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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창고로 가는 길 - 박물관 기행 산문
신현림 글, 사진 / 마음산책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누구에게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고이 간직하고 싶은 그런 이야기거리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작은 일임에도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던 가슴저림이 있을 것이고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훈훈해지는 그런 기억이 있을 겁니다.
시간창고에는 그런 마음편린들이 놓여있습니다.
그곳에는 오랜 시간동안 소박하게 우리와 함께 해왔던 기억들이, 생활의 손때가 묻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런 우리네의 오래전 일들을 너무나도 따뜻하고 정감어리게 보아내리는 시인의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
박물관...하면 경복궁에 위치한 국립박물관 밖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학생시절, 봄소풍으로....백일장으로.. 그렇게 밖에 가본 적이 없는 박물관.
박물관은 제게는 그냥 오래전 양반님네들의 유물들만이 줄줄줄 놓여있고 거기에 있는 물건들이야 책을 통해 너무나도 익숙한 것들인데 뭐....하고 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교육적 사명감에 불타오르다 보니 박물관에는 국립박물관 말고도 꽤나 많은 사립박물관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전에 그렇게 꽤나 하품나고 지루하던 박물관이 이제는 열렬히 사모하여 찾아봐야 할 그런 교육적인 장소로 이미지를 달리 하여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 둘...찾아다니기 시작한 박물관....
제게는 여전히 하품나고 힘들고 지루한 곳이었습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데다가 그저 여기저기 신나게 뛰어다니는데 급급한 너댓살 아이를 놓고 "여기 좀 봐봐~~" "어머나~~ 이게 **래" 자뭇 흥분한 하이톤의 목소리로 아이의 주의를 끌어보려 노력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기 일쑤...
둘째가 생기면서는 더이상 그런 열성교육도 지쳤더랬지요.
그러다가 표지에 마음이 쏠려서...제목에 황홀해져서....작가가 신뢰가 가기에....구입을 한 것인데 솔직히 구매의도, 그 어딘가에는 어떻게 하든 다시 한번 불타는 교육의지로 박물관에 가보자...라는 심리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박물관이 대충 무엇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 말고는 그노무 현장학습을 위한 투철한 교육정신에 입각해 본다면 이 책은 빵점입니다.
신현림이 두발로 열심히 뛰어다니며 방문한 박물관...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열어제꼈고 그렇기에 쏟아져나오는 가감없는 그녀의 기억들은 자칫 공감을 얻기에는 지나치게 개인적인지도 모릅니다.
방문한 박물관과는 얼핏 아무 상관이 없어보이는 글들...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진의 코멘트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에 이 책이 그냥 다른 제목으로...다른 부제를 달고 나왔더라면 내가 골랐을까?
또 이 책을 보고 느끼게 되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개인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 또한 그 제목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만약에...이 책이 그냥 다른 제목으로...신현림 개인 수필집이라는 타이틀로 나왔더라면 그녀의 걷잡을 수 없이 달음질쳐 가는 온갖 생각의 잔가지들을 너그러히 보아지지 않았을까 싶으니 아....그녀에게 박물관은 다만 쉬는 곳이었겠구나....싶습니다.
늘 바삐 움직이던 발길이 한박자씩..두박자씩...천천히 갈 수 있는 곳...
머리 속에...가슴 속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들을 여과없이 모두 토해낼 수 있는 그런 숨통이었겠구나...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제는 박물관에 쉬러 갑니다.
그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아서... 햇살이 잘 들어오지 않아 차가와진 공기를 맡으러... 바깥의 소음들이 적당히 차단된 그 밀실과도 같은 곳의 조용함을 만끽하러 갑니다.
이제는 두 아들에게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이고 여기에 놓인 것들은 이러이러한 데 쓰였다라고 목터지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활동을 즐길 수 있으면 같이 어우러져서 활동을 하고
눈으로 즐겨야 하는 곳이면 그냥 하나를 보더라도 오래오래 보고
탁 트인 마당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면 한동안 그 마당에서 뛰어 놀다 옵니다.
박물관이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즐거운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