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녀에 대한 왕편애 모드와 콩깍지는 거둔지 좀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야베 미유키' 니깐, 그녀니깐, 좋아하게 된 단계는
왕편애 모드 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딸기가 한 접시 있다. 제일 맛 없게 보이는 것부터 하나하나 먹기 시작해, 제일 맛있는 걸 아껴서 마지막
에 먹는 기쁨을 누리는 아이가 있고, 가장 맛있는 것 부터 먹기 시작해, 항상 맛있는 딸기만 먹는 아이도
있다. 나는 후자의 아이의 마음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가장 맛 있는 소설 부터 소개해보고자 한다.
다만,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애' 모드의 찜.이라는건 말 안해도 알겠지? ( 왜 반말이냐.)
위의 세 작품이 그녀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데 이견이 있기는 힘들 것이다.
뭐, 위의 세 작품이 그녀의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고,
다만, 나는 최고의 작품들이 최고로 재미있었다. 어떤 다른 허접한 작품들도
어떤 그저 그런 평작들도, 난 그것이 위의 세 작품을 쓴 미야베 미유키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덮어 놓고 샀고, 읽었다.
잡설이 길다.
내가 가장 먼저 접하게 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이코ICO' 였지만, 그 작품은 지금와서 생각해도
삼단계로 나눈 미야베 여사의 작품들 중 최하단에 있는 재미없는 이야기였기에 미야베 미유키에 눈이 번쩍
뜨이게 된 계기가 된 첫 작품 '이유'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은 내가 처음 접하게 된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이었다. 이 소설 이후 한동안 소위 '사회파 ' 추리소설들을 찾아 헤매였지만, 그 장단점을 알게 되고, 다시 돌아와 '역시 미야베 미유키' 하고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울 수 밖에 없었다.
특이한 점이 많은 소설이다. 670여페이지의 긴 소설을 한 자리에서 읽어내릴만큼의 참을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뿐더러, 이 소설에서도 그런 스릴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해 있는 가족 네명이 죽고, 그 사건을 조사하는 '무인칭'의 화자가 사건의 진행을 르포 형식으로 되짚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사건은 생명이 있는냥 뻗어나가고,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이리저리 이어지고, 결국 '범인' 에게까지 이어져 그 모든 관계들은 방사선으로 완결된다.
다시, 스릴은 없지만, 무인칭의 화자를 쫓아 가는 사건진행의 추이는 엄청 실감나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뉴스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현실에서 반전은 드물지만, '새로이 발견되는 사실'들은 '반전' 못지 않게 놀랍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약점은 그것이 다루고 있는 주제의 시효성이다. 더 이야기하면 길어지겠지만, 그런점에서 사형을 다루고 있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은 천년만년 재미있게 읽힐 수 있을게다. 미야베 미유키의 주제들은 그렇게 모호하고 거창한 것은 아니고, 제법 구체적이지만, 그 시효는 길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녀는 분명 심각한 사회문제들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주제는 항상 '인간' 이기 때문이다.
'이유'에서 저자가 공들이고 있는 것은 '부동산 경매' 이다. 그 시스템의 헛점을 이용하는 법의 탈을 쓴 범법자들, 선의의 피해자, 가해자, 결국 평범한 사람들을 '죽음'까지 몰고 가게 되는 '부동산 경매' 에 대해 정면으로 파고든다. 저자가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부동산 경매' 를 조사하는데 보냈으리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와 같이 시간과 땀을 쏟은 조사를 바탕으로 그녀가 그리는 '인간' 의 이야기는 참으로 섬찟한 것이다. 완벽한 플롯은 차라리 덤이다.
그녀의 다른 작품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족' 의 문제. 이 사회의 가장 작은 구성단위인 '가족' 내의 갈등들이 모이고 모여 멀쩡해 보이는 '사회'를 이루고 있다. 그녀의 통찰력/관찰력에 읽고 나서 더욱 더 감탄하게 되는 작품이다.
'이유' 를 읽을 때까지만하더라도 이토록 그녀를 편애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유명한 '화차' 시아출판사에서 나온 '인생을 훔친 여자' 를 사기 위해서, 출판사에 직접 전화하고
재고 남은 한 권을 홍대 앞 출판사까지 가서 사 왔고, 한권씩 나오는 '모방범'을 한시라도 빨리 보기 위해
출판사에 전화해서 날짜 확인하고, 아침 저녁으로 서점에 전화해서, 아마도 깔리자마자 사서 하루만에 냉큼 읽어냈었다.
'이유' 다음으로 읽은 책은 '인생을 훔친 여자(화차)' 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시점에서는 이미 나온지 꽤 된 책이고, 미야베 미유키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앞서 얘기하였듯이 사회파 추리소설,이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사회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는 추리소설'들의 약점은 그 사회문제의 시효성.이다. 그런고로 읽기 전에 약간의 걱정이 앞섰던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 전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 작품이라는 '백야행'을 읽고 그 약점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더욱 더 그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우였다. 그냥, 차라리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이나 할껄.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자본사회에 과대포장된 '신용' 문제이다.
우리나라를 쓰나미처럼 덮치고 간 그리고, 여전히 그 잔해를 끔찍하게 남기고 있는 신용카드 문제는 이미 일본에서는 십오륙년전에 일어났었고, 여전히 심각하다. 미야베 미유키는 신용카드로 인해 파멸직전까지 갔던 쇼코를 통해 신용카드의 거품과 폐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것은 본인 하기 나름이다. 라고 쉽게 이야기할 독자에게 여러가지 관점을 보여주며, 그렇지만은 않다. 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사라진 그녀를 찾으면서 혼마가 찾게 되는 어둡고도 슬픈 한 여자의 진실을 드러내는 미야베 미유키의 필치는 섬세하기 그지 없다.
미야베 미유키는 워낙에 여러 장르의 소설을 소화하는 작가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섬세함과 접근이 나는 가장 맘에 든다.
이번에 처음으로 접하게 된 스기무라 시리즈 , 앗, 왠지 미소라 히바리를 틀고 계속 써야할 것 같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이름없는 독' 이 나왔다. 더 재미있다고 하니,일단 당장 주문이다.
이 시리즈는 내가 처음 접해보는 미야베 미유키의 스타일이다. 아, 그녀의 한계를 알고 싶다! 이런 분위기. 사건의 해결이 주 스토리이지만, 나는 이렇게 모든 분위기가 착착 맞아 떨어지는 소설에는 점수를 후하게 주는 편이다. 평범하고 이렇다 할 장점도 없지만 일상생활이 안정되어 있어 포근한 행복 속에 사는 스기무라 사부로, 재계의 내노라하는 회장님의 첩의 딸의 남편으로 회장님 회사에 직속홍보부( 기업 홍보부 아니고 직속홍보부다. 빌딩이 아니라 뷜딩에서 일하는) 회장님 딸인 나오코는 심장비대증으로 몸이 약하지만, 씩씩하다. 나오코와 스기무라 사이에는 모모코라는 저행성에서 온 것 같은 귀여운 딸. 그리고 소설내내 흐르는 미소라 히바리의 구루마야사아앙-
'스텝파더 스텝'을 다른 두 책과 함께 놓기는 좀 억울한 감이 없지 않지만, 위의 두 부류의 책들에 비해서는 좀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니깐 딱 내 취향은 아니다.'스텝파더 스텝'은 제목처럼 밝고 경쾌한 느낌의 소설이다. 프로 도둑과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 연작처럼 이어지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단촐하지만, 아주우- 귀엽다. 도둑아자씨마저도. 지금까지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책 중 가장 웃긴 책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만담 커플같지만, 사실은 속이 무지하게 깊고 사랑을 갈구하는 사랑스러운 형제는 마음 따뜻한 프로도둑만큼이나 있을법 하지 않지만, 읽는 내내 즐겁다.
'용은 잠들다' 는 초능력 소년 이야기. '마술은 속삭인다' 는 최면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드림 버스터'는 SF, '이코'는 게임속 가상현실 이야기이니, 미야베 미유키..는 정말 내가 아는한 가장 버라이어티한 소재를 다루는 작가이다. (아닌가?누구 또 있나? ^^:)
용은 잠들다.는 태풍 부는 첫 도입부분이 인상적이었고, 전체적으로 무난했고( 기억에 별로 안 남고)
마술은 속삭인다.는 미야베 미유키의 아주 초기작으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하려고해서,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플러스 결론도 좀...
'이코'.는 '대답은 필요없어'와 함께 놓기에 좀 억울하긴 하지만,
둘 다 참 재미없게 읽었던 책들이다. '이코'는 내가 처음 접했던, 정말 재미없다. 재미없다. 하며 읽은 두꺼운 책이었고, '대답은 필요없어'는 최근에 읽은 대실망한 책이었다. '이코'는 소니의 psp의 유명한 게임을 소설화 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 점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아는 사람들한테는 아주 재밌게 읽힌다고 한다. 내 동생은 내가 좋아하는 화차,이유는 지루하게 읽고, 이코를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니. '대답은 필요없어' 역시 초기작인데, 미야베 미유키의 여러 스타일을 접하기 위해, 여기 언급된 모든 소설들을 한 번 쯤 읽어보고, 시간 남더라도,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딱히 가장 재미없어서, 아래로 내려온 건 아니고,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자,
어떤 카테고리에 넣어야할지 당황스러운 책이다. 드림 버스터 '브레이브 스토리'를 읽지 않았지만( 당분간 읽을 생각도 없지만) 아마 같은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을까?
뭐랄까, 읽는내내 닷핵이라던가 뭐 그런 풍의 느낌과 미야베 미유키의 작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의 결합.으로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소설이다. 이 책이야말로 외면받으려면 이쪽도 저쪽도 아닌 스타일로 호불호가 분명한 미야베 미유키 팬들에게 외면 받을 수도 있지만, 나처럼 고루고루 좋아하는 팬에게는( 아무리 투덜거려도, 미야베 미유키의 가장 별로인 소설이 왠만한 히가시노 게이고 보다 낫다구-) 재미좋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