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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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재능이 넘치는 젊은이가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자신에게 걸맞는 부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기까지의 고생담. 저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무척 흥미진진하면서도 안타까우면서도 재미있게 표현할 만한 문학적 재능도 있는 덕분에, 몰입해서 즐겁게 읽었다. 

전면에 나서서 독자의 통속적인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저자의 인생 이야기이지만, 그 뒤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해 주면서, 이 책을 품위 있는 읽을 거리로 만들어 주는 것은 나무의 인생? 수생(樹生)? 이야기였다.역시 학자는 전공 이야기를 할 때가 제일 빛이 난다. 

과학은 나에게 모든 것이 처음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과학은 또 한때 벌어졌거나 존재했지만 이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주의 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는 것도 가르쳐줬다. - P49

병원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은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픈 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람. 아프지 않은 사람은 입을 다물고 도와야 한다. - P69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종족 보존을 위해 다섯 가지를 성취해야 한다. 성장하고, 번식하고, 재생하고, 자원을 비축하고, 자기방어를 하는 것. - P112

이상적인 현장 교육 실습은 약 일주일 정도의 기간 동안 날마다 새로운 토양을 연구 관찰한 다음 100마일 정도를 차로 이동해 다른 장소로 옮기는 프로그램이다. 5일 동안 500마일 정도를 이동해 다니고 나면 학생들이 지역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토양이 존재하는지를 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토양 작업에 꼭 필요한 깊은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약간 정신줄을 놓을 줄 아는 사고방식에도 노출이 된다. 현장실습이 끝날 즈음이면 학생들은 그 일과 사랑에 빠지거나 완전히 식상해져서, 전공과목을 선택하는 데 참고로 삼을 수 있다. - P159

국립과학재단은 순고생물학자들과 매년 30-40개 건을 계약한다. 각 계약의 평균 연구 기금은 16만5천달러다. (중략) 사실 16만5천달라도 막대한 돈이기는 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하지만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행히도 대학에서 내 월급을 1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지급한다. (수업이 없는 기간 동안, 즉 여름 내내 월급을 받는 교수는 흔치 않다.) 하지만 빌의 월급을 확보하는 일은 내게 달렸다.(중략) 과학 분야의 교수에게 무엇이 가장 걱정인지 물어보라. 길게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는 당신을 빤히 바로보면서 한마디로 답할 것이다. "돈이오." - P178

30억 년 동안 진행된 진화 과정에서 출현한 생물 중 단 한 종의 생물만이 이 모든 과정을 뒤집어 지구를 훨씬 덜 푸른 곳으로 만들 능력을 지녔다. 도시화는 식물들이 억 년 전에 고생 끝에 푸르게 만들었던 곳에서 식물의 흔적을 없애고 땅을 다시 딱딱하고 황폐한 곳으로 되돌리고 있다. - P255

우리 모두 일하며 평생을 보내지만 끝까지 하는 일에 정말로 통달하지도, 끝내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좀 비극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대신 우리의 목표는 세차게 흐르는 강물로 그가 던진 돌을 내가 딛고 서서 몸을 굽혀 바닥에서 또 하나의 돌을 집어서 좀더 멀리 던지고, 그 돌이 징검다리가 되어 신의 섭리에 의해 나와 인연이 있는 누군가가 내딛을 다음 발자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 P272

눈 속에 사는 식물들에게 겨울은 여행이다. 식물은 우리처럼 공간을 이동하면서 여행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건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견뎌내면서 시간을 통한 여행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은 특히 긴 여행이다. 나무들은 오지를 긴 시간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조언과 똑같은 조언을 따른다. 짐을 단단히 싸라는 조언말이다.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살아 있는 것에게 꼼짝 않고 한 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영하의 날씨 속에서 3개월을 견디라고 하는 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많은 종의 나무가 이런 일을 몇 억 년 이상 해내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 P274

빌에게 그가 혼자가 아니라고, 그리고 절대 앞으로도 혼자가 아닐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세상에는 그의 친구가 있다고, 그 친구들은 절대 빛이 바래거나 녹아 없어지지 않을, 피보다 더 진한 무엇인가로 그와 튼튼하게 묶여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빌이 알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숨을 쉬는 한 그가 배고프거나 춥거나 엄마 없는 아이처럼 살지는 않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두 손이 다 있지 않아도, 주거지가 불명확해도, 폐가 깨끗하지 않아도, 사회적 예절이 부족해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명랑한 성격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고.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된다 하더라도 내 첫 임무는 세상에 구덩이 하나를 파고 빌이 들어가서 괴팍한 자기 모습 그대로 안전하게 살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될 것이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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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시대 -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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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종교, 인간의 마음과 사회의 작동 방식에 대한 온갖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종합 선물세트 같은 책. 독창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소 부족한 느낌이지만, 해박한 이야기꾼과 함께하는 독서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꼈다. 

나는 우리가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Karl Jspers, 1883-1969)가 ‘축의 시대(Axial Age)‘라고 부른 시기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중략) 대략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에 세계의 네 지역에서 이후 계속해서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전통이 탄생했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가 그것이다. 축의 시대는 붓다, 소크라테스, 공자, 예레미아, "우파니샤드"의 신비주의자들, 맹자, 에우리피데스의 시대였다.
- P6

축의 시대의 영성(정신성, spirituality)을 처음 시도한 이들은 러시아 남부의 초원 지대에 산 목축민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아리아인’이라고 불렀다. 아리아인은 별도의 인종 집단이 아니었으며, 아리아인이라는 말은 인종적인 용어가 아니라 자부심의 표현으로서 ‘고귀하다’거나 ‘명예롭다’ 같은 의미였다. 아리아인은 공통의 문화를 지닌 부족들의 느슨한 네트워크였다. 이들이 아시아와 유럽의 몇 개 언어의 기초를 이루게 될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인도-유럽어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P23

하나라 이전에 중국을 통치하며 평원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들었던 시화 시대의 전설적 왕들에 관한 이야기는 남아 있다. 황제(黃帝)는 괴물과 싸워 해, 달, 별의 길을 바로잡았다. 신농(神農)을 발명했으며, 기원전 23세기에 지혜로운 두 임금 요(堯)와 순(舜)은 평화와 번영의 황금 시대를 열었다. 순의 시대에 큰 홍수가 일어나자 순은 토목을 책임지던 우(禹)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맡겼다. (중략) 우의 엄청난 노력 덕분에 백성은 벼와 기장을 재배할 수 있었다. 순은 이 치적에 큰 감명을 받아 우에게 자신의 뒤를 잇게 했다. 이렇게 해서 우는 하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
- P59

결국 학자들은 이집트 대탈출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대체로 합의를 보았다. 성경의 이야기는 기원전 13세기가 아니라, 이 텍스트들 대부분이 기록된 기원전 7세기나 기원전 6세기의 상황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중략) 이스라엘인이 사실 가나안 원주민이었다면 왜 자신들의 외지인이라고 주장했을까? (중략) 이 집단과 부족들은 계약에 의해 서로 묶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 모두 숙고 끝에 가나안의 오래된 도시 문화에 등을 돌리겠다는 용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진실로 외부인들이었으며, 주변부에서 산 경험은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외부 기원설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반(反) 가나안 논쟁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 P78

기원전 13세기의 위기는 낡은 신앙을 박살냈다. 그리스인은 자신들의 세계가 붕괴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그 트라우마가 그들을 바꾸어 놓았다. (중략) 기원전 9세기에 이르면 그리스 종교는 염세적이고 음산하게 변한다. 그 종교의 신들은 위험하고 잔인하고 자의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스인은 눈부시게 찬란한 문명에 이르렀지만, 결코 비극의 감각을 잃지 않았으며, 이것이 그들이 축의 시대에 종교적으로 가장 크게 기여한 점으로 꼽히게 되었다.
- P101

야훼는 전사신이었다. 그는 농업이나 다산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따라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풍년을 보장받으려고 당연하게 바알과 아나타의 고대 제의를 거행했다. 바알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의 예언자들은 야훼만 섬기고 싶어했으며, 야훼가 그의 민족이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 P117

시온 신앙에서 예루살렘은 ‘가난한 자’의 도시였다. 그러나 가난은 물질적 궁핍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난’의 반대말은 ‘부유함’이 아니라 ‘오만’이다.
- P177

기원전 8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전은 작고 독립적인 도시국가 폴리스의 창조였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자치의 기술을 배웠다. (중략) 폴리스는 평등한 사회였다. 아주 이른 시기부터 농부들은 오래된 귀족에게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굴종적인 역할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노예와 여자를 제외한 모두가 시민이 될 수 있었다. 폴리스는 호전적이고 남성적인 국가였다. (중략)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알 수 있듯이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 귀족들에게 대중 연설은 군사적 위용만큼이나 중요했다.
- P181

"일리아스"는 죽음에 관한 시다. 등장인물은 죽이거나 죽임을 당한다는 강박에 지배당한다. 이야기는 무자비하게 불가피한 소멸을 향해 움직여 간다. 파트로클로스가 죽고, 헥토르가 죽고, 아킬레우스도 죽고, 아름다운 도시 트로이도 죽는다.
- P191

모든 그리스 신에게는 어둡고 위험한 측면이 있었다. 누구도 전적으로 선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누구도 도덕성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역설을 회피하거나 세계의 어떤 부분도 부정하지 않고 함께 삶의 풍요로운 다양성과 복잡성을 표현했다. 그리스인은 새로운 종교 형식을 개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과거의 믿음에 만족했다. 이 믿음은 축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700년 동안 살아남았다.
- P200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와는 다른 종류의 시인이었으며, 위기를 평가할 만한 완벽한 위치에 있었다. 그는 전사 귀족 출신이 아니라 보이오티아의 농부였으며, 동방의 많은 새로운 사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가 소아시아에서 그리스 본토로 이주해서인지 헤시오도스는 어떤 면에서는 그리스의 영웅적 전통보다는 근동, 후르리, 히타이트의 신화에 더 친근감을 느꼈다. 헤시오도스는 물론 자신을 그리스의 음유 시인으로 여겼으며, 심지어 시로 상을 탄 적도 있었다. 그는 영웅적 공식을 사용하는 데 서툴렀으며, 시도 노래로 부르기보다는 글로 썼을지 모른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로 시를 쓰고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단 첫 그리스 시인이었다. 어떤 면에서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적 음유 시인보다는 헤브라이의 예언자에 더 가까웠다. 그는 아모스처럼 ‘양을 치다가’ 처음으로 신이 보내준 영감이 자신을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 P241

경전의 정통성이라는 관념을 앞장서 제기한 "신명기" 저자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도입하려고 물려받은 텍스트를 이용했다. 그들은 기원전 9세기의 언약 법전의 낡은 법을 다시 썼다. 민간의 도살, 중앙의 성전, 종교력과 관련된 새로운 법을 뒷받침하려고 구절을 집어넣고 단어를 바꾸었던 것이다. 그들은 낡은 법, 구전되는 전설, 신앙 관습으로부터 방해나 구속을 받는 대신, 이런 전승을 창조적으로 이용했다. 과거의 전승은 절대적인 것이아니었다. "신명기" 저자들은 과거의 전승을 현재 상황에 빛을 던져줄 수 있는 자원으로 보았다.
- P279

고전적인 요가는 오늘날 서구에서 가르치는 요가와 많이 달랐다. 요가는 에어로빅 운동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긴장을 풀거나 과도한 불안을 누르거나 자기 삶에 편안함을 느끼도록 돕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요가는 에고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수행자에게 정상적인 의식과 더불어 그 의식의 잘못과 미망까지 없애버리고, 대신 푸루샤 발견의 환희를 채우도록 가르치는 가혹한 수련법이었다.
- P333

‘요가’라는 말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멍에를 맨다’는 뜻이다. 이 말은 베다 시대 아리아인이 습격 전에 전차를 끌 짐승을 매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하던 말이었다. 전사들은 요가의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데바와 같아, 늘 움직이고 항상 전투적인 활동에 참여했다. 반면 게으른 아수라들은 집에 머물렀다. 그러나 기원적 6세기가 되자 새로운 요가의 남자들은 내적 공간 정복에 나섰다. 그들은 전쟁을 하는 대신 비폭력에 헌신했다. 요가는 우리가 겪는 많은 고통의 근본 원인인 무의식적 정신에 대한 습격이나 다름없었다.
- P334

요가 수행자들의 성취에 놀라 약간 기가 죽은 뒤에 공자를 보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그가 제시하는 도는 제대로만 이해하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친절하고 차분하고 다정한 공자는 결코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 긴 강연이나 설교도 없었다. 설사 제자들과 의견이 다르다 해도, 대개 제자들의 관점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는 요 임금이나 순 임금처럼 성스러운 영감을 받은 현자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계시나 전망이 없었다. 그의 유일한 장점은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學而不厭 誨人不倦)."라는 것이었다.
- P349

축의 시대 중국의 다른 철학자들은 중국의 많은 문제에 더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그들이 늘 공자만큼 야심이 컸던 것은 아니다. 공자는 법과 질서 이상의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인간의 존엄한, 고귀함, 신성함을 원했으며, 이것은 서(恕)라는 덕을 얻으려고 매일 노력할 때만 얻을 수 있음을 알았다. 실로 대담한 계획이었다. 공자는 사람들에게 강압 대신 고양된 인간성의 힘을 신뢰할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자기 중심주의를 버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공자의 도를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한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삶을 바꾼다는 것을 알았다.
- P359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 시민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 500인회는 한 달에 세 번 모였기 때문에 일반 농부나 상인은 500인회에서 일하는 동안 자기 시간의 10분의 1 정도를 정치에 바쳐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열의를 잃지 않았으며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기원전 5세기에 중간 계급은 회의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아테네에서 가장 지성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실험은 시민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고 동기 부여를 받기만 하면, 정부가 야만적인 힘에 의존할 필요가 없으며, 오래된 제도를 합리적인 방법으로 개혁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 P376

살라미스 해전은 그리스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무너가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 태어났다. 그리스인은 훈련받은 대로 이성을 활용하여 엄청난 제국을 물리쳤다. 만일 아테네 시민이 오랜 세월에 걸쳐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이성의 힘으로 감정을 제어하는 훈련을 하지 않았다면, 테미스토클레스는 결코 아테네 시민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전략은 축의 시대의 여러 가치를 보여주었다. 그리스인은 과거에 등을 돌리고, 실험적인 길에 나서야 했다. 그의 계획은 자기 희생을 요구했다. 중무장 보병의 밀집 대형은 그리스인의 정체성에서 핵심이었지만, 살라미스에서 그들은 이 ‘자아’를 버리고, 영웅적 전통에 도전하여 페르시아가 자신들의 도시와 성소를 파괴하는 것을 허용해야 했다.
- P383

무엇보다도 비극은 고난을 무대에 올려놓았다. 비극은 관객에게 삶이 두카라는 것, 고통스럽고, 불만스럽고, 비틀린 것임을 잊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등 기원전 5세기의 비극 작가들은 폴리스보다 고통받는 개인을 앞세우고, 그 사람의 고통을 분석하고, 관객이 그에게 공감하는 것을 도움으로써 축의 시대 영성의 핵심에 이르렀다.
- P386

안티고네는 여동생 이스메네처럼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고통을 손에 쥐고 말 그대로 무덤 안으로 "외로운 자부심 속에서 걸어 들어간다." 소포클레스는 폴리스를 향해 깨달음의 꿈이 착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은 툭별한 문화적, 지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압도적인 고통에 직면해 있다. (중략) 그들은 안티고네처럼 비극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노력을 할 만큼 한 뒤에는 당당하게, 용기를 내어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소포클레스는 이것이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암시한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깨달음의 꿈이 죽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손에 쥘 수 있는 현실이 되어 가는 중이었다.
- P395

이스라엘에서는 축의 시대가 끝이 나고 있었다. 기원전 5세기 후반 예루살렘은 페르시에 제국의 눈에 띄지도 않는 모퉁이에 있는 망가진 작은 도시였다. 위대한 변화는 보통 변화와 발전의 선두에 선 지역에서 일어났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제국의 힘 때문에 큰 고난을 겪었지만, 이 제국들은 더 넓은 지평과 더 큰 세계를 보게 해 주었다. 이스라엘의 축의 시대는 이 지역의 수도인 바빌론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추방을 당했다가 옐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이제 세계사의 중심에 있기는커녕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서 살았다.
- P419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전국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중국 역사에서 결정적인 이행기였다. 기원전 453년 세 가문이 晉의 제후에게 대항하여 일어나서, 진의 영토에 韓, 魏, 趙의 세 나라를 만들었다. (중략) 주요한 경쟁자들로는 우선 남쪽의 楚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반만 중국인이었다. 秦은 서쪽 山西에 자리잡은 거칠고 호전적이 국가였다. 齊는 부유한 해양 왕국이었다. 새로 생긴 한, 위, 조는 3晉이라고 불렸다. 燕은 북부 초원 지대 근처에 있었다.
- P454

전국시대에 묵자는 전반적으로 공자보다 더 숭배받았다.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공포와 폭력에 관해 직접 발언했기 때문이다. 묵자는 중국 전체가 전쟁에 동원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인간들이 곧 지상에서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인간들이 이기심과 탐욕을 억제하지 않으면 서로 파괴할 것이다. 그들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감정적인 동일시가 아니라, 적이라도 나와 똑같은 요구, 욕망, 공포를 갖고 있을 수 있다는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이해에 기초한 가없는 공감을 게발하는 것이었다.
- P466

"내가 이 모든 굴레로부터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부패하지 않는 최고의 자유를 찾기 시작한다고 생각해보라." 고타마는 이런 행복한 해방을 니르바나(불어서 끄다. 필리어로는 닙바나 한자로는 열반涅槃)라고 불렀다. 그를 묶고 있는 열정과 욕망이 불처럼 꺼질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P468

니르바나는 각 사람의 내적 존재 안에서 발견되며, 완전히 자연스러운 상태다. 니르바나는 삶에 의미를 주는 고요한 중심이다. 이 내부의 고요한 곳과 접촉이 끊어진 사람들은 무너져버릴 수 있다. 그러나 이 고요한 오아시스에 다가가게 되면, 더는 서로 갈등하는 공포와 욕망에 내몰리지 않고 어떤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힘은 이기심을 넘어서는 데서, 올바르게 중심을 잡고 있는 데서 온다.
- P478

기원전 3세기 중반이 되자 모두들 또 하나의 신비한 통치 교본 이야기를 했다. 이 책은 곧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한비 같은 법가들이 이 새로운 텍스트에 공감했다. "도덕경"은 원래 개인이 아니라 작은 나라의 제후들을 위해 쓴 것임에도 서구에서는 개인의 수양을 위한 인기 있는 고저이 되었다. 우리는 사실 노자라고 불리는 이 책을 쓴 저자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 P578

노자는 우리가 축의 시대 중국에서 만나는 마지가 현자이다. (중략) 노자는 맹자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시대의 공포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비한 경향을 가진 통치자에게 끌릴 것이라는 일종의 메시아적 희망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전국시대의 폭력을 끝장내고 제국을 통일한 것은 도자의 현자가 아니라 秦이라는 법가의 나라였다. 이 놀라운 성공은 군사적 힘에 의존하지 않으면 왕권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처럼 보였다. 이로써 일종의 평화가 찾아오기는 했지만, 도덕성, 자비, 비폭력을 향한 축의 시대의 희망에는 조종이 울렸다.
- P588

쾌락은 호색과 자기 방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타락시아(ataraxia, 고통으로부터의 해방)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모든 정신적 혼란을 피했다. 폴리스 생활은 워낙 긴장되고 예측불가능했기 때문에 자산이 있는 사람들은 공무에서 물러나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평화로운 삶을 누려야 했다. 불운한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변덕스러운 신들에 대한 미신적인 믿음을 비롯하여 번민을 일으키는 모든 것을 피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죽을 운명이 마음의 독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했다. (중략) 죽음을 걱정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올바른 이해는 무한한 시간을 보태주는 것이 아니라 불멸을 향한 욕망을 없애줌으로써 유한한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 P596

서양에서는 사람들이 과학과 로고스를 향해 모여들었으며, 인도나 중국의 현자들에 비해 영적 야망이 크지 않았다. 헬레니즘 철학자들은 내부에서 초월적 평화의 영역을 발견하려고 영웅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고요한 생활에 만족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정신의 직관적 능력을 훈련하는 대신 과학적 로고스에 의지했다. 서양은 신비한 깨달음을 얻는 대신 세속적인 계몽에 더 흥분했다. 서양의 과학적 소질은 결국 세계를 바꾸며, 16세기의 과학 혁명은 새로운 축의 시대를 출범시켰다. 이것은 인류에게 큰 혜택을 주지만,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정신에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제2의 축의 시대의 영웅들은 붓다, 소크라테스, 공자가 아니라 뉴턴,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 P602

축의 시대의 영적 혁명은 혼란, 이주, 정복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하나의 제국이 망하고 다른 제국이 일어서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중국에서 축의 시대는 주 왕조의 붕괴와 더불어 마침내 시작되었으며 진나라가 전국시대를 통일하면서 끝을 맺었다. 인도이 축의 시대는 하라파 문명이 해체된 후에 일어나 마우리아 제국과 더불어 끝을 맺었다. 그리스의 변화는 미케네 왕국과 마케도니아 제국 사이에 이루어졌다. (중략) 유대인마저도 조국의 붕괴와 그에 뒤이은 추방이라는 트라우마로 인해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 시작해야만 하는 무시무시한 자유를 얻게 되면서 축의 시대로 밀려 들어갔다.
- P623

기독교는 유대인이 되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자 했던 서기 1세기 운동 가운데 하나로서 시작되었다. 기독교는 서기 30년경 로마인에게 십자가형을 당한 갈릴리의 한 신앙 요법사의 삶과 죽음이 중심이 되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 나사렛 예수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유대인 메시아이며, 그가 곧 영광 속에 다시 돌아와 지상에 신의 왕국을 열 것이라고 믿었다. (중략) 예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 의도가 없었으며 뿌리 깊은 유대교도였다. 복음에 기록된 그의 많은 말은 바리사이파의 가르침과 비슷했다. (중략) 기독교를 이방인의 종교로 만든 사람은 최초의 기독교 저술가 바울로였다.
- P647

축의 시대의 모든 종교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높은 이상에 맞추어 살지 못했다. 이 모든 종교에서 사람들은 배타성, 잔혹성, 미신, 심지어 잔혹 행위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러나 축의 시대 종교들은 그 핵심에서 자비, 존중, 보편적 관심이라는 이상을 공유한다. 이 시대 현자들은 모두 우리 시대와 다를 바 없는 폭력적 사회에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타고난 인간적 에너지를 활용하여 이 공격에 맞서는 영적 기술을 창조했다.
- P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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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축의 전환 - 새로운 부와 힘을 탄생시킬 8가지 거대한 물결
마우로 기옌 지음, 우진하 옮김 / 리더스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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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에 세계는 어떻게 변화할까에 대한 경영대학원 교수의 간략 브리핑. 정보 통신 기술들이 더 발달해서 일자리가 줄어들 거고, 기존의 잘 사는 나라에서는 중산층이 줄어들 거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저개발 국가들이 발전하면서 도시화가 가속화되고 중산층 시장이 커질 거고, 여성들과 노인들이 지금보다 더 부유해질 거란다.


그렇구나, 그렇겠네... 하면서, 별 감흥 없이 읽었다. 대학교 때 교양으로 경영학 원론을 들을 때도 느꼈지만, 이 분야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뭔가 좀 얄팍하다. 현실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들을 긍정적으로 수용한 다음,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에 대한 낙관적인 얘기로 달려가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노년층 인구가 청년층 인구보다 많아지고,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할 것이다. 아시아의 중산층 시장은 미국과 유럽을 합한 것보다 커질 것이다. 또한 우리는 공장 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산업용 로봇, 인간들의 두뇌보다 더 많은 컴퓨터, 인간들의 눈보다 더 많은 감지 장치, 그리고 국가들의 수보다 다양한 통화에 둘러싸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2030년의 세계다.
- P10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과장되어 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밀레니얼 세대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그리 빠르게 성장하는 소비자층이 아니다. 실제로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는 세대는 따로 있다. (중략) 지금 이들은 전 세계 자산의 최소한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에는 비중이 80퍼센트 이상이다. 이들은 바로 60세 이상의 세대다. 2030년이 되면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가 35억 명에 달할 것이다.
- P70

유럽과 미국에서 중산층이 붕괴하는 원인은 단지 사람들이 세계화나 자동화 때문에 좋은 직장을 잃고 있어서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가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젊은 세대가 중산층으로 들어가는 길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OECD가 멕시코와 미국, 그리고 몇몇 유럽 국가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2018년에 진행한 한 연구의 결론이다. "이전 세대들이 새로운 세대들에 비해 노동 시장의 변화나 저소득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 붐 세대 이후 중간 정도의 수입이 있는 계층은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 줄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30세 전후의 밀레니얼 세대 중 60퍼센트가 중산층인 반면, 베이비 붐 세대의 70퍼센트 가까이는 30세 초반부터 지금까지 중산층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정말 우려되는 점은 자녀가 생기는 순간 그 가정은 중산층에 진입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 P138

런던 정경대학교 교수 폴 돌란Paul Dolan은 미국인들의 행복에 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인생을 시간에 따라 추적하면서 좋은 자료들을 얻곤 한다. 이제는 뭔가 다른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당신이 남성이라면 결혼하는 게 좋을 것이다. 여성이라면 결혼에 신경 쓰지 마라." (중략) 자신이 추적한 자료들을 근거로 돌란 교수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가장 행복하고 건강한 집단은 한 번도 결혼하지 않고 자녀도 없는 여성들이다."
- P165

OECD는 2030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인 40억 명이 심각한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하는데, 특히 도시들이 대단히 빠르게 성장하는 동아시아, 남아시아, 중동 지방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 P210

훨씬 큰 차원에서 보면 잘못된 농업 방식 때문에 가장 심각한 물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전 세계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물의 70퍼센트가 농업용수이며 산업 용수가 20퍼센트, 그리고 가정용 용수가 약 10퍼센트를 차지한다.
- P213

기후변화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대규모 가뭄과 홍수를 일으키며 물의 순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에 지구온난화가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해 몇 가지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온 상승은 수증기가 증발한다는 의미인데, 강이나 호수를 채워 도시를 포함한 모든 지역 거주민들을 유익하게 하는 물들의 순환 방향을 바꾼다. 초목들의 변화도 빗물의 흐름을 바꾼다. 온난화는 빙하를 녹여 결국 사라지게 만들고, 강이나 하천으로 끊임없이 흘러들던 물줄기를 빼앗아 갈 것이다.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 P214

이 도시들은 이른바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토론토 대학교 교수이자 유명 저술가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과학자에서 공학 기술자와 건축가, 예술가, 디자이너에 이르는 전문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 P223

플로리다 교수는 자신이 제시한 성 소수자 지수Gay Index와 방랑자 지수Bohemian Index가 높은 도시가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용을 특히 남녀 성소수자들, 그리고 화가나 음악가처럼 자유분방한 방랑자 기질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한곳에 모을 수 있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 P224

중국에서는 국가 안보 기관이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얼굴 인식 기술로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까지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이른바 날카로운 눈의 감시를 뜻하는 쉐랑공청(雪亮工程, Sharp Eyes)의 목적은 사람의 행동을 바탕으로 사상을 점수 매기고 감시하는 데 있다.
- P242

영국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이러한 노동자들을 일컬어 "불안한 노동자 계층" 혹은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프레카리아트란 이탈리아어로 ‘불안정하다’는 뜻인 ‘프레카리오precario‘와 독일어로 ’노동 계급‘을 뜻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다.
- P285

우버와 에어비앤비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때로 폭력까지 써가며 강력하게 반발한다. 공유지의 비극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규제받지 않는 차량 공유 사업이 도로 이에서 더 큰 정체와 불편을 만들어낸다고 두려워한다. 혹은 택시 운전기사들에 비해 미숙한 일반인들이 사고를 일으키거나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미 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대중교통 체계가 관련 어플리케이션이나 사업 등과 경쟁하다가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 P302

나는 수평적 사고를 바탕으로 세 가지 주장을 제시하여 디지털 공유 경제 사업을 변호하려 한다. 첫째, 공유는 천연자원과 관련된 압박으로부터 우리가 벗어나도록 도울 수 있다. 예컨대 차량 공유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굳이 평소에 많은 차량을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도록 해준다.(중략) 둘째, 일반 사람들도 자신들의 삶에 가치를 더해주기 때문에 공유 경제에 기꺼이 참여하는 듯하다. (중략) 마지막 셋째이자 가장 중요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공유지의 비극이 사람들이 공유 자원에 무임승차할 때마다 일어나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 P303

노동 시장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미치는 영향은 6장에서 살펴본 자동화 만큼이나 거대할 것이다. 말 그대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계약법과 기록에 바탕한 자유 자본주의는 경제 및 금융 거래와 관련된 결산, 검증, 이행, 합의, 기록 관리 같은 다양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중간 역할을 해주는 수많은 일자리들을 만들어냈다.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누구든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분산화한 블록체인 기술은 중간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 의미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저 이들을 거치지 않고 일을 처리하게 만듦으로써 말이다. 높은 보수를 받는 일자리들이 몰려 있는 금융업 분야도 판도가 영원히 바뀔지 모른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스마트 계약은 변호사나 회계사의 업무마저 대신할 수 있다.
- P341

수평적 사고의 7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멀리 보기
2. 다양한 길 모색하기
3.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4. 막다른 상황 피하기
5.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낙관적으로 접근하기
6.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기
7. 흐름을 놓치지 않기
- P346

지나치게 직선적이거나 수직적이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 전통적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2030년의 도전들을 이겨낼 수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변화를 위한 가장 빠른 때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7가지 수평적 비결과 방식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기억하라.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우리가 아는 세상은 변하고 있으며 결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상은 변하고 있다. 그것도 영원히. 극작가 유진 오닐은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을 추구하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2030년을 기다리며 다가올 기회를 붙잡자.
-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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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여행 (양장) 아직도 가야 할 길
M.스캇 펙 지음, 조성훈 옮김 / 율리시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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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의 부유한 집안 출신. 판사인 아버지 밑에서 세속적인 자유주의적인 교육을 받음. 하버드 대학 졸업. 정신과 의사로 활동. 40대에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 종교와 영성에 대한 베스트셀러들을 여러 권 집필하고, 인기 있는 대중 강연자로 활동.


책 내용 중에 저자의 강의가 특히 미국 남부의 경건한 기독교 지역에서 인기가 많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 동네를 Bilble Belt라고 부른다는 것도 이 책에서 알았다.) 이성과 양심을 전통적 신앙과 조화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건한 기독교인들에게 그럴 듯하면서 듣기 좋은 해답을 주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예의가 바르고 교양이 있어서 읽기에 괴롭지는 않았고, 미국 문화를 구경한다는 점에서도 흥미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목마른 기독교인이 아닌 내 입장에서, 딱히 열심히 읽어야 할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서로 둘러앉은 채 인생이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고 항상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다. (중략) 성숙한 사람의 가장 큰 트징은 인생에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은 자신의 책임 - 심지어 기회 -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P23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죄나 결점을 밝히는 증거가 드러나거나 그러한 증거 때문에 궁지에 몰리면, 흔히 뭔가가 잘못되었으므로 자기 교정에 나서야 한다고 스스로 깨닫느다. 그런데 이러한 공식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거짓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중략) 이들을 이끄는 동기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든, 어떠한 증거가 이들의 죄나 결점을 드러내든, 언제나 스스로를 선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중략) 그들 대부분은 부적절하게 증거를 없애버리고 부당하게 다른 이들을 비난하면서 악을 저지른다. 여기서 비난은 재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 P45

낡은 사상이 사라지고 새롭고 더 좋은 사상이 발생하려면 이런 혼란의 시대를 거쳐야만 한다. 이런 시대에 산다는 것은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그것은 축복이다. 시대를 살면서 마음이 가난함을 느끼지만 새롭고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사실상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확신하는 사람들이 저질렀다. 스스로 혼란스럽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
- P113

이 자리에서 오레스테스를 변호한 아폴론 신은 이 모든 뒤틀린 일이 신들의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오레스테스는 이 사건에서 실질적으로 아무런 결정권도 없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오레스테스가 일어나 아폴론의 의견에 반대하며 말했다. "어머니를 살해한 것은 신들이 아니라 바로 저였습니다. 이 일을 저지른 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중략) 오레스테스의 말을 듣고 신들은 토론을 벌려 저주를 풀어주기로 결정했다. 퓨리스는 에우메니데스로 그 호칭이 변했는데, 이는 글자 그대로 ‘자비의 여신들’이라는 뜻이다. 그 후 복수의 여신들은 신랄하고 시끄럽고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대신에 지혜의 목소리를 냈다. 이 신화는 일종의 정신 질환이 매우 건강한 상태로 변화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이러한 변화는 자신과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진 대가라고 할 수 있다.
- P146

내 경험에 따르면,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상하게 오용한다. 실제로 ‘근본주의자’란 용어는 잘못 붙여진 이름이다. 그에 대한 적당한 용어는 ‘성서 전면 신봉자’ 정도가 딱 맞을 것이다. 이들은, 성경은 신성한 영감을 받은 신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신의 말씀이 그대로 전해져서 여원히 변치 않을 거라고 믿는다. 또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은 오직 자기들에게만 있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은 성경을 메마르게 만들 뿐이다.
- P149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숭배와 중독이 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약물 중독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 중독, 안전 중독도 있지 않은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비용을 따져보면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폐해가 가장 적은 편에 속한다.
- P188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정신과 치료를 그만두고 공동체 장려 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함ㄲ 일해왔다. "평화 만들기 The Different Drum"의 출간도 전적으로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 책에서는 공동체가 위기에 대처하면서 자연스럽게 발달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환자실의 대기실에 있는 낯선 사람들은 각자가 품었던 깊은 두려움과 기쁨을 정말이지 금방 공유할 수 있는데, 그 까닭은 가족이나 친지가 복도 건너편 중환자실에 있기 때문이다. (중략) 문제는 위기가 사라지면 공동체도 ㅎㅁ께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라져버린 위기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 P201

복음서가 전적으로 정확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떤 것은 분명히 첨가된 것 같고, 또 어떤 내용은 확실하게 유실된 것 같다. 예를 들면 예수의 유머 감각과 예수의 성에 관한 것이다. 예수의 성에 관한 문제는 일부러 배제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예수의 성은 다소 애매한 것 같기 때문이다. 예수는 창녀였을 수도 있는 막달라 마리아를 매우 좋아한 것 같고, ‘예수가 사랑한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사도 요한과 친했던 모습이 자주 묘사된다.
- P224

급진적인 페미니즘은 분명히 불쾌하고 평정심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무례하고 반사회적이며 때로는 어리석게 비춰지기도 했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가 상당수 포함된 청중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로 힘들었다. 진행하는 내내 성차별이 없는 용어를 사용하고 성차별과 싸우느라 진땀을 흘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 P276

사이비 종교의 10가지 특징
1. 카리스마를 지닌 단 한 명의 지도자를 숭배
2. 숭배받는 내부 집단
3. 비밀스러운 관리
4. 재정 은폐
5. 의존
6. 천편일률
7. 특수한 언어
9. 교조적인 교리
9. 이단
10. 속박된 하느님
- P295300

특정 단체를 평가해서 그 단체를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고 판단을 내릴 때 이 열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너 가지만 들어맞으면, 일단 의심해 볼 수 있다. 사이비 종교는 흔해서 아무 데고 널려 있으며 또한 수많은 기업도 사이비 종교와 같다는 걸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똑같이 입고 똑같이 보이게 하고 똑같이 행동하도록 사원들에게 엄청난 압력을 행사하는 IBM도 본질적으로 사이비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톨릭교회도 앞에서 제시한 기준에 대부분 들어맞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의 가톨릭교회가 사이비 종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960년대의 바티칸 제2공의회가 열리기 이전에는 사이비 종교였을 수도 있다.
- P300

우리는 배우자나 연인이 우리에게 신이 돼줬으면 하고 기대한다. 그들이 우리의 모든 욕구를 충족하고, 우리를 실현시키고, 우리에게 영원한 지상 낙원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 P313

신이 성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특히 유혹적인 존재라는 개념은 아마도 우리가 전통적으로 신에게 품어온 남성적 이미지와 어느 정도 부합할 것이다. 분명 신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남성과 관련시키는 사냥을 하는 데 있어서, 공격적으로 행동한다. (중략) 신은 믿기 어려울 만큼 우리를 사랑하며, 아무리 빨리 아무리 멀리 도망가더라도 우리를 소유하려 한다는 것이다.
- P322

지난 세대 동안, 지극히 단면적이고 거의 전적으로 물질주의적인 의료 모델과 함께하면서 정신 의학자들은 점점 더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간 형국이다. (중략) 나와 같은 정신 의학자들이 내가 제안한 역사적 태도의 변화를 경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정신뿐만 아니라 영혼이 싶은 곳에서 생각함으로써, 더 이상 자신의 영성에 당황해하지 않고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변화의 역할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정신 의학은 생화학적인 조정뿐만 아니라 적어도 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몇몇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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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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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수가 제한되어 있는 줄을 처음 알았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아서 계속.

이야기하는 자아는 과거의 고통이 무의미했음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미래에도 계속 고통을 겪는 쪽을 택한다. (중략) 이제 우리는 이야기하는 자아 역시 국가, 신, 돈과 마찬가지로 상상 속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우리들 각자는 저마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정교한 장치를 갖고 있는데, 그 장치는 경험의 대부분을 버리고, 고르고 고른 몇 가지 표본만 간직한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본 영화, 우리가 읽은 소설, 우리가 들은 연설, 우리가 음미한 몽상의 파편들과 뒤섞는다. 그런 다음에 그 뒤범벅 속에서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관한 일관되어 보이는 이야기를 짜낸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사랑하고 누구를 증오하고 무엇을 할지 알려준다. 심지어 이 이야기는 줄거리에 필요하다면 내 목숨까지 희생시킨다. (중략)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이야기일 뿐이다.
- P417

뇌의 생화학적 기제들이 한 순간의 경험을 일으키고, 그런 경험은 일어나는 순간 사라진다. 그런 다음 또 다른 순간적 경험들이 재빠르게 이어서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이런 순간적 경험들이 모두 더해져 지속되는 본질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끝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려 한다. 그런 경험들은 이 이야기 안에서 저마다 자기 자리를 갖고, 따라서 모든 경험이 지속되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아무리 설득력 있고 매력적일지라도 이 이야기는 결국 허구이다. 중세 십자군 전사들은 삶의 의미가 신과 천국에서 온다고 믿었고, 현대의 자유주의자들은 인생의 의미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둘 다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 P418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마도 ‘그 모든 잉여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을 더 잘할 수 있는 높은 지능의 비의식적 알고리즘이 생긴다면, 의식을 가진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 P435

대박을 터뜨리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쓸모없는 대중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아도 그들을 먹이고 부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무엇에 몰입하고 만족할까? 사람은 뭐라도 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미친다. 그들은 하루 종일 무엇을 할까? 약물과 컴퓨터 게임에서 한 가지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쓸모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3D 가상현실 세계에서 보낼 것이고, 그 세계는 바깥의 따분한 현실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정서적 몰입이 잘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인간의 생명과 경험이 신성하다고 믿는 자유주의적 신념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다. 환상의 세계에서 가짜 경험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쓸모없는 게으름뱅이들이 뭐가 신성한가?
- P447

인본주의는 노년이 지혜와 깨달음의 시기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인본주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노인은 몸은 비록 약하고 병에 걸렸어도 마음만은 빠릿빠릿하고 날카로우며, 80년간의 통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노인은 사리분별이 정확하고, 손자손녀와 그를 찾는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나 훌륭한 조언을 해준다. 하지만 21세기의 80대 노인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을 훨씬 잘 이해하게 된 덕분에, 의학은 우리의 마음과 ‘진정한 자아’가 해체되고 분해될 때까지 우리를 오래 살려둔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은 대체로 모니터, 컴퓨터, 펌프로 유지되는, 기능부전에 빠진 일군의 시스템들이다.
- P454

유럽 제국주의의 전성기에 스페인 정복자들과 상인들은 색깔 있는 구슬들을 주고 섬과 나라를 통째로 샀다. 21세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값진 자료는 아마 개인적 데이터베이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겨우 이메일 서비스와 웃긴 동영상을 제공받는 대가로 첨단 기술기업에 그 데이터를 넘기고 있다.
- P467

지금까지 인간의 마음과 경험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서구의Western 많이 배우고Educated 산업화되고Industrialis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회에 사는 사람들WEIRD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사실 이들은 인류를 대표하는 표본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간 마음에 대한 연구는 호모 사피엔스가 곧 호머 심슨이라고 가정했다.
- P485

설령 우리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든 인간집단을 연구한다 해도, 사피엔스가 지닌 마음의 스펙트럼 가운데 한정된 일부밖에는 다루지 못할 것이다. 요즘은 모든 인간이 근대의 수혜를 받고 있으며, 우리는 모두 하나의 지구촌을 이루는 구성원들이다. 칼라하리 사막의 수렵채집인들이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학생들보다 다소 전근대적이긴 할 테지만, 그렇다 해도 먼 과거에서 온 타임캡슐은 아니다. 그들 역시 그리스도교 선교사, 유럽 상인, 부유한 에코 투어리스트, 호기심 많은 인류학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전형적인 수렵채집인 무리는 스무 명의 사냥꾼, 스무 명의 채집인, 쉰 명의 인류학자로 구성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 P486

시스템은 다운그레이드된 사람들을 선호할 텐데 그것은 그런 사람들이 가지게 될 초인간의 특성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시스템을 방해하고 속도를 떨어뜨리는 성가신 성질을 갖고 있지 않아서이다. 모든 농부들이 알고 있듯이, 염소 무리에서 가장 골치 아픈 존재는 대개 가장 똑똑한 염소이다. 농업혁명 과정에서 동물의 마음 능력을 떨어뜨리는 일이 반드시 필요했던 이유가 이것이다. 기술 인본주의자들이 꿈꾸는 두 번째 인지혁명은 똑같은 일을 우리에게 할 것이다. 즉 그 어느 때보다 효과적으로 데이터를 전달하고 처리할 수 있지만, 집중하고 꿈꾸고 의심하지 못하는 인간 톱니를 생산할 것이다. 수백만 년 동안 우리는 성능이 향상된 침팬지로 살았다. 그리고 미래에는 특대형 개미가 될지도 모른다.
- P497

정치과학자들도 인간의 정치구조를 점점 데이터 처리 시스템으로 해석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처럼, 민주주의와 독재도 본질적으로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경쟁 매커니즘이다. 독재는 중앙 집중식 처리 방법을 사용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분산식 처리를 선호한다. 지난 몇십 년 동안 민주주의가 우위를 점한 것은 20세기 후반의 독특한 조건 아래에서 분산식 처리가 더 잘 작동했기 때문이다. 다른 조건에서는, 예컨대 고대 로마제국에 널리 퍼져 있던 조건에서는 중앙 집중식 처리가 유리했ㄷ. 로마 공화국이 무너지고 권력이 원로원과 평민회에서 한 명의 전제적 황제에게 넘어간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21세기에 데이터 처리 조건이 다시 바뀌면 민주주의가 몰락하거나 사라질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 P511

현재 기술은 너무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의회도 독재자들도 미처 다 처리할 수 없는 데이터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따라서 지금의 정치인들은 1세기 전의 정치인들보다 생각의 규모가 훨씬 작다. 그 결과 21세기 초에 정치는 장대한 비전을 잃었다. 정부는 단순히 행정부가 되었다. 정부는 나라를 운영할 뿐 이끌지 못한다. 교사들의 급여가 제때 지급되고 하수도가 넘치지 않게 할 뿐, 20년 뒤 나라가 어디로 갈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 어느 정도까지는 이것이 좋다. 20세기의 거대한 정치적 비전들이 우리를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대약진 운동으로 이끌었음을 생각하면, 근시안적인 관료들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신 같은 기술과 과대망상증적 정치의 결합은 재앙의 레시피나 다름없다.
- P515

하지만 권력 공백은 오래가지 않는다. 21세기에 전통적인 정치 구조들이 유의미한 비전을 생산하기에 충분할 만큼 빨리 데이터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새롭고 더 효율적인 구조들이 진화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그 새로운 구조들은 민주적인 것이든 독재적인 것이든, 이전의 어떤 정치제도와도 다를 것이다. 남은 질문은 누가 이 구조를 만들고 제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인류가 이 일을 맡지 못한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 P517

구태여 누가 나서서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특히 스무 살 이하라면 말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데이터 흐름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사생활, 자율, 개인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도 상관없다.
- P527

전통적인 종교는 당신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우주적 규모의 장대한 계획의 일부이고, 신은 매순간 당신을 지켜보며 당신의 생각과 감정에 신경 쓴다고 말했다. 이제 데이터교는 당신의 모든 말과 행동은 거대한 데이터 흐름의 일부이고, 알고리즘은 항상 당신을 지켜보며 당신이 행동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신경 쓴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매우 흡족해한다. 진정한 신자들은 데이터 흐름과 연결이 끊기는 것을 인생의 의미 자체를 잃는 일로 생각한다. 내 행동이나 경험을 아무도 모르고, 그것이 전 지구적 정보교류에 아무 기여도 하지 못한다면, 뭔가를 하고 경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P529

당신이 인도에 가서 코끼리를 볼 경우, 당신은 코끼리를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자문하지 않는다. 당신은 스마트폰을 꺼내 코끼리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뒤 2분마다 한 번씩 ‘좋아요’가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확인하느라 바쁠 것이다. 자기만의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것(이전 세대들이 흔히 했던 인본주의적 관습)은 요즘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완전히 쓸데없는 짓으로 보인다.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것을 왜 쓰는가? 새로운 모토는 이렇게 말한다.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하라. 업로드하면 공유하라."
- P530

로크, 흄, 볼테르 시대에 인본주의자들은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데이터교가 인본주의자들에게 그들이 한 대로 똑같이 돌려줄 차례이다.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인간 상상력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18세기에 인본주의는 신 중심적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신을 밀어냈다. 21세기에 데이터교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인간을 밀어낼 것이다.
- P534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가?" 데이터교가 묻는다. "그러면 산과 미술관은 잊어라.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봤는가?" (중략) "하루 24시간 혈압과 심박수를 측정해주는 웨어러블 생체측정 기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잇는가? 들어봤다니 다행이다. 그런 기기들 가운데 하나를 사서 착용하고 그것을 스마트폰과 연결해라. 또한 쇼핑하러 가거든 휴대용 카메라와 마이크를 사서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을 기록해 온라인에 올려라. 또 구글과 페이스북이 당신의 모든 이메일을 읽고 당신의 모든 채팅과 메시지를 보고, 당신의 모든 ‘좋아요’와 당신이 클릭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승인해라. 이 모든 것을 한다면, 만물인터넷의 위대한 알고리즘이 누구와 결혼하고,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전쟁을 해야 할지 말지 알려줄 것이다."
- P538

설령 데이터교가 착오이고 유기체는 단순히 알고리즘이 아니라 해도, 데이터교가 세계를 접수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이전의 많은 종교들도 사실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힘과 인기를 얻었다. 그리스도교와 공산주의가 할 있다면 데이터교는 왜 안 되는가? 데이터교는 현재 모든 과학 분과로 퍼지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종교보다 전망이 밝다. 통일된 과학 패러다임은 난공불락의 교의가 되기 쉽다.
- P540

만일 데이터교가 세계를 정복한다면 우리 인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처음에는 인본주의의 과제들인 건강, 행복, 힘의 추구가 가속화될 것이다. 데이터교는 이런 인본주의의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널리 퍼져나갈 것이다. 우리가 불멸, 행복, 신 같은 창조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뇌 용량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결국 알고리즘들이 우리 대신 그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권한이 인간에게서 알고리즘으로 옮겨가는 즉시 인본주의 과제들은 폐기될 것이다. 우리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버리고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을 채택하는 즉시 인간의 건강과 행복은 보잘것없는 문제처럼 보일 것이다. 훨씬 더 나은 모델들이 존재하는데 왜 한물간 데이터 처리 기계에 신경을 쓰는가?
- P541

과거에 검열은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21세기의 검열은 사람들에게 관계 없는 정보들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쟁점에 대해 조사하고 논쟁하느라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다. 고대에는 힘이 있다는 것은 곧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늘날 힘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 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혼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 우리는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 P543

우리가 생명이라는 실로 장대한 관점으로 본다면, 상호 관련된 다음의 세 과정 앞에서 다른 모든 문제와 상황들은 작게 보일 것이다.
1. 과학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교의로 수렴하고 있고, 이 교의에 따르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들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 P544

그리고 이 세 과정은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당신이 이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들이 오랫동안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 P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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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바 2021-08-31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으로 쓰여진 빅히스토리. 유발 하라리는 너무 거품이 많이 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