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궁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향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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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세계문학상 대상작이다. 상받은 책들은 이유불문하고 좋아하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세계문학상 수상작들은 꼭 챙겨보는 편이다참신함이 물씬 풍기는 글들과 지루할 틈이 별로 없어서다. 이번에 나온 <에메랄드 궁>은 에메랄드 모텔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모텔이라는 단어가 주는 호기심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그 공간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지는건 당연한 얘기 아닐까?

 

외곽 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에메랄드 모텔의 안주인인 연희는 한숨이 늘어가는 일뿐이다. 무리하게 대출 받아 리모델링했지만 장사가 안되서 대출금 이자 갚기도 힘들고, 모텔 어느 방에서 잠만 자고 있을 것 같은 남편 상만은 꼴도 보기 싫을 지경이다. 모텔을 청소해주는 한씨는 오늘도 걸죽한 욕을 늘어 놓고, 약간 정신이 이상한 선정은 언제나 그렇듯이 211호로 들어가 버린다. 어려 보이는 연인들이 큰 가방을 들고 모텔로 찾아와 숙박비를 선불로 받고 방을 내주지만 갓난 아기가 있다는 말에 내보내기로 한다.

 

에메랄드 모텔의 안주인인 연희는 모질지 못하다. 모텔 장사를 하기 위해선 악착같고 모진 면도 있어야 하는데 연희는 냉정하게 내치지도 못하는 편이다. 연희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큰 상처가 있었다. 그 상처가 그녀를 모질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연희뿐만 아니라 모텔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은 다들 가슴 속에 상처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상처를 드러내고 서로 힘이 되어주고 얘기도 들어주면서 그들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내 마음을 울리고 여운을 주기엔 충분했다.

 

요즘 어쩌다 스릴러 소설을 주로 읽다 보니 국내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골라본 책이었고, 재미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은밀한 욕망의 배출구로만 생각했던 모텔에서 그들이 찾은 사랑은 잔잔하게 내 마음을 울렸다. 한없이 빠져들다 에메랄드 모텔에 찾아온 노년의 커플 얘기를 보고는 울컥해지기도 했다. 한없이 서러운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이지만 나름대로의 희망을 가슴 속에 품고 지내는 모습들을 보며 어쩌면 나 스스로도 그들과 같이 작은 희망을 품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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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와 몬스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8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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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미스터리의 고수(?) 가이도 다케루의 신작이 나왔다. 의학을 소재로 미스터리 상까지 수상한 작가였기에 기대가 되는건 당연한게 아닐까. 그리고 마침 중국에서 새롭게 변이된 조류 독감이 유행중이라 현실감 있게 다가올 것 같아 고민 없이 읽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신종 바이러스 '캐멀'이 확산되고, 일본 정부는 바이러스의 방역을 철저히 하기 위해 공항마다 완벽한 시스템을 갖춰 놓았다며 매일 뉴스에서 떠들어댄다. 나니와 시의 외딴 곳에서 병원을 하고 있는 기쿠마 부자. 그들에게 신종 바이러스 '캐멀'의 존재가 확인되지만, 감기보다 약한 바이러스 독성에 호들갑 떠는 언론은 믿을 수가 없다.

 

솔직히 내가 예상했던 이야기들은 바이러스로 인한 불안과 공포, 아비규환으로 변한 일본을 그린 소설인줄 알았다. 참혹한 일본을 예상했던 나에게 전혀 뜻밖의 이야기 전개여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일본 의료계나 정치가 어떤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전반적인 일본 의료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부패한 정치계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 작가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속에 '불상사 뒷수습 회의'라는게 등장한다. 정치계에 큰 스캔들이 터지면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그곳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자잘하게 모아뒀던 스캔들을 하나둘씩 터트려 한 곳으로 쏠린 관심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킨다는 고급 관료들의 회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명 '물타기'수법과 비슷했다. 우리네 현실과도 너무 닮아 있어 놀라기도 했다.

 

의학 미스터리 소설을 잘 쓰는 작가의 신작이니 당연히 그럴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예상 밖의 정치 소설이라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의료와 정치라는 소재로 적절하게 배합한 솜씨는 놀랍다. 일본 의료계와 정치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 긴 호흡은 참기 어려웠다. 그래도 메디컬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구축한 작가라는 믿음에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그만의 탄탄하고 독특한 장르는 어디서도 보기 힘들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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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그래닛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8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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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도시 에버딘을 배경으로 '로건 맥레이'경사가 주인공인 스릴러물이다. 동유럽쪽 스릴러물은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어떨까 내심 기대를 했다. 그쪽 나라들답게(?) 날씨는 비와 눈이 지겹게도 내렸고, 차가운 화강암의 도시이다 보니 서늘한 기분이 읽는 내내 따라 다녔다. 물론 끔찍한 아동 연쇄 살인 사건도 빼놓을 수 없고.

 

일년 전 여성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을 잡으면서 생명까지 위태로워졌던 로건이 다시 복귀했다. 복귀하자마자 몇 달 전 실종된 어린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고 잔혹하게 살해한 방법이 부검을 통해 밝혀지면서 충격에 휩싸인다.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온전치 못한 몸으로 수사에 참여하게 되고 출중한 능력을 바탕으로 사건을 차근차근 파헤쳐 나간다.

 

이보다 더 끔찍하고 잔혹한 살해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다. 게다가 어린 아이를 상대로 한 살인 사건이다 보니 그 충격은 다른때보다 더 했다. 빨리 범인을 잡고 평화로운 일상이 되길 바랬지만 생각만큼 범인 찾기는 쉽지가 않다. 정황 증거는 있는데 확실한 단서가 없다 보니 수사는 언제나 제자리. 그래도 적재적소에 배치된 픽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여러 장면들 덕에 힘 빠지게 하는 수사 과정을 무리없이 지켜볼 수 있었다.

 

흔하게 보이는 마초적이고 남성미 물씬 풍기는 남자 주인공들과 달리 <콜드 그래닛>의 로건 맥레이 경사는 조금 친근하게 느껴졌다. 상사의 눈치도 보고, 여자 부하와의 로맨스도 기대하는 점들이 소소한 재미로 다가와 친근한 캐릭터로 다가온 것 같다.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면들이 부각되다 보니 카리스마는 덜 했지만 옆집 아저씨(?) 같이 편한게 매력이라면 매력으로 꼽을 수 있겠다.

 

보다 친근한 캐릭터와 영국 냄새 물씬 풍기는 분위기로 강력한 임팩트는 없었지만 잔혹한 아동 연쇄 살인 사건을 덤덤하고 사실적으로 그려 읽는 내내 서늘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독불장군같은 캐릭터들에 슬슬 지쳐갈때 만나면 좋을 소설. 개인적으로 강한 캐릭터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로건같은 남자도 만나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건... '형사나 탐정은 이래야만 해'라는 고정 관념을 좀 깨줘야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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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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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오드 아이를 가진 소녀의 사진을 표지로 한 책. 오드 아이가 너무 신기해서 입소문이 퍼지기도 전에 사놓고 책장에 꽂아뒀던 책이었다. 작년 여름,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를 너무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밥 먹으러 시댁 식구들과 같이 타고 가는 불편한 차 안에서도 내려놓지 못했던 그 책, <제노사이드>와 비교되는 얘기들이 많아 너무 궁금했었다. 그렇지만 읽을 책들이 밀려 이제서야 느즈막히 만나 본 <궁극의 아이>.  

 

세계적인 거물인 나다니엘 밀스타인의 살해 사건이 터지고 FBI요원 사이먼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배달 된다. 발신일이 십년전 오늘로 찍힌 편지에는 의미심장한 말이 써있다. 장난이라고 여겼던 편지에 써있던 일이 사이먼의 눈 앞에 실제로 벌어지자 편지를 보낸 신가야라는 인물을 찾게 된다. 신가야를 만나기 위해 엘리스를 찾으러 갔지만 그녀가 전한 뜻밖의 사실은 신가야가 10년 전에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가상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들며 전 세계를 무대로 정신없이 이야기는 흘러간다. 실제 일어났었던 9.11테러사건과 묘하게 맞물린 모든 사건들은 허구지만 진짜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어디 있을법한 허구의 이야기들을 사실처럼 믿게 만드는건 작가의 능력이다. 미래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신가야라던가, 그림자 정부를 대표하는 인물들에 대한 묘사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시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사실처럼 느껴져 섬뜩해지기도 한다.

 

신가야와 엘리스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이야기들은 거미줄처럼 서로 엉켜 복잡한 모양을 이룬다. 하지만 산만하지도 않고 정확히 보여줄 만큼만 보여주면서 책을 덮을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국내 소설이지만 한국적인 분위기는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을 정도의 탄탄한 스토리에는 감동까지 받았다.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쓸 때 난감한 경우가 더러 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할 말이 없거나, 너무 재미 있게 읽었는데 무슨 말부터 해야될지 앞이 깜깜해질때. <궁극의 아이>는 후자의 경우다. 평일 늦은 밤에 이 책을 들지 말았어야 했다. 뛰어난 몰입감과 속도감으로 나를 사로잡아 새벽을 꼬박 지새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새벽잠이 쏟아지는줄도 모르고 책 읽다 밤을 지새운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스토리면 스토리, 인물이면 인물 무엇 하나 흠 잡을 곳 없이 탄탄하게 쓰여진 이 책에 대해 더이상 할 말이 무엇이 있을까. 그냥 닥치고 읽어 보세요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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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보상
새러 패러츠키 지음, 황은희 옮김 / 검은숲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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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더운 여름날, 정전 때문에 어두컴컴해진 사무실로 한 남자가 찾아 온다. 그 남자는 시카고 최대 은행의 부행장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는 자신의 아들인 피터의 여자 친구를 찾아 달라고 의뢰를 한다. 우선 부행장의 아들 피터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으로 향하지만 싸늘하게 식어 있는 피터의 시신을 발견한다. 자신에게 사건을 의뢰한 남자가 은행의 실제 부행장이 아님을 알게 되고, 피터의 여자친구 애니타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여자 경찰이 주인공은 소설은 더러 있었지만 여자 탐정이 주인공인 소설은 드물다. 홀로 사건을 수사하는 어려움을 감당하기에 여자들은 힘겨워 보이는 걸까. 아무튼 여기 당차고 기 쎈 '여자' 탐정 워쇼스키가 있다. 뛰어난 패션 감각을 뽐내며 연애도 하고 즐길 것도 즐기면서 똑 부러지게 일하는 그녀는 탐정이라는 이름보다 알파걸의 이름이 더없이 어울려 보인다. 시체를 보고 전혀 놀라지 않고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냉정함을 가지고 사건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어떤 때는 남자들과의 격한 몸싸움에서도 절대 밀리지 않는 화끈한 면모를 과시한다. 그런 그녀가 사건을 수사하며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흥미롭게 진행된다.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가슴 속에 더없이 따뜻함을 품고 있는 그녀는 친근하기도 하다. 로티와 질을 대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거대한 보험사와 노동 조합이 등장하고 전형적인 화이트 칼라 범죄의 틀을 보여줘 하드보일드한 면은 없었다.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발견한 사건에 관련된 단서들은 조금 뜬금 없었지만 뜨거운 열정과 강한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워쇼스키는 끝까지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고 숨겨진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시체가 등장하지만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수사는 아니어서 피가 난무하지도 않고 긴박하지도 않지만 워쇼스키라는 기 쎈 여자 탐정으로 인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출간된지 좀 오래된 소설이라 지금과 너무 다른 풍경에 낯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워쇼스키가 너무 매력적이라 위화감을 느낄 틈도 없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일일히 사람을 찾아 다니며 발품 파는 모습들은 워쇼스키의 매력을 더욱 빛나게 했다. 어쩌다 보니 책에 대한 느낌보다는 워쇼스키의 매력 탐구처럼 보여 조금 난감하지만 스릴러 소설 좋아하는 여자인 내가 워쇼스키의 매력에 풍덩 빠지게 되는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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