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하지 말고 달려라 - 초고속! 참근교대 낭만픽션 6
도바시 아키히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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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말해서 고등교육까지 마친 사람이라면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그닥 좋은 감정을 가지는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역사'에 대한 부분이다. 물론 이 부분이 확장이 되어서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꽤 본 것 같긴하지만, 나는 사실 한국도 그닥 좋아하는 나라가 아닌 입장이라, 일본에 대해서는 딱히 호감도, 반감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역사에 관해서는 일본은 왠지 피비린내나고 살벌하고 잔인한 나라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공부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관심도 없다.

 

아무런 관심 없이 펼쳐든 책이 이 책인데, 생애 처음으로 일게 된 일본의 역사가 배경이 된 소설이다. 알지도 못하는 각종 주석이 달린 단어들을 보고 순간 '덮어야 하나'라는 고민으로 읽어내려가다보니 어느순간 끝이 났다. 물론 일본사를 알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테지만, 황당하면서도 다행스럽게 책을 다 읽고 난 후 마지막에 책의 배경에 대해서 설명된 섹션이 있었다. 책 구성이 짜증난다.

 

이 책은 일단 '참근교대'에 대해서 알아야 읽을 수 있다. 그대로 인용하자면,

 

"참근교대란 다이묘들이 정기적(보통 1년 단위)으로 에도와 영지를 오가도록 강제하는 일종의 인질제도이다. 속된 표현을 쓰면, 다이묘들이 딴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뺑뺑이'를 돌리는 제도이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다이묘 견제책인 만큼 참근교대는 엄격하게 시행되었고, 이는 다이묘들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다. 막부가 지정한 일시에 에도에 도착하지 않으면 쇼군에 대한 무례로 간주되어 큰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이묘들은 필사적으로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동분서주 해야만 했다. 소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상인들에게 돈을 꾸는 다이묘가 있을 정도였다."              

 -p.384-

  

우리나라도 그렇긴 하지만, 참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보면 그야말로 약육강식이다. 비록 <굴하지 말고 달려라>에서는 이 참근교대의 명령이 떨어진 유나가야 번의 번주인 마사아쓰의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부각했지만, 정치적 시스템으로 보면 일본은 역시나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부담없이 술술 읽어내려갔다. 꽤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역시 '역사'의 '역'만 들어도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하얗게 되는 나는 픽션을 기반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스타일이 좋다. 이 책 한권으로 에도시대의 참근교대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는 수확만으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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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국
반도 마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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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국. 소름끼치는 제목이다. 내용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줄거리라고나 할까. 죽은 이들이 살아나서 산 자들에게 원한을 갚고, 아이를 잉태하여 대를 잇는 저주.

 

범죄소설이나 스릴러를 좋아하는 내게 이 책의 장르는 그 둘 보다는 공포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공포 장르를 많이 접해보지 않아서 조금은 낯선데, 이 책을 읽어본 후에는 그닥 다시는 접하고 싶지 않은 장르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럼에도 일본 특유의 공포는 늘 영화에서 다른 나라의 영화보다 더 소름끼치는 무언가가 있다. 내가 중학생 때 본 '링'은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최고의 공포영화다. 이 책은 마치 '링'과 같은 공포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만 영화가 아닌 책이라는 점에서 다소 그 느낌을 오롯이 느낄 수 없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 영화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줄거리의 참신함이 결여되어 있다.

 

우습게도 가장 무서운건 역자의말. 권남희가 번역한 소설은 많이 접해보았는데, 역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책을 덮고도 이토록 남는 경우는 처음이다.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으로서 죽음을 궁금해하는 동생에게 '죽어보면 알잖아'라고 답한 후 시간이 흘러 동생이 정말 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다보면 막연히 궁금해했던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생긴다. 또한 죽음과 삶이 멀지 않다는 것 또한 느끼게 된다. 아마도 역자는 내가 몇 년 전 가까웠던 지인의 황망했던 죽음을 접한 후 몇 달 간의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것보다 더 심한 트라우마를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의 죽음에 대한 자세 또한 나처럼 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가장 크게 느낀건, 죽음을 무조건적으로 두려워하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다는 것. 그렇다고 지금처럼 아둥바둥 살지 않게 되는 건 아니다. 산다는 건 이토록 아이러니 하다.

 

공포도 아니고 범죄물도 아니고 어떤 것이라고 특정짓기에는 애매한 스토리. 그러나 책을 덮은 후에는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사색해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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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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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탐구 과목 중에서 <사회문화>라는 과목이 있는데, 당시 배웠던 이론이 '기능주의적', '갈등주의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점점 사회의 부속품으로 감정을 배제한 채 살아야 하는 나 자신을 보며 이 '기능주의적'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를 새삼 느끼고 있다. 갈등 없이 기능적으로만 사회를 보면 참으로 순탄하고 매끄러워보이지만 결코 그 안에서 인간은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주어진 규범과 규칙 그리고 정의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아무런 의심없이 잘 지키며 사회의 부속품이 된다는 것이 아닌가! 아 물론, 내가 너무 오래전에 배운 이론이라 잘못 해석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갈등주의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좀 더 서구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론이며, 여기서 인간은 깨어난다. 그리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하게 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직장인으로 사는 건 어떤것인가! 점점 기능주의적으로 빠지게 되며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상실한 채 밥그릇을 절대 놓지 않게 되는 삶을 살게 된다. 가족이 있으면 이는 가족 이기주의의 연장이 될 수 있고, 가족이 없어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요즘 이런 때묻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나를 보노라면, 그저 씁쓸함과 환멸이 동시에 느껴진다고나 할까. 조금만 튀어도 아우성 치는 조직과 사회에서 과연 패기어렸던 나는 어디로 간 채, 아무 생각없이 아침에 힘겹게 눈을 뜨고, 씩씩대며 출근을 하고 지루한 시간을 모니터 앞에서 버티고 있는 건지. 그러면서도 '가늘고 길게'라는 모토를 내세우며 한달에 몇 백만원으로 내안의 나를 속인 채 위로금으로써 받는건지....

 

<절대정의>의 스토리는 심플하다. 어찌보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아무런 감정은 느끼지 못한 채, 정의만을 추구하는 한 여자 이야기. 정의가 때로는 진리처럼 꼭 추구되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녀가 그런 주장을 내세우고 행동에 옮길 수록 주변의 사람들은 그녀를 증오하게 된다. 말인즉슨, 사람이라는 동물들이 사는 곳에는 꼭 정의만을 추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를 인간성으로 커버하는 것이 융통성인데, 이런 융통성은 때로는 정의에 위배될 때가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것은 이런 정의와 융통성 사이에서 판단을 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절대정의'는 없다라는 걸 아주 극단적인 스토리로 피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정의에 위반되는 것에 눈을 감은 채, 관계를 우선시하는 것이 인간적일 때가 있지만, 가끔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너무나도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의가 절대적인 것일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갖지 않아도 되는 대신, 모든 것이 자명하고 정답이 정해져 있을 때 더욱 편하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런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이 감정이 있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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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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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교황이 선종을 하고, 새 교황을 뽑는 때가 도래한다. 이름하여 콘클라베. 곧 바티칸에 세계 각국의 투표권을 지닌 추기경이 모이게 된다.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지만, 교황이 되고픈 야망은 버릴 수 없는 유력한 후보들. 정해진 수 이상의 표를 얻지 못하면 교황이 될 수 없다. 때문에 투표는 무려 여덟 번에 걸쳐서 행하게 된다. 그 모든 과정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또 그 과정 속에서 교황이 될 수 있는 유력 후보들의 민낯과 과거에 대해서 추기경 단장인 로멜리가 파헤친다.

 

바티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처음 접해본다. 또한 제목만 익숙한 <폼페이>의 저자인 로버트 해리스 또한 이 작품으로서 처음 접해보는 셈이다. 영화같이 화려하고도 스펙터클하고 스케일이 크지는 않지만, 담백한 서사성과 종교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답게 묵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런 묵직함 또한 나름의 매력으로 독자들을 어필하고 있다.

 

종교가 소재라는 것은 꽤나 민감함을 다루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 경건함을 소재로 한 스릴러는 오히려 더욱 흥미진진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신의 선택을 받은 자는 과연 누가 되는지를 밝혀내며 결국 신을 믿고 신만을 따르는 인간도 인간이기에 금전과 욕정을 뿌리칠 수 없는 부족함을 가진다는 것을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또한 결국 비밀이란 언젠가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인간 군상을 제대로 그려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에 대한 의문. 시대를 초월해서 늘 의심하고 질문할 수 밖에 없는 화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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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뉴욕의 맛
제시카 톰 지음, 노지양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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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한번도 가 본적이 없지만, 미국작가들이 쓴 소설에서 뉴욕을 접할 때면 한국의 분위기와 비슷함이 느껴진다. 각박하고 냉정하며 언제나 바쁜 도시. 한국은 땅이 좁아서 서울을 위시한 도시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미국은 지리적으로 워낙 넓고 서부와 동부의 문화적 차이 및 각 주마다의 차이 또한 커서 뉴욕만의 분위기가 늘 미국인들에게는 어쩌면 동경의 대상이 되는 듯도 하다. 동부 출신이 아닌 미국인들이 뉴욕과 비슷한 분위기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제목에 '뉴욕'이 나와있고, 표지의 느낌을 종합해보면 왠지 로맨틱 소설일 것 같다는 나만의 착각.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하고 레스토랑에서 여러 음식을 맛보며 맛에 대한 리뷰를 쓰는 소녀 티아. 뉴욕 출신이 아닌 그녀가 대학원 입학을 위해 뉴욕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우연히 만난 뉴욕타임스 저널리스트 마이클 잘츠. 그녀는 그의 꾐에 넘어가서 레스토랑 리뷰의 대필을 하게 된다. 역시 세상에 있는 듯 하지만 없는 게 바로 비밀인 걸까. 티아의 비밀이 점점 그녀의 삶을 망가뜨리게 된다.

 

이야기는 생각보다 흡인력 있었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갖가지 음식에 대한 소개와 묘사가 흥미로웠다. 그러나 내가 가장 공감하면서도 빠져들었던 건 바로 티아에 대한 심리 묘사이다. 티아가 처음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 모습과 심리가 내가 오롯이 느껴본 적이 있는 심리였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사실 비슷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어떤 장면보다도 그녀가 처음 사랑에 빠지고 점점 더 빠지게 되는 그 순간들 말이다. 그러나 그 감정이 순수한 사랑이기 보다는 그저 외모와 껍데기에 끌리게 되는 씁쓸하지만 멈출 수 없는 유혹이라는 게 포인트이다. 그리고 그 후 겪게 된 배신감 역시 내가 겪고 느꼈던 경험을 마치 다시 책으로 접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책의 애매한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고, 내용도 사실 유치하다. 그저 말랑말랑한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랄까. 책을 덮고 난 후, 또 한 번 나 스스로 확신한 것은 뉴욕은 굳이 가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도시라는 점이다. 아주 비슷한 환경 속에서 도시 라이프를 혐오하고 도시 라이프를 지향하는 뉴요커의 삶에 관심 없는 내가 줄곧 버티며 충분히 오랫동안 살아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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