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 독서회 청춘들과 함께 한 책이다. 영화도 책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영화는 정우성이 주연한 <비트>의 스코틀랜드 버전으로, 책은 제이 디 셀린저가 쓴 <호밀밭의 파수꾼> 영국식 버전으로 읽혔다. 영화는 <비트>보다는 나았고,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에는 못 미쳤다.

 

   <비트>보다 나은 점은 폭력의 강도가 훨씬 약한 데다 개연성을 확보했다는 점이었다. 대사 처리 또한 비트에서처럼 오글거리지 않고 현실적이라 공감이 갔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이런 현장성을 획득한 게 아닌가 싶었다.

 

   <호밀밭의 파수꾼>보다 못한 점은 구성 면에서 문학적 성취를 의식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컸다. 경험에 근거한 책 내기에 조급했을까. 온갖 등장인물이 내레이터로 나오는 방식을 취해 따분하고 혼란스러웠다. 이런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다이내믹한 상황 설정이나 심오한 반전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구성을 무시한 일상적 기록의 서사 방식을 택한 것은 아쉬웠다.

 

   병영 청춘들에게 공감하는지 진솔한 의견을 물었다. 상황은 이해하겠는데 구체적 장면에서는 우리 현실과 너무 달라 당황스러웠다고 하나 같이 말한다. 아무리 하위문화라 해도 뒷골목에서의 마약, 섹스, 폭력이 일상화되는 청춘을 대한민국에서 상상하기는 어려우니까. 병영 청춘들은 말한다. 담배, 피시방이나 노래방, 술집 정도에 해당 되는 우리의 말들이 에딘버러에 가면 마약, 섹스, 폭력으로 치환된다고. 범죄와 가까운 그 행위들이 거기서는 단순한 일탈처럼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게 의아하면서도 부럽다(?)고 했다.

 

   청춘들에게도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인 것만은 분명했다. 청춘의 불행한 일상을 암울하게만 그린 게 아니라 경쾌하고 도덕연하지 않게 틈을 주고 그려냈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청춘의 하위문화가 시사하는 점, 이를 테면 세태 비판이나 방향타 잃은 청춘에 대한 묘사, 젊음의 폭발적(폭력을 포함한) 에너지 등에 대해서 성찰하게 된 점은 의미 있었다. 일탈의 쾌감과 불안을 헤매면서도 그들이 가야할 방향타를 찾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소설이다. 중류 계급의 허위의식에 대해서 시종일관 콕콕 찔러대는 것도 인상적이다. 도덕연한 허세, 따분한 잘난 척, 포장된 자기기만 등등.

 

   그럼에도 이 책(영화도 마찬가지)의 가장 큰 약점은 남성적 시각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는 점. 이건 어빈 웰시의 기질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인 어빈 웰시는 왠지 마초적이고 냉소적인데다 비판적 성향이 강해 보인다. 작년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됐을 때 가장 심한 악담을 퍼부은 작가 중의 한 사람이 어빈 웰시였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 생각에 대한 작은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밥 딜런 팬이지만 이번 상은 노망 나 헛소리나 씨부렁거리는 히피들의 썩은 전립선이 향수에 쩔어 주는 상이다.” 트레인스포팅을 쓴 작가답다는 생각에 마구 웃어젖혔다.

 

  다만, 이 책과 영화가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련다. 솔직히 어떤 책이라고 말해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좋다고 말하는 이와 아니라고 고개 흔드는 이가 반반이라 내 생각에도 막이 생겨버렸다. 맨 부커 상 후보에 올랐을 때도 난상토론이 이어졌다니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내 취향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참고로 <트레인스포팅2>가 영화로 나왔다, 우리나라에도 모 영화제에서 상영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일반 극장에서도 상영했는지는 모르겠다. 주인공 렌턴 역인 이완 맥그리거를 비롯해 식보이 역의 조니 리 밀러 외 주요 등장인물 네 명이 그대로 20년 세월을 넘어 뭉쳤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식보이 역의 조니 리 밀러의 모습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지는지 궁금하긴 하다. 트레인스포팅 영화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이완 맥그리거가 아니라 조니 리 밀러였다. (아시다시피 조니 리 밀러는 안젤리나 졸리의 첫 번째 남편이었다. 트레인스포팅2 관련 인터뷰에서 그는 졸리와 여전히 친구처럼 지낸다고 말했다.)

 

   *‘트레인스포팅이란 기차역에 하루 종일 있으면서 역에 들어오는 기차의 번호를 적는 행위로, 영국에서는 이러한 편집증적 기벽을 가진 사람들을 트레인스포터라고 한다. 이 소설에서 어빈 웰시는 트레인스포팅이라는 단어를 기찻길을 연상시키는, 팔의 정맥 위에 일렬로 자리 잡은 주사바늘 자국들을 가리키는 헤로인 중독자(정키)의 메타포로써 사용하고 있다.

    

 

 

 

책 밑줄 긋기

49다른 걸로는 나의 이 빌어먹을 가슴팍 한가운데에 쑤셔 넣은 주먹 같은, 커다란 블랙홀을 메울 수 없어.

72따스한 마음을 가진 반항아들. 이 땅의 소금과 같은 사람들. --축구 리그 같은 것은 바보 같고 엉뚱한 난센스이며 노동 계급의 단결을 방해하고 부르주아 계급의 주도권이 도전받지 않게 해주는 안전장치에 불과하다. 스티비가 혼자 생각해낸 이론이다.

83레슬리는 꼼짝 않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며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뼈마디가 뒤틀리고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손댈 수 없다.

 

83내가 눈꼴시게 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자신이 미웠다. 나도 다른 놈들이 나한테 그러면 역겨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라도 일단 막강한 위치에 오르고 나면 절대 권력은 부패한다는 진리를 부정할 만한 성인은 없다. --자식들, 너희들 차례는 아직 멀었어. 레슬 리가 먼저야. 그리고 레슬리보단 내가 먼저야. 당연한 이야기 아냐?(마약 조제를 하는 렌턴의 마음)

84그래도 엄마를 사랑한다. 너무 사랑해서 엄마한테 나 같은 아들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아들을 찾아내다가 엄마한테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변할 수 없으니까.(렌턴)

119신화:벡비는 훌륭한 유머 센스를 갖고 있다. 현실:벡비의 유머 센스는 타인의, 대개는 동료의 불운이나 실수, 약점이 노출된 경우에만 발휘된다. 신화:벡비는 강철의 사나이다. 현실:(뾰족한)무기를 갖고 있지 않을 때의 벡비는 그다지 뛰어난 싸움꾼이 아니다. 신화:친구들은 벡비를 존경하고 있다. 현실:친구들은 벡비를 두려워하고 있다. 신화:벡비는 친구들을 감싸준다. 현실:--멍청이가 그러면 두들겨 패준다. 하지만 진짜 미치광이가 친구들을 괴롭히면 내버려둔다. 우리보다 그런 사이코들과 벡비는 더 친하기 때문이다. (렌턴이 본 벡비)

 

125바늘을 찌를 곳을 몸에서 필사적으로 찾아야 하다니 정말 싫다. 어제는 하는 수없이 페니스에다 놓았다. 내 몸 중에서는 정맥이 가장 똑똑히 보이는 곳. 이런 버릇은 들이고 싶지 않다. (렌턴)

196들어가서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가지 않을래? 좋지. 렌턴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으나,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커피 뿐이야. 다이앤은 그렇게 덧붙였다. (다이앤이 렌턴에게)

252닥터 포브스:애버딘의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 : 대학 자체입니다. 교수,학생, 모든 것이 다요. 모두 중류 계급의 따분한 녀석들이었죠. (렌턴의 상담)

 

259-260내가 모든 이론을 철저히 알고,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그 위에 건전한 정신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할 때, 그래도 나는 헤로인을 맞으려고 생각할까? --인생을 선택하라. 하지만 나는 인생을 선택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다. 해리 로더는 노래했다. “이 길이 계속되는 한, 나는 오로지 전진하리라…….”

278나는 리스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코틀랜드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영원히. 지금 즉시.(렌턴)

423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너희들? 트레인스포팅이라도 하나, ? (벡비 아버지가 일당에게) -기차역에 하루 종일 있으면서 역에 들어오는 기차들의 번호를 적는 행위. 영국에서는 편집증적 기벽을 가진 사람들을 트레인스포터라고 한다.

467렌턴이 정말로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스퍼드였다. 그는 스퍼드를 좋아했다. --렌턴이 단 한 사람에게만 보상한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스퍼드일 것이다.

 

468아이러니컬하게도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벡비였다. 벡비에겐 동료를 배신하는 일은 사형에 해당하는 가장 무거운 죄이다. 렌턴은 벡비를 이용해서 스스로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벡비가 있기 때문에 그는 이제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원하던 일을 해냈다. 리스에도, 에든버러에도,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조차 이제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영원히. 그곳에 있으면 지금의 자신 이외는 될 수가 없다. 모든 것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지금이라면, 되고 싶었던 자신이 될 수 있다. 쓰러지든지 일어서든지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불안하기도 하고 흥분이 되기도 했다. 렌턴은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될 새로운 인생을 똑바로 응시했다.

 

영화 밑줄긋기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 렌턴, 이완 맥그리거

*영국은 무슨! 우리는 지진아 중의 지진아들이야 쓸모없는 쓰레기들이고, 비참하고 불쌍한 쓰레기들 말야. 문명이 나은 사생아! - 렌턴, 이완 맥그리거

*마약은 우리 삶에 원동력이다. - 렌턴, 이완 맥그리거

*신의 가호로 이 끔찍한 고통을 이겨내보도록 하죠. - 렌턴, 이완 맥그리거

*아쉬울 것이 없는 삶이므로, 결코 풍요로울 수 없는 삶이다. - 렌턴, 이완 맥그리거

*독특한 개성은 찾아 볼 수 없고 규율만 찾는 나라. 지랄 같은 나라가 영국이라고 신선한 공기가 다가 아니라고. - 렌턴, 이완 맥그리거

    

트레인스포팅, 트레인스포팅2, 어빈 웰시, 이완 맥그리거, 조니 리 밀러, 판단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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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07-3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레인스포팅은 아주 재밌게 봤던, 그보다 충격적이라고 생각하며 봤던 영화였어요. 2편이 나왔다고 들었지만 왠지 보고싶지 않아서 안봤는데... 1편의 강력한 인상을 못따라 갈까봐~~~그 영화에 대한 순정이라기는 뭐하고,,,
 
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묘사의 밀도 덕에 숨그네를 제대로 탔다. 심장삽으로 펄떡이는 심장을 눌러 앉혔다. 잘쓴다, 헤르타 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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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 한 소설이 있다. 쉽게 반성을 강요하거나 도덕적 교훈을 들먹이지 않는, 인간을 보여주기만 하는 소설. 서늘한 긴장과 짜릿한 현장성의 묘미를 보여주는 소설. 시위하듯 가족애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가족 사이에 흐르는 감정선을 그려내는 소설. 가족은 서로를 다 아는 것일까. 몰라서 모르거나 알면서도 몰라야 하는 가족이라는 소통의 한계와 통점에 관한 이야기. 로드니와 조앤의 경우를 보면서 공감하고, 로드니와 레슬리의 교감 앞에서는 하루가 충분히 무기력해지도록 내버려뒀다. 어쩜 인간은 이리도 쉽게 변하지 않는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조앤은 곧 나였고, 때로는 레슬리도 나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통찰 깊고 서늘한 문장을 잣는 이가 누구시던가. 애거사 크리스티. 그니는 봄에 자신이 없었노라고 고백하지만 그녀는 매 봄마다 내게 올 것이다. 아니, 온 겨우내 내 왼쪽 심장에 똬리를 틀고 앉아 나를 괴롭혀댈 것이다

 

   소설적 소품 또한 얼마나 잘 활용했는지. 도마뱀(103, 111), 때 이른 10월 철쭉(96 레슬리를 향한 로드니의 마음), (내가 그대에게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색 바랜 파란 쿠션(258레슬리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초록빛 갈색머리(253 쿠션에 반사된 레슬리의 머리카락), 1미터(레슬리와 로드니의 사랑의 간격,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딱 그만큼의 거리), 코페르니쿠스(254,259) 등등 탐나는 설정들이 너무 많았다. 그 이름 애거사 크리스티.

 

   봄에 없었다. (absent in the spring) --> 내 식 해석으로 (Love was totally absent in the spring.)이라 하고 싶다. 제목 한 번 잘 지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찾아 읽고 싶은 밤이로다. 

 

   간단 내용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쓴, 추리 소설이 아닌 여성의 삶과 사랑을 다룬 소설.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런던 근교 크레이민스터에 사는 조앤 로드니. 변호사의 아내이자 삼남매의 엄마. 결혼한 딸 바버라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바그다드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폭우로 텔 아부 하미드 기차역 숙소에서 사흘간? 발이 묶이면서 내면 성찰을 하게 된다. 우연히 동창생을 만나 자신의 문제와 직면하는 시간. 전에는 몰랐던 사실들. 알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 기적처럼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가식과 위선의 그물을 걷어내는 과정.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매정했고, 그들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다시 크레이민스터의 집에 도착했을 때 조앤은? ···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쉽게 변한다면 사람이 아니다!

 

 등장인물

<스쿠다모어네 주변>

*로드니 : 다정다감한 변호사, 온정적 이해주의자, 조앤을 사랑하나 완벽하게 소통하지 못함, 농부의 삶을 원하나 현실은 변호사, 레슬리를 향한 내밀한 열정.

*조앤 : 냉정하고 이기적, 자식들을 자기 식으로 이해함, 자식들의 신뢰를 받지 못함, 오만한 동정심, 부지불식간의 이기심을 지닌 외롭고 허한 중년 여자.

*블란치 해거드 (도너번) : 여고 동창생, 경박하고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 악의는 없음. 이 소설의 주요 모티프가 된 인물

*에이버릴 : 냉정하고 무심, 단단하고 깐깐. 상처 입을 용기가 있는 맏딸, 나이 많은 의사 루퍼트 카길과 연애 사건도 있었지만 논리로 무장한 로드니에게 설득 당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레슬리를 사랑하는 경험을 토대로 에이버릴을 설득한다.(속으로 사랑의 아픔을 삭이면서) 에이버릴은 로드니를 신뢰한다. 주식중개인 에드워드 해리슨 윌모트와 결혼 후 런던 생활.

*토니: 아버지 일 이어받지 않고 남아프리카 로디지아의 오렌지 농장으로 떠나서 남아공 더반 출신의 여자와 결혼.

*바버라 : 열정적 감정적, 자제력 없음, 윌리엄 레이와 결혼 몹시라는 딸을 낳고 바그다드에서 자리 잡았다. 리드 소령과의 썸씽으로 자살 시도를 하고 앓아 눕는다. 엄마의 간병을 바버라 부부는 원치 않지만 엄마 조앤은 바그다드로 떠난다. 바버라가 아빠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엄마의 간병 기간이 그들 부부를 합심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되어 버림

*아그네스, 에드나 : 하녀

*호디즈던 : 로드니가 마음써주는 농부 할아버지

*머나 랜돌프 : 끼 많은 이웃 아가씨. 레슬리를 머나 랜돌프로 착각하기를 바랐던 조앤.

*마이클 캘러웨이 : 조앤과 섬씽 있을 뻔한 화가.

*길비 : 여고 교장 선생님, 단호하고 권위적이며 훈화적이나 통찰력이 있음.

 

<셔스턴 집안>

*찰스 셔스턴 : 레슬리 남편, 주정뱅이 은행장이자 공금횡령 전과자

*레슬리 :억척스럽고 소박한 여자, 역경조차 명랑과 긍정의 용기로 엮는 불굴의 여자. 분주하나 만족할 줄 안다. 로즈니의 사랑을 받다 암으로 죽음. 벤치에서 로드니와 1미터 간격으로 앉는 사이.

*: 큰아들, 미얀마 숲으로 떠남.

*피터 : 둘째아들, 로드니 회사 다니다 사건 일으켜 조종 훈련 배우러 떠났다가 사고사. 사기꾼 아버지와 용기 많은 엄마를 반반 닮음.

*막내딸 : 생후 6개월에 죽음.

<숙소>

*인도인 : 호텔 지배인 // *아랍소년 : 호텔 보이

 

<기차 안>

*사샤 : 알레프에서 이스탄불까지 동행한 너그럽고 지적인 러시아 공작부인, 박학다식한 부인에게 호기심을 느끼지만 조앤은 나중에 지겨워 함.

    

 

 

98어머, 이거 당신이 꽂았던 철쭉꽃이에요. 그냥 둬, 레슬리 셔스턴을 위해 그냥 두자고. 어쨌든 우리의 친구였으니까.

104열린 공간 – 그리고 상자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전 인생. 허수아비 자식들과 허수아비 하인들과 허수아비 남편.

104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세익스피어 소네트 98번 일부)



105아이는 당황한 눈길로 엄마를 쳐다봤다. 상대방이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하는 눈빛 같았다. 자식이 엄마를 그런 식으로 쳐다봐서는 안 되는 눈빛이었다. 결코 사랑스럽지 않았다.

130그녀는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머릿속을 조직적으로 정리하고, 광장공포증이라는 것의 본질을 철저히 파헤쳐볼 필요가 있었다.



201가끔 난 엄마가 그 누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니가 그렇게 말했다. 토니의 말이 맞았다. 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196교회 묘지. 레슬리 셔스턴의 무덤. 로드니의 코트에서 떨어진 큼직한 진홍색 철쭉꽃. 거친 바람이 5월의 고운 꽃봉오리를 흔드네.



197감정을 단련해라, 조앤. 표현을 더 정확하게 해.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건지 확실히 정해야지.

202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204 헌신적인 엄마 노릇을 한다는 데 끌렸던 건 아닐까? 아픈 딸과 심란한 사위에게 환영받는, 매력적이고 모험적인 자신을 기대한 건 아닐까? 이 먼 데까지 달려와 주다니 정말 좋은 분이에요 같은 말을 듣고 싶어서?

204 조앤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은 크게 안도했다. 그들은 속마음을 숨기고 예의를 차리느라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붙잡았다. 하지만 조앤이 순간적으로 마음을 바꾸려는 기미를 보이자 윌리엄이 나서서 재빨리 그녀의 의지를 꺾어놓았다.



206그때 조앤의 마음속에는 옛 친구를 업신여기는 우월감이 가득차 있었다. 제가 그 여자와 다르다는 데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그랬다. 조앤은 감히 그런 기도까지 했다. 지금 이 순간 블란치가 곁에 있다면 무엇이라도 내줄 것 같았다! 친절하고 느긋하고 너그러운 블란치.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사람. 블란치를 만난 밤, 조앤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우월감에 휩싸여 기차역 숙소에서 기도했다. 몸을 가릴 천 쪼가리 한 장 없는 것 같은 지금은 기도라는 걸 할 수 있을까?

207난 외톨이야. 완전히 외톨이야. 무시무시한 고요. 지독한 외로움. 가여운 조앤 스쿠다모어, 멍청이, 헛똑똑이, 가식덩어리, 조앤 스쿠다모어. 사막에 혼자 있네.

213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그 구절을 외웠을 때 로드니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11월이지." 그날 저녁 로드니가 "하지만 지금은 10월이지"라고 했던 것처럼.



213하지만 이제 그녀는 알았다. 물론 당시에도 알았던 게 분명하다. 두 사람이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던 이유를. 그들은 차마 더 가까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지 않았을까.



214상대는 머나 랜돌프가 아니었다. ··· 로드니와 랜돌프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사실을 못 본 척하려고 머나 랜돌프로 연막을 피웠다. 머나 랜돌프가 레슬리 셔스턴보다 인정하기 쉽다는 이유도 있었다. 로드니가 머나 랜돌프에게 끌렸다면 자존심이 덜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레슬리 셔스턴은 아름답지도 젊지도 않고 되는 일도 없는 여자였다. 지친 얼굴, 우스꽝스럽게 한쪽이 일그러지는 미소를 짓던 레슬리 셔스턴. 로드니가 그런 여자를 사랑했다고 - 정말 열렬하게 사랑해서 1미터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고 - 인정하는 것이 싫었다.



215 로드니는 대리석 묘석을 내려다보면서 "레슬리 셔스턴이 이런 차가운 대리석 밑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지독하게 이상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홍색 철쭉꽃이 툭 하고 떨어졌다. "피 같아. 심장의 피." 그는 말했다. ··· "모두 다 용감할 수는 없어." ··· 그러다가 로드니는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레슬리의 죽음이 초래한 병이었다. ··· 토니의 경멸에 찬 목소리. "엄마는 아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녀는 몰랐다. 왜냐하면 결코 알고 시피지 않았으니까.



218로드니는 부드러운 사람이기에 그녀와 싸우지도 그녀를 억누르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 완전한 남자가 아니었다. 로드니·····. 난 그것을 그에게 돌려줄 수 없어. 보상해줄 수 없어. 하지만 로드니를 사랑해. 정말로. 그리고 에이버릴과 토니와 바버라를 사랑해. (하지만 충분히는 아니었다 - 그게 답이었다 -)

223그녀는 얼마나 끔찍하게 잘난체하는 인물이었던가. 사막에서 밀려들었던 날카로운 혐오감이 지금도 남아 있었다. 자기혐오. 새로이 겸손한 마음이 생겨났다.



224이제는 도마뱀들이 구멍에서 쑥 나와 그녀를 위협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만났고 자신을 인정했다.

228~229친구들은 제게 ‘사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어’라고 해요. 터키인, 아르메니아인, 레반트인들처럼 말이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요. ··· 조앤은 자기도 모르게 이 묘한 부인에게 매료되었다.



229혹시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을 보는 중인가요? 엄청난 감정을 경험하거나 그런 감정을 지나쳐온 것 같아요. 슬픔? 아니면 엄청난 행복?



239···특이한 러시아 부인조차 마지막에는 지겨워졌다. ··· 부인이 조앤을 완전히 촌사람처럼 느끼게 했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누구와 견줘도 떨어지지 않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그 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 자체가 몹시 바보스러웠지만.



245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자식들이 그녀를 싫어한다는 상상, 로드니가 레슬리 셔스턴을 사랑했다는 상상. ···불쾌하기 짝이 없는 모든 일. 그 상상들은 모두 사실일까? 그녀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 로드니, 용서해요. 난 정말 몰랐어요. 로드니, 나 왔어요. 집에 돌아왔어요. 어떤 패턴으로 할까. 어떤 것이 낫지? 조앤은 선택해야 했다. ···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나 왔어요, 로드니. 집에 돌아왔어요."



249엄마가 여기 오겠다고 전보를 보냈을 때 전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어요. ··· 전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별로 저항도 못했어요. ··· 사랑하는 아빠, 아빠 같은 분을 제 아빠로 두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사랑하는 바버라.



249그가 갑자기 죽는다면 조앤이 서류를 정리하다가 이 편지를 볼 테고, 아마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공연히 상처를 주고 절망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 로드니는 방 한 구석으로 가서 바버라의 편지를 벽난로에 던졌다.



254"저기, 저는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라고 (레슬 리가) 말했다.



255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햇어. 로드니는 생각했다. ···그와 레슬리와 함께. 그리고 떨어져서. 고통과 가슴 타는 갈망. 두 사람은 1미터 남짓 떨어져 앉았다. 그 보다 가까우면 안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슬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259"음······ 코페르니쿠스예요? 귀한 그림인가요?" 조앤은 갸웃하며 그림을 보다가 물었다.

"나도 몰라." 그는 생각에 잠긴 듯이 같은 말을 되뇌었다. "나도 전혀 모르지……"



261"그래, 당신에게는 내가 있지."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맨 마지막)

98어머, 이거 당신이 꽂았던 철쭉꽃이에요. 그냥 둬, 레슬리 셔스턴을 위해 그냥 두자고. 어쨌든 우리의 친구였으니까.

104열린 공간 – 그리고 상자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전 인생. 허수아비 자식들과 허수아비 하인들과 허수아비 남편.

104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세익스피어 소네트 98번 일부)



105아이는 당황한 눈길로 엄마를 쳐다봤다. 상대방이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하는 눈빛 같았다. 자식이 엄마를 그런 식으로 쳐다봐서는 안 되는 눈빛이었다. 결코 사랑스럽지 않았다.

130그녀는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머릿속을 조직적으로 정리하고, 광장공포증이라는 것의 본질을 철저히 파헤쳐볼 필요가 있었다.



201가끔 난 엄마가 그 누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니가 그렇게 말했다. 토니의 말이 맞았다. 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196교회 묘지. 레슬리 셔스턴의 무덤. 로드니의 코트에서 떨어진 큼직한 진홍색 철쭉꽃. 거친 바람이 5월의 고운 꽃봉오리를 흔드네.



197감정을 단련해라, 조앤. 표현을 더 정확하게 해.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건지 확실히 정해야지.

202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204 헌신적인 엄마 노릇을 한다는 데 끌렸던 건 아닐까? 아픈 딸과 심란한 사위에게 환영받는, 매력적이고 모험적인 자신을 기대한 건 아닐까? 이 먼 데까지 달려와 주다니 정말 좋은 분이에요 같은 말을 듣고 싶어서?

204 조앤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은 크게 안도했다. 그들은 속마음을 숨기고 예의를 차리느라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붙잡았다. 하지만 조앤이 순간적으로 마음을 바꾸려는 기미를 보이자 윌리엄이 나서서 재빨리 그녀의 의지를 꺾어놓았다.



206그때 조앤의 마음속에는 옛 친구를 업신여기는 우월감이 가득차 있었다. 제가 그 여자와 다르다는 데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그랬다. 조앤은 감히 그런 기도까지 했다. 지금 이 순간 블란치가 곁에 있다면 무엇이라도 내줄 것 같았다! 친절하고 느긋하고 너그러운 블란치.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사람. 블란치를 만난 밤, 조앤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우월감에 휩싸여 기차역 숙소에서 기도했다. 몸을 가릴 천 쪼가리 한 장 없는 것 같은 지금은 기도라는 걸 할 수 있을까?

207난 외톨이야. 완전히 외톨이야. 무시무시한 고요. 지독한 외로움. 가여운 조앤 스쿠다모어, 멍청이, 헛똑똑이, 가식덩어리, 조앤 스쿠다모어. 사막에 혼자 있네.

213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그 구절을 외웠을 때 로드니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11월이지." 그날 저녁 로드니가 "하지만 지금은 10월이지"라고 했던 것처럼.



213하지만 이제 그녀는 알았다. 물론 당시에도 알았던 게 분명하다. 두 사람이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던 이유를. 그들은 차마 더 가까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지 않았을까.



214상대는 머나 랜돌프가 아니었다. ··· 로드니와 랜돌프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사실을 못 본 척하려고 머나 랜돌프로 연막을 피웠다. 머나 랜돌프가 레슬리 셔스턴보다 인정하기 쉽다는 이유도 있었다. 로드니가 머나 랜돌프에게 끌렸다면 자존심이 덜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레슬리 셔스턴은 아름답지도 젊지도 않고 되는 일도 없는 여자였다. 지친 얼굴, 우스꽝스럽게 한쪽이 일그러지는 미소를 짓던 레슬리 셔스턴. 로드니가 그런 여자를 사랑했다고 - 정말 열렬하게 사랑해서 1미터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고 - 인정하는 것이 싫었다.



215 로드니는 대리석 묘석을 내려다보면서 "레슬리 셔스턴이 이런 차가운 대리석 밑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지독하게 이상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홍색 철쭉꽃이 툭 하고 떨어졌다. "피 같아. 심장의 피." 그는 말했다. ··· "모두 다 용감할 수는 없어." ··· 그러다가 로드니는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레슬리의 죽음이 초래한 병이었다. ··· 토니의 경멸에 찬 목소리. "엄마는 아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녀는 몰랐다. 왜냐하면 결코 알고 시피지 않았으니까.



218로드니는 부드러운 사람이기에 그녀와 싸우지도 그녀를 억누르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 완전한 남자가 아니었다. 로드니·····. 난 그것을 그에게 돌려줄 수 없어. 보상해줄 수 없어. 하지만 로드니를 사랑해. 정말로. 그리고 에이버릴과 토니와 바버라를 사랑해. (하지만 충분히는 아니었다 - 그게 답이었다 -)

223그녀는 얼마나 끔찍하게 잘난체하는 인물이었던가. 사막에서 밀려들었던 날카로운 혐오감이 지금도 남아 있었다. 자기혐오. 새로이 겸손한 마음이 생겨났다.



224이제는 도마뱀들이 구멍에서 쑥 나와 그녀를 위협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만났고 자신을 인정했다.

228~229친구들은 제게 ‘사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어’라고 해요. 터키인, 아르메니아인, 레반트인들처럼 말이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요. ··· 조앤은 자기도 모르게 이 묘한 부인에게 매료되었다.



229혹시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을 보는 중인가요? 엄청난 감정을 경험하거나 그런 감정을 지나쳐온 것 같아요. 슬픔? 아니면 엄청난 행복?



239···특이한 러시아 부인조차 마지막에는 지겨워졌다. ··· 부인이 조앤을 완전히 촌사람처럼 느끼게 했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누구와 견줘도 떨어지지 않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그 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 자체가 몹시 바보스러웠지만.



245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자식들이 그녀를 싫어한다는 상상, 로드니가 레슬리 셔스턴을 사랑했다는 상상. ···불쾌하기 짝이 없는 모든 일. 그 상상들은 모두 사실일까? 그녀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 로드니, 용서해요. 난 정말 몰랐어요. 로드니, 나 왔어요. 집에 돌아왔어요. 어떤 패턴으로 할까. 어떤 것이 낫지? 조앤은 선택해야 했다. ···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나 왔어요, 로드니. 집에 돌아왔어요."



249엄마가 여기 오겠다고 전보를 보냈을 때 전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어요. ··· 전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별로 저항도 못했어요. ··· 사랑하는 아빠, 아빠 같은 분을 제 아빠로 두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사랑하는 바버라.



249그가 갑자기 죽는다면 조앤이 서류를 정리하다가 이 편지를 볼 테고, 아마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공연히 상처를 주고 절망에 빠뜨릴 필요가 없다. ··· 로드니는 방 한 구석으로 가서 바버라의 편지를 벽난로에 던졌다.



254"저기, 저는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라고 (레슬 리가) 말했다.



255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햇어. 로드니는 생각했다. ···그와 레슬리와 함께. 그리고 떨어져서. 고통과 가슴 타는 갈망. 두 사람은 1미터 남짓 떨어져 앉았다. 그 보다 가까우면 안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슬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259"음······ 코페르니쿠스예요? 귀한 그림인가요?" 조앤은 갸웃하며 그림을 보다가 물었다.

"나도 몰라." 그는 생각에 잠긴 듯이 같은 말을 되뇌었다. "나도 전혀 모르지……"



261"그래, 당신에게는 내가 있지."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맨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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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1-1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ㅁㄴ만에 만나는 리뷰군요. 역시 명징하네요..

다크아이즈 2017-01-12 07:16   좋아요 0 | URL
리뷰랄 것도 없어요ㅠ 눈 오신다니 곰발님도 단도리 잘하고 길 나서시길요~

2017-01-11 2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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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07: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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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16: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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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09: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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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16: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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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18: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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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15: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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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5: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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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08: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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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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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2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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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4 1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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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1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01-2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새해엔 소망하시는 일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7-02-02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2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2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예문 / 2012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조화석습(朝花夕拾) -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라는 제목의 루쉰 자전적 산문집이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냉큼 주워 향기를 맡지 말고, 그 운치를 충분히 음미하고 저녁에 가서 비로소 꽃을 주워 드는 마음이랄까. 그런 느긋한 맘으로 당신의 책을 읽어 달라는 뜻일까. 아침에 일어난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게 아니라 저녁까지 기다려 현명하게 대처하자, 뭐 이런 뜻도 되겠다. 결실을 위한 기다림, 깊은 사유,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등의 의미로도 생각해봤다.

 

   루쉰만큼 근대 중국 상황 개조자를 자처한 이도 드물다. 21세기에 20세기 중국(중국 근대사의 암울함)을 얘기하는 시대적 역행에서도 어쩜 이리 얻을 게 많은지. 보편타당한 통점이 담겨 있는 어록들이 폐부를 찌른다. 루쉰의 시대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자국상(?)을 그의 글을 통해 확인한다. 과거이지만 결코 지난 게 아닌, 현재형 일침이 지금 우리 상황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폐부 깊숙이 느낀다.

 

   현재 우리 상황에서 루쉰 같은 사상가가 나온다면 세상의 반응은 어떨까 하는 흥미로운 생각을 해봤다. 패배자 의식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고, 선지적 통찰가라고 추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분법적으로 그를 바라보는 눈과 상관없이 그는 난 사람이다. 학습된 악습과 게으른 미몽에서 헤어나게 하려는 중국인들의 구원 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니.

 

   왜곡된 진실이나 주권자로서의 뭉개진 자존심을 제대로 곧추 세우기엔 한두 명의 루쉰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새기게 된다. 청년 정신, 깨어있는 지성을 향한 부단한 외침에 메아리가 미흡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17(한 사람이 죽는 것은 큰 일이 아니라는 루쉰의 말에) L은 기분 나빠하며 말했다. "그것은 자연의 말이지, 사람의 말은 아니네. 자네 조심해야겠네." 나는 그의 말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21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면서 괴상해지고, 노년에서 죽음을 맞기까지는 더욱 기상천회하게 변해 소년들의 길을 막고, 소년들이 호흡하는 공기를 자신들이 다 마셔버리는 인간들 말이다.

23청년들은 깊은 웅덩이를 메워 자기가 갈 수 있도록 해준 나이든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자기가 메운 깊은 웅덩이를 지나 멀리멀리 나아가는 청년들을 고마워한다.

30성인이 되더라도 오직 과거의 습관을 그대로 추종할 뿐, 그 역시 자식을 만드는 도구일 뿐, 인간의 부모가 되지 못한다.

31우리 중국에는 자식의 아버지는 많다. 그러나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인간’의 아버지다.

34먼저 자신에 대해 논평을 해야 하고 거짓이 없어야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으며 그래야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떳떳하다.

49자녀를 해방시키려는 부모는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더더욱 합리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개조해야 한다.

51결사적으로 효도를 권장한 것도 사실상 효자가 드물었음을 증명한다. 위선적인 도덕만 제창할 뿐 진정한 사람들의 정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53자녀들을 내버려둔 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거나 <효경>을 읽으라고 윽박지르고 옛날 가르침을 배워 자신을 희생하라고 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낡은 도덕, 낡은 습관, 낡은 방법의 책임이여 생물학적 진리 탓이 아니다.

54중국의 각성한 사람들은 어른을 따르면서 나이 어린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있다.

61노라를 위해서는 돈, 고상한 말로 경제가 제일 중요합니다. 남녀 간에 동등한 힘을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 합니다. 참정권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격렬한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경제권을 요구하는 것은 참정이나 여성해방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번거롭고 어려울지 모릅니다.

65경제적인 면에서 자유를 얻으면 그것으로 인형이 아닐까요? 역시 인형입니다. 다만 남에게 조종당하는 일이 적어지고, 자기가 조종할 수 있는 인형이 될 수 있습니다.

67아주 커다란 채찍이 등을 후려치지 않는 한 중국은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 채찍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든 나쁘든, 어쨌든 분명히 내려칠 것입니다.

79놀이는 어린이들의 가장 정당한 행동이며 장난감은 어린이들의 천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생 연을 망가뜨린) 정신적 학살의 광경이 불현듯 눈앞에 떠올랐고 내 마음도 납덩이로 변해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79그런 일이 있었어요? 동생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81나는 침묵할 때 충만감을 느낀다. 나는 입을 열자마자 공허감을 느낀다.

95용감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빼어들고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 향한다. 비겁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빼어들고 자기보다 약한 자를 향한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민족에게는 아이들한테만 눈눈을 부라리는 영웅들이 수두룩하다. 그 비열한 무리들!

96무엇을 사랑하든 독사처럼 칭칭 감겨들어라. 원귀처럼 매달려라. 낮과 밤이 없이 매달리는 자라야 희망이 있다.

119많은 인부들이 이 장성 때문에 고역에 시달리다 죽기만 했다. 장성 덕분에 오랑캐를 물리친 적은 없다. 나는 언제나 장성이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다. 언제쯤 장성에 새 벽돌을 더 보태지 않아도 될까?

120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도가에서 말하듯 그렇게 초연할 수는 없는 일. 오히려 욕망의 덩어리다. 욕망을 차마 정면으로 드러낼 수 없기에 인간은 온갖 음모와 술수를 동원한다. 이로 인해 날로 비겁해진다.

123승리의 조짐이 보이면 와, 하고 몰려들고, 실패의 조짐이 보이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간다.

123우승자는 당연히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뒤떨어졌으되 기어이 결승점까지 달려가는 주자와 그런 주자를 비웃지 않고 진지하게 보는 관객, 그들이야말로 중국 미래의 대들보들이다.

125우리는 너무도 쉽게 노예가 될 수 있으며, 노예가 된 뒤에도 매우 즐거워한다는 점이다. --줄곧 중국인들은 ‘사람’의 자격을 획득한 적이 없다. 잘해야 노예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노예보다 못했을 때도 많았다. 낡은 것이든 새것이든 어쨌거나 규칙을 제정하여 그들을 노예의 궤도에 올려주기를 바란다.

129노예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한 시대, 잠시 안정되게 노예가 되었던 시대.

135중국인들은 열등한 존재이기에 원래대로 사는 것이 어울린다면서 중국의 낡은 것들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

135(외국인들이) 자기 여행의 재미를 더하려는 사람들로 중국에서는 변발을 보고, 일본에서는 게다를, 고려에서는 갓을 보고, 복장이 똑같으면 재미가 없다고 여겨서 아시아의 서구화를 반대한다. 참으로 가증스럽다.

135요컨대 받들어 올림을 받는 것들은 십중팔구는 좋은 것이 아니다.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일시적 안일을 꾀하기 위해 여전히 받들어 올린다. --금송아지를 바라는 자에게는 황금쥐는커녕 죽은 쥐도 주지 말아야 한다. 복을 저절로 굴러 들어오게 하는 길은 내려파는 것이다.

149순하다는 것은 무능하다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것이니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다. (물에 빠진 개를 동정심 때문에 살려주면 화를 당하기 쉽다는 말의 우회.)

153선량한 사람들은 용서하라는 그 말이 옳다면서 악인을 구해준다. 그러나 악인들은 구제되고 나서, 자신들이 이익을 보았다고 생각할 뿐, 결코 회개하지 않는다. 얼마 안 가서 빛나는 명성을 되찾게 되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못된 짓을 한다.

156개혁가들만이 아직도 꿈을 꾸고 있으며, 늘 손해만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아직도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후, 이러한 태도와 방법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159선각자는 늘 고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으며, 동시대인들에게 박해를 받는다. 큰 인물도 항상 이러하다. 그가 사람들로부터 공경과 예찬을 받으려면, 반드시 죽거나 침묵을 지키거나 아니면 눈앞에 보이지 말아야 한다.

162먹으로 쓴 거짓이 피로 쓴 사실을 가릴 수 없다.

186온순한 것이 발전하여 무슨 일에서나 온순하기만 하다면, 이것은 미덕이 아니라 바보짓이라 해야 할 것이다.

200자기는 남에게 위해를 가하면서도 남의 보복을 받는 것을 두려워 관용이라는 미명으로 기만하는 것은 아닌가.

207고슴도치는 학습에 의해 마침내 적당한 간격을 발견하고, 이 거리를 유지하며 가장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사교의 필요 때문에 한 곳에 모여 살고, 또한 각기 싫어하는 많은 성격과 흉한 결함 때문에 떨어져 산다. 그들이 마침내 발견한 것은 ‘거리’다.

258더 이상 군벌을 위해 신선한 요리를 만들어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와 같은 청년들을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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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0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3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당 서정주 전집 1 : 시 - 화사집.귀촉도.저정주시선.신라초.동천.서정주문학전집 미당 서정주 전집 1
서정주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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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기시가 좋더라 

  친일 행각, 기회주의자, 변절주의자로서의 시각은 잠시 보류하고 읽었다.

  흔히 미당의 시세계는 3단계로 나눈다.  화사집 때의 시기, 귀촉도의 시기, 신라초와 동천의 시기로. 누가 뭐래도 난 분화구 같고 관능미가 넘치던 화사집의 시기가 젤로 와닿는다. 화사집에 실린 자화상·문둥이·화사〉 등의 시는 덧댐도 없고 눈치 보지도 않는다. 탐욕도 없고 계산도 보이지 않는다. 진격의 옷소매 뒤에 수줍은 불길이 맹렬히 타오르는 걸 느낀다. 

  2단계인 귀촉도의 시기는 내게 덜 흥미롭다. 동양적인 구도의 의지와 내면 탐구, 전통적 정서 등은 그 시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초기 시의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국화옆에서그 시기의 시가 비교적 세간에 더 많이 알려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3단계로 알려진 신라초동천의 시기는 다분히 의도적 시적 형상화의 시기로 느껴진다. 신라 정신 계승과 동양 사상 및 불교 탐색의 시기는 시가 '와서' 쓴 것 같은 초기 때에 비해 시를 하나의 사상처럼 만들어 쓴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마재 신화 이후로는 어린 시절  또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풍광을 짚어내어 한국적 정서를 확대해나갔다. 완숙미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초기시를 읽을 때의 손등 위에 얼음이 떨어지는 듯한 쨍한 느낌은 덜했다. 광맥 같은 완숙미도 초심의 염결성을 이기지는 못한다는 게 시집을 훑는 내내 들었다. 

 

 

   2. 시와 삶은 다르더라

  서정주는 국가다, 라고 고은 시인이 말할 정도로  시적 형상화에 있어서는 천의무봉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럼에도 고은 시인이 스승인 미당의 행보에 대해서만은 비판할 수밖에 없듯이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뛰어난 시인이 꼭 훌륭한 삶을 사는 건 아니니까. 일제를 찬양하는 10여 편의 시와 소설, 비평문을 남겼고, 독재자 이승만을 기리는 이승만 전기를 썼으며,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베트남 파병을 촉구하는 시를 발표했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설 때는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그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전두환의  56세 생일에는 축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고, 소극적인 자세로 가담했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다음 두 시가 보여주고 있다. 너무 나가 버렸다.

 

   예시1)송정(마쓰이) 오장 송가 -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카제 특별공격대원 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져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예시2)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잘사는 이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육천만동포의 지지를 얻으셨나니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1987)

 

 

 3. 국정농단 사태를 예언했더라 

  - '순실과 그네'가 등장하는 시를 읽다가 빵 터졌다.

 

223편지 - 서정주

   

내 어릴 때의 친구 순실이

생각히는가

아침 산골에 새로 나와 밀리는 밀물살 같던

우리들의 어린 날,

거기에 매어 띄웠던 그네의 그리움을

 

그리고 순실이

시방도 당신은 가지고 있을 테지

연약하나마 길 가득턴 그 때 그 우리의 사랑을.

 

그 뒤,

가냘픈 날개의 나비처럼 헤매 다닌 나는

산나무에도 더러 앉았지만,

많이는 죽은 나무와 진펄에 날아 앉아서 지내왔다.

 

순실이

이제는 주름살도 꽤 많이 가졌을 순실이

그 잠자리같이 잘 비치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시방은 어느 모래사장에 앉아 그 소슬한 비상의 별빛을 펴는가

 

죽은 나무에도 산 나무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난들에도 구렁에도 거의 다 앉아 왔거든

이젠 자네와 내 주름살만큼이나 많은 그 골진 사랑의 떼들을 데리고

우리 어린 날 같이 다시 만나세

갓트인 연봉우리에 낮 미린내도 실었던

우리들의 어린 날 같이 다시 만나세

 

 

  4. 시 맛보기 - 밑줄긋기로 대신

 

27자화상 -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1937년 23세 추석, 1935신건설?)



31화사(花蛇) -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기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22세, 1936년)



85귀촉도 -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128신록 - 어이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 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번 날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과 같은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135나의 시 - 어느해 봄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의 부인을 모시고 성안 동백꽃나무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듯이 앉어 계시고, 나는 풀밭위에 흥근한 낙화가 안씨러워 줏어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놓았습니다. 쉬임 없이 그짓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그뒤 나는 연년히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들을 주서다가 디리던 ― 그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어줄 이가 땅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내가 줏어모은 꽃들은 제절로 내손에서 땅우에 떨어져 구을르고 또 그런 마음으로 밖에는 나는 내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



241동천 –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265선운사 동구 –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286한양호일 - 열대여섯짜리 소년이 작약꽃을 한아름 자전거 뒤에다 실어 끌고 이조의 낡은 먹기와집 골목길을 지내가면서 연계같은 소리로 꽃사라고 웨치오. 세계에서 제일 잘 물디려진 옥색의 공기 속에 그 소리의 맥이 담기오. 뒤에서 꽃을 찾는 아주머니가 백지의 창을 열고 꽃장수 꽃장수 일루와요 불러도 통 못 알아듣고 꽃사려 꽃사려 소년은 그냥 열심히 웨치고만 가오. 먹기와집들이 다 끝나는 언덕위에 올라서선 작약꽃 앞자리에 넹큼 올라타서 방울을 울리며 내달아 가오.



294가벼히 – 애인이여 너를 만날 약속을 이젠 그만 어기고 도중에서 한눈이나 좀 팔고 놀다 가기로 한다. 너 대신 무슨 풀입사귀나 하나 가벼이 생각하면서 너와 나 사이 절간을 짓더라도 가벼이 한눈파는 풀잎사귀 절이나 하나 지어 놓고 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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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6-12-2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예요. 다트 아이즈님~~
올려주신 글 반갑게 읽고, 내 어릴 때의 친구 순실이 읽을때는 ‘빵‘터졌습니다. ㅎㅎ
2017년에는 자주 뵈어요~~

다크아이즈 2016-12-25 17:20   좋아요 1 | URL
보슬비님 여여하신지요? 반갑습니다.
알라딘에서 뜨내기처럼 왔다갔다하는 신세라...
게으름이 덜해서 자주 찾기를 바랄 뿐입니다.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12-25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 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2016-12-25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6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1-06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 님 오신 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죄송...
저도 서정주 읽을 때 말씀하신 그 부분이 참 걸렸었죠.
일본어로 시를 안 쓰고 더 모국어를 고집해 출판 가능한 곳에만 발표하다 그마저 폐간되자 시를 발표하지 못한 백석과 비교되기도. 헌데 북에서 주체사상 찬양 시를 쓴 백석 시가 망가진 것도 마음 아프더라는... 시대 속에 스스로를 굽히지 않고 나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다크아이즈 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다크아이즈 2017-01-09 00:53   좋아요 0 | URL
백석이 북에서 그런 시를 썼군요. 짠하네요.
완전히 굽히지 않고 살아갈 순 없는 게 인간 한계지요.
아갈마님도 새해엔 더욱 행복하시길~

2017-01-07 0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7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7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8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0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