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루스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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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페스트가 창궐하던 15세기 중세 러시아를 배경으로, 의사에서 성자로 거듭난 인물의 이야기를 거대한 담론으로 시작한다.

중세 성자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러시아 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 누구라도, 작가의 깊은 이해도와 독보적인 서사 형식으로 그의 세계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아르세니는 역병이라는 고질병으로 부모를 잃고, 마을의 약제사에게 약초술과 의술을 배운다. 그의 신들린 듯한 의술로 마을 사람들과 주변인들을 치료해 주면서 명성이 점점 높아진다. 마치 우리나라 ‘허준’이 유익태 선생께 의술을 배워 청출어람의 경지를 넘어선, 타인에게 ‘의’를 베푸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 중요한 인물인 사랑하는 연인과 아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으니, 그에게 아무리 훌륭한 의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자책과 죄의식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어떻게 그는 자기 죄를 벌했을까.

본질적인 자신이기를 포기한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인 원래 이름을 포기하고, 낯선 이름으로 새 인생을 펼치려 타지를 떠돌며 과거를 돌아보고, 죄를 사하고자 한다. 그 길이 너무나 고단하고 애처로우며 힘들지만, 자신을 찾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되려 그를 구하고자 한 것.

때로는 순례자와 희생자의 모습으로 마치 구원의 상징인 성자로 비치는데, 바로 이 점이 하등의 인간인 우리가 삶을 회고하게 한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씻고, 진정한 구원을 받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

진정 그 행동은 자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타인을 위한 것인가?

그가 아무리 성자로서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핍과 감정을 가진 어쩔 수 없는 인간임을 확인하는 순간,그를 더 이상 신(神)적 인물이 아닌 '결핍 투성의 나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그래, 아무리 고결하려 해도 당신 또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이므로.

결국 우리네 인간은 죄를 짓고 사는 공동의 운명을 갖고 태어났으며, 그 오점을 만회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조금 더 성숙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역사적으로 되풀이하지 않는가, 싶은 것이다.

494.

"저는 아르세니였고, 우스틴이었고, 암브로시우스였으며, 이제는 라우루스가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기억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저는 서로 다른 시대의 저였던 사람들과 저를 더 이상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삶은 모자이크와 유사해서 여러 조각으로 흩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구원받고, 타인과 함께 희망을 찾는 삶을 이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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