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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전쟁 - 자신을 사랑하는 법 via 여성의 속옷 역사 가치관 컬렉션 1
앰버 J. 카이저 지음, 허소영 옮김 / 상상파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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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탄 디오르의 주장으로 리뷰를 시작해야지. 


" 남성들은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 주머니를 사용하지만, 여성들에게 주머니는 장식용이다." 


중세 시대 속옷의 주요 기능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속옷은 보온 외에도 거친 소재로 만든 겉옷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 


속옷이란 뭘까. 지금도 속옷의 기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겉옷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남자만.

 

여자들에게 속옷의 기능은 추가된다. 몸매를 보정하기 위해, 가슴을 처지지 않게 하고, 돋보이게 하고, 골반을 커 보이게 하거나 엉덩이를 작아 보이게 하고, 다리를 날씬하게 보이게 하고, 군살을 감추고, S라인을 만들어줌. 사탕껍질 옷 입을 때 속옷라인 보이면 안되니깐, 엉덩이 사이에 끈만 달아서 끈팬티 만든다. 남자들에게 퍼커블하게 보여야 하니, 섹시한 장식품 역할도 해야 하고, "예쁜 속옷은 여성들의 자존심이니깐" 자존심 살려주는 역할도 한다. 아, 섹시한 속옷 입으면 kibun이 좋아지니, 자기만족 용도이기도 하다. 추가된 기능은 많은데, 위의 기능들을 넣느라 빠진 기능들도 있다.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조여서 소화불량을 일으킴. 피 안 통하게 해서 수족냉증이 생김. 겉옷과 몸으로부터 속옷을 보호해야 함. 


의복이 가진 권력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의복이 가진 무언의 권력 때문일까. 의복착용권을 박탈함으로써 피지배층을 통제했던 역사적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로마, 초기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는 노예시장에서 빈번히 일어났다. 그곳 어디에도 제대로 옷을 갖춰 입은 노예는 없었다. 모두 벌거벗겨진 채, 구매자가 살펴보기 좋은 상품의 모습으로 진열되었다. 문화권이 달라지고 시대가 바뀌어도 노예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완전히 또는 거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강요된 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남들 앞에서 벌겨벗겨진 상태가 노예임을 인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자신의 신체와 노동력조차 타인에게 통제된 노예들에게 이런 모습까지 강요한 것은 비인격적인 행위의 극단이다." 


완전히 또는 거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여성 직종들이 떠오른다. 


여자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던 치마를 덮는 그 새장같은 기구들. 이게 비싸서 돈 있는 사람들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는데, 1856년 기술 발달로 용수철 후프가 등장했다. 수십년동안 착용했던 엄청나게 무거운 크리놀린과 달리 후프는 가볍고 탄력 있고, 대량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에 가격도 저렴했다. 실루엣도 훌륭하게 만들어냈는데, 단 한가지 부족한 점은 안정감. 스커트는 쉽게 뒤집혔고, 치마 속이 시시때때로 드러났다. 


이 당시 속옷은 가랑이 사이가 터져 있었는데, 치마 속이 시시때때로 드러나서 

후프를 포기하거나 속바지를 꿰매야 했는데, 


속옷을 꿰매다니! 상반된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고 한다. 


19세기에 이르러 의복을 통한 성별 구분은 한층 강화되었고, 여성은 긴드레스가 공식이었는데, 1851년 제네바 출신 엘리자베스 스미스 밀러가 터키식 바지 비스무리한 블루머를 만들어냈다. 


1851년 뉴욕타임즈 편집국 

" 이미 미국 여성에게는 헌법이 공정하게 보장한 몫의 권리가 있다.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특권을 장악하려고 고집스럽게 몰입하는 그들의 행동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그렇다고 이 행동이 맹렬히 비난받을 만하거나 당장 억압되어야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남성들의 방식을 침해하려는 흐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남성들의 방식 침해? 뭐라고? 


복장 개혁가와 여성 참정권자를 비웃는 한 남성의 글이 뉴욕타임즈에 실렸다. 


"주머니가 발명된 이후, 주머니를 가지지 못한 자는 결코 위대해질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성이라는 성별은 주머니가 없는 동안 결코 우리(남성)의 경쟁자가 될 수 없다." 


주머니.. 주머니.. 이게 특히 열받는건, 지금도! 2021년에도! 21세기에도! 여성들의 옷에 장식주머니가 달려있거나! 뭐 넣지도 못하게 얕거나! 하는 게 너무 많아서! 전쟁이다! 장식주머니 아웃! 얕은 주머니도 아웃!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여성들의 지위에 변화가 온 건 다 알지. 미국과 유럽의 여성들은 군수품 공장에 취직해서 일을 하고, 버스나 기차에서는 차장으로, 전쟁터에서는 간호사로 일했으며, 경찰관과 소방관의 역할도 여성의 몫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드레스 차림으로 활동하기가 불편해져서. '일을 하기 시작하니' 마침내! 여성들은 난생처음 일상적으로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르셋에 들어가는 살대가 철로 만들어져서 여성들에게 코르셋 착용을 멈춰달라고 호소함. 

대의를 위해 조였던 끈을 풀어버린 여성들 덕분에 전함 한 척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2만 8천톤의 강철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들을 남성들처럼 편하게 둘 수는 없지! 이제 거들이 생김. 

1930년대 이상적 여성상의 모습에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추가되었다. 예전에는 예쁘게 보이기만 하면 되어서 고통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코르셋으로 몸을 꽁꽁 묶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 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분노하게 되는건, 여성 속옷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 

아직도 여자 옷은 주머니가 얕거나 장식주머니라는 것이다. 

탈코르셋 물결을 타고, 일부, 한 줌의 한 줌 변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일부의 변화가 아니라 불씨이기를. 

꺼지지 않다가, 언젠가 활활 타오르기를 바란다. 코르셋 아웃! 



란제리를 착용하는 것만으로 여성은 기분이 좋아졌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지기도 했다. 광고는 이렇게 란제리의 새로운 이중적인 역할을 암시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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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1-13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생각나요.

하이드 2021-01-13 17:40   좋아요 0 | URL
그죠. 저 표지 사진도 되게 유명한 사진이래요. 모델 뒤에서 찍은 사진.
여튼, 지들 필요할 때만 코르셋 하지 말라고 하고. 진짜 코르셋 모아서 전함 만들었단 얘기 보고 놀랐어요.

2021-01-13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3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스트잇 2021-01-13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었네요. 전 주머니 없는 바지나 치마는 사지 않습니다. 왜 주머니를 안만드는지.
그래서 여성들 손이나 어깨에 핸드백을 들게 했겠죠.

오라오라 2021-02-01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대로 주머니가 많은 바지는 기능성은 좋지만 심미성이 떨어지지요. 요는 기능이 먼저인가 디자인이 먼저인가 같습니다. 군용 택틱컬 팬츠보면 주머니가 제법 많습니다. 다 제각기 기능이 있지요. 주머니가 있는 옷, 없는 옷 다 제각기 목적이 있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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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의미 있는 책을 읽었다. 소준철의 '가난의 문법'은 가상의 45년생 윤영자씨의 일상을 그리며, 

우리나라의 평균 노년 여성 빈곤과 폐지 줍는 노인으로 폄하되는 재활용품 수집인을 보여준다. 


프롤로그부터 인상적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나라가 2위와도 큰 격차로 OECD 국가들 중 노인빈곤 1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노인빈곤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성별임을 알고 있다. 


조금 더 어렸을 때, 비혼을 이야기하기 전에, 혼자 사는 독신녀의 악몽으로 키우던 애완견에게 뜯어 먹혀 죽은지 한참 후에 발견되는 이야기를 하던 때가 있었다. 책이, 방송이, 사회가 그런 이야기들을 했지. 정작 고독사로 죽는건 50대 남자가 1위인데. 그러나, 요즘 이야기하는 혼자 나이들어 폐지 줍는 할머니 된다. 는 것은 사실에 근접해 있다. 


"여성과 남성의 생애 경로의 차이. 조사에서 만난 노인들을 돌아보면, 남성노인은 '출생'에서 '진학'에서 '취업'과 '결혼'과 '육아'를 거쳐 '자녀와의 분리'로 이어지는 개인화되는 경로를 거친다. 여성노인들은 남성인 파트너와 그의 임금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생활이 재편되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제도에서 벗어난 '시장'의 변방에 나가 직접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현재의 여성노인들은 직접 임금노동자가 될 기회가 별로 없었고, 이로 인해 경력과 숙련이 없는 상태였다. 다시 말하자면, 가난한 여성노인은 이전의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여성 생애의 목표를 남편에 대한 내조와 자녀의 양육으로 삼게 하고, 따라서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질 기회를 갖지 못하게 했던 결과인 것이다." 


가상 인물인 윤영자가 1945년생인데, 1945년생은 2020년 기준으로 만 75세이며, 이 나이는 운전면허를 가진 경우, 면허 갱신의 시기가 5년 주기에서 3년 주기로 바뀌는 전환점이라고 한다. 신체적 능력에 대한 사회적 의구심이 가득해지는 시기이고, 인구통계에서 후기고령자로 여겨지기 시작하는 나이이다. 


" 우리는 '늙는다는 것이 역사상 처음으로 정상적인 것이 된' 사회에 살고 있다. " 


노인빈곤과 재활용 산업을 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인데, 새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 과거 넝마주이의 일이 넝마주이와 고물상과 폐품 매입업자 사이의 단순한 거래 관계였다면, 지금 재활용품 수집노인은 이보다 더 고도화된 '관계'에 갇혀 있다. 이제 노인들이 재활용품을 수집하고 판매하는 행위는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의 자원순환 정책과 재활용 산업에 매개되어 있다. 그렇지만 제도와 산업,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도 보호받지도 못하는 위험한 일에 불과하다." 


재활용 문제는 환경 문제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고, 지금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데, 재활용 산업 끄트머리에 법의 사각지대에 , 필요한 일이라 암묵하는, 다른 일을 찾을 수 없는 노인들이 찾는 재활용품 수거하는 일이 있다. 공동의 쓰레기통이 없는 제도와 산업의 빈틈을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이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노인들의 재활용품 수집은 제도로부터 재활용품을 '낚아채는' 일이다. 도시가 비대해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다세대/다가구주택과 좁은 골목들에 정책과 제도라는 공공영역이 침투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문 앞과 골목에는 쓰레기와 재활용품이 방치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인터뷰들을 통해 보고 들은 장면들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도 있고, 처음 듣는 것도 있고, 알면서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 있다. 재활용품을 수거하기 위한 눈치 작전, 무거운 걸 많이 들고다닐 수 없고, 재활용품을 두고 화장실이라도 가야 하면 재활용품 모아둔 것을 도둑 맞고나 심한 경우는 카트까지 없어져서 집을 중심으로 재활용 내놓는 시간을 계산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 건물주들이 공짜로 청소 시키고, 건물에서 나오는 재활용 가져가라고 하는 건 흔한 일, 남자 노인들이 리어카나 전동차 등을 이용하여 많이 싫고 다니는데, 여자 노인들은 카트를 끌고 다니는 것. 재활용품 수거차와의 눈치 싸움을 하며 새벽 골목길을 오가는데, 지그재그로 다니면서 폐지등을 줍느라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이 크다는 것, 아무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해 죽기까지 한다는 것 등등 


여성노인들은 힘이 부족해서 뿐만 아니라 가사와 돌봄을 이유로 길에서 남성노인들에 밀리게 된다. 

수집하러 다니다가도 식사 시간에 밥해주러! 환자 돌보러 집에 돌아가야 한다. 


앞에 잠깐 얘기했던 '폐지 줍는 노인' 에 대한 이야기를 더하면, 

이들을 돈을 주지 않는 '청소부'나 불쌍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지양해야 한다. 


"노인들은 재활용품을 수집하고 있지만, 이들은 '청소부'가 아니다. 버려진 것들을 주워 돈을 벌지만, 그 돈은 쓰레기를 버린 이들이 주는 게 아니다. 노인들의 행위는 같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청소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게 아니라, 재활용 산업에서 발생하는 돈 일부를 스스로 취하고 있을 뿐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제안하는 것은 지금 당장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과를 내야 할 것들이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 중 상당수가 가난으로 고립되어 있는데, 노인들과 지역사회가 상화의존하는 계기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근근이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자립이 아닌 함께 모여 서로에게 의존하는 자립이 필요하다." 


10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일할 수 있는 나이 동안 일해서 모은 돈으로 그 후로 몇십년을 살아가면서 가난해지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에게 닥칠 문제이다.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 삶을 이어나갈지에 대한 비전과 액션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한국사회에서 가난의 모습은 늘 변해왔다. 전쟁이 끝난 후 갈 곳 없는 고아의 모습에서,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온 달동네의 모습과 IMF 위기 이후 노숙인의 모습을 거쳐 리어카를 끄는 사람들(특히 노인들)의 모습으로, 가난의 모습은 늘 바뀔 것이다. 다음에 올 ‘가난‘이 어떤 모습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전후 세대 이전의 노인에 대해 우리는 어떤 대처를 해야 할까? 그들은 우리의 ‘불행한 미래‘일까? 가난한 노년을 다가올 불행으로 여기며, 그보다 나아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일은 처참하다. 노인들의 모습은 젊은이들의 ‘불행쿠키‘가 아니며, ‘반면교사‘도 아니다. 지금 닥친 노인들의 생활 속에서 노인들의 어려움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P49

종이상자의 생산량, 배출량이 늘어나는 현상은 노인을 착취하는 일을 심화시키고 있다. 배달과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며 종이상자의 사용량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집과 가게마다 다 쓴 종이박스의 배출량도 늘어났다. 그렇지만 젊고 부유한 소비자들은 폐품의 배출과 처리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종류에 따라 ‘분리수거‘를 하면 자신의 책임을 완수했다고 여긴다. 게다가 종이박스가 늘어나면, 노인들이 수집할 것도 생기니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종이박스가 골목에 쌓여 있는 데 대한 책임은 대개 정부와 위탁 청소업자에게 있다고 여긴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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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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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The Story of More 를 연말에 읽었다면, 나는 쇼핑을 좀 덜할 수 있었을텐데, 냉장고와 냉동실에 있는 붉은고기들과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닭가슴살 등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 

아침에 냉장고를 열면서, 지구는 달라졌는데, 나는 풍요롭고 자빠졌네. 이런 기분. 

나는 풍요롭지만, 달라질 수 있다. 별거 아니지만, 1월의 정기를 받아, 3일째 무소비데이를 이어가고 있다. 

워낙에도 1월부터 돈 안 쓰려고, 12월에 이것저것 쟁여놓은거긴 하다. (이런 바보를 부르는 이름이 독일어로 있을텐데..) 


모든 뉴스가 코로나로 통하기 전까지만해도 기후위기로 30년안에 어쩌지 않으면 망한다는데, 어쩔꺼냐! 초긍정론자답지 않게 비관론에 몸과 마음을 실었는데, 정신 번쩍 차리게 된다. 


코로나 팬더믹과 기후위기는 상쇄하고, 가속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코로나로 '비행기'가 멈췄다. 도시가 멈췄다. 

코로나로 배달음식이 늘어 플라스틱 쓰레기 등이 폭.발. 했다. 


나는 코로나를 위기로 인식하고, 식량을 쟁였고, 그만큼 더 먹겠다고, 지구의 기후위기 초시계를 몇초나마 앞당겼을지도 모른다. 


책으로 돌아가면 

식량파트에서는  곡식, 가축, 물고기, 설탕, 음식물 쓰레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엄청나게 효율이 높아진 곡식재배, 거기에 때려붓는 살충제와 영양제, '온실'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어마어마한 석탄연료, 다 소비되지 못하고, 버리느라 또 소비되는 석탄 연료, 그걸로 '바이오' 연료를 만들며, 전기와 석탄연료를 소비하는 아이러니.. 


가축파트는 늘 읽기 괴로워서 흐린눈으로 보는데, 


" 이 나라의 거대한 지역은 각기 다른 살육에 특화되어 있다. 네브래스카와 콜로라도, 캔자스의 대평원에서는 매년 3,000만 마리의 소가 도살된다. 아칸소에서 조지아까지 넓게 뻗은 '깃털 지대'에서는 매년 90억 마리에 이르는 엄청난 수의 닭이 도살된다. 아이오와를 둘러싼 미국 중서부 위쪽 지역에서는 매년 1억 2,000만 마리의 돼지가 도축되고 있다. " 


" 매년 오스틴을 방문하는 700만 마리의 돼지 대부분이 스팸 형태로 그 마을을 떠나며, 스팸은 0.078초당 한 캔 꼴로 80개국에서 소비된다. 저녁 파티장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런 통계 수치를 내민 적은 없다. "자자, 이제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가혹한 제안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회 있을 때마다 고기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믿을 수 없으리만치 많은 양의 고기를 먹고 있기에, 우리는 고기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 20세기 들어 모든 사람에게 어린 시절의 의미가 변했겠지만, 송아지만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진 경우도 없다. 1950년대에, 송아지는 생후 3개월이 지나야 45킬로그램을 넘어서는 것이 보통이었다. 오늘날은 태어난 지 50일만에 90킬로그램을 넘어선다. 오늘날 젖소는 매일 20리터의 우유를 생산하는데 이는 50년 전의 두 배가 되는 양으로, 다른 존재에게 젖을 먹이느라 시간을 보내온 누군가는 크게 감사할 통계 수치라 하겠다." 


곡물의 생산성이 놀라운 수치로 오른 것을 볼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동물의 생산성??이 놀라운 수치로 오른 것을 보니, 괴롭고. 육류를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엄청난 자원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비건이 되어야할 것 같다. 음식물 쓰레기 만들면 안되니깐, 일단 냉장고 비우고, 그 다음에는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지. 붉은 고기, 몸에도 안 좋음. 


"담수의 30퍼센트는 고기를 얻기 위하 가축의 생산과 사육, 도살에 쓰인다. 감금 상태에서 도축을 기다리는 250억 마리의 소와 돼지, 닭에게는 엄청난 양의 약이 주어진다. " 이런 약들은 동물의 몸에 흡수되지 못하고, 배설물과 섞여 방출되어 지표수에 스며들어 지하수로 흘러든다. 육류 생산을 위해 매년 16억 톤이 넘는 곡류를 먹인다. 동물에게 3킬로그램의 곡물을 먹여 얻는 고기는 0.5킬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10억 톤의 곡물을 소비하는 동안 또 다른 10억톤의 곡물은 동물의 먹이로 소비되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1억 톤의 고기와 3억 톤의 분뇨다.


고기에 대한 이야기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해산물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보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1킬로그램의 연어를 얻으려면 3킬로그램의 연어 먹이가 필요하고 

1킬로그램의 연어 먹이를 얻으려면 5킬로그램에 이르는 물고기를 갈아야 한다. 

양식장의 연어 1킬로그램을 얻으려면, 바다에 사는 작은 물고기 15킬로그램이 필요하다.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 3분의 1가량이 분쇄되어 양식장 물고기의 먹이로 사용된다. 

바다생물 먹이 없어지고, 바다생태계 깨지고 지구멸망~ 


어떤 이야기를 해도 지구멸망 엔딩으로 가는 지독한 게임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게임이 아니고, 현실이고. 


다음은 설탕 이야기. 

1970년대에 전무했다가 2000년 전체 칼로리의 10퍼센트를 차지하게 된 그것, 액상과당의 가파른 사용 증가는 비슷한 시기 미국인들의 체중 중가와 겹쳐지며 비만의 만연과 액상과당의 책임에 관한 과학자들의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순수한 옛날 형태의 설탕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1969년 전 세계 인구는 6,000만 톤의 설탕을 소비했고, 그 후 전 세계 설탕 소비량은 세 배로 뛰었다. 


"우리 접시에 올라오는 이 모든 설탕과 고기, 채소, 곡류, 계란과 치즈 같은 유제품에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음식물들은 어디서 끝을 맞게 될까? 

그 중 40퍼센트의 음식은 바로 쓰레기가 되어 버린다."  


아, 난 음식물 쓰레기 얘기만 나올줄 알았는데, 현대의 인간은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싼다. 

1980년 이후 필라델피아 인구수는 그리 큰 변화가 없지만, 평균적으로 미국인은 그때에 비해 매일 15퍼센트의 음식을 더 먹고 있다고 한다. 15퍼센트의 음식을 더 먹고 있고, 따라서 15퍼센트 더 많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중간점검 


덜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누라. 

우리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도록 해주는 마법은 없다. 소비를 줄이는 것이 21세기 궁극적인 실험이 될 것이다. 

덜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누는 것이 가장 커다란 과제이다. 


연료 파트를 요약하면, 친환경 에너지라 불리는 수력, 화력, 태양력, 바이오 연료들은 지금 소비되는 전력을 감안하면, 지극히 미미하고, 그 과정에서 생태계 파괴와 또 다른 석탄연료를 소비함. 


왜 이렇게 빠르게 망해가고 있는데, 변화는 더딘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무언가를 '덜'해야 하는데, 자본주의는 기업은 '덜'해서는 돈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30년 후에도 이 지구에 살고 있고, 그 후에도 살아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 하고, 그런 리더를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원 절약이 '풍요의 이야기'를 쓰도록 부추겨온 산업계와 완전히 불화를 이루지 않는 척하는 것도 소용없고, 지난 50여년 넘게 이어져온 소비의 증가가 더 많은 이익, 더 많은 수입, 더 많은 부의 추구와 관계 없는 척하는 것도 소용 없는 일이다. 이런 결합이 문명을 건설하는 유일한 방법인지 주위를 둘러보고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다. 그런 추측이 모두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언제 어디서 더 많이 소비할까 대신 어떻게 덜 소비할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비즈니스와 산업계가 우리를 대신해 이런 질문을 던질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프 자런은 이 책에서 지금의 급박한 상황과 우리가 해야 할 일. 전지구적인 일에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끼는대신, 우리가 함으로써 바꾸어나갈 수 있는 '희망' 을 쓰고 있다. 


" 물론 희망은 있지.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나는 강하게 믿는데, 네가 그 희망을 스스로 지켜갈 수 있다면 좋겠구나.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로 내 삶이 채워져 있어서 나는 희망을 갖게 된다. 내가 아는 가장 똑똑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줄 데이터를 모으느라 자신의 인생을 바치고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살마이 아침 일찍 연구실에 나와 늦게까지 머물며 해수면 상승과 온도 상승과 극지방 해빙의 정확한 강도를 측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현장으로 걸어 들어가 무엇이 존재하고 무엇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 확인한다. (..) 과학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과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 있다. 많은 일을 해야 하고 연구비는 모자라지만, 이 모든 것을 알아내는 일을 중단하는 데에는 확고한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 


나는 환경문제, 기후위기에 관해 좋은, 평범한, 망하지 않는 결말이 상상되지 않는데, 과정 또한 중요시 여기니, 내가 조금이라도 종말시계를 늦추고 있고, 그 시계를 늦추는데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치고, 매일을 그 길을 걷는다면,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므로, 여섯번째 종말까지, 매일 사과나무를 심을거다. 



온 우주는 변화이고, 

인생은 의견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121~ 180년)


" 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도 한다. 게으른 허무주의에 유혹당해서는 안 된다고. 한 가지 해결책이 우리를 구해주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먹는 모든 끼니, 우리가 여행하는 모든 여정, 우리가 쓰는 한 푼에 지난번보다 에너지가 더 사용되는지 덜 사용되는지를 고민하며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 



우리는 이루어낸 모든 것의 40퍼센트를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는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은 자라나고 우리 몸은 시들어가고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찾아온 죽음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느라 시간을 쓰고 있다. 음식물을 쓰레기 매립지에 던져 넣을 때 우리는 그냥 칼로리 덩어리를 던져 넣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던져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풍요에 대한 무자비한 추구에 이끌린 결과, 우리가 공허하고 소모적이고 명백한 빈곤의 한가운데로 향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제 잠시,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때다. 정말 이렇게 살고 싶은가? - P113

변화의 궤적을 바꾸는 개인의 잠재력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1977년 미국의 계관시인인 W.S. 머윈은 마우이의 쓰레기 하치장에 나무 심는 일을 시작했다. 40여 년이 흘러 약 8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그 땅에 400종이 넘는 열대성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한 야자나무도 그곳에 보존되어 있다. 앞으로 몇 세기 동안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막고 싶다면 이러한 행동이 필요하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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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21-01-03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의견이다!‘ 의견을 내보지도 못하고 죽고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욕이 나네요. 하이드님 감사합니다.

하이드 2021-01-03 13:16   좋아요 0 | URL
좋은 말이지요? 가슴에 새기고 필요할 때 지지말고 꺼내야겠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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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각자의 속도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
무리해서 갈 때도 있고, 늦장부릴 때도 있지만, 쉼없이 앞으로 나아가자.

추적단 불꽃이 n번방 이야기를 처음으로 수면으로 내놓았고, 대부분의 사람들, 그러니깐, 대부분의 여자들에겐 저게 무슨 거짓말같은 이야기인가 다가왔다.
2차가해를 막고, 피해자 보호를 위해 많은 걸 지운 채 옮긴 글의 일부만 봐도 정신적으로 타격을 받았고, 매일 화가 났다는 사람도 있었다. 차마 글을 다 못 읽는 사람, 글만 읽고도 눈물 나고, 아팠다.

이들은 n번방에 잠입해서 가해자 특정할 수 있는 정보들을 취합하고, 언론에 알리고, 경찰에 신고하고, 처음 ‘공모전’에 내기 위한 기사 취재를 넘어선 평범하고 흔한 악마들로 마음에 큰 상처 내버렸고, 치료 지원 받으며 꿋꿋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기사와 유튜브, 언론과 리셋 등의 활동가들을 통해 뉴스는 따라잡고 있었지만, 이 이야기가 이렇게 책으로 기록되어 나왔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n번방 추적기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해낸 추적단 불꽃, 불과 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n번방 이야기 보기만 해도 남혐 맥스 되는데, 이 두 분은 다들 소중한 애인도 있고, 사랑하는 아빠, 학교 선생님들은 다 너무 훌륭하셨고, 하는데에 괴리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각자의 속도와 각자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말이고, 말보다 행동이다. 이 두 사람은 엄청난 액션을 해 낸 사람들이다.
미성년인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이들은 분명 빙산의 일각일텐데, 빙산의 팁이라도 드러난 것이 다행이기는 하지만, 이 사회가 정말 어떻게 돌아가려고 하나. 어짜피 환경문제로 다 멸망하고 말 것인가. 이런 나라에서 뭔 자꾸 애를 낳으래.

어떤 해악들은 외면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상관 없을 것 같았던 해악들이 이렇게 현실에 펼쳐지고, 다가오고,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 내가 그 해악과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한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건 가학적이고 저질적인 하드코어 애니메이션들이다.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렇게 상관이 있어져버렸다. 여자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남자들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런 남자들과 한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 예전에는 성인지 감수성 떨어지는 세대들 다 죽어야 세상이 바뀌는건가 한탄했는데, 나보다 어린 세대에 이렇게 더 끔찍한 종양들이 자라고 있다.

그 견고한 고리들을 어떻게 흔들고, 결국 끊어낼 것인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쉬지 말고, 지치지 말고, 흔들어댈 수 밖에 없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무력감에 빠질 때도 있지만, 말로, 글로, 투표로, 청원으로 흔들고, 피해자들이 재기할 수 있게, 내가, 내 주변이 강해질 수 있게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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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좋다 좋다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다. 항상 그런건 아니지만, 이 책은 정말 좋았다. 6개의 글이 있는데, 각각의 주제와 이야기들이 평소 관심 있는 돌봄, 노년에 대한 생각의 틀을 깨고 더 크게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전희경의 글이 3개, 이 책을 엮은 메이, 이지은, 김영옥의 글이 있는데, 메이는 질병학자로 ‘아픈몸을 살다‘를 번역 소개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책은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로 시작한다.

기억해 몸의 고통과 거리 위의 고통은
같지 않지만 흐려지는 경계로부터
당신은 배울 수 있지 오 명확한 경계를
무엇보다 사랑하는 당신 흐려지는 경계를 바라보라

- 에이드리언 리치, #29 < Contradictions :Tracking Poems>

질병, 노년, 치매, 돌봄 등을 ‘몸‘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이것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지금 당장도, 앞으로도, 과거에도.

˝ 돌보지 않겠다 (그게 자신을 돌보는 길이기 때문에)는 각성한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시기를 살고 있다. 그 목소리가 모든 돌봄을 여성에게 미뤄두고 나 몰라라 하는 이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유일한 정치적 대안이 아닐지 공감하고 기대를 걸어본다.

그러면서도 이런 때, 계속 살리는 일에 관해 말하고자 했다. ˝

젊고 아픈 몸, 늙어가는/늙은 몸으로 사는 것, 치매 등과 그것을 관통하는 ‘돌보고 돌봄을 받기‘는 왜 덜 중요하거나 사소하거나 사적인 ‘가정의/가족의/여성의‘ 일로 치부되는지. 사회적 의미를 부여받을 경우엔 왜 ‘국가책임‘의 일로 떠념겨지는지에 대해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돌봄위기‘가 정책적 차원에서 논의되기 시작한지 거의 이십여 년이 되었지만, 일반 시민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의제로 자리 잡고 일종의 공통감각 하에 해법을 찾아나가는 일은 요원하다. 막연한 불안이나 두려움 외에 어떤 각성이나 이해를 촉진시켰는지 의문이라고 하고 있고, 이 책은 그에 대한 답변이다.

서울신문에서 기획,연재한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2018) 과 한겨례 창간기획으로 연재된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2019) 는 공식 언론에서 진지하게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사례인데, 서울 신문 기획은 책으로 나와 읽어보았고, 끔찍하다, 큰일났다는 후기만 남기고 넘어갔던 것 같다.

전희경의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 받기‘ 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내가 만약 거동이 힘들어져 누군가에게 전적인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누구로부터, 어떤 돌봄을 받고 싶을까? 용변 처리 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누구에게 부탁할 것인가?˝

나 역시 생각해 보았던 이야기이다. 내 부모의 경우와 내 경우 모두. 두 경우 다 요양원이나 전문 간병인외에는 생각해 본 적 없다. 내가 가족을 간병, 돌봄노동을 할 일은 없을 것이고, 그렇게 얘기 해두었다. 내 경우에만 해당되는 옵션 하나 더는 존엄사이다. 인지가 없는 경우.

이 책에서 몸에 대해, 질병과 노년, 장애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있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았는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나는 거기까지인 것 같다.

어떤 로맨스 소설에서 엄청 부자인 남자 주인공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못 쓴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신청했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죽는 이야기가 나온 적 있다. 다리를 못쓴다는 이유로 안락사까지? 남주는 평소 활동적이고 아웃도어 스포츠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사람이다. 사고를 당해 다리를 못 쓰게 되고, 자신의 삶의 이유가 사라졌다고, 안락사를 선택하게 된다. 책 읽을 당시에는 이해가 안 갔는데, 내 경우에 책을 못 읽고, 못 듣게 된다면, 너무 괴롭고, 살기 힘들 것 같다.

치매에 대해서는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면, 죽어야지.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을 열어두었다. 치매라도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들이 있고,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좋은 치매환자?가 되기 위해 종이접기를 배우는 .. 그런 사람도 있고.

˝돌봄은 가족에게는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에노 치즈코의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책이 비혼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이상향의 노년과 죽음이다.

˝지금까지 돌봄을 ‘가족‘에게,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에게 전가해온 한국사회의 부정의한 구조 안에서, 돌봄은 기꺼움보다는 고역이었으며, 새로운 관계성보다는 희생과 독박, 학대나 방치에 더 가까이 있었다.˝

‘가족‘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 국가 책임이다. 라고 하기에는 국가에 요구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문제.

˝우리에겐 ‘가족 같은 관계‘라는 비유를 넘어서 신뢰와 돌봄이 오가는 인간관계의 새로운 양식이 필요하다˝ 고 이야기하고 있고, 친구, 지인, 이웃이 호명된다.

‘나는 누구에게 돌봄을 받고 싶은가?‘ 로 시작한 이야기는 ‘나는 누구를 돌볼 것인가?‘ 로 끝난다. 독박 육아를 하는 워킹맘이 말하기를 아이 하나를 돌보는데는 어른 다섯이 필요하다. 그 정도가 되어야 아이 하나를 돌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육아를 해본 적은 없지만, 공감 가는 이야기여서 담아두었다.

노년의 돌봄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섯 팀이 파티를 이루고, 서로 돌봄.

노년과 돌봄, 질병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사유는 ‘몸‘에 대한 것이다. 우리 누구나 ‘몸‘을 가지고 있다. 건강한 사람은 몸을 잊고 사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건강은 지극히 일시적인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우리는 ‘몸‘ 을 좀 더 의식하고, ‘몸‘의 모든 상태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몸‘을 도구로만 생각하고, 쓸모를 생각하지 않고, ‘몸‘을 인격으로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

몸을 가지고 있는 모두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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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0-11-11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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