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군도 1 열린책들 세계문학 258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김학수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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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짓을 하기에 앞서 인간은 먼저 그것을 선이라고 믿어야 하고 자기 행위의 합법성을 찾아야 한다.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중략) 셰익스피어의 악당들의 상상력과 정신력으로는 불과 열 사람 정도의 사람도 제대로 죽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이데올로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 그것은 사악한 일에 그럴듯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악인에게 필요한 장기간에 걸친 강인함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그 사회적인 이론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악행을 은폐하게끔 도와주고, 비난과 저주를 듣는 대신 칭찬과 존경을 듣도록 도와준다.
- P266

우리는 일부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억압할 권리를 가진다는 그 <관념 자체>를 공개적으로 탄핵할 의무가 있다.
- P272

파스첸꼬는 우리 감방에서 자유의 몸이 될 가망성이 전혀 없는 유일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활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의 어깨를 끌어안고 이렇게 말했다.
진리를 위해 <일어나서> 싸우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진리를 위해서는 형무소에 들어가 <앉아> 있어야지!
그러고는 나한테 자기가 좋아하는 옛 유형 시대의 노래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어두운 감방 속, 축축한 갱도에서 말없이 죽어 간다 해도 우리의 외침은 살아남은 세대 속에 메아리쳐 살아나리라!
나는 이 말을 믿는다! 그리고 이 글이 그의 믿음을 실현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 P305

물론 우리는 고개를 번쩍 쳐든다. 그러면 우리는 반사된 햇살이 아닌 진짜 태양을 본다. 아, 저 태양! 영원히 살아 있는 태양! 봄 구름 사이로 나타나는 황금빛 햇무리!
봄은 누구에게나 행복을 약속하지만 우리 수감자에겐 열 배나 더 큰 행복을 안겨 준다. 오, 4월의 하늘이여! 감옥살이 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총살형만은 면하게 될 모양이니까. 그 대신 나는 여기서 더욱더 슬기로운 인간이 되련다. 여기서 더 많은 것을 깨달으련다. 하늘이여, 나는 또 나 자신의 과오를 시정하련다. -물론 <그들>에 대한 과오가 아니다! 하늘이여! 너에 대한 과오를 말이다. 나는 여기서 나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나는 반드시 그것을 시정해 보이겠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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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무도에의 권유 - 발레에 새겨진 인간과 예술의 흔적들
이단비 지음 / 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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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다. 인터넷에서 조금씩 주워들어 왔던 발레 지식들이 이 책을 통해 체계를 가지고 정리되었다. 발레의 특징, 발레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정리해 주는 사이사이에 필자 자신의 경험을 적절하게 끼워 넣어서 생생하고 재미있다. 살짝 과도하게 감상적인 부분들도 있지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예쁜 일러스트들이 적절하게 사용되어 내용의 이해를 돕는 것도 좋았다. 

풀업이 잘 됐을 때 안정적인 를르베가 가능하고, 를르베가 제대로 된 후에야 비로소 회전을 비롯한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다. 발레는 똑바로, 제대로 서 있는 것에서 시작하는 춤이다.
- P70

정확한 풀업을 요구하는 춤은 발레 외에 어떤 것도 없다. 즉 풀업이 없다면 발레가 아니다. 풀업은 발레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 P72

타조, 독수리, 황새, 두루미도 두 발로 걷지만 이들은 척추의 방향이 수평, 가로로 되어 있다. 펭귄이 유일하게 인간처럼 척추가 수직이지만, 대신 허벅지 뼈가 수평이다. 동물들도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출 수 있지만 풀업은 가능하지 않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척추와 다리가 수직으로 되어 있어서 풀업을 할 수 있고 그 덕분에 발레의 테크닉이 발전할 수 있었다. 결국 발레는 신이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허락한 선물인 셈이다.
- P73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 중의 하나로 나는 발레를 배운 일을 꼽는다. 그건 풀업의 방법과 중요성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전문 무용수의 길을 걷는 경우는 좀 다른 이야기가 되지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발레를 배워보라고 권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몸이 풀업이 되었구나’라는 걸 아는 그 순간의 느낌은 짜릿하다. 풀업을 아는 것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세포 하나하나, 근육 하나하나를 느끼며 나의 신체를 내 뜻대로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다름없다.
- P77

휴가 기간인데도 다음 날 아침에 주섬주섬 연습복을 챙겨 발레단에 클래스를 하러 나왔다는 이야기를 무용수들에게 종종 듣는다. 아예 여행을 3박 4일 이상 가지 않는 무용수들도 있다. 가급적 빨리 발레 클래스에 복귀하기 위해서이다. 부득이 오래, 먼 지역으로 여행 갈 경우 현지 발래 클래스를 미리 체크해서 여행 중간중간 꾸준히 참여하고 온다. 그렇게 휴가 이후에 발레단에 복귀했을 때도 바로 어제 출근했던 사람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몸이 이미 만들어진 근육이나 몸의 선을 그렇게 오랫동안 가지고 있을 수 없다. 유효기간은 단 이틀. 이틀만 지나도 몸은 기억력을 상실한다. 발레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며칠만 쉬어도 풀업으로 다져진 몸이 흐물흐물해진다고 느낀다.
- P92

그런데 실제로 바지 없이 타이츠만 입고 무대에 등장했다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발레단에서 쫓겨난 사람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된, 1911년의 일이다. 그 사람은 ‘무용의 신’이라 불리는 바츨라프 니진스키(Vaslav Nijinsky)였다. 러시아로 귀화한 폴란드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의 주역이었다. 그 당시 남성 무용수들은 타이츠만 입고 무대에 오른 적이 없었다. 19세기 초반 파리오페라발레학교의 경우 남학생들이 무릎 길이의 헐렁한 바지를 입는 게 규정이었다. 그래서 엉덩이와 무릎의 움직임이나 근육의 변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던 발레 마스터들은 바지를 입지 않도록 끊임없이 정부요 요청했다. 당시에는 발레학교의 규정을 정할 때도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요청은 받아들여져서 연습 때 반바지를 입지 않게 됐지만 공연 때는 공처럼 부풀린 형태의 반바지를 입어야 하는 엄격한 규율이 있었다.
- P110

한 남성 무용수가 은퇴를 준비하면서 "이제 댄스벨트와도 안녕이구나"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해방감일까, 섭섭함일까, 무용수의 옷을 벗고 이제 다른 옷을 입어야 하는 시점이 언젠가는 온다. 몸은 시간이 지나면서 끊임없이 변하고, 늙어가고, 훈련으로 그 변화를 막을 수 없는 지점에 언젠가는 도달한다. 올해 했던 테크닉을 그다음 해에는 구사할 수 없다는 걸 직면하게 되고, 올해 내가 뛰어올랐던 점프의 높이가 그다음 해에는 더 낮아져서 점점 더 땅에 가까워지는 걸 겪는다. 발레는 훈련한 기간과 강도에 비해 찰나에 가까울 정도로 짧은 기간 무대 위에서 불꽃을 피우다가 사라지는 춤이다. (중략) 신이 부여한 신체조건과 예술적 감성이 인간의 노력과 만나 짧은 순간 불꽃을 일으킨 후,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발레 무용수의 길이다.
- P117

발레단은 오전에 클래스를 마치고 나면 공연 리허설에 들어가는데 자신이 공연에서 맡은 부분을 리허설하고 나면 퇴근이다. 전막 공연에서 본인이 등장하는 장면이 1막에만 있다면 1막 리허설을 마치면 퇴근이 가능하다. 그래서 캐스팅을 받지 못한 무용수는 오전 클래스만 하고 리허설도 없이 퇴근하게 된다. 다들 공연 연습을 하는데 혼자 매일 클래스만 하고 퇴근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런 경우가 많아지면 퇴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평생 발레만 바라보고 살아온 무용수에게 이런 일은 치명적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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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이론 -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 알마 인코그니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알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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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오스틴은 1989년 자동차 사고 이후에 "나는 여기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재빨리 받아들였다"라고 썼는데, 만일 이 문장이 사실일 뿐 아니라 그녀가 겪은 수용 과정 전부를 ‘오롯이 묘사’한 것이라면 어떨까? 어떤 불운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받아들이는 게 낫겠다고 말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더 이상의 내적 투쟁 없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는 멍청하거나 유치한 것일까? 어쩌면 천성적으로 지혜롭고 심오하고 마치 성자와 수도사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아닐까? (아래에 계속)
- P79

(위에서 계속)
내게 진짜 수수께끼는 이것이다. 그런 사람은 바보일까 도인일까, 둘 다일까, 둘 다 아닐까?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그런 사람이 매우 훌륭한 산문 회고록을 내놓지 못한다는 사실인 듯하다. 그 명백한 경험적 사실은 트레이시 오스틴의 실제 이력이 그토록 압도적이고 중요하면서도 그 이력에 대한 언어적 서술에서 생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최선의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소통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생각과 실천이 어떻게 다르고 실천과 존재가 어떻게 다른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이 사실은 최상급 운동선수의 자서전이 우리 독자에게 그토록 솔깃하면서도 그토록 실망스러운 이유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던질지도 모른다.
(아래에 계속)
- P79

(위에서 계속)
하지만 진실에 대한 표준운영지침(Standard Operating Procedure)이 으레 그렇듯 여기에는 잔인한 역설이 결부되어 있다. 그것은 선수들 같은 천상의 재능을 갖지 못한 구경꾼인 우리야말로 자신이 허락받지 못한 재능의 경험을 진정으로 보고 서술하고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잇는 유일한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역설이요, 운동 천재의 재능을 부여받고 발휘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자신의 재능에 대해 눈멀고 귀먹을 수박에 없다는 역설이다. 그들이 눈멀고 귀먹는 것은 그것이 재능의 대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재능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트레이시 오스틴이 내 가슴을 후벼판 사연
- P80

필리푸시스가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육군과 같다면 샘프러스는 이동하며 포위하는 해군에 가깝다. 정치로 따지면 필리푸시스는 과두정이어서 의지가 있고 그것을 관철하고자 하는 반면에 샘프러스는 민주정이어서 더 혼란스럽지만 더 인간적이다. 그의 진짜 임무는 자신의 의지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인 듯하다. 그나저나 아테네가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했다는 사실을 기억 못하는 사람이 많다. 30년이 걸렸지만, 스파르타가 결국 아테네를 짓밟았다. 한편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애초에 시작된 것은 아테네가 해상 무역에 끼어든 스파르타 해상 동맹을 괴롭혔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아테네의 말쑥한 호인 이미지는 약간 과장된 것이다. 이 모든 고통의 발단은 처음부터 상업이었다.
-유에스 오픈의 민주주의와 상업주의
- P171

군중과 줄과 바가지와 기다림에 대한 뉴요커의 인내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척 인상적이다. 그들은 공기가 없는 곳에 오랫동안 다들 조용시 서 있을 수 있으며 그들의 눈에서는 禪명상과 (불행한 것이 분명하지만 결코 불평하지 않는) 임상적 우울이 뉴욕 특유의 방식으로 조합된 표정을 볼 수 있다.
-유에스 오픈의 민주주의와 상업주의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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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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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영화는 기본적으로 목적론적이다. ‘관객을 깨우’거나 우리를 좀 더 ‘자각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이런 식의 목적은 쉽게 허세, 독선, 그리고 거들먹거리는 개소리로 타락할 수 있으나 목적 자체는 원대하고 고결하다.)
(아래에 계속) - P145

(위에서 계속)
상업 영화는 관객을 가르치거나 일깨우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상업 영화의 목적은 ‘여흥을 제공하는’ 데 있다. 이것은 대체로 관객에게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을 주고 관객의 실제 인생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더 일관적이고 더 매혹적이고 매력적이며 전반적으로 더 재미있는 인생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다양한 환상을 제공한다는 의미다. 상업 영화의 목적은 사람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극히 편안한 잠과 달콤한 꿈을 제공함으로써 그 경험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유혹, 돈과 환상의 거래가 상업 영화의 본질적인 목적이다. 예술 영화의 목적은 대체로 좀 더 학구적이거나 미적이며 대개 해석에 노력을 기울여야 이해할 수 있으므로 예술 영화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돈을 내고 노력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린치, 정신머리를 유지하다
- P145

‘직업 여행기’를 설명하자면 일단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이 진짜로 가볼 수 없는 장소와 문화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픽션을 읽었다는 점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기능은 오늘날의 여객기, TV 등 덕분에 사라지다시피 했다. 반면 현대 기술이 만들어낸 직업의 극단적인 전문화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종사하고 잇는 전문 분야 외의 분야에 대해 잘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픽션의 ‘관광’ 기능은 이제 독자에게 다양한 학문과 전문 분야의 실무 영역으로 극화된 접근권을 주는 쪽으로 작용한다.
-수학과 수학 멜로 드라마
- P229

좋은 작가는 그 자체로 좋은 독자라는 믿음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추천사와 예술학 석사 과정의 바탕이 되는 추론으로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으며 경험적으로 거짓이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64

글을 쓸 때 픽션은 더 겁이 나지만 논픽션은 더 어렵다. 논픽션은 현실에 기반하고 있고 오늘날 느껴지는 현실은 압도적으로, 회로가 터질 정도로 거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반면 픽션은 無에서 나온다. 그런데, 말하자면, 사실 두 장르 모두 겁이 난다. 둘 다 심연 위에 걸친 줄을 타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심연이 다르다. 픽션의 심연은 침묵, 허무다. 반면 논픽션의 심연은 ‘완전 소음’, 즉 모든 개별 사물과 경험의 들끓는 잡음, 그리고 무엇을 선택적으로 돌보고 표현하고 연결할지 어떻게 왜 할지 등에 대한 무한한 선택의 완전한 자유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65

‘편파성’은 물론 처음부터 언급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용어다. 호튼 미플린 출판사는 아마도 주춤할 것이며 아무리 안심시키려는 맥락이라도 이 용어가 객원 편집자 서문에 언급되지 않는 편을 선호할 것이다. 안심시키고자 이런 식의 수사법을 시도하는 것은 시도 자체를 무효로 만들 수 있다. (말하자면 베이비시터 일을 구하기 위해 개인 구직 광고를 내면서 하단에 ‘걱정할 거 없음! 소아성애자 아님!이라고 넣는 것이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67

모두다 영리한 글이며 유려하게 썼다. 그러나 이 글들이 나에게 가장 큰 가치가 있는 이유는 특별한 정직성을 가지고 사실을 다루기 때문이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79

우파, 신좌파 무엇이 되었든 그 도그마의 매력과 심리는 동일하다. 혼란스럽거나 매몰될 것 같은 기분, 무식한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미 알고 있으며 무엇을 더 학습하든 알고 있는 것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도그마에 이런 식으로 발 맞추는 행위는 내가 말하는 피할 수 없는 의존과는 다르다. 아니, 오히려 가장 극단적이고 겁을 먹은 형태의 의존이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78

이 객원 편집자의 서문에서 충분히 논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으로 2007년 미국 최고 에세이 선정작을 고를 때 노골적으로 그리고 편파적으로 선호한 에세이는 바로 반사적인 도그마를 약화시키는, 성실하고 전폭적으로 스스로 ‘결정자’가 되려고 시도하는 작품들이다. 공립학교에서 과학과 함께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고집하는 멍청한 근본주의자들이나 모든 진지한 기독교인이 근본주의자들처럼 멍청하다고 고집하는 냉소적인 유물론자들처럼 좁은 구멍에 맞지 않는 현실을 죄다 삭제해버리는 행위를 피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79

독자 여러분의 ‘결정자’가 생각하는 ‘최고’를 가장 솔직하고 편파적으로 정의한다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이 글들은 내 눈에 보이는 대로의 이 세상에서 내가 사유하고 살아가고 싶은 방식의 본보기, 거푸집이 아닌 본보기다.
-결정자가 된다는 것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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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 -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행복사회 시리즈
마르쿠스 베른센 지음, 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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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잘 읽히는 책. 책에 소개된 덴마크 교사들의 말에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고, 덴마크 교육을 보는 편역자의 시선에는 의문스러운 부분이 많다. 


한국과 덴마크의 가장 큰 차이는,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많이 희생하고,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어한다는 점인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덴마크의 공립학교 교사들은 부모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일부 부모들은 이런 교육 방식이 학생들의 공부와 성적을 소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자녀의 성적에 기대가 높은 부모들은 교사가 자기 아이에게 다른 재능을 개발하도록 권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탐탁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덴마크에서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곧 부모의 간섭을 일정 정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는 교사의 의도를 신뢰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공부만 하라고 압박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속도에 맞춰 자기 재능을 개발할 수 잇게 허락해야 한다.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공부를 하든 다른 활동을 하든 좋은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한 폭넓고 다양한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 P156

크로그는 "교사는 어떨 때 학생을 더 이끌어낼지, 어떨 때 잠시 놓아줄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어떤 학생이 학교생활에 정말 흥미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면 우선 그 학생과 상담을 진행한 뒤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학교생활에서 해야 할 일들을 잠시 면제시켜준다.
"어떤 학생이 아프거나 학교생활에 지쳐 있으면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줍니다. 수업 시간에 잠시 쉬라고 할 수도 잇고 집에 일찍 보낼 수도 있어요. 지쳐 보이는 학생에게는 수업 중간에라도 잠시 밖으로 나가서 맑은 공기룰 쐬고 오라고 합니다." - P175

"많이 힘들어하는 학생에게는 일단 잠을 충분히 자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학교 밖으로 나가서 본인이 흥미를 갖고 할 수 잇는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배려를 받더라도 일단 매일 아침 교실에 나오게 합니다. 매일 학교에 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교실 공동체에서 튕겨나가 혼자 고립되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중략)
쉬는 기간을 줘도 여전히 피곤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며 학교생활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크로그는 그 학생의 부모와 면담을 한 뒤 고강도의 처방을 한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회사, 자영업자, 단체와 제휴해서 학교생활에 지친 학생들에게 현장 체험을 시키는 것인데 덴마크의 많은 학교들이 이 방법을 활용한다. - P176

크로그가 일하고 잇는 초중등학교 스콜렌 베드 쇠에르네는 국회, 언론사, 슈퍼마켓, 스포츠용품점 등과 제휴를 맺고 학교생활에 지친 학생들에게 체험의 시간을 가젝 한다. 어떤 경우는 부모가 직접 자기 아이가 일할 곳을 찾기도 한다. (중략) 학생들은 몇 주간 ‘삶의 현장’을 체험하면서 자신의 학교생활을 되돌아볼 수도 있고, 교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 P176

아프셀리우스는 학기 초에 교과 진도를 나가지 않는다. 어떤 숙제도 내지 않는다. 우리가 왜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지,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실의 모든 학생들이 저마다 충분한 이유를 갖기 전까지는 수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 P33

아프셀리우스는 최근 몇 년간 주로 하급반을 맡아서 수업하고 있다. 오랫동안 아프셀리우스를 지켜본 교장 선생님이 그가 수학과 물리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판단해 특별히 부탁한 것이다. - P42

아프셀리우스는 자신감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학을 힘들어하는 고등학교 학생에게 초등학교 수준의 과제를 내주기도 한다. 아주 쉬운 문제라도 정답을 써보는 경험이 쌓이면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 P44

아프셀리우스의 교실에는 정반대의 학생들도 있다. 자신감이 충만한 것을 넘어 성취욕이 지나치게 높은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 중에는 자기 스스로를 필요 이상으로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학생은 아주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도 계속 자신을 압박해요. 나는 그런 학생에게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볼 것을 권합니다.. 그가 수학에서, 물리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알죠. 그러나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법도 배워야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만족할 줄 아는 법도 배워야 해요. 자기가 이룬 것에 대해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해하는 법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P44

사소한 일이라도 아이들이 교실 안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 것,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 이 두 가지는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 목표하는 지점입니다. - P45

선생님이 되려면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수학이 좋아서 수학 교사가 되었다면 학생들은 이를 알아챌 것이고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가 어떤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열심히 할 것이다.
가능할 때까지 그런 척이라도 하자. 가르칠 의지가 충분하지 않을 때라도 학생들에게 티내지 말고 흥미 있는 척 가르치자. 그렇게라도 노력하는 선생님을 보면 학생들도 무언가를 느끼게 될 것이고, 당신에게 보답을 해줄 것이다. - P47

호우키에르는 시험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학생에게는 시험을 치르게 한다. 또 반 학생들 가운데 머리가 좋은 서너 명에게는 서로 경쟁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풀어보게 한다. 그는 몇몇 학생들이 과학경시대회에 나가는 것을 돕기도 했는데, 그 중 두 명은 최근 전국대회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호우키에르는 이처럼 우수한 학생의 특별한 활동을 도와주지만 여기에도 원칙이 있다. 이들의 특ㅂㄹ한 활동이 다른 학생들의 활동을 발해하거나 상처를 줘선 안 된다.
- P63

울랄은 시험과 점수에 엄격하진 않다. 대신 그가 매우 엄격하게 지도하는 것이 있다. 바로 학생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관한 문제다. 어떤 학생도 친구를 놀리거나 조롱하는 행동이 허용되지 않는다.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의견을 말하면, 다른 친구들은 모두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용하게 경청해야 한다. - P75

진짜 무서운 게 뭘까요?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어느 날 아침에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경우가 아닐까요? 그 동안 부모, 학교, 사회가 만들어준 길을 그저 따라가기만 했다면 조만간 힘든 시기가 찾아올 겁니다.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할 수밖ㅇ 없어요. 스스로 자기 인생을 관장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연습은 일찍 할수록 좋습니다.
- P100

어떤 학생이 힘든 상태에 놓여 잇으면 페테르센은 우선 하나의 목표를 설정한다. 그 학생을 매일 아침 학교에 나오게 하는 것이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학교에 빠지기 시작하면 상황은 계속 나빠진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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