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 부인 혜원세계문학 15
플로베르 지음 / 혜원출판사 / 199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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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관계에 불성실한 남녀의 이야기는 문학의 단골 소재이다. 동양에서는 남편의 부정이 서양에서는 아내의 부정이 많이 다루어진다는 말도 들은 적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엠마 보바리의 스캔들은 고전이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철저한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하는 이 소설은 생생한 현장감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시골 아낙네들이 수군거리는 마을의 소문에 귀 기울이는 느낌으로 빠져들다 보면 쉽게쉽게 책장이 넘어간다.

냉정한 분석과 함께 독자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엠마의 감정적인 언행은 독자를 객관적인 관찰자로 만든다. 그의 몰락을 담담하게 지켜 보면서 독자는 차분하게 여러 생각들을 해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도덕적이고 교훈적이다. 여기에 내가 얻은 교훈들을 정리해 본다.

1) 부부 관계에는 성실해야 한다.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애인들은 정작 힘들어 졌을 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걱정해 주고 이해하려 애쓰는 것은 애 낳고 같이 사는 배우자이다.
2) 인생에 대해 지나치게 낭만적인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 특히 연애에 대해서는 더욱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감정적으로 폭주하다 보면 당연히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인들의 마음이 이미 멀어진 후에도 혼자 들떠 있던 엠마나 아내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샤를을 그저 바보라고만 몰아붙일 수 없는 상황이 나에게도 생길지 모른다.
3) 경제 문제에는 단호해야 한다. 자신의 경제적인 권리는 설령 배우자에게라 하더라도 양도해서는 안된다. 아내도 잃고 재산도 모두 잃고 어린 딸을 고아 노동자로 만든 샤를의 과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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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
소포클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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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했던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니 엘렉트라 컴플렉스니 하는 말들이 널리 쓰이고 있는 시대이지만 정작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을 읽었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데 왜 읽어야 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질문을 잠시 미뤄두고 일단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운명의 격류에 휘말려 극한의 극한에까지 내몰린 인간이 그럼에도 간직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찡한 감동을 독자에게 전한다.

개인적으로 소포클레스의, 특히 '안티고네'의 인물들의 인간적인 갈등을 좋아한다. 여자에 대한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연애감정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하이몬의 안티고네에 대한 격정은 어지간한 순정만화 못지 않다. 권력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죽음으로 관철시키는 어린 소녀 안티고네는 드물게 보는 희랍 히로인이다. 한편으로 춘향이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안티고네의 용기 쪽은 자신과 가문에 대한 굳건한 자부심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어딘지 동기가 의심스러운 춘향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최악의 불행을 겪었던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이지만 이 딸에 대해서만은 당당하게 자랑해도 되겠다.

상당히 멋진 글임에도 불구하고 별 다섯 개를 줄 수 없는 것은 이 책의 이상한 구성 때문이다. 아가멤논과 오이디푸스왕이 모두 3부작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씩을 빼놓고 수록한 것은 이 책의 결정적인 약점이다. 저 3부작이 모두 같은 날 공연된 한 세트임을 생각하면 더더구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자의 해설이 제대로 수록될 페이지도 갖지 못하고 책날개로 밀려난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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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여행법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마스무라 에이조 사진,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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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인 고베 도보 여행기를 읽고 나서야 겨우 책의 전체적인 인상이 잡혔다. 미국, 멕시코, 중국, 몽골, 일본.... 연관성을 찾기 힘든 여러 변경들을(이 책의 원제는 '邊境·近境'이다. '하루키의 여행법' 쪽이 한국 구매자들을 끌어당기는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의 정취하고는 거리가 있다.) 헤매고 다니며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일곱 편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가벼운 기분으로 시작해 소리 내어 웃으며 책장을 넘겼지만, 한 번쯤 발을 멈추고 생각해 볼 만한 메시지들 또한 이 책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신 대지진과 연쇄 살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고베에서는 무라카미 씨 자신의 입으로 폭력의 이야기가 부각된다. 그러나, 가장 극적인 폭력의 그림자는 노몬한의 기록에 있다. 일본 군의 지하 기지를 만드는 강제 노동에 동원된 후 기밀을 지키기 위해 살해당한 중국인들, 물도 없는 초원을 200 km 이상 행군해 가 소련 전차의 캐터필러 밑에서 생을 마친 관동군 젊은이들, 노몬한 전쟁의 대승이라는 구호 뒤에 숨겨진 막대한 희생을 치렀던 몽골인들... 몽골군 장교의 총에 쫓기며 탈진할 때까지 초원을 달리다 마침내 살해당하고 마는 암늑대를 본 그 날 밤 무라카미 씨는 격렬한 공포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멕시코에서의 폭력의 그림자는 인디오들의 가난과 반란과 죽음, 관광지의 다이버들이 가진 보통의 얼굴, 픽업 트럭의 짐칸에 실려가던 상의가 벗겨진 시체들로 상징된다. 심지어 소들로 가득한 미국 중부의 평원을 지나거나 이스트 햄프턴의 유명 인사들의 별장 거리를 걷거나 자연림이 우거진 무인도나 논 가운데의 우동집에 있을 때조차 평화의 이면에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이러한 그림자를 느끼는 것. 다른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로부터 들릴 듯 말 듯 호소해 오는 속삭임을 듣는 것. 그것이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진 작가로서의 감수성이다. 그리고, 그가 뚱한 표정으로 멋대로 하는 것 같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 안에도 이러한 문제 의식이 보이지 않게 숨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패전과 점령 이후 50여 년, 그 위장된 평화의 이면을 날카롭게 해부해 내는 무라카미 씨의 펜 끝을 따라가 보면, 해방과 전쟁과 정치적인 격변을 거치며 오히려 폭력에 무감각해진 한국 사회의 모습이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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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번째 주검 캐드펠 시리즈 2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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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유골'을 읽고 나서, 한 때 케드펠 시리즈의 애독자를 자처했던 친구들에게 생각보다 재미없더라고 투덜거리자 이건 확실히 재미있다고 추천해 준 책이 '99번째 주검'이었다. 둘이서 입을 모아 칭찬하길래 기대를 가지고 읽었는데, 확실히 재미있었다. 단숨에 읽어 버리고 흐뭇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었다.

전작에 비해 풍성하게 잘 짜여진 느낌을 주는 것은 인물들의 성격이 보다 복합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남장소녀의 이야기는 너무나 식상하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꽤 기쁘게 지켜보았다. 경건하고 우아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앞뒤 가리지 않는 열정이라든지 교활하고 믿을 수 없는 인상 뒤의 사내다운 호방함이라든지...... 역사적으로는 중요 인물이지만 여기에서는 조연으로 물러앉은 스티븐 왕의 캐릭터에도 퍽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작가가 많이 공부하고 작은 곳까지 성의를 보인 증거인 것 같아 흐뭇했다.

메인인 살인사건의 진행은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고 본다. 앉은뱅이 거지와 어부 소년이 등장하며 사건 진행이 마구 앞으로 내달리는 왕의 연회 밤의 이야기는 확실하게 시선을 사로잡았고, 망토의 복선 같은 것도 상당히 훌륭했다. 캐드펠과 휴의 두뇌 싸움 쪽은 작가가 들인 노력에 비해서는 큰 효과가 없었지만, 이것은 궁금해서 미리 뒷장을 넘겨 본 내 책임인 것 같으므로 넘어가자. 사건의 결말이 인간의 한계와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도 이 소설의 장점이다.

너무 진지해지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하고 있고, 독자 쪽도 너무 심각해질 걱정 없이 적당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연애담 쪽은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경쾌하고 발랄하며 늙은 수도사의 눈으로 객관화되어 부담스럽지 않다. 부드럽게 술술 장면이 넘어가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같은 소설이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이 책을 선택한 것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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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유골 캐드펠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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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수도원 배경의 장편 추리소설이라는 특성상 아무래도 먼저 번역되어 나온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역자 역시 해설에서 저 작품을 언급하고 있다. 에코와 같은 현학이 없는 것이 캐드펠 시리즈의 미덕이라는 논지인데.... 글쎄, 과연 어떨까?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 작품에서 '장미의 이름'에서와 같은 긴박감이나 벅찬 감동이나 저자의 해박함에 기대어 중세 문화의 폭풍 속에 잠기는 즐거움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분명 이 소설은 자기만의 강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여류 작가의 부드러운 필치와 영국 시골의 정취가 묻어나는 소박한 유머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그것이다. 극적인 긴장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겠지만 이 글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밝고 건전하고 반박의 여지 없이 귀염성이 있다. 더 좋은 것은 노인네들 역시 젊은이들 못지 않게 귀염성이 있다는 것이고.

종교와 미신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지한 시대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는 새삼스레 관심을 보여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지만,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자존심 싸움만은 썩 재미있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도 인구에서나 국토에서나 그다지 남에게 꿀릴 만한 규모는 아닌데, 중앙집권 국가가 너무 일찍 성립해 그 위세를 유지한 때문인지 이렇다 할 지방색을 찾기 어려운 것 같아 유감이다. 잉글랜드 수도사 나리들을 감쪽같이 속여 넘기는 웨일즈 정신이란 이런 환경에 사는 우리에겐 확실히 'exotic'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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