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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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리노 하나의 결혼식 준비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일에 싸여있는 양아버지 준고와의 관계, 그 사이 간극으로 존재하는 살인사건. 범죄소설이라 하기에는 그 부분이 너무 미미하다. 비 냄새가 나는 남자, 준고와 내면에 뜨거움을 숨기고 있는 하나의 위험하고 지독한 갈망을 이야기한다.

 

이해할 수도 없고, 납득할 수도 없는 이야기에 이토록 절절해지는 마음이란 다 분위기 탓이고, 작가의 문장 탓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강렬한 만큼 여운도 많이 남아서 복잡한 머릿속은 정리하기 힘들어진다. 습하고 눅눅한 장마철 습기처럼 끈덕지게 달라붙어 찝찝함을 동반하지만 장마철 습기가 다 그렇듯이 쉽게 떨쳐낼 수가 없다.

 

작가는 독자를 애써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덤덤히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뿐이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려지게 만드는, 세상의 잣대로 결코 허용하기 힘든 이들의 사랑을 날 것 그대로 느껴지는 감정에 휘둘리게 내버려두면 씁쓸한 뒷맛이 함께 한다. 동조하기도, 그렇다고 거부하기에도 경계가 너무 애매한 준고와 하나와의 관계. 그저 이들은 서로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어 치열하게 사랑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카쿠치바 전설>로 처음 만났던 작가였다. 책을 읽은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와 캐릭터들은 잊기 힘들어 문득 생각나곤 했다. 아마 <내 남자>도 그럴 것 같다. 끈적거리는 부유물처럼 내내 머릿속에서 흘러 다닌다. 고여 있는 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비워지지 않는다. 정신이 피폐해진다는 얘기는 이럴 때 하는 거겠지. 우스갯소리로 내 남자소리를 자주 했는데 당분간은 준고 생각이 나서 그렇게 부르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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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소녀
케이티 워드 지음, 고유라 옮김 / 박하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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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좋아하는 사람 누구나 솔깃해지는 제목이다. 7장의 그림과 7명의 여인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 같은 책. 솔직히 그림을 잘 모른다. 이론적인 걸 떠나서 그림을 아예 모른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아주 유명한 그림 빼고는 이게 무슨 그림인지, 누가 그렸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책과 관련된 그림이란 소리에 혹했다.

 

각기 다른 7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시대는 달라도 분위기는 거의 비슷하다. 아마 작가의 문체에서 오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 이게 좀 묘하다. 껍데기 하나가 덜 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이게 나쁜 뜻은 아니고. 많이 묘하다. 아무튼.

 

처음엔 몰랐는데 책 속에 실려 있는 그림 속엔 모두 여자와 책이 등장한다. 어떤 식으로든. 챕터 첫 페이지의 QR코드를 따라가면 그림을 볼 수 있는 링크가 열린다. 각 챕터의 주제이기도 한 그림들을 빠르고 쉽게 볼 수 있다. 책 만드는 분의 이런 소소한 배려는 책에 대한 애정을 샘솟게 하는 요소 중에 하나.

 

하나의 그림을 보고 그림 속에 담긴 사연까지 상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난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고 느꼈는데 작가는 뛰어난 상상력으로 그림에 숨을 불어 넣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미래까지 시간을 넘나들며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림에 담긴 시대적 배경과 생활 습관 같은 것들까지 글 속에 녹여낸다. 각 챕터에서 주제를 삼고 있는 그림을 중심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어쩌면 진짜로, 실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히 요즘 나의 독서 패턴으로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책은 아니었다. 느린 호흡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기까지 녹록치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홀리게 하는 마력을 가진 그림과 여인과 책이 등장하니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매력으로 똘똘 뭉친 것들의 조합이니 그에 따른 호기심은 당연하니까. 앞으로 내가 얼마나 그림을 감상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림 속에 담긴 사연까지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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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남자를 말하다 - 손목 위에서 만나는 특별한 가치
이은경 지음 / 책이있는풍경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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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좋아한다. 드라마나 영화 속 남자 주인공들이 입고 있는 옷보다 손목에 찬 시계에 더 관심을 보일 정도. 솔직히 봐도 잘 모르는 브랜드의 시계들이지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내 아이에게 대물림 해줄 수 있는 시계를 꼭 가지고 싶은 아주 큰 소망도 있고. 국내 시계 컨설턴트 1호라는 말에 솔깃했다. 휴대용 스마트기기들에 역할을 뺏기면서 입지(?)가 좁아진 시계에 대한 책이라 궁금하기도 했고.

 

시계는 남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시계하면 남자를 떠올리곤 한다. ‘기계에 매료되는 남자의 특성이 발휘되는 부분이라서 그런 걸까. 여자들이 가방과 신발에 홀리는 것처럼 남자들은 시계에 무한한 애정을 쏟곤 한다. 입장 차이에서 오는 다름은 이렇게 이해하면 만사형통. 아무튼 요즘엔 패션으로서 시계가 각광받는 시대이다. 시계 고유의 역할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역할은 사라졌다 해도 아직도 사랑받는 시계의 매력 속으로 빠져보자.

 

평소 시계를 좋아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발톱의 때만큼도 아니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의 이름들부터 시계의 역사, 스위스 시계가 왜 좋은가, 유명인들의 시계 이야기 등. 시계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쉽게 구경할 수 없는 고가의 시계 사진들에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첫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마냥 가슴이 두근두근. 이보다 황홀한 시계의 세계가 있을까 싶다.

 

드레스 워치를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에 맞게끔 개조(?)된 시계 이야기가 제일 흥미로웠다. 물속에서든, 하늘 위에서든, 심지어 우주까지 진출하는 손목시계의 높은 활용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거친 남자들의 직업과 쉽게 연결되는 시계여서 그런지 남자들이 그렇게 타는 목마름으로 애정을 과시하나 보다.

 

음식도 아닌데 군침만 흘리고 입맛만 다셨다. 보면 볼수록 탐나는 시계들 때문에. 비록 텍스트보다 시계 사진에 정신이 팔렸지만 이만하면 누가 보든 시계의 매력에 사로잡히는 건 시간문제일 거다. 책을 읽은 후에는 아주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한, 십 년째 내 왼쪽 손목을 지키고 있는 녀석이 참 다르게 보였다. 비싸고 귀한 시계는 아니어도 지내온 시간만큼 앞으로도 아낀다면 어느 명품시계 부럽지 않을 것 같아졌다.

 

 

p. 64

다만 어떤 시계를 고르더라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값이나 주위의 평가가 아니라 소장하고 싶은 가치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그것이다. 100만 원짜리 제품이라도 100년 동안 소장하고 싶은 귀한 물건으로 여긴다면 그것이 진짜 명품시계다. 단순히 이름난 브랜드의 값비싼 시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시계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알고 존중한다면 품격은 저절로 우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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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얻는 남자, 그녀를 잃는 남자
오월 지음 / 청어람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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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자가 하나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욕심도 많고 정말 잘 해내고 싶어 노력도 한다. 일도 하고, 사랑도 하고 무엇 하나 완벽하게 해낼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내 앞에 닥친 이 상황들을 무던히 견디고 있는 나이 서른의 여자, 강 은란.

 

그리고 두 명의 남자가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이루는 흔하디흔한 이야기의 범주에 넣기 보다는 강은란, 그녀의 사랑 이야기라고 보는 게 맞을 거다. 그녀가 누굴 사랑했고, 사랑했으며, 사랑하고 있는, 결국엔 모든 게 사랑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 같은 이야기.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가슴을 울리는, 덤덤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아릿하고 애틋한 이야기. 가랑비에 옷이 흠뻑 젖는 줄도 모르듯이 은란의 이야기에 이렇게 휩쓸리게 될 줄 몰랐다. 그녀의 느닷없는 이 방문이 더 없이 즐겁고 소중해진다.

 

가끔 작가에게 한 없이 고마워지는 글들이 있다. 이런 글을 만나게 해줘서 고마운 마음에 작가에게 큰절이라도 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말이다. 후유증이 꽤나 오래, 길게 갈 것 같다. 한없이 말랑말랑해져 두둥실 떠올라 구름 위를 붕붕 날아다니는 느낌이다. 서걱거리던 마음 한 자락이 봄으로 가득 차버려서 어쩔 줄 모르겠다. 분에 넘치는 이 감정들이 너무 낯설어 잠시 머뭇거리게도 만들지만 그 감정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지는 기분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두 개의 마음이 공존하는 아이러니.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정말 싫은 글이 될지도 모른다. ‘취향이란 것은 분명 있으니까. 순전히 주관적인 나 혼자만의 감정에 취해 흠뻑 빠져있다. 아찔할 정도로 좋은 글에 이런 감정이 샘솟는 건 당연한 얘기다. 줄거리 없이 느낀 감정만을 온전히 전할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안다. 하지만 묻히기엔 너무 아까운 글이다. 가끔은 아무런 생각 없이, 기대 없이 만났을 때 더 좋은 책들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p. 288

좋은 사람.

좋아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 사람.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란 참으로 단순한 거였다. 단지 내가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어서 행복한 것. 때로는 그 마음이 자신의 무언가를 양보하거나 포기하게 만들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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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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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잃고 딸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누리던 나가미네. 불꽃놀이를 구경 간 딸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며칠 후 뉴스에서 떠들던 강물에 떠오른 시체가 자신의 딸이었다. 딸의 죽음에 슬픔에 잠겨 있던 나가미네에게 도착한 음성 메시지에는 딸을 죽인 범인들의 이름과 주소가 남겨져 있었다. 나가미네는 그 집을 찾아가고 우연히 보게 된 비디오테이프에는 딸 에마의 모습이 찍혀 있는데 그 장면이 실로 충격적이다.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들에게 복수심을 품고 되는데...

 

사회의 정의 실현은 꼭 필요하다. 이제는 개인보다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의 실현을 하고 있는 시대다. 이런 때에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행한 살인이 결코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누가 이 아버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답답한 현실에 입맛이 쓰다. 갱생만을 목적으로 한 소년법에는 화가 나고, 딸을 잃은 슬픔에 비통에 잠긴 나가미네는 한없이 불쌍하고. 슬프고, 아프고,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된다.

 

히가시노 게이고. 요즘은 이 이름에 대한 믿음이 조금 덜하지만 일미가 한참 부흥하는 초기 때엔 이름만으로 어느 정도 먹히던 때도 있었다. 워낙 다작하는 작가이다 보니 작품들의 갭은 있어도 지금보다는 확실히 이쯤에 나온 책들이 재미있다. 바람 불면 훅하고 날아갈 것 같이 마냥 가벼운 소설이 아닌 묵직하고 여운도 많이 남는다. 다소 민감한 사회 문제에 끌어와 작가 특유의 필력으로 풀어내는 솜씨 또한 볼만하고. 이렇게 차근차근 애정을 쌓아 온 작가라 그런지 요즘 보여주는 모습에 실망도 하는 거겠지.

 

날카로운 시선으로 민감한 사회 문제에 서슴없이 들이대는 차가운 칼날은 섬뜩하다. 비통한 나가미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도 다 그 때문일 테다. 작가를 향한 믿음은 또 이렇게 샘솟는다. 애정이 애증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믿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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