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만년필은 메모용으로만 썼는데, 만년필 이야기, 필사 이야기하는 것 보니 나도 핋사 하고 싶어서 오랜만에 필사해봤다. 

수전 손탁을 기리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글. 엄청 재미있다고 들었는데, 역시 재미있군. 이번에 시그리드 누네즈 신간 사고 싶어서 망설이다 마지막 순간에 뺐는데 후회된다. 1일에 5권 샀으니, 산 책들은 다 읽고, 더 읽고, 사야지. 


만년필 필사 하다보면, 공간에 책과 종이와 나와 만년필만 있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오감을 자극한다. 

희미한 잉크냄새와 눈으로 읽고, 글로 쓰며 떠올리는 책의 내용과 만년필의 촉과 종이가 만나 사각사각 또는 부드럽게 긁히는 촉감에 몰두하다보면, 사각사각 기분좋게 들리는 소리가 청각을 자극한다. 가장 좋은 부분은 사각사각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다 써놓고 보니, 어느 하나를 못 고르겠다. 


같은 책을 읽어도 읽기 경험은 다 다른데, 시간, 장소, 전자책, 그리고, 필사도. 필사하면서 읽는 책은 또 다른 경험이다. 




" 너무 생생한 존재라, 이렇게 쓰러뜨려진다는 게 어이없어"라고 친구가 나에게 부고를 전하며 말했다. '쓰러뜨려진다'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닿았다. 수전이 들었으면 마음에 들어했을 것 같았다. 이와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작가가 또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소설에 나오는 작가 한 사람이 떠오르긴 했다. 토마스 만의 소설에 나오는 작가가 베네치아에서 죽었다는 소식은, 그가 나이가 많은 사람인데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수전 손택이 치료 불가능한 백혈병을 앓닥 ㅏ일흔두 살이 거의 다 되어 사망했음에도, 수전의 죽음은 마치 목숨이 가혹하게 끊긴 듯한, 전성기에 스러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쓰러뜨려졌다.' 


나중에 충격을 받은 사람이 나 말고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엇다. 수전이 나이도 많고 위험한 병에 걸렸음을 알면서도, 전에 유방암과 자궁암을 이겨낸 것처럼 이번에도 이겨내리라고 확고히 믿은 사람도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강인한 불굴의 존재로 느껴졌다는 것, 죽기에는 너무 생생한 사람으로 비쳤다는 사실이 수전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잘 말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수전이 그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수전이 죽은 뒤에 데이비드의 입을 통해 전해진 수전의 극단적 행동(수전이 자신의 예외성을 끝까지 주장하며 병이 나을 희망이 없고 죽음이 코앞에 닥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들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수전의 책 네 권을 얼른 읽었다. 어쩐지 곧 수전이 자기 책 중에서 어떤 걸 읽었냐고 물을 것 같았고 정답은 '네 권 다' 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예감이었다). 다른 독자들처럼 나도 에세이는 매혹적이고 소설은 읽기 힘들다고 느꼈다. 


그때 나는 버지니아 울프에 푹 빠져 있었다. 또 엘리자베스 하드윅 교수를 매우 존경했는데 하드윅 교수는 나의 스승일 뿐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만나본 전문 작가이기도 했다. 수전은 하드윅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현존하는 미국 작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지." 수전은 자기 글에도 "리지(하드윅)가 더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동경하듯 말하곤 했다. 하드윅은 아름다운 리듬이 있는 매끈한 문장을 구사했고 수전의 말을 빌면 "형용사의 여왕"이었다. 


수전의 글은 극적이고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우리가 '통렬하다'고 부르는 생각이 가득했고 그 생각을 대담하게 진술했다. 그렇지만 문체가 아름답지는 않았다. 수전은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지는 않았다. 수전의 소설에 어떤 미덕이 있는지 나는 잘 느낄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여성작가들 책 읽다보면, 울프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 마니아를 찾아봤다네. 



















 

많이 읽지 못했군. 1일 1울프 할까나.

















필사하는 중간에 잉크가 다 되어서 한 획씩 안 나오다가 아무 글자도 안 나오게 되는 그 순간 좀 짜릿해. 

따뜻한 물에 잘 세척해서 말려두었다. 


새로 잉크 넣는 것도, 잉크 다 쓰고 세척하는 것도 짜릿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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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9-02 1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손필사 멋져요😘 만년필도 문진도 예쁘고~~
글씨도 안 쓰면 퇴화하더라구요.. 필사욕에 불을 지피는 페이퍼네요😤

하이드 2021-09-02 16:55   좋아요 3 | URL
문진 예쁘죠? 만년필 쓰기 전이라 예쁜 쓰레기 될 줄 알았는데, 필수템 되었어요. 독서괭님도 필사 함께해요~~

새파랑 2021-09-02 1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필사도 예쁘고 만년필도 예쁘네요 ㅜㅜ 저래서 필사를 하시는구나 😆

하이드 2021-09-02 16:55   좋아요 3 | URL
재밌습니다! 약간 명상반 독서반 기분이에요.

초딩 2021-09-02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럴수가 역시 만년필이어여하군요. 또르르 ㅜㅜ
그리고 멋지고 예뻐요

하이드 2021-09-03 09:45   좋아요 0 | URL
만년필이 회사별로 닙의 차이는 있지만, 성능 차이가 크게 있지는 않습니다. 비싸다고 성능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저 만년필 책인줄 알고 샀던 만년필 (만원 정도?) 얼마나 잘 써지게요. 파일롯트 몇 천원 짜리도 만년필 쓰는 느낌은 다르지 않답니다. 좋아하는 필기구가 넘 많은게 탈이지만, 저는 젤펜도 좋아하고, 필사도 좋아해요. 좋아하는만큼 부지런하지 못하지만요. ㅎ

번거롭게 만년필 쓰다가 오랜만에 젤펜 쓰면, 아, 이렇게 가볍고 편하고 잘 써질수가.. 현타 옵니다.

초딩 2021-09-02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