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바다를 지날 때 (한정판)
진주 지음 / 로코코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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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은 집안에 원죄를 갚는 길은 정략결혼이라고 생각한다. 스캔들이라 부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부모 때문에 수안이 짊어져야 할 짐이다. 조건만 만족한다면 누구와의 결혼이라도 상관없다. 요트 경기를 위해 한국을 찾은 체이스는 남해로 떠난 여행길에서 카페에 앉아 있는 수안을 우연히 보게 된다.

 

체이스가 속해 있는 요트 레이싱팀의 접객을 맡게 된 수안. 체이스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자신이 짊어진 짐 때문에 연애는 사치라고 생각하는 수안에게 이 남자, 체이스는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늘 가벼운 연애만 일삼았던 체이스. 수안에게 느끼는 감정이 평소와 다름을 깨닫는다.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어린 시절 누가 더 불우했는지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그때의 일들이 이들에게는 깊은 상처다. 쓰라린 상처는 이들에게 사랑에 대한 불신을 키웠고 온전한 사랑의 장애물이었다. 속으로 삭힌 상처는 곪아도 터질 줄을 모르는데 수안은 자꾸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기 바쁘다. 다가올 사랑 앞에 지레 겁먹고 도망가려는 수안의 마음까지도 지켜주고 싶은 체이스.

 

애틋한 이들의 사랑에 잔잔한 여운이 함께 하니 봄날 같은 시간이었다. 체이스가 부르는 그녀의 이름에 설레어지고,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것 같아 엄마미소가 절로. 뜨겁고 진한 연애도 좋지만 이렇게 잔잔하니 따뜻한 연애가 더 좋은 이유는 설레는 마음이 여운으로 길게 남아서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감정들이 손에 잡힐 듯 아련하게 떠올라서 이런 소설들을 멀리 할 수가 없다. 나도 그랬고, 누구든 그럴 것이고, 사랑 앞에 초연해지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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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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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이다.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서 내내 외면해오던 수상작들이었는데 올라오는 평들이 너무 좋으니 얇은 귀가 팔랑거렸다. 그리고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정유정 작가의 추천 글까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중에 하나가 정유정 작가의 추천 글은 빼놓을 수가 없거든. ^.^

 

헬싱키에서 비행기를 탄 동현. 정여립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모아둔 스크랩북을 펼친 채로 잠시 자리를 떴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다. 그 자료를 들여다 본 여자는 자신이 정여립의 외손녀이며, 400년을 넘게 살아 왔다고 주장한다. 동현은 허무맹랑한 그녀의 거짓말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진짜처럼 느껴진다.

 

홍도의 기나긴 400년의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이다. 홍도를 밤에 품지 말라는 정유정 작가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책장이 끝나는 순간까지 한 눈 팔기 힘들었다. 마지막 책장까지 덮고 나나 찡한 여운에 멍하니 앉아 표지 속의 홍도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허구와 실제, 역사 속 실제 이야기를 교묘하게 섞어서 사실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실제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었던 홍도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녀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광해군 때부터 최근까지의 시간 속에 존재했던 굵직하고 혼란스러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긴 시간 그녀를 견디게 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사랑 때문에 아련해지던 시간들 말이다.

 

역사 팩션 소설이라고 어렵게 생각했는데 어렵기는 커녕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강한 캐릭터가 전부인 소설처럼 보여도 그게 홍도라서, 홍도니까 힘 있는 이야기가 된 것 같다. 기구한 홍도의 삶을 지켜보는 일이 이렇게 흥미진진한줄 몰랐네. 밤을 꼬박 지새우도록 몰입했고 재미도 있었으니 다른 수상작들도 찾아보련다.

 

 

p. 374-~375

동현... 생각이란 하면 할수록 자꾸만 구차해지는 법입니다. 까닭을 찾고 방법을 찾다가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치기 마련이지요. 그냥 두세요. 그냥 느끼는 대로 놔두다 보면 저절로 믿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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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
베른하르트 알브레히트 지음, 배명자 옮김, 김창휘 감수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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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했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솔직히 의사에 대해 불신이 깊은 편이다. 나 아플 때 치료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라는 건 안다. 하나같이 권위적이고 건성으로 대하는 그들의 모습이 아주 친근할 뿐이다. 모든 의사가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 그런 모습들이 대부분이라 생긴 불신이다.

 

작년이었던가. ‘해나의 기적이란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선천적으로 기도가 없이 태어난 해나는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의사들의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해나는 기도 대신 입에 대신 낀 튜브로 꽤나 오래 생명을 유지했다. 그런 해나의 수술을 위해 유럽에서, 미국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의사들을 보면서 생경함을 느꼈다. 한 생명 앞에 모든 것을 초월한 의사들을 보면서 아직도 저런 게 가능하구나하는 생각도 들었고.

 

생존 확률 0퍼센트에 도전한 의사와 환자들의 이야기라는 부제에 끌렸다. 책 속에는 9가지의 사례들이 들어 있다. 환자가 그런 상황에 닥치게 된 사유부터 환자의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의 이야기까지 작가가 재구성한 사례들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저 여러 가지 사례들을 나열하고 설명한 게 아니라 내밀한 그들의 심리까지 파악한 작가의 세심한 배려에 놀라기도 했다.

 

위급한 생명 앞에 기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직업이 의사인 그들도 기적을 바랄까 하는 뿌리 깊은 불신이 어느 정도 옅어지는 느낌이다. 평범한 우리처럼 그들도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기적이다. 생명 앞에 누구나 숙연해지는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책 속의 사례들이 좀 특별한 경우라고 하여도 긴박한 상황 속에 치열한 그들의 모습은 정말 간절해 보였으니까.

 

치료에 앞서 의사와 환자의 신뢰는 무척 중요한 요소다. 의사라는 사람에게 불신 깊은 요즘처럼 이런 책은 참 다르게 다가온다. 어쩌면 이럴 때에 정말 필요한 책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직업 중에 하나인 의사가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신성한 직업임을 그들도, 우리도 다시 깨우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매 순간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환자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 아니까 이 불신도 언젠가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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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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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반해 책을 고르는 일은 나에게 드문 일이다. 표지보다 두께에 끌리는 참 이상한 취향. 우선은 담배를 물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에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읽은 권혁웅 시인의 <꼬리 치는 당신> 때문에 고른 책이었다. 시인이 쓴 시가 아닌 시인이 쓴 글에 반했다고 해야 할까. 글이 말로 변하는 순간의 마법을 몸소 체험해서 그랬는지 시인의 글들이 궁금하던 차에 눈에 들어왔다.

 

김소연 시인이 누군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분이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읽다 보니까 번뜩 생각이 딱! 오랜만에 학교 동창을 만난 느낌이다. 어쩜 이렇게 반가울 수가. 시인이자 편집자인 이력이 굉장히 특이하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단호함이 글 속에 어떻게 녹아 있을지 궁금했는데 솔직하고 딱 부러져서 좋다.

 

개인적으로 ''가 어렵게 느껴져서 잘 읽지 않는다. 시를 잘 몰라서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를 잘 몰라도 이런 산문집이라면 흠뻑 취하기엔 모자라지 않다. 단어를 음미하고, 문장을 곱씹으며 천천히 읽어야 한다. 그래야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코끝에 알싸하게 전해지는 풍미는 맵지만 달고, 달지만 쓰다. 그렇게 곱씹으며 읽어 내려간 글들이 내 머릿속에, 마음속에 콕 박혀 떠나질 않는다. 바늘처럼 따끔해도, 가시처럼 따가워도 멈출 수가 없다. 시인의 감성에 휩쓸리게 되는건 순식간이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잠시 방관자로 들여다본다. 내면에서 주변으로, 주변에서 크게는 사회 밖까지 두루두루 우리의 안부를 묻고 있다. 내밀한 우리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썩 달갑지 않다. 반복되는 일상에 안도하는 것처럼 보여도 누군가는 늘 끊임없이 고민하고 아파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쉽게 읽히지만 쉽게 놓을 수 없는 그녀의 글들이다. 어쩌면 가 조금은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만나는 글마다 이렇게 좋으니 푹 빠지는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여리다고만 생각했던 시가 단단한 무게로 자리 잡았다. 흔들리지 않게 꼭 붙들고 맨다면 시가 아주 많이 좋아질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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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저어
소네 게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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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 되었던 책이 단편집 <>였다. 입소문에 한 번 펼쳐 들었다가 취향 탓인지 그 때의 컨디션 탓이었는지 읽다가 덮은 책이었다. 이후 까맣게 잊고 지내다 작가의 첩보소설이라는 소리에 호기심이 동했다. 첩보소설의 참 맛을 느끼기에는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하다 생각하지만 얼마 전에 읽었던 요시다 슈이치의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작가의 책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우선 침저어의 뜻을 알고 가야겠다. 사전을 뒤져도 온전한 뜻을 가진 단어는 아니다. ‘침저저어의 합성어로서 책에서는 첩보 대상국의 시민으로 살며 명령을 받았을 때만 활동하는 공작원을 가리키는 은어로 쓰인다. 일본 내 현직 국회의원이 중국의 첩보원이라는 정보가 신문에 공개되고 경시청 외사2과의 형사들은 혼란에 휩싸인다. 정보의 사실 유무 확인 차 본청에서 급파된 도쓰이가 현장 지휘를 맡게 된다.

 

침저어를 밝히기 위한 단서를 수집하기 위해 나서지만 생각만큼 뚜렷한 증거가 없다. 희미한 단서를 쫓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는 아쿠타가와 겐타로. 후와는 아쿠타가와 겐타로의 행적을 쫓다 그의 비서관인 이토 마리의 실종 사건에 집중하게 된다.

 

첩보전의 매력을 꼽자면 고도의 심리전과 복잡한 이해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은 좋았지만 이들의 속고 속이는 첩보전을 표현하기엔 너무 깔끔하지 않았나 싶다. 첩보소설이기 보다는 경찰소설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일본, 중국, 미국 세 나라가 사활을 걸고 첩보전에 임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해내는 것에만 너무 집중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첩보소설 특유의 긴장감은 살아 있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하드보일드한 느낌도 좋았고.

 

정보에 의한 첩보전은 속고 속이는 치열한 싸움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몸을 내던지는 액션이 없어도 치밀한 두뇌 싸움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워지기도 한다. 깜짝 반전 또한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고. 첩보소설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 수는 없었어도 살짝 발을 담갔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싶다. 앞으로 작가의 어떤 작품으로 또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에서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준다면 기꺼이 만나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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