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는 순간 - Beyond the time
요셉 지음 / 도서출판 오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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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고민했던 방법을 실천으로 옮기는 서인, 태정이 자는 틈을 타 떠나기로 한다. 서인은 태정의 곁에서 점점 멀어지고 제주도에서 짧은 휴가를 맞는다. 서인이 떠나있는 사이 아무렇지 않은 척 태정의 전화는 계속되고 이들이 덮어 놓은 문제는 시한폭탄 같아 시간을 더할수록 위태롭기만 하다. 아버지의 잦은 외도에 어머니는 이유 모를 맹목적인 두둔을 했었다. 그에 결혼에 대한 불신이 깊었던 서인은 태정의 외도를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버지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아픈 성장통을 겪었던 서인은 태정을 통해 사랑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태정이 채워주면서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믿었던 태정이었기에 떠나기로 결심을 하면서도 많이 흔들렸었다.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낯빛이 흐려지는 태정을 보고 있으니 어느 때보다 이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250쪽 정도의 짧은 분량이 참회록과 회고록으로 나뉘어져 있다. 참회록에서는 서인과 태정의 현재 이야기가 회고록에서는 과거 이야기라 둘로 나뉘어 서로 다른 시점을 오고 가며 잔잔하게 흘러간다. 절절한 사랑에 갈등과 오해, 서로의 상처까지 감싸 안아주는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이 이야기는 중편이지만 장편 소설 못지않은 묵직한 여운이 함께 한다. 좋은 것만 꾹꾹 눌러 담은 진한 엑기스처럼 농도 짙은 400쪽짜리 장편을 하나 읽은 느낌이다.

 

짧아서 가벼울 줄 알았다.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에 책장 하나 허투루 넘길 수가 없게 만든다. 책은 가벼워도 내용만은 어디에 뒤지지 않는 무게. 야심차게 준비해서 오랜만에 돌아온 작가의 초대에 응해보자. 문이 열리는 순간, 찬란하게 빛나는 사랑을 마주하는 시간은 씁쓸하면서 달콤한 시간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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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간들 -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지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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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엄마가 돌아가셨다. 분명 돌아가셨는데 병원 응급실 침대에 누워 계신다. 사망진단서가 없다는 이유로 환자가 되었다. 평생 군인으로 살아오신 아버지는 엄마의 죽음을 처리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아버지는 엄마의 죽음을 인식이나 하고 있는 건지, 아버지의 멀쩡한 모습이 너무 이상해 보인다.

 

엄마의 죽음 이후 탈상 100일까지의 기록이다. 꼭 체험수기 같다고 해야 할까. 정말 손에 닿을 듯 현실적인 시각으로 그려진 이야기라 전해지는 체감의 강도는 세다. 주위에서 죽음을 겪어 본 적도 없는데도 그렇다. 죽음이라는 것이 그냥 없어 사라지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순전히 관계의 끝맺음으로만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한 사람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다. 그게 엄마의 자리라면 상실의 공허함이 얼마나 더 커질지 가늠도 되질 않는다. 누군가는 죽어도 일상은 계속 된다. 도처에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고 내 건강은 옛날 같지 않고 먹고 살기도 해야 하는데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 모든 것을 멈출 수도 없다. 그게 엄마의 죽음이라 해도 일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은 언제나 묵직하다. 평소 진지하게 생각할 일도 없고 아직은 피부로 느껴보지 못한 일이라서 그런지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조금 어렵다. 죽음을 마주하는 것도 어려운데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것은 더 어렵더라. 뭐든 정리라는 게 쉽지는 않다. 몇 십 년을 살다간 사람이 죽고 나서의 정리는 어떠하랴. 남겨진 사람의 어깨에 짐을 더 얹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다. 믿고 보는 한겨레 문학상이어서 고민도 하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항상 씁쓸함이 감돌게 하는 수상작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씁쓸하다 못해 너무 무겁다. 상실의 시간과 일상의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두개의 시간 앞에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려면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상실의 시간들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우리는 빈자리가 느껴져도 아프지 않으려면 꼭 그래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점점 잊어지는 죽음인데 잊지 못하는 것도 다 그래서다.

 

p. 269
삶을 지속한다는 건 끊임없이 낯설어지고, 새로워지고, 고독해지는 일이다. 형제도 자라서 타인이 되고, 타인이 만나서 가족이 되고, 그 가족은 다시 서로를 헤아리지 못하는 타인으로 변해 헤어진다. 만난 사람은 헤어진다 40년이나 알아온 엄마와 나도 이제 헤어졌다. 이별만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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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버 소울
이노우에 유메히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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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남자가 있다. 흉측한 외모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괴물이라 불리우는 스즈키 마코토. 타의와 자의에 의해 바깥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그가 한 음악잡지에 비틀즈 평론 원고 글을 기고하기 시작한다.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그에게 비틀즈는 크나큰 위안이 되어주었고 세상 누구보다 비틀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런 이유로 시작된 원고 기고는 잡지 편집자와 가벼운 친목을 쌓게 되고 어느 날 자신의 클래식카를 대여해주기에 이른다.

 

광고 촬영장에서 만난 모델 미시마 에리에게 첫 눈에 반한 스즈키 마코토. 스즈키에게 에리는 운명도 아닌 구원이었다. 스스로 구원이라 할 정도로 깊은 감동을 받은 그는 그날 이후 미시마 에리의 행적을 쫓는다. 맹목적인 사랑이 그를 옭아매지만 이미 기울기 시작한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만 한다. 그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의미를 두고 일희일비하는 스즈키는 점점 변해간다.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녀의 사진을 찍고, 그녀의 냄새를 맡고, 그녀의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스즈키. 스즈키는 에리의 스토커다. 사랑이 집착이 되고 집착이 범죄가 된다는 그 스토커. 흉측한 외모로 자신을 드러내진 못하지만 온 마음을 다해 그녀를 열렬하고 절실하게 지켜줘야 한다고 믿는다.

 

끝내주는 가독성으로 쉼 없이 내달려 마지막 문장을 마주하는 순간 먹먹해지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마지막 반전 하나만을 위해 그렇게 거침없이 내달렸나 보다. 여러 화자가 등장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라 중복되는 장면도 더러 있지만 벽돌 같은 두께가 가벼워질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스토커라고 욕해도 절절한 이 남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어느 순간 먹먹해지는 가슴에 숨이 탁 막혀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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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위 - 꿈에서 달아나다
온다 리쿠 지음, 양윤옥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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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해석가 히로아키는 일본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초등학생들의 집단 악몽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센터 측에서 전례가 없던 몽찰로 해야 할일은 점점 늘어만 가는데 십년 전 죽은 고토 유이코가 자신의 주위를 자꾸 맴돌고 불가사의한 사건들이 연속으로 일어난다. 최초의 예지몽으로 인정받았던 고토 유이코의 꿈. 예지몽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은 구했지만 정작 자신은 불의의 화재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자신의 형과 연인 사이였던 고토 유이코와 미묘한 관계였던 히로아키. 왜 그녀는 이렇게 혼란스러운 이 때에 자꾸 자신의 곁을 맴도는지 모르겠다. 이후 드러나는 단서들이 가리키는 것은 모두 고토 유이코였고, 미묘하게 어긋나면서 겹쳐지는 모든 것들이 터질듯 말듯 뿌옇게 덮인 짙은 안개 속을 헤매게 만든다.

 

남의 꿈을 보는 일이 가능한 시대이다. 꿈 해석가라는 주인공의 직업이 그렇듯 꿈이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금방 잊혀지고 마는 사소한 꿈처럼 생각했는데 몽위 속의 꿈은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 되어 불가사의한 사건들의 길잡이가 된다. 이렇게 특별한 꿈이라니. 나는 꿈을 거의 매일 꾼다. 자고 일어나면 잊혀지는 꿈이지만 꿈속의 장소나 사람 등은 희미하게 기억하곤 한다. 매일 꾸는 꿈이 뭐 그리 대단하냐 하겠지만 갔었던 장소에 또 가고 만났던 사람을 또 만나고 꿈을 이어서 꾸는 경험을 한 사람에게는 꿈이라는 것이 마냥 사소하지만은 않다. 나에겐 조금 다른 의미의 꿈이여서 그랬는지 '몽위'속의 꿈도 참 다르게 느껴지더라.

 

꿈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현실과 꿈의 불분명한 경계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게다가 미스터리 장르에 꿈이란 소재를 더해 한층 더 빛이 난다. 몽롱한 분위기에 취해 흐린 경계선 위에 서 있노라니 모든 것이 흐릿하지만 분위기 하나는 최고다. 출간되기 전부터 소문만 무성했던 작품이라 기대도 조금 했었다. 언제 나오나 기다려지기도 했고. 그 기다림이 허무하지 않을 정도의 몽환적인 분위기여서 좋았던 것 같다. 워낙 이런 분위기를 특출나게 잘 쓰는 작가이기도 하니까.

 

온다 리쿠의 책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왜 외면하고 있었을까 싶다.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 결코 좋지는 않지만 분위기 하나로 나를 사로잡았으니 조만간 책장 속에 꽂혀 있는 다른 책도 찾아보련다. 온다 리쿠, 그녀의 세계를 이제라도 만난 게 다행이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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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해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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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을 찾아봤다. ‘극해라는 단어가 궁금해서. 남극이나 북극의 바다를 뜻하는 단어라고만 생각했는데 몹시 심한 해독이라는 의미도 있단다. 무슨 이야기를 얼마나 독하게 하려고 이런 단어를 제목으로 썼을까. 전작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를 읽고 느낀 강렬하고 묵직한 여운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작정하고 쓴 것 같은 제목에 호기심은 주체하기 힘들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긴박한 전시 상황에 포경선 유키마루는 해군의 식량 조달을 위해 바다로 떠난다.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이 함께 탄 유키마루는 시대를 대변하고 있는 축소판 같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일본인들은 허기와 갈증에 허덕이는 조선인과 대만인을 재촉하고 이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엔진 고장으로 표류하게 되고 극해로 향하게 되는데... 극한 상황에 내몰린 이들과 달리 바다는 그저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인간의 본성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극한 상황에 내몰리자 순식간에 짐승으로 변모해버리는 이들의 모습은 낯설어 보여도 낯설지가 않다. 무간지옥으로 변해버린 유키마루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광기와 본능만 남은 이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침묵하는 바다일 뿐이다.

 

컨설턴트는 임성순 작가를 새로 알게 한 책이었고,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작가를 다시 보게 만들었고, ‘극해는 닥치고 임성순을 외치게 만들었다. 난 이렇게 독한 이야기가 좋다. 내몰고 내몰아 벼랑 끝에 서게 만들어 시시각각 숨통을 죄어 오는 그런 이야기. 자극적이고 노골적이어도 좋다. 그만큼 짜릿함과 아찔함은 배가 되니까. 동전의 양면 같은 인간의 본성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함과 악함의 그 간극이 얼마나 미세한지, 그 미세한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치열하고 견고한지, 생생하게 들려오는 비명에 온몸이 저릿해진다.

 

거친 남성미로 무장까지 하고 수컷 냄새를 물씬 풍긴다. 페르몬을 발산하는 생명체도 아닌데 무언의 힘으로 끌어당겨 몰입하게 만든다. 비탈에서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시시각각 무게를 더하며 무서운 속도로 내달린다. 묵직하게 가라앉아 입맛이 쓰다.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못하겠다. 강렬한 여운에 한참이나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 여운이 또 아쉬워 책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든다.

 

사심 가득 담아 별 다섯 개, 아니 별 열 개라도 주고 싶다. 다시보자, 임성순! 흥해라, 임성순! , 이렇게 신간알림 신청하는 작가는 늘어간다. 그래봐야 다섯 명도 안 되지만. 꼭은 아니어도 한번쯤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거칠어서 좋고, 독해서 좋고, 처절해서 좋고. 이만하면 당신의 호기심은 충분히 자극되었다고 본다. ^.^ 올 여름 심장을 앗아갈 단 하나의 소설이라는 광고문구가 허투루가 아님을 당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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