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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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왕산 자락의 산동네 마을에서 살고 있는 동구네 집에 동구의 여동생 영주가 태어났다. 3학년인 동구는 난독증으로 아직 한글도 제대로 못읽는데 영주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한글을 읽는다. 동구의 담임이었던 박은영 선생님의 도움으로 난독증은 점차 치유가 되고 동구는 선생님을 몰래 좋아하게 된다. 77년부터 81년 사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인왕산 자락의 산동네라는 장소는 소설의 장치이지만 근대 역사 중 가장 파란만장했던 시기를 다룬 소설이기에 그 때의 일들이 동구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저 평범한 하루 중에 하나였고 신기한 탱크 구경을 하러 전력질주한 날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최근에 나온 <사랑이 달리다>로 처음 만난 심윤경 작가였지만 그때엔 다른 작품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커다란 재미도 못느꼈고 혜나의 사랑을 납득하지 못했던 이유가 있어서다. 11월 한달 계속 두꺼운 소설만 읽었더니 두께가 부담스러워져 얇은 책 한 권을 고른다는게 이 책이었다.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고 결론은 왜 여태 책장 속에 고이 보관만했을까라는 뒤늦은 후회. <사랑이 달리다>를 그저 그런 소설로 치부해버렸던게 조금 미안해졌고, 심윤경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과하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문장들도 대단했고, 9살 동구의 마음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섬세한 표현력도 좋았고 무엇 하나 단점으로 꼬집을 수 없을 정도로 내게는 좋았던 소설이었다. 문장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 마음에 드는 문구를 고르다가 결국엔 포기. 책 한 권이 전부 마음에 드는 문장 자체다. 나를 웃기고 울게 만들던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앞으로도 이런 책들을 또 만나게 되겠지만 감히 말한다. 그런 책들중에서 엄지손가락 치켜들며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 될거라는걸. 동구를 만나게 해 준 작가에게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이런 책을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던 책들과의 궁합은 괜찮았던 편이었다. 모든 수상작들이 좋았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소설들은 만족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첫 수상작부터 천천히 찾아 읽어봐야겠다. 매년 나오는 수상작들이지만 내년에 나올 수상작이 더 기대되는건 이 책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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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경계
조정현 지음 / 도모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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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랐지만 언니 한규란이 명나라의 공녀로 가면서 집안이 번성하기 시작하고 동생 한계란과 한확은 부귀 영화를 누리며 자라게 된다. 하지만 한규란은 모시던 황제 영락제가 죽자 산 채로 무덤 속에 묻히게 되고 한확은 동생 한계란까지 명나라의 공녀로 보내게 된다.

 

처음의 시작은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져 오랜 세월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온 나이 든 한계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다 언니 한규란의 이야기로 옮겨지고 다시 한계란이 공녀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처음에는 왔다갔다 하는 시간과 자주 바뀌는 화자로 인해 집중하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길지도 않은 인생 처절하게 살다간 그녀들의 삶에 어느새 감정 이입이 되어 페이지는 술술 넘어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으로의 새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던 공녀 또는 진헌녀라 불리우던 이름. 치욕적이고 굴욕적이던 공녀를 보내는 일은 새시대가 열려서도 없애지 못한 일이었다. 힘이 없는 나라라는 증거이며 조선의 무능했던 권력을 대변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대가 변해 지금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지만 실화라는 이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한 여자 아니, 한 자매의 일생이 그토록 비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 아무것도 모른채 지나쳤던 이야기라 더 그렇게 가슴 아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적 국사 시간에 배우던 조선 시대의 역사들중 비참한 공녀들의 삶은 배울 기회가 없었던걸로 기억한다. 되풀이되서도 안되고 꼭 기억해야할 역사임인데도 왜 아무도 가르쳐주질 않았던건지. 이 책을 통해 한 많은 인생을 살다간 공녀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재조명 될 수 있길 바래본다.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온갖 역경을 겪으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그녀들. 비록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힘으로서 그녀들에게 조금의 위안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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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창 -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임지선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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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로해주는 힐링 메세지가 가득 찬 책들이 많다. 억지스러운 말들만 늘어놓는 것 같아 그런 책들은 애초에 관심도 없었고, 구매한 적도 없고,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이상한 끌림에 임지선 기자가 쓴 이 책은 구입하면서까지 챙겨 봤다. 현시창이라는 책 제목과 표지에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라는 문구때문이었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을 책 제목까지 끌어와 쓴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일터, 경쟁, 여성, 돈에 대한 키워드로 사회 곳곳의 아픈 곳만 꼭꼭 꼬집어 24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학 등록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이마트 지하에서 보일러 수리를 하던중 가스 유출로 사망한 22살 알바생, 대한민국 최고의 영재들만 모인다는 카이스트에 들어가서도 경쟁에 내몰리며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던 이유, 아버지의 공부 감옥에 갇혀버렸지만 희망을 꿈꾸던 세 자매, 지옥같은 콜센터에서의 하루. 전부 나열하기는 힘들지만 대한민국의 치부를 드러내고 눈 감고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만 가득하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책상에서 침대로의 장소 이동만 있었을뿐 책을 손에서 놓지를 못하겠더라. 감동적인 에세이도 아니고 심금을 울리는 소설도 아니건만 자꾸 먹먹해지고 울컥하며 쏟아지는 눈물은 참기가 힘들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나면서도 우리네 청춘들을 이렇게까지 내모는 대한민국이 원망스러웠다. 아무 힘 없이 경쟁사회로 내몰리며 하루 하루 힘든 그들에게 모든게 다 괜찮다며 어깨를 토닥거려주는 위로보다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있는 그런 이야기이기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픈 곳을 건드리지만 아픈 곳에 약을 발라주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어설픈 위로의 한마디보다 어금니 꽉 깨물게 만들고 청춘들의 가슴을 들끓게 만들 수 있는 이 책이야말로 진정한 위로가 되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얄팍한 위로로 청춘들을 농락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보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걸 또 한 번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이 책을 고통받는 청춘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읽다 보면 책 제목이 현실은 시궁창의 줄임말로써 쓰인게 전부라는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4천원 인생에서 날 아프게 하더니 결국은 현시창에서 날 울리는 임지선 기자. 앞으로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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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정리인은 보았다! - 개정판
요시다 타이치.김석중 지음 / 황금부엉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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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에 대해 다루던 방송에서 흘러가듯 지나쳤던 유품을 정리하는 그 분들이 생각나 책이 궁금해졌다. 유품정리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주는 생소함과 그들이 짧은 인터뷰에서 했던 얘기들이 맴돌았다.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던 분도 있었고, 가족들에게는 비밀인채 일을 하고 있다는 분도 계셨다. 자부심도 느끼게 하는 직업이지만 차마 가족에겐 말할 수 없는 직업이 대체 무슨 일일까 하는 호기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일본 최초의 유품 정리 회사 Keepers의 대표이사 요시다 타이치가 말하는 46개의 일본 사례들과 이 책의 저자인 국내 Keepers의 대표 김석중이 말하는 국내 사례 10개가 실려있다. 고독사에 대한 사례들이 대부분이지만 고독사 이외에 자살, 살인 등 다양한 죽음의 현장에서 유품을 정리하며 겪었던 일들과 느낌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죽음의 형태가 어찌 되었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죽음은 없겠지만 저자들이 말하는 여러 사례들을 통해 죽음의 현장에 조금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죽고 나서 남은 물건들로 한 사람의 인생을 정의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유품정리인들의 사례들을 접해 보니 외롭게 떠난 사람들은 분명 그 흔적들이 남았다. 그 흔적들이란게 유품들 대신 시체 부패의 형태로 나타나 여러 사람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사망한 후 얼마간의 시일이 흐른 후 부패한 채 참혹한 상태로 발견되는 시체가 대부분인 고독사. 최근 혼자 외롭게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가 증가하는 추세다. 그 이유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저출산과 고령화때문이라는데 유품정리인이라는 직업을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책 속의 어떤 아이가 말했다. 유품정리인은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는 사람들이라고... 비록 이삿짐을 정리하고 옮긴 장소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 해도 굉장히 의미있고 보람된 일임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고독사 사례들에 놀라기도 했고, 끔찍한 현장에서 묵묵하게 일하는 그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지기도 했다.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을 곁에서 지켜보는 유품정리인들을 통해 당장 나의 죽음 앞에 초연해질 수는 없겠지만 내 죽음 이후의 시간을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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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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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관통한 상처들이 가득한데 자신의 피로 익사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 사건 해결을 위해 벨만 경정은 스노우맨 사건 이후 홍콩으로 떠나버린 해리를 데려오기 위해 여형사 카야를 보낸다. 홍콩에서 아편과 술, 도박에 쩌들어 사는 해리를 만나게 된 카야.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지만 해리는 거절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원 소식에 귀국을 하게 되고 카야와 함께 사건을 맡게 된다.  

 

레오파드를 얘기하기 전에 스노우맨이 빠져서는 안되겠다. 스노우맨의 흔적들이 소설 속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라켈의 빈 자리라던가, 스노우맨과의 재회 장면, 스노우맨 덕에 없어져버린 손가락 하나까지... 스노우맨이 없어서는 안 될 레오파드의 해리 홀레. 스노우맨과의 치열한 대결을 그렸던 전작을 다시 펼쳐 볼 여유까지는 없어 잃어버린 스노우맨의 기억을 더듬어볼 뿐이었다. 레오파드를 읽기 전에 스노우맨을 먼저 만나야 소설을 읽는데 무리가 없겠다.

 

사소한 이야기 하나 그냥 넘기는 게 없는 이 소설에서 잠깐만 방심하면 큰 이야기의 맥을 따라가기가 벅찰지도 모르겠다. 스노우맨에서도 그랬듯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 마지막이 되어서야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결코 작은 부분 하나까지 잊지 말라는 작가의 경고인 것이다. 방대한 내용과 많은 분량으로 인해 읽고 그냥 지나쳤던 부분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그 부분들이 하나로 모이며 앞부분의 내용들을 다시 들춰보게 된다.

 

해리 홀레 형사는 다른 스릴러 소설들의 주인공들과 달리 마초적이고 남성미를 발산하며 여자들을 혹하게 만드는 나쁜 남자이다. 다소 지루해질 수도 있는 분량이지만 그런 캐릭터에서 나오는 강렬한 힘 덕분에 길고 두꺼운 책도 지루함 없이 술술 읽혀지는거다. 그래서 이런 시리즈로 나오는 소설에서 캐릭터의 힘은 무시할 수가 없다. 800쪽의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책들의 두께가 조금 우스워지는 단점도 생기지만 올해 해리 홀레를 두 번이나 만났으니 그런 단점은 애교로 봐줘야겠다.

 

올해 북유럽쪽의 소설이 대세인건지 부쩍 많이 보인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형사 시리즈. 그리고 그 시리즈의 8번째 이야기 레오파드. 스노우맨이 먼저 출간되어 어쩔 수 없이(?) 그 다음편인 레오파드가 먼저 출간된 것이겠지만 차기작으로 소개될 레드브레스트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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