마음은 이미 어렴풋한 형태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코 안을 죄어오는 듯한 무언가의 냄새를 들이마시며, 잠깐 전 처남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기도 했다. 미토(水戶)의 유서 깊은 집안 출신으로, 좌절과는 인연이 없는 수재 남자와 우연히 대학 세미나에서 알게 되어 한때는 서로 처남, 매부까지 되었던 시간도, 정말로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모든 것이 몹시 불확실하다고 느꼈다.-244-247쪽

집이 있는 38동 5층에 다다르니 현관 문 손잡이에 ‘청소 당번’ 표찰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을 벗기고 혼자 사는 방의 불을 켜자 신문에 끼어오는 광고지 한 장이 부엌 테이블에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올 봄에 도쿄 지검으로 발령받은 이후, 항상 집을 비울 때 찾아와 대수롭지 않은 자료 정리나 필기를 위해 광고지를 사용하고, 그때마다 간단한 메모와 희미한 정발제의 냄새를 남기고 가는 남자가 그날 밤도 들렀다 간 것이다. 5년 전 고다가 가노 기요코(加納貴代子)와 이혼한 이해 거북한 마음도 있어 가노와의 사이도 소원해졌지만 굳이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현재의 관계를, 늘 방에 남기고 떠난 그 향기 하나가 조금 엉클어트린다. 그러한 가노도, 그에게 이렇게 여벌 열쇠를 건네준 자기 자신도 둘 다 뭔가 필요이상으로 은밀하다는 생각을 하며 고다는 메모를 대충 훑었다.
(아래에 계속)-269-274쪽

(위에서 계속)
유이치로,.
내 다리미가 불을 뿜어서 자네 것을 빌리러 왔어. 관사에서는 이런 생활도구를 빌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거든. 빌리는 김에 검은 넥타이도 하나 빌렸네.
눈치 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늘밤의 고 마쓰이 모씨의 장례식장에서 철야를 하고 내일은 본 장례식이 있이서 나는 하루 종일 아오야마 장례식장에 대기하고 있을 걸세. 고인과 관련 있는 부서만으로 200명 정도의 조문객이 온다고 해. 나는 장내 정리 담당이야.
어젯밤 오지 서를 찾아갔기에 사건에 대해서 다소의 이야기를 들었어. 내가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말해주게. 사족이지만 그저께 오랜만에 기요코가 전화를 했어. 보스턴의 물이 맞는다는 것 같아. 자네도 건강하다고 전했어.
가노 유스케
(아래에 계속)-269-274쪽

(위에서 계속)
(중략) 수첩을 칭겨 넣고 반짝반짝하게 닦인 바로 옆의 식탁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 옷을 갈아입으러 돌아왔을 때 자신이 내던졌을 신문이나 찻잔을 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하고 덧붙여 테이블을 닦고 간 남자는 걸레를 짜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기 시작하니 가노의 얼굴은 기요코와 겹쳐졌고 대학 시절부터의 남자 두 사람과 여자 한 사람의 미묘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했던 세월과 겹쳐졌다. 고다는 지난 세월과 달라진 지금의 모습에 스스로를 침울하게 만드는 탈력감과 함께 언제나처럼 정처 없는 기분에 이르렀다. ‘이미 헤어진 여자에 대한 집착은 없었지만, 한편으로 그 쌍둥이 오빠인 남자의 잔향을 자신의 거처에서 맡으면서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가노도 그렇지, 아무리 15년이나 된 친구라 해도 친여동생과 이혼한 남자의 집에 발걸음을 옮기다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어느 쪽이고 마치 상처가 낫는 것을 두려워하듯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으면서, 이해관계는 없지만 명확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래에 계속)-269-274쪽

(위에서 계속)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건지 모를, 별반 의미도 없는 다른 사람의 정발제 냄새 하나가 신경에 거슬렸다. 그리고 애달팠다.
그러나 봄 이후, 생각은 항상 거기서 멎었다. 고다는 술에서 깨기 위해 물을 마시고 하루의 끝 무렵에 속옷 한 장 차림으로 욕실에서 스니커를 빨았다. (중략) 말할 필요도 없이 장례식에는 피해자의 유족 일동, 직장 동료, 동창생, 친구 및 지인 등 거의 대부분의 연고자가 모인다. 법무성이나 검찰까지 재빨리 수사에 개입한 현 상황에서는 오지의 수사본부에서조차 접근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조문객 명부를 확인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일 장례식에서 자신은 장내 정리를 담당한다고 일부러 적어놓고 간 남자의 의도는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때마다 어떻게 해도 기요코와 하나가 되는 가노 유스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고다는 스니커를 닦던 손을 멈추었다. -269-274쪽

이케부쿠로 역을 나오니 눈은 비로 바뀌어 있었다. 요즘은 역 앞도 지하도도 정비되어 깨끗해졌지만 그래도 아직 이 주변에서는 어둠에 흩어지는 네온의 색이 혼탁하고 짙게 보였다. 메이지도리에 늘어선 영화관 옆 골목을 조금 배회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작은 재개봉관의 간판을 발견하고 지하로 내려가 입장권을 샀다. 제목도 들어본 적 없는 오래된 외국 영화의 스틸 사진이 동시상영 중이라며 붙어 있었다.
2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상영관 안에는 검은 머리가 기껏해야 대여섯 개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중에서 깊게 숙인 머리 하나를 발견하자마자 고다는 서둘러 뒷좌석에 앉아 앞좌석의 어깨를 흔들고 "어이" 하고 목소리를 죽여 말을 걸었다.
"이런 데서 자지마."
"아아, 왔어...."
가노 유스케는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우선 지갑부터 확인해."
"지갑은....." 하며 더스터코트 앞가슴을 만져본 가노는 느긋하게 대답했다.
"무사해."
(아래에 계속)-286-293쪽

(위에서 계속)
인적 없는 어둠에 무조건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암흑 속에 흩어져 있는 몇 개의 머리가 전부 소매치기나 치한으로 보이는 자신이 이상한 걸까. 옛날에 가노 남매와 함께 자주 왔던 영화관이었지만 이전에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스크린도 밝았고 상영물은 기요코가 좋아하는 코미디가 많았는데 지금 스크린에 비치고 있는 것은 모노크롬의 울적한 겨울 화면이었다.
"여기도 변했군."
가노는 태평하게 중얼거렸다.
"아아......"
"넥타이 고마웠어. 세탁해서 돌려줄게."
"장례식, 어땠어?"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은 슬퍼지지 않아서 곤란해."
그런 소리를 하며 앞좌석에 앉은 가노는 불쑥 장례식 식순을 인쇄한 카드를 뒤로 내밀었다. (중략) 가노는 참고만 하라고 말하더니 참석한 관료의 주된 면면들의 신분을 담담히 읊었다. 고다는 뒷좌석에서 재빨리 메모했다. "고인의 평판은 어떻지?"
(아래에 계속)-286-293쪽

(위에서 계속)
(중략) 고다는 어디까지나 고요한 가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옛날부터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반추하고는 하나하나 신중히 판단을 보류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짧은 한순간은 항상 일에 쫓기는 나날 속에 뚫린 공백이었다. 그러고 보면 가노 남매와 지낸 떠들썩한 세월들의 기저에 있던 것은 이처럼 조용하게 충족되어 가는 시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알면서도 무언가 여러 가지가 혼연일체가 되어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게 싫어 만나고 싶지 않은 남자인데 막상 일이 터지면 정보를 원하는 마음 하나로 다가가는 자신이 애달팠다. 혹은 한창 중요한 정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문득 탈선해 무턱대고 한 남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거나 하는 자신이.
(아래에 계속)-286-293쪽

(위에서 계속)
(중략) "마쓰이 코지가 등산을 했나..... 시체는 햇볕에 그을리지 않았는데."
"옛날 얘기겠지. 너도 그렇잖아. 지금은 뭐야 이 손은...."
가노는 자신의 자리 등받이에 올려 있는 고다의 손을 찌르며 미소 지었다. 그러는 가노의 손도 하얗다. 함께 산을 돌아다니며 새까매졌던 시절, 밤에 만난 대학 수위가 도둑으로 착각하기에 학생 수첩을 보여줬더니 사진과 얼굴이 다르다고 했던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였다.
"유이치로, 올 여름엔 산에 가지 않았나?"
"산은 무슨. 신주쿠와 우에노에서 외국끼리의 상해 사건이 다섯 건. 오봉 휴가도 못 갔다."
"아, 오사카 사투리..... 오래간만에 듣는걸."
"피곤해서 그렇겠지. 무심코 그만 나오고 말아."
"유이치로의 오사카 사투리, 좋아. 좀더 쓰라구."
"그만해, 멍청아."
(아래에 계속)-286-293쪽

(위에서 계속)
"책은 읽고 있어?"
"아아. 드문드문....."
"있잖아, 정월에는 호타카에 가지 않겠어? 둘이서......"
"호타카 어디....."
"기타가마 능선에서 야리가타케. 마에호키타 능선도 괜찮아."
가노는 스크린 쪽을 향한 얼굴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조금 톤이 높아진 그 목소리에서 살작 안색이 누그러진 것이 느껴졌다. 학생 시절부터 늘 1년에 몇 번은 가노와 둘이서 산에 올랐던 시간도 자신의 이혼과 함께 끝났고 두 번 다시 함께 걸을 일은 없으리라 고다는 생각했지만, 닫혀 있던 문을 또다시 가볍게 열어 보인 것은 이번에도 역시 가노 쪽이었다. 봄부터 넌지시 용의주도하게 기회를 살펴보고 있었던 건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 막 생각해낸 건지, 아무튼 이 남자는 자신의 벌거벗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자기 자신도 그것을 허용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은걸..... 기타가마라...." 하고 고다는 중얼거렸다.
"나는 3월에 올랐지. 눈이 단단하게 뭉쳐 있어 무너지지 않았어. 좋았다구."
"나는 2년 만인 걸..... 자일이 썩었겠어."
(아래에 계속)-286-293쪽

(위에서 계속)
"12월의 주말에 미나미알프스에서 워밍업을 하자구. 신년 휴가 꼭 받아."
"아아."
"그리고 참석자 방명록 말인데, 경찰은 최소한 유족과 교섭할 권리는 있어. 유족들에게는 여기저기서 매스컴이 야단법석 떨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놨을 거라 생각하지만, 내심은 복잡할 거야. 나라면 어떻게든 해서 조사해볼 거야."
"그럴 작정이야."
"조심해. 너무 깊게 들어가지는 말고."
"아아."
앞좌석에서 가노는 뒤를 향해 손만 내밀었다. 고다는 그것을 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졸지 마" 하고 말하자 "걱정 마" 하는 가노의 대답이 돌아왔다.
돌아가던 길에 고다는 문득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아까보다 별로 나아보이는 건 없었지만 개인 생활의 범주에 속한 한 남자와 만나는 짧은 한 때는, 분명 덮여 있던 뭔가가 하나 벗겨져가는 듯한 낯간지러운 기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286-293쪽

고다에게 ‘적색분자’라는 딱지가 붙은 것은 쇼와59년(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순사부장으로 승진해 경찰학교에서 소정의 훈련을 받기 위해 합숙하고 있던 어느날, 교관에게 호출당해 아내 기요코에게 원자력발전소 반대 운동에서 손을 떼게 하든지, 자네가 경찰을 그만두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말을 들었다. (중략)기요코는 쌍둥이 오빠 유스케와 이상주의의 정수를 나눠 가지고 태어난 듯한 그런 여자였는데, 그 두뇌는 오빠 이상으로 세속에 초연해 당시에는 도쿄대 이학부 연구실에서 양자론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였다. (중략)나중에 판명된 것이지만 기요코 본인은 원전반대운동에 관여한 사실이 없었다. 다만 같은 이학부에 있는 어떤 조교수가 과학적 신념에 의해 혁신계 노동단체가 주도하는 운동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조금씩 밝혀진 사태의 진상은 한마디로 그 연구자와 기요코의 불륜이었다. (중략) 사태는 결굮 기요코가 떠나는 형태로 수습되었다. 그 과정에서 고다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아래에 계속)-322-324쪽

(위에서 계속)
기요코는 서적 이외의 짐을 전부 남기고 집을 나갔고 이혼은 쇼와62년(1987년)에 성립되었다. 그 이후 고다에게는 경찰과 ‘적색분자’라는 딱지만에 남았다. 오빠인 가노 유스케도 쇼와60년 봄의 인사이동으로 오사카 지검에서 후쿠이로 전출당한 이후, 지방을 전전한 끝에 도쿄로 돌아오는데 7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본인은 한번도 언급하지는 않았고, 고다 앞으로 쓴 편지에는 그저 기요코를 책망하지 말아달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탁할 뿐이었다. 누가 잘못했던 것인지 무엇이 진짜 원인이었는지 하는 자문은 그렇게 해서 지금도 각자의 흉중에 간직된 채로 남아 있다. -322-324쪽

"그러고 보니 주임님도 산에 오르셨죠.... 산에 오르는 사람의 세계라는 건 어떻습니까. 좁습니까, 넓습니까?"
"글세......"
고다는 잠시 생각해 본다. 19세의 여름, 대학 도서관에서 알게 된 가노 유스케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산행. 그해 여름 호타카를 시작으로, 작년 여름 혼자서 종주한 오쿠치치부 산까지, 기요코와 이혼하기 전까지 여름도 겨울도 항상 가노와 둘이서 산을 오르던 나날에 대해서는 그저 유유저ㅏ적하게 세속에 대해 초연했던 그런 기억만이 남아 있지만, 그 세계는 좁았던가, 넓었던가? 혹은 가노 남매와 소원해지고 나서 혼자서 근방의 산을 걸었던 나날은 대체 닫혀 있었나, 열려 있었나?
"나는 산악부는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다른 스포츠와 달리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 그런 만큼 무언가 특별한 동료의식 같은 게 있다는 것은 느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말이야. 의외로 폐쇄된 좁은 세계일지도 모르겠군."
"저희들 같네요."
모리는 한마디하더니 허공을 향해서 가볍게 웃었다.-390-391쪽

택시를 잡을 수 있는 교차점까지 나왔을 때, 고다는 재빨리 왼쪽으로 다시 몇 걸음 나아가 발걸음을 멈췄다. 처음으로 사회부 기자라고 이름을 댄 그의 얼굴을 보았지만, 조용한 옛날 서생 풍의 얼굴은 본청 9층에 있는 칠사회 클럽에서는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담당은 어디십니까?"
"지검 쪽입니다. 맞다 맞다, 가노 유스케 검사님께는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벌레 하나 죽이지 못할 것 같은 단정한 얼굴이지만 마치 육법전서가 옷을 입고 걸어 다니는 것과 같은 검사님의 세밀함은 꽤나 시원시원하죠. 지금은 마침 국세청에서 고소를 한 어떤 법인의 회계처리 해석으로 분쟁 중입니다. 가노 검사님은 60개 이상이나 되는 관련 회사의 장부를 전부 보기 전까지는 기소에 신중해서 저희들 신문도 보류를 먹은 상황이어서요. ......자, 잠깐 걸을까요."
(아래에 계속)-406-414쪽

(위에서 계속)
서서 이야기하는 것은 눈에 띈다는 듯이 네고로라는 기자는 훌쩍 앞으로 걸어 나갔는데, 그 주의 깊게 살피는 행동은 지시하고 지시당하는 검찰 사회의 암투를 오랫동안 들여다 본 인간은 이렇게 된다는 견본 같았다. 한편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낯선 사람에게 전 처남의 이름을 들은 당혹스러움과 이 지검 출입기자에게 무언가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사이에서 일단은 망설이긴 했지만 결국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중략)
"그러고 보니 요즘, 어딘가에서 가노 검사님과 만나셨습니까?"
"아니오." 고다는 바로 답했다.
"그렇습니까. 가노 검사님은 경찰에 친척이 있으니까 유출은 그 부근일 거라고 하는 소리도 귀에 들어왔어요. 어디까지나 그런 소리도 있다는 것뿐이지만요. 본인께 그런 이야기를 하면, 자기라면 좀더 나은 이야기를 꾸며낼 거라고 웃으시지만요."
(아래에 계속)-406-414쪽

(위에서 계속)
(중략) 이케부쿠로의 영화관에서 가노 유스케가 한 수사 요원에게 건넨 장례식의 식순은 9일 밤의 시점에서는 분명 일종의 정보 유출이었다. 하지만 가노는 형설산악회라는 키워드가 가지고 있는 어떤 의미를 단순히 경찰 수사를 부당하게 방해하기 위해 유출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검의 일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정보 유출을 정보 유출로 견제해, 경찰에게 정보를 쥐어줌으로써 경찰 수사에 대한 부당한 압력을 배제하려 했을 뿐일 것이다. 그리고 가노는 당연히 오늘과 같은 사태에 이르게 한 흉한 煞이 그곳에 숨어 있는 것을 오늘까지 몰랐던 것이다. 새삼 그렇게 생각을 다시 하면서 고다는 "지금까지 하신 이야기는 마음에 담아두겠습니다." 하고만 대답해두었다.-406-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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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3-01-2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계 사람들 캐릭터 하나하나가 너무 좋다. 위키피디아에서 한자 찾아서 같이 적어 뒀다. 같은 한자문화권인데, 일본 소설들 번역할 거면, 이름 한자 정도는 좀 적어 놓으라고! -_-
제일 분위기 있는 이름은 역시 加納남매. 특히 오빠쪽이 너무 좋아서 <마크스의 산>과 <테리가키> 네 권을 뒤져가며 나오는 장면마다 열심히 타이핑했다. <레이디 조커>나오면 꼭 산다!

gothicromance 2013-03-29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타이핑 해주신거 잘 읽고 갑니다. 사실 저는 [리오우]를 읽고 다카무라 카오루 여사의 팬이 되었어요. 그래서 고다 3부작인 마크스의 산, 조시, 레디 죠커를 쏴라 이렇게 3권울 샀거든요. 마크스의 산을 읽고 있는데 7계 동료들의 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몰라서 정보를 찾다가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책에 한자 읽는 법이 안나와서요...;; 고다와 카노의 관계가 동성이라고는 하지만 뭔가 미묘하지 않습니까? ㅋㅋㅋ 이 두 사람의 관계 때문에 읽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리오우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mizuaki 2013-03-31 07:11   좋아요 0 | URL
오, 일본어로 <레이디 조커>를 읽으실 수 있는 능력자이시군요. 부럽습니다. 전 그저 번역본 나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카노와 코다의 관계는 제가 보기엔 '뭔가 미묘' 정도가 아닌 것 같아요. 누가 뭐래도 타카무라 선생님은 저와 같은 취향의 사람(그 뇌가 썩은 뭐라는...^^;;;)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요ㅋ. 제가 보는 커플링은 코다->카노. 카노 아저씨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저로서는 리버스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ㅋ.
관련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모르는 분의) 블로그에 요런 번역글도 하나 있었는데 괜찮으시면 읽어 주셔요. 덧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jiujiu.egloos.com/1824908
 
메타볼라 밀리언셀러 클럽 107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절판


"나는 나하에 오기 전까진 세계를 떠돌아 다녔어. 10년 가까이 제대로 된 직장도 주소도 없었지. 어느 나라에도 주민등록을 한 적이 없고, 세금도 내지 않았어. 힘든 일보다 즐거운 일이 많았지. 하지만 난 깨달았어. 결국 주민들은 그런 녀석들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쪽도 계속 떠돌아다니게 돼. 그러는 사이에 아아, 이건 여행이 아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거야. 여행이라는 건 돌아갈 곳이 있는 녀석들이 하는 일이잖아. 하지만 나는 어느 새 돌아갈 곳이 없는 진짜 방랑자가 되어 있었어.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내 담배는 옛날에 다 탔다. 나는 손가락에 든 꽁초를 쳐다보면서 가마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화가 나지 않게 돼. 어차피 언젠가는 헤어질 사람인데 어떠냐 하고 생각하면 화가 나지 않는 거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화가 나지 않게 돼. 왜?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렇잖아."
"부럽네요."
나는 무심결에 말했다. 가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계속)-222-223쪽

(앞에서 계속)
"응, 나도 편하다고 생각했어. 아, 이제 겨우 사는 게 편해졌다 하고. 하지만, 작년부터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
"어째서요?"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거든."
가마다는 그렇게 말하며 수줍게 웃었으나 나는 웃지 않았다. 조금도 웃기지 않았다.-22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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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3-01-06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내 얘기 같아서 섬뜩했다.
응, 나도 아무한테도 화가 안 나. 나 자신한테도 화가 안 나고.;;;;
그리고, 난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서 수렁으로 들어간 가마다처럼은 안 될래.
평생 방랑하면서 편하게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