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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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의 재해석이 소설과 만났을 때 어떻게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 안소영 작가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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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4-11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소영 작가는 노력하는 작가로 기억해요. 책 단 한 권 읽어서 내린 생각이니 언니에게만 살짝~~~^^;;;

프레이야 2015-04-21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동주 문학관 다시 가봐야겠어요. 이 책 읽고나서‥ 오늘은 오랜만에 화창하게 해가 얼굴을 내밀었어요. 좋은하루 바쁘게 또 여유있게^^ 보내시길요.
 

 

 

 

 

 

1. 캄보디아에서의 1달러

 

 

캄보디아에서는 1달러의 힘이 세다. 앙코르와트의 도시인 씨엠립에서는 적어도 그렇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1달러의 위용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비자와 입국을 담당하는 심사대를 통과하려면 1달러의 웃돈이 필요하다. 일렬로 앉아 있는 담당자들은 눈을 내리깐 채 조용히 ‘원딸라’를 외친다. 입국 수속 때 웃돈이 필수처럼 따라붙는 곳이 이곳 캄보디아란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들은 터라 요구하는 그들에게 1달러씩을 헌납해야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다. 입국을 하려는 누구나 그런 과정을 겪는다. 웃돈을 주지 않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입국 지연을 시키기 때문에 팁 요구를 들어주는 게 좋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불합리한 관행조차 그 나라의 문화려니 하는 마음이 있어야 편한 여행이 된다.

 

 

캄보디아에서 1달러는 어디서건 유효하다. 호텔 매너 팁은 당연한 거고, 급할 때 도움을 주던 현지 보조 가이드에게도 1달러,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꼬마 악동에게도 1달러, 수상가옥촌 배 위에서 앵벌이하던 아기에게도 1달러. 그렇지, 전신 마사지하던 안마사에게는 고마운 나머지 5달러의 팁을 건네기도 했구나. 그러고 보니 입국 심사 때만 강제적 팁이지 나머지는 스스로 우러난 팁의 행렬이었다. 단 며칠간의 씨엠립 여정은 그렇게 1달러에서 시작해 1달러로 끝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버릇 되는데다 자생력을 잃게 하니 팁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과연 그럴까. 자생력은 정치적 여건이 만든다.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을 다그칠 수는 없다. ‘기브미 초코렛’을 외치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때도 초콜릿을 건네는 쪽이 옳았지, 자생력 운운하며 때 묻은 고사리 손을 외면한 쪽이 옳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구조적 가난과 부패 앞에서 백성은 언제나 무죄이다. 오직 정치에 그 죄를 물을 일이다. 애절하게 구걸하든 교묘하게 강탈하든 그들에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니다. 단죄의 제일 대상은 백성을 방치하거나 그 상황을 즐기는 정치세력일 뿐이다. 잠시 본 캄보디아는 1달러의 힘에 갇혀 있는, 아직은 가난한 나라였다.

 

 

맨발의 순정한 눈빛들, 1달러가 목적이다.

 

 

 

사원 입구에서 큰 소리로 글 읽는 귀요미 아해들. 역시 1달러를 위해.

 

 

 

수상가옥촌의 원딸라 아기.

캄보디아 빈민 또는 베트남 보트 피플 출신으로 이루어진 톤레샵 호수의 가옥촌.

 

 

 

오빠는 노 젓고, 여동생은 원딸라 손짓하기.

 

 

 

수많은 사원 중 최종 목표점인 앙코르와트 원경.

 

 

 

 

 

 

 

 

 

 

 

 

 

 

 

 

 

 

 

 

2. 옵션 인생

 

알라딘 친구 아롬님이 새 차를 샀다. 와우, 그것도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남편분을 위해 통 큰 선물을 했다나. 부러워라. 어디 흠 잡을 데 없는 아롬님. 비슷한 연비의 도요타나 혼다에 비해 조금 싸기도 하고 애국도 하고 싶어 산타페를 샀단다. 친구의 선택에 무조건 힘을 실어주었다. 국내에서보다 괜찮은 가격인데다 서비스에도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십여 년 이상 그 차종을 몰았던 남편도 별 불만이 없더라는 말로 나는 아주 잘 샀다고 응원을 했다.

 

 

근데 아롬님 말이 의미심장하다. 차를 사긴 했는데 사기 당한 기분이란다. 알람 장착하고 방수 코팅하고 등등, 약간씩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차 값이 올라갔기 때문. 공감하는 바가 없지 않지만 현실이 그러므로 나는 이런 카톡 문자를 전송했다. “기본으로 시작해 옵션으로 끝나는 게 인생이다.” 라고. (이 말 써먹어도 되냐고 하는 아롬님께 맘껏 그래도 좋다고 했다. 나 역시 써먹을 거라 했다.ㅋ)

 

 

그렇다. 짧은 여행에서도 그런 걸 느낀다. 패키지여행의 최대 묘미는 싼 값으로 편한 여행을 할 수 있는 거다. 항공료도 싸고 숙박비도 할인이 된다. 자유 여행에 비해 움직임이 타이트하고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자유여행에서 느껴야 할 불안이나 압박에 비하면 참을 만하다. 언어가 자유롭지 못하고 여행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는 패키지여행만큼 편리한 것도 없다.

 

 

하지만 패기지 여행의 최대 약점은 바로 옵션이다. 관광지마다 상점을 순회하는 것이 애교 섞인 불만이라면, 관광 코스를 덤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뭉근한 압박이 된다. 이럴 경우 나는 심리적 · 신체적 위해가 걱정 되지 않는 한 무조건 옵션을 선택한다. 어차피 여행사에는 옵션 항목 전제하에 일정을 짠다. 그러니 옵션 사항보다 나은 일정을 감행할 자신이 없으면 그 일정을 따르는 게 속편하다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옵션은 기본에 없는 쾌락이나 즐거움을 수반한다. 그렇다고 누구나 옵션을 택할 이유는 없다. 내 책무를 줄이고 싶을 때 기본을 속삭이고, 내 위안을 구하고 싶을 때 옵션을 외치는 게 삶이기 때문이다. 기본 없는 시작 없고 옵션 없는 마감 없는 게 생이더라. 중요한 건 기본이든 옵션이든 한 번 택했으면 그걸 즐기면 그만이라는 것.

 

 

앙코르와트에서의 소년 스님의 망중한. 저 눈빛을 담은 것만도 감사한 일.

 

 

 

수상가옥촌의 젊은 엄마 사공. 미소가 선하다. 주민들이 젊은데다 아이들이 많아서 의외였다.

 

 

 

이행나무, 라고 가이드가 말하던데 사원마다 높이 솟았다.

 

 

 

앙코르와트 측면 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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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2-16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본으로 시작해 옵션으로 끝나는 게 인생이다˝
하하하~~~
유익한 여행을 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

다크아이즈 2015-02-16 15:08   좋아요 1 | URL
페크님 여행기도 기대할게요.
이번 여행은 한 마디로 짧은 여행 긴 여운이랄까요.

라로 2015-02-16 1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니도 전신마사지 받으셨어요!!!!!! 완전 부럽!!!ㅋ
몇 번 받으셨어요????ㅋㅎㅎ 세실은 두 번 받았다네요~~~부럽부럽
1달라~~~ㅠㅠ 예전 우리도 그랬죠!!ㅠㅠ 베트남도 그럴까요???? 아이들에게 구걸을 시키는 군요~~~ 마음 약하게,,,세실님 세부에서도 공항직원 비리에 대해 말했는데 거기도!!!!ㅠㅠ
저 앙코르와트 전경 언니가 찍으신 거에요???? 완전 예술!!!!!

다크아이즈 2015-02-16 15:17   좋아요 1 | URL
딴 건 몰라도 전신마사지 강추!!!
단체 여행이다 보니 전신마사지 추가로 받을 수가 없었는데, 것도 요령껏 미리 얘기하면 일정을 잡을 수도 있겠더군요.
발마사지만 하는 사람들은 다들 후회해요.
전신마사지는 남자에게 받아야 제격. 저는 가이드가 시킨대로 남자에게 받아서 본전(?) 뽑았는데, 제 일행은 여자가 편하다고 여자에게 받았는데 요령만 늘어서 시원하질 않았대요. 것도 미리 알고 가면 좋을 듯.


ㅋㅋ 저 사진은 잘 찍은 게 아니에요, 시아님.
요즘 사진 배우는 중인데 진짜 고수들 넘 매혹적이게 찍어요.
저건 그냥 원경, 구도도 평범, 날씨도 사진 찍기엔 안 좋아서 사진 질감도 흐릿... 아무튼 잘 찍게 돼서 자랑하는 날이 오길 바라요. 먼 훗날 얘기겠지만~~

[그장소] 2015-02-1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좋다.위험하게도 유적지나 오래된 사찰에 가면 내가 먼지로 사라질 것같아서
막 그리워요. 이 무슨 심리지 ?

다크아이즈 2015-02-16 15:15   좋아요 1 | URL
사람들이 너무 많아 먼지로 사라질 틈도 없어요.
그러니 먼지로 사라질 기대는 하시지 않는 게 좋아요. ㅋ
넘 조용하거나 숙연하면 그런 생각이 들지도.
먼지로 사라지고 싶단 생각 저도 가끔씩 해요.

[그장소] 2015-02-16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절도 따로없는 곳이라 그럴까..퇴적같이 쌓인 먼지가 나인지. 세월이나인지...
발에 채일까 겁나서 ...ㅎㅎㅎ
그러니까 순간 고요해지면 무섭겠어요.

다크아이즈 2015-02-18 08:40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은근히 낭만적이시닷!
너무 조용한데 있으면 그런 생각 들지요. 먼지가 나인지, 내가 먼지인지, 시간이 먼지인지 나인지 등등의 상념에 휩싸이게 되는...

세실 2015-02-18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패키지가 싫어요. 옵션은 거의 필수로 해야하고, 쇼핑도 의무고...
이번 세부여행때 옵션만 3십만원!
자유여행의 그리움이 새록새록 합니다.

앙코르와트 가보고 싶기는 하지만....망설이게 됩니다^^
입국통과때 1달러면 애교인걸요? ㅎ

다크아이즈 2015-02-18 08:39   좋아요 1 | URL
그럼에도불구하고 패키지가 편하긴 해요. 따지고 보면 돈도 덜 들어요.
언어가 되고 용기가 있으면 당근 자유 여행이 낫지요. 자유여행이 주는 신경 쓰임도 만만찮을 것 같아요. 셋이서 다녔는데 자유여행이라면 리더 역할 맡은 사람이 엄청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ㅋ 아지매끼리 여행에는 패키지가 학씨리 부담이 덜한 면이 있어요.

입국 때 2달러 들었어요. 시작하는 지점에서 여직원에게 한 번 삥 뜯기고, 마지막 지점에서 남직원에게 또 뜯기고 ㅋ. 심하면 세 번 뜯기기도 하는데 그날은 모두 2달러씩 헌납.

라로 2015-02-18 10:47   좋아요 0 | URL
2~3달러면 애교로 뜯기지요, 뭐~~~~!! 여기선 식당을 가도 팁이 최소한 3달라는 내야 하니까. 혼자 가서. 정말 애교로 느껴지는 삥이네요~~~ㅋㅎㅎ

[그장소] 2015-02-18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지인중에 지금...여행중인 언니가 있는데..방콕쪽..ㅎㅎㅎ...먼지 날리는.사진.잔뜩 투척해주겠네요...

저 은근 아니고.대놓고.낭만찾는데~^^
아하하핫~ 나ㅡ잡아봐라~~~ 했다간 한대 맞겠죠!!??ㅋㅋㅋ 이틀 날을 새니 이제 정신이 살짝 ㅠㅠ

2015-04-11 0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웬만해선

 

동창모임을 앞두고 한 친구가 더 이상 모임에 합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분위기 메이커에다 주변인을 챙기는 넉넉함 덕에 모두 의지하던 친구였다. 멤버들이 전국에 퍼져 있어 겨우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한 상황인데 못나올 정도로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나 싶다.

 

 

친한 한두 명은 사정을 알 터이나 대부분은 상황을 잘 모르니 카톡 단체방에는 불이 났다. ‘희정이가 빠지면 나도 탈퇴다, 회장은 책임지고 희정이를 고대로 모셔 놔라, 희정이 없는 모임은 연탄 없는 난로다.’ 등 남자애들의 농 섞인 걱정 문자가 올라왔다. 카톡방에서 나가 버린 희정이가 그 문자들을 못 본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 중 한 문자에 눈길이 간다. “웬만해선 안 올 애가 아닌데.” 이 한마디 안에 희정이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 총체적으로 녹아있음을 느꼈다. ‘웬만해선’이라는 매혹적인 한정어 때문이었다.

 

 

누군가로부터 ‘웬만해선’ 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만 살아도 잘 살고 있는 거다. ‘웬만해선 그럴 사람이 아냐, 웬만해선 그렇게 힘들어 할 애가 아니지, 웬만해선 지치지 않을 사람인데, 웬만해선 늘 남을 우선하던 사람이지.’ 등의 예문처럼 ‘웬만해선’이라는 말이 타자를 향할 때는 참으로 듣기 좋다. 그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최대 표현법 같기 때문이다.

 

 

반면에 ‘웬만해선’이라는 말이 스스로를 향할 때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웬만해선 내가 이런 실수 하지 않는데, 웬만해선 내가 흥분하지 않는데, 웬만해선 내가 약속을 어기지 않는데.’ 등등의 사례처럼 ‘웬만해선’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남발하면 신뢰가 반감된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타자에게 바라는 변명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웬만해선’ 이라는 말은 타자를 이해하거나 감싸주고 싶을 때 더 어울린다. 스스로를 향하는 ‘웬만해선’이라는 말은 아낄수록 좋다. 꼭 써야 한다면 변명이 아니라 자기반성용이라야 한다. 역시 실천이 어렵다. 그나저나 웬만해선, 이라는 다사로운 수식어를 받는 희정이에게 별 일이 없어야 할 텐데.

 

 

 

 

2. 물은 낮은 곳으로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의심해본 일 없는 그 물리적 진실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있다. 강어귀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이사한 뒤부터 짬이 나면 강물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남달리 풍부한 서정적 심성 때문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가늠하기 어려운 물결 방향 때문이었다.

 

 

상식으로야 바다가 보이는 쪽이 낮은 쪽이니 그곳으로 강물이 흐른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물길은 하루에도 심심찮게 그 방향을 바꾸곤 했다. 아침나절 분명 뭍에서 바다로 흐르던 물줄기가 오후가 되면 바다에서 뭍을 향해 바뀌어져 있곤 했다. 신기하면서도 의문스러웠다. 급기야 ‘모든 강은 바다로 모인다’는 불변의 진리를 이론으로만 성립하는 헛말이라고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강 하구에서는 물이 역류해 내륙 쪽으로 내몰리기도 한다는 제멋대로의 결론을 내려놓기까지 했다. 아침에 바다로 흐르던 물이 오후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륙 깊숙한 곳으로 밀리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알았다. 물결 때문이었다. 지형 특성상 하구는 강폭이 넓은데다 강심의 높낮이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물 흐름이 완만하니 바람 없는 날에는 호수처럼 강 물결이 잔잔하다. 하지만 강한 서풍이 불어오면 바다로 향하는 물결은 파도가 몰려오는 것처럼 드세게 일렁인다. 도도한 물줄기 본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동풍이 몰아치면 물결은 방향을 틀어 내륙을 향해 밀려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물결 표면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거꾸로 흐르는 강은 없다. 바람결 따라 표면의 물결이 거꾸로 반사될 뿐, 속 깊은 물은 변함없이 바다로 흐른다. 어떤 사안 앞에서 그것이 잘못되어 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진실하다면 제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겉 물결이 역류한다고 물길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질의 물은 위에서 아래로 묵묵히 흐른다. 그 깊은 속은 결코 역류를 허락하지 않는다.

 

 

 

   

3. 치환의 기만

 

문화의 다양성은 시각의 차이에 기인한다. 한류 바람을 타고 ‘K-팝’ 못지않게 ‘K-드라마’도 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분석 하나. 우리 드라마는 서구 시각에서 볼 때에 불편함을 유발하고 의아함을 살 수도 있다는 것.

 

 

얼핏 떠오르는 몇 장면. 연적에게서 여주인공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여성의 손목을 낚아채는 남자, 테스토스테론 과다 분비를 검증 받기라도 하듯 여주인공을 벽에 밀어붙이는 남자, 마음을 열지 않는 여주인공의 내숭만큼 쌓인 제 울분을 자랑하듯 주먹으로 유리창을 내리찍는 남자, 등이 불편 유발 장면의 대표적 예이다. 한국 드라마 시청을 위한 안내 매뉴얼이라도 만들어야 할 만큼 서구적 시각에서 보면 이런 장면들은 이해가 되지 않고 불쾌한 모양이다.

 

 

문화는 길들여짐이다. 관습화된 암묵적 약속이 모여 문화가 된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사랑한다는 전제하에 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낚아채거나, 벽에 밀어붙이는 행위 등은 ‘남성다운 멋’으로 치켜세워지거나 용인되는 분위기다. 드라마에 몰입하는 대부분의 시청자는 그 장면에서 폭력이나 성차별을 먼저 읽지는 않는다. 남자는 강하고 멋있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 묻혀 그 장면들이 폭력적이고 성차별적일 수 있다는 데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것들이 폭력적이고 성차별적일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거의 하지 못한다.

 

 

반면에 그들이 이런 장면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남성의 소유물로 본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나는 강한 남자이고 내 여자 내 맘대로 보호(?)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라는 시각이 통용되는 사회를 이해 못하는 것이다. 무서운 건 그런 장면을 보면서 공감하고 박수치는 이는 다름 아닌 우리 여성 스스로라는 것. 관습적 수요가 있으니 맹목적 공급이 따르는 셈이랄까. 어떤 환경에서는 물리적 액션이 낭만적 정서로 봐지기도 하지만, 다른 환경에서는 폭력적 의아함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한 진실.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게 얼마나 주관적 기만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4. 투사와 감정이입

 

심리학 용어에 투사((projection)라는 게 있다. 타인에게 무의식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을 일상용어로 바꾼다면 ‘남 탓’ 쯤이 될 것이다. 투사에 대한 개념을 지금보다 덜 이해했을 때는 감정이입이란 말과 헷갈렸다. 타자의 상황을 빌려온다는 점에서는 투사나 감정이입이나 같다. 하지만 이 둘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감정이입이 타자의 상황에 동조하고 수긍하고 몰입하는 내 감정이라면, 투사는 타자의 상황을 통해 잘못된 나를 빼버리거나 부정한 채 타자를 비난하는 내 심리를 말한다.

 

 

남의 슬픔이나 기쁨 앞에서 내 것인양 동화되는 것은 감정이입에 속한다. 어린이집에 보낸 아이가 열악한 보육 여건에 방치되었다거나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도했을 때 보통 사람이라면 그 아이 편에서 분노하고 동조한다. 겪지 않아야 될 상황에 처한 아이가 내 아이 같고 내 이웃 같기 때문에 저 깊은 곳에서 본능적인 흥분이 솟구친다.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상처 입은 아이나 엄마에게 절로 공감하게 된다. 감정이입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남의 슬픔이나 기쁨 앞에서 내 행위의 저속함을 방어하기 위해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은 투사에 속한다. 어린이집 아이가 열악한 보육 환경에 방치되고 폭행을 당하는 것은 내 순간의 실수는 있을지 몰라도 내 잘못은 아니다, 라고 책임 전가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근무 여건이 맞지 않는 사회 환경 탓이고, 보살피기엔 너무 손이 많이 가는 아이 탓이다, 라고 나 아닌 다른 것으로 잘못을 돌린다. 인간이기에 이런 무의식적인 자기방어본능이 발동하게 된다. 투사의 전형적인 예이다.

 

 

인간은 감성의 동물인 동시에 자존감의 동물이다. 예술이나 일상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투영해 타자에게 동화되는 것도 인간이요, 용납할 수 없는 부정적인 행동이나 감정을 남에게 뒤집어씌워 죄의식을 덜고 싶어 하는 것도 인간이다. 인간 심리 기저에 도사리고 있는 두 본능을 적절히 제어하는 과정이 곧 도덕적·보편적 가치 판단 훈련에 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비굴한 사회

 

박노자 교수의 신작『비굴의 시대』가 배송되어 왔다. 예상했던 대로 그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는 암울하다. 하기야 사회학자의 분석이라는 도움을 빌리지 않아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갑갑하고 절망적인 것인지를 날마다의 경험으로 알게 된다.

 

 

우리 현실을 지배하는 가장 큰 흐름은 자본 이데올로기이다.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사회는 내남할 것 없이 그것에 경도되어 모든 가치 판단을 돈과 연관 짓는다. 국민 대부분은 중하급 월급쟁이이거나 영세한 자영업자들이다. 그들에겐 능동적 힘을 발휘할 기회도 패기도 없다. 나머지 십 퍼센트도 안 되는 자산 계급이 이 자본주의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 착각하고 길들여진다. 노력하고 몰입하면 그 십 퍼센트, 아니 일 퍼센트의 그룹과 같아질 수도 있을 거라고. 어쩌면 그런 무모한 착각 덕에 자본주의의 페달을 밟는데 적극적 동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못 가진 자가 득을 취할 일은 거의 없다. 극소수인 가진 자를 위해 수많은 보통 사람 또는 그 이하의 구성원들이 그들을 떠받치는 구조, 이것이 천민자본주의의 실상이다.

 

 

국가와 자본은 끊임없이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데다 교묘하고 조직적이다. 가진 자나 권력자가 갑질을 해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길들여질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 머물게 된다. 그것이 지속되면 불의에 거부하거나 투쟁할 힘마저 잃어버린다. 자본이 만든 비겁의 굴레에 구성원은 머물고 자본은 그 시대를 백분 활용한다.

 

 

비굴한 시대상의 좋은 예시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처럼 정당한 분노는 그들의 것이지만 그 분노를 제대로 부려놓을 수가 없다. 불합리와 부조리의 난장 앞에서도 적극적 연대나 공감은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자본의 노예에서 자유롭지 못한 개별자가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희망 잃은 시대를 진단하는 활자 앞에 밑줄 긋기조차 착잡하다.

 

 

 

 

6. 어두워지는 시간

 

변함없이 고만고만하기만 한 저녁, 어두워지는 시간의 깊이만큼 검은 공허감이 밀려온다. 습관처럼 한 편의 시를 읽고, 한 문장의 산문에 밑줄을 긋는다. 길 떠나 한뎃잠 설친 간밤의 피로가 여전하다. 그래도 문맥은 제대로 와 가슴에 꽂힌다. 누가 뭐래도 읽고 쓰는 일의 직속일 때가 가장 평화로운 자극이다. 최승자의 시 한 편을 묵독한 후 글벗이 건넨 김연수의『소설가의 일』을 펼쳤다. 앞장 색지에 빼곡하게 남긴 벗의 친필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님을 알게 된 것, 제 인생의 크나큰 행운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밑줄 팍팍 그었고, 도전도 얻었고 용기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끝내 희망에 겨워 울기도 했습니다. 아직 신파에 잘 빠지는 어설픈 초보라 과하게 감격했는지도 모르겠으나, 님께도 분명 의미 있는 책일 거라 여겨 삼가드립니다.” 친구가 되는 일의 숭고함, 한 권의 책이 주는 용기와 도전 정신, 그 책이 내게 전해져 같은 의미를 줄 것이라는 확신, 인용한 몇 구절 속에는 무릎 담요 같은 포근한 진심이 담겨 있다.

 

 

김연수 산문의 일부 요지는 이렇다.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그러니까 쓰기에 왕도 없다. 매일 읽고 쓰면 된다. 쓰고 싶다고 타령할 그 시간에 그냥 쓰면 된다. 쓰는데 재능 같은 건 없고 재능은 잠겨 있지도 않다. 그것이 글쓰기의 비밀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 사람들이 정치를 하며 살고 있다 / 경제를 하며 살고 있다 / 사회를 하며 살고 있다 // 꿈인지 생시인지 / 나도 베란다에서 /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최승자의 「물 위에 씌어진 3」의 시편이 김연수의 산문 내용과 겹쳐진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간다. 뭉근한 열정의 김연수는 매일 소설을 쓰고, 꿈인지 생시인지 기로에 선 최승자는 시간 맞춰 화분에 물을 준다. 골방에 틀어 앉은 또 다른 누군가는 글밭에 씨를 뿌린다. 종이의 직속이 되어 글씨를 뿌린다. 쓰는 자에겐 그것이 정치요 경제이며 사회의 전부다.

 

 

 

   

7.  언브로큰

 

오랜만에 조조로  개봉영화 한 편을 봤다. 언브로큰. 일본 극우파들이 자국 내 상영을 결사반대한다는 바로 그 영화다. 감독을 맡은 안졸리나 졸리에 대해서도 입국 금지 서명 운동을 펼칠 정도라나. 호들갑을 떨며 그들이 흥분할 만큼 일본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영화일까 싶은 호기심에 개봉 첫날 일찌감치 달려가 보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주된 내용은 베를린 올림픽에 달리기 선수로 출전한 바 있는 한 미국 남자의 일본 제국주의 포로 생환기이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점잖은 수위의 묘사가 이어졌다. 원경험자의 증언을 충실히 반영하느라 그런지 스토리텔링에 과장이 없었다. 밋밋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조금 지루했다. 고춧가루와 젓갈이 잘 배합된 김장김치를 기대하고 독을 열었는데 심심한 동치미가 담긴 독을 만난 기분이랄까. 그 어디에도 우리가 알고 있던 전시 일본국의 잔혹한 포로 학대기는 없었다. 어느 집단에서도 있을 수 있는 고만고만한 포로수용소의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인 포로를 산 채로 장작처럼 태웠다거나, 죽인 다음 인육을 먹었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장면은 그림자조차 나오지 않았다. 주인공 루이 잠페리니가 당하는 폭행과 수치심은 관객이 몸서리 칠 정도의 극한의 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 장면들에 저 난리를 칠까 싶을 정도로 순화된 장면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본 우익집단의 극단적인 보이콧 현상이 도리어 입소문이 되어 이 싱거운 영화의 롱런을 돕게 될지도 모르겠다.

 

 

반성을 하면서 몽니를 부리면 그나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반성은 간데없고, 원폭 피해자라는 결과적 아픔만을 내세워, 진짜 피해자의 근원적 고통을 외면하려 드는 그들의 합리화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만이 만행이 아니다. 인간 실존의 위엄을 짓밟았던 일본 제국주의의 실상도 그에 못지않았다. 가장 직접적인 피해 국민으로서 영화보다 더한 잔혹성을 연출했던 그들의 잘못이 반성으로 이어질 때까지, 그들의 실체를 온건하게나마 전하는 이 영화가 오래 버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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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3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3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5-01-24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결방향, 관찰에서만 얻을 수 있는 배움. 인상 깊었습니다.
일본이 원폭피해자를 부각시키는 것이 투사라는 것, 이 글을 통해 바로 적용하게 되네요. 글의 부분들이 글전체를 설명해주고 포괄하는 정말 좋은 글이었습니다^^

다크아이즈 2015-01-24 10:16   좋아요 0 | URL
님 어떻게 이쁜 어감으로 불러야할지. 손수 한번 닉 불러주세요^^
강하구의 물결을 건네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심하지 않답니다 님이라면 더 깊은 사유를 건지셨을 거예요^^

AgalmA 2015-01-24 10:29   좋아요 0 | URL
보이는대로 불러주시면 돼요^^ 아갈마...
바닷가에서 자주 살았어서 바닷물 위의 바람소리랑 물결소리 참 좋아했어요. 수영보다는 물 위에 가만히 떠있는 걸 더 좋아하기도 해요. 귓가의 바람소리와 그 둥실거리는 느낌, 다크아이즈님도 잘 아실 거예요 :)

라로 2015-01-24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을 바꾸시니 새로운 각오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올해는 다크아이즈님의 고품격 글을 자주 접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하옵나이다~~~!!!

다크아이즈 2015-01-24 10:05   좋아요 0 | URL
각오는 무슨ㅠ
각오라면 알라딘 안 오고도 거뜬히 살아 있을 것, 쯤이 될까요
다크아이즈는 알라딘 첫 닉이었어요 초심 찾기가 되나 그럼 ㅋ

hnine 2015-01-2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만해선`이란 말은 다른 사람에게 쓰일 때는 괜찮은데 자기 얘기하면서 쓰면 정말 격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며 읽어내려오노라니 바로 그 말씀을 하셨네요 ^^ 이심전심!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저는 기대를 너무 했던 탓인지 약간 실망했는데, 오히려 에세이를 읽으면 더 마음에 와닿을 것 같네요. 생각이 많은 작가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아요.
`언브로큰`은 영화 내용도 내용이지만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을 했다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아쉬움도 되었어요. 그래도 이 영화가 더 많이 사람들에게 보여졌으면 좋겠네요.
다크아이즈님, (손번쩍) 여기서 질문이요. 이 글을 모두 하루에 쓰셨나요?

2015-01-24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5-01-24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ㅇㅏ갈마 부르려다가 어감이 좀 색다른 거예요 그래서 실수할까봐 소심해져 못 불렀지 뭐예요 반갑습니다^^
북풀이 익숙지 않아 아갈마님에 대한 덧글인데 이리 떨어져 나와버렸어요 ㅠ

AgalmA 2015-01-24 10:35   좋아요 0 | URL
네, 어감이 좀 웃기죠? ㅎ 뜻이나 생긴 게 예뻐서 쓰기 시작했어요. a가 사이좋게 처음 중간 끝 골고루 있잖아요. 저도 엄청 반갑습니다!

페크pek0501 2015-01-24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네임을 바꾸셨네요. 반갑습니다.

문화 다양성의 코드와 박노자의 책에 끌리네요.

다양한 주제로 풀어 내시는 그 힘에 저도 정기를 받아 으쌰 으쌰 하며 갑니다. ^^


다크아이즈 2015-01-24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오, 반가운 페크언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초심으로 돌아가는 의미로 원래 닉으로 함 써봤어요~ 글에 대한 긍정의 고민하는 페크님께 절대 공감이요~~

세실 2015-01-3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잣대로 모임 하나가 거슬려 그만두려고 하는데 제 불편해하는 마음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들에게도 전달되어 시원하다 할거 같은데 희정님은 행복하네요^^

어두워지는 시간 제목도 글도 특히 좋아요. 고만고만하기만 한 저녁!도 가끔은 감사하죠?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구나하는... 내 주변까지^^
소설가의 일 저도 펼쳐야겠어요.
 

 

 

막 동안거를 끝내고 모이셨을까

한낮 카페에서의 스님들 수다는 무죄

헐거운 시간을 내려 놓고

빛나는 이마같은 통곡의 말씀을 깃는 그들만의 망중한

 

친구님, 고마워요.

(욕심 나는 풍경을 보고 칭얼대자 사려 깊은 친구가 양해를 구하고 찍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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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1-21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짝반짝~~~ 멋져요!!^^

다크아이즈 2015-01-23 10:21   좋아요 0 | URL
스님들 담소 내용이 진짜 궁금했어요.
아마 새해 살림 이야기? ㅋ

세실 2015-01-2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나는 이마 같은 통곡의 말씀을 깃는 그들만의 망중한.
캬~~~~ 밑줄 좌악! 글 한줄이 한편의 시네요.

2015-01-23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2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3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1-23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닉네임 바꾸셨네요. 몰라뵐뻔 했어요.

다크아이즈 2015-01-23 18:26   좋아요 0 | URL
앗, 나인님. 새해맞이 단장이에요^^
 

 

 

 

 

 

1. 남은 시간

 

혼자 집을 지킨다. 남편은 출장 가고, 딸내미는 근무하고, 아들은 놀러 갔다. 낮에는 몰랐는데 밤이 되니 몸이 으슬으슬하고 떠도는 공기에도 한기가 서려있다. 입에서 쓴 내가 나고 어깻죽지에 동통이 밀려온다. 몸살기니 쉽게 잠들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잡념만 뭉친다. 이럴 땐 식구들의 응원보다 나은 기 보충제는 없다. 괜히 가족 대화방에다 투정서린 문자를 남겨 본다. ‘이 밤 모두 나 빼놓고 잘 있제? 외롭다.’

 

 

‘내일 (집에) 간다.’ 애교나 과장을 모르는, 뻣뻣하기 이를 데 없는 딸내미의 답문이 일착이다. 비교적 싹싹한 아들 답문도 나을 게 없다. ‘어머니, 파이팅.’ 선심 보너스처럼 달린 하트 이모티콘이 민망하다. ‘숙소 들어가는 중’ 남편의 답문마저 초간단하다. 그래도 마음 온도만큼은 문자에 비할 바 아니리라. 아니나 다를까 숙소에 든 남편에게서 금세 전화가 온다. ‘외롭다’는 말의 의미를 직해할 수 있는 사이는 역시 부부밖에 없구나. 일상 그대로의 몇 마디를 나눌 뿐인데도 위안이 된다. 전화기를 끊자마자 덤으로 문자 하나를 보내온다.

 

 

모 회사가 제작한 가족사랑 홍보물이다. 클릭하니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영상이 뜬다. 일 년, 이 년 아니면 몇 개월. 결과표를 받아든 사람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무슨 내용인고 하니 남은 생애에서 우리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다는 것. 일하고 자고 사람 만나 사교하고 등의 시간을 빼고 나면 가족과 마주하는 시간은 너무 모자란단다. 친절히도 가족시간 계산기가 덧붙여져 있기에 적용해보았다. 남은 시간을 많이 할당 받고 싶어, 잠이나 기타 여가 시간을 내 패턴보다 조금 줄여서 입력했다. 그래도 겨우 7개월.

 

 

으슬으슬하던 몸에 열감이 확 돋을 정도로 정신이 퍼뜩 든다. 이해하겠거니, 하는 전제를 깔고 다른 것에 비해 늘 후순위로 미루기만 했던 가족의 일. 평균 수명으로 봐도 삼십 년을 더 살 수 있다는데 가족을 위한 남은 시간이 고작 7개월이라니. 숙연한 책임감으로 잠 못 든다한들 이 밤은 할 말이 없겠다.

 

 

 

 

 

2. 탄력적 사고

 

쌍둥이 중 누가 장자여야만 할까. 흥미 있는 포스팅을 발견했다.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쌍둥이 중 늦게 태어난 아이가 맏이가 된다는 것. 상상으로라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단 일초라도 먼저 태어나면 형이 된다는 동양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이야기를 접하니 무척 신선하고 신기하다. 사람의 생각이란 다양한 것.

 

 

현대 유럽 사회에서는 쌍둥이가 태어나도 우리만큼 위계질서를 잡아주는데 집착하지 않는다. 형 동생이라는 개념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지낸다. 하지만 전통 왕가에서나 우리식으로 하자면 시골 종갓집 같은 데서는 여전히 그 의미가 퇴색하지 않은 모양이다. 단 그들이 생각하는 형·동생에 대한 정의는 보편 정서와 다르다. 먼저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 늦게 태어난 아이가 형이 된다. 먼저 수정된 아이가 자궁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느긋하게 나온다는 속설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한다는데 그건 과학적 근거가 없으니 넘어 가더라도 나머지 한 이유에는 솔깃해진다. 약한 아이가 먼저 세상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안에서 강한 아이가 밀어내 준 뒤 천천히 나오게 된다나. 강한 자가 곧 형이라는 편견이 살짝 깔리기는 했지만 공감이 가기도 한다. 형이 꼭 동생에 비해 덩치가 크고 의리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힘 세다고 먼저 박차고 나가는 형을 상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흐뭇한 이야기다.

 

 

쌍둥이 중 누가 맏이인가, 하는 것은 과학적 진실 차원에서 논할 이야기는 못 된다. 산아의 위치에 따라 운명적으로 먼저 나오고 나중 나오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누가 형이고 동생이냐를 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일일뿐 절대적 진실은 아니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같은 조건에서 내가 먼저 빛을 봤으니 내가 형이라는 생각도 옳고, 내가 형이니 네가 먼저 빛을 보라고 떠밀어주는 생각도 옳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쌍둥이를 규정하는 순간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탄력적 사고를 하면 세상에 진실이 아닌 게 없게 된다. 사람 생각은 다 다르고 저마다 옳으니.

 

 

 

 

 

3. 글썰미 훈련

 

김연수의『소설가의 일』에 보면 핍진성(逼眞性)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구체적 방법은 작가에 의하면 ‘갈피 너머에 있는 훨씬 뒤쪽의 단어와 표현’을 찾는 행위이다.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것은 개연성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책갈피 앞쪽에 해당된다. 개연성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이 핍진성인데 이는 갈피 훨씬 뒤쪽에 해당된다. 전체적인 플롯을 통해 개연성이 확보 되면 묘사를 통해 글의 핍진성은 완성된다.

 

 

내 식의 예를 들자면 “나는 그 여자가 좋아.”라고 말하는 건 개연성에 머물러 있는 거지만 “코를 찡긋하며 웃던 그 모습에도 미칠 지경이었지.”라고 말한다면 핍진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핍진성을 구축하는 데는 더 많은 염력과 생각의 힘을 필요로 한다. 문학 용어에서 나온 핍진성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진실의 정도를 말한다. 있음직한 이야기로 독자를 납득시킬수록 소설로서의 힘을 갖는다. 플롯과 캐릭터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소설 요건이야말로 핍진성이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핍진성을 구체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훈련이다. 눈썰미가 없으면 좀 전에 만난 사람이 무슨 옷을 입고, 어떤 헤어스타일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 사람을 제 삼자에게 설득시킬 길이 없어 그냥 ‘내 앞에 앉았던 사람’이라고 어물쩍 말하게 되고 만다. 하지만 눈썰미를 훈련하는 경우라면 그가 진자주색 털조끼를 입은 데다, 짧은 단발이었다는 것을 금세 기억해낼 수 있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훈련하면 글썰미(?)도 생겨나고 나아가 핍진성 획득이라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된다. 눈에 띄는 진자주색 털조끼와 지나치게 짧은 단발을 한 사람을 묘사하는 과정을 통해 그가 성격이 특이한데다 단호한 면이 있음을 독자에게 알려줄 수 있게 된다. 구체적 정황을 담은 묘사 덕에 독자의 공감을 쉽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허구의 이야기를 믿게 하는 원동력은 핍진성이고 그것을 얻으려면 끝없는 연습의 힘 외의 방법은 없다는 걸 김연수 작가의 귀띔을 통해 새삼 확인한다.

 

 

 

 

 

4. 허삼관매혈기 대 허삼관

 

하정우 감독 · 주연의 영화『허삼관』덕에 위화의『허삼관 매혈기』도 덩달아 관심을 끈다. 위화 작가만큼 독자의 신뢰를 얻는 작가도 드물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라는 다소 긴 에세이를 읽은 것을 계기로 단박에 위화의 팬이 되었다. 그의 글 느낌에 대해 유행하는 신조어로 표현한다면 ‘웃프다’ 정도가 될 것이다. 자연스런 웃음을 유발하는데 결코 웃고만 있을 수 없는 슬픔의 격조가 서린 위엄이랄까.

 

 

『허삼관 매혈기』에도 그런 그의 문체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문학적 풍자에 관련된 모든 것을 이 한 권의 책에서 맛볼 수 있을 만큼 매혹적인 소설이다. 해학, 촌철, 골계, 익살, 조롱, 패러디, 비장, 엄숙 등의 문체적 속살을 잘 드러내주는 이 소설에 대한 헌사의 의미로 영화 『허삼관』도 일찌감치 보러 갔다. 거의 모든 영화가 원작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단순한 관람기가 맞는 이유는 명백하다. 일단 원작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스크린에 다 담아내지 못하는 시공간적 제약이 있다.

영화 허삼관, 의 경우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그 배경을 옮겨 설정하다 보니 중요한 대목인 문화혁명의 광풍 시절이 빠져 버렸다. 한국전쟁 직후라는 배경이 중국의 지난했던 한 시절을 완벽하게 대신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허삼관이 시종일관 매혈을 하게 되는 그 장면이 원작 소설만큼 절절하지도 실감나지도 않았다. 원작이 보장하는 확실한 재미 요소인 시대적 · 공간적 배경이 바뀜으로서 이야기의 당위성을 잃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가족 신파 쪽으로만 방향을 틀수밖에 없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소설 허삼관 매혈기, 는 작가가 ‘평등’에 관한 알레고리를 숨겨 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말하는 평등은 허삼관의 행동과 말로 표출되는데, 허삼관이 굳게 믿는 평등은 쉽게 말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이다. 못된 짓을 한 하소용이 불치병에 걸리는 것도 당연하고, 아내가 지은 한 번의 과오에 복수하는 길은 자신 역시 바람 한 번을 피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지극히 소박하고 단순한 방식의 평등이다. 하지만 그 평등마저도 우리는(못 가진 자는) 온전히 누릴 수 없다. 작가가 숨겨 놓은 평등이란 죽음 앞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성애라는 한 주제를 작가와 감독이 어떻게 달리 표현했는지 궁금한 이들은 두 작품을 비교 감상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5. 방과 밥

 

가족을 이뤄 산다는 것은 방과 밥을 완성하는 일이다. 편히 쉴 수 있는 우리들만의 공간, 꾸밈없이 마주할 수 있는 가족을 위한 밥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 갖춘 노래이다. 하지만 순간순간 그걸 잊고 살 때가 많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지금 이 순간의 심심함이야말로 최상의 버라이어티 쇼였음은 상실의 고통을 맞이한 후에야 알게 된다.

 

 

자책과 상실과 극복에 관한 토론 거리를 준비하느라 본「아들의 방」영화가 너무 먹먹하다. 이탈리아 항구 도시, 상담의인 지오반니 가족은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의 일상을 엮어간다. 휴일 아침 아들과 조깅을 하기로 했지만 응급 환자의 호출에 응하느라 약속을 지키지 못한 새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갔던 아들은 익사하고 만다. 함께 있어주지 못한 죄책감에 지오반니는 주저앉는다. 타인의 상처와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천직이었던 지오반니도 자신의 상처 앞에서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내와 딸의 상실감도 만만찮다.

 

 

아들의 죽음이 있기 전 그들의 식탁은 평화와 안식의 상징처였다. 무탈하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기쁨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아들이 죽기 전까지는 결코 알지 못했다. 식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버린, 무너져 내린 가족의 식사 장면 앞에서 심장이 조여 오는 통증을참아야 했다.

 

 

아들의 여자친구의 등장으로 그들에게도 치유의 기회가 생긴다. 안드레아의 죽음을 모르는 그녀는 안드레아가 찍은 그의 방 사진을 보여주며 그 방을 보고 싶어 한다. 아들의 방을 함께 둘러보면서 새삼 그 아이의 존재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알게 된다. 남은 가족에게도 심경의 변화가 온다. 그녀의 방문을 계기로 지오반니 가족은 진정으로 안드레아를 떠나보낼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동행인과 히치하이킹 중인 그녀를 배웅하다 보니 프랑스 국경까지 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안드레아를 놓아줄 수 있게 된다. 죄책도 비탄도 상실도 애도도 결국 자신이 극복해야 된다는 것 더불어 평범한 날의 한 끼 밥, 무탈한 날의 소박한 공간이 얼마나 최상의 행복 조건인지를 가슴으로 알게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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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1-20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대하는 팜므님 글~~반가움에 글쓴이 만큼 정성들여 읽었어요!👍

다크아이즈 2015-01-20 17:59   좋아요 0 | URL
잘계시다니 저 또한 기쁘옵니다. 에너자이저 오기언냐~

2015-01-20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1 0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5-01-20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의 글을 읽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에 대해 남편에게 얘기해 주면서 나는 고작 언니보다 몇 시간 더 많을 거야~~그랬더니 `Not me`라네요~~~^^;;;
저도 순오기언니처럼 반가움 마음과 떨리는 마음으로 읽었어요!!! 역시 우리 팜므 언니!!!!!!! 이러면서~~~~~. 근데 이제 몸은 괜찮으신 건가요????
`보이후드 boyhood `라는 영화 추천드려요. 며칠 전 남편이랑 봤는데 계속 머릿속에서 맴도네요~~~. 언니가 보시고 단상 적어주시면 좋겠어요~~~^^;;;
알라딘에서 선물을 보내와서 오늘 잠깐 들어왔는데 앞으로 알라딘에서 또 선물 보내지는 않울테니 모든 시험 끝나고 알라딘서 뵈어요~~~~.

2015-01-20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21 0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5-01-21 02:47   좋아요 0 | URL
양반되기는 글렀는지 위의 댓글 쓰자마자 오네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