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나이 서른 중반.....

남편과는 이제 습관처럼..아무 의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고
시집올 때 심사숙고 발품팔아 장만해 온 살림살이들이 하나하나 명을 달리하고 있고
차력형제는 이제 저들끼리 혼자서 나가 놀 정도가 되어
한가롭게 커피 한잔 홀짝일만한 시간이 다소 허락되고
드라마 속의 바람나는 남편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고
뭐가 더 싸다고 하면 열심히 뛰어가 남보다 하나라도 더 집으면 그걸로 행복해하고
앞으로 남은 나의 인생을 어찌 살 것인가....
불투명한 미래를 기대와 불안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어느새 늘어버린 눈가의 주름을 보며
탤런트 김희애가 속삭이는 "얼굴선 바꿀 수 있어!"를 외쳐보지만....하하하.........과연....

내년에는 게로가 유치원에 간다.
드디어 오전에는 나만의 오롯한 시간이 생긴다.
막상 무얼 할건지 생각해봐도 마땅한 것은 없으면서도
막연히 뭔가 해야지...
뭔가 배워야지....꿈을 꾼다.

그런데
몸둥아리가 이제 나도 좀 쉬어야겠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습관처럼 편두통에 시달리고
조금만 무리해도 다리가 붓고
한달에 한번씩 시체처럼 드러눕게 하더니....

여성의 상징과 같은 그곳에 탈이 남으로써 드디어 내 몸을 돌아보게 만든다.

자궁에 물이 가득 들어차고 각종 덩어리들이 있다고 해서 급하게 들어간 수술
그냥 그런가 보다....아, 그래서 그렇게 아팠구나...그러면서 덤덤하게 받은 수술이었다.
여자들, 다 그렇지 뭐...암이 아닌게 다행이네....하면서.

그런데 정말 심각한 지경이었다고.
자칫하면 자궁을 일부 들어낼 수도 있었다고
이렇게 하고 어떻게 살았냐고 나흘이 지난 어제에서야 말을 한다.
조직검사가 나와봐야 아는 거지만 그전으로도 충분히 위험했다고.
이 말이야 의사들, 습관처럼 협박조처럼 하는 말이지....

옆탱이에게 내 자궁에서 빼낸 염증과 물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마눌, 이런 상태로 살았으니 앞으로 신경쓰시고 잘해주라고 했다나?
하하하, 그 의사선생님, 맘에 드네..
그래, 남자는 모르지.......
마눌이 달이면 달마다 하루이틀씩 고꾸라지고 자빠져도 그게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지...

살아온 만큼은 더 살고 싶다.
바무와 게로가 건강하게 자라서 자기의 인생을 꾸리고
그들을 빼어닮은 아이들이 손 벌리고 뛰어오는 것을 보고 싶고
우리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구석구석 보고 싶고
지구에는 또 얼마나 다양한 모습들이 있는지도 보고 싶고

욕심일까?

죽을 병도 아닌데 왜이리 사람이 센치해지는 걸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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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4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nda78 2004-10-24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세상에 크게 아프셨군요... ㅠ_ㅠ
그러신 줄도 모르고.. 밀키님이 요즘 뜸하시네.. 하며 조금 서운해했던 것이 너무 죄송스럽고 후회됩니다. 밀키님, 어서어서 완전히 회복하시고, 이전보다 더욱 건강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의사선생님이 꽤 좋으신 분같네요. 낭군님이 앞으로는 밀키님께 더 많은 관심을 보내주시고, 더 사랑해 주시기를. 밀키님, 화이팅!

마냐 2004-10-24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즘 뜸하시네...하고만 있었슴다. 어쩜 좋습니까...
몸이란 정직하게 신호를 보냅니다. 서른 중반, 너무 열심히 달려오신게 아닌지요.
다행히 좋은 의사선생님(음, 남편분께 그런 설명까지..^^) 만나셔서 좋게 해결하셨다 믿습니다.
저두 얼마전 혹이네 뭐네 하면서 암검사 받고 하다보니 퍽이나 센치하더이다.
그렇게 한번씩 내 몸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나 봅니다.
몸조리 잘 하시구...힘 내시구...조금 더 센치함을 즐기시다가....그냥 보내버리세요.

비로그인 2004-10-24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밀키웨이님..많이 놀랐어요. 이럴쑤가..그래도 천만다행입니다. 많이 고생하셨죠? 왜 안 보이실까, 했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제부터 더욱 몸에 신경쓰세요. 그리고 밝고 건강한 생각들만 하시기 바랍니다.

진/우맘 2004-10-24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여자들은 대체로 참을성이 너무 많은게 탈이예요. 생리통, 산고, 젖몸살....남자들은 모르는 고통을 일상처럼 겪고 나면 몸이 안 좋아 보내는 신호도 무심결에 넘기기 일쑤라니까요.
에이, 왜 그러셨어요. 괜히 눈물이 찔끔 납니다. 조직 검사 결과 깔끔하길 기원하며, 얼른 기운 차리세요. 맛난 거 사달라, 집안일 좀 해 달라 어리광도 피우면서....얼른, 회복하시길 바래요.

stella.K 2004-10-24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셨군요. 정말 왜 요즘 뜸하실까 궁금했었어요. 그냥 저는 저나름대로, 애들키우고 하다보면 바쁘니가 그렇겠지 싶었는데...저도 제 주위의 친구들이 이쯤돼서 한번씩 다 탈들이 나더라구요. 정말 가정 건사한다는 게 보통 힘드는 일이 아닌가 봐요.
님, 철없는 소리하죠. 저도 님과 같은 30대인데...
건강하십시오. 건강하셔서 손주도 보시고, 당장은 멋지게 차려입으시고 가을 햇빛 받으러 거리로 나가 보세요. 영화 한편도 보시고, 카페에 들러 에스프레소 커피도 마셔보구요.
기운 내십시오. 행복하시길...^^

날개 2004-10-24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런 글 읽으면, 이젠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저 또한 서른 중반을 넘어선 나이인지라, 여기저기 삐걱거리는게 드러나더군요.. 뒤늦게서야 운동한답시고 설친다지요..ㅡ.ㅜ
빠른 쾌유 바랍니다.. 맛난거 많이 드시고, 푹 쉬세요..


미설 2004-10-24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일들이 있었군요.. 글은 남기지 않았지만 돌아오시기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몸조리 열심히 하시고 하루빨리 쾌차하세요..

내가없는 이 안 2004-10-25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키웨이님 지금은 좀 회복되셨나요? 얼른 벌떡 일어나셔서 님의 유쾌한 모습을 글로도 많이 볼 수 있음 좋겠어요. 올해 마무리 힘들게 하셨으니 좋은 일만 생기길!

sayonara 2004-10-2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운내시죠. 기운. 아직 중년의 위기도 아니구.. 기운... ^_^

하얀마녀 2004-10-2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는 저도 이렇게 놀랐는데 밀키웨이님은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지금은 좀 어떠신가요?

2004-11-04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아지가 된 앤트 보림어린이문고
베치 바이어스 지음, 마르크 시몽 그림, 지혜연 옮김 / 보림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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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베치 바이어스는 [검은 여우]라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입니다. 이 작가의 특징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고 감탄하는 것이 간결하고도 명확한 문체, 그러면서도 섬세하게 포착되어지는 감정묘사를 들수 있는데 이 책에서도 이런 베치 바이어스의 특징은 여과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엉뚱하기 그지없는 동생 앤트와 그를 바라보는 따뜻한 형의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대화체 문장으로 짤막짤막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마치 그들이 지금 제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이 생생하게 와닿아요.

그 나이 또래에 걸맞는 풍부하고 재미있는 상상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앤트, 이제는 그런 상상의 세계에 멀어지긴 했지만 그런 앤트를 충분히 이해하고 따스하게 감싸안는  형의 마음이 순식간에 이들의 이야기에 빠져버리게 하고 웃어제끼게 만듭니다.
맞아 맞아, 나도 이랬는데...
하하하, 우리 애들도 이러는데....
이런 공감대를 발휘하면서 말이죠.

거기에 표지에서부터 눈길을 확 잡아끄는 것이 마르크 시몽의 일러스트입니다.
'강아지 흉내를 내다니....바보..멍청이...근데 저런 바보같은 녀석을 엄마는 그저 저렇게 상냥한 표정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다니... 힝~~' 하면서 저만치 떨어져 샐쭉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형의 저 얼굴은 너무나도 익숙하네요 ^^
곰놀이를 하자고 먼저 해놓고는 형이 내는 곰소리가 무서워 정색을 하고 있다가도 형이 나오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큰소리 빵빵 치는 앤트의 사랑스러움이며 늦은 밤 창밖을 보아달라는 동생의 요구에 짜증이 나서 눈썹이 찡그려진 형의 얼굴, 도끼를 들고 다니는 소방관과 같이 마르크 시몽의 일러스트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부드럽게 받쳐주면서도 그 하나하나가 생동감있게 말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어린이문고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4살짜리 동생이 귀업고 이쁘기는 하지만 다소 귀찮은 7살 아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답니다. 자신의 경험과 맞물리는 부분을 찾아내기라도 하는지 책을 읽어주는 내내 어찌나 말도 많고 질문도 많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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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서 나온 할머니 보림문학선 2
이바 프로하스코바 지음, 마리온 괴델트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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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앗...결국은.....
그러나!
그래,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것은 바로 이것이지....
하지만 오늘밤 침대에서 조금은 울지 않을까?
할머니와의 기억들로 인해서 말이지......

책을 덮으며 마음 속을 오간 생각들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존재.
그로 인해 평범하고 지루하던 일상이 조금은 뒤죽박죽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근사한, 너무 근사하고 너무 멋져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그런 나만의 보물과도 같은 그 어떤 존재에 대한 환타지적인 이야기는 처음 보는 낯선 이야기구조는 아닙니다.

하지만 [알에서 나온 할머니]가 갖는 신선함은 그 할머니가 아~~~주 귀엽기만 하거나 100% 착하기만 한 할머니가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데다가 몸도 약하고 거기에 고집까지도 센 그런 할머니라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주인공인 엘리아스가 조금이라도 의지할만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어요. 오히려 입장이 반대로 바뀌었으니까요.
알에서 나온 사람이 할머니가 아니라 조그만 아기였다면 아마......덜 재미있었을 거 같아요.
아기란 원래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 정형화되어 있으니까요 ^^
이미 충분히 동생들로 인해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알에서 나온 아기]와 같은 이야기는 덜 흥미로울 거 같지 않아요? ^^

엘리아스가 알에서 나온 할머니를 갖게 되면서 더 신이 나고 더 행복했던 것은 현재의 상황이 엘리아스의 부모님들로부터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보드게임을 하고 도미노게임, 공놀이 같은 자신의 당연한 일거리를 전혀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온전히 전심을 다해 보살펴야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사랑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 사랑을 주는 반대상황이 된 것은 오히려 엘리아스를 행복하게 만들어요. 그러기에 할머니가 쓸 물건들을 구하거나 방을 깨끗이 치우고 잠을 자고 싶지만 일어나야 하는 등의 일들을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됩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 이야기가 어떻게 결말지어 질 것인가 내심 두려웠습니다.
할머니가 계속 머물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 떠난다면 어디로? 언제?
저의 이런 두려움을 눈치라도 챘는지 작가는 어딘가에 머요할머니와 같은 날개달린 작은 할머니가 또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줍니다. 어느날 배달된 낯선 소포를 통해서요.
또 머요할머니가 자신이 엘리아스와 다름을 알게 되는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달랑 혼자인 할머니의 외로움을 슬며시 내보여줍니다.

미운 오리에서 백조가 되고 싶어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대변하듯 하늘로 떠올라야 하는데 날지 못하는 안경잡이 연.
할머니는 그 연을 타고 백조가 되고자 날아오릅니다. 그리곤 안녕......
잠잘 때조차도 절대 벗지 않던 구두 한짝을 남겨주고 말이죠.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도 있듯이 머요 할머니와의 이별은 분명 굉장히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엘리아스는 훌쩍 성장을 했네요. 놀 줄 모르는 아빠와 엄마를 기다려주기로 하는 인내심을 갖게도 되었구요.
또 할머니와의 이별을 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으로 기다릴 수도 있게 됩니다.
제일 좋은 것은 공주엄마와 게임의 달인 아빠가 엘리아스와 함께 따뜻한 토요일 오후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니까요.
알에서 나온 할머니 열명보다 더 좋은 것은 바로 엄마 아빠이니까요.

혹시 내 아이도 머요 할머니를 돌보고 있지 않을까요?
얼른 가서 살며시 들여다 보고 와야겠습니다.
방이 지나치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침대 근처에 커다란 상자나 불자동차가 놓여있는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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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10-15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 책 궁금해요- 서점가서 들춰 봐야겠네요. 밀키님, 반가워요-

내가없는 이 안 2004-10-15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재밌지요? 글의 완결성도 제법 느껴지고 구성도 탄탄하고... 게다가 의미를 탱탱하게 집어넣은 판타지 동화잖아요. 저는 좀 반성이 많이 되었어요. 어째 우리집 얘기가 거기 들어가 있나 싶기도 하고... ㅠ.ㅠ 밀키웨이님의 동화책이나 그림책 리뷰를 읽다보면 천천히 감정 넣어가며 목소리도 바꿔가며 동화구연해주시는 느낌이에요. 책도 재미있지만 리뷰도 참 재미있네요. ^^
 

 

 

 

 

 

제목은 다소 진부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이라니... 이 얼마나 진부하고 그 내용이 뭔지 대충 짐작이 갈 만하다라고 판단되어지는 그런 제목입니까? 겉표지에 그려진 그림, 빨간 나무열매가 조롱조롱 열린 나뭇가지 사이로 당나귀를 탄 빨간 바지의 꼬마와 그의 아버지의 정겨운 모습...
거기에 첫내용 조차도 파구만 마을이 환한 꽃동산이 되었다는 봄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이 책을 접했다면 바바라 쿠니의 [달구지를 끌고]나 [바구니 달]과 같은 그런 그림책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분위기이지만 복선이 계속 깔려져 갑니다.
자두와 버찌, 살구열매를 늘 함께 거둬들이던 형이 이번 여름에는 군인이 되어 전쟁터에 나갔다, 전쟁터에서 한쪽다리를 잃은 상이용사 아저씨, 남쪽지방에서는 전투가 꽤 심하다는 소식....등등
서정적이고 한가하기 그지 없는 시골마을 장터에서 전쟁의 그림자가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버찌를 다 팔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과일가게 아저씨에 대한 미안함, 파구만 버찌가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자랑스러움, 아빠와 먹으려고 남겨두는 그런 사랑스러움...등 처음으로 장터에 나와 버찌를 파는 야모로 인해 그런 어두움은 금세 묻혀버리고 맙니다.

거기에 야모의 가족은 처음으로 새끼양을 가지게 됩니다. 예전에 우리네 시골에서 송아지 한마리 장만하는 것이 큰 기쁨이고 자랑거리이듯 야모에게 있어서 새끼양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새끼양의 이름을 '봄'이라는 뜻의 '바할'로 지어주면서 야모의 가족들은 온통 희망과 즐거움으로 벅차 오릅니다.

그. 러. 나.

전쟁은 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리고 어제까지의 평온하고 일상적인 날들을 한순간 잿더미로 만든다는 것을 이 책은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간단함과 명료함을 접하는 순간, 영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기법처럼 일순 제 머리속이 하얗게 빛이 바래지는 그런 충격으로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비록 전쟁의 그림자가 있었지만 여전히 삶은 아름답고 평온하게 지속되고 있었건만....봄이 오면 더 행복해지고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은 전쟁 앞에서 이렇게 허물어지는구나....충격을 받았습니다.

제목이 그랬기에....더 그랬겠지요. 진부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 그 제목이 이렇게 가슴아파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내년에는 큰애가 학교에 들어가니 방을 이렇게 좀 꾸며보고.... 몇년쯤 뒤엔 지금보다 좀더 넓은 평수로 이사를 가고..... 애들이 좀 컸으니 나도 이제 나만의 자기발전을 이루어보고......아주 소박하지....하하하' 이렇게 내일을 낙관적이고 희망적으로 꿈꾸는데 이 모든 것들이 일순간 다 사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워졌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왜 전쟁을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해야만 하는 것인지... 이 책은 전쟁으로 인한 모습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더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꿋꿋이 일어난 이야기류에 익숙해진 나머지 전쟁이 마치 고요한 연못에 풍덩 던져진 돌맹이와 같다고만 생각해 왔던 듯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그전처럼 고요해진 연못의 표면과 같아질 것이라구요. 그렇게 전쟁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왔었나 봅니다.

하지만 전쟁은 끝끝내 엄청난 흉터를 남기겠지요.
지금은 아무도 없는 파구만 마을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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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0-12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저런 책은 언제쯤 의미가 있을런지 여쭤봅니다.

밀키웨이 2004-10-12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전까지 마냐님의 궁시렁을 심각~~~ ^^ 하게 읽고 있었는데 하하하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는 아직 보여주지 않아도 좋을 듯 싶습니다.
그림책이라는 한계(?)가 있다보니 엄마들이 연령대를 좀 낮게 잡으실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이제 자신의 생각이 구체화되는 시기의 아이들....초등학교 3학년? 이후에 심각하게 전쟁에 대한 독서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싶어요.
근데..제가 뭐 압니까?
이제 겨우 삐약삐약거리는 7년차 엄마인걸요...
더구나 독서지도에 대해서는 깨갱~~~!! 이옵니다....^^;;;;;;

호랑녀 2004-10-1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학교 아이 가지신 선생님께 이 책을 권했더랬습니다 ㅠㅠ
선생님은 이 책을 읽고 우셨다고 쪽지를 보내오셨네요.

마냐 2004-10-13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밀키님, 지나친 겸손 모드! ㅋㅋ 고마워요. 초딩 3년이면..음, 천천히 고민해도 되겠군요. ^^
 
거미줄 미래그림책 31
후지카와 히데유키 그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글, 길지연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욕심 부리지 말아야 한다, 욕심 부리면 안된다...
이 말처럼 어려서부터 듣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계속 듣는 그런 말이 없을 겁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서부터 머리가 하얀 어르신들까지 말이죠.

“왜 욕심 부리면 안되는데요?”
동생에게 양보해라, 욕심부리지 말아라..는 잔소리에 불만이 쌓인 큰아이가 입을 쑥 내밀고 물어왔던 질문입니다.
“응? 그건 말이지.....욕심 부리면 엄마한테 더 혼나니까. 그리고 넌 형이잖아”
아....이 얼마나 조리에 맞지 않고 설득력 없는 대답입니까?

정말 사람이 왜 욕심을 부리면 안되는 걸까요?
사실 이 질문에 대해 아이의 마음에 명쾌하게 와닿게 대답해주지를 못하겠어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그림책 [거미줄]은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욕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또 욕심을 부렸더니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책을 손에 잡았을 때 무엇보다 표지에 그려진 남자의 쥐새끼같이 쪼그맣고 사나운 눈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그 뾰죽한 턱선이며... 잔뜩 찌푸려진 이맛살.......
부처님조차도 뾰죽한 턱선을 지닌 데다가 온통 산발한 머리의 사람들....지옥을 나타내는 어둡고 칙칙한 색채가 주는 낯선 느낌이 단박에 확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평생 나쁜 짓만 하다가 딱 한번!
거미에 대해 발동한 측은지심으로 인해 지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그렇게 얻은 기회이건만.....
그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리다니....
그게 다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답니다.
아이가 보기에는 그 거미줄은 진짜로 처음부터 부처님이 칸다타에게 주신 것이고 “야 이놈들아 이 거미줄은 내 거란 말이야. 왜 허락도 없이 올라오는 거야. 내려가, 내려가라고!” 소리친 칸다타의 외침이 전~~혀 틀린 것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왜 끊어져서 다시 지옥으로 쳐박히게 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쳐다보았답니다. 하지만 만일 칸다타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질문을 했더니 아하~~~ 하며 납득을 하였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은 한번도 착한 일을 한 적이 없어?” 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칸다타가 일생 저지른 나쁜 짓이 많고 많건만 보잘 것 없는 거미를 살려준 대가로 구원의 기회를 얻는다는 불교의 교리(?)가 저울추의 논리에 익숙한 저와 같은 어른들에게는 다소 불공평해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뭔가 하나라도 (그게 아무리 하찮은 일일지라도) 착한 일을 했으면 그 대가가 있다’ 라고 단순하게 이해하더라구요.

아래에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가 다시 지옥으로 곤두박질치는 야단법석이 벌어지고 있건만 아무 일 없이 무심하기 그지 없는 평화로움이 지속되는 극락의 모습으로 맺는 그림책의 마지막은 허...참.....허무하기 그지 없구만...이런 느낌마저 주었는데 이게 불교적인 것일까요?

기존에 익숙하게 보아왔던 서양의 그림책, 즉 기독교적인 관점(서양의 문화 자체가 기독교적이다 보니 비록 작가가 기독교신자가 아니더라도 그 기본적인 문화적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보여지므로)이 아닌 이러한 결말이 신선하게 다가왔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이러한 다양한 시각..다양한 문화의 체험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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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0-10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매우 독특한 그림책이네요. 사실 전요, 종교란 일치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실제로 종교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분들은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요즘 너무 심각하게 망가지는 종교의 모습을 보면 미워죽겠어요. ^^ 저도 이 그림책 꼭 기억해뒀다 보려구요.

깍두기 2004-10-10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심을 내면 '왜' 안되는가.....진짜 그 문제에 있어서 '왜'를 물어본 적은 없는 것 같군요. 당연히 안된다고만 생각하고....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밀키님 오랜만, 반가워요^^

반딧불,, 2004-10-10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생담 중 하나지요.
불교이야기들도 좋은 것들이 많이 있고,
읽다보면 어쩐지 기독교적인 내용과도 많이 겹친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결국 종교란 어쩌면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주제넘지요?

뚱글녀 2004-12-03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책이..아이책으로도 있군요.. 덕분에 좋은 책 알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