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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대리언 리더 지음, 배성민 옮김 / 까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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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읽는 내내 굉장히 불안했다. 다른 것보다도 '조용한 광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그러니까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평소에도 조금 이상했던 사람이 그 일을 했다고 하면 '그럴 줄 알았어',    '그동안 말 안 섞길 잘했지'. '잘 피해다닌 것 같아'라고 말해줄 수 있지만, 믿을만했고 괜찮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면, 그 멘붕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누구라도 잠재적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미치면,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정신병에 대한 연구와 치료, 등등등이 꽤 많이 발전해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중에는, 어느 검사지에 검사만 하면 아주 멀쩡한 사람도 한 두가지 이상의 정신병을 갖고 있는 결과가 나온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미미하거나 눈에 띄거나의 차이만 있지. 어쩌거나 정신병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거다. 병이라는 거지. 병.

정신병의 세계에서 감기와 같은 것이 우울증이라고도 들은 것 같다. 감기 이거 무서운 병이다. 별 거 아닌 것같지만, 자칫 잘못했다가 합병증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우울증도 그런 것만 같다. 감기처럼 왔다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내내 달고 사는 경우도 있고, 독감처럼 앓다가 죽기도 할 것 같은 거다. 

이왕하는 유추, 좀 더 길게 가보면.

우리가 열이 오르고 기침을 해대고 콧물을 줄줄 흘리는 것은, 감기가 왔다는 소식으로 들리지만 사실, 우리의 몸이 감기를 떨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뜻한다. 이 책은 마치 이와 같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그 이상행동도 그런 것이라고, 낫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 정말? 

그래, 그렇다고 치면, 역시나 할 말이 많아진다. 감기는 전염이 되는 거니 격리와 같은 과정을 갖는다고 하자. 정신병이 전염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정신병증을 보며 주위가 겪어야 할 고통과 피해를 생각하면 격리할 수도 있는 거겠구나. 감기가 낫는 것처럼, 정신병도 나을 수 있는 거구나?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얼마나 좋을까.

신체적인 징후만으로, 약물치료, 외과적 치료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였다면, 현대인의 많은 불안도 해결했겠지만, 정신병은 조금 더 복잡하다. 그 '광기'란 것에 대해서는 의료적인, 해부학적인 지식과 더불어 사회학, 인문학 등등의 연구가 필요하다. 정신이란 그런 것이니까.


'광기'에 대해 연구한 대리언 리더는 그래서 사례연구를 중시하고, 의학적인 계산만 가득해지는 최신 연구에 대한 불안을 드러낸다.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새롭고 또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지만, 그러기엔 내 자신이 단단하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그 '조용한 광기'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매사에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겁을 내야 한다. 현대사회가 준 LTE속도의 발전에 대한 댓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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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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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경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열두 명의 제자를 뽑으셨는데, 이 열두 제자가 배를 타고 바다(라고는 하지만 알고보면 호수)를 건너고 있는데, 저 멀리서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지 않겠어요. 은근 다혈질인 베드로라는 제자가 예수님인 걸 알아보고 저도 걷고 싶어욤! 외칩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시지요. 그래? 자 나를 믿고 걸어오렴. 호기롭게 발을 내딛습니다. 오오? 안 빠져? 오오? 나 지금 물 위를 걷고 있는 거니? 신기한 것은 잠깐, 발 아래를 보니 시커먼 바다가 있지 않겠습니까. 침이 꿀꺽. 저기서 빠지면 끝인 건가? 뭐 이런 의심을 하는 그 순간, 발이 폭 하고 빠져버립니다. 오 마 이 갓! 


걱정은 마세요. 예수님이 구해주시니까요.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자여, 의심 말라, 하십니다. 자세한 사항은 성경 중에서도 신약성경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바우만에 따르면, 우리는 의심이고 뭐고 생각조차 없이 물 위를 걷고 있습니다. 아니죠. 어쩌면 내가 물인지, 물이 나인지 모를 정도로 되는대로 흘러가며 살고 있는 겁니다. 유동하는 근대란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 이해해보았습니다. 


몰랐는데, 지그문트 바우만은 소비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는 학자라고 하더군요. 아아 무식한 제가 어찌 그걸 다 알겠습니까. 이렇게 새 책이 나올 때 한 마디씩 주워들으며 알게 되는 것이죠. 바우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표지에 실린 이미지를 보니 어느 정도 파악이 되더군요. 세상에 저런 표정을 저렇게나 자연스럽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총 마흔 네 통의 편지, 라고는 하지만 나한테 개인적으로 온 편지라고 해도 한번에 읽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만 같은 글,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무심하리만치 냉정하게 바라보는 바우만이 있습니다. 어느 때는 혼나는 것만 같았어요. “네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이 따위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신경도 안 쓰고 살고 싶니? 이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데? 네가 접하는 모든 게 엉망진창이라는 걸 정말 모르겠어?” 

아니 잠깐만요. 유동하는 근대라는 게 뭡니까. 담는 그릇에 따라 형태와 색이 변하고, 어떤 자극이냐에 따라 온도가 변하고 부피도 변한다는 그 액체성을 강조하시면서, 그래 늘 변하고 말아버릴 그 세계를 기적처럼 살아내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데, 이걸 또 멀찍이서 쳐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똑똑하게 살 수 있다면, 세상이 이 지경이 됐겠습니까? 라고 따지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할 수 있는만큼 우리는 우리를 알아야 하니까요. 단지 아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 모든 걸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조금의 개념이 잡힌 기분입니다. 블로그에 아무렇게나 글을 쓰고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버릇처럼 쓰던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지켜볼 필요가 있겠더군요. 그래서 그 잃어버린 '고독'을 찾아볼까 해요. "뭐 어때, 이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이것저것 모든 게 이해받아야 하고 용인되어야 하는 거아냐?"라고 뭣도 모르면서 읊기만 했던 나에게서도 조금은 멀어져야 할 필요가 있겠더군요. 뻔하긴 해도 편리에 엿바꿔먹은 더 소중한 가치를 찾아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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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지음, 김지향 옮김 / 지식트리(조선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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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라는 게 있죠. 산업재해. 일을 하지 않았으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를 병을 얻게 되는 경우에 적용하죠 대개. 아닌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요. 요즘은 물리적인 사고, 재해, 유휴장애뿐만 아니라 정신과적인 병증도 산재에 적용이 된다고 하더군요. 이를테면, 우울증같은 거겠지요. 

얼마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시나리오 쓰시는 분인데, 공포 호러 슬래시 영화를 좋아했었는데 영화 일을 시작하면서 못 보게 되었다고요. 일종의 산재같은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이런 얘기도 했었어요. 고발 프로그램 만드는 사람들은 먹을 거나 제대로 먹겠냐고요. 프로그램 회차가 늘어날수록 더더욱 먹을 게 없어질 것 같잖아요. 

그래도 일주일에 하나씩 하니까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고 칩시다. 왜냐고요? 이 책 때문이죠. 책 한 권을 가지고 도대체가 몇 가지의 음식을 의심하게 됐는지 모릅니다. 네, 뭐 중국산납꽃게, 쇳가루 섞은 고춧가루, 멜라민분유, 유전자변형 옥수수 등 품목만 피하면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은데, 이 책을 읽고나면 이 책이 다루지 않은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의심을 눈초리를 하게 만든다는 건 심각한 문제에요. 특히나 저처럼 귀가 얇아 무슨 말에든 펄럭이는 사람에겐 치명적이죠.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우유는 어떤 식으로든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두유만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고, 디톡스 기능도 있고 살도 쭉쭉 빼준다는 말에 홀랑 넘어야 레몬을 50개나 대량 구매한 적이 있으며, 건강의 척도인 황금X을 만날 수 있다는 생채식 식단을 하겠다며 무려 현미를 생으로 오독오독 씹어먹은 적도 있는 여자거든요. 

이게 저만의 문제겠습니까?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채식만 해서 이내 암도 고쳤다는 다큐 한 방에 채식붐이 일어나고, 바퀴벌레 박멸에는 TV에서 바퀴벌레 정력에 좋다는 보도 한 번이면 가능하다는 우스개소리마저 종종 등장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이상하다고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어요. 오래 전 수업 때 어느 교수님께서 건강식품은 대단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거든요. 품목은 하나인데, 남자가 먹으면 정력이 좋아지고 여자가 먹으면 피부가 좋아지니 이 얼마나 대단하냐고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어쩌면 더 어울릴지도 모를 책이긴 하지만, 진실은 알려져야 합니다. 막연한 불안감을 이용하여 우리의 주머니돈을 빼가는 장사치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라도요. 


이렇게 써놓으니 굉장히 딱딱할 것 같은데, 이 책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책 초반부터 펼쳐지는, 우리에게 굉장히 익숙한 메치니코프와 켈로그의 뒷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우유와 유산균, 비타민의 중요성에 대한 뒷통수도 재미있어요. 웃다 끝날 이야기는 또 아니라서 뒤로 갈수록 내가 도대체 뭘 믿고 먹고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참, 여신이 등장하여 아직도 카제인XXX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냐며, 식품첨가물이 먹으면 곧장 죽어버릴 것 같이 만들어놓은 광고나 위에 살고 있는 헬리 어쩌구 그 위험한 균을 마셔서 죽여버리자는 광고를 비웃으며 볼 수 있게 된다는 건, 잔재미로 해두죠.


어떠세요. 아는 게 힘과 모르는 게 약,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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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음, 김남섭 옮김 / 교양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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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있어서나 장래에 있어서나, 고민하고 있을 때면 듣게 되는 말이 있었습니다. 미련보다는 후회. 그렇습니다. 주저하다가 때를 놓치고 ‘그때 했으면 잘 됐을 텐데’ 따위의 미련을 가지느니, 질러놓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는 말이지요.

선택을 한 적도, 끝내 하지 못한 적도 있다보니 제 20대는 온통 미련과 후회로 가득합니다. 미련과 후회, 왠지 반반 정도의 확률 게임인 것 같지만 백이면 백 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의심을 해보기도 했어요. 어느 날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하죠. 그래도 그때의 결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언제나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라고 믿게 되는 선택들이요.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 마르크스를 가슴에 품은 코뮤니스트들에게 코뮤니즘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전쟁과 이념싸움이 어느 정도 끝난 뒤에 태어난 저는 소비에트 연합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편하게 TV로 볼 수 있었죠. 왠지 공산주의는 이제 끈 떨어진 가방처럼 쓸모없어졌다 생각하고 말아버렸을 시대가 있었지만 다행인지 아닌지, 저는 다시 공산주의를 생각하는 요즘, 책을 열심히 읽으며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요.

 

마르크스, 혹은 마르크스 이전부터 새록새록 피어난 공산주의에 대한 갈망은 마르크스를 만나 정점을 찍게 되지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주의 이론 정립에 박차를 가하면서 그들의 저작은 공산주의계의 바이블이 됩니다. 성경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것처럼, 마르크스의 저작도 시간이 흐른만큼의 주석서들로 넘쳐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의 욕망 때문이 아닐까 해요. 성경이든 마르크스든.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서비스는 1917년 이전부터 현재까지의 코뮤니즘을 정리했는데, 얼추 따져보면 약 백 년 정도의 역사를 훑은 것이 되지요. 한 나라의 백년사를 다루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인데, 유럽에서 시작하여 아시아를 거쳐 전지구적으로 번져나간 코뮤니즘의 불길을 정리하는 것은 신기에 가까운 일입니다. 번역본으로 700여 페이지 분량의 책이라니 정리한 것도 놀랍지만 그 양도 엄청납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백 년 여의 역사를 700여 페이지로 정리하는 작업도 대단합니다. 요점 정리를 한다해도 이렇게 줄이기 쉽지 않을 거에요. 그 무엇도 놓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서인지 문장이 굉장히 단단합니다. 수사를 줄이고 되도록이면 간결하게 역사를 정리해나가고 싶은 사가의 마음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자수처럼 알알이 박혀 있달까요.

 

그래서 이 책은 쉽게 읽기도 어렵고, 양도 만만치 않아 단숨에 읽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책은 그 무게를 달리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간단히 코뮤니즘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이야기를 듣듯이 읽고 싶으시다면야 슬렁슬렁 진행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되겠어요. 생각보다 다이나믹하거든요. 코뮤니즘은 혁명을 일으키고 또 다시 일으킬 수 있는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미련의 문제일 겁니다. 조금만 달리하면, 조금만 희생하면, 조금만 완력을 쓰면 모두가 행복한 그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울 수 있을 거라는 그 희망을 지피기에 부족함이 없거든요. 그러니, 미련스럽게 굴지 말고 하자, 해보자, 외칠 수 있는 것이죠.

 

하워드 진이 쓴, 맑스인소호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맑스는 영국의 소호에 살았었거든요. 그런데 어쩌다-아마도 관리의 실수로- 미국 소호로 오게 됩니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허락받아서요. 백 년 정도의 시간 동안 세계를 지켜본 맑스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다시금 설파하고 떠납니다.

 

그 작품을 읽고, 꼭 한 번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감사하게도 무대에 올릴 수 있었지요. 배우는 아니었지만 대사를 읽고 또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마르크스의 가장 큰 단점이 있다면, 그건 어쩌면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아닐까 했죠. 마르크스는 인간을 너무 믿었어요. 아직도 헷갈리는 역사의 단계, 공산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건지 아님 그 역인지, 어쩌거나 일당독재가 있고나서 사회 체제가 완전히 바뀐 후엔 독재를 끝내고 시스템에 맞춰 행복하게 살게 될 거란 기대는 정말 기대가 아닐까 싶은 거지요. 어느 누가 권력을 쥔 후에 그걸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절대 반지인 걸요.

 

많은 시도들이 독재까지는 어떻게 끌고갈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 넘어가지 못했고, 또 아직도 그러고 있지요. 그 사이에 노선을 달리한 사람도 있고, 포기한 사람도 있죠. 미련과 후회, 두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혁명을 꿈꿉니다. 여러분은 어떨 것 같습니까?

 

이 책은 아마도 미련과 후회, 두 사이로 당신을 밀어넣을 수도 있고 책장을 덮는 순간 미련이고 후회고 다 필요없다는 생각을 하며 코뮤니즘을 지워버리게 해줄 수도 있을 만큼, 코뮤니즘을 잘, 또 세세히 정리해줍니다. 아차, 글쎄요. 어쩌면 이 책을 덮은 후엔, 입맛에 맞게 코뮤니즘을 읽어 줄 또 다른 책을 찾게 만들어줄 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마르크스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거든요. 위정자들은 제 잇속 챙기기에 바쁘고, 경쟁에 지친 사람들은 독기를 품은 채 범죄에 집중하거나 그도 아니면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해버리는 일이 빈번해지는 요즘에도 내일을 꿈꾸며 잠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잖아요. 우리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은 채로 살고 있다는 걸요. 저라고 다르겠습니까?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이 어떻게 출근을 하고 밥을 먹겠어요.

 

그런데 이거 미련이면 어쩌죠. 이게 미련이라도 우리는 살아갈 겁니다. 그런데 이 미련, 영원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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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기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가족 기담 -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
유광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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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얘기를 듣는 건 굉장히 재미있다. 메이킹 필름을 만들어 두는 것도 작업일지를 공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약간의 관음증을 충족시켜 준다면 금상첨화겠다. 노골적이거나 일상에서 쉽게 꺼내기 힘든 사건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일상적이어서 지나가기 쉬운 일일수록 시각을 달리해보는 것은 재미있다. 개콘에서 오래 살아남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란 코너가 그렇다. 친구들 사이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과 대화지만, 컨텍스트를 조금만 바꿔도 모순이 생겨난다. 집에서 흔히 나누는 엄마와의 대화도 눈물을 뿌리며 보게 되는 드라마도 한 발짝만 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가족기담>은 이런 시도로 가득하다. 어릴적 전래동화집이나 애니메이션, 유치원 발표회나 엄마나 할머니가 자기 전에 들려주셨거나 친구들에게 전해들었거나 아니거나 신기하게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래서 별 부담이 없는 옛이야기를 끌어와 비틀어본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저자가 예로 든 이야기 중에는 특정한 작가가 작심하고 쓴 소설도 있지만 대부분은 구전이다. 구전은 화자의 ‘말빨’도 중요하지만 청자의 반응이 절대적이다. 청자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화자는 더욱 자극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가게 된다. 이야기가 시대를 담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공감의 폭이 넓어야만 더 많은 반응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정의, 원리, 원칙, 논리보다는 감성, 모순, 욕설, 음담패설에 가까워진다. 단번에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이야기는 과장을 잘하는 화자를 만나기도 하고 캐릭터 구성에 능한 화자를 만나기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꿔나간다. 물론 이야기가 수사에 빠져 길을 잃기도 할 수 있다. 너무 많이 갔을 땐, 나름 논리적인 화자가 나타나 드라마트루그를 하기도 했을 테다. 구전이란 그런 것이다. 공동집필의 미학.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면서 이야기가 품고 있는 시대의 한계와 인간의 모순을 밝혀내고자 했다. 흥미롭기도 했고 절망하기도 했다. 저자가 날카롭게 혹은 집요하게 찾아낸 의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때 특히 그랬다. 그렇지만 저자의 폭로(!)가 점점 불편해졌다. 정말 그랬을까? 잘 알려진 이야기는 그만큼 인기가 있었고 회자될 만큼의 가치를 지녔다는 듯이기도 한데 그 이야기에 웃고 울었던 사람 모두가 저자가 집어낸 모순과 비인간적인 면에 암묵적인 동의, (그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정도의 무지를 가졌다고 결론내야 하는 것일까 싶었다.

그래 웃자고 한 말을 다큐로 받고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더욱 불편했던 건, 옛이야기 속에 담긴 여성비하나 폭력 등등의 문제점이 현실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흐르고 있다는 저자의 시선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아마 그게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몇 백년을 흘러내려온 인간의 속성을 인정해버려 더 이상 희망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끝까지 아닐 거라고,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가족 기담이 정말 기이한 이야기로 그치기를 바라는 건 현실 부정일까? 제발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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