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치는 당신 - 시인의 동물감성사전 시인의 감성사전
권혁웅 지음, 김수옥.김다정 그림 / 마음산책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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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를 좀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단어와 단어가 만나고 짧은 문장들에 베인 감수성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는 소리를 내어 크게 읽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었지만 나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 시도 모르지만 시인 권혁웅도 잘 모른다. 책에 눈길이 갔던 이유는 순전히 그림 때문이었다. 그림이 들어간 책은 언제나 궁금하다. 그림이 들어간 책 치고 나빴던 책도 별로 없어서인지 기대감은 한층 높아졌다.

 

남은 꼬리가 꿈틀대는 동안 도마뱀은 달아나지. 잘린 꼬리가 자라는 동안 도마뱀은 생식도 성장도 하지 않는다. 그이가 당신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고 아파하지 마시길. 당신이 그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동안 당신은 살아남은 거야. 꼬리 치는 당신도 아팠다고.’

 

페이지 24쪽의 글이다. ‘꼬리 치는 당신도 아팠다고의 꼭지 글이다. 무뚝뚝하다고, 무신경하다고, 무관심하다고 투덜거렸던 내가 생각나 가슴 한 켠이 뜨끔하다. 무슨 보상을 받고자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닌데 어쩌면 내심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사랑에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고 마냥 섭섭했던 마음이 썰물처럼 쑥 빠져나간다. 내가 치열하게 사랑한 만큼 분명 그 사람도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보기 좋은 것도 오래 보고 있으면 물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꼬리 치는 당신>이 너무 좋았지만 천천히, 야금야금 나눠 읽었다. 부제 그대로 시인의 동물감성사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세포에서부터 최종 종착지(?)인 인간까지 모든 것을 총망라했다. 모르고 있었던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인보다는 동물 박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사실들도 더러 알게 되서 다른 사람에게 잘난 척도 할 수 있게 해준다. ^.^

 

이렇게 사랑스러운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나를 들었다 놨다 요물 같은 책이다. 픽 하고 입가에 슬며시 지어지는 미소로 기분 좋게 하다가, 깔깔거리며 배꼽 잡고 웃다가, 말 한 마디에 가슴 찡해지며 울컥하다가, 끝내는 눈물 짓게 한다. 시인의 말장난에 이렇게 놀아나게 될지 몰랐다. 격한 감정의 변화가 싫을 법도 한데 외면할 수가 없다. 한 번 빠지기 시작하니 마술이라도 부려놓은 것처럼 헤어나기 힘들다. 살아있는 것이 크나큰 축복이라고 생각할 틈이 많지 않았다. 생명 앞에 저절로 숙연해지는 마음은 덤이다. 그래서 고마워진다. 이 순간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생명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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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김유철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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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작가다. 그리고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내가 작가상 수상작들과 멀어지게 만든 결정적인 작품을 쓴 작가다. 하나의 작품으로 멀어지게 된 건 아니지만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니까. 아무런 정보 없이, 기대 없이 책을 들었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길함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12년 전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민성. 이후 소설을 쓰고, 강의를 하며 지내고 있다. 어느 날, 실종된 여동생을 찾고 싶다며 접근해 온 여자에게서 하나의 문서를 받게 된다. 민성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인 박형사. 약수터에서 목이 잘린 채 발견된 여성의 시체에 대한 단서를 모으던 중 피해자의 과외 선생이었던 인물에 주목하다. 민성과 박형사가 전혀 다른 사건의 단서를 모았지만 모든 것은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되게 되는데...

 

형사가 사건의 단서를 찾아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발견되는 증거들로 실마리를 유추해내는 실력은 직감 좋은 형사라고 치자. 하지만 신화에 능통하고 종말론에 해박한 형사라니 너무 억지스럽다. 물론 교수를 찾아가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척척박사 형사가 아니라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초보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가늠하기 힘들다. ‘나 이만큼 아는 척 하고 싶은데 사건의 단서들로 어떻게 끼워 맞추지?’하는 느낌이랄까.

 

척하면 알아듣는 형사라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도 소설이니까 그렇다 치자. 이해를 못해도 분명 따라 가야할 큰 줄기는 분명 있으니까.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1999년이 아닌 천구백구십구 년’, 24세가 아닌 이십 사 세라고 한글로 표기한 아라비아 숫자들은 이해불가. 내내 거슬리기만 하고. 쭉 뻗은 도로를 달리다가 방지 턱 넘어가는 것 같다.

 

과유불급. 국내 장르소설에만 유독 예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아 미안하다. 조금만 힘을 뺐었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아쉽다. 참 아쉽다. 등단한지도 오래 되었고 상도 받은 실력이면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는 소리다. 이런 장르소설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독자들이 즐길 만한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드>를 읽고 느꼈던 아쉬운 마음은 다음에 만날 작품으로 말끔히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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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브레스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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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놓고 내버려둔 지 거의 1. 항상 책상 곁에 두고서는 읽어야지 하는 마음만 가득하였다. 만나기까지 왜 이리도 힘들었는지. 아마도 애매하게 읽었던 전작 레오파드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하는데 글쎄. 출간되는 책마다 600쪽을 가뿐하게 넘어주는, 벽돌 수준의 두께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오래 내버려둔 미안함과 두께에 대한 부담감, 요 네스뵈 작가의 방한에 맞춰 출간될 <네메시스>에 대한 기대감까지 여러 가지 감정들로 착잡해졌다.

 

처참한 전쟁에 참여했던 요한센과 지독하게 고독한 형사 해리. 60년 전의 2차 세계대전과 현재를 부지런히 오가며 사건의 중심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익히 알고 있는 해리의 연인 라켈과의 첫 만남이 나온다. 두 권이 전부지만 여태 보여줬던 해리 홀레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고독한 마초 냄새가 물씬 풍기는 모습보다는 조금 더 인간적인 해리의 모습은 낯설어도 색다르다. 다가올 사랑에 설레어 하는, 잠시나마 행복을 꿈꾸는 그의 모습은 안타까워지기도 한다. 이런 감정도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여태 보여줬던 모습들이 너무 불행하게만 보였으니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 하나는 바로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전쟁의 상흔을 보고 있노라면 먹먹해지는 가슴에 답답해진다. 물론 피해서는 안 될 이야기라는 것은 알고 있다. 누구는 숨기려고 하고, 누구는 밝히려고 하고 진실에 대한 공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작가는 숨기고 싶은 전쟁의 과거를 과감히 드러낸다. 게다가 자신의 가족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누구의 편을 들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 것이 아닌 그저 그들에겐 명분이 있기에 희생을 감수했을 것이다.

 

빠른 전개도 아니고, 자꾸 바뀌는 시점으로 100페이지까지 몰입이 어려웠다. 곳곳에 설치해 놓은 복선들이 나중에 완전한 그림이 될 때 역시 해리 홀레 짱!’이라는 소리가 제일 먼저 나오지만,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조금 지난하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처음 만나는 사람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읽어야 재미있다고 추천할 만한 책이다. 거부하고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시리즈다. 다음 시리즈를 기린목이 되도록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을 보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기다린다. <레드브레스트>에서 말끔하게 해결되지 못한 하나의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예감은 <네메시스>의 출간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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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이와이 슌지 지음, 강민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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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 낸 수많은 존재 중 마성의 매력으로 어필하는 뱀파이어. 누구든 쉽게 헤어나지 못할 매력으로 무장한 뱀파이어는 언제나 귀가 솔깃해지는 흥미로운 소재다. 피 빨아 먹는 추악한 모습이든, 한껏 아름답게 포장한 환상의 모습이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늘 관심의 대상이다. 영화 <러브레터>를 끝까지 본 적이 없어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이 어떻다고 얘기를 못하겠다. 하지만 영화도 찍었고, 원작도 직접 쓸 정도로 <뱀파이어>에 대한 열정이 많아 보여서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졌다.

 

흡혈 충동에 시달리는 남자가 있다. 자신을 뱀파이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뱀파이어와는 사뭇 다르다. 스물아홉 인생을 살면서 그를 스쳐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피를 먹는 취미를 가진 그는 특별하다. 하지만 취미만 조금(?) 다를 뿐 일상생활에서의 그는 우리와 별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엄마를 모시고 사는 그는 엄마가 사라질까 노심초사하며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그가 피를 얻는 방식은 일반적인 뱀파이어와 틀리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목덜미를 물어뜯는 과격한 방식이 아닌 피를 마시는 정도. 피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을 찾기 위해 자살 사이트를 기웃거린다. 그 곳에서 알게 된 여자들과 거래 아닌 거래로 피를 얻게 되는데 잔혹하고 섬뜩한 뱀파이어가 아닌 조금은 인간적인 그래서 더 정이 가는 호감형 뱀파이어다.

 

좀비계에 <웜 바디스>‘R’이 있다면 뱀파이어계엔 <뱀파이어>사이먼이 있다. 사유를 즐기던 좀비 R에게서 느꼈던 생경함이 사이먼을 통해 다시 전해졌다. 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평소 우리가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비교가 가능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느끼던 좀비와 여자의 피는 원하지만 사랑을 하지 않는 자칭 뱀파이어 사이먼. 생명이 있거나 없거나, 사랑을 느끼거나 느끼지 못하거나, 뭐가 되었든, 둘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뿐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깊이 빠져들 수 없었던 애매한 감정은 영화를 보면 정리될 것 같다. 세상 만물이 변하듯이 우리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것들도 진화하기 마련이다. 좀비도 진화했는데 뱀파이어라고 진화 못 할 이유는 없다. 사이먼을 좀 더 오래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생각들은 영화로 달래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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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박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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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름 하나로 책에 대한 기대를 무한 상승시키는 작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엄청난 다작을 하는 작가이긴 하나, 가끔 보여주는 따뜻한 감성의 글은 장르를 불문한다. 이 겨울에 무척 어울릴만한 신작이 출간되었다. 설원 위의 짜릿한 스릴러물처럼 보여서 반가운 마음은 두 배.

 

스키장의 인적이 드문 곳에 구덩이를 파고 의문의 상자를 파묻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상자가 묻혀 있다는 표식으로 나무에 발신기가 담긴 테디베어 인형을 걸어놓고 사진을 찍는 구즈하라. 상자가 숨겨진 장소를 찍은 사진과 3억 엔을 요구하는 메일을 보낸다.

 

상자 속에 숨겨진 의문의 물체는 탄저균을 유전자 조작한 생물병기 ‘K-55’. 연구소 내에 은밀하게 숨겨둔 K-55가 사라지게 된 것을 알게 된 가즈유키. 그것을 찾기 위해 가즈유키가 평소 스노우보드를 좋아하는 아들 슈토와 함께 스키장에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진 몇 장으로 똑같은 현장을 찾기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 사라진 K-55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두 사람. 시간이 갈수록 사건과 밀접한 관계에 놓이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고 이들은 K-55가 숨겨진 테디베어가 걸려 있는 나무를 무사히 찾을 수 있을까.

 

설원 위가 무대의 배경이다. 하얀 눈이 가득한 스키장이라 함은 제법 추울 텐데 책 속 분위기는 생각만큼 춥지 않다. 분위기나 배경 묘사, 심리 표현 등이 뭉텅뭉텅 잘린 느낌. 필요 없는 부분은 최대한 배제하고 아주 진한 엑기스만 짜내어 보여준 것 같다. 그래서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볼만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식의 반전처럼 느껴지지만 반전도 나쁘지 않다. 마음에 쏙 들지 않는 이유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작가의 이름만을 생각하고 읽는다면 솔직히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어떤 장르에서든 기본은 하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그 믿음이 너무 과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족이지만 사람 많고 좁아터진 열악한 국내 스키장만 다녀본 사람이라 소설 속에 스키장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 아무튼 그동안 쌓아왔던 믿음이 있기에 외면하기 힘들고, 외면할 수 없는 작가다. 배신이라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지만 일본에서 100만부가 팔렸단 소리가 무색해질 정도로 실망 아닌 실망을 한터라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기대를 쉽게 저버릴 작가가 아님을 알기에 또 기다린다. 아쉬움을 화끈하게 날려줄 다른 작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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