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캐버노가 《종교적 폭력의 신화>에서 설명하듯이 이런 전쟁은"종교가 모든 것"도 아니었고 "정치가 모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이런 전쟁이 세속적인 일과 분리된 사적이고 개인적인 활동으로서 ‘종교‘라는 관념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 P391
교회의 소관이었던 입법과 사법권은 점차 새로운 주권 국가로 이전되었다. - P392
《진리에 관하여>는 기독교가 제도도 아니고 생활 방식도 아니며, 인간 정신에 내재한 다섯 진리의 집합이라고 주장했다. (1) 지고의 신이 존재하며 (2) 이 신을 예배해야 하고 (3) 윤리적 생활과 자연스러운 경건함으로 섬겨야 하며 (4) 따라서인간은 죄를 거부해야 하고 (5) 죽은 뒤에는 하느님에게서 보상을 받거나 벌을 받는다. - P393
동시에 개혁가들은 싸움에 영적 가치를 부여하여 기사의 전쟁을 기독교인의 소명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 P316
수사들은 수도원 바깥의 무질서한 세계와 분리된 ‘사회 집단‘(오르도*)을 형성했다. 그래서 세속 생활의 가장 부패한 측면인 섹스 돈 싸움 가변성을 버리고 순결 가난 비폭력 안정성을 끌어안았다. - P312
로마 제국이 붕괴한 후 유럽에서 삶의 불안정성과 혼란스러운 유전은 천국의 영원한 안정성에 분명하게 가닿고 싶다는 갈망을 빚어냈다. 그래서 성자들의 유물이 인기를 끌었다. - P311
평신도 전사 귀족을 희생하여 교회 권력을 강화하려고 기획된 것이분명했기 때문이다. - P318
십자군 원정으로 인해 반유대주의 폭력은 유럽의 만성질병이 되었다. - P321
순수하게 농업적인 경제에서 상업화된 경제로 천천히 이행하면서 도시가 서양 기독교세계를 지배하기시작했으며, 12세기 말에 이르면 번영, 권력, 창조의 중심이 되었다. 부는 심하게 편중되었다. - P339
갓 태어난 자본주의와 서양 사회의 점증하는 폭력, 이 두 가지는 모두 예수의 근본적인 가르침과 아주 명백하게 어긋나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한 불안은 12세기 말 교회가 적극적으로 시작한 ‘이단‘ 박해에서도 나타났다. - P340
발데스파보다 훨씬 불온하게 다가온 것은 카타리파, 즉 ‘순수한 자들‘이었는데, 이들 또한 시골을 돌아다니며 빵을구걸하고 청빈, 순결, 비폭력에 헌신했다. 이들은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의 모든 주요 도시에 교회를 세우고, 영향력 있는 평신도의 보호를받았으며, 랑그도크, 프로방스, 토스카나, 롬바르디아에서 특히 큰 세력을 구축했다. 카타리파는 세속적인 가톨릭 기성 체제보다 훨씬 분명하고 진정성 있게 복음의 가치를 체현했다. - P341
그러나 수백 년 동안 유럽인은 상업 경제를 고안해 왔으며 결국 아주 다른 종류의 국가를 창조하게 된다. 근대 세계는 1492년에 출범했다고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유럽인이 근대 세계를 창조하는데에는 약 4백 년이 걸렸다. 그 세계는 신민의 개인적 삶에 훨씬 많이개입하고, 끊임없는 혁신을 예상하며 운영되고, 종교를 정치와 분리하게 되고, 그 경제는 이제 농업 잉여에 토대를 두지 않게 된다. - P357
1600년에이르자 아주 많은 영역에서 동시에 대규모로 혁신이 이루어져 진보는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종교는 이런 발전에 적응하거나 아니면의미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 P367
시장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점차 낡은 농경 구조를 무너뜨려 상업 계급이 그들 나름의 권력 기반을 닦을 수 있게 해주었다. - P368
이슬람의 사명은 모든 남녀가 세속적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국가의 압제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쿠란에서 신이 명한 사회 정의와 공정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 P301
p.131 군자의 이름값을 하는 사람은 불행에 처한 적을 이기려하지 않는다. 상대의 대오가 형성되기 전에 진군의 북을 치지 않는 법이다p 132. 문명화된 ‘우리‘와 짐승 같은 ‘저들‘ 사이의 전쟁에는 온갖 종류의 배반과 기만이 허용되었다.p.146 싸우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그와 싸울 수 있는 자는 없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로마를 포함한 모든 정치권력의 목표는 늘 "남들에게서 폭력으로 빼앗은 땅을 넓히고 국가의 권력을 키우고 세입을 늘리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오로지 라트로키니움, 즉 ‘강탈과 폭력‘으로만 이룰 수 있었다. ‘정의로운 전쟁 같은 것은없었다. 인간 생명을 빼앗는 것은 절대 허락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232
막시무스(580~662) ‘신성화‘는 성체성사 경험에 묵상에, 사랑의 실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마음에서 상호관계를 망치는 질투와 적의를 없애면 심지어 이생에서도 신성해질 수 있다. - P267
p.131 군자의 이름값을 하는 사람은 불행에 처한 적을 이기려하지 않는다. 상대의 대오가 형성되기 전에 진군의 북을 치지 않는 법이다p 132. 문명화된 ‘우리‘와 짐승 같은 ‘저들‘ 사이의 전쟁에는 온갖 종류의 배반과 기만이 허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