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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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귀가 솔깃했던 이유는 작가의 이름보다 작가가 첩보소설을 썼다는 소리였다. 전작까진 아니어도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많이 접해본 경험으로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문학 인생의 분기점이 될 작품이라는 말에 호기심 폭발.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베트남 유전을 둘러싼 아시아 여러 나라의 치열한 정보전에 휩쓸리게 된 AN통신의 다카노와 다오카. 의문의 살인사건 배후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 하게 된다. 그들이 3개월에 걸쳐 진행한 임무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고 차후 미래 에너지 사업에 대한 거대한 음모(?)를 밝힐 수 있는 정보를 입수한다.

 

줄거리를 짤막하게 요약하기 힘들다. 그만큼 거대한 스케일을 담고 있다는 얘기다. 동아시아를 넘나드는 지리적 배경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첩보전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 전환이 빠르다. 덕분에 글을 읽는 순간마다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구현되는 영상들로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똑같은 작가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세밀한 심리를 따라가는 기존의 스타일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옮긴이의 말처럼 몸동작을 따라 흘러가는 이야기. 그러다보니 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오사카에서 실제로 일어난 유아아사사건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사건으로 다카노 같은 주인공이 탄생되었는데 치열한 정보전 때문에 주인공의 일화가 많이 밀려난 것 같은 느낌이다.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매력이 넘친다.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첩보전을 다룬 이야기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각자 나름대로의 개성이 뚜렷해도 이야기를 구축해 나가는데 서로간의 지장이 없다. 개인적인 취향이 분명 작용했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캐릭터들을 느낄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첩보스릴러는 읽기 힘들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너무 비밀스럽고 세밀한 심리 표현에 감히 범접하기 힘든 포스를 풍기곤 하는데 이 소설을 그렇지가 않다. 작가의 내공이 어느새 이만큼 견고해졌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여러 나라들끼리 복잡하게 꼬인 정치적 상황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걸로 이 소설을 읽지 않는다면 내내 후회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심장 곁에 숨겨진 폭탄으로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을 다카노가 생각나 아련해진다. 주인공에 이렇게 감정이입이 되는 걸 보면 푹 빠져 읽은 것 같다. 요시다 슈이치의 대표작 <악인>만큼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선과 악의 경계를 위태롭게 흔들던 그 소설과는 분명 다르지만 그에 못지않은 여운이 긴 소설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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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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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에는 머리만 없는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 다음에는 몸통, 다음에는 손이나 발만 없어진 시체들. 여섯 번의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난 도시는 혼란 그 자체다. 치밀한 계획 아래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을 잡기 위해 형사 가부라기와 동료들은 머리를 맞댄다. 발견된 몇 가지의 증거만으로 가설을 세워보지만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든다.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터트리는 글로 <데드맨>은 시작한다. 사건 수사가 진행될수록 형사 외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인물.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으나 죽지 않았다고 하는 이 사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 사람의 등장으로 연쇄살인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까.

 

각기 다른 사람의 신체 부위를 잘라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시마다 소지는 <점성술 살인사건>에서 아조트라는 개체를 탄생시켰다. 아조트의 실현 가능성과 불가능을 떠나 독자들은 그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었고 작가의 트릭에 속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작가는 <데드맨>에서 아조트의 모티브를 따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책을 읽을 때 내 몸의 컨디션에 따라 재미의 강도가 틀려진다고 생각한다. 얼마만큼 집중을 하느냐의 차이다. 황금 같은 주말 감기 기운으로 몽롱한 정신에 읽었던 책이었다. 그 정신에 글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는데 책장이 자꾸 넘어간다. 빠른 스피드로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신인 작가의 글이라고 생각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굉장히 강렬한 데뷔작이라고 할 만하다.

 

어쩌면 뻔해 보이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개연성이 조금 부족해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뻔해 보이는 이야기를 뻔해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도 실력이다. 거기에 재미까지 더했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 할까.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가와이 간지라는 필명 외에 알려진 게 많이 없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차기작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 시키는 건 <데드맨>이 독자들의 기대만큼 결과를 충족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 읽기 전에 뒤표지의 꼭지 글은 읽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스포가 있는 글은 아니지만 소설의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으니까. 감기 기운으로 몽롱했던 정신을 번쩍하게 해주었던 <데드맨>. 어쩌다 일본 소설만 주구장창 읽고 있는 요즘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임팩트 있던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본격도 아니고 사회파라고 말하기도 좀 힘들고 애매한 포지션의 소설이지만 무엇이 되었든 재미와 스피드만큼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 소설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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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긴 잠이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0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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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솔직히 전작들을 읽어보질 못해서 책에 대한 기대는 많이 없었다. 하지만 많은 독자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이유는 분명 있을 것 같아 어떤 매력이 있을지 호기심이 동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빅 슬립>에서 모티브를 따온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의 필립 말로에 대한 애정은 남달라 보였다.

 

오랜만에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로 복귀한 사와자키. 일 년이 넘게 도쿄를 떠나 있었지만 허름한 사무실은 변함없이 그를 반겼다. 그리고 사와자키를 반겨주던 낯선 인물. 의뢰인의 전언을 전해주기 위해 사와자키를 기다리고 있던 노숙자였다. 그에게 받은 명함의 뒷면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시도하지만 의뢰인과 연락이 되질 않는다. 명함의 앞면에 쓰여 있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게 되고, 명함의 주인이 뜻밖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시엔 야구대회에서 승부조작 루머로 야구를 그만두게 된 아키라는 11년 전 자살로 마무리 된 누나의 죽음을 의심한다. 그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해 사와자키에게 의뢰하게 되고 아키라의 피습으로 사건은 혼란스러워진다.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지 못하고 사건들이 복잡하게 꼬여있어서 이걸 다 어떻게 풀어나갈까 걱정 아닌 걱정도 했었는데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가는 사와자키를 보니 괜한 기우였나 보다. 사건 해결의 중요한 인물이 갑자기 등장해서(그것도 너무 우연하게) 재미가 조금 반감되기도 했지만 괜히 쓸쓸하게 만드는 사와자키의 매력은 충분히 차고 넘친다.

 

호출기도 없었던 시대 전화로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곳이 존재 한다. 지금 시대와 전혀 다른 연락 수단인데도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소설 속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렸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담배와 더불어 쓸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 몫 단단히 하더라.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는 알아도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 하라 료의 사와자키에게서 풍기는 고독을 크게 공감하지 못하겠다. 고독하고 쓸쓸한 탐정이란 건 알겠는데 필립 말로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모르겠단 소리다. 하드보일드에 대한 간결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겠다고 하는 옮긴이의 말에 깊은 공감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작 작가라 필력에 대한 의심은 없었다. 독자들의 한없는 기다림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읽어보질 못한 게 많이 아쉬워지기도 했지만 쓸쓸한 분위기 하나로 사로잡았던 탐정 사와자키라서 좋았다. 이런 고독한 탐정은 언제나 환영이다. 탐정소설은 고독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재미는 한층 더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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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은 밤 닷쿠 & 다카치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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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미오. 통금 시간이 저녁 여섯시지만 먼 친척뻘의 집안 행사에 참가한 부모 때문에 귀가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늦은 시간, 아무도 없는 집안의 분위기는 다른 때와 틀리다. 하지만 평소 느낄 수 없었던 무엇을 감지하고 거실에 들어서자 발견한 쓰러진 여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여자 옆에 놓여 있는 머리카락 뭉치가 들어 있는 팬티스타킹. 여자와 혐오스러운 이 물건의 정체는 무엇일까.

 

통금 시간이 여섯시일 정도이고, 직업이 교사인 부모 밑에서 엄격하게 자란 대학생 미오. 오랜 시간 완고한 부모를 설득해서 미국에 있는 친구 레이첼의 도움으로 한 달간 홈스테이를 가게 되었다. 친구들과 환송회를 끝내고 들어 온 그녀는 거실에서 발견된 여자 때문에 자칫 미국으로 갈 수 없게 됨을 느끼고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데...

 

닷쿠 & 다카치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평범한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면서 사건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해나가는 이야기다. 음주와 숙취를 동반한 본격 미스터리라고 해야 하나. 형사나 탐정이 등장하지 않고 평범한 대학생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주체여서 보다 쉽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경찰들 저리가라 할 만큼 추리 실력을 뽐내는 닷쿠와 다카치는 사건을 보는 시선도 남다르다. 거기에 보안선배라고 불리는 대학생은 이들의 든든한 보조 역할을 담당한다.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 등장인물들의 자세한 내력은 잘 모르겠다. 평범한 대학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들만의 매력으로 똘똘 뭉친 대학생들의 패기로 가끔 엉뚱한 추리를 내놓을 때도 있다. 상상에 의해 추론된 결과물이어도 생각보다 날카롭고 정교해서 납득이 되기도 한다.

 

국내에 소개된 지 얼마 안 된 작가라 얼마만큼의 매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을지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시마다 소지를 등에 업고(?) SF와 미스터리가 결합된 작품을 주로 쓴다는데 신본격의 또 다른 작가를 만나게 된 것 같아서 반갑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본격물이다. 그동안 외면 아닌 외면을 했었는데 본격물을 많이 좋아하지 않아도 즐기기엔 무리가 없어 보인다. ‘대학생이라는 이름이 주는 풋풋함을 무기로 무장한 본격청춘미스터리. 보안선배를 떠올리면 청춘과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분명 청춘과 너무 잘 어울리는 대학생 닷쿠와 다카치를 주인공으로 시리즈의 시작을 훌륭하게 끊었으니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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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 - 축제의 밤, 개정판
문홍주.손영수 지음 / 선앤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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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시내 한복판에 서 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지하4, 지상5층의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데 걸린 시간은 단 5. 저녁 시간대 백화점 안에는 여자와 아이들이 가득했고, 백화점 붕괴로 그들은 무너진 잔해 속으로 사라졌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과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기자, 현장에서 구조작업에 애쓰는 소방관 등. 백화점 붕괴 사고와 관련된 사람들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는 이어진다. 삼풍백화점 붕괴 후 일주일간의 이야기.

 

1995629. 자세한 날짜까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삼풍백화점이란 이름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6.25이후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처참하게 무너진 잔해 속에서 살아난 사람을 구해내는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그 비극의 현장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힘들게 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분명 피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 사고의 징조가 있었고 고위 간부들은 이미 대피했던 상태였다. 천재지변도 아니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사고란 말이다. 탐욕에 눈이 먼 인간들 때문에 선량한 시민들의 목숨은 먼지처럼 사라졌고 남겨진 유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고통스럽게 만드는 그들의 울분은 견디기 힘들었다.

 

백화점 붕괴 사고는 어떻게 보면 도시전설 같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실제 우리 곁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한 나라의 도시 서울에서 그것도 강남 한 복판에서 정말 일어났던 비극. 시간이 많이 흘러 그 날의 비극은 많이 옅어지고 흐려졌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계속 떠올리고 되새기고 반성해서 다시는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사실 나에게는 조금 특별한 책이다. 작년 출간 이후 다른 책들에 밀려 보관함에만 담아두다가 최근 구매를 하려고 보니 모든 인터넷 서점에서 '품절'. 그러다 우연히 접하게 된 웹툰 연재 소식. 1천부를 소진하는데 걸린 시간은 1년이 걸렸단다. 사비를 들여 출판했지만 독자들에게 외면 받는 현실에 개정판까지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책을 보고 싶은 마음에 독자펀딩에 참여했고 그 결과물이 이렇게 빛을 보게 되었다.

 

현재 웹툰 삼풍은 시즌1이 종료된 상태다. 처음부터 웹툰을 염두에 두고 써내려간 소설이다. 미처 그림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세밀한 부분은 책으로 만날 수 있다. 웹툰이든 소설이든 느끼게 되는 답답하고 묵직한 감정의 무게는 비슷할 것 같다. 하지만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하고 처참한 현장을 만나고 싶다면 책을 먼저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다시금 떠오르는 기억에 지독하게 아파질지도 모르겠지만 피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 그 날의 비극을 기억 하고 있는 것으로 그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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