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들 창비세계문학 2
리처드 라이트 지음, 김영희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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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빈민가에 살고 있는 비거 토머스.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는 일상에서 절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흑인들에게 기부를 일삼아 오던 부유한 백인 돌턴씨의 호의로 그 집의 운전기사로 일하게 된다. 면접날 돌턴씨의 부탁으로 딸인 메리 돌턴의 등굣길에 함께 하지만 메리는 학교로 향하지 않고 남자친구인 잰을 만나러 간다메리의 남자친구 잰은 공산주의자다. 여태 알고, 만나오던 백인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잰은 비거에게 상대하기 힘든 사람이다. 급기야 비거는 잰과 메리와 함께 저녁 식사까지 하게 되고 술에 취한 메리를 방으로 옮기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이 소설은 1940년대에 나왔다. 지금이야 많이 변했지만 그 시대에 이런 소설은 정말 도발로 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백인과 흑인. 피부색이 틀리다는 이유로 멸시하고 차별하던 시대였으니. 흑인 비거의 내면에 숨어있는 두려움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글 속에서 여실히 느껴지는 비거의 두려움은 시대를 대변한다. 똑같은 인간인데 피부색에 따라 죗값이 틀려지고 흑인의 시체는 백인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한낱 증거에 불과하다. 피부의 색깔이 결코 기득권이 될 수가 없음에도 그들은 서슴지 않는다. 시대가 많이 변해 지금은 차별의 강도가 많이 옅어졌다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피를 끓게 하는 이들의 분노가 사그라질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인종 차원을 넘어 피부색으로 대변되는 강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에도 일침을 가한다. 장장 35쪽을 차지하고 있는 비거의 변호사 맥스의 변론은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책 뒤쪽에 실린 작가연보에서 나와 있는 것처럼 흑인이란 이유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지 못했던, 작가가 직접 겪고 느꼈던 상처를 맥스를 통해 드러낸다.

 

1940년대의 미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잘 몰랐던 게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해서 나에게는 조금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들의 분노가 비수가 되어 마음을 아프게도 했고. 배경이나 감정적으로 버겁게 느껴져 끝내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시대의 고전을 만날 수 있던 시간은 고맙고 뿌듯하다. 내공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를 더 이상 외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대의 문제작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약자를 대변하는 흑인의 시각으로 풀어낸 그 시대의 이야기는 고전에 불릴만한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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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지음, 서지희 옮김 / 예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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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부터 소개되었던 형사 율리아 뒤랑시리즈. 재미있다는 입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만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짙은 살인의 냄새가 제일 흥미를 끌었지만 무엇보다 스릴러와 어울리지 않는 예쁜 표지가 한 몫을 단단히 했다. 표지에 별 감흥이 없는 나인데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네.

 

율리아 뒤랑 형사에게 성경 구절을 인용한 살인 예고장이 배달된다. 열두 송이의 백합과 함께. 특별한 지위와 존경받는 사람을 대상으로 살인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되는 시체와 사건 현장에서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고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진다. 정황증거조차 찾을 수 없는 이 사건을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이번에 당일로 다녀온 제주도 여행에서 가볍게 읽어보려고 챙겼던 책이었다. 즐기기엔 스릴러 소설만한 게 없으니까. 예쁜 표지가 제주도와 참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민 없이 가방 속에 챙겨 넣었다. 몇 장 읽다보니 즐겁게 떠난 여행에서 내내 무거운 마음이 될 것 같아 그대로 덮었지만. 집에 돌아와 책을 다 읽고 나서의 제일 첫 느낌은 스릴러 소설이 이렇게 아플 수도 있구나하는 것이다. 너무 슬프고 아파서 작가가 작정하고 쓴 것 같기도 하다. 이보다 더한 비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주 비현실적인 이야기.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 이건 뭐 할 말이 없게 만든다.

 

죄질의 강도는 틀리지만 어찌 되었든 사람을 기만하고 피해를 주어 고통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죄에 대한 값은 꼭 치러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살인자는 손가락질을 받고 지탄받을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음에도 그의 편을 들어주고 싶게 만든다. 비극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남은 그의 고통이 여실히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 살인이 결코 정당화 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마음이 스르륵 움직여 어느새 범인의 편에 서는 걸 느끼게 된다.

 

사람의 욕심엔 정말 끝이 없는 걸까. 끝을 모르는 탐욕으로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인간이 그렇게 아둔할까 싶기도 하지만 허구의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의 마지막까지 보는 듯해서 많이 불편하기도 했고.

 

독일 스릴러 소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 다른 책들까지 읽게 싫어지게 만드는, 나와 정말 맞지 않았던 소설들 때문에 생긴 불신이다. 그런 감정 때문에 처음엔 걱정도 많이 했다. 이도 저도 아닌 스릴러 소설들에 지쳐있는 때에 기름 붓는 격이 될까봐. 걱정했던 게 기우였는지 생각보다 빠져들었고 묵직했던 것만큼 여운도 길었다. 시간대별로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것에 그치는 글은 조금 불만이지만 작가의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새로운 시리즈를 만나게 돼서 반갑다. 앞으로도 꾸준히 율리아 뒤랑 형사를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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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
박지영 지음 / 문학수첩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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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이다라는 말에 담긴 은밀한 분위기. 판타지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글을 써서 먹고사는 게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느껴지는 자신감. 심사위원들의 극찬까지. 이런 것들이 모아지니 궁금해졌다.

 

방송국 PD로 일하다 표절 시비에 휘말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재연배우 일을 하게 된 해리. 범죄를 다루는 프로에서 흉악범을 주로 재연하는 배우로 살고 있다. 회식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조연출과 예상치 못한 밤을 지새우고 그녀와 만남을 이어간다. 우연한 기회에 연애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고 함께 출연한 모델이 살해되면서 해리는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지독한 변비에 시달리고 있으며 엄마는 남보다 못한 사람이고 그저 현실에 안주한 채 그럭저럭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주인공 해리.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루저라고 하기엔 무언가 살짝 모자란 느낌. 아무튼 그가 살인사건과 엮이면서 과거에 있었던 여러 가지의 기억들과 맞물려 이야기는 진행된다.

 

판타지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흔히 우리가 알고 신화나 전설을 토대로 만든 소설이 아니다. 그렇다고 독특한 세계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극히 현실적인 판타지.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주인공의 그럴 수도 있었던 이야기. 명확한 것이 없고 두루뭉술한 것이 읽는 내내 아리송하게 만든다.

 

평소 친하지 않은 판타지 장르라서 솔직히 걱정을 조금 했다. 살인사건의 등장으로 긴장감이 극에 달하고 미스터리의 형식을 빌려옴으로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이야기의 끝을 내다볼 수 없게 만든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몰입되고 힘이 있는 이야기가 아닌지라 생각보다 지루한 부분도 존재한다. 소설 속의 또 다른 소설처럼 느껴지는 작은 이야기들은 소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 이야기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지만 전반적인 내용을 다소 늘어지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처음의 기대와 달리 읽으면 읽을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분명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낯선 장르 때문이었는지 기대만큼의 재미를 느끼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 나에게 큰 감흥은 없었지만 독특한 구조와 몽환적인 분위기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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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1 밀리언셀러 클럽 6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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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도시락 공장에 다니고 있는 네 명의 여자들.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를 안고 야간근무를 자청하여 일하고 있는 평범한 중년의 주부들. 전 직장에서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후 공장에 다니고 있는 마사코, 아픈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들며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요시에, 부족한 살림에 빚을 내어서라도 쓰고 마는 탐욕스러운 쿠니코, 도박과 여자에 빠진 무능한 남편 때문에 공장에서 돈을 벌게 된 야요이.

 

어느 날 야요이가 남편과 다투고 화를 참지 못해 살인을 저지른다.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평소 공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마사코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다. 마사코는 시체를 처리해주기로 약속하게 되고 사건을 은폐하는데 혼자의 힘으로 벅차다는 것을 느낀 마사코는 요시에를 끌어들인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다보면 이후의 내용이 예상되는 순간이 있다. <아웃>은 그런 예상들을 어김없이 빗나간다. 조각으로 나눈 퍼즐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해가는 과정이 아닌 하나의 그림을 여러 개의 조각으로 쪼개는 느낌이다. 애초에 완벽하게 완성된 그림으로 만들어 낸 퍼즐이니 어느 빈 곳 하나 찾을 수 없이 그 자리에 딱딱 들어맞는다. 그러니 읽고 나서의 포만감은 배가 될 수밖에. 끝을 알 수 없는 파국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려 지치게도 만들지만 여운 또한 상당히 길다.

 

건조하고 우울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읽는 내내 무거운 마음이었다. 살인사건의 은폐로 벼랑 끝에 내몰린 평범한 주부들의 이야기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평범하다고 하기엔 조금 위태로워 보이는 이들이지만 중년의 그들이 그렇게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얘기이니 충분히 공감되는 현실이다. 거기에 어디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져 현실감은 더한다. 다만, 뜻밖의 결말은 조금 당황스럽다. 인간 본성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점은 좋았으나 그게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다. 일탈을 결심한 마사코의 마지막 종착지가 너무 의외라서.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다른 결말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긴 애초부터 예상은 불가능했으니 뜻밖의 결말에 미리 준비할 사이가 언제 있었을까 싶다.

 

하나의 사건에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얽혀있다. 정교하게 얽힌 이해관계들 때문에 앞을 내다보기란 더욱 힘들다. 덕분에 책장을 마지막까지 쉽게 놓지 못하게도 만든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일본장르소설이다. 얼마 전에 받은 충격이 좀 오래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만난 작품이라 더 반갑다. 즐기기엔 머리가 멍해지는 깜짝 반전만한 본격추리물보다 좋은 것도 없지만 한 번 즐기고 마는 것이 아니라 깊은 여운이 함께하는 사회파추리물들은 마냥 외면할 수가 없다. 쉽게 질리는 본격추리물보다 사회파추리물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충격으로 와장창 깨져버린 일본장르소설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시켜준 작품이어서 고마운 마음만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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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자들 블루문클럽 Blue Moon Club
유시 아들레르 올센 지음, 김성훈 옮김 / 살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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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사건 파일 하나. 11년 전 범인이 자수하여 수사가 종결된 뢰르비 남매 사건의 파일을 누군가 몰래 가져다 놓았다. 익명의 제보자가 남긴 사건 리스트에서 단독범행이 아닌 다수의 범행으로 추측할만한 정황증거가 발견되고 의문점을 품은 칼 뫼르크는 재수사를 시작한다. 상류층의 부유한 삶을 버리고 누군가를 피해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카미. 노숙을 하면서까지 그녀가 피해 다니는 인물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리고 그녀가 간직한 비밀은 무엇일까.

 

수사를 진행하면서 범인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이야기의 초반부터 범인들이 등장한다. 뢰르비 살인 사건에서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학생들이 전부 유명한 사람들이 되어 덴마크 상류사회에 자리 잡은 인물들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쉽지 않은 수사가 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이들에게 얽힌 이해관계는 부유하게 자란 환경이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준다.

 

미결 사건 전담 특별 수사반 Q’의 두 번째 시리즈다. 전편을 보질 못한 상태여서 살짝 걱정도 했지만 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전편부터 이어져오는 칼이 습격당한 이야기는 아마 다음 시리즈에서도 나올 것 같다. 무슨 이유로, 범인은 누구인지 밝혀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

 

사족이지만 번역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원서가 어떤지는 잘 모른다. ‘저 사람은 이렇게 개떡같이 말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찰떡같이 알아듣지? 이 문장은 역자의 센스가 아니고서야 태어날 수 없는 문장이다. 스릴러 소설 읽다가 큭큭대며 웃어보기는 처음. 그런 장면이 꽤 있다. 그리고 이슬람 국가에서 온 외국인 동료 아사드. 국내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외국인과의 범죄 수사라니... 이런 궁합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 보인다. 새롭게 등장한 로즈의 발칙하고 당담함도 좋았고.

 

제목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이 생각보단 덜 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삶은 살아가는 사람들이 쾌락만을 추구하기 위해 어떠한 악행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모습이 잔인해 보이지만 끔찍하게 느껴질 만큼의 커다란 임팩트는 없었다. 아마 시리즈의 시작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게 단점으로 작용한 것 같기도 한데 특별 수사반 Q’의 탄생 비화가 궁금해지는 걸 보면 그렇게 재미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나 보다. 마침 <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가 내 손에 들어왔다. <도살자들>에서의 아쉬움은 특별 수사반 Q’시리즈의 첫 번째인 <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로 달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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