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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러 갑니다
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살의를 분출하고픈 욕망이 여러 편의 소설에서 고개를 치든다. 남자는 배신을 당한 후 스스로 극복하려고 노력했고 누구보다도 성실히 살았다. 그는 배신의 아픔을 이겨냈을까.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그는 미움이 거대한 탑처럼 쌓여 병들어간다. 미움은 차곡차곡 쌓여가는 동안에도 그는 웃고 떠들 수 있지만, 가슴 속에서 그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닦는다.

작가는 갈고 닦은 복수의 칼날을 보여준다. 날은 반짝일 만큼 예리해졌다. 금세라도 사람의 가슴팎을 밀고 들어갈 수 있겠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미래의 문을 닫고 밀폐된 방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고 또 갈아대는 사람들. 그들의 일상은 미움과 미움이 겹치고 겹쳐 한없이 얼룩져 있지만, 그렇다고 칼을 뽑아 휘두르지 않는다. 미움이 칼을 부르고, 칼이 피를 부르는 일이 없다. 일상은 그저 흐르고 흐를 뿐이다. 오히려 복수의 칼을 든 채로 멍하니 미움의 탑을 올려다본다. 내가 쌓은 탑이야, 작가가 중얼거리는 듯했다. 아니, 내가 흘리는 혼잣말인 듯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단편들은 뭔가 미진한 결말로 마침표를 찍은 듯 시원치 않았다. 아니, 마침표 없이 문을 열어두고 나간 듯한 결말들이다. 작가는 결정적인 마지막 행동 또는 마지막 실마리를 풀어내지 않고 손을 흔들며 나가버렸다.(어쩌면 작가가 추리기법을 소설에서 살리지 못하거나 혹은 살릴 마음이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복수의 칼을 쥐고 있다면 어떤 마지막 행동을 취할까. 작가는 뒤를 돌아다보지 않을까. 복수의 칼을 사람의 가슴팎이 아니라 미움의 탑에 꽂기를 바라면서.

*

작가의 표현이 무척 섬세하다. 미움과 살의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쌓여가는지 손으로 만져지는 듯했다. 미움이 쌓이는 과정은, 먼지 같이 흩날리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돌돌 뭉쳐내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혹 바다 같은 게 아닐까. 그 위에 뗏목이 덜렁거리며 떠다니다가 시간의 흐름에 흔들려 떠내려오는 것. 뗏목 위에는 틈틈이 건져올리는 미움의 파편들이 있다. 쌓이고 쌓여 뗏목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지는 순간. 작가가 잡아내는 건 뗏목이 떠내려오다가 가라앉기 바로 직전의 순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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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01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제목이 섬뜩하네요. ^^ 친절한 금자씨가 떠올라요. ^^
미움의 파편이 쌓이고 싸여 가라앉기 직전의 순간에 있는 뗏목, 그걸 포착했다는
비유가 참 신선합니다.^^ 3월의 첫날이에요. 즐거운하루 보내세요..

hanicare 2007-03-0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이는 학교 들어갔겠네요. 우리 집 아이보다 1살이 많았던가.
내가 암만 게으름을 피워도 세월은 가는군요. 지구는 자꾸 더워진다는데 나는 갈수록 몸도 맘도 차가와집니다. 그런 와중에 또 봄이네요. 알라딘에서 맞는 봄도 손가락
몇 개가 필요하다니.

조선인 2007-03-02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는 내년에 학교에 갑니다.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불안초조인데, 학교 보내기는 또 어쩔런지요.

chaire 2007-03-0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단편 모음집이었군요. 제목이 독해서 언제 한번 들춰봐야지 싶었어요. 미움의 탑이라니, 뭐, 그거 안 쌓고 살아가는 인간, 있겠습니까..^^
근데, 어머 하니언니! 새로 바뀐 그림 보면서, 와 잘 계시구나 했었어요.^^

2007-03-02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7-03-02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제목은 섬뜩하지만, 안 그래요. 오히려 미움이 쌓이지만 분출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인걸요. 3월이네요, 벌써. 어휴, 시간이 유수 같아라. 혜경님도 정말 봄다운 3월을 보내시길요. ^^

하니케어님, 이안이 서영보다 한 살 더 많을 거예요. 여전히 똑똑하게 잘 자라고 있죠? ^^ 몸도 마음도 차가워진다고 하시지만, 제가 느끼는 하니케어님은 이성적일 뿐인걸요. 알라딘에서 이렇게 가끔, 바뀐 그림으로 반가워할 수 있는 지인도 있고, 가끔은 이곳, 썩 괜찮은 곳이란 생각이 들어요. ^^

조선인님, 어휴 그러게요, 엄청 신경이 쓰여요. 근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늘 제가 더 불안초조했던 듯해요. 정작 아이들은 꽤 적응을 잘하던걸요. 마로, 잘해나갈 거예요. 참 예쁘게 많이 컸어요. ^^

카이레님, 하하 이 그림 너무 재밌는 거 있죠. 서재에 찾아가서 다시 한번 보고 슬그머니 웃다가 왔어요. 전 저 길다란 머리를 묶어주고 싶은데요. 아, 그러려면 옷도 필요하겠구나~ 저 빨간 머리, 왜 뜬금없이 부러운지. ^^

속삭인 님, 저도 일본소설 끌리지 않아서 일부러 읽지 않다가 이번에 몇 권 읽었어요. 일부러 유명세 있는 것 빼놓고요. 무슨 심술인지. ^^ 그래요, 미움을 가만히 들춰보면 그 안에 두려움이 있는지도 몰라요.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는 미움이지만, 속내는 다른 경우가 많잖아요.
공부, 늘 성큼성큼 달려가기를 바랄게요. 좀 느림보 같다 싶음, 저한테 하소연이라도 하세요. ^^

icaru 2007-03-04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홋... 제목이 아주 노골적으로다가...
작가가 갈고 닦은 복수의 칼날의 반짝임에 눈이 부실 것도 같은 혹 그런 느낌도 있나요? .. 살면서 복수하고 싶을 정도로 미웠던 사람과 경험이 있었나 떠올려 봤어요. 헤- 사회 초년 시절에 정말 싫고, 밉고 그렇게 속으로만(면전에서는 제가 기어들어갔고요 ㅎㅎ) 용납을 못 했던 상사가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요. 지금의 그 나이인 어린 친구들은 대개 그 때의 제 경우처럼 그렇게 미운 상사가 있더라고요. 제 입장에서는 그 사람이 잘 이해가 가는게... 그 친구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로 봐서...
확실히 그 때의 제가 어렸구나!
에구구... 또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그나저나... 이 서재에 오면 하니케어 님의 자취를 운좋게(??) 발견할 수 있어 좋아요!!

2007-03-04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7-03-05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저도 그래요. 그땐 정말 이해 못할 사람들이 더러 있었죠. 지금은 조금 이해도 가고(그렇다고 동감은 할 수 없고) 애처롭게도(!) 느껴지니 그게 참 신기해요.
저도 오랜만에 하니케어님 만나서 참 좋았어요. 가끔씩 이렇게 만나면 안 될까 싶은데. 안 그래요, 여러분? ^^

어휴, 속삭인 님, 저도 그 비슷한 증세 아는데. ^^ 저도 어깨가 무거우면 좀처럼 두꺼운 책을 못 읽겠더라고요. 이 책, 얇아요. 큭큭.
그런데 오늘 눈발이 날리데요. 그럴 거면 겨우내 간간이 그랬음 좋잖아요. 괜히 한 군데 폭발하듯 내리지 말고 말이죠. 이제 봄이라고 괜히 핑계대고 마음 다잡으려는데 생뚱맞게 눈발이라니. 오늘 추웠죠? 건강 잘 챙기세요, 님. ^^
 
샬롯의 거미줄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5
엘윈 브룩스 화이트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화곤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펀은 여덟 살된 여자아이다. 무녀리로 태어난 새끼돼지 윌버를 구해냈다. 윌버는 펀이 정성껏 먹여주는 우유로 살아났고 무럭무럭 자랐다. 펀은 윌버의 꿀꿀거리는 이야기마저 알아들었다. 윌버와 동물친구들, 심지어는 곤충친구의 대화마저 엿들을 수 있었다. 여덟 살의 사람에겐 그런 능력이 있다. 동물과 곤충, 혹은 식물과도 소통할 수 있는 능력.

그런데 펀은 윌버와 동물들의 대화에 무작정 끼여들지 않았다. 펀은 우리 앞에 꼼짝없이 앉아서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펀은 왜 동물들과 함께 윌버 구하기 작전에 합류하지 않았을까.

펀이 우리 앞에 앉아 이야기에 섞여들었다면? 물론 템플턴 같은 비열하고 치졸한 쥐의 역할은 아예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템플턴은 오히려 거위알을 훔쳐가고 새끼거위를 물어죽이는 역할로만 떨어지게 되었을지도. 샬롯은 그처럼 눈부신 지혜를 짜낼 필요가 없었을지도. 윌버와 샬롯의 우정이 그렇게 탄탄하게 거미줄 치지 못했을지도.

나는 무척 궁금했다. 펀의 역할이 우리 밖에서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짜여지게 될까. 펀의 목소리가 왜 우리 안으로 뛰어들지 못했을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펀은 여덟 살이다. 여덟 살은 어쩌면 경계에 선 나이일지도 모른다. 동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그게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닌 나이. 펀은 집으로 뛰어들어가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 동물이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어요, 라고. 펀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게 자연스럽다. 동물들이라 해서 자기 아래로 줄선 열등한 서열의 생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펀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즐거워할 뿐이다.

펀은 서서히 우리에서 멀어져갔다. 동물보다는 또래친구가 더 좋아졌다. 펀은 동물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지점으로 넘어간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펀은 그걸 깨닫지 못한다. 펀은 경계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한다. 천천히 변해간다. 펀은 곧 열여덟 살이 되고 스물여덟 살이 될 것이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펀을 이야기의 주변에 세워놓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과 동물의 구분이 의외로 이야기 속에서 명확하다. 감동적인 동화답지 않게 독특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덟 살의 소녀가 동물들의 우리 밖에서 한 걸음씩 멀어져가는 것이 조금 서운했다. 윌버와 회색거미 샬롯의 자손들의 관계는 끝까지 끈끈하기 이를 데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리 서운한 일도 아닐 수 있다. 따지고 보면, 펀은 윌버를 구한 맨처음 주인공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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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7-02-1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면 여덟 살이라는 나이는 참 완벽한 나이예요. 저도 그랬고, 아마 이안 님도 그러셨지요..? 그때 이후로, 이 리뷰에 따르자면, 동물들의 소리로부터 단절되면서부터 저는 점점 멍청해져온 듯해요. 그때는 정말 모르는 게 없었더랬는데. 사는 것도 별반 불툭하지 않았더랬는데. 세상이란 별로 어려운 수학문제가 아닌데, 다만 내가 아직 어른이 아니어서라고만 생각했더랬는데... 후훗. 괜한 얘기지요?

내가없는 이 안 2007-02-14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이레님, 사실은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혹시 동물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니, 하고요. 아이가 혹시나, 엄마가 왜 이러나, 하는 눈초리로 보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 그런데 동물들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일은 있어도,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일은 없는 듯해요. 곡해하는 일이 거의 없거든요. 곡해가 단절의 방식이겠죠? 카이레님이 불툭하단 표현을 쓰셨는데 정말 제대로 불툭거리면서 마음에 와닿네요. 불툭거림도 단절로 생긴 거겠죠?

내가없는 이 안 2007-02-14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요, 그맘때 마음이란 게 저한테만 있는 줄 알았어요. 정말요. 그때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는데 신기해서였던 게 아닐까 싶어요. 내면에서 생각이라는 게 자꾸만 생겨나는 게 느껴졌으니까요. 아, 이게 마음이구나, 하고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은 들리는 대로 들을 뿐, 저 사람 마음에서 무슨 생각이 있을까, 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게 소통의 단절이나 오해의 소지는 되지 않았던 듯해요. 그러니까 마음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알기 시작하면서 저쪽의 마음을 내쪽의 마음대로 생각하는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저도 괜한 얘기죠?

icaru 2007-02-1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고받으시는 댓글이 와아~
특히.. 마음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알기 시작하면서 저쪽의 마음을 내쪽의 마음대로 생각하는 일이 생겼다는 말씀... 끄덕끄덕..
저도 아주 어렸을 적엔 나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줄로 알았어요. 마음이란 게 나한테만 있는가 싶은.. "난 특별해"와 일맥 상통하는??

내가없는 이 안 2007-02-1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이카루님도 그러셨구나. 그게 "난 특별해"와 상통하나요? ^^ 한편으론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자신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별하지 못한 구석을 자꾸 쥐어박기도 했죠. 그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버릇이기도. ^^

잉크냄새 2007-02-1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흐리멍텅한 눈으로 채널을 돌리다 영화로 나오는 부분을 아주 잠시 보았죠.
음...여덟살의 경계에서 품고 있던 마음이 조금씩 사회화되면서 사라지는것 같아요. 자연스러울수도 있지만 어쩌면 의식적일수도 있겠구나 싶네요. 남과 다름이 그냥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틀림으로 비춰지는 사회에 그냥 물흐르듯이 순응되어가는 과정일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전 요즘도 술한잔 먹으면 집에 들어가기전에 인간외적인 사물과 잠시 대화를 해요. 물론 저의 일방적인 독백이지만...별에게도, 고추에게도,,,담배 한개비 피는 정도의 시간을 그렇게 정신나간 놈처럼 떠들곤 하죠...ㅎㅎ

내가없는 이 안 2007-02-20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 한 개비 피는 정도의 시간요... 사실 그 정도의 시간이 틈틈이 나는데 전 어떻게 보내더라 생각 좀 해봤어요. 그렇게 독백하는 걸로 소요하는 것도 꽤 괜찮겠는데요. ^^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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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의 첫 문장은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도 잊지 못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지만, 설국에서 빠져나올 즈음 나는 산돌림을 보고 몸울림을 들었다. 그건 눈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조. (산돌림은, 멀고 가까운 높은 산들이 하얗게 변하는 것. 몸울림은, 바다가 있는 곳에선 바다가 울리고, 산 깊은 곳에선 산이 울리는 것. 마치 먼 천둥과 같은 것.) 몸은 눈과 멀지만, 마음은 눈의 고장에 한동안 머물면서 한기를 느낄 게 분명했다.

남자와 여자 둘. 그는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유유자적하며 산다. 그녀, 고마코는 말한다. "괜찮아요, 우린 어딜 가도 일할 수 있으니까. 정말이에요. 어디서 벌건 다 마찬가지죠. 징징거릴 필요 없어요." 눈바닥에서 사는 고마코는 슬픈 사람이지만, 소리 높여 웃는다. 그녀, 요코는 찌르듯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단 한 사람만 간호할 마음으로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여자다. 두 여자는 게이샤다.

눈의 고장에서 남자는 고마코에게 모든 게 헛수고라고 말했다. 그는 고마코의 전부가 자기에게 던져지는 걸 느끼지만, 실제로 고마코의 그 어떤 것도 자기에게 스며들지 못한다고 느꼈다. 헛수고. 그런데 헛수고는 어째서 그렇게 아름다웠을까.

그는 어느 날 자기의 다다미 방에서 조촐하게 죽어가는 곤충들을 집어올렸다. 그것들은 아직 살았나 싶었지만 이미 죽어 바람에 바스러졌다. 더듬이를 가진 족속들은 움직이려나 싶었지만 한두 걸음 뒤에 쓰러지고 엎어졌다. 헛수고. 그런데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죽음이 어째서 그렇게 아름다울까, 그는 생각했다. 헛되다고 말할수록 그것은 나에게서 먼 것이 아니라 나의 가장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겠네, 그의 생각을 좇아 나도 한숨을 내쉬었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눈의 고장에 화염이 불타올랐다. 헛된 것들을 부유하던 그에게 검은 하늘의 은하수가 쏟아졌다. 눈의 고장에서 그는 헛된 눈바닥을 거닐었을지 몰라도, 그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나도 헛된 눈바닥을 헤맬지 모르겠다. 그것을 아직은 아름답게 느낄 수 없다. 여전히 나는 쓸쓸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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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7-02-02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즈넉한 그 분위기가 그대로 다가오는 듯 느껴지는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icaru 2007-02-0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하~ 한번도 설국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는데... 제대로 뽐뿌 넣어주시네요..

내가없는 이 안 2007-02-02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리뷰보단 소설이 훨씬 고즈넉하죠. 일본의 눈덮인 사진을 얼마 전에 봤는데 정말 가고 싶어지는 거 있죠. ^^
icaru님, 흥 그 뽐뿌, 어젠 저한테 넣었잖아요! ^^

향기로운 2007-02-02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국 오래전에 읽었었는데.. 가물가물하네요^^ 시간되면 저도 다시 읽고 싶어요^^

잉크냄새 2007-02-02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원히 잊지 못할거라는 설국의 첫문장에서 단절없이 쭈욱~~~~~ 이어지고 있네요.^^ 리뷰가 아니라 소설같아요. 오랫만에 맛보는 이안표 리뷰랄까요.

내가없는 이 안 2007-02-04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님, 가물가물할 만도 해요. 스토리라는 게 좀... ^^
잉크냄새님, 칭찬인 거죠? 딴엔 나답지 않게 짧게 썼네, 하고 끝냈는데. 잉크냄새님 칭찬에 힘입어 좀더 열심히 써볼게요. ^^

chaire 2007-02-05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의 그 아득함이 떠올라요. 야스나리는 야릇한 작가예요. 좀 의뭉스럽기도 하고, 음흉스럽기도 한.

내가없는 이 안 2007-02-06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의뭉스럽기도 하고 음흉스럽기도 한, 에 저도 동감이에요. 실제로 설국의 남자도 그렇잖아요. 소설의 주인공을 보면 작가가 짐작이 돼요. 작가들은 아주 다른 삶을 만들어보고 싶어할 테지만 그게 맘처럼 안 될 것 같아요. 자기 같은, 자기 닮은 인물들을 만들어내는 게 분명해요.
 
통역사
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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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덮고 여는 데 조금만 더 단호했더라도 끝까지 읽어내지 못할 뻔했다. 수키 김의 문장은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데 탁월했다. 하지만 짙은 담배연기에 갇힐 것만 같은 폐쇄증을 고민하게 했다. 들어갈까 말까, 한쪽 발을 끼워놓고 문틈을 기웃거리는 못난 짓. (언제부턴가 이런 버릇이 생겼다. 깊은 독 안에 빠질 성싶어 미리 겁을 낸다. 아픔은 더욱 아프게, 외로움은 더욱 외롭게, 갈증은 더욱 목마르게 되지 않을까, 나는 두려워한다. 이를테면 소설에서 날아오는 돌멩이가 별안간 내게 떨어져 물수제비를 수없이 뜨는 상황.)

다행히 한번 덮어놓은 책을 미워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심정으로 열었다. 수키 김의 소설은 영악하게도 그 지점을 놓치지 않았다. 오래 전 의문의 죽음을 무덤에서 꺼내어 불운한 통역사 수지에게 던졌다. 그녀는 오년 전 운명을 달리한 부모의 죽음을 쫓아다니게 되고, 나는 수지의 뒤를 따라다닌다. 수지가 비를 흠뻑 맞을 때는 덩달아 가슴에 물기 뚝뚝 떨어지고, 그녀가 어둔 골목을 돌아갈 때는 더듬더듬 눈앞의 어둠을 두드린다. 책을 덮을 때만 해도 나는 누가 묻지도 않는 그 이유를 스스로 댔다. 견고한 국가 미국에서 1.5세대 한국인들이 스러져가는 아픔은 느끼고 싶지 않다, 자기를 일으켜내지 못해 차라리 쓰러뜨린 외로움은 읽고 싶지 않다, 고 제법 냉정하게 대처했다. 하지만 곧 나는 소설을 더는 덮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의문의 베일을 한 겹씩 들춰내면서 오히려 퍼즐이 흐트러졌다. 조각들은 물론 소설을 따라가면 모두 주워낼 수 있을 테지만 떨어져 있는 자리를 봐야 한다. 그 자리가 얼마나 움푹 패였을지 짐작이 되었다.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던 한국인들이 몰락한 모습으로 그 파인 자리에서 속속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수키 김의 문장에 사로잡힌 나는 그녀의 담배연기 가득한 방에 들어가 있다.

조금 전에 영악하게도, 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의 이야기 방식은 오히려 어수룩하다. 수지에게 깊이 빠지게 하는 방식으로 조금 뭉툭한(섬세하지 못한) 면면이 있다. 행인지 불행인지 수지는 의문 속으로 묵묵히 걸어들어간다. 그 골목골목에서 의문의 조각들은 수지의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간다. 안간힘을 쓴 결과가 아니라 우연히 부딪혀 주워들어 전체의 그림을 맞추어낸다. 또 소설의 이야기 방식은 굳이 말하자면, 거듭 리플레이를 누른다. 현실에서 하나의 실마리에 부딪히면서 과거로 되돌아가고, 또다시 돌아나오기를 되풀이한다. 하지만 역시 어수룩하다, 는 표현도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마음을 잡아채고 빠뜨렸다가 오한이 들 즈음 건져내줘야 할 지점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수지 킴의 소설은 알다가도 모를 흡인력을 가졌다, 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영악함과 어수룩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소설의 주인공 수지의 직업은 통역사다. 하나의 말과 또 다른 말이 만나는 곳에 그녀가 있다. 말은 저마다 힘을 쥐고 있지만 똑같은 부피와 질량의 힘은 아니다. 그녀는 저울 위에서 확연하게 무게를 달리한 말과 말 사이에 서 있다. 그녀가 이민 1.5세대라는 사실은 기이한 우연이다. 수지는 뿌리 운운해야 하는 한국인인가, 작가의 마지막 맺음말처럼 곱디고운 미국의 딸인가.

통역사는 한숨과 흔들림까지 읽어낼 수 있다. 주인공 수지는 지친 몸으로 구석에 몰린 사람의 한국어를 거대한 몸피를 가진 국가의 영어로 옮겼다. 그리고 작가 수키 김은 너른 땅에서 외로이 쓰러지고 일어서는 사람들을 소설에 옮겼다. 소설에서는 몰락해가는 이민자들을 속으로 이미 죽은 사람,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설의 속에는 그들의 숨결과 떨림이 오롯이 살아있다. 낯선 곳에서 숨죽인 채 출렁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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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1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7-01-3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참말로 소설속에 풍덩 빠지지 않는 스타일같네요. 그러니 오한이 들 즈음 건져질 일도 없고...그리 냉정하고 냉철한 성격도 아닌데 유독 방관자적 입장으로 읽게 되더군요. 이안님을 퐁당퐁당 빠트리고 건져올린 책의 표지가 약간 부담스러우면서도 기억에 강하게 남는군요.^^

내가없는 이 안 2007-02-01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 님, 프랑스 요리가 제대로 느끼하다는 건 알고 있는데. ^^ 실제로 제 입맛은 매운 요리인데! 하하.

잉크냄새님, 제가 늘 그렇게 텀벙 빠지는 건 아니고요, 유독 그러는 데가 있어요. 예전엔 그걸 즐겼는데 요즘엔 부러 피하게 돼요. 헤, 우습게도 최근에 피하고 있는 드라마도 있어요. 한두 회를 보다가 저 사람은 왜 저 입장일까, 너무 생각하게 되어서 말이죠. 좋아하면서도 일부러 안 읽고 안 보는 거, 좀 웃기는데 그러고 있네요. ^^
 
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는 살아있음의 과정이다. 지금은 살아있지 않아도 살아있음의 과정을 지나왔다면, 역사가 있다. 하여, 그 누구에게나, 혹은 그 무엇에게나 역사는 있다. 어느 날 가까운 지인에게서 그녀의 아들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하는 일마다 안 풀리는 아들의 사주를 보러 다녔다, 고 했다. 어느 점집에서 들은 말은, 놀라웠다. 아들의 사주는 죽은 자의 사주라서 앞과 뒤가 죄 캄캄하다, 라고 했던가. 아직 죽지 않은 자의 미래를 보려다가 죽은 자의 캄캄함을 마주친 그녀는, 내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나는 점을 믿지도 않고 점을 본 적도 없지만, 죽은 자의 캄캄함을 들고 나온 여자의 깊고 어두운 한숨은 볼 수 있었다. 살아있음을 지워놓는 일이 얼마나 기막힌지 가슴이 조여왔다.

이 책의 제목은, 사랑의 역사다. 누구의 사랑이랄 것도 없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역사가 있듯이, 사람이 가슴으로 키우고 가슴으로 불태우고 가슴으로 묻는, 수많은 사랑에도 역사가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았던 자, 그의 사랑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그의 사랑은 존재하는 것인가. 작가는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그 이야기의 발자국을 짙은 안개 속에 남기며, 앞으로 걸어간다. 그래서 무엇이 존재하며,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지, 책 속에서 헤매게 된다. 존재가 불분명해지니 사랑도 안개 속에 파묻혀야 할 터인데, 웬걸 사랑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두툼한 안개 속에서 한점 불빛처럼 반짝인다. 뿌연 안개의 장막을 헤치고 나아가게 한다.

작가는 사랑의 역사, 라는 책을 던져놓고 천천히 걸어갔다. 이 책은 도대체 출판이 된 것일까, (정말 물난리에 원고를 통째 잃어버리고 만 것일까), 이 책을 쓴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혹 레오와 즈비는 동일인이 아닐까), 작가가 던져놓은 책에 나오는 알마와 세월을 뛰어넘어 열여섯된 소녀 알마는 어떤 관계일까... 물론 읽어가면서 실마리는 하나씩 풀렸다. 그런데 다 읽고 난 후에는 작가가 던진 다면체의 주사위(그걸 주사위라고 할 수 있다면)를 제대로 끼웠는지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여행길에 들고 나선 책을 집에 돌아와서도 이리저리 들춰보다가 덮었다. 내 가슴이 느낀 만큼, 도 내게는 무거웠다.

사랑의 역사가 깊어지고 어두워진 불씨는, 나치였다. 사랑의 자취는 존재를 지우려는 힘에 쫓겨 구불구불해졌고, 나는 따라가다가 심각하게 외로워지기를 되풀이했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했던 자의 사랑은 겨울 한복판에 선 나무처럼 맨들맨들하게 닳아졌다. 그걸 읽어내야 하는 시간이 슬펐다. 책을 덮고 내 옆의 사람에게 별로 귀엽지 않은 질문도 던져봤다. 당신은 내가 없으면 외로울까. 못되게도, 외로울 거야, 라고 말하길 기대했다. 분명한 사랑을 불분명한 존재 안에 가둬야 했던 레오가 나를 못되게 했다. 그는 사랑을 쫓아다니면서도 존재하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소설을 읽고 난 직후, 텔레비전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비극을 지켜봤다. 이스라엘 군인 2명이 납치되었고, 팔레스타인의 수많은 민간인이 죽어나갔고 또 다쳤다. 아이를 잃은 팔레스타인의 엄마들이 울부짖었다. (아이를 빼앗아가면 엄마는 무한정으로 용감해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나 보다. 더는 잃을 게 없는 사람은 결사의 힘을 갖게 되는 법.) 언제나 깡패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부시도 잠깐 비쳤다. 존재를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이해관계가 얽힌 힘이 휘젓기 때문이다. 한때 학살당한 자들이 지금은 학살을 한다. 그들은 지금 힘을 업었고, 힘을 얻었다. 그들만의 힘뿐이 아니라 외부의 힘이 그들을 더욱 악랄하게 할 것이다. 어느 평론가는 이 소설이 빛바래지는 이유를 거기서 들춰내기도 했다. 나는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작품이어야, 라는 표현에 끌려 이 소설을 찾아읽었다. 읽기 전에는 정치적, 이란 표현에 반감을 가졌고, 읽은 후에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른 표현을 찾지 못했다. 소설의 밑에서 어쩔 수 없이 꿈틀거리는 것은, 존재를 지우려했던 힘이며, 그 힘에 쓸려진 자들은 슬픈 사랑의 역사를 안고 살았다. 소설이 정치색을 드러내어 어느 한 군데의 힘을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야기의 중심에는 유태인의 슬픔이 깔렸다. 그들의 슬픔을 덮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은 팔레스타인의 슬픔이 마치 복제된 모양으로 따라올라오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다행히도 소설은 은근히 사랑의 역사, 그 힘을 기대하게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전혀 관련이 없지만 사랑의 역사를 쫓아왔던 두 사람이 만난다. 레오는 사랑을 잃었고, 알마는 엄마에게 새로운 사랑을 찾아주려고 했다. 존재는 희미해져도 사랑은 분명했다면, 언젠가 포개질 것이다. 그러리라 믿는다. 사랑의 역사가 지나온 길에서는 슬픔이 철벅거렸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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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헬퍼 2006-12-31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글은 여전하시군요. "소설의 밑에서 어쩔 수 없이 꿈틀거리는 것은, 존재를 지우려했던 힘이며, 그 힘에 쓸려진 자들은 슬픈 사랑의 역사를 안고 살았다".한해의 마지막 날인데, 혹시 나도 지난 '존재를 지우려 하지 않았나'생각해 봅니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받아들인다면 더 나은 세계가 되겠지요. 새해 복 많이 누리십시오.

내가없는 이 안 2007-01-01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밥헬퍼님! 잘 계셨지요? 한해 한해는 서둘러 지나가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늘 뒤로 처져요. 그렇다고 되돌아가서 다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데 말이죠. 한해를 보내면서 별로 마음이 가벼워지지 못했어요. 리뷰를 쓰면서 존재라는 걸 조금 짚어보다가 또 내치다가, 한해 끝에서 괜스레 수선을 떨었죠 뭐. 밥헬퍼님은 한해 알차게 보내셨을 것 같은데. ^^ 님도 올 한해 복 많이 누리시길요.

chaire 2007-01-02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지금 읽고 있는 중이에요. 남편인 조너선의 소설을 먼저 읽은 탓이겠지만, 부부가 너무 비슷하게 쓴다 싶더군요. 혹시, 이 부부는 침대맡에서 너무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조너선이 그랬듯이 니콜도 존재와 사랑의 미스터리에 대해 쓰고 있는 거 같은데, 그래서 어차피 비슷한 이야기일 것만 같아서, 아마 그래서 조너선의 것만큼 페이지가 팍팍 넘어가지는 않고 있는가 봐요. 하여간, 이 부부 재미나요.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소설을 바치고 있는 것만 봐도. 큭.

내가없는 이 안 2007-01-02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이레님, 그래요, 두 사람 좀 비슷하죠? 그런데 전 사랑의 역사가 훨씬 슬펐어요. 뭐 읽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도무지 슬퍼서 주체를 못하겠던걸요. 이런 소설을 쓰거나 읽는 게 옳을까, 하는 우스꽝스런 생각마저 들었어요. 일생을 쫓기며 살았고 자기의 자취를 지워가며 걸어야 했던 사람, 이라는 존재의식이 왜 그렇게 사무쳤는지 몰라요. 제가 그렇게 살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아무튼요, 서로에게 자신의 소설을 바칠 수 있는 연인이라는 건 부럽더군요. 카이레님, 우리 새해에도 잘 살아봐요~ ^^

icaru 2007-01-02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학살당한 자들이 지금은 학살을 한다. 음...
때문에, 이 소설이 빛바래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말이죠~~
"죽은 자의 사주"라는 말 정말 무서워요!! 홍상수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점쟁이가 김상경의 얼굴을 한번 딱 보고... 재수없는 사주라 사주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고.. 영화 보면서는 웃었는데..

2007-01-02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7-01-0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저도 그 영화 참 재밌었거든요. 특히 집에만 들어가면 도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추상미의 캐릭터, 너무 흥미롭지 않나요. 전 추상미의 그런 면을 조금(아니, 많이일지도 ^^) 닮아서 정말 웃음이 터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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