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내는 법
신숙옥 지음, 서금석 옮김 / 푸른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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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숙옥 교수의 이 책이 트위터에 뜬 걸 보니 재미있어 보였다. 처음 보는 저자인데, 책이 꽤 많이 나왔고, 모든 책이 절판이다. 알고보니, 극우 인사와의 토론 동영상으로 나도 봤던 그 분이다. 출판사에 문의 있었나본데, 판권소멸로 재계약, 재출간 계획은 없다고 한다. 알라딘 현재 중고가... 


저자는 재일교포 3세이다.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하지만, 자신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화를 내고 있고, 화내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없으며, 결코 화내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지

 

"화를 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첫 챕터에 나온 '나는 매일 화내고 있습니다' 에 요약되어 나오는 저자의 하루는 요즘의 뉴스를 보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눈 뜨자마자부터 눈 감기전까지 화나는 일 투성이다.  


저자는 도쿄에서 나서 자랐으며, 3대에 걸친 토박이다. 어느 영상을 보니, 시부야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조선인으로서 차별받고, 극심한 생활고로 어머니와 형제가 오사카의 친척 집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배가 고파 견디기 힘들 때면 어머니와 둘이 오사카 거리를 걸었고, 그런 날 밤이면 어머니는 울면서 몇 번이나 두 손으로 어린 셋짱 (저자의 일본 이름 세스코) 의 목을 졸랐다. "세쓰코야, 나하고 죽자."

죽는 것은 싫었지만 어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항상 "응."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가난했고, 학교에 다니기도 힘들었고, 밖에서는 북한에서 배신, 한국에서 배신, 일본의 외면, 무시. 안에서는 오빠만 아끼고 딸인 저자는 6살 때부터 일해서 번 돈을 모두 집에 갖다 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목을 졸랐지. 이 책을 다 읽어도 모르겠다. 어릴때부터 적대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자란 저자가 어떻게 굳세게 자라 맨 앞에서 싸우는 행동하는 날카로운 지성이 되었는지. 

작은 힌트들을 책에서 보지만, 무엇이 저자의 힘이 었는지 내내 궁금하다.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할 때 반응의 8-90 퍼센트가 항의였으나 끝날 즈음에는 90퍼센트가 지지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 처음에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면 반드시 지지자가 나타난다. 익명으로 제 이름조차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상대를 설득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는 상대편과 어떻게 빨리 손을 잡을 수 있는가가 승부를 결정짓는 요인"이다. 


어떻게 화낼 수 있게 되었는가? 

'연결' 을 통해서. 저자의 울분은 다른 재일 동포의 울분과 통하고, 동포 선배의 눈물, 부모의 눈물, 친구의 눈물, 조부모의 눈물, 여자의 눈물.. 들을 보아 온 경험이 일상생활을 통하여 쌓아 올려지고 정리되어 자신 속에서 나름대로 확고한 기준이 세월을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화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낼 수 있으려면 옳은 것, 선량한 것, 아름다운 것, 공평한 것, 합리적인 것 등에 대한 가치관이나 기준이 자신 속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 기준이 명확하면 할수록, 그 기준에서 벗어난 타인의 행위나 발언에 대하여 화를 낼 수가 있다." 


저자의 기준은 '나보다 약한 사람, 없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준다. 도와준다'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 받아서는 안된다' '경제가 약육강식의 자본주의라면, 정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자를 구제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학문은 배울 기회가 없었던 사람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폭력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등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는 기준이 "체험을 통하여" 하나씩 쌓아 올려져야 비로소 화를 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 없었고, 바람막이 또한 없었다. 사면초가 속에서 자신만을 의지하고 살아왔다고 한다. 


"혼자서 세파를 헤쳐 나아가는 자는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그의 과거와, 그 세파를 헤쳐 나와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흔한 말조차 무겁고 단단하게 다가온다. 


화의 유형에는 분화형, 불평불만형, 방화형, 현관매트형, 그리고 문제해결형이 있다. 

이름 보면 대충 어떤 분노인지 알 수 있는데, 현관매트형만 말해보면, 분노를 참고 참고 참다가 터트리는 테러형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화는 '문제해결형' 으로 분노의 근본 원인을 찾아 신속하게 대응하는 유형이다. 


" '화내는 것'은 언어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표현할 언어를 잃었을 때의 상태이다." 


" '화내는 것'은 인간관계를 만들고 이어 가기 위한 것이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인간관계를 끊기 위한 것이다." 


저자가 화내는 대상은 주로 '사회의 부정'에 대한 것이었고, 상대는 권력이거나 조직이었다. 마지막에야 맞서게 된 것은 가족과의 관계였다고 한다. 10대 무렵부터 집에서 경제적 기둥이었고, 쉴 사이 없이 일하며, 가족 여행이나 음식점 예약까지도 맡아서 했다. 누구 하나 도와주거나 대신해 주지 않으며 정해진 음식점에 대한 불평은 모두가 했다고 한다. 부모는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화를 내는가? 저자의 답은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이다. 

모욕을 당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이 이미 자신이 아닌 상태이고, 자신을 혐오하면서 자신을 위해 화를 낼 수는 없다. 


화내는 법과 화내는 사람을 상대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자기계발서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인가 싶지만, 저자가 드는 사례들이 박력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기억해야지 했던 부분은 '사회에 대한 분노는 어떻게 표현할지' 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느 순간, 저자가 상대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닌 '무지' 가 된다. 

무지와의 싸움은 시위와 집회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일부 엘리트만이 배워 무지에서 해방된다 하더라도 약자는 도움을 얻지 못한다. "이제 권력만이 적이던 시대는 지났다." 이 책이 나온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에도 굉장히 와 닿는 말이다.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 '무지'한 사람과 이웃이, 약자를 배제시켜 가고 있는 현실에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 


"다문화공생의 정보(지식과 노하우 등)를 어떻게 생활 속에 스며들게 할 것인가가, 정치적인 힘을 가질 수 없는 (선거권조차 없는) 나의 승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악의를 지닌 확신범을 설득하고 있을 시간이 있다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상대와 한시라도 빨리 손을 잡자. 그것이 안전망이 되기 때문이다." 


1) '우'냐, '좌'냐 하는 과거의 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2) 공통점이 1퍼센트만 있다면 그 점을 지지한다 (비록 활동이 미숙할지라도).

3) 정보가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시대도 환경도 변하고 있기에 선배 세대와 똑같이 싸울 수는 없다. 현재에 실패와 학습을 반복하며 나름대로 싸워왔고, 싸우는 모습을 후배 세대에게 보여주는 것이, 차별과 싸우는 사회를 이어 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후배에게는 후배 시대의 환경과 가치관과 투쟁 방법이 있다. 그것을 지지하고 뒷받침하는 것이 선배, 즉 어른의 역할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뒤에 이어지는 저자가 직접 계획하고 운영했던 활동 사례들은 각각이 다큐나 영화로 만들어질법한 이야기들이다. 

이시하라 도지사와의 투쟁, 우산 대행진, 다문화 탐험대, 일일 홈스테이, GOGO 기시모토 밥 딜런을 향하여 등이 그것이다. 


오델로의 흑말을 백말로 뒤집듯,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 그렇게 가장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미력해 보이지만, 주변을 끌어들여 권력과 권력을 따르는 '무지'에의 대항. 이 '화내는 법'은 신념을 가진 약자들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한 것이다."라든지 "강간하는 남자는 원기 왕성해서 좋다>"라는 말을 뻔뻔스럽게 내뱉는 ‘영감쟁이‘를 설득하고자 한다면, 인생이 300년이라도 짧다.

무지와 정열 때문에 차별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화석이다. 장식품으로 놓아둘 수밖에 없다.

악의를 가진 자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느니, 서로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빨리 손을 잡는다. 손을 잡으면 고독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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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방식 - 수전 손택을 회상하며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홍한별 옮김 / 코쿤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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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탁의 책을 잔뜩 모아뒀다. 지금 보다보니, 아들 데이빗의 회고록도 있음. 시그리드의 회고록 읽고 읽기 좋겠다 싶다. 수전의 책은 읽지 않았지만. 


시그리드 누네즈의 Sempre Susan, A Memoir of Susan Sontag은 묘하다. 수전과 일했고, 수전의 아들과 사귀었고, 그들과 같이 살았던 시그리드의 문학계 가장 밝은 별 중 하나였던 수잔에 대한 회상이다. 


악의도 선해도 보이지 않는 어조로 수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글을 보고 수전의 괴팍함이나 데이빗과의 관계로 인해 수전이 싫어지지는 않은걸 보면, 내가 느끼는 수전의 아우라가 너무 강하거나 저자가 수전을 좋다 싫다 단순히 말할 수 없는 복합적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긍정적인 것이 한 스푼이라도 많았던게 아닌가 싶다. 


글은 평범하고, 이야기는 수전의 이야기가 흥미로운거지, 그 외는 평범하다. 고 말하고 싶은데, 가독성이 좋고, 글에 빠져들어 헤어나기 힘들었던 걸 보면, 글도 좋고, 번역도 잘 되었다. 


저자의 글보다 저자가 쓴 수전의 이야기, 저자의 눈으로 보고 느낀 수전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 수전은 어린 시절을 따분하게 생각했고, 아동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으며, 따분하고 아무 가치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 데이비드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수전'이라고 불렀고, 아버지 필립 리프도 이름으로 불렀다. 그가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했다. 

* 호기심은 수전의 글에서 두드러지는 미덕이고 수전 역시 호기심이 끝 없는 사람이었지만, 자연 세계에 대해서만은 아무 관심이 없었다 .아파트에서 보이는 전망에 감탄하지만 길을 건너 리버사이드 파크에 갈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수전은 항상 바지만 입었고(보통 청바지) 굽 낮은 신발을 신었다(보통 운동화). 백은 절대 들지 않았다. 왜 여자들이 백에 집착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내가 늘 백을 들고 다닌다고 놀리곤 했다.왜 여자들은 백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남자들은 안 들고 다니잖아? 왜 여자들은 스스로 짐을 지우지? 대신 남자들처럼 열쇠, 지갑, 담뱃갑이 들어갈 만큼 큼직한 주머니가 있는 옷을 입으면 되지 않아? 

* 수전은 키가 큰 것을 마족스러워했다. 페미니즘 학회에 갔을 때 저메인 그리어를 보고 질투를 느꼈단다. "그곳에서 나보다 키가 큰 유일한 여자였어." 

*수전은 운동은 전혀 안 했다. 평생 한 번도 건강한 적이 없었단다. 그래도 날씨가 춥지 않을 때, 그리고 도시에 있을 때는 걷기를 좋아했다. 수전은 느릿느릿 느긋하게 약간 평발처럼 걸었는데 우아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멋있었다. 걸을 때는 턱을 높이 들었고 청바지 허리 부분이나 주머니에 엄지손가락을 걸고 걸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나온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가 좋아하는 여성 작가들의 책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좋다. 

"수전은 버지니아 울프가 천재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처럼 울프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은 너무 빤하고 순진하다고 보았다. 게다가 울프의 어떤 면을 (나는 그것이 울프의 정신적, 신체적 병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울프의 나약한 면이라고 생각한다) 수전은 못 견뎠다." 


저자는 좀 내향성의 사람이었던건가 싶은데, 데이비드와 수전의 외향적인 면과 어울리며 힘들었던 것 같다. 


" 수전과 데이비드 둘 다 나의 수도사 같은 면을 못마땅해했다. 그들 눈에는 활기와 호기심이 결핍된 것처럼 보였다.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이 그러면 쓰나! 데이비드는 그걸 어떤 결점으로 보았고 그냥 내버려두면 내가 아주 따분한 사람이 될 거라고 했다. 수전은 틀어박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본성이 냉정하고 이기적이라고 믿었다. 나는 달라져야 했다." 


읽으면서 수전이 ADHD 였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던 부분


"수전은 늘 무언가에 정신을 쏟았다. 주의를 끄는 것이 없으면 정신이 멍해져서 마치 방송 송출을 안 할 때 텔레비전 화면에 뜨는 노이즈 같은 상태가 된다고 했다. (..)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한편 그 말이 수전의 과잉 활동과 늘 누구와 같이 있으려 하는 과도한 욕구를 설명하기도 한다. 왜 시골을 싫어하는지, 왜 다른 사람처럼 일하다 멈추고 쉬는 게 안 되는지도. 그 텅 빈 화면이 무척 두렵다고 수전은 확고하게 말햇다. " 


수전에 대한 나쁜 말이 잔뜩 써져 있는데, 이 책을 읽고, 수전이 더 궁금해지고, 얼른 수전의 책을 읽고 싶어졌다면, 저자가 나쁜 말처럼 쓴 것이 나쁜 말이 아니었던 것 아닐까. 책을 다 읽지 않고 (읽다 만 책들만 잔뜩이라) 궁금해 하는건 아무 의미 없으니, 얼른 가서 책이나 읽어봐야겠다. 데이빗의 책도 꺼내두었다. Swimming in a Sea of Death 어머니의 죽음. 수전의 암 투병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그러고보니, 집에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기록한 아주 편안한 죽음도 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도 있다. 읽을 책이 잔뜩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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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지향 -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 성장 거부 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 민들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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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은 학생들이 묻는 '공부는 왜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공부로부터의 도피'가 '노동으로부터의 도피'로 이어짐을 이야기하면서 일본 사회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와도 많이 겹친다. 


아이들은 묻는다.  "선생님, 이걸 배우면 뭐가 좋아요?" " 이걸 배우면 뭐에 도움이 되나요?" 

아이들은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왜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 거꾸로 묻고 있다. 


이에 대해 경제성과 합리성으로 동기부여해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면 이런저런 좋은 점이 있다' 고 실용적으로 아이들을 유도한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돈을 많이 벌고, 예쁜 여자, 돈 잘 버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일부 제대로 된 부모는 아이들의 질문을 받고 어처구니 없어 말문이 막힌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의 '이걸 배우면 뭐가 좋아요?'나 '이걸 배우면 뭐에 도움이 되나요?'는 딱히 요즘의 경향도 아니고, 이상한 질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용적인, 아니, 탐욕에 가득차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나쁘다. 글자를 왜 배우나요? 라는 질문에 글자를 왜 배우는지, 글자를 배우면 뭐가 좋은지 이야기해주는 것이 어렵나? 실용적이고, 경제적 합리를 찾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면서, 그 눈으로만 보기 때문에 대답 못하는 것이 아닌가? 


저자는 아이들이 소비의 주체가 되면서 소비자 마인드로 모든 것을 등가교환 하려 하고, 계산적이 된다고 비판하고 싶은 것 같다. 아이들이 "나는 이만큼 지불하는데 선생님은 무엇을 줄 건가요?" 라고 묻고 있다고 아이들의 마음을 어른의 눈으로 짐작하며, 


"그런 질문이 아이들한테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이 교육 제도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라고 전제부터 틀려있다. 


" "왜 공부를 해야 하나요?" 라고 묻는 초등학생은 '자신이 배움의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당한 사람이 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기가 누리고 있는 특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만이 의외의 질문을 할 수 있다. "


라고도 말하는데, 요즘 아프간- 탈레반 사태에 이어 '나는 말랄라다'를 읽고 있어서 처음 읽을 때는 여기에 좀 혹했다. 말랄라는 학교에 간다는 이유만으로 총을 맞았다고. 공부하지 못하게 하려고 학교를 폭파시켰다고. 하면서. 근데, 다시 읽으며 생각해보니, 그것은 답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말라라 같은 사람도 있는데, 니들은? 응? 말이야. 이런 마음의 답변이여서는 곤란하다.  


"이런 질문에 대해 지금의 어른들은 그런 질문은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물리치지 못한다. 말문이 막혀서 허둥대거나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실용적인 이유를 들어서라도 아이들을 공부시키려고 한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한 질문이 어른들을 아연실색케 하거나 또는 유아적인 지성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무의미한 답변을 끌어내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을 일찍부터 배우게 된다. 이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과정이 아이들에게 일종의 성취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등가교환 하는 아이들'이 탄생한다. 이 것이 이 책의 화두이자 주제이다. 


아니야, 누가 봐도 어른들이 잘못했잖아. 아이들이 "소비자 마인드"라는 프레임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이들의 질문에 실용적인 이유를 대는 어른들이 잘못했고. 사실, 이걸 아이들이 묻기도 전에 어른들이 하는거 아닌가. '너 공부 열심히 해야 예쁜 여자 만난다' '공부 잘해야 좋은 남자 만난다' '공부 잘해야 돈 많이 번다' 라고, 어쩔수 없이 실용적인 답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아이들이 겪어보지 못해 알지 못하는 '미래들'로 협박하잖아. 


아이들은 아무 질문이나 해도 된다. '등가교환 하는 아이들'이 탄생했다면, 그건 질문에 답한 어른들의 거울일 뿐이다. 


왜 공부해야 하나요? 는 평생 공부 하는 인간의 평생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추구해야 할 질문이고, 그것이 아이때 시작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비판으로 시작했지만, 이 책에서 좋은 부분 많았다. 


저자는 요즘 아이들과 삼십 년 전 아이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처음 사회관계에 들어설 때 노동을 통해 들어나는가, 소비를 통해 들어가는가의 차이라고 한다. 어릴 때 가사노동에 참여하면서 밥 먹고 그릇 치우거나, 화초에 물 주거나 하는 소소한 가사노동으로 부모의 칭찬을 받으며 처음으로 가족 구성원으로 인지되며 인정을 받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져가며 사회화 과정을 밟아갔다고 한다. 


"아이들은 좀더 자라면 가사노동에 머물지 않고 바깥 사회활동에도 참가하는데, 타인에게 뭔가 도움되는 일을 하면서 그에 대한 감사와 사회적 승인이라는 대가를 받는 교환 행위를 통해 자기 정체성의 기초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는 가사노동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노동의 작은 분담자로서 사회관계 속에 자기를 등록하면서 아이들은 먼저 노동 주체로 자기를 세운다." 


이런 기조의 이야기들에 공감한다. 뒤에 나오는 '노동으로부터의 도피' 에도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고, 아이때부터 필요한 사회화를 배워나가야 한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는 '공부' 와 '내가 이 돈 받고 일하느니 일 안 하고, 돈 안 쓰고 만다' 라는 니트족의 합리성은 성립되지 않는다. 사회 관계 속의 나를 설정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본주의의 쳇바퀴가 감당할 수 없이 돌아가는 것에 대한 피로도가 극도로 높아져서 벗어나는 사람들, 튕겨나가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불쾌함' , 즉 "기분"이라는 화폐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불쾌함은 화폐로 유통되는데, 아이들은 이 등가교환을 어릴 때부터 부모를 보며 배운다.


"아이들은 '타인이 초래하는 불쾌함을 견디는 것'이 가정 내에서 화폐로 기능한다는 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습득한다. 현대 일본의 가정에서 화폐 대신에 유통되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생애 처음으로 '화폐'로 인지하는 것은 타인이 존재한다는 불쾌감을 견디는 것이다." 


일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밤늦게 돌아와 온몸으로 표현하는 '피로감' 으로, 자신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혹한 노동에 종사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아버지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언짢은 얼굴을 함으로써 자신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을 호소하는 어머니를 보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학교와 학원을 가고, 공부를 하면서 '온몸으로 피로와 불쾌함을 표현'해서 자신도 집안에 보탬이 되고 있음을 과시한다. 


"가족 중에서 '누가 가장 집안에 보탬이 되는가'를 '누가 가장 기분이 나쁜가'로 측정한다. 이것이 현대 일본 가정의 기본 규칙이다. '불쾌함'이라는 카드를 가정에서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이 자원 배분과 결정의 순간에 가장 강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내가 가장 힘들고 불쾌해. 피해자 경쟁을 하게 되는 것. 좀 웃긴 얘기였지만,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불쾌함' , '기분' 이라는 화폐가 지금 이 사회에서 어떻게 통용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것이 어떻게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흐리는지를 생각해보면 각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해야할지 답을 찾을 수 있을것이다. 


배움에 대한 이야기들도 좋았다. 


"배움이란 자기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모르고, 그것이 어떤 가치와 의미와 유용성을 갖는지도 말할 수 없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오히려 자기가 무엇을 배우는지 몰라서, 그 가치와 의미와 유용성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배움이 일어나는 동기가 된다. (..) 배움이란, 배우기 전에는 몰랐던 잣대로,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나 의의를 측정할 수 있는 역동적인과정이다." 


'공부로부터의 도피'와 '노동으로부터의 도피' 사이에 '리스크 사회의 약자들' 이 있다. 

이 챕터가 이 책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준다. '학력은 더 이상 취직의 보증수표'가 아니고, '노력과 성과가 일치하지 않는 사회' 라서 '공부와 노동으로부터의 도피' 가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부유층 가정의 아이들이 빈곤층 가정의 아이들보다 학력이 높게 나온다. 그 이유에 대해 보통 부유한 가정이 자녀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그보다 더 내밀한 이유가 있다. 바로 부유층 자녀들은 높은 학력을 딸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이익을 회수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지만, 빈곤층 자녀들은 학력의 효용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학력의 차이'가 아니라 '학력에 대한 신뢰의 차이'가 있다. '노력의 차이'가 아니라 '노력에 대한 동기부여의 차이' 이다. '학력의 차이'는 간단하며 계량이 가능하지만 '학력에 대한 신뢰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취급하기 곤란하다. '목표하는 바를 위해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받는다' 는 것을 온 가족이 믿고 있고, 실제로 그 노력의 성과를 향유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과 '공부해도 소용없다'고 공언하고 지금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에 있는 원인이 자신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을 비교하면 '노력에 대한 동기 부여'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덧붙이면, 노력에 보상을 받지 못해도 괜찮다. 다시 하면 된다는 경험을 가진 것과 이 노력이 만약 실패하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 망하는 것이라는 것을 체득한 것의 차이도 있겟다. 


후자가 저자가 말하는 '리스크 사회' 이고, 현대 사회는 '리스크 있는 삶을 선택한 개인'의 책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 문제임을 지적한다. 리스크 사회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상부상조 집단' '친밀권' 등을 제안한다. 


재미있는 것이 옛날 책이고, 일본 사회의 기득권 남자가 꼰대말 하는 것 같다는 평이 있는 것도 이해되는데, 이런 지점들에서 공감하게 되는 바로 지금의 이야기들이 있다. 이 저자의 위치에서 페미니즘 어쩌고, 요즘의 페미니스트들이 어쩌고 하는 건 좀 콧방귀 끼게 되지만, '고립'과 '자립'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고, 지금, 그리고 앞으로 할 중요한 이야기이다. 저자의 통찰력이든, 시대가 돌고도는 것이든, 둘 다이든 말이다. 


'고립된 인간'을 '자립한 인간'으로 내세우는 것이 198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사회에서 합의를 넓혀갔다고 한다. 

고립된 사람에게 타인은 그의 자유와 자기실현을 방해하는 자이고 타인의 존재 자체가 주체의 자유를 제약하는 일이 된다. 고립된 주체는 타인의 공간을 자신이 이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간주할 수 없다. 고립된 주체에게는 그 외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적이라면, 자신의 주체를 방해하는 사람이고, 친구라면 지원과 연대의 의무가 발생하고, 노예라도 부양과 관리 따위의 번잡한 일을 동반한다. 반면 자립한 사람은 다르다. "나는 자립했어" 라고 얘기하는 것은 소용없다. "그 사람의 판단과 언행이 적절하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확증되어 주변 사람들이 계속해서 조언과 지원과 연대를 부탁해올 경우 비로소 그 사람을 자립한 사람이라고 불러줄 수 있" 다. 자립하는 것이 자신의 선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립해서 주변을 침범하고, 침벙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변과 사회가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침범'이라는 말이 좀 싫을 수도 있겠지만,  타인과 내 쪽에서 먼저, 그리고, 타인으로부터의 연결을 주고 받을 수 있음을 뜻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전제는 절대적이고, '자립'을 바라는 사람은 '고립'과 '자립'을 구별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마지막에 이야기하는 '친밀권' 중 자신이 구상하는 '도장 공동체'도 친밀권을 만드는 시도라고 했다. 자신의 신체와 돈을 써서 친밀권 모델을 만들겠다고.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대충 다 했으니, 여생은 지역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도장에서 보내며 무예를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는 무예를 가르치고, 집에서 지내기 어려운 아이들이 있으면 청소와 가사일을 시키고 도장에서 숙식 해결하며 자립할 수 있게 돕고, 학문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으면 원서강독을 하고, 철학과 문학도 가르치며, 주말이 되면 친구들과 모여 파티를 열고 마작을 하는 열린 학교 같은 서당이나 도장 같은 커뮤니티의 거점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이 그동안 사회에서 배우고 가르치고, 얻은 것을 사회로 돌려서 연결시키는 멋진 미래라고 생각한다.    


우치다 타츠루의 책 더 찾아봐야겠다. 재미있었다. 이 책 읽으면서 '노동' 에 대해 생각하고, 요즘 뜨는 '파이어족'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린다 그래튼의 '100세 인생'을 읽고 있는데,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장수 사회가 오고 있어서 '노동' 에 대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이 책 읽으니, 미하엘 엔데의 '엔데의 유언' 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교육의 효과는 졸업 시점에서 취득하는 단위 수와 성적, 자격, 전문지식, 기능 따위만 잇는 것이 아니다. 고등교육에서 배운 좀더 중요한 기법이라고 할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은 종합적으로 수치화하기가 불가능하다. 식견, 판단력, 감수성, 취미 같은 것들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자신의 몸에 배게 됐는지 본인도 잘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학교에서 익힌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는 능력‘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인 메타능력이다. - P160

우리가 화폐와 상품을 교환하는 데 열중하는 이유는 교환이 안정적으로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 교환의 장을 밑에서 받쳐주는 여러 제도들과 인간적 자질을 개발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환 자체보다 오히려 교환의 장을 두텁게 하는 것. 바로 여기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교환의 목적은 등가의 물품을 교환하거나 싼값으로 고가의 물품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교환을 계기로 그것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인간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 P167

경제 관계의 배후에는 교환을 성사시키고 유지하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노력들이 있습니다. 사실 그 노력들이 경제활동의 본래 목적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경제적 합리성은 경제 활동에 부가적으로 따르는 많은 인간적 가치를 배제합니다. 따라서 군더더기 없이 아주 깔끔합니다. 하지만 시야에서 배제된 탓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이 많습니다. 교육도 타격을 입었고 노동, 육아도 그렇습니다. - P169

소음을 신호로 변환하는 과정, 이것이야말로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생각은 일단 보류하고, 아직은 이해가 안 되지만 주의 깊게 듣고 있으면 언젠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경의와 인내심을 갖고 메시지를 맞이해야 합니다.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로 귀 기울이지 않으면 소음은 결코 신호로 바뀌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소음은 소음이고 신호는 신호라는 식으로 구분하는 살마에게는 소음이 신호로 변하는 순간이 결코 찾아오지 않습니다. - P172

오늘 리스크 헤지에 대해 많은 말을 했지만, 친밀권은 리스크 헤지를 위한 공동체 이야기였습니다. 오늘날 미혼과 비혼이 늘고 있다고 하지만, 고학력에 고수입인 사람들의 결혼율은 더 높습니다. (..) 사회적인 약자들일수록 조력자가 없는 시스템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가족을 만들 수 없는 사람은 병에 걸리거나 장애를 입게 되거나 노인이 되었을 때 곁에서 지원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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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3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3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3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7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7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1-10-1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thkang1001 2021-10-13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 2021 뉴베리상 대상 수상작 꿈꾸는돌 28
태 켈러 지음, 강나은 옮김 / 돌베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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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베리수상작들을 읽고 있다. 2021년 수상작은 할머니가 한국인인 태 켈러의 전래동화 이야기이다. 

전래동화인 해님달님 모티브가 작품 내내 반복되고, 단군신화까지 연결되는 굉장히 멋있는 작품이다. 


원서에는 grandma 가 아닌 Halmoni로 나오는 등 한국적인, 근데, 뭐랄까, 미국인이 본 '한국적'인 면이 없지 않은, 혹은 수십년 전에 미국으로 건너가 멈춘 그 당시의 문화라서 지금 여기서 보기에 낯설지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용감한 자매와 엄마, 할머니가 작품의 중심 인물들이다. 


할머니가 아파서 마지막을 함께 보내기 위해 엄마와 자매는 할머니가 사는 곳으로 가게 된다. 화자이자 동생인 나는 호랑이를 보게 되고, 할머니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호랑이를 잡기 위한 덫을 만든다. 


할머니는 미신을 많이 믿는 사람으로 나온다. 나쁜 것들을 몰아내기 위한 쑥과 같은 약초, 쌀을 뿌린다던가, 부적이 되어 지켜주는 목걸이 등을 애용한다. 


언니와 나는 할머니의 해님달님에 나오는 자매 이야기를 좋아했고, 그 이야기는 작품 속에서 각기 다른 결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변주된다. 


내 눈에만 보이는 호랑이는 할머니가 훔쳐갔던 이야기를 돌려주면 할머니를 치료해주겠다고 한다. 나는 이야기가 담긴 유리병을 하나씩 열면서 호랑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할머니가 감추어왔던, 억눌러왔던 이야기, 숨겼던 이야기를 놔주는 과정은 끝까지 읽고 나면 먹먹하다.


"그래도요 할머니, 슬픈 이야기를 숨기는 건 안 좋은지도 몰라요.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은 게 되는건 아니니까요. 숨긴다고 해서 과거가 지워지는 것도 아니에요. 갇혀 있는 것뿐이지." 


저자는 처음 할머니에게 듣던 해님달님 이야기를 모티브로 글을 쓰기 시작해서 하나씩 조각들을 찾아나간다. 


저자는 한국의 건국 신화를 좀 더 파고들다가 문승숙이라는 저자가 쓴 '민족 공동체 만들기'라는 논문을 만난다. 


 "곰이 인간 여자로 변하는 내용에는 깊은 사회적 의미가 깔려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난과 시련을 인내함'으로 요약되는 여성다움이다."


이 논문을 보고, 마지막 조각을 찾아 저자는 이야기의 온전한 모습을 그리게 된다. 


"곰이 한국 여성, 또는 고생과 말없는 인내가 핵심인 어떤 여성다움을 상징한다면 호랑이는? 

고생을 거부한 대가로 추방을 당한 여자는?

그리고 그 여자가 다시 돌아온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 여자는 무엇을 원할까?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우리 전래동화에는 호랑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여성 저자에 의해 새로 쓰인 호랑이 이야기를 담게 될 것이다.   





변색머그 이벤트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 책과는 정말 잘 어울리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호랑이도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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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4 2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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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없는 아이들 -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은유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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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은유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미등록 이주아동을 포함한 관련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책으로 묶어냈다. 


책을 읽기 전 나의 짧은 지식은 '불법체류자' 각 분야에서 필수노동력이 된지 오래이고, 불법을 빌미로 열악한 환경에서 열악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는 것. 이들의 위치가 올라가야 한국 노동자들의 위치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화재나 사고로, 폭염이나 아주 추운 날 동사로 그들의 열악한 거주지를 보여주는 뉴스에서나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이주노동자들이 데리고 온, 혹은 한국에서 태어난 이주아동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책을 읽기 전 생각해보지 못했고, 책을 읽으면서 이게 말이 되는지, 황당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썩은 고리들 중 하나를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신분증 없이 사는 삶

얼마 번 동생이 공항에 가는데 신분증이 없어서 마침 가지고 있던 주민증을 찾아 준 적이 있다. 그 신분증마저 잃어버렸지만, 생각해보니, 이전에 등록해둔게 있어 손바닥 찍고 공항에 잘 들어갔다고 한다. 내가 근래 신분증을 내밀어야 했을 때는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 때와  공항, 도민 무료 관광지에 들어갈 때였다. 


이 신분증은 그 신분증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주민등록번호다. 주민등록번호가 주어지지 않는 아이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핸드폰도 통장도 만들 수 없다. 코로나 시대에 QR 체크도 할 수 없다. 청와대에 견학을 가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봉사 사이트 봉사 포털에 가입하지 못하고, 역사 골든벨에서 우승할 정도로 역사를 잘 알아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예매를 못해 가지 못하고, 아이들끼리 떡볶이를 먹고 계좌이체를 할 때 현금을 꺼내야 한다. 


졸업을 하면 현행 법체계 안에서 언제든 강제퇴거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열심히 해도 대학에 갈 수 없다. 한국말밖에 모르는데 가본 적도 없는 부모의 국적국으로 쫓겨갈 수도 있다. 단속을 피해 저임금으로 그림자 노동을 하면서 있어도 없는듯 살아간다. 


히잡을 쓴 달리아는 백석 시인을 좋아하고, 한국어로 시를 쓰는 아이다. 대학에 진학할 수 없어 오빠 카림이 그랫듯이 대학을 포기한다. 고3때 아이들이 모이면 대학 이야기하는데 낄 수 없어 고3 생활이 너무 길었다고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한국사회 일원으로 살아왔고, 한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모 대학병원 근처에 살 때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간병인들을 거의 대체했다고 들었다. 이들 없이 간병돌봄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농사도, 공장도. 이미 이들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이미 한국 사회의 필수 존재가 된 그들을 미비한 사회제도를 빌미로 인권을 무시한채, 법 테두리 안에서, 법 테두리 밖에서 이용하고, 학대하고 , 모르는 체 하고 있다. 


아이들의 경우는 더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혹은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한국땅에서 살아온 이들을 성인이 되어 말도 환경도 모르는 본국으로 추방하는 것은 인도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비합리적이다. 


되지도 않는 저출산 정책들로 세금낭비 그만하고, 있는 아이들을 제대로 케어해야 한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를 만들려면, 이미 존재하는 아이들을 잘 돌보는 사회가 선행해야 할 것이다. 


다문화 이해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고 한참 열심히 하다보니 ‘도대체 교육이라는 게 효과가 있나? 인간이 교육으로 변하나?‘ 하는 의문도 들었어요.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한편으로는 교육, 한편으로는 규제, 이렇게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걸로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았고, ‘감수성‘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그 감수성이라는 게 하루 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제 스스로의 생각이나 의식이 바뀌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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