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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7
존 버닝햄 지음,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1996년 1월
평점 :
형제들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 보르카.
여기까지 듣던 호야는 "이거 미운 오리 새끼랑 비슷해요" 그럽니다. 언젠가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저는 이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그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였기에 망정이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오리보다는 백조가 훨씬 이쁜 새인 것은 틀림없으니까 말이죠) 오리보다도 더 못난 칠면조였으면 그렇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전 이 이야기가 외모로 인해 판단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그런 생각을 암암리에 품게 할 까봐 늘 조심스러워요.
우리는 왜 우리와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이유없이 무시하고 구경삼고 따돌리게 되는 걸까요?
선천적 신체장애의 경우 그것이 결코 그이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또 누구나에게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 중에서 운좋게 나는 괜찮고 저이가 그리 된 것 뿐인데 마치 가까이 하면 안될 듯 그렇게 무시하고 따돌리고 쳐다보고 슬금슬금 피하고 ...
좀 나아진 반응이라면 대놓고 쳐다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흘낏흘낏 쳐다보고 그것보다 정말 나은 반응이라면 무조건 불쌍하게 여기고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
좀전에도 호야에게 "장애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물으니 "불쌍해요, 도와줘야 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것도 좋은 마음가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장애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과 도움이 아니라 자신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길 원하는 것이 아닐까요?
비록 신체의 일부가 불편하여 어떤 종류의 일은 감당해낼 수 없지만 대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인정 말입니다.
보르카를 본 의사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아무런 이상이 없다"라는 것이 바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깃털이 없는 거 말고는 아무 이상이 없는 똑같은 기러기입니다라고 말하는 거지요.
하지만 정작 현실은 보르카에게 냉정하기만 해서 형제도 친구들도 모두 보르카를 놀려대고 못살게 굽니다. 엄마 아빠조차도 보르카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해서 심지어는 따뜻한 곳으로 떠날 때에조차도 보르카가 빠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지요.
우리나라에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아이들 중 장애아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건 내 아이가 남과 다른 장애아라는 것을 인정하기 힘든 부모들이 많아서이겠지요. 또 장애아들 중의 90% 이상은 모두 해외로 입양된다고 합니다.사회복지적인 차원에서도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이 살아가기에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에다가 자신의 자녀가 장애인임을 부끄러워하는 그런 심리까지 겹쳐졌기 때문일텐데 보르카의 부모인 플럼스터부부도 그랬었나 봅니다. 그걸 알기에 보르카도 기러기무리가 떠나가는 날, 소리높여 같이 가자고 부르지 못하고 숨어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을테지요.
하지만 크롬비호에서 만난 친구들은 보르카를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동정하지 않습니다. 배삯만큼 일을 해야 한다고 그냥 한 존재로 인정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요구하지요. 그것이 부당했을까요?
아니요, 보르카는 오히려 할 수 있는 대로 일을 거들며 행복을 맛봅니다.
하지만 보르카가 머물게 된 곳은 런던의 큐가든이라고 일년 내내 온갖 기러기들이 모여 살고 있는 커다란 공원이었습니다.
그곳의 기러기들은 보르카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모두 친절했지요. 보르카도 그것에서 행복하게 지금도 살고 있다고 그림책은 맺고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결말이 마음에 썩 들지 않네요.
큐가든이 주는 이미지가 어떤 상처입은 자들의 그들만의 공간이라고 여겨져서요. 정상적이지 못한 이들이 어울려서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그들만의 낙원...
그곳에서 행복해진다고 해서 그게 진정한 행복일까요?
원래의 기러기들의 터전에서 그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인정을 받고 똑같이 대우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보르카의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요?
우리 주위의 장애인들이나 사회로부터 소외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꽃동네 마을이니 장애인 공동체,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 미혼모시설 등등등...
그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 같은 공감대를 갖고 서로 위로하며 행복하겠지요.
보르카와 퍼디넌드가 그러는 것처럼요, 하지만.....그게 다일까요?
[깃털없는 기러기 보르카], 좋은 책입니다. 울림도 많구요. 하지만 그점이 정말 아쉽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호야가 "큐가든에서는 왜 보르카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어?"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음..아마 보르카에게 이렇게 물었겠지? 넌 왜 털옷을 입고 있니?
그래서 보르카는 '응, 나는 깃털이 없어서 이 옷이 없으면 춥단다'라고 했어. 그랬더니 큐가든의 친구들은 "아...그렇구나...그 옷 이쁘다' 라고 했을꺼야. '얼레꼴레리~~~ 깃털도 없대요'라고 놀리지 않고 말이야.
"아니, 엄마. 그게 아니라 큐가든에서는 보르카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는데 다른 기러기들은 왜 놀렸냐구?"
이렇게 미묘한 질문을 던지는 아이에게 제대로 답을 해주었었나...잠시 돌아봅니다. 뭐라고 해야 더 적절하고 지혜로운 답이었을까? 사실은 아직까지도 대답을 못해주고 있습니다. 왜냐면 제 자신조차도 아직까지 저와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큐가든에서만 행복한 보르카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가 태어난 늪지에서, 크롬비호에서, 큐가든에서... 그 어느 곳에 있던지 당당하게 자신의 몫을 감당하는 보르카를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