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들이 농활에서 호칭 문제로 농민들과 다툼을 벌이다 급기야는 농활을 철수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촌로가 칭하는 "아가씨...아줌마"라는 용어가 언어적 성폭력이라며 철수하고야만 서울대 농활팀의 결정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수 없습니다.

 저 자신도 대학때 "경암회"라는 농활 써클에 몸담고 4년간 매 방학때마다 농촌을 찾아 농민을 위해 소위 농활이라는 활동을 했었기에 농활이 어떤것인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농촌이나 도시나 별로 생활상의 격차가 없던 시절이 아닌지라 정말 농촌은 변변한 농기계 하나 없이 매번 수작업으로 벼를 심고, 소쟁기질을 해야하며, 제대로 된 탈곡기나 타작기가 없어 손으로 벼를 털어야했던 가난했던 농촌을 찾는 일이기에 20여일 농활을 다녀오면 피골이 상접하는 정도였지만 뿌듯함이 가슴속에 가득 찼던 그 느낌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서울대 농활팀의 철수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문제는 과연 그들이 농활에 어떤 문제의식으로 접근을 했을까? 라는 의문입니다. 농활은 대접받기 위해 가는것도 아니고, 대학시절의 추억과 낭만 만들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몇 년전, 농활을 하는 학생들과 잠시 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미리 준비한 돼지고기와 술로 하루를 마친 피로를 달래고 있었는데, 제가 농활을 다닐때는 그런 사치란 아예 금기의 대상으로 감히 일을 도와주러 가는 주제에 호의호식 할 수 없다는 것이 불문률처럼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학생들은 오후 휴식시간이라고 느티나무 밑에서 여기저기 누워 낮잠도 자고는 하였습니다.

 잠이 부족하고, 낮 동안의 농촌 일손을 거들고도 시간이 모자라 밤 시간에 모여 앉아 그날 있었던 봉사활동에 대한 토론과 내일 행할 봉사활동에 대해 논하며 깊은 밤까지 잠을 자지 못했던 농활이 이제는 너무도 변해버린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농활을 다녀오면 마치 월남인처럼 새카맣게 타버린 얼굴에 하얀이를 드러내고 웃던 그 모습이 이제는 놀러가듯 농촌을 찾으니...실제 농민들인들 속으로 제대로 반기기는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물론, 농활을 가고자 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돌아오겠다는 각오로 출발을 한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사태는 주와 객이 바뀐 조금은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아닌가 합니다.

 인터넷 매체에서 이에 대한 설문조사가 진행이 되기에 잠시 제 의견을 표하고 결과를 보았는데 80%가 넘는 사람들이 서울대생의 철수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표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농민회의 말처럼 도시민과 농민...더군다나 급진적인 학생과 보수적인 촌로의 사고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만약, 서울대생들이 촌로들의 사고를 자신의 사고에 맞춰달라고 하였다면 이것은 농활이 아니라 대접받으러 간격입니다. 누구에게 도움을 준다는것은 도움을 받을 사람의 입장에서 무엇을 필요로하고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봉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상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그런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도 그들의 선배로서 지금도 농활을 나간 학생들을 보는일이라도 생기면 유심히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았지만, 입이 백개라도 그들의 농활은 선배들의 농활에서 보여줬던 노력보다 결코 잘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배웠다는 학생들...더구나 우리 나라 최고의 지성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행동이 전혀 배우지도 못한 촌로들을 상대해서 철수라는 결정을 내렸다면...앞으로 이들이 사회에 나와 타협이나 상생의 길을 찾기보다는  "'모아니면 도 "식의 사생결단만 추구한다면...오늘의 철수 사태는 단순히 농활 철수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고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아무리 머리가 좋은들 타협과 순응과 참음의 지혜를 갖추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뭉친 행동밖에는 달리 자신의 의견을 표시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들의 이러한 행동이 경솔했음을 분명히 밝히며, 그들의 선배로써 충고를 하고 싶습니다. 농활을 행하는 목적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분명하였다면 오늘과 같은 어리석은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전의 농활은 정말 여러곳의 감시속에 행해졌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가운데서도 데모가 극심할때도 농활팀은  농촌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는 절대 금하는것이 철칙으로 받아들여졌었고, 감시기관에서도 그런면은 안심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봉사라는 차원에서 오로지 농민만을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후배들이여....그대들은 농민들로부터 대접받기를 원하여 농활을 갔던것이었나?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차마 그대들에게 털어놓고 말하지는 못하겠다는 어느 농민의 하소연처럼 그대들의 농활 행태가 봉사보다는 오히려 누가되는것은 아닌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나....우리때는 집안에서 잔다는것은 생각도 못했었다네...어디 봉사활동을 한답시고 가서 농민의 집에 버젓하게 등대고 잠잘 생각을 했겠나? 쓰지않는 곳간에서 옹기종기 등대고 모기쫒으며 겨우 짧은 잠은 이룰수가 있었네....그대들이 제대로 자고 제대로 먹고, 피둥피둥 살이라도 쪄서 온다면....그대들은 한 여름 농촌에서 재미있게 피서나 하고 온것일세... 그대들이 농활을 마치고 떠나온 자리에서 농민들은 그대들의 흔적을 지우며 두번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네....겨우 호칭문제로 그대들은 떠나왔지만 그대들의 잘못된 판단은 단지 그대들이 서울대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도 신문의 기사거리에 충분히 오르내리라는것도 염두에 두게나....그리고..많은 사람들이 그대들에게 손가락질을 한다는것도 염두에 두고....농민을 위한 배려를 할 마음을 갖지 않았었다면 두번 다시는 농활을 간다는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게나....

 정말.....농민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배려하고 이해해야할 입장에 있는 대한민국의 지성이라는 학생들의 작태에 울화가 치밀어 몇 자 적어봅니다...그렇게 떠나와서는 창피함을 알아야지 이런 저런 이유를 단다는것 조차도 못마땅합니다. 늦었지만 그들이 진정한 지성이라면 우리는 그들의 반성의 소리를 듣게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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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7-08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저도 저 기사보고 조금은 황당했더랬습니다..

호랑녀 2004-07-08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0년대의 대학생(저는 87학번)과 2000년대의 대학생은 참 다르구나 생각했더랬습니다.
저희때는, 저희들의 행동이 혹시라도 대학생이라고 티낸다고 생각하실까봐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도 조심했었지요. 난생처음 그렇게 많은 아이들의 보모노릇을 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밥 먹었던 게 체했던, 그래도 평가와 반성을 하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꼿꼿이 앉아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대학생 조카아이를 보니 농활을 굉장히 낭만적으로 생각하더군요. 거의 엠티 수준인 것 같아요. 신문에 나지 않은, 뭔가 다른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스무살 아이들에게 아줌마 아가씨라는 호칭이 굉장히 기분나빴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친구들은 벌써부터! 대접받는 데 익숙해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조선인 2004-07-08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황당한 일이네요.
호칭이 문제가 되다니 농활간 건가요, 부킹간 건가요.
전 여대를 나왔는데 계집들끼리 집나와 싸대는 꼴을 볼 수 없다는 마을 주민들 입장 때문에, 입촌을 허락받지 못해서 할수없이 주말마다 밤차타고 내려가 일요일 하루 일하고 다시 밤차타고 올라오는 걸 반복하던 끝에 결국 농활대 입촌을 허락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허락을 갈구했던 건 봉사를 하러 가기 위함도 아니고, 브나로드를 위함도 아니요, 그곳에 배움의 길이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가을산 2004-07-08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기상이변에 의한 재해가 아니라면 '도와주기 위해' 농활을 갈만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갈만한 곳이 없는데도 전통대로 어디건 꾸역꾸역 가야한다니, 준비하는 학생들로서도 힘들겁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봉사'나 '활동'을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면, 무엇보다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 그리고 준비가 필요하겠죠.

몇 년 전 '자원봉사 거부선언'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한 장애인이 쓴 것이었는데, '자원봉사'를 한다고 하면서도 클라이언트(복지상담이나 자원봉사의 수혜자)에 대해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 전혀 사전 지식이 없이 와서 오히려 상처를 주고 가는 자원봉사자가 많아서 경각심을 주기 위한 글이었습니다.

안가느니만 못한 요식적인 활동은 과감히 통폐합해서 정말 제대로 할 사람들을 위한 활동만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수수께끼 2004-07-09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저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농촌의 고통과 어려움...그리고 농촌에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편인데, 농활을 떠나는 대학생들이 농활을 가서 발생될 수 있는 제반 문젯점에 대해 사전에 스터디를 하지 않은것 같아 답답했습니다.
저학년일때는 호랑녀님 말씀처럼 하루 일과를 결산하면서 제대로 숨도 못쉬고 선배들로부터 농활에서 범했던 실수에 대해 엄하게 꾸짖음 당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시대가 바뀌고 농촌에서 정말 일손 이외에 특별한 도움을 받을 여지가 없어 점차 농활의 의미가 쇠퇴한다고는 하지만, 일단 농활은 자신의 방학기간의 여유시간을 봉사라는 이름으로 버리는 것이기에 대상 농촌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가 고려되어야 할것입니다. 물론, 제가 심하게 심하게 꾸짖기는 했지만 농활을 떠나는 요즘의 대학생 농활이 문제 야기를 목적으로 출발하지 않았으리라는것은 당연했으리라 생각되지만,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최종 결정을 내렸었더라면 이번 사태와 같이 지탄을 받는 일로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발불고 행차를 알리며 거대한 규모로 농활을 출발하기보다는 어디 정말로 일손이 필요한 깊은 산골에 혼자 가더라도 진정으로 일손이 부족한 농촌을 도울수 있는 농활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동안 잡다하게 늘어만 놓았던 마이페이퍼를 일부 통합하였습니다. 

세상사에 대해서는 가급적 제가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살아가면서 정치판에 역겨움을 느끼는것이 지겨워서 애써 시론이라는 이름으로 나발대기가 싫어서 아예 그런 공간을 만들지 않았는데....정치를 빼고 몇 가지는 세상사에 토를 조금 달고자 합니다.  정치, 종교는 이곳에서 거론할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두 가지에 관한것은 세상이 두쪽이 난다해도 언급을 하지 않으렵니다.  그간 김선일씨 사망, 재보선, 대통령 탄핵, 서울시 버스정책 변경 등등 할말은 많았지만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생ㄱ가되는것은 애써 피하고자 하여 거들먹도 안했지만 이런것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할말을 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여 <신변...그리고 잡기===>신변, 잡기...그리고 시론>으로 변경하였습니다.

 난초와 향은 둘 다 마음을 맑게 다스리고자 하는 의미로 시작을 했지만 다소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지라 두 페이퍼를 합쳐 하나로 묶었습니다. 난이나 향이나 모두 향기를 품고 있는지라 묶어도 별 지장이 없을것으로 판단을 했습니다.

  <가슴아픈 여러가지 일들..>은 <신변,잡기...그리고 시론>과 병합하였으며, 기타 말같지 않았던 것들은 모조리 쓰레받이에 담아 <황당함...그속의 나>에 쏟아부었습니다. <사무실 안과 밖의 풍경>도 신변잡기와 대동소이하여 <신변, 잡기...그리고 시론>에 포함을 하였습니다.

 10개 정도의 주제로 페이퍼를 운영하려고 했지만, 모두 11개의 주제는 어쩔수 없이 남겨야 하겠기에 다소 늘어진 모습이지만 나머지 11개의 문패는 그냥 놔두도록 하겠습니다. 혼란을 드리게되어 죄송합니다만, 자주 방문해 주실것을 당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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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7-08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balmas 2004-07-08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저는 잠깐 정리하다 말았는데 ...
언제 정리하나 ...-.-;;

비연 2004-07-0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바뀌었는지 뉴스를 접하면서 개탄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흡연이 금지된 학교 규정에 반하여 흡연을 하던 학생이 적발 되었고, 학교 규정(아마, 정학 정도 되겠지요)에 따라 머리를 깎으려고 했는데 학생이 반발을 했고, 그 과정에서 교사 3명이 체벌을 가하여 학부모가 교사 3명에 대해 폭력행위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고발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흡연 학생을 적발하고 머리를 깎이는 행위는 규정을 위반한 학생에 대한 일종의 반성의 기회와 시간을 주기 위한 예전부터 행해오던 수단이었습니다. 물론, 시대가 바뀌었기에 이런 규정은 바뀔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머리 깎이기를 거부하는 학생의 행동입니다. 교사 3명이 가세를 했다고 단순히 학생 한 명을 두고 일방적으로 때린것 처럼 알려지고 있지만 이 세상의 어느 교사도 지금시대에 마음놓고 학생을 두들겨 팰 용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당장 이유없는 체벌은 그 교사의 밥벌이를 끊는 하나의 빌미가 되는데 누가 그런 올가미를 자신의 목에 걸려고 하겠습니까? 그 학생이 규정을 따르지 않으려고 반발을 하고 그 와중에 불경스러운 행동으로 교사 3명이 가세를 하였고, 결국은 부모로부터 고발까지 당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이 교칙을 따르지 않겠다고 버티면 교사는 그냥 그 학생을 내버려 두어야 하는것이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입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중요한것은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우습게 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적인 교육 환경이 가장 발달하였다는 미국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우리 나라에서는 버젓하게 일어납니다. 특히 교육제도가 가장 발달하였다는 영국에서는 당연한 체벌은 부모가 창피하게 여기며 처벌 또한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동부 13주는 자녀의 귀가 시간이 저녁시간보다 늦으면 우리가 흔히 만화나 영화를 통해서 보았던 광경처럼 무릅에 아이를 엎드리게 하고는 엉덩이를 때리기도 하며, 미국 사회에서 가장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고깔씌우기를 해서는 방 한 구석에 앉아 있도록 합니다. 그만큼 반성의 기회를 본인 스스로에게 주어서 반성할 시간을 가지라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우리 나라의 경우는 모든 여건이 앞의 예를 든 두 나라의 경우와는 많이 다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Ivy라던가 하는 외국의 명문같은 명문...3대 공립, 5대 사립하던 명문도 이제 우리 나라에는 없습니다. 공교육을 마치도 공산품 생산하듯 획일화 시키고 나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이 오늘날의 교육계의 문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을 공산품 만들듯 획일화 하여 평준화라는 미명으로 덮어질 수 없음에도 배운 사람들이나 안배운 사람들이나 똑 같이 졸업생이라는 딱지를 주기 위한 방편으로 시행하는 것입니다. 사교육비도 바로 이런 점에서 출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자녀는 할수 있어"라는 사고로 열심히 투자를 하면서 공부에 취미가 없다거나 아예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자녀에게 돈만 들이면 성적이 올라가리라고 믿는 학부모들 때문에 너도 나도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하고...  밑빠진 독에 물 부어대는 참으로 한심한 작태라 아니할 수 없다고 봅니다.

 노동 현장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회의 일정한 직장에서의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는 그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죽어라고 고생을 하고 노력을 해 온 사람들에게는 그만큼의 보상을, 그리고 맨날 놀러나 다니고 기술도 변변하게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또 그만큼의 대접을 하는것이 시장 원리입니다. 그러나 1988년부터 이런 조짐은 이상한 노동운동으로 흘러가기 시작해서 죽어라고 노력을 한 사람이나 대충 놀며 놀며 온 사람이나 동등한 급여를 달라고 요구하게 되었고 공공기관인 서울 지하철을 필두로 투쟁에 투쟁을 벌이며 극과 극의 상황속에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내의 상황을 보고 외국인들은 혀를 찹니다. 소위 힘 하나 안들이고 빈둥빈둥 놀며 왔던 사람이 죽어라고 나름대로의 분야에서 공부를 해 온 사람과 동등한 급여를 달라는것은 정말로 완전한 공산주의나 다름이 없다는 날강도 심보인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목표가 늘 120% 달성!!  150% 달성!!  하는 식으로 상향 달성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것은 애초부터 목표 자체가 잘못 설정이 되었던 것이지 실상은 목표보다 상향 달성한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평등을 부르짖었기에 신분은 있을지언정 계급은 없었고, 너 나 할것없이 나름대로의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으며,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에 공동의 노력을 필요로 했지만, 내 것이 아니기에 혼신의 노력을 하지 않아 대충 한 일들의 목표는 늘 초과달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었습니다. 과연 입사 동기라면 그 사람의 능력이나 배움 정도나 수행하는 일의 양이나....기타 등등을 무시하고 급여가 똑 같아야 되나 하는 문제는 평준화 개념에만 빠져서 모든것의 평준화를 요구하는 어리석고 말도 안되는 문제로 우리는 심각하게 짚고 넘어야 할 문제들입니다.

 작은 사업체로 공장을 운영하는 제 친구는 늘 사람을 못 구해서 야단입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직원으로 입사를 하면 평생 직장처럼 특별하게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반성의 기회를 주고는 고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동종의 다른 직장에 비해 덜 주지는 않지만 더 주지도 못하는 급여입니다. 그런데 사업장을 확충하려고 해도 제대로 사업장을 돌아가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일에 종사할 사람들이 급여를 따지면서 기피하기 때문이랍니다. 과거 대기업에서 받던 급여보다 10여만원이 적으니 못하겠다는 둥, 또는 과거 직장에서는 휴일이 년간 며칠씩 더 많았다는등의 이유로 말입니다. 구직보다 구인이 더 많다는 현실은 아직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배가 부르다는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또 그렇게밖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구요. 정말 당장 단돈 몇 푼이라도 아쉽다면 배짱 튕기면서 저울질 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아침에 집을 나오면서부터 직장을 구하느라 머리는 푸욱 수그리고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집에서 식구들이 굶어서 뀅한 눈만 보인다면 그 때 가서야 막벌이라도 메달리겠지요. 정말로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또 자신의 벌이가 신통치 않아도 최선을 다합니다. 언젠가는 제대로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오늘은 꾹 참는 것입니다.

 "교사의 변은 개도 안쳐다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그만큼 교사직이 더러워서가 아닙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동기는 교사라는 직종을 특별하게 인식하여 그만한 대접을 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십 여년 전부터 교사는 정말로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여 버리고 만것 같습니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잘못을 해도 함부로 회초리를 들 수가 있나, 소리 한번 제대로 칠 수가 있나, 예전처럼 가정방문을 통해 학생을 이해하고 진학과 학업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어 인성을 길러 나가도록 해야하는가...등등에 관한 문제는 이제 교사의 손에서 떠난지 오래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애들 시달림에 잘 견디자는 출근길의 교사들에게서 무엇을 우리 아이들이 얻기를 바라겠습니까? 교사가 상전이 아니라 학생들과 학부모가 상전인 사회에서 교사인들 무슨 재미로 의욕과 책임감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할 맛이 돋겠습니까?

 이번 사태의 경우, 학생이 반항을 하고 거부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그 학생의 요구대로 가만히 놔 두는것이 상책입니까? 학생이 막말로 교사를 앞에서 지랄발광을 하는 경우가 있어도 그냥 방관을 해야 하는것이 교권을...교사들의 안녕을 위한 방법인가요? 오늘날 교권이 땅 바닥에 떨어진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교사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게 커 온 학생들이 가치 판단의 기준도 없이 사회에 나가서 또 아이들을 낳고 어른이 되어 잘못 배운대로 제 자식을 가르키고 있으니 이런 악순환은 오랜동안 고치기 힘들게 될것입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했는데 한번 잘못 길들여진 교육의 폐해는 되돌리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게됨은 자명한 일입니다. 학교의 전통도, 교풍도 다 사라져버린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그나마 중심을 잡고 제자리를 찾았어야 했던 교사들이 스스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함이 오늘날의 이러한 현실을 초래했다고 봅니다.

 제 자식이 얻어맞아 마음 아프지 않는 학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 아이들도 학교에서 체벌을 당한 경험을 방과후에 집에 돌아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잘 맞았다고 해 줍니다. 그리고는 마치도 재판장 처럼 왜 잘못했다고 선생님이 체벌을 가했는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맞는 순간은 기분이 나빴을 아이들도 충분한 설명에 이해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제가 느끼는 것중 중요한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아이들이 왜 체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행동이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과 반성보다는 체벌 자체에 흥분을 하는 것입니다. 비단 제 아이들이 못나서의 문제기 아닙니다. 나름대로 똑똑하다는 아이들이기에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으면 모두 똑 같은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뒤떨어진것이 요즘 아이들인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교사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학생들이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반성하는 가운데 체벌을 가해야 할것입니다.

 이제 3명의 교사가 고발이 되는 사회문제로 비화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는 많은 교사들은 씁쓸한 입맛을 다실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그런 회오리속에 빠져들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나중에 자신의 경우에 똑 같은 일이 발생을 해도 그냥 유야무야 넘어갈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을 합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누가 끊어야 하겠습니까? "군사부일체"는 이젠 고문서 속에서나 나뒹구는 헛 구절이 되어버리고 한 대 맞았다고 눈에 쌍심지를 돋우며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고매한 교사들의 목덜미를 잡고 흔들어대는 학부모...  그런 모습을 보며 성장한 자녀들이 사회에 나와서 사회에서 어떤 기여를 하기를 바라시나요? 사물을 보는 눈이 삐뚤어져 있으면 그 사물이 아무리 바로 놓여있어도 비스듬해 보인다는 프로이드의 말 처럼 그렇게 자라서 배출되는 수많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는것일까요? 그저 좋은게 좋고 내 자식만은 금이야 옥이야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은 여늬 부모나 다 마찬가지이며 충분히 이해하지만 순간의 치미는 울화와 아픔을 참고 자식이 똑똑하게 크기 보다는 똑바르게 크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부모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의 정심(正心)이 자식 교육의 성패임을 자각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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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7-05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요즘 선생님 알기를 뭘로 아는지...
부모들의 생각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생각을 하면 어른들부터 좀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인 2004-07-0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승의 매를 기꺼워할 수 있는 학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다시 다짐해 봅니다.

메시지 2004-07-0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런 아이를 보면 그들의 부모를 떠올립니다. 아이의 죄 90%이상이 부모의 잘못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부모되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어머니 학교가 많이 생겨서 가족의 올바른 가치관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으로는 그 기본적인 원인은 경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고살기에 바쁘다는 이유로 방치되는 아이들. 돈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일어나더군요. 그들에게도 연민의 정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수수께끼 2004-07-06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에게 해 줄수 있는것은 다 해주고 싶은것이 부모의 마음인것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황금만능이라고 뭐든 돈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심지어는 아둔한 머리 조차도 돈이면 채울 수 있다는 사고와, 반대로 내 아이는 머리가 좋은데 돈이 없어 남들만큼 과외를 시키지 못해서 성적이 안오른다고 자조하는 부모...자식의 정확한 머리의 한계를 우선 알아야 할것입니다. 돈으로 해야 할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부모라면 심한 말로 부모 자격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여러분의 말씀처럼 부모의 잘못된 사고를 아이들도 답습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제대로 된 집안의 자녀들의 교육은 뭔가 다릅니다. 개방적인것 같으면서도 분명 한계가 있고, 아래 위가 없는것 같으면서도 위와 아래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어른을 어려워 할 줄 모르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역시 어른을 어려워 하지 않게 되며 그 자신도 다른 똑같은 사고로 성장한 사람들에게 당하게 된답니다. 자식을 나무라는 마음...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일지라도 진정 자녀를 위한다면 매를 드는데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더구나 부모보다 오랜시간 머물수밖에 없는 학교교육에서의 스승에 대한 예우나 공경심은 한창 인성교육의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더없이 귀중한 기회이며 시간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보장을 해 주어야 할것입니다. 부모가 못시키는 인성교육을 학교에서나마 조금 부족하더라도 채워나가도록 하는 풍토를 우리 스스로가 마련해 줘야 할것입니다.

메시지 2004-07-06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조금 빗나간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승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제자도 없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의 노력에 의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한 쪽의 부재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무실을 옮기고 나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잇점은 자연과 함께 느낄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전에 말씀을 드렸지만 제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은 약 500m의 비포장 길이며 길 양 옆으로는 포플러와 소나무가 높게 자라고 그 그늘로 숲의 터널을 만들어 주고있습니다. 겨울에는 조금 을씨년스럽겠지만 요즘 같은 성하의 계절에는 정말로 더 없는 산책길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14만평의 대지위에 자리잡고 있는 저희 사무실은 대부분의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도로만 포장을 하지 않아 아직도 건조한 날에는 흙먼지가 일고, 비가 오는 날에는 물 웅덩이가 만들어지고는 합니다. 그런 길이 이 넓은 곳에 요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기도 합니다. 금년 초...이곳 진입로의 포장 계획에 대하여 저는 운치를 내세워 반대를 했고 제 의견은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여져서 포장으로 운치에 손상을 가는 일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필요에 의해서 이 길도 포장이 되겠지만, 최소한 가슴속에 작은 정서라도 담고 있다면 이 길에 아스팔트액을 뿌리는 몰상식한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 며칠동안 출근길과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길에 이 길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새로운 볼거리를 하나 발견을 했습니다. 그것은 비교적 넓은 단지를 형성하고 있는 복분자였습니다. 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활짝 웃고, 초여름에는 넝쿨장미와 밤 꽃, 그리고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며, 이름 모를 수 많은 들풀들이 제 나름의 멋을 부리는데 그 가운데 빨간 열매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복분자의 꽃을 저는 보지 못했답니다. 그런데도 열매가 뻘겋게 익어가니 금방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복분자 열매는 아침에 봉우리를 틀면 며칠을 걸려 열매를 살찌우는게 아니었습니다. 연분홍 속살을 세상에 내밀고는 하루 정도만 지나면 아주 빨간 석류알처럼 변하고는 이내 종족보존을 위해 땅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어제는 술을 담을 수 있는 작은 병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는 점심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 빨갛게 익은 복분자 열매를 땄습니다. 줄기에 잔가시가 있어 잘못 건드리면 가시가 손에 닿아 찔리기도 하였지만 잠깐 사이에 두 손바닥 가득 될 정도로 딸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막 봉오리가 벌어져 익어가는것을 제외하고 곧 떨어질 열매로만 모았습니다. 깨끗하게 씻어서 병속에 켜켜히 쌓고는 설탕과 술을 부었습니다. 빨간 복분자가 술병에서 익어가기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아마 이런 과정은 복분자가 열매를 맺는 일을 멈출때 까지 계속될것 같습니다. 그러면 작은 술병이지만 제법 될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얼마전 태풍 영향권에 접어들면서 강한 비바람에 많이 떨어졌던 밤꽃도 이제는 작지만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해당화는 꽃이 떨어지니 그 꽃이 앉았던 자리가 제법 통통하게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이 열매는 약재로도 활용된다고 알고 있는데 제대로 익으면 또 다른 술병에나 가득 담아 볼까요?

 나무들 뿐만이 아닙니다. 다람쥐, 청설모가 길을 가로 질러 저만치서 허리를 곧추세우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는것은 물론이고, 밤에는 어디에 숨어 있다 나왔는지 사슴벌레, 하늘소, 풍뎅이 등이 가로등의 불빛을 찾아 몰려듭니다. 발 아래에서는 길다란 꼬리를 잇는 개미들의 행렬이 보이는데 아마도 애벌레를 물고 가는것으로 봐서는 대단한 이사 작업이 한창인것 같습니다. 베짱이도 방아깨비도, 메뚜기도, 매미도 쓰르레기나 심지어는 딱따구리 까지도 이 동네에 함께 사는 동네친구들입니다. 그들은 결코 자연을 떠날 수 없기에 이렇게 작은 숲이나마 의지하고 살아가려는것 같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약 1시간의 여유는 이렇게 숲의 친구들과 보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이렇게 자연과 하루 하루를 같이 지낼 수 있는 행복을 안고 생활하는 사람을 손꼽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속에 있는 동안은 온갖 잡념을 다 버릴수 있어서 좋습니다. 오직 눈에 보이는 자연만이 저의 대화 상대자이니까 말입니다. 어제 열매를 땄던 복분자의 꽃 줄기도 열매 색갈 만큼이나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병속의 복분자는 비단 하루가 지났음에도 제법 술의 색이 이쁜 분홍색을 띄고 있습니다. 이 술이 익는 날...아마 복분자는 열매맺기를 중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복분자는 아름다운 빛깔로 재 탄생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술이 익으면 가까운 지인들에게 작은 병에 담아 나눠줘야 하겠습니다. 자연 그대로를 담았노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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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7-0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수수께끼님의 가까운 지인이 되고 싶네요 ^^

수수께끼 2004-07-0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저는 술을 안먹습니다. 술과 인연의 고리를 끊은지도 꽤 시간이 흘렀군요. 그럼에도 과실주는 매년 담그는데 아주 맛이 있게 담궈서 주변 분들에게 나눠주면 참 좋아들 하시더군요... 모 회사에서 나오는 산XX라는 술병을 깨끗하게 씻어서 거기에 담아 냉장보관을 하면 자연 숙성도 되고 뒷맛도 깨끗한 정말 맛있는 약이 됩니다....입맛 다시지마세욧!!!

sunnyside 2004-07-01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요강을 뒤집는 효능을 발휘한다는 복분자가! 지천에 열려 있단 말입니까?
수수께끼님의 근무환경이 너무나도 부럽습니다.

수수께끼 2004-07-0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쩝~~
근무환경이 그런것이 아니라 근무지 인근이 그렇다는 것이고, 제 방의 커다란 창은 서쪽으로 나 있고 에어컨도 없어서 이만저만 짜증이 나는것이 아니랍니다. 선풍기는 벽걸이인데 쑈파족에 있어 책상쪽으로는 바람도 닿지 않고...그렇다고 밖의 그늘에서 업무를 볼 수 없지 않겠어요? 뭔가 하나가 좋으면 반드시 반대급부적인것이 있게 마련인 모양입니다...에고..더워라...헥~헥~~
 

  1. 이번에 몇권의 책을 알라딘에 주문을 했습니다. 모두 8권에 금액은 14만 여원 정도 되는데 정말 이래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지난번에 책을 주문했던것이 2월이었는데 4개월만에 주문을 하면서도 현금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쌓여있던 알라딘의 적립금으로 대금을 지불하려니 마치 알라딘의 살을 깎아먹는 파렴치하고 뻔뻔한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원한다고 되는것은 아니겠지만, 몇 번의 이주일의 마이리뷰와 몇 차례의 서재지수 상위 30걸...그리고 언젠가 반짝 하고는 2000원인가 할인 된다는 쿠폰 등등이 "나의 계정"에 남아 있던 자산이기에 염치 불구하고 그중 일부로 결재를 해 버렸습니다. 눈치가 보인다고나 할까요?  알라딘에서 그런 배려를 해 주는것은 영원한 알라디너로 남아달라는 무언의 압력도 많이 작용을 했던것으로 판단되고, 이제는 제 돈으로 책을 사는 떳떳함 속에 알라딘 적립금으로 책을 사는 뻔뻔함이 공존하도록 해야 할것 같습니다.

 2. 죽이 되는지 밥이 되는지 모르고 써왔던 <마이리뷰>가 아흔 고개를 넘기 직전입니다. 원래 소제 자체가 무겁다보니 서재마저도 무거워져 리뷰 하나 쓴다는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저만 간직하는 독후감 형식이라면 제 느낌 그대로를 옮기면 되련만 이 <마이리뷰>라는 것이 알라딘의 독자들이 도서를 선정하는 참고자료로 활용이 되다보니 그저 서리해온 수박 겉 핥기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그래도 저 나름대로는 도서를 선정해야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정말로 참고가 될 수 있는 안내문의 역할을 하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도서 선정의 올바른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끼며, 그러기에 가급적 상세하게 리뷰를 작성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리뷰를 가지신 분은 수 백개의 리뷰도 있지만 저는 이제야 겨우 100고지를 바라보는 입장이고 정말로 최선을 다한 리뷰 작성이기에 많은 리뷰를 간직하고 계신 여러분의 노고가 새삼 경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저도 10년이 지나고 더 오랜 세월이 지나면 비록 이곳 게시판에서 빛은 바래겠지만, 차곡차곡 쌓인 <마이리뷰>를 바라보며 감개무량 하고 있겠지요.

 결코 쉽게 쓰지 않는 <마이리뷰>라고 장담을 하면서 100번째 리뷰에 덧글을 다시는 분들 중에서(이 덧글은 댓글의 성격이 아니라 단지 리뷰를 보셨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한 방법입니다) 다섯분께 작은 선물을 드리려고 합니다. 99번째 이후 어느 날 갑짜기 올라 갈 리뷰입니다만, 제게 있어 이곳에 올리는 <마이리뷰>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기에 매 100번째 마다 작은 선물을 준비하려고 하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이런 이유는 말씀드린대로 서재 분위기가 비교적 무겁기에 쉽게 발걸음을 이곳으로 옮기기 어려움에도 제 서재를 찾아주시는 님들께 감사를 드리고자입니다.

 이제 한동안 남쪽에 머물던 장마전선도 북상을 하고, 금년도 절반을 넘기고 있는 싯점입니다. 어떤분은 여유롭게 전반 6개월을 보내셨겠지만, 또 다른 분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신 분들도 계실겁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저런 말 같지도 않는 일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깊게 파고들었다고도 봅니다. 이런 모든것이 조금 더 나은 발전을 추구하는 진통의 시기라고 생각하시고 꾸욱~ 마음을 눌러 주신다면 분통도 어느정도 삭일 수 있으실것입니다. 7월부터 시작되는 2004년의 후반기....우리 모두 과거는 떨쳐내고 힘차게 시작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힘들 내시자구요~~화이팅!!!!

                                                         전반기의 여러 아픔을 묻으면서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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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6-30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힘내자구요! ^^
그나저나 100번째 이벤트에 운이 좋아야 할텐데...

조선인 2004-07-0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번째 이벤트 상품으로 복분자주를!!!

호랑녀 2004-07-0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단하시네요. 간단하게 쓴 것도 아니시던데 백개를 바라보시는군요...
이벤트 상품이 기대됩니다. <- 김칫국부터 마시는 호랑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