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까지고 우리 곁에서 어리광만 부릴것만 같았던 딸 아이가 오늘 대학의 기숙사에 입사하였습니다. 자기 방에서 기숙사로 가져 갈 짐을 챙기는데도 몇 시간이나 걸리고, 뭔지는 모르지만 종이박스에 잔뜩 집어 넣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다행히 주말을 맞아 제가 집에 내려가기에 제 차로 짐들을 기숙사로 날라야 했습니다.
2. 무슨 짐이 그리 많은지.... 웬만한 없는 집 이사가는것 같았습니다. 대학 정문을 들어서고 기숙사 앞에 도착을 하니 벌써 많은 학생들이 입사 준비에 정신들이 없었습니다. 재학생은 방학 동안 집에 갔다가 다시 방을 배정 받아 새로운 방친구를 기대를 하며, 어떤 학생들은 부모가 차량을 이용하여 직접 짐을 가져다 주었지만, 어떤 학생은 집이 멀거나 혹은 차량으로 직접 날라줄 형편이 안되어서인지 택배 차량을 이용해서 짐을 부쳐온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여학생 기숙사 입구는 수재를 만나서 가재도구를 꺼내 놓은 것처럼 짐들로 가득하여 정신이 없었습니다.
3. 아이의 방은 3층이었고, 4인실임에도 두 사람만 사용하도록 배정이 되었습니다. 이층 침대 두개에 책상 4개, 의자 4개, 옷장 4개, 설합도 4 개 ... 모든 집기가 4인 기준으로 준비되어 있었지만 방은 매우 협소하였고, 짐을 다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습니다. 다행히 4인실에서 두 사람만 생활을 한다니 그나마 좁은 공간에서나마 4명이 다 들어간 숙소보다는 다소 여유가 있을것 같더군요. 두 서너차례 짐을 옮기니 벌써 그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우더군요.
4. 딸아이는 커서 배필을 만나게 되면 시집을 보낸다고 하는데, 고이 길러서 다른 집에 보내는것이 조금은 억울해서인지 부모, 특히 어머니는 경사스러운 혼삿날에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시지요. 아니...그보다는 늘 뒷바라지를 해 주던 딸아이가 곁을 떠나니 수족중 하나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기에 눈물을 흘리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번도 집을 떠나 장기간 지낸적이 없는 딸이기에 아마 에미의 입장에서는 무척 서운했던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 배낭 여행으로 일본에 열흘 정도 다녀온것이 아마 가장 오랜시간 집을 떠나가 있었던것 같군요.
5. 저야 남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기숙사에 입사하는 딸아이를 보며 "이제는 다 컸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이는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동료와 선배들에게 인사하기 바쁩니다. 에미는 딸의 짐중에서 무엇이 빠졌는지....시집가는 딸의 혼수를 준비하듯 찬찬히 짐들을 꺼내며 정리를 합니다. 늘 딸아이의 방에서 보아왔던 눈에 익은 물건이건만, 그것들을 하나 하나 정리를 하며 새로운 집에 입주하여 새롭게 장만한 물건인듯 놓아둘 자리를 찾기에 여념이 없지만, 딸아이는 제 물건이면서도 물건을 정리하기 보다는 친구들과 인사 나누는데 더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한국의 어머니는 다른 나라의 어머니들 보다 훨씬 자신의 자녀들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진작에 아는 일이지만 어디 부모 곁을 떠나기라도 하면 특히 딸에 관해서는 안절부절 못하는것 같습니다.
5. 아이를 남겨두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천덕꾸리기만 같았던 딸 아이의 집에서의 습성에 대해 늘어 놓기 시작을 합니다. "맨날 늦게 자고 늦게 잃어났는데 아침 강의나 제대로 들으려나?" "선배들이 술을 먹인다는데 술도 못하는 아이가 술먹고 토하거나 하면 어쩌지??" "빨래방이 있지만 빨래는 제대로 할까??"........등등... 제가 듣기에는 전혀 걱정 같지도 않은 걱정을 두 세차례씩 반복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게 첫 번째 이별연습이야...." "길어봐야 6~7년후면 애는 우리 곁을 떠나는데 이제부터 차근 차근 이별 연습을 해 둬야지..." 아무렇지도 않은듯 내뱉는 제 말이 아내에게는 야속하게만 들리겠지만 하나의 개체로 성장한 아이가 이제는 부모의 부속물도 아니고 스스로 행동하고 말하며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되었으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스스로의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할 나이가 되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6. 이제 큰 집에는 주중에 아내 혼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저도 직장 때문에 서울에 있고, 아이마저 기숙사로 들어가 버렸으니 주말에나 얼굴을 보게 될것이고(그나마 딸이 다른 약속이 없어야 가능 하겠지만요...)...이사를 하기 위한 아파트는 지금 한창 공사중이라 서울로 오기도 어렵고....하여간 막내 딸인 '아롱이"와 함께 보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집을 떠나오며 "TV에만 정신 팔지 말고 박물관 대학을 다니던 운동을 하던 뭐라도 해서 시간을 보람되게 쓸 방도를 찾아봐"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거의 매일 딸 아이와 씨름을 하다가 이제는 해방 되었구나...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일상이 되어버린 그 생활이 차라리 그립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집을 나서는 그 순간에도 아내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짐 정리를 다 했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딸 아이와의 첫 번째 이별연습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애가 새로운 세계에 적응을 하며 부모와는 만날 시간도 줄어들고 한편으로는 그 아이의 마음속에 부모를 그리워하며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겠지만, 아무쪼록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고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랄뿐입니다.
< 如 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