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41 | 642 | 643 | 644 | 64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마르크 레비 지음, 김운비 옮김 / 북하우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세상살이 고달파 죽겠는데, 잠시잠깐의 환상에 빠지는 것을 허락하자구.

여기 성격은 지랄같지만, 능력있는 레지던트 로렌이라는 여자가 있어. 주변에 혹시 새끼의사가 있으면 알꺼야. 그들이 얼마나 인간이하의 생활을 하는지. 프랑스도 마찬가지인가봐. 어느날 그녀는 기적처럼 주말에 비번을 내게 되지. 완전 신난거지. 최소 24시간 이상 잠을 못잤을텐데, 이 여자 새벽부터 일어나서 주말 여행을 간다고 설쳐. 태평양 해안도로를 따라 아름다운 새벽길을 달리는 즐거움을 포기할수 없대나 뭐래나.

논다는 생각에 완전 기운찼어. 왜, 그런거지, 주말여행, 그것도 몇년만에 병원에서 벗어나서 맞는 여행인데, 나라도 아드레날린이 마구마구 솟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혼자서 막 떠들어. 애완견인 칼리에게 얘기하는건 이해하겠는데, 나도 종종 레오가 사람말로 대꾸를 안하다뿐이지 내 말 다 알아듣는다고 믿거던. 근데, 막 집한테도 말 걸고, 싱크대한테도 말하고, 널린 옷들과 수건을 향해 소리쳐. ' 일찍 돌아와서 다 정리해줄께!'하고. 풉. 웃기지 않아? 이여자? 낡은 계단을 날듯이 내려가면서 ' 와 떠난다, 나 떠난다구!' 신나게 외치기까지해.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꺼야. 그러더니 이젠 낡은 차에게 말을 걸어. " 믿을 수 없는 일이야, 진짜 기적이라구! 이젠 네가 잘 출발해 주는 일만 남았어. 한 번이라도 쿨럭이면 엔진을 메이플 시럽에 빠뜨리고 널 폐차장에 내던져버릴 거야. 그리고 널 갈아치울거야. 완전 전자식 젊은 놈으로, 추운 날 아침에도 스타터가 필요없고 영혼도 없는 놈으로 말이지, 알아들었지 응? 자, 부디 걸려라!"

이 소설 초반에 나오는 로렌이 여행을 떠나면서 혼자 떠들어대는 말들, 낡은 자기 차에게 이야기를 거는( 협박을 하는 ?) 장면은 마르크 레비의 책에 아직 익숙하지 않겠지만 상당히 의미심장해. '와 떠난다, 나 떠난다구!'  '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꺼야' '영혼도 없는 놈으로 말이지'

늙다리 영국차가 여주인의 확고한 메시지에 깊은 감명을 받아서 키를 돌리는 첫 방에 모터가 돌아갔나봐. 로렌은 멋진 하루를 예감해.

이 책이 유령로맨스인걸 아는 나로서는 그녀의 죽음을 예감하지.

여자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녀의 영혼은 빠져나와 그녀가 예전에 살던 집에 이사온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를 안락사시키려고 하자 그 남자는... 으로 시작되는 줄거리를 읊어버리면 이건 상당히 통속적이고 간질거리고 그저그런 고스트로맨스 소설로 전락하고 말꺼야.

하지만, 소소한 부분에까지 찬찬히 눈길을 돌린다면, 사실 너무 귀에 쏙 들어오는 말들이 많거든. 그건 그거대로 좋은거구, 소소한 부분에까지 찬찬히 눈길을 돌려야해. 혹은 그냥 있어도 소소한 부분들이 가랑비에 옷젖듯이 메마른 심장을 촉촉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다리던가.

투닥투닥 농담따먹기하는 로렌과 건축가인 아더와 그의 죽마고우인 폴이 있어. 그리고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더의 엄마인 릴리와 앤서니도 있고, 그리고 막판에는 나탈리와 필게즈도 나와.

육개월여동안 영혼의 모습으로 홀로 지내야했던 로렌의 모습. 그건 유령소설이 아니라도 볼 수 있어. 로렌이 아더를 발견하고 말하지. " 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내가 그들을 볼 수 있다고 해도 그건 행복보다 불행을 더 안겨주지요. 연옥이란 것이 아마 그럴 거예요. 영원한 고독."  내가 좋아하는, 아니 숭배하는 뮤지컬 '시카고'에도 비슷한 사람이 나와 음.. 이름이 뭐더라, 이름은 기억 안나는데, 그는 자기 자신을 ' 셀로판지' 라고 불러. '나는 셀로판지, 나는 셀로판지. 내가 옆에 있어도 사람들은 나를 보지 못하지.' 몸을 좌우로 까닥까닥 거리면서 우울한 표정으로 하얀 장갑을 끼고 마임하듯 노래를 부르지. 별로 안 나오는데, 인기최고야. 별로 웃기지도 않은 춤을 보면서 사람들은 ( 물론 나를 포함해서) 과하다 싶을정도로 웃지. 아마 ' 나는 셀로판지가 아니야.' 라고 믿고싶은건가봐.

아무튼. 그런 '로렌'을 '아더'는 봐. 보고, 느끼고, 만지기까지해. 그러니깐 이건 비록 유령, 아니 귀신, 아니 영혼하고의 사랑이지만, 플라토닉하기만 한건 아니라는거지. 

이 세상에서 '로렌'을 보고 느끼는 사람은 ' 아더' 뿐이야. '로렌'이 이야기할 수 있는 단 한사람도 '아더'뿐이지. 서로에게 그렇게 유일한 존재야. 그들은. 감동적이지 않아? 뭐, 그냥 그렇다구? 어쩔 수 없지. 난 마르크레비처럼 입담꾼은 아닌걸. 그럼 읽어보던지.

아무튼 유령이 아니 영혼의 모습으로도 현실적인 로렌은 자신때문에 아더가 망가지는게 싫어. 미래가 없는 모습에 서로 기대야하는게 싫어. 그래서 자꾸 물어, '나한테 왜그러냐고' '나한테 더 이상 얽매여선 안된다고' 보통 남자가 현실적이고 여자가 감정적인데, 이 친구들은 그런거 없어. 근데 아더가 그래.'그럴 수 밖에 없다'고.  " 왜냐하면 따지고 계산하는 동안, 찬성할 것과 반대할 것을 분석하고 있는 동안, 삶이 흘러가며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야." 라고. 이 친구 계속 보면 알겠지만 꽤나 행동파야. 원래부터 그랬는지, 아님 로렌을 만나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여튼. 앞으로 가는 방법밖에 모르는 것 같애. 처음에는 그녀가 그에게 자신이 영혼임을 믿어달라고 사정했는데, 이제는 그가 그녀에게 고민하지 않고 그녀를 돌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자신을 믿어달라고 간청하는 지경이 되었어.

근데, 평소같으면 한심해보여야 할 아더같은 남자에 가슴이 마구 뛰어. 수줍고, 가슴 한 구석에 과거를 안고 있고 지극히 평온하면서 행동파인 이 남자.

이 이야기는 몇번이고 반복되는걸 보니 이 글의 테마쯤 되나봐. 아더가 잡으러온 은퇴를 앞둔 노 형사에게 또 말해.

"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당신이 진정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면, 당신이 진정 나를 신뢰하고자 한다면, 아마도 마침내는 내 이야기를 믿게 될 것이고, 그건 내게는 무척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 비밀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하늘 아래 유일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뭐,굳이 그렇게 성심성의껏 진심에서 우러나와 ' 믿어주세요' 라고 말하지 않아도 '너를 믿어' 라고 서로 말할 수 있는, 점점 희미해지는 나의 모습을 뚜렷하게 봐주는 ' 너' 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럼 나도 '나비나 파리를 유심히 탐색하는 고양이처럼' 너를 지켜보아 줄텐데.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했던가?" 수줍어하는 어조로 그가 말했다.

"당신은 내게 사랑의 증거들을 보여줬어. 그게 훨씬 좋아." 그녀가 말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태우스 2005-03-30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긴 하지만 <귀신은 산다>랑 비슷한 면이 있네요....

하이드 2005-03-3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뜬금없지만, 저도 그 생각 했어요 ^^
 
남아 있는 모든것
패트리샤 D.콘웰 지음 / 시공사 / 1994년 2월
평점 :
절판


엊그제 읽었던 '잔혹한 사랑'의 여운이 남아 내친김에 '남아 있는 모든 것'까지 읽어버린다. 잔혹한 사랑에 비해서 더 재미있고, 미스테리한 면도 더 많이 나온다. 검시관, 잔혹한 사랑에 이어, 스카페타 주변의 인간관계들이 더 정립이 되는 책이기도 하다.

단. 콘웰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이 범인이 마지막 몇십페이지에서나 나타나는 쌩뚱맞은 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쩌면 탐정김전일 식의 ' 범인은 이 곳에 있어' 에 너무 익숙해져서 콘웰식의 범인등장이 낯설었던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현실에서는 이 책에서처럼 FBI건 CIA건 경찰이건 법의관이건 몇년이고 삽질하다가 ( 결코 범인이 잘나서만은 아니고) 범인이 계획했던 완전범죄가 무수한 변수속에서 어그러지는 그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이 또 우연이건, 필연이건 적절한 사람의 눈에 띄어서 마침내 잡히게 되는 것이리라.  그 와중에 미결사건들도 널리게 되는 것이고.

원제는 all that remains이다. postmortem , body of evidence 에 이어서, '법의관'이라는 직업을 강조하는 원제이다.

앞의 두 작품과 비교해본다면 '검시관'이 법의관으로서의 스카페타의 직업에 대한 세세한 부분이 적절히 묘사되고 그녀의 성품과 일적인 갈등, 고뇌가 부각되었다면 '잔혹한 사랑'에서는 직업적인 면보다는 옛연인이 나타나는등 주변의 인간관계와 사건이 더 많이 나온다.

이 작품 ' 남아 있는 모든 것'은 팔년에 걸친 연쇄살인 사건에 초점을 두어 추리소설적인 재미로는 셋중 최고였다. 주인공인 '스카페타 검사' 외에도 성공한 여러 여성상이 나오는 점도 볼거리다.

새로 나온 책의 제목이 '하트잭'인건 쌩뚱맞다!  백배쯤 나은 제목 지을 자신 없으면 원제에 충실하자.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5-03-29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에 공감합니다. 흔적이 더 재미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울보 2005-03-2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작가 작품 좋아라 해요,,
남아 있는 모든것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panda78 2005-03-2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감! 하트잭이 뭠니까! 버럭!
예전에 나온 것들은 다 읽었는데 뭐가 무슨 제목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흐흐. 그래도 다 일정수준 이상의 재미는 보장하던데요.

비츠로 2005-03-29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책을 헌책방에서 몇권 사 놓고 있는데 시간 내서 한번 봐야겠군요.

하이드 2005-03-2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번에 님들 덕분에 다 구했어요. ㅜ.ㅜ 감사합니다.
비츠로님, 재밌어요. 근데, 왠지 여자들이 더 좋아할 것 같은 책들인데. ^^a
 
잔혹한 사랑
패트리샤 콘웰 지음, 정한술 옮김 / 시공사 / 1993년 12월
평점 :
절판


3번째로 접하는 패트리샤 콘웰의 작품이다. 그리고 스카페타의 시리즈의 두번째이기도 하다.

원제는 body of evidence 인데, 그저 법의관이라는 스카페타의 직업을 나타내는 것 외에는 작품하고 뭔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 제목을 '잔혹한 사랑'으로 바꾸어 놨는데,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백배쯤 멋있는 제목으로 바꾸어 놓지 못할 바에는 그저 원작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특히나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서는.

'검시관'에서 스카페타는 능력있으나, 남자들의 사회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그러면서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자 동시에 냉정하고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에게 반해버린 상태라 '잔혹한 사랑'이 일편에 비해 별다른 느낌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저 좋다.

이 책에서는 그녀의 법의관으로의 일에 대한 얘기나 일에서 따돌림 당하고 압력받는 그녀의 모습이나 그녀 자신의 현재의 위치와 모습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이 전편에 비해 많이 나오지 않고, 연이어 사건이 터지고 언제나와 같이 그 사건을 해결해나가고자 하는 경찰(마리노 형사)과 그녀(법의관)와 FBI( 벤튼) 팀의 분투가 나온다.

스트로라는 별명을 가진 여류작가가 몹시 잔인하게 살인당한다. 그녀는 어렸을 적 플리처상 수상자이기도 한 저명한 작가의 제자이기도 하다. 저명한 작가의 의심스러운 사생활을 회고하는 원고를 쓰고 있던 그녀의 원고에는 대중조작 전문가인 악질 변호사가 들러붙어 스카페타를 괴롭힌다. (근데, 왜 스카페타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대중조작 전문가인 악질 변호사는 연예담당이었다가, 작가 담당이었다가 그런다. )

그러다가 그 저명한 작가 역시 살해 당하고 같이 살던 누나는 자살하게 된다. 결국 범인은 영 상관 없는 사람(그러니깐 반전이 있고 그런것도 아닌) 으로 밝혀져 좀 김이 빠지는 결말이긴 하지만, 김빠지는 결말을 포장하기 위해 한국 제목을 '잔혹한 사랑'이라고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읽은 세작품중에서는 가장 떨어지는 편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미 스카페타라는 인물에 깊이 공감하고 사랑하게 되었는지라, 그녀가 나오는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한편 한편 읽을때마다 생각하는데, 이 편에서는 마크 제임스라는 스카페타의 오래된 연인이 등장한다. 마리노와 벤튼과 그리고 마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피 이야기
줄리아 알바레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몬도비노'와 '전염성 탐욕'과 '커피이야기'의 공통점은?

답 : 세계화에 대한 반대.



이 얇고 예쁜 정치적으로 올바른 커피 이야기의 원제는 ' A Cafecito(카페씨토)  Story' 이다.

저자인 줄리아 알바레스는 '우연히' 뉴욕에서 태어났으나 곧바로 자신의 조국인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가족과 함께 돌아가서 정치적 압박으로( 무수한 중남미 작가들이 흔히 그러듯이) 가족이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우연히 어린시절을 보냈다.

후기를 쓴 '빌 아이크너'는 줄리아의 남편이고 미국 중서부 농촌 출신으로, 본업은 안과의사이지만 원예가, 요리사도 겸하고 있다.



이 책을 위해 표지에서와 같은 그리고 중간중간의 삽화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목판화를 제작한 '벨끼스 라미레스'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미술가의 한 사람이다.

책 속의 거친 질감의 목판화들은 콜롬버스가 가장 사랑한 도미니카 공화국의 매끈하지 않은 역사를 보여주는 듯 하다.

그 중에서도 가난한 소작농들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부가 되려는 꿈을 안고 성장한 조의 기억 속의 한 장면이다. 이른 봄 옥수수를 파종했고, 아버지처럼 똑바로 줄을 맞춰 하려고 애쓰곤 했다. 하얀 새들이 트랙터 주변을 맴돌다가 이따금 휙 내려와 갈아엎은 흙 속에서 굼벵이를 물어갔다. 바다 갈매기, 모두들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소농들은 기울기 시작했고, '농사'는 '사업' 이 되었다. 그리고 조는 '교사'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조

의 창밖으로 보이던 들판은 어느새 주차장과 주택단지로, 유명 체인점이 들어선 작은 상가로 변했다. 그가 마시던 커피는 점점 더 상품화 되었고, 세계 각지에서 커피콩이 수입되었다. 집세도 올랐고, 외로움도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조는 커피를 홀짝이며 여러 시간 정보를 뒤지다가 근사한 곳을 찾아낸다.

도미니카 공화국- 콜럼버스가 가장 좋아했던 땅 ...

 

도미니카로 간 조는 유기농 커피 만드는 것을 보게 된다. 나무 그늘을 이용해 옛날식으로 커피를 재배하는 미구엘 가족을 만나게 된다. '신식으로 하면 당신은 더 많은 커피를 심을 수 있어요. 당신은 나무들이 자랄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지요. 당신은 더 빨리 수확할 수 있고,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어요. '

'나무 그늘을 이용하여 옛날식으로 커피를 재배하면, 나무들은 햇볕과 비를 걸러주고 땅을 비옥하게 하며 침식을 막아주어 커피 묘목들에게 천연 보호막이 되어주고, 새들을 불러들여 커피 열매 위에서 노래를 부르게 만드는 것도 나무들이죠. 그 덕에 좋은 커피가 만들어지지요. 열매가 익어갈 때 새들이 노래를 불러주는 것은 어머니가 뱃속의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것과 같아요. 그런 아기는 행복한 영혼을 가지고 태어나죠. 그늘 밑에서 자란 커피는 당신에게도 그 노래를 심어줄겁니다. '

그렇게 그늘커피농장에 돈을 보태기 위해 조는 약간의 땅을 진담반 농담반으로 사들이고, 옛날 방식을 지킨다.

이런 정도의 이야기.



별로 재미는 없지만, 왠지 경건하게 만들고 반성하게 만들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을 회의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뭐, 새들이 노래 불러준다고 그 커피나무에서 딴 커피가 나에게 노래를 불러줄 것 같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커피는 '카페씨토' 이기보다는 '카페인물' 이었기에. 차마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커피의 맛이 되겠지만, 빠르게 좀 더 빠르게, 많이 좀 더 많이, 더 수익이 되게, 더 마케팅을 잘해서, 팔리는 커피들. 특히나 그것이 재배되는 과정조차 누군가를 착취해서라면 진한 커피 한모금 홀짝일때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가보다.

 

* 구입처 및 관련 단체

카페 알따 그라씨아 Cafe Alta Gracia

758 Sheep Farm Road, Weybridge, VT 05753 USA

www. cafealtagracia.com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nda78 2005-03-23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글과 딱 어울릴 만한 카툰이미지가 있었는데, 지워버렸어요.

다시 찾으려고 암만 뒤져봐도 안 나오네요. ;;

대신 이거라도..




하이드 2005-03-23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옹, 그래요~! 커피푸대일까요?

panda78 2005-03-23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 무슨무슨 커피 트레이드가 어쩌고 무슨 오거니제이션이 어쩌고 하는 데서 퍼왔거든요. ^^

딸기 2005-03-2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억... 그런 책이었군요!
이 바부팅이는, 어디서 공짜로 생겼는데... 커피 상식 소개서인 줄 알고 버렸어요 ㅠ.ㅠ
 

코끼리를 쏘다

버마의 남부에 위치한 물메인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었다. 어쩌면 내 생애에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이런 일이 일어날만큼 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나는 당시에 이 도시 한 파출소의 경찰관이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별 목적도 없이 하찮은 반유럽 감정이 유난히 강했다. 어느 누구 하나 폭동을 일으킬 만한 배짱도 없으면서, 유럽인 부인이 혼자 시장을 지나가면 누군가가 입에 품었던 구장즙을 그녀 옷에 뱉어버리곤 했다. 경찰관인 나 역시 그들의 목표물이 되었고, 그들은 자기에게 별 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범위 안에서는 언제나 나를 못살게 굴었다. 발빠른 버마인이 축구장에서 내 발을 걸어 넘어뜨리면 심판(물론 버마인이다) 은 보고도 못 본 체했고, 군중은 엄청나게 웃어댔다. 한두 번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가는 곳마다 나를 만나는 젊은이들은 누런 얼굴에 조소를 머금다가 안전한 거리까지 떨어지면 뒤에서 내 신경을 거스르는 온갖 모욕을 퍼붓곤 했다. 젊은 승려들이 가장 심했다. 거리에는 수천 명의 승려들이 있었는데, 별로 할 일이 없는지 길모퉁이에 서서 유럽 사람들을 비웃곤 했다.

이런 모습이 모두 나를 당혹케 만들었고 또 비위를 거슬렀다. 그 당시 나는 이미, 제국주의는 죄악이므로 되도록 빨리 이 직업을 집어치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론적으로는-물론 비밀이었지만-나는 전적으로 버마 사람들 편이었고, 억압자인 영국 사람들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제국주의 경찰관을 하게 되면 제국주의의 추악한 수법을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된다. 악취가 풍기는 감방 안에 웅크리고 있는 죄수들, 장기수들의 창백하고 겁에 질린 얼굴, 대나무 몽둥이로 흠씬 얻어맞은 남자들의 시퍼렇게 멍든 엉덩이..... 이런 것들이 모두 견딜 수 없는 죄의식으로 나를 괴롭혀왔다. 그러나 나는 미래에 대한 판단 능력이 없었다. 당시에 나는 젊었고, 또 교육도 잘못 받았다. 나는 동양에 와 있는 모든 영국인들에게 부과된 절대적 침묵 속에서 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했다. 나는 대영제국이 망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으며,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고 하는 신생 제국주의 국가들보다는 그래도 영국이 더 낫다는 생각은 더욱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봉사하고 있는 제국주의에 대한 증오와 경찰관으로서의 내 일을 훼방놓으려고 하는 사악한 작은 짐승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내가 그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영국의 식민 통치를 파괴시킬 수 없는 전제로서, 억압받는 피식민지인들의 의지를 영원히 꺾어버리는 완강한 어떤 것으로 간주했고, 또 한 편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승려들의 창자 속으로 총검을 찔러넣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감정은 흔히 생겨나는 제국주의의 부산물이다. 하루 근무를 마친 인도의 영국 공무원들 중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어느 날 순찰을 돌던 중 정신이 번쩍 든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작은 사건이었지만, 제국주의의 실상-전제정부가 행하는 일들의 진짜 동기-을 전보다 더 잘 들여다볼 기회가 되엇다. 어느 이른 아침 이 도시의 한쪽 끝에 있는 경찰서의 부서장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코끼리 한 마리가 시장을 부수고 있으니 거기에 가서 무슨 조치를 좀 강구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조치를 강구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어쨋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한번 가봐야겠다고 작정하며 조랑말을 타고 출발했다. 나는 구식 0.44 구경 윈체스터총을 휴대하고 있었는데, 이 총은 코끼리를 죽이기에는 너무 작았지만 소리만 내어 위협하기에는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버마 사람들이 현장으로 가고 있는 나를 불러세우고는 코끼리의 행동에 대해 말해주었다. 물론 야생 코끼리가 아니고 '발정기'에 접어든, 사육되는 코끼리였다. 발정기가 시작된 코끼리는 항상 쇠사슬로 묶어놓는데, 전날 밤에 사슬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난폭해진 이런 코끼리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 코끼리의 사육사뿐인데, 그 역시 코끼리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방향을 헛짚어 걸어서 열두 시간이나 걸리는 곳에 나가 있었다. 오늘 아침 그 코끼리가 돌연 이 마을에 나타난 것이었다. 버마 사람들은 무기가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그놈은 이미 대나모루 만들어진 누군가의 오두막집을 박살냈고, 소를 죽이고, 노점 과일가게를 습격하여 과일을 다 먹어치웠다. 또 시의 쓰레기차를 만나서는 운전사가 뛰어내려 도망치는 순간에 차를 뒤엎고 난폭하게 뭉개버렸다는 것이었다.

버마인 부서장과 인도인 경찰관 몇 사람이 코끼리가 나타난 지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은 매우 가난한 구역으로, 종려나무 잎으로 이엉을 여껑 덮은 대나무 오두막집이 늘어서 있고, 미로 같은 길이 가파른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뻗어 있었다. 우기가 시작될 무렵이었고 구름이 낀 수텁지근한 아침이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코끼리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흔히 그렇듯 확실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이런 경우는 동양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한 것 같은데, 현장에 가보면 내용은 달라진다. 코끼리가 이쪽으로 왔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쪽으로 갔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코끼리 다위는 아예 보지도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꾸며낸 것이라고 단정을 내리려고 할 때, 좀 떨어진 곳에서 고함 소리가 났다. " 애들은 가라, 썩 꺼지거라" 하는 욕지거리가 들렸는데, 손에 회초리를 든 한 노파가 한 떼의 벌거숭이 아이들을 몰아내며 오두막집 모퉁이에서 나타났다. 몇몇 여자들이 혀를 차고 무어라 말을 하면서 그 뒤를 따랐다. 분명히 아이들이 봐서는 안 될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오두막집 뒤로 돌아가 보니 남자의 시체 하나가 진흙탕 속에 뻗어 있었따. 검은 드라비다인 쿨리로 거의 벌거벗은 상태였다. 죽은 지 몇 분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코끼리가 갑자기 집 모퉁이에서 나오더니 그를 코로 휘어감고 다리로 등을 누른 후 땅바닥에 짓뭉갰다는 것이었다. 때는 우기라 땅이 물러서 그의 몸은 깊이 1피트, 길이 2야드의 움푹한 자국을 만들어 놓았다. 양팔은 열십자로 벌려졌고, 머리는 한쪽으로 홱 돌아간 채로 땅에 엎드려 있었다. 얼굴은 온통 진흙으로 뒤덮여 있고, 두 눈은 부릅뜨고 이빨을 드러낸채 고통을 참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죽은 자의 얼굴이 평온하다고 말하지 말라. 내가 지금까지 본 시체는 대부분 악마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대한 짐승의 다리로 짓뭉개놓았기 때문에 등가죽은 벗겨놓은 토끼 가죽처럼 깨끗이 벗겨져 있었다. 나는 죽은 사람을 보자마자 가까운 친구 집에 사람을 보내 코기리 사냥총을 가져오게 했다. 코끼리 냄새를 맡고서 겁에 질려 나를 내동댕이칠까 봐 내가 타고 온 조랑말은 이미 보내버렸다.

 심부름을 보낸 사람이 몇 분 후에 총과 다섯 개의 탄알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던 중 몇몇 버마인이 코끼리가 아래쪽 논바닥, 바로 2백-3백 야드 떨어진 곳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준비를 하고 출발하자, 그 일대의 전 주민이 집에서 나와 내 뒤를 따랐다. 그들은 내 총을 보고서는, 내가 코끼리를 쏠 것이라고 서로들 흥분하여 외쳐댔다. 코끼리가 자기네 집을 부술 때는 별 관심도 보이지 않더니, 코끼리를 쏜다고 이렇게 야단법석을 피웠다. 영국의 구경꾼들에게도 그렇지만 이들에겐 이것이 일종의 구경거리였다. 게다가 코끼리 고기도 탐이 났을 것이다. 나는 다소 걱정이 되었다. 나는 코끼리를 쏠 생각이 없었다. 나는 필요시 내 몸을 보호하려고 총을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졸졸 뒤따라오는 것도 피곤하게 느껴졌다. 나는 멍청한 모습으로 생각에 잠긴 채 어깨에 총을 메고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사람들의 수는 점점 불어나 서로 밀치면서 따라왔다. 언덕 아래 오두막집을 벗어난 곳부터 자갈로 다져진 길이 나왔고, 그 너머에는 몇 차례 내린 비로 수렁이 되고 군데군데 억센 잡초가 난 1천 야드 가량의 황폐한 진흙탕 논이 뻗어 있었다. 코끼리는 도로에서 약 8야드 떨어진 곳에서 왼쪽 배를 우리 쪽으로 향한 채 서 있었다. 다가가는 군중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놈은 풀 뭉텅이를 뜯어 무릎에 대고 흙을 비벼 털고는 입 안으로 쑤셔넣고 있었다.

나는 길에서 멈추었다. 코끼리를 목격한 순간, 쏘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 부려먹는 코끼리를 죽인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였다. 그것은 값비싼 거대한 기계를 파괴하는 것과 같은 거이다. 그래서 피할 수만 있다면 절대로 죽이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멀리서 저렇게 평온하게 풀을 뜯어먹고 있으니, 황소보다도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발정기'의 난폭성도 이미 누그러지고 잇으니 사육사가 돌아와서 붙들어 매어놓을 때까지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해도 별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나는 코끼리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놈을 지켜보고 있다가 다시 난폭해질 기미가 없는지를 확인한 후 집으로 갈 작정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뒤를 따라오던 군중을 힐끗 쳐다보았다. 적어도 2천 명은 족히 되어 보였으며, 계속 불어났다. 군중은 길 양쪽을 저 멀리까지 꽉 채우고 있었다. 나는 번쩍거리는 색깔 옷들 위에 떠 있는 누런 얼굴의 바다를 보았다. 이 조그만 구경거리에 들떠 있는 행복한 얼굴들, 그들은 코끼리가 곧 사살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마술을 시작하려는 마술사를 보듯 나를 지켜보았다. 그들은 나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마술과도 같은 총을 들고 있으니 잠시 동안 지켜볼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었다. 갑자기 나는 결국 코끼리를 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으니 그 일을 수행해야만 했다. 나는 2천여 명의 사람들이 나에게 압박을 가하는 기운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총을 든채 공허함, 다시 말해 동양에서의 백인 지배의 무익함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총을 든 백인인 내가 무장하지 않은 원주민들의 무리 앞에 서 있다.  겉으로는 연극 한 토막의 주인공을 맡고 있지만, 사실은 내 뒤에 있는 누런 얼굴의 무리에 의해 우왕좌왕하는 어리석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이 순간 백인이 전제 군주가 되면 파괴되는 것은 백인 자신의 자유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백인은 속이 텅 빈 채 거드름을 피우는 허수아비, 즉 샤히브라는 인숩의 형상이 되어버린다. 원주민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심어주면서 평생을 보내야 하고, 또 위기에 처할 때는 원주민들이 기대하는 바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 백인들이 지배하는 조건이다. 백인들이 가면을 쓰면, 그들의 얼굴은 그 가면에 맞도록 변하는 것이다. 코끼리르 쏴야 한다. 총을 가져오라고 시켰을 때, 나는 이미 이 일을 수행하도록 스스로를 구속했던 것이다. 영국 나리는 나리답게 행동해야 한다. 단호하게 보여야 하고, 결심을 하면 확고하게 일을 수행해야 한다. 손에 총을 쥐고 2천여 군중을 이끌고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물러선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군중은 나를 비웃을 것이다. 나를 위시해 동야에 와 있는 모든 백인들의 생활은 원주민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코끼리를 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놈이 할머니 같은 자태로 코끼리 특유의 일에 여념이 없는 듯 풀더미를 무릎 위에 놓고 비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코끼리를 쏘는 것은 어쩐지 살인을 저지르는 느낌이었다. 그 나이에 동물을 죽이는 일이 그리 꺼림칙하지는 않았지만, 그때까지 나는 코끼리를 쏜 일도 없었고, 쏘고 싶지도 않았다. ( 하여튼 큰 동물을 죽이면 죄를 짓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코끼리의 주인 생각도 해야 한다. 살아 있는 코끼리는 적어도 1백 파운드의 값은 나가지만 죽으면 엄니 값으로 기껏해야 5파운드밖에는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신속하게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이미 그곳에 있었던, 경험이 많아 보이는 몇몇 버마인들에게 코끼리의 행동이 어떠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냥 내버려두면 아무 일도 없을테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덤벼들 것이라고 했다.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명백했다. 코끼리 쪽으로 25야드쯤 다가가서 놈의 반응을 시험해 보았다. 놈이 덤벼들면 총을 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사육사가 돌아올 때까지 내버려두어도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총을 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도 또한 알고 있었다. 나는 사격이 서툴렀고, 게다가 땅은 진창이어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발이 빠졌다. 만일 그놈이 덤벼들고 내가 실수라도 한다면, 롤러 차 밑에 깔린 두꺼비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순간에서도 나는 나 자신의 안전보다는 뒤에서 지켜보는 누런 얼굴들을 생각했다. 군중이 나를 지켜보는 순간에는 내가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보통 의미의 공포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백인은 '원주민들' 앞에서 겁을 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백인은 일반적으로 겁을 먹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는 오로지 이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만일 내가 실패하면, 저 2천여 명의 버마인들은 내가 쫓기고 잡히고 짓밟혀서 언덕 위에 죽어 있는 그 인도인처럼 이빨을 드러낸 시체로 변하는 꼴을 볼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몇몇 사람들은 그저 웃고만 있을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선택할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총알을 장전하고 조준하기 좋게 땅바닥에 엎드렸다.

군중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했다. 마침내 연극의 막이 오르기를 지켜보고 있는 관중처럼, 나직하고 행복한 깊은 한숨이 수없이 많은 목구멍에서 새어나왔다. 어쨌든 그들은 그저 좋은 구경거리를 만난 셈이었다. 총은 열십자 조준기가 붙어 있는 훌륭한 독일제였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코끼리를 쏠 때는 이쪽 귓구멍에서부터 저쪽 귓구멍을 잇는 선을 하나 마음속에 그어야 한다. 코끼리가 옆을 보고 있었으므로 곧바로 귓구멍을 겨냥했어야 했는데, 나는 놈의 뇌가 좀더 앞쪽에 있다고 생각하고 귓구멍보다 몇 인치 앞쪽을 겨냥했다.

방아쇠를 당겼을 때, 나는 총소리도 듣지 못했고 충격도 없었다. 명중할 때는 아무것도 못 느끼는 법이다. 그러나 군중이 토해내는 악마와 같은 외침을 들었다. 총알이 코끼리에 명중되는 데 걸리는 것보다도 짧은 순간에 이상하고도 무서운 변화가 코끼리의 전신을 엄습했다. 놈은 쓰러지지도 않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몸뚱이의 모든 윤곽선이 변해갔다. 놈은 갑자기 얻어맞은 충경에 한없이 오그라들고 노쇠해 버린 것이다. 마치 총탄의 무서운 충격이 그를 넘어뜨리지 않고 그대로 마비시켜 버린 것 같았다. 한참 후라고 생각되는데-사실은 5초 정도 되었을 것이다-마침내 코끼리는 흐느적거리다가 무릎을 꿇었다. 놈의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무시무시한 노쇠가 그를 집어삼킨 것같이 보였다. 수천 살의 나이를 먹은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다시 한 번 같은 곳을 쏘았다. 두 방을 맞고도 놈은 아주 쓰러지지 않았고, 머리를 축 떨군 채 비틀거리며 필사의 힘을 다해 서서히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세번째로 총을 쏘았다. 그 한 방이 모든 것을 끝냈다. 그 고통이 전신을 흔들어 사지의 마지막 남은 힘까지 다 소진된 것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쓰러지면서 한순간 일어날 듯하더니 뒷다리가 몸뚱이에 깔려 무너지자, 상체는 넘어지는 큰 바위처럼 솟아오르고 코는 한 그루 나무같이 하늘로 치솟았다. 코끼리는 처음으로 단 한 번 포효하고는 배를 내 쪽으로 향하고 내가 엎드려 있는 땅을 뒤흔들듯 '쿵'하고 쓰러졌다.

나는 일어섰다. 이미 버마인들은 내 옆을 스쳐 지나 진흙탕으로 뛰기 시작했다. 코끼리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은 분명했지만, 아직 죽지 않았따. 산더미 같은 옆구리가 고통스럽게 기복을 그리면서 율동적으로 길게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놈은 입을 딱 벌렸다. 창백해진 연분홍빛 목구멍의 동굴이 들여다보였다. 나는 오랫동안 그가 죽기를 기다렸지만, 숨소리는 가늘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심장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남은 두 발을 발사했다. 뻑뻑한 피가 붉은 벨벳처럼 솟아나왔지만, 여전히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총알을 맞고 꿈쩍도 하지 않았고, 거친 숨결만이 끊임엇ㅂ이 흘러나왔다. 놈은 엄청난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가고 잇었다. 총탄도 더는 상처를 줄 수 없는, 동떨어진 아득한 또 하나의 세계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무서운 신음 소리를 그치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움직일 힘도 없고, 그렇다고 죽을 힘도 없이 축 늘어져 누워 있는 거대한 동물을 보면서 완전히 죽여버리지 못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내 소총을 가져오게 하여 그의 심장과 목덜미 밑을 연발로 쏴버렸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었다. 고통을 못 참아 헐떡거리는 소리가 벽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처럼 지속되었다.

결국 나는 더 지켜볼 수 없어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뒤에 들은 바이지만, 반 시간이 지나서야 완전히 죽었다는 것이었다. 버마인들은 내가 그곳을 떠나기 전부터 칼과 소쿠리를 가져와 오후까지 살을 완전히 발라내 뼈만 앙상하게 남겨놓았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그 일이 일어난 뒤 코끼리를 쏜 데 대한 끝없는 논의가 이어졌다. 코끼리 주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인도인이라서 별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한 일은 법적으로도 정당하였다. 왜냐하면 미친 코끼리는 주인이 다루지 못하면 미친개와 마찬가지로 죽이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사람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나이 든 사람들은 내 행동이 옳았다고 했으며, 젊은 층은 쿨리를 죽였다고 해서 코끼리까지 쏴 죽인 것은 미친 짓이라고 했다. 오ㅐ냐하면 코끼리 한 마리는 쿨리보다 값이 더 많이 나가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는 쿨리가 죽었따는 소식을 듣고 안심했다. 그의 죽음은 내가 코끼리를 쏜 행위의 충분한 구실이 되었고, 내 행동은 법적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때 내가 단지 바보 취급을 당하지 않기 위해 코끼리를 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차렸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이드 2005-03-18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손까락이야 헉헉.
조지 오웰의 이 책을 읽고 있다. 나는 조지 오웰이 훌륭한 사람인줄 알았다. 에세이들로 이루어져있는 이 책은 상당히 역겹다. 글을 아무리 잘 써도 이런 내용이 끝도 없이 나오면, 이건 상당히 불쾌하고 거슬리고 구토가 난다니깐. 조지 오웰의 이 글을 보고 어느 누가 그를 동정이라도 할까. 박쥐보다 나쁜 놈. 1984와 동물농장을 읽어봐야겠다.
일단은 8시에 이태원까지 가려면 서둘러야겠다~~~~


하이드 2005-03-18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야, 누가 금새 추천을 ^^ 그러니깐, 손가락이 덜아픈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꾸벅

마늘빵 2005-03-18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오웰 소설만 보고 에세이는 안봤는데 그런가요? 역겨울 정도로...

마태우스 2005-03-1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 대단하십니다...이걸 언제 다 치셨어요. 저 이책 선물로 받았어요. 대기 중인데, 석달 안에는 읽을 거예요^^ 근데 선물한 분에 따르면 별로라는데...전 님이 안읽으신 1984와 동물농장을 읽었답니다.

노부후사 2005-03-19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세기 영문학 에세이 10선을 꼽으라면 오웰의 에세이가 그 중 하나로 들어가곤 하지요. 그의 작풍을 본받아서 orwellian 말도 있어요. 그리고 <<코끼리를 쏘다>>에 나오는 글들은, 대부분 오웰이 대가의 반열에 올라서기 전에 쓰여진 것들이라더군요. 박홍규 교수 말에 따르면 이 책 번역이 시원찮다고도 하고요. 전 공부 못해서 버마경찰로 쫓겨간 오웰의 일상이 꽤 살갑게 다가오던데요. ㅋㅋ 아, 하나 덧붙이자면 '금새'가 아니라 '금세'가 맞는 표현이랍니다. '금세'는 '今時에'의 줄임말이거든요.

하이드 2005-03-19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금새' 가 디게 이상하네요. ^^;;; 그러니깐, 그게 참 불분명한 것이 역겨움과 계속 읽게 되는 무언가와 중간을 맴돌게 되더라구요. 진짜 싫었으면 그냥 책 덮었겠지요. 아마도 ,암튼, 리뷰 쓸때 더 잘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41 | 642 | 643 | 644 | 64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