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번에는 만년필에 대해 말씀을 드렸었는데 오늘은 늘 팔목에 붙어있어야만 하는 시계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누가 시계를 만들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시간의 기준을 설정하기란 참 어려울텐데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의 기준을 설정을 하고 맨날 시계를 들여다보며 하루를 살아가게 만들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욕심 같아서는 제 나름대로의 시간 설정으로(예를 들어 하루를 50시간으로 한다던가..등등) 사용도 하고 싶지만 객관성이 결여됨은 물론이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것 같아 참기로 했습니다. 하여간 어떤분들은 시계가 귀찮아서 외출을 마치거나 또는 심지어는 사무실의 책상위에 풀어 놓고 계시는 분들도 있던데, 제게 있어서의 시계는 인공심장에 달린 박동기를 움직이는 건전지와도 같아서 단 한시도 제 곁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어쩔수 없는 경우(목욕중이라거나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나깨나 늘 제 손목에 붙어 있어야 한답니다.

2. 그런데 제게 나쁜 버릇이 있어(이 버릇은 신경이 예민해서인것 같습니다) 자다가도 시계의 째깍~ 거리는 소리를 듣게되면 잠을 깬다는 것입니다. 한참 곤하게 자다가 몸을 움직이며 손목을 얼굴에 가져가는 순간 째깍~거림을 알게 되고...그 다음에는 잠에서 깨어 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결혼 예물로 받은 시계(어떤 시계라고는 구체적으로 밝힐수는 없지만 1. 비싸다  2, 시간이 잘 안맞는다.  3. 무겁다....라는 3대 단점을 가진 시계입니다)는 신혼여행때부터 제게 구박을 받고는 아직 제 팔목에 감긴적이 한번도 없답니다. 그렇다고 내다 팔려니...명색이 결혼 시계이고 그 당시보다 가격이 떨어졌어야 함에도 오히려 지금은 가격이 더 올랐더군요. 한창 유행했던 CACIO시계는 전자시계라서 째깍~거리는 소리가 없어서 좋았기에 늘 제 팔목에 붙어 있어 충실한 계시원 노릇을 했더랍니다.

3. 그런데, 제게는 이상한 버릇이 생기기 시작을 했습니다. 한번 찬 시계는 딱 1주일만 차고 다른 시계로 바꿔차는 버릇입니다. 두 개면 두 개로 세 개면 세 개를 번갈아 차는 버릇이 생겨버렸습니다. 꼭 그렇게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그런것은 아닌데도 이상하게 습관적으로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같은 회사의 제품이 시계 판의 색이 다른 경우가 있는데(예를 들면 GUCCI 같은 경우에는 똑같은 형태이나 문자판의 색이 삼색, 검정, 흰색 등 3가지로 나옵니다) 이럴 경우에는 3가지 모두를 번갈아 가면서 차게 됩니다. 1주일간을 제 손목에 있었던 것을 다른 시계로 바꿔차는 습관이 들고나서부터는 시계를 나열하는 습관도 붙게 되더군요

4. 이런 습관은 급기야 책상의 한쪽면(제 책상은 책상과 책꽂이 일체형으로 문을 열면 그것이 책상이 되는지라 그 옆면에 공간이 있답니다)에 칼라 압침을 꽂아서는 시계를 주르륵 걸어두고는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계로 골라차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무심코 시계를 걸어두던 그 곳에서 숫자를 세어보니 자그마치 14개의 시계가 매달려 있더군요. 나중에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이곳에 한번 올리겠습니다만 그동안 무심코 습관적으로 한 행동들이 알게 모르게 시계 컬렉션까지 겸하게 된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한가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무심코 눈에 띄는 시계를 골라서 팔목에 찼었는데 이제는 의식적으로 시계중에서 "어떤 시계를 찰까?"로 고민을 조금 해야 될것 같아서이기에 말입니다.

5. 제게 있어 시계는 떠날 수 없는 운명입니다만, 저를 보는 남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철....가끔 필드에 나가면 땀이 비오듯 하는데도 시계를 차고 운동을 하니 가죽줄이 염분을 먹게 되고...그러면 쉬이 상하고...테니스를 하더라도 시계를 차고 하니 역시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는데도 악착스럽게 풀어 두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건 시간을 이용을 하기위해 시계를 소지하는 것인지..아니면 시계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애매하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이 제가 분명히 밝히고 싶은것은 결코 의식적으로 그러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도 모르게 이상한 습관이 붙어버린 모양입니다. 컬렉션의 의미도 마찬가지로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렇게 된것이고 구태어 이름있는 시계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가진것도 아니었습니다. 뭐...멋을 부리고 다닐만한 위치에 있는것도 아닌 군복을 입는 군인이기에 고급 시계는 필요없는 처지겠지만 한 개, 두 개 모인 시계가 나름대로는 다 사연을 가지고 있는 시계더군요.

6. 언제까지 시계 바꿔차기가 계속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다가 늦잠을 자는 경우 허둥대며 출근을 하다보면 욕실에 시계를 두고 온것이 생각나게 되고, 그런 경우라면 우선은 출근이 더 급한것이 당연함에도 다시 돌아가서 시계를 꼭 챙겨야만 하는것은 한마디로 편집광적인 병증에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단 한번도 "그렇게 해야지..."라고 의도적으로 기획을 해서 그렇게 한적은 없었다는 점인데 무의식속에 담긴 증세도 증세는 증세일것 같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요?  남들에게 해코지 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14개의 시계중 단 하나도 알람시계가 없는지라 아침잠을 깨우는 알람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런 시계가 있었다면 아마도 지금쯤은 박살이 났을테니 말입니다.......

                                                               < 如       村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eylontea 2004-03-0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4개의 시계라.. 많기는 하군요...
하나 하나 소홀히 할 수없으니.. 번갈아 차야지요...
그런데.. 단점은 시계는 가야하는 것이니 정기적으로 바꾸어 차려면 밥도 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비로그인 2004-03-05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맞아요....어떤날은 아침에 시계를 차고 나갔는데....시간을 보니 전사한 시계일 경우도 있더군요. 그 후부터는 쪼르륵 걸려있는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나 멈추었나를 살펴보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답니다. 나중에라도 걸려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 언제까지고 우리 곁에서 어리광만 부릴것만 같았던 딸 아이가 오늘 대학의 기숙사에 입사하였습니다. 자기 방에서 기숙사로 가져 갈 짐을 챙기는데도 몇 시간이나 걸리고, 뭔지는 모르지만 종이박스에 잔뜩 집어 넣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다행히 주말을 맞아 제가 집에 내려가기에 제 차로 짐들을 기숙사로 날라야 했습니다.

2. 무슨 짐이 그리 많은지....  웬만한 없는 집 이사가는것 같았습니다. 대학 정문을 들어서고 기숙사 앞에 도착을 하니 벌써 많은 학생들이 입사 준비에 정신들이 없었습니다. 재학생은 방학 동안 집에 갔다가 다시 방을 배정 받아 새로운 방친구를 기대를 하며, 어떤 학생들은 부모가 차량을 이용하여 직접 짐을 가져다 주었지만, 어떤 학생은 집이 멀거나 혹은 차량으로 직접 날라줄 형편이 안되어서인지 택배 차량을 이용해서 짐을 부쳐온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여학생 기숙사 입구는 수재를 만나서 가재도구를 꺼내 놓은 것처럼 짐들로 가득하여 정신이 없었습니다.

3. 아이의 방은 3층이었고, 4인실임에도 두 사람만 사용하도록 배정이 되었습니다. 이층 침대 두개에 책상 4개, 의자 4개, 옷장 4개, 설합도 4 개 ...  모든 집기가 4인 기준으로 준비되어 있었지만 방은 매우 협소하였고, 짐을 다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습니다. 다행히 4인실에서 두 사람만 생활을 한다니 그나마 좁은 공간에서나마 4명이 다 들어간 숙소보다는 다소 여유가 있을것 같더군요. 두 서너차례 짐을 옮기니 벌써 그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우더군요.

4. 딸아이는 커서 배필을 만나게 되면 시집을 보낸다고 하는데, 고이 길러서 다른 집에 보내는것이 조금은 억울해서인지 부모, 특히 어머니는 경사스러운 혼삿날에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시지요. 아니...그보다는 늘 뒷바라지를 해 주던 딸아이가 곁을 떠나니 수족중 하나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기에 눈물을 흘리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번도 집을 떠나 장기간 지낸적이 없는 딸이기에 아마 에미의 입장에서는 무척 서운했던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 배낭 여행으로 일본에 열흘 정도 다녀온것이 아마 가장 오랜시간 집을 떠나가 있었던것 같군요.

5. 저야 남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기숙사에 입사하는 딸아이를 보며 "이제는 다 컸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이는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동료와 선배들에게 인사하기 바쁩니다. 에미는 딸의 짐중에서 무엇이 빠졌는지....시집가는 딸의 혼수를 준비하듯 찬찬히 짐들을 꺼내며 정리를 합니다. 늘 딸아이의 방에서 보아왔던 눈에 익은 물건이건만, 그것들을 하나 하나 정리를 하며 새로운 집에 입주하여 새롭게 장만한 물건인듯 놓아둘 자리를 찾기에 여념이 없지만, 딸아이는 제 물건이면서도 물건을 정리하기 보다는 친구들과 인사 나누는데 더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한국의 어머니는 다른 나라의 어머니들 보다 훨씬 자신의 자녀들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진작에 아는 일이지만 어디 부모 곁을 떠나기라도 하면 특히 딸에 관해서는 안절부절 못하는것 같습니다.

5. 아이를 남겨두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천덕꾸리기만 같았던 딸 아이의 집에서의 습성에 대해 늘어 놓기 시작을 합니다. "맨날 늦게 자고 늦게 잃어났는데 아침 강의나 제대로 들으려나?"  "선배들이 술을 먹인다는데 술도 못하는 아이가 술먹고 토하거나 하면 어쩌지??" "빨래방이 있지만 빨래는 제대로 할까??"........등등...   제가 듣기에는 전혀 걱정 같지도 않은 걱정을 두 세차례씩 반복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게 첫 번째 이별연습이야...."  "길어봐야 6~7년후면 애는 우리 곁을 떠나는데 이제부터 차근 차근 이별 연습을 해 둬야지..." 아무렇지도 않은듯 내뱉는 제 말이 아내에게는 야속하게만 들리겠지만 하나의 개체로 성장한 아이가 이제는 부모의 부속물도 아니고 스스로 행동하고 말하며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되었으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스스로의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할 나이가 되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6. 이제 큰 집에는 주중에 아내 혼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저도 직장 때문에 서울에 있고, 아이마저 기숙사로 들어가 버렸으니 주말에나 얼굴을 보게 될것이고(그나마 딸이 다른 약속이 없어야 가능 하겠지만요...)...이사를 하기 위한 아파트는 지금 한창 공사중이라 서울로 오기도 어렵고....하여간 막내 딸인 '아롱이"와 함께 보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집을 떠나오며 "TV에만 정신 팔지 말고 박물관 대학을 다니던 운동을 하던 뭐라도 해서 시간을 보람되게 쓸 방도를 찾아봐"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거의 매일 딸 아이와 씨름을 하다가 이제는 해방 되었구나...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일상이 되어버린 그 생활이 차라리 그립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집을 나서는 그 순간에도 아내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짐 정리를 다 했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딸 아이와의 첫 번째 이별연습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애가 새로운 세계에 적응을 하며 부모와는 만날 시간도 줄어들고 한편으로는 그 아이의 마음속에 부모를 그리워하며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겠지만, 아무쪼록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고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랄뿐입니다.

                                                                 < 如       村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립간 2004-03-01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미령의 노래, '내가 난생 처음 여자가 되던 날'이라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세월은 흘러가게 마련이지요.(나이 어린 사람이 이런 이야기해도 되나?)

비로그인 2004-03-01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마립간님....아이들이 태어날때는 "언제 키우나?"라는 걱정이 먼저입니다만, 알게 모르게 저절로 키운듯이 다 커버리는데 그게 잠깐 사이랍니다. 저나 마립간님이나 뭐 고부고부(이런말 쓰면 안됩니다 ^-^) 일텐데요.... 참 세월이 빠르다는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날이 아니었나 생각되더군요...

가을산 2004-03-02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약혼식 때 아버지께서 하객들에게 인삿말을 하실 때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것을 보고 가슴이 찡했던 기억이 나네요. 약혼이라 식이 끝나면 집으로 같이 갈 것이었기 때문에 집을 떠날것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던 때라...

비로그인 2004-03-02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가 새끼를 낳아 분양을 할 때도 그 아쉬움은 매우 커서 못내 섭섭함을 달래기 어려울 때가 있더군요. 그래도 영원히 소멸되거나 사라지지 않으니 다행이지만, 늘 붙어 있다가 떨어져야 한다는것에 더 미련과 아쉬움이 많은가 봅니다. 그런데...가을산님... 약혼식은 언급을 하셨는데...결혼식때도 울지 않으셨는지요?
 

1. 사람에게는 누구나 특징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냥 넘겨버리면 모르고 넘어가겠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백인백색으로 제각기 다른 나름대로의 틀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건 나쁘건...또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건, 시대를 거꾸로 되돌리건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개성은 독특하게 그에게만 작용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제게는 만년필이 수십자루 있습니다. 길게는 50년도 넘은 만년필이 있는가 하면 바로 엊그제 제 손에 들어온 만년필도 있답니다. 제가 만년필을 처음 쓰게 된것은 중학교 때 입니다. 모 잡지에서 주최한 글짓기에서 큰 상을 받았는데 그 기념으로 할아버지가 쓰시던 만년필을 제게 주셨었습니다. "몽블랑"....처음에는 영어를 배운지 얼마 안된지라 발음대로 읽어보니 "몬트브랭크"로 읽게 되더군요. 그 뭉툭한 만년필은 가끔 잉크가 새어서 손에 잉크를 묻히기도 했지만 당시에 시중에 나돌던 독일제나 빠이롯트보다 훨씬 글을 써 내려가기가 수월하여 그냥 술술~ 글이 써 내려가는것 같았습니다. 소위 "몽땅 만년필"이었던 몽블랑에 대해서 알게 된것은 그 후로도 얼마를 지나서 였습니다. 그것도 그 만년필을 알아보시는 분이 계셔서였는데 비록 할아버지께서 쓰시던것을 주셨다고는 하지만 귀한 만년필이었고, 당시에는 쉽게 볼 수 있는 만년필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덕분에 그 만년필로 詩를 써서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고, 대학때는 제법 이름값을 할 수 있었습니다.

3. 그러던 만년필을 잃어버린것은 대학 4학년 때 였습니다. 취업이다...졸업이다 해서 바쁜틈에 어디에선가 앉아 있다가 급하게 자리를 떠나면서 두고 왔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그곳에 가 보았지만 만년필이 제 자리에 있을리가 있겠습니까? 만년필을 사용하던 습관은 볼펜이라는 편리한 필기구가 손에 익숙함을 거부했었고, 결국은 독일제 만년필로 우선은 대신했습니다. 졸업후 첫 봉급으로 부모님 내의와 함께 새로 구입한것이 만년필 이었습니다. "파카 21" 이라는 만년필은 여타의 파카 45보다도 훨씬 쓰기에 편했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마에스터 스튝"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 "몽블랑"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유태인 마크 같이 보이는 뚜껑의 마크가 옆에서 보면 눈에 덮인 알프스의 정상이라는 것과 만년필에 씌여진 숫자가 바로 몽블랑의 높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해외여행시에도 만년필에 대한 집중력은 무척 강해서 필기구 판매상에는 무조건 들려 보았습니다. 흔히들 고급 상점이라는 곳이라는 '티파니'에서도 사 보고 유럽의 벼룩시장에서도 만년필을 구해 보았습니다. 만년필의 원조라는 "Waterman"을 비롯하여 "페리컨" "cross""sheaffer"등등 밥은 굶어도 만년필이 있으면 사 보았습니다.

4. 만년필을 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딸려서 사게 되는것이 볼펜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같은 회사의 제품이라도 그 회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냐에 따라 만년필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져서 나름대로 수집이라는 의미도 담게 된답니다. 가급적 눈에 띄는것은 모았지만, 금이나 은으로 전세계에 몇개뿐이라는 등등의 문구로 현혹하는 만년필은 구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첫째는 워낙 고가이고, 두번째는 실제 사용하는데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서 입니다. 만년필을 구입하는 목적은 일단은 필기감이 어떤가를 알기위해 사용을 하기 위함인데 수백만원대에 이른다면 구태어 희귀성을 따진다고 갖고 싶지는 않답니다. 만년필을 사용하면서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잉크가 각각 다른 원료로 제작되는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로 고급 만년필에 사용되는 잉크는 식물이나 광물을 이용한 자연 안료를 사용한다는 사실입니다. 빠이롯트 잉크같이 화학 안료가 아닌 자연 안료이기에 세월이 흐르면 잉크의 색이 바래거나 하지만 자연 안료로 필기를 했던 대학 때의 노트를 보면 지금도 원래의 잉크가 변하거나 번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각 회사의 잉크를 담는 병의 모양도 특이한 제각각의 형태를 보이고 있어 책꽂이 앞쪽에 놓으면 나름대로 멋을 부리기도 한답니다.

4. 오랜동안 습관적으로 만년필을 쓰다보니 이제는 볼펜을 쓰게 되면 왜그런지 흔한말로 잘 나가지 않는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만년필로 쓰는 글씨는 조금은 악필인 제 글을 감추어 주지만 볼펜은 악필임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버리고 맙니다. 만년필이 아나로그라면 볼펜은 디지털 같은 느낌을 같게 하더군요. 기계로 만든 만년필이 있는가 하면 정성스럽게 손으로 깎아서 만든 만년필, 우각이나 동물의 뿔로 만든 만년필, 금이나 은으로 만든 만년필....그 만드는 재료도 무척이나 다양하지만 제게 있어서는 결국은 하나의 필기구일 따름입니다.  이제 이렇게 알게 모르게 모아진 만년필이 수 십개를 넘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니 틀을 하나 자려고 합니다. 만년필의 형태를 그대로 도려내고 거기에 자주색 벨벳으로 바탕을 만들어 그 오려 낸 구멍에다 제각기 맞는 만년필의 몸체를 넣어 볼까 합니다. 지금까지 써 왔던 수천만에 이를지도 모르는 글짜 생성기였던 만년필....   그들의 임무가 무엇이었던 그 만년필은 그의 주인인 제가 아껴왔던 것이기에 노병으로써 대우를 해 줘야 할것 같습니다. 이제 제 손에서 임무를 마치고 퇴역하는 만년필에 대해 손손이 장식함 속에서 빛나도록 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如        村 >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립간 2004-02-26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만년필을 좋아합니다. 이유는 M방송국에서 '장학퀴즈'라는 TV쇼가 있고 그 광고에 학생복과 더불어 고 신동우 화백님이 광고하던 아** 만년필이 있었습니다. 만년필을 보면 '엘리트'라는 이미지가 떠 오릅니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만년필을 선물하는 것은 '당신의 성공을 바랍니다.'라는 뜻을 담고 있답니다. 만년필을 보면 정겹네요.

비로그인 2004-02-26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공을 바란다는 의미로 선물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에고....마립간님께서 서두에 "저도 만년필을 좋아합니다"라고 하셨는데.....하나 드려야한다는 말씀 같은데요....하하하 M방송이라고 쓰시면 모를줄 아셨죠? 다~ 압니다...엠비디방송이 맞죠? 하하하~~~

▶◀소굼 2004-02-2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만년필은 멀게만 느껴졌던 물건이었죠;여전히 써본 일이 없으니...
티비에서 슥슥 만년필로 서명을 쓰는 걸 볼때면 왠지 기분이 좋더군요;;
장학퀴즈....하도 오래전이라 가물가물;; 아** 만년필이 과연 뭘까요.-.a

비로그인 2004-02-27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만년필은 단지 필기구일 따름이랍니다. 소굼님의 말씀처럼 익숙하다면 스윽~스윽~ 써내려 갈 수 있어 기분이 좋은 것이지요...

ceylontea 2004-03-05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는 펜의 사각거림이 좋아요...
예전에 봤던 영화가 생각이 나는데... 제목도 기억이 안나구..
외국 수학자인데 정신적 장애를 갖고 있는 수학자였지요. 그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존경의 표시로 만년필을 주는데.. 그 수학자가 정신적 장애를 극복했을 때 만년필을 받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무척 감동적인 장면이었는데...(기억이 왜 이 모양일까요? 제목도 기억이 안나니.. ㅠ.ㅜ)
 

1. 지난주초 날이 제법 따사해서 모두의 마음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혹시 새 눈이 움트나를 알아보려고 개나리 주변에서 서성거릴 때...  이제 전역만을 기다리는 그 병사가 오는것이 보였습니다. 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조금은 의아했지만 반갑게 그 병사를 맞이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 3명과 함께 왔습니다.

2. 그 일행을 사무실로 안내하여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그간(그간이랬자 며칠 안되는 기간입니다만) 어떻게 지냈나를 물어 보았습니다. 늘 그랬듯이 그는 언제나 맑고 밝은 얼굴이었고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이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얼마 되지않아 시력을 다 잃게 될것이고  그렇게되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기에 완전 실명이 되기전에 과거를 다시 한번 둘러보고 싶어서 왔다는 것입니다.

3.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말을 하는 그 녀석을 한대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시력은 어떻냐는 질문에 그 녀석은 점점 나빠진다고 답을 하더군요. 물론, 그 친구의 마음을 모르는바가 아니지요. 더구나 저도 생각을 못했던 그런 일을 생각해 냈다는것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더군요.

4. 그런데 그런 제안을 그와 동행했던 3명의 친구들이 했다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들의 친구가 시력을 상실하여 간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의 친구들이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돈을 염출해서는 친구의 아름다웠던 과거의 기억이 담긴 풍경들을 가슴속 깊이 새겨주고 싶었던 것이었겠지요. 역시 그들의 의견도 제 생각과 별반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5. 젊은 친구들....어쩌면 젊다는것 하나만이 커다란 자산이 될수 있는 그들이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는 제 자신이 참으로 초라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성세대라고...젊은 사람들의 잘못만 봐왔고, 또 그들의 잘못을 고쳐주려고 질책만을 해 왔던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혹시 그들이 직업을 갖지 않았기에 이번의 일이 가능한가를 물었더니...그들은 나름대로 다들 직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직장에 휴가원을 내고는 그들의 친구를 위해 마지막 세상보기에 동행을 한것입니다. 아니 그들의 세상보기 행사에 병사를 동반시킨것이겠지요.

6. 저도 많지는 않지만 얼마간의 여비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손을 꼭 쥐어주면서 제가 생각해내지 못했던 일을 계획한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비록 그 병사의 눈은 실명이 되겠지만, 그를 지켜주는 진정한 친구들....  적어도 이번 일을 꾸민 그들이라면 그들의 우정은 영원하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상보기"를 계획했던 친구들과 그 병사의 머릿속에는 며칠간이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지금 보는 세상의 풍경들이 영원히 머릿속에 각인이 될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 병사의 시력감퇴가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그나마 남은 시력으로라도 더 많은 세상을 둘러볼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如      村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mila 2004-02-23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병사의 시력감퇴가 더 진전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고 싶네요....

비로그인 2004-02-23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스밀라님의 마음이 그에게도 꼭 전달될것이라고 믿습니다. 사실...전해듣는 입장에서는 강 건너에서 난 불일지도 모릅니다만, 바로 제 부하이며 제가 처리해야 하는 일이기에 제게는 정말로 커다란 아픔이랍니다. 스밀라님의 마음은 저나 그 병사에게는 커다란 힘이고 위안이 될것입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가을산 2004-02-2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이미 알아보고 계실지 모르지만, 그 병사가 앞으로 살 지역의 중도장애인 동호회 혹은 시각장애인을 교육하는 학교와 연결을 시켜주심이 어떨까요?
또 완전히 실명이 되기 전에 점자라든지, 실명인을 위한 컴퓨터 자판이나 화면에 뜬 글자를 읽어주는 프로그램 등을 익혀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요즘은 왠만한 책은 오디오북이나 문서파일을 소리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인터넷과 이런 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세상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제가 본 실명인들 중에 사회복지사 혹은 속기사 자격을 따서 사회생활을 지속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지금은 연락이 안되지만...) 실명하기 전에 이런 자격증을 준비하는 것은 어떨지요?

비로그인 2004-02-23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의 친절한 안내에 감사드립니다. 그 친구가 이제 26일에는 전역을 하게 되면 신고를 하러 올곳입니다. 그 때 가을산님의 말씀을 자세히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걱정이 되는것은 대부분의 운동 선수들이 그렇지만 공부보다는 운동에만 전념하였기에 학력 수준이 매우 낮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영어회화와 컴퓨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기는 하지만 원체 기반이 없는지라 무척 힘들어 하더군요. 어느 정도인가하면 외국에 시합을 나가서도 전혀 영어는 물론이고 자신이 아프다는 말도 표현하지 못합니다. 한문으로 자신의 이름자를 쓰는것도 힘들어 하는 선수가 있기도 하고, 출입국 신고서의 영어나 한문을 몰라서 대필을 해 주는 경우가 허다한것이 실정입니다. 이런 선수들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나라의 엘리트 체육의 허점을 바꾸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쉬운일이 아니더군요. 우리가 중동어를 모르기에 그 상회ㅏㅇ에 대한 현지어를 한글로 알고 사용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초보적인 영어도 한글로 토를 달아주기를 원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복싱을 했던 이 선수는 지금의 처지가 극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여서 가을산님께서 자세히 알려주신 내용들이 있음을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실명이 바로 삶의 끝이 아니고 순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조언을 하겠으며 안내해주신 중도장애인 동호회(전화번호는 찾아야 하겠지요?)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안내를 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이 친구를 위해 가을산님께서 도와주실수 있다면 많은 도움을 주실것을 부탁드리면서 다시한번 고마움에 감사드립니다.
 

1. 발렌타인데이가 무엇인지는 개략 알고 있지만, 저는 왜 그런날이 생겼는지는 잘 모릅니다. 더구나 발렌타인데이를 둘로 쪼개서 화이트데이라고 별도의 날을 정해 사탕을 파는 상술은 우리나라 사람들 아니면 상상도 하지 못할 해괴한 짓거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이 원조 발렌타인데이의 나라라면 당연히 그 나라의 풍습을 따라야 하는데도 그와는 또 다른 한국적 발렌타인데이를 만든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보니까 미국에서는 발렌타인데이에 남녀간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초클릿을 주고 받으니까요.....

2. 제가 근무하는 곳은 우리 나라의 유명 스포츠인들이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모여있는 곳입니다. 며칠전부터 행정병들이 엄청난 양의 소포나 택배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뭐...택배로 오는 일은 보약을 집에서 보내준다던지, 또는 원래 소속되어 있던 팀에서 유니폼을 보내준다던지 해서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그 때 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박스를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행정병에게 뭐가 이리 많으냐고 물어보니 발렌타인데이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실에 산처럼 쌓인 박스들의 수신인을 보니 이동국 등등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는 선수들이 수신인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재미있는것은 발렌타인데이가 진정 사랑하는 남녀간의 선물 교환과 사랑고백 풍습이라면 어느 특정인에게 수십개의 박스가 배달이 된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것 아니겠습니까? 일방적인 사랑의 표시겠지요....펜으로서 어느 선수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것은 좋은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낸 것이기에 별 의미를 담지 못한다는 이야기들을 하더군요. 그리고는 박스에서 보낸 사람의 주소는 보지도 않고 부욱~ 뜯어서는 내용물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속에는 편지 등 다른 선물도 들어 있는데 그런것은 당사자가 가지고 갑니다. 이 글을 읽는분중에 선물을 보내신 분이 계시다면 무척 속이 상하시겠지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을것입니다. 특정인은 자신만의 특정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 박스의 크기가 더 재미있습니다. 보통 초클릿을 넣으려면 작은 상자가 좋으련만 보내는 이들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장 작은 박스가 알라딘에서 책 20권쯤 보낼 때 사용하는 박스 정도이고 대부분 라면박스보다 더 크답니다. 더구나 그 속을 종이로 채우고 초클릿은 일부만 넣는다든가 한것도 아니고 온통 초클릿으로 채워서 보냈으니 그 양이나 무게가 오죽하겠습니까? 어떤 선수는 너무 양이 많아 아예 행정병에게 먹으라고 주고 가기도 합니다. 덕분에 사무실마다 초클릿과 사탕이 넘쳐 흘러서 더 먹으라고 해도 아예 처다보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5. 저도 작은 초클릿 봉투를 받았습니다. 몇명의 여군 선수가 있는데 그들이 준비를 했더군요. 오늘 아침에는 주장들이 모일 기회가 있었기에 지나가는 말로 "야..너희들은 좋겠다. 나는 초클릿 구경도 못했는데 너무 많아서 질질 흘리고 다닐 지경이니 말이다"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기다리십시요!!!" 하더군요.  아침 회의에 참석하고 제 방에 들어서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 책상위에는 정말 산 처럼 높이 초클릿이 쌓여있었습니다. 먹다 먹다 질리니 제게 버리듯이 가져다 준것인지...아니라면 아차! 하는 심정으로 늦게라도 나눠먹기로 한것인지는 몰라도 책상의 건너편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초클릿이 가득했습니다. 이런것이 행복인가요?  아니면 불행인가요? 제 심정으로는 먹다 남아서 처리가 곤란한데 마침 제가 핀잔을 주었기에 이렇게 왕창 가져 온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여간...어마어마한 양의 초클릿을 보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더군요(뭐..그렇다고 기분이 좋은것만은 아니었답니다 ^^~)

6. 행정병들에게 먹고 싶은 만큼 , 가져갈 만큼 가져가라고 했고 주변의 동료들에게도 나눠 주었는데도 많은 양이 남았습니다. 저도 딱 두 개를 먹었더니만 니끼해서 더 이상 먹지도 못하겠더군요. 아마도 당분간 제 방을 찾는 사람들은 싫도록 초클릿을 먹게 될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초클릿을 찾아와서 선수들에게 전달해야하는 행정병의 고생은 실은 이만저만한게 아닙니다. 무게나 가볍나요? 그 무거운 초클릿을 나르느라고 겨울인데도 땀이 나서 모자를 벗으니 마치도 머리에서 연기가 나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릅니다. 만약 제가 이곳에 계속 근무를 한다면 다음에는 발렌타인데이 이전에 반드시 교육을 시키겠습니다. 절대 5개 이상 보내지 말도록 하라고요...  펜들이 보내오는 초클릿은 반송시켜서 발송자가 반송비까지 다 물도록 할겁니다. 며칠간 일이 마비될 정도로 배달되는 초클릿.....   그것을 보내시는 분들도 정신을 조금 차려야 할것입니다. 막말로 오리지널 애인으로 인정을 받은분이 아니시라면 초클릿 보내봐야 발신자가 누군지도 확인을 안하는것은 물론이고 속 내용만 쏙 빼가고 만다는것을 아셔야 할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씀 드린다면 알아주지도 않는데 괜한 돈 버리지 마시고, 헛고생 하지 말아주십사는 이야기 입니다. 배달을 하는 행정병들이 속으로 욕할지도 모르니까요......

                                                             < 如      村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을산 2004-02-16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쵸콜렛 많이 받으셔서 좋으시겠어요. 선수들이 수수께끼님의 팬이라 쵸콜렛을 드린거라 생각하세요. ^^


전 연예인이나 선수의 팬이 되어본 적은 없지만, 제가 아는 사람 S(누군지 밝히면 꼬집힐 것 같아서 비밀 ^^;;)를 보면 팬이나 팬클럽도 여러 격이 있나봅니다.
S는 30대 중반의 아이 엄마입니다. 여러 해 전부터 가수그룹 G.O.D.의 팬인데, '아지조(아줌마도 지오디를 좋아한다)'를 비롯해서 몇개의 G.O.D. 팬클럽에 가입해 있습니다. S는 임신한 무거운 몸으로도 지오디의 콘서트를 따라다니고, 회원 일부는 진행요원들의 감시를 피해서 콘서트를 캠코더로 녹화합니다. 지오디에 관한 내용이면 지오디 엄마보다도 더 상세히 알 정도랍니다. S가 전하는 여러 유형의 팬들을 보면, 스토커 형, 선물공세 형, 경쟁적 애정공세형, 다양합니다.
S는 그냥 사랑스럽게 지켜보자는 쪽입니다. 비싼 선물을 너무 많이 보내는 것은 젊은이들 버릇 나빠진다고 지양하고, 길가다가, 혹은 어느 까페에서 멤버들을 보아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인해달라거나 아는척 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피곤하게 하지 않기 위한 배려라나요... 다만, 지금 눈앞에 있다고 다른 팬클럽 친구들에게 열심히 문자는 보내겠지요. ^^;; 그리고 이들에 관해 알게 되는 안좋은 소문들은 절대로 주위로 전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공연중에 조금 오바한 장면이 있어서 지오디 멤버들이 '캠 녹화하신 분들은 조금전 신은 유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자, 정말로 마당발인 S에게도 그 컷이 들어오지 않더랍니다.
S가 전하는 천태만상은 흥미진진한 이야기거리입니다. 일부는 가수들에게 힘과 격려가 되겠지만, 지나친 애정표현은 부담이 되겠지요.

여러 해 전, S가 가수 이문세를 좋아할 때 이문세의 테이프가 리어카에서 싸게 판다고 알려주니 정색하고 하는 말, 자기가 테이프를 사는 돈이 이문세에게 일부나마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자기는 절대로 복사판은 안산다나요.... 참으로 지극정성입니다.

비로그인 2004-02-1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성 팬....제가 어렸을때 클리프 리차드의 내한 공연을 기억합니다. 그런 열성팬이 바로 대중문화를 살리는 일이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예술인이기에 장르를 망라해서 정신적 교감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 S(누굴까? 수수께끼도 이니셜이 S로 시작되는데....)라는 분...아마도 열성이 아니라 열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자면...탁구장에 갔는데 손님 취급을 안해주는 것입니다. 빈 자리는 미리 예약이 되었으니 곤란하다는둥... 그래서 탁구선수(김택수, 오상은, 주세혁, 김정훈 등등 쟁쟁한 멤버들이지요...)을 나오라고 했답니다. 그 탁구장은 클럽제 운영인데 그 선수들을 보더니만 클럽 멤버들이 아주 환장을 하듯 좋아하시더군요. 덕분에 탁구(실은 저는 탁구를 못친답니다. 운동은 겨우 자치기나 할까요..) 게임비는 물론 공짜이고 저녁까지 푸짐하게 얻어먹고 왔답니다. 운동선수에 대해 S라는 분 처럼 경기장이건 어디서건 차에서 내리지 못할 정도로 말 한마디라도 건네거나 사인이라도 받으려고 작은 노트와 펜을 들고 따라붙는 소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는 선수들은 조금 다르지요. 특히 유명선수라도 군 복무를 필하려면 반드시 <상무>선수를 거쳐야 하는지라 남들이 우상으로 보는 선수들도 제게는 한낱 단순한 군인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딸아이도 축구선수인 이 某 선수의 사인을 받아다 달라기에 몇 장을 받아서 주었더니만 학교에서 완전히 줏가가 상한가를 쳤답니다.

얼마전에 잠실 대운동장에서 공연이 열렸고, 그 자리에는 교육부 장관도 참석하셔서 어린 관중의 무질서한 모습을 보고는 마이크를 잡으시고 좌중의 진정을 바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마이동풍이더랍니다. 그런데 그 아이돌 가수가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 하니까 그 무질서한 관중들이 모두 같은 목소리로 "녜!!!" 하더랍니다. 그리고는 질서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하니 교육부 장관님의 말씀에는 아예 미동도 않하던 관중들이 잘 교육받은(가을산님네 막내 아들딸들 처럼요...) 사람들 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더랍니다.
클리프 리차드의 내한공연 때 감격에 겨워 까무라쳤던 소녀도 이제는 50줄에 드셧을 겁니다. 당시에 그들의 모습을 보고 "망쪼"라고 말씀하시던 어른들도 계셨지만, 그 때의 관중들이 지금은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는 평안함속에 안주들 하고 계시지요. 대중문화란 물질문화나 문명과는 달리 누리는 것이고 향유하는 것일겁니다. 또, 공감대의 형성이 부화뇌동하는 모습으로 비춰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코 중심을 잃는것은 아닐겁니다. 21세기를 지식화, 정보화의 문화시대라는 말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공감대나 공유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어린 소녀들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버스의 외장을 이쁘게 도장을 해 두어도 어디서 사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성능이 좋은 스프레이로 "XX는 OO을 죽도록 사랑해~~" 라던가, 아니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온통 도배하듯 하는 소녀들을 보면 무엇인지 모를 답답함이 드는데 그 답답함은 클리프가 방한했을때의 열정과는 다름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제 굳어가는 머리가 요즘의 세태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고요. 제가 발렌타인데이의 초콜릿에 대해 그 단상을 적었지만, 실제로 보신다면 아마도 놀라실 정도로 그 지나침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참 지극정성"이겠지만, 불행하게도 그 지극정성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그 모든것을 그저 남의집 강아지가 짖는 정도로 알고 넘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초클릿을 수령하는 선수들에게 불특정 다수 모두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야단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 와중에 제가 느낄 수 있는것이 있었습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그 열정 속에는 최소한 저보다는 젊은 피가 끓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뜨거운 젊은 피가 앞으로의 우리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데 유용하게 작용하는 힘이 될것이라는 믿음으로 금년의 발렌타인데이를 넘겨봅니다.
< 如 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