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시간을 아세요? 베틀북 그림책 49
안느 에르보 글 그림, 이경혜 옮김 / 베틀북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저녁을 먹고 나서 산책을 나갑니다.
엄마와 두 아들은 걷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때로 큰 아이은 자전거를 타고 작은 아이는 씽씽카를 타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저는 자판기에서 뽑은 차 한잔을 들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벤치에 앉아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는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기도 하고 점점 짙어져가는 하늘을 보기도 하다가 하늘에 별이 반짝이기 시작하면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 어슴푸레하고 정적이 깃든 시간은 참으로 짧기만 합니다.
주위가 점점 어두워져서 참으로 짧아서 아쉽기 그지 없는 그 어스름한 시간.
한낮의 소란스러움이 살짝 가라앉은...그러나 툭 건드리면 다시 낮 동안의 즐거움이 와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그 파란 시간을 저는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어서 집으로 돌아가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또 뭔가를 바삐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지만
그 파란 시간에는 걸음도 천천히 걸어야 하고 이야기도 나직나직해야 할 것 같아집니다.

제게 이런 여유로움을 주는 것은 이 파란 시간의 주인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낮의 태양왕도 아니고 쌀쌀맞고 차가운 밤의 여왕도 아닌 머리는 한낮의 빛으로 가득하고 심장은 한밤의 어둠으로 물들은 채 한손엔 작은 책을 들고 머리엔 골무를 쓰고서 그저 높은 장대발을 조용히 걷는 파란 시간이기 때문일 겁니다.

아름다운 새벽공주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가슴을 부여잡고 책갈피에 조심스레 끼워넣은 흰장미 한송이를 소중하게 바라보는 그 파란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의 주인이기 때문일 겁니다. 태양왕과 밤의 여왕이 옥신각신 싸우는 틈에 살짝 끼어들어서 한손에 든 자신의 책 이야기를 들려주는 파란 시간이 주인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의 아름다움을 이 그림책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제 아이에게 한단어로 말해줄 수 있었을까?

어느날엔가 저보다 한발씩 앞서 달려가는 그림자를 발견한 아이는 "아, 엄마! 파란 시간이다!"라고 외쳤답니다.
"엄마, 파란 시간이 장대발을 신어서 키가 크~~잖아. 그래서 이렇게 우리 그림자도 긴~~가봐. 그렇지 않아?"

파란 시간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정말 이리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 아름다운 단어를 아이가 알고 아이가 사용하고 아이가 즐긴다는 것이 또한 그렇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림책이 그래서 좋습니다. 어른에게는 어른들만의 즐거움으로...아이에게는 아이만의 느낌으로... 같이 그림책을 읽은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그 느낌의 은밀한 즐거움. 그것은 제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지게 된 아주 특별한 행복이랍니다.

어느 때는 우리들만의 이런 즐거움에 아빠가 미처 동참하지 못해서 얼마나 아쉬운지 모릅니다.
우리끼리 소근소근대며 낄낄대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말을 이어갈 때 그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아빠를 보면 왠지 미안해지면서 아쉽답니다.
그래서 아빠들이 같이 그림책을 보면 참 좋을텐데...생각을 하지요.


책을 펼치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으며 음미해보는 아름다운 글귀....

파란 시간을 아세요.
불을 켜기엔 아직 환하고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하기엔 조금 어두운 시간.
읽던 책을 그대로 펼쳐 놓은 채
생각에 잠기고 꿈을 꾸는 시간.
펼친 책장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시간.

땅거미 질 무렵의 어슴푸레한 시간.
그림자는 빛나고 땅은 어둡고 하늘은 아직 밝은 시간.
온 세상이 파랗게 물드는 시간.
세상 모든 것들이 조용히 밤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
하늘 끝자락이 붉어지고 태양은 멀리 어딘가로 자러 가는 시간.

늘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가
돌아갈 때만 조금 달라지는 슬프고 아름다운 시간.

그런 파란 시간을 정말 아세요? 

정말로 이런 파란 시간을 아세요?
오늘 당신의 파란 시간에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긴 장대발을 신고 밤의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파란 시간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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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eschen 2004-07-26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느 에르보 넘 좋아요.
아직은 이넘보다 제가 더 좋아하지만, 언젠가 아이도 그녀의 책을 보며 탄성을 지를
그날을 아직은 기대해봅니다.
최근에 '부엉이와 보름달'을 보고도 그랬어요.
그럴땐 아이가 얼른 컸음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
이 책, 잊지않고 기억해뒀다 다음에 꼭 보고싶네요.
 
키아바의 미소 미래그림책 3
칼 노락 글, 루이 조스 그림, 곽노경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7살 아이들을 보고 흔히 미운 7살이라고 합니다.
자아가 형성되어 가면서 유아기에서 이제 좀더 성숙한 아동기로 접어드는 시기이기 때문이라네요.
본인 생각에는 자기가 다 컸다고 느끼기 때문에 어른들의 말을 흉내내길 좋아하고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답니다.
거기다 어찌나 뺀질뺀질거리고 까부는지...
그전까지는 제가 눈만 부라려도 대충 눈치살피던 녀석이 이제는 그 눈부라림을 쫒아하기도 하고 혼내려는 엄마에게 장난을 치기도 하는 등...요즘 아주 제게 호야 녀석의 7살이 힘들기만 합니다.

얼마전 야단 맞을 행동을 했기에 대뜸 "*호야!" 이름부터 빽 내지르고 "이리 왓!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 슬금슬글 제게 다가와서는 글쎄....
실실 웃지 않겠어요?
지금 엄마는 열이 받아 씩씩거리며 한바탕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거기다 얼굴 들이대며 "엄마~~~ 아잉~~~ 엄마~~~~" 애교를 부리면서 계속 실실 웃는 겁니다.
"야, 너 지금 뭐해?" 그래도 계속 실실....
이 녀석이 미쳤나?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싶어 "너 그런다고 엄마가 너 안 혼낼 줄 알아? 엄마, 약올려?" 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녀석의 얼굴을 보니 피식 웃음이 아니 나올 수 없더만요.
상상해보세요, 나오지 않는 억지 웃음을 얼굴에 만드느라 눈꼬리며 입가에 잔뜩 주름잡힌 그 하회탈 같은 7살 아이의 웃음어린 얼굴 말입니다.
기가 막혀서 피식 웃으며  "너, 지금 뭐 하는건대?" 한풀 꺾인 목소리로 물으니
아주 뻐기는 듯한 모습으로 "나, 키아바야" 그러는 겁니다.

예, 무서운 푹풍을 물리친 바로 그 키아바의 미소가 호야의 얼굴에 서려 있었답니다.
의기양양하게 저만치 가는 호야의 뒷모습에는 역시, 미소의 힘은 대단해! 하고 써있는 듯 하더군요 ^^ 
이 절대절명의 순간, 그런 걸 생각해 낸 나는 역시 똑똑해! 하는 으쓱으쓱함도 같이 곁들여서 말이죠.
허...참...싶으면서도 그 모습이 왠지 너무너무 귀여워서 그냥 같이 웃어주었답니다.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야, 김**, 너 많이 컸다!" 이 한마디를 던져 주었지요 ^^

웃음이 힘을 갖는 건 웃음 자체가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웃음으로 인해 상대방의 팽팽해진 그 긴장감이 일시에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일 거예요.
한번 무너진 이후에는 도저히 다시 세울 수도 없고 다시 세우기도 민망한 그런 거 있잖아요 ^^

그런 경험, 없으세요?
남편이랑 서로 허리에 양손 짚고 노려보며 씩씩대고 있는데 갑자기 그 사람의 코가 심하게 벌렁거린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픽~! 하고 웃음이 나오면서 무릎에 힘이 쭉 빠져버리고
또 제가 그렇게 웃고 나니 그 분위기마저 갑자기 느슨해지고 남편도 덩달아 피식 웃던 그런 경험.
한번 그렇게 웃고 나면 아무리 다시 허리에 손을 올리고 눈을 치켜올리며 쫙 째려보고  목소리톤을 올리려고 해도 잘 안되잖아요. 말을 꺼내는 목소리도 어느새 나긋나긋해져 있구요.

그게 바로 키아바의 미소랍니다 ^^
강함을 강하게 대하지 않고 부드러움으로 대함으로써 이길 수 있었던 키아바의 미소.
그 미소의 힘을 오늘 아이와 함께 나누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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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1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7-21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했어, 베니!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54
바르브로 린드그렌 지음, 최선경 옮김, 울루프 란드스트룀 그림 / 보림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아이들에게 동생은 어떤 존재일까요?
동생이 없는 아이들은 종종 엄마를 졸라댑니다.
"엄마, 나도 동생 하나 만들어줘요"

하지만 막상 동생이라는 존재는 그리 만만한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얼마전 큰 아이가 친구들과 하는 대화를 듣다 보니 참 웃음이 났습니다.
7살 호야의 친구들이 놀러왔더랬습니다.
그 틈바구니에 끼어서 4살 수아는 저도 한번 놀아보겠다고 낑낑거려 보지만 형들에게 수아는 저리 가주었으면 좋겠는 그런 귀찮은 존재이지요.
계속되는 수아의 방해공작에 지겨워진 호야, "나는 정말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어"
똑같이 남동생이 있는 한 친구가 대꾸합니다. "나도! 나도! 동생들은 정말 귀찮지 않냐?"
그러자 9살 형아가 있는 친구가 말합니다. "나는 내가 형이었으면 좋겠어! 내 맘대로 괴롭혀보게."

이 아이들의 대화처럼 어린 아이들에게 형제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면서도 아직은 그 관계맺음이 어색한 그런 사이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그런 존재이면서
동시에 원하지 않는 책임까지 져야 하는 그런 존재이지요.

베니는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동생이 드디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동생은 앙앙 시끄럽게 울기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왠일?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대기만 하는 아기에게 엄마는 야단을 치는 것이 아니라 맛있어 보이는 고무젖꼭지를 주시는 겁니다.
베니도 갖고 싶은데 엄마는 형아는 아가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주시지 않지요. 이제 베니는 동생은 별로고 고무젖꼭지가 너무너무 갖고 싶은 거예요.

드디어 베니는 깜찍한 꾀를 생각해냈어요.
신나게 달려가는 베니. 아이들이 놀려대는 소리에도 개의치 않습니다.
베니도 아직 어리니깐요.

"나도! 나도!" 이 말을 제일 많이 듣는 거 같아요.
나도 안아 줘! 업어 줘!
나도 뽀뽀해 줘!
나도 찌찌 줘!
나도 먹을래!
나도 재워 줘!

어제까지 혼자서 잘 하던 일들을 갑자기 하기 싫다고, 못한다고 떼를 씁니다. 그건 나도 아직 아기여요, 나도 돌봐주세요. 라고 말하는 큰 아이들의 목소리겠지요?
잠이 든 큰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져주고 손을 잡아보면 어찌나 그 손이 작고 여린지....
아직 이 녀석도 어린데....하는 안쓰러움이 왈칵 솟아오른답니다.
하지만 그건 잠을 자고 있는 천사같은 아이를 볼 때 그 때 잠시잠깐이지요. 낮에 두 녀석이 치고 받고 울고 불고 그러면 말입니다.
정말.....할 말이 없습니다.
부모로서 참 어렵다고 느껴지는 때가 어느 때냐 하면 두 아이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줄 때입니다.
분명 작은 아이가 잘못했는데도 불구하고 큰 아이를 야단칠 때가 많습니다.
큰 아이야 윽박지르고 야단치면 되지만 작은 아이에게는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게 엄마니까요.

하지만 베니의 엄마는 달랐어요.
엄마는 분명히 베니가 왜 아기를 데리고 나가는지 아셨을 거예요.
그리고 베니가 저만치 가있는 동안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들으셨을 거예요.
하지만 나와서 아기를 달래지도 않고 베니를 야단치지도 않았어요.
그냥 아무 것도 모른 체 오히려 베니에게 칭찬을 해줍니다.

이건 아주 사소한 일인 거 같고 누가 그 정도 못해?라고 하실 분이 있으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잘 안됩니다.
저였다면 아기가 우는 소리가 났을 때 얼른 뛰어가서 데리고 들어와 아기를 달래면서 잠시 후에 들어올 큰 아이를 어떻게 혼내줄까 속으로 벼르고 벼르지요.
큰아이가 들어오기만 하면 그냥 다다다~~~!! 쏘아붙이며 너는 정신이 있는 놈이냐, 그게 네 것이냐? 네가 애기야? 뭐라뭐라뭐라~~@@@@ 그러겠지요.

그렇게 하면 아마도 큰 아이는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 때문에 무지하게 속상할 거예요.
그리곤 저 놈 때문에 내가 혼났어! 라는 생각도 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베니는 아마도 오히려 엄마와 동생에게 미안해질 거예요.
그리고 동생의 고무젖꼭지가 그리 맛있고 좋은 게 아니라는 것도 함께 깨달았을 겁니다.

그림이 어찌나 깔끔하면서도 귀여운지....
울루프 롼드스트룀의 그림의 특징은 한마디로 말해서 "눈으로 말해요"입니다. 베니의 온갖 감정들이 고스란히 그 동그랗고 작은 눈만 봐도 금새 알 수 있답니다.
특히나 동생의 고무젖꼭지가 부러워서 쳐다보는 베니의 눈을 보세요. 단지 이마의 작은 주름 두개와 내리깔은 눈만으로 이런 표정이 만들어지는군요 ^^

호야는 이 책을 보면서 어찌나 공감을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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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죠 2004-07-11 0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마치 동화같아요. 저는 잘했어 베니 책, 좀 뒀다 읽을래요. 왜냐면 밀키님 리뷰가 더 맘에 드니까 :)
저 추천했어요,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녜?

tnr830 2004-07-11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
리뷰가 동화같다는 말에 저두 동감이예요^^*

밀키웨이 2004-07-11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고맙습니다.
동화같다니..기분이 해피해피해집니다.
하지만 늘 동화같이 사시는 분들은 두분이시잖아요.
특히 오즈마님, 오즈마님의 방명록을 보다가 저....좌절했습니다.

책읽는나무 2004-07-13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밀키님의 글솜씨에 푸욱 빠져들것이라고 생각합니다..ㅎㅎ
저도 밀키님의 글이 좋아요!!

그리고 전....형제싸움에 대한 중심잡기라는 내용의 책이란것이 참 마음에 드네요!!...사실 엄마들은 두아이가 싸우면....바로 큰아이를 야단치는 경우가 흔하잖아요!!...첫애가 좀더 자란 아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넌 형(오빠)이 돼가지구선~~".."넌 누나(언니)가 돼가지구선~~"..
ㅡ.ㅡ;;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읽으면 많이 깨달을수 있는 책일것 같네요...^^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두심이 2004-07-2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보관함을 압박하시는 밀키웨이님! 주소남겨주시와요~
 
비 오는 건 싫어! 호호할머니의 기발한 이야기 5
사토 와키코 글.그림, 예상열 옮김 / 한림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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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꼭 읽게 되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억수같이 비를 내리는 심술장이 도깨비들을 멋지게 골탕먹인 호호할머니 이야기.

전 처음에 호호할머니라고 하니까 어렸을 때 보았던 텔레지전의 만화에 나오는 그 호호아줌마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
숟가락을 달고 다니면서 몸이 쬐그맣게 줄어들어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던 호호아줌마 말예요.
저, 그 만화 참 좋아했거든요.  생각난 김에 그 만화 주제가 들어보실래요? ^^

http://www.gayo114.com/freelink/freelink_aplay.asp?c=294455_357824&ext=.asx

(위의 주소를 누르시면 왼쪽으로 미디어플레이어가 뜨고 음악이 재생됩니다. 그만 들으시려면 스톱버튼을 누르시고 창을 닫으셔야 합니다.)

할머니를 보고 호호할머니라고 하는 건요, 호호(皓皓)라는 말이 “희고 빛난다“라는 그런 뜻이기 때문이래요. 그러니까 할머니 머리카락이 나이가 드시면서 점차 하얗게 되니까 호호백발이라는 뜻에서 호호할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호호할머니는 있는데 왜 호호할아버지는 없냐고 누가 물으시던대 그건... 아마도 예전에는 말이죠, 남자들은 전부 다 상투를 틀고 다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할머니의 호호백발만 눈여겨 보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

사토 와키코의 호호할머니는 엉뚱하고 당찬 할머니입니다.
우리의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할머니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참 많이 다르지요.
사토 와키코는 순종적이고 얌전하고 지적인 캐릭터보다는 이렇게 엉뚱하고 어린 아이와 똑같은 할머니, 힘 쎄고 듬직한 팔뚝 굵은 아줌마 이야기를 많이 하네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자신들은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척척 해내는 할머니와 아줌마로 인해 마냥 흐뭇하게 대리만족하게 되는 거 같아요.

나무 숲이 우거진 넓은 들판 위에 있는 빨간 지붕의 작은 집 위로 구름이 가득 드리워져 있습니다. 들판 가득 비가 내리고 있어요.
살그머니 빨간 지붕집으로 다가가보니 창문너머 비오는 들판을 내다보는 호호할머니와 강아지, 고양이가 보입니다.
이제 집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비가 오랫동안 내린 모양입니다. 집안에서만 있으니 너무너무 심심해진 할머니는 이제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겠다고 ‘구름 위에서 비를 뿌리는 천둥 양반‘에게 말합니다. 가끔은 쉬었다 하는 것이 어떻냐고 말여요.
하지만 심술궂은 천둥들은 오히려 더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번개도 번쩍번쩍! 비를 더 많이 내리지요.

우리의 호호할머니, 이에 질 수 없죠. “ 좋아, 그렇게까지 심술을 부리겠다면 내게도 생각이 있다” 와~ 과연 할머니가 어떻게 하시려고 저러시는 걸까요?
팔짱을 끼고 눈썹을 치켜 뜬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강아지도 덩달아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고양이는 고개를 갸우뚱.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침을 꼴깍 삼키게 됩니다.
할머니가 천둥도깨비들을 골탕먹이는 그 기가 막힌 방법에 대해 아이들은 참 열광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작은 난로가 미어터져라 모조리 쑤셔 넣고 활활 불을 피워대는 할머니 옆에서 강아지와 고양이는 할머니, 할머니, “큰일 났어요” 호들갑을 떨고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도 점점 톤이 높아지고 빨라지고 ..^^

후춧가루랑 고추다발을 집어넣은 매운 연기를 온 하늘로 날려보내고 세로로 길게 그려진 그림으로 쓔웅~~~~ 천둥도깨비와 구름조각들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기가 막히게 황당하면서도 아이다운 상상력의 극치인 거 같아요.
그리고 천둥도깨비들을 보세요. 하나같이 개구쟁이의 얼굴을 하고 있어요. 다 똑같은 도깨비 같은데 세상에...얼굴이 똑같이 생긴 도깨비는 하나도 없어요. 돼지코 도깨비, 안경을 쓴 똘똘이 도깨비, 소풍이라도 나온 듯 주먹밥에 보온병까지 있고, 비키니를 입은 여자도깨비에다가, 아하하하 저 도깨비 좀 보세요. 매운 연기에 재채기를 하다가 그만 틀니까지 빠지고 말았어요.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석탄난로를 기억하세요?
4교시가 시작되기 전 딱맞게 도시락을 올려놓으면 뜨끈뜨끈~· 김이 모락모락나는 밥을 먹을 수 있었지요. 그날따라 불이 아주 활활 잘 피었거나 아니면 너무 가운데에 놓았거나 하며 누룽지가 생기기도 했던 도시락을 만들어주곤 했던 그 난로 말예요.
자칫 난로를 잘못 관리한 날에는 아침 내내 매운 연기가 교실에 가득해지잖아요.
집으로 돌아가서도 머리카락이며 옷자락에 그 매운 내음이 났었구요.
그 난로에 대한 추억이 있는 우리 세대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추억을 자극하지요
하지만 난로보다는 온돌바닥이나 전기온풍기, 전기난로, 가스난로에 익숙한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난로에 불을 지펴서 매운 연기를 날려보냈을까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엄마, 나도 연기 날려 보낼거니까 빨리 난로 사주세요, 빨리요”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호야는 졸라댑니다.
“에이~ 난로가 없어서 연기를 못 보내니까 계속 비가 오잖아. 비오는 건 정말 싫어!”
때로는 너무 빨리 발전해 버려서 채 나누지 못한 이런 구닥다리 기억들이 왜 이리 아쉽기만 한걸까요?

아, 그런데 그거 아세요?
할머니랑 강아지랑 고양이는 절대로 구름을 손질하는 도깨비를 도와주지 않거든요.
그런데 맨 마지막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어요. 오른쪽 구석에 파란 옷을 입고 노란 앞치마를 입은 아줌마.
“걱정마, 내가 도와줄께! 나에게 모두 맡겨!” 팔을 걷어 부치고 있는 이 팔뚝 튼튼한 아줌마, 누군지 아시겠지요?
바로 도깨비를 빨아버린 그 아줌마네요.
여태까지 못 찾고 있다가 좀전에 책상 위에 펼쳐놓은 그림을 보더니만 “엄마, 엄마. 잠깐만! 여기 여기!” 호야가 찾아냈답니다.
모두들..이미 알고 계셨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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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7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7-08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04-07-13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허참....책보다도 님의 리뷰에 더 빠지게 하시다니....^^

로드무비 2004-07-21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란 이렇게 쓰는 거로군요.^^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장바구니에...
 
아름다운 파나마는 어디 있나요? - 드림북스
야노쉬 지음 / 삼성당아이(여명미디어) / 1996년 11월
평점 :
품절


행복이란 무엇인가...
삶이 즐겁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야노쉬는 아기호랑이와 아기곰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물음을 잠시 자기 자신에게 던져보게 합니다. 이 시리즈로 국내에 소개된 것은 모두 세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파나마는 어디 있나요], [아기호랑이에게 보내는 편지], [보물을 찾으면 부자가 되나요]

     

알라딘에 이미지가 없어서 삼성당i (구)여명미디어)홈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

"파나마"...
온통 바나나같이 향긋한 냄새가 나는 곳,
꿈같은 곳
별의 별 것이 다 있는 천국,
아주 아름답고 넓은 곳

우연히 발견한 바나나 상자 때문에 어른호랑이 만큼 날쌘 아기호랑이와 어른곰만큼 힘이 세고 아기곰은 "지금 여기보다 훨씬 더 좋은" 그곳 파나마를 찾아 가기로 합니다.
양지바른 강가에 있는 굴뚝이 있는 작고 아늑한 집을 떠나 말입니다.
파나마를 찾아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길을 잘못 찾아 헤매게 되고 비가 오는 밤에 밖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결국 아기호랑이와 아기곰은 파나마를 찾았습니다.
그곳은 정말로 그전에 그들이 살던 곳보다 더 아름답고 더 멋지고 더 행복한 곳이었습니다.
긴 깃털이 달린 벨벳으로 만든 멋있고 푹신한 소파가 아늑하고 편안한 그런 곳이었지요 ^^

호야는 책을 읽는 내내 아기호랑이 (그러고 보니 이 아이 호랑이를 계림북스쿨에서 나온 [호야와 곰곰이의 세계지도 여행]에서 '호야'라고 불렀군요 ^^)가 지극정성으로 챙기는 얼룩무늬 오리에 대한 애정에 깔깔대고 웃으며 재미있어 합니다.
나무로 만든 얼룩무늬 오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사건건 오리를 챙겨달라고 말하는 호랑이에 비해 “너는 걱정하지 말고 내 뒤만 따라와“라고 이야기하는 아기 곰은 얼마나 어른스럽고 든든한지 몰라요. 그런 아기곰이 있어서 호랑이는 정말 행복하다고 말을 합니다.
이런 아기호랑이와 아기곰의 이쁘고 사랑스러운 우정에 대해서는 같은 시리즈 [아기호랑이에게 보낸 편지]와 [보물을 찾으면 부자가 되나요]에서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마음 속에 파나마를 두고 삽니다.
지금 이곳보다 나은 삶..
꿈과도 같은 삶....
내가 가보지 못한 두갈래 길 중 그 하나의 길을 갔었다면 파나마가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모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곳에 가면 뭔가 달라지겠지...뭔가 새로운 힘이 생기겠지....
지금보다 더 행복한 뭔가가 있겠지....

하지만 결국엔 파나마는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을... 찌르찌르의 파랑새가 결국은 내 집 안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길을 떠나지 말고 집에 머물러 있어야 했을까 라고 야노쉬는 묻고 있습니다.
 
이렇게 더 나은 곳을 찾아..모험을 찾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와 같은 주제는 그림책에서 아주 익숙한 주제입니다 (이상금 선생님의 책 [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에서도 말씀하셨다시피요)
고전적인 그림책으로는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가 그랬고 최근의 인기있는 그림책 중의 하나인 [집나가자 꿀꿀꿀] 등과 같은 책에서 더 좋은 곳, 더 멋진 모습을 위해 일상에서 일탈을 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역시 내 자리(우리집)이 최고야!“라고 말을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치치(말괄량이 기관차 치치- 시공사)나 아기돼지 삼형제들(집나가자 꿀꿀꿀- 웅진)은 다시 갈 곳이 어디인지 알고 돌아왔다는 것이고 이 책의 아기호랑이와 아기곰은 몰랐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지만요.

호야로 하여금 “얘네들, 바보 아냐?”라는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 아기호랑이와 아기곰의 어리석기까지 한 단순함의 극치는 “내가 있는 이 곳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잔잔한 행복의 비결을 대놓고 말하기보다는 “이상향인 파나마를 찾아 떠났기에 진정한 파나마를 찾을 수 있었다“라고 또 다른 행복맛보기의 방법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1996년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지만 독일에서의 폭발적인 반응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글량이 많고 초등학생용 동화라고 하기엔 좀 어려 보였을까요? 이 책에 대한 소개가 너무 없어서 그랬을까요?
끝내 절판되고 말았습니다.

절판된 책을 이제 와서 왜 소개하냐고 물으신다면....^^;;;
절판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에 간혹 구입을 하실 수 있는 곳이 온라인으로도 몇 군데 있고 오프에서도 구하실 수 있는데다가 도서관 등에서 얼마든지 보실 수 있기에 놓치기 아까운 책인지라 꼭 소개하고 싶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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