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
마르크 레비 지음, 조용희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조나단.
너는 여전히 이 이름으로 불리는지? 오늘에서야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마르크 레비의 '다음생에' 는 피터라는 노인의 편지글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크리스티 경매의 유명 경매사였던 피터의 젊은시절, 그 옆에 있던 반쪽과도 같은 저명한 미술감정사 조나단, 그리고, 그와 결혼하게 될 화가 안나, 마지막으로 조나단을 사로잡은 19세기 러시아의 화가 블라디미르 라드스킨의 밝혀지지 않은 마지막 유작을 찾기 위해 런던으로 가서 만나는 겔러리스트 클라라의 이야기이다.

예전 책들에 비해 뭐가 뭔지 모르겠는 시간을 조금 더 가지고 나서는 여느때와 같이 작품에 혹- 빠져든다. 그리고, 쉼없이 마지막의 에필로그까지 읽어내고 나서, 다시 맨 앞 '조나단. 너는 여전히 이 이름으로 불리는지?...' 로 돌아가 피터의 편지를 읽으며, 그제야 눈물이 찔끔난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를 너는 믿을 수 없겠지만' 혹은 '천국 같은'  혹은 'if only it were true' 
에서, 그리고 '너 어디 있니' 에서 작가가 말하는 것은 '믿음' 이다. '사랑'을 넘어서는 믿음. 친구, 가족, 연인,
전편들에 비해 분량은 짧고, 반면에 이야기하려는 내용은 많아서, 감동이, 여운이 덜할지도 모르겠다.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다정한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하는 반복되는 이야기는 '믿음' 이고, 이 책에서 이야기해주는 '사랑'을 하고, '믿음'을 주는 방법은 '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사람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 이다.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내어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그 사람을 알게 되고, 이미 사랑에 빠져 있게 된다. 그런 이야기들.

분명한 것은 전편들에 비해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는거.
미스테리, 복수, 미술, 화가, 전생, 사랑, 등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하려다보니, 좀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마르크 레비의 책을 폈다는건 감동에 빠질 준비가 되었다는것이니, 잠시 이성과 현실적인 계산과 논리는 옆에다 치워두고, 책을 읽으면 되는거다.

*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상한 일을 맡아본 형사 필게즈가 피터의 친구로 등장. 그 이상한 일은?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를 너는 믿을 수 없겠지만' 에서의 그 일.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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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5-12-15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제가 맘에 들어하는 단어가 하나 가득 들어있는 리뷰에, 책이군요. ㅋㄷㅋㄷ 조만간 구입할 지도. 아~ 이국적인 것이 좋아요. 항상. 질리지도 않아요

Kitty 2005-12-15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마르크 레비의 새 책이군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___^

비로그인 2005-12-15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묘하게 마음에 드는 표지입니다. 얼른 지금 읽고있는 책들을 다 일고, 읽어봐야겠어요.
 
나니아 연대기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반지의 제왕' 톨킨의 단짝친구였던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읽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많지만 그 중 가장 큰 두 가지는 기독교 알레고리와 책을 읽는 순서일 것이다.


첫째로, 기독교 알레고리. 기꺼이 기독교 알레고리로 책을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아무 배경지식 없이 소년 소녀들의 모험기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아무 배경 지식이 없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나 같은 사람은 어릴때 접한 것이 아니라, 자랄만큼 자라서 본 것인지라, '반지의 제왕' 에 비해 동화책이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 책에서 기독교 알레고리를 안 찾는게 더 어렵다.

두번째로, 책의 순서.
일곱권의 출간순서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 → '캐스피언 왕자'→ '새벽 출정호의 항해'→ '은의자'→ '말과 소년'→ '마법사의 조카'→ '마지막 전투'
에 비해 실제 나니아 세계의 연대기적 순서에 의해 새로 나온 '나니아 연대기' 의 순서는 '마법사의 조카'→ '사자와 마녀와 옷장'→ '말과 소년'→ '캐스피언 왕자'→ '새벽 출정호의 항해'→ '은의자'→ '마지막 전투' 이다.

마지막 권인 '마지막 전투' 과 '새벽 출정호의 항해' 에서 '은의자'로 넘어가는 순서를 제외하고는 뒤섞인 순서이다. 이에 대해 1957년 루이스에게 편지를 썼던 미국의 어린남자아이는 '연대기순으로 읽는 것이 좋겠구나' 라는 답장을 받았으나, 루이스의 편지는 말미에 '어떤 순서로 읽어도 상관없다' 라는 결론이다.  

각각의 독립된 모험과 스토리이므로, 전편의 이야기들이 나올지언정, 맘 내키는대로 어떤 순서로 읽어도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나 개인적으로는, 재미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출간순서를 권한다. 반전이나,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들에 놀라는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연대기적인 순서로 읽는다면, 더 강력하게 기독교적 알레고리를 볼 수 있다고도 하는데, 앞서 첫번째에서 이야기했듯이 기독교적 알레고리를 찾건, 안찾건, 무시하건, 말건 독자의 몫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서인지, 착한이와 나쁜이의 구분이 분명하고,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에서 보았던 악한의 어두운 마음의 소용돌이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다.

새로 개봉하는 '사자와 마녀와 옷장' 에서 루시, 에드먼드, 수잔, 피터 네 남매는 시골의 늙은 교수 집으로 보내지고, 그 오래된 저택의 옷장에서 '나니아' 라는 세계로 가는 입구를 발견한다. 사실상 가장 먼저 쓰여진 책이고 타임지의 100대 영문학 소설에 들어가기도 한 '사자와 마녀와 옷장'은 독자들에게 '나니아' 란 세계를 소개하고 만나게 하는 첫 작품이다. 우리 주위의 평범한 소년소녀인 루시네 남매들은 그곳에서 백색마녀의 지배를 받고 있는 '나니아'를 구한다. 사자의 모습을 한 나니아 세계의 왕인 '아슬란'을 처음 만나 도움을 받는다.  

다음편인 '캐스피언 왕자' 에서
다시 현재의 세계로 돌아와 있던 그들 남매는 나니아 세계가 위험에 닥쳐 그들을 부르자, 다시 마법처럼 나니아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온갖 신기한 말하는 동물과 식물들의 세계였던 나니아는 인간들의 지배에 몸살을 앓고 있고, 진정한 나니아의 왕인 쫓기고 있는'캐스피언 왕자'를 왕으로 올리기 위한 모험이 계속된다.

'새벽출정호의 항해' 에서
수잔과 에드문드는 심술궂은 사촌 유스터스의 집에 방문해 있다가 바다 그림이 있는 액자 속으로 끌려들어가 전편의 캐스피언을 만나게 된다. 아버지대의 충신들을 찾으러 세상끝으로 항해를 하는 그들과 함께 버렁지는 모험. 계속 심술궂고 배배꼬인 유스터스는 그가 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나게 된다.

'은의자' 에서
이제, 처음 나니아 연대기에 나왔던 네 남매는 나오지 않는다.
유스터스와 그의 친구 질은 힘센 못된 친구들에게 쫓기다가 아슬란의 부름을 받아, 나니아 세계로 떨어지게 된다. 사라진 왕자를 찾아 거인나라로, 지하세계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 1편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처럼 마녀와 ( 이번엔 초록) 마녀와 싸우는 유스터스와 질 폴. 그리고 릴리언 왕자. 완전히 용감해진 유스터스와 처음 나니아의 세계에 떨어진 질의 활약상이 최고다.

'말과 소년' 에서는 자신을 팔아버리려는 가짜 아빠 에게서 도망치는 소년 샤스타가 주인공이다. 우연히 만난 나니아에서 납치된 말하는 말 브레와 계약결혼을 피해 도망치는 아라비스와 역시 납치된 말하는 말 휜과 함께 하는 모험 이야기. 이야기의 시대는 맨 첫편 '사자와 마녀와 옷장' 에서 나니아로 떨어져 나니아를 통치하고 있는 피터제왕과 그 동생인 왕과 왕비들이 나니아를 평화롭게 다스리는 시대로 돌아간다.

합본판인 [나니아 연대기]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마법사의 조카' 는 출간 순서대로 읽으면 여섯번째 책이다. 그 동안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루시네들이 장롱을 통해 백색마녀가 통치하는 나니아로 갔던 일. 그 후로 아이들이 나니아와 우리 세계를 오고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마지막 전투' 에서의 의외의 결말은 독서하실 분들을 위해 남겨둔다.  

어른이 되어 어린이책을 읽는데는 감수해야할 위험이 있다. 책 속의 세계가 신기하지도, 책 속에서 하는 말에 혹할만큼 순진하지도 않을뿐더러, 교훈적인 '-해라'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다' 는 류의 이야기에는 쓴웃음이 지어지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 나니아 연대기는 어른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글자가 많고 두껍기 때문만은 아니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름다운 나니아와 나니아의 국민들을 만날때, 두꺼운 책을 손에 쥐나게 들고 읽으면서도 순수한 웃음짓게 만들고, 어린아이들의, 동물들의 입을 빌려 나오는 가장 단순한 진리를 새로이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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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2-13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슬란이 만사해결....그것만 빼면 만족스러웠는데.

하이드 2005-12-13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어쩌겠어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근데, 책 읽는 동안, 나름 웃기고, 즐거웠어용~

Kitty 2005-12-14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니아는 정말 보고싶어요. 영화가 먼저냐 책이 먼저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BRINY 2005-12-14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자와 마녀와 옷장 애니메이션으로 나니아 입문했고, 가장 먼저 손에 넣은 단행본도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어서, 나니아 이야기 시작은 '절대'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라고 외치는 바입니다^^

하이드 2005-12-1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kitty님, 당근 책이 먼저여야죠!!
Briny 님, 저두요저두요!

어릿광대 2005-12-2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두꺼운 걸 벌써 다 읽으셨다니...난 언제 읽나 싶은데ㅜㅜ
 
밤 그리고 두려움 1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코넬 울리치 지음, 프랜시스 네빈스 편집,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코넬 울리치의 단편집이 나온 그날 아침. 나는 이 책을 당장 주문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 밤 그리고 두려움은 'Night and Fear' 2004년 코넬 울리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랜시스 내빈에 의해 편집되었고 모두 열네편의 단편을 포함하고 있다. 그 대부분이 국내에서 처음 접하는 작품들이라 반갑기 그지없다.

1권에 나온 여덟편의 단편 중 '윌리엄 브라운 형사' Detective William Brown' 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읽는 단편들이었다. 추리소설만큼 단편의 묘미를 잘 살리는 장르가 있을까. 스텐리 엘린, GK 체스터튼, 그리고 엘러리 퀸,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등 우리는 걸출한 추리 단편들에 열광한다.

코넬 울리치는 '20세기의 포' 혹은 '그림자의 시인' 으로 격찬된 바 있다.
The night was young, and so was he. But the night was sweet, and he was sour.
밤은 젊고 그도 젊었다.그러나 밤의 공기가 감미로운 데도 그의 기분은 씁쓸했다
'환상의 여인' 의 첫문장이다. 바로 그 첫순간부터, 순식간에 감정이입 시키는 문장이다.

그의 소설의 배경은 대도시, 악인은 완전한 악인이 아니며, 완전히 선한 사람도 없다.
순간의 선택의 기로에 서서 악인이 되기도 하고, 착한사람이 되기도 한다.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 인간의 심리를 어두운 대도시의 흔들리는 불빛마냥 묘사하고 있으며,
째깍째깍 흐르는 멈추지않는 시간과 심리의 변화를 스릴있게 묘사하고 있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놓을 수 없는' 이란 말을 가져다 붙이는 작가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코넬 울리치의 글은 더 단단히, 꽉 마음을 쥐고 해피앤딩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과응보 혹은 카오스적인 허무한 결말까지 놔주지 않는다.

'담배'Cigarette' 에서는 에디라는 덜떨어져 보이는 순진한 남자가 나온다. 갱들의 심부름으로 함정에 빠진 에디가 '담배' 한개피를 위해 천국과 지옥을 오고간다.

'동시상영'doule Feature' 에서 약혼녀와 재미없는 동시상영을 보러 들어간 형사는 광고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동시상영' 을 보고 나오게 된다. 착실하고 용감한 형사의 이야기는 코넬 울리치의 단편집 속에서 조금씩 역할을 바꾸고, 조금씩 상황과 범인을 바꾸어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횡재' The Heavy Sugar' 는 단순한 주제와 줄거리이지만, 코넬 울리치는 이와 같은 단순한 설정에 독자를 사로잡는 재주가 있음이 분명하다.

'용기의 대가' Blue is for Bravery' 는 이 단편집의 단편들 중 가장 재미있는 단편중에 속하는데, '상복의 랑데부'나 '환상의 여인' 등에서도 드러나는 코넬 울리치표 '로맨틱' 을 엿볼 수 있다. 내가 코넬 울리치의 책을 읽을때 기대하는 미덕은 아니지만, 역시나 재미있다.

'목숨을 걸어라' You bet your life'  줄거리도 결말도 조금 싱겁다.

'요시와라에서의 죽음 'Death in the Yoshiwara'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각 작품마다 뒤에 나온 짧은 설명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요시와라에서의 죽음>(잡지 알고시 1938년 1월 29일 호에 게재)은 일본에서 발생한 사건을 다룬 울리치의 유일한 싸구려 소설이며'  뭐, 유일하다는데 주목하고, 그냥 잊자.

'엔디코트의 딸'Endicott's Girl'  '갈피를 못 잡고 동요하는'  존경받는 엔디코트 서장과 충직한 부하직원의 이야기. 재밌다.

'윌리엄 브라운 형사'Detective William Brown'
윌리엄 브라운은 겨우 열네 살 때 모든 분야에서 선두를 달렸다. 그는 재기가 있고 명석하며 생기가 넘쳤다. 그에 반해 조 그릴리는 성실하지만 항상 뒤처지는 그런 녀석이었다.

윌리엄 브라운과 조 그릴리의 이야기이다.
또 읽어도 여전히 가장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코넬 울리치의 소설들, 특히 단편들이 한정된 짧은 시간에서 이루어지면서 서스펜스를 이끌어낸다면,
이 작품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긴 호흡으로(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 않은) 사건의 죽이게 멋지는 결말까지를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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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ca 2005-12-13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요시와라에서의 죽음은 저도 읽고 깜짝 놀랐죠. 이런 작품을 아이리시가;; ㅎㅎ

oldhand 2005-12-13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제 주문했는데 아직도 상품 준비중이어요. 하이드 님 주문할 때 그냥 같이 할걸. T_T

하이드 2005-12-13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그러게, 쿠폰신은 야클님이 주문해야, 그 담날 뜬다니깐요.
 
강변부인 김승옥 소설전집 4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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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무진기행의 단편들 속 현란한 언어들에 허우적 대다가 이 책을 읽으면 홀딱 깬다.
이 책에는 두 편의 중편이 수록되어 있다. '보통 여자' 와 '강변 부인' 이다.
각각 69년, 77년 여성지에 연재되었던 작품(?) 이다.

분명 그보다 전에 발표했던 '무진기행'의 시대묘사가 어색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의 '보통 여자' 와 '강변 부인' 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게, 2005년을 살아가는 보.통. 여.자. 독자를 웃긴다.  딱히 비판을 하려고 마음먹고 리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리뷰 제목을 ' 통속소설도 김승옥이 쓴다면' 이라고 하려 했었으니.

궁금한 것은
여성지에 연재되던 소설이면, 뭔가 그 때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는 공감을 주는 부분이 있을텐데, 그것이 어떤 것이었을지, 흥미롭기 그지없다.

'보통 여자' 에서  수정과 명훈은 선을 보는데, 수정은 숫처녀에 데이트 한번 안 해본 순댕이고, 명훈은 여자가 있는 남자이다. 

명훈의 전화를 기다리는 수정을 놀리는 동생 수란.
' 형부 좋아하네. 벌써 형부야? 으응, 벌써 그렇구 그렇게 됐군. 새침떼기 골루간 ...'
' 뭐라구? 기집애가 못 하는 말이 없어. 엄마한테 이른다.'
' 하여튼 단단히 이분의 일 했군, 흥.'
수란의 말마따나 자기는 명훈한테 좋아졌다는 정도를 지나 반해버렸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 후략)
(13pg)

지하철에서 몇번을 다시 읽었다. 설마, 설마, 정말? 푸하하 
조만간 꼭 써먹어야지 책 모서리를 접었다.

수정의 엄마는 사채를 하는 큰손이다. 장녀인 수정을 수란에 비해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어느 점심 수정과 함께 냉면을 먹으러 나간다.  수정이 냉면 한 그릇을 국물까지 말끔히 비우자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며' 한마디 한다.
' 시집도 안 간 젊은애가 그게 뭐니...... 임신한 여자처럼. 남보기 창피하구나.' 말하면서 주위를 살피는 시늉을 했다.
' 아이, 엄마는! 누가 보기나 하나요. 되려 엄마 말소리 땜에 망신 사겠어요.'
(중략)
' 아이 참, 엄마두! 언제는 적게 먹는다구 야단치시구선...'
' 그야 잘 먹으면 좋기만 하겠니. 하지만 너, 요즘 가만히 보니까 너무 먹어제끼는 거 같아. 그러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어떡하니?'
수정은 문득 어머니의 은근한 말투가 의심스러워졌다.
(중략)
그렇다면, 냉면 사줄테니 순이한테 집 단단히 보라고 이르고 밖으로 나오라고 하신 것도 오늘 나에게서 듣고 싶으신 게 있어서? 냉면을 사준 것도 일부러?
' 엄마!'  수정은 뾰로통해져서 나직이 그러나 쏘듯이 불렀다.
' 왜애?'
' 엄마, 날 의심하고 계시죠? 그렇죠? 아까 하신 말씀 농담이 아니시죠?'
' 의심이라니? 내 무슨 말이 농담이 아니란 말이냐?' 김씨는 시치미를 뗐다.
' 엄마 나빠. 그런 의심을 하시다니. 절 그렇게 못 믿으시겠어요?'
수정은 쏟아지려는 눈물을 억누르기 위해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현관에 있는 '숙녀용' 안으로 황급히 들어가서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을 막았다.
황급한 걸음으로 뒤쫓아온 김씨는 수정의 어깨를 얼른 감싸고 꼭 껴안으며 말했다.
'얘, 수정아, 엄마가 잘못했다. 내가 주책이 없어 괜한 걱정을 해본 거지....' (중략)
' 밥 좀 많이 먹는다구.... 흑흑... 밥 좀 많이 먹는다구...'
간신히 악물고 있던 입이 말 몇 마디를 내놓자마자그만 크게 벌어지며 으아앙 울음보가 터졌다.

중략중략 했는데, 다 읽으면 수정과 김씨의 오버가 우습다.


'때라면 적어도 딸자식인 경우엔 덜 묻으면 덜 묻을수록  좋다. 여자에게서 깨끗한 것, 아름다운 것, 질서를 지키려는 본능, 조화를 유지하려는 욕망을 빼버린다면 도대체 무엇이 남을 것인가. 그런 것이 닳아져버린 여자를 어느 남자가 사랑해줄 것인가? 남자에게서 사랑받을 수 없는 여자보다 더 비참한 것은 없다.' (41pg)

이런 식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들이 '보통 여자' 에서 '강변 부인' ( 강변 부인은 그 제목 답게 자신 안의 불꽃을 주체하지 못하는 유부녀 이야기다) 까지 계속 등장한다.

뭐랄까. 페미니즘 뭐, 그딴 얘기 하려는게 아니라, 멀지 않은 과거의 그 이야기들이 너무나 딴 세상 이야기같이 읽히니 책은 어쨌든 술술 넘어간다.

그러니깐 앞에 얘기했듯이 김승옥이 쓰면 통속소설도 재미있다는거.
하지만 '무진기행' 을 읽고 정말 대단한 작가야! 감탄감복 했던 독자라면, 굳이 나처럼 다음에 읽을 책으로 이 책을 고르지 않기를.
하긴, 나도 여성지 연재소설같은 지극히 통속적인 소설 읽고 싶어서 이 책 집어들긴 했다. 나의 호기심이 충족 되었으니, 그리고 다행히 재미는 있어서 하하호호 웃으면서 금새 읽어냈으니 뭐, 그닥 불만족스런 독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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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5-12-08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풉. 인용구절을 보니까 재미있을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이드 2005-12-08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술 넘어갑니다. ㅎㅎㅎ 음. 웃기고, 야하고 그렇습니다.

mannerist 2005-12-08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옆의 아이콘처럼
나같이 청승가련 순진무구 쾌락만땅 청년은 '이분의 일'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오오~~
가르쳐 주세요오오오~~~ 활짝 앤드 싱긋 ^_^o-

moonnight 2005-12-08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겨요. ^^; 좀 민망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책일 거 같아요.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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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밌는 책을 이제야 읽었다니, 억울하기 그지없다! 정말로, 진짜로,

이라부 종합병원의 이라부 의사와 마유미 간호사를 만나는 것은 '얼떨떨한' 경험이다.
그 얼떨떨함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일까?( 심각.. 곰곰)

번듯한 종합병원의 후계자(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인 이라부 의사는 신경과( 정신과) 의사이다.
지하의 음침음침한 진료실로 환자가 찾아가면,
'들어오세- 요' 라는 '안 어울리게' 경쾌한 인삿말.
일단 들어가면 초글래머 섹시 간호사 마유미가 '비타민 주사' 부터 꽝 놔준다.

'공중그네' 에서 이라부를 찾는 이들은
야쿠자에서부터( 고슴도치) , 성공한 여류작가(여류작가), 공중그네(써커스 공중그네 베테랑), 3루수( MVP 3루수)  그리고  학부 동기 동종업종의 의사( 장인의 가발) 까지 다양하다.

그들이 이라부와 마유미 간호사와 그 모든 '진료'라고 하는 이름의 행.위. 들에 대해 느끼는 건 아마도 ' 황당함' , '얼떨떨함'

일단 외향부터 독특하기 그지없다.
외근나갔다며 마유미짱과 써커스단을 찾은 이라부. (노란색 포르쉐를 타고 다닌다)
'동행한 간호사는 흰 가운이 아니라 표범 무늬 핫팬츠를 입고 왔다. 이라부는 저지 셔츠 차림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2인조다.' (82pg) 베테랑 공중그네 곡예사를 치유하겠다고 간 이라부는 100KG도 넘어 보이는 거구의 몸으로 공중그네를 배우겠다고 떼를 쓰고 겁대가리를 상실한 그 특유의 나이브한 성격덕분에 그럭저럭 스윙을 할 수 있게 되고, 써커스 공연에서도 한꼭지를 맞게 된다. 이라부가 공중그네를 배우는동안 마유미는 표범 우리 옆에서 쪼그리고 나른하게 담배를 피고 있는다. 
공연을 하게 된 이라부의 의상' 2부 공연이 시작되자, 이라부가 표범무늬 무대의상을 몸에 걸치고 나타났다. 프로레슬러처럼 살찐 프레디 머큐리 같은 분위기였다' (121pg)'

그 외에도 샤넬 저지 아래 위 정장,
에르메스 정장에 백구두, 위, 아래가 붙은 이상한 옷( 분명 브랜드겠지)
마유미의 병실에서의 하얀 가운은 초미니에 가슴굴곡이 훤히 들어다보여, 환자들이 가슴 계곡에 얼빠져 있는 동안 주사를 꽝! ' 아야야야야' ( 주사 실력도 출중해서 매번 환자를 아프게 한다)

이 책은 눈물 쏙빼게 웃기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맛이 가 보이는 이라부를 찾는 이들은 적어도 처음 그를 찾을때는 (그가 맛 간 의사임을 모를‹š는) 엄청난 고민을 가지고 있다. 3루수가 1루 송구를 못하게 되어버렸다던가, 야쿠자가 뾰족한 것에 공포증을 느끼게 되어버렸다던가, 작가가 글을 못 쓰게 되어버렸다던가. 심각해야 하는 의사가 장난을 치고 싶어 미칠지경이라던가.

그들은 치유된다. 그들 마음의 짐을 놓는다. 카타르시스는 없다.  그들이 화려하게 재기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라부 덕분에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그들의 앞날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나도 알지 못하는 마음의 짐을 들고 이라부를 찾고 싶다. 이라부는 어떤 처방을 해줄까? 상상만으로도 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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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2005-12-06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라부에게 처방받고 싶어요^^

ceylontea 2005-12-06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아무래도 읽어야 할듯... --;
여기저기서 재미있다는 원성(??? ^^)이 자자하네요...(물론 알라딘 안에서 들은 이야기지만요..)

mong 2005-12-0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읽고 한동안
이라부 처럼 이야기 한다고 혼났어요 ㅎㅎ

울보 2005-12-06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정신과의 문을 두드려볼랍니다,,

하이드 2005-12-0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정말요. 꼭 한 번 가서 놀고 싶어요.
MONG님, 흐흐 이라부처럼 이야기하는게 어떤걸까 상상하고 혼자 실실 웃고 있습니다.
실론티님/ 그러게요! 저, 그 원성 애써 외면하고 이제야 읽어서 얼마나 억울한지 몰라요. 어여 읽으세요. ^^ 1000원 쿠폰에 '인더풀' 도 주고 있어요!!
그림자님/ 같이 갑시다고요!

blowup 2005-12-06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어서 오히려 리뷰를 못 쓰겠는 책인데, 용케 잘 쓰셨어요. 이거 미니시리즈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생각했어요.

야클 2005-12-06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유미 간호사를 찾습니다.

아영엄마 2005-12-06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풋~ 야클님이라면 그 간호사 보러 꼭 가셔야 할 듯~ ^^;;

moonnight 2005-12-06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그동안 저도 계속 망설였던 책인데 꼭 읽어야 겠네요. 리뷰가 이렇게 재미있는데요 ^^ '이해하기 힘든 2인조' 매력있어요. >.<

비로그인 2005-12-06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말이죠, 일단 주사놓기를 좋아하는 이라부가 상당히 괴짜스럽다 생각했는데 제가 어디 한구석이 아프게 되자 저역시 이라부같은 의사를 선호할 것 같습니다. 저도 일단 주사부터 맞고 싶어요.

하이드 2005-12-06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어여요. 저도, 왠지 망설였던 책인데, 게다가 쿠폰이랑 '책 한권더' 까지 마구 날리니, 더 의심스럽잖아요. 근데, 웃길뿐더러 감동도 있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한 책이었어요.
아영엄마님, 풉. 정말요. 야클님, 은 마유미짱을 만나셔야죠.
나무님, 보는내내 작가가 드라마화를 노리지 않았을까 생각되더라구요. '들어오세-요' 웃기게 말하는 이라부 의사의 목소리가 귀에 엥엥거렸구요, 또 에피소드들도 무한할테구요. 엽기적인 마유미짱도 그렇고, 작가가 드라마 구성작가 했었다는데, 그 탓일지도 모르겠어요.
여튼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

하이드 2005-12-06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주드님. 네. 이라부같은 의사 찾아가서 주사 꽝 맞고 몸도 마음도 쾌차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루(春) 2005-12-06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치겠다. 계속 안 사고 버티고 외면하고 있었는데... 내년 1월에 살까? ^^

하이드 2005-12-06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폰- 하고, 한권 더- 는 언제 없어질지 몰라요- 하루님-

Kitty 2005-12-07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읽어보고 싶네요.
그런데 지금 보니 한권 더-는 없어졌나봐요? ㅠ_ㅠ

하이드 2005-12-07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러네요. 저 이 책 산지 얼마 안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값하는 책입니다. ^^ 쿠...쿠폰 있을때!

BRINY 2005-12-0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것도 겨울방학 독서 리스트에 올려놔볼까요.

깐따삐야 2005-12-07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인의 가발'을 읽으며 학창시절의 선생님 한 분을 떠올렸습니다.
대머리 위에 감질나게 얹혀 있던 머리카락(왼쪽 혹은 오른쪽에서 빗으로 끌어온)을 확 손으로 흐트러뜨리고 내빼고 싶었던!

2006-12-27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