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짧은 생각 하나씩을 글로 옮긴다는 게 쉽지는 않다. 공사다망하여 자정이 넘어 귀가하는 오늘 같은 날에는 더 막막하다. 귀가길 차안에서도 글감들만 궁리한다. 선거일이니 대선에 관해 쓸까, 아들 학교 축제에 대한 소회를 쓸까, 아니면 낮에 토론한 ‘솔직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쓸까, 여러 갈래로 생각이 뻗친다.
이런 내 맘을 읽었는지 옆자리의 딸내미가 말한다. ‘휴학’에 대해서 한 번 써보란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딸내미와 입씨름 한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친구들 대부분이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 졸업하기 전에 한 번 이상은 휴학을 한다나. 자신도 그러고 싶다는 우회적 표현임을 금세 알아차리겠다. 딸내미에게 고리타분한 기성세대로 비치는 걸 원치 않지만 이럴 땐 나도 어쩔 수 없다. 학교를 쉬어가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는 순간, 이미 딸내미의 표정은 ‘세상 물정 모르는 엄마’라고 말하고 있다.
(딸내미는 딱히 취업 때문에 휴학해야 할 이유는 없다. 토익도 그 업종 기준점을 지나 900은 가벼이 넘겼고, 어학연수는 갔다 오면 좋겠지만 안 간다고 취업에 불리할 것도 없는 전공이다. 학점 관리나 잘하지 그건 신경 안 쓰고 엉뚱한 휴학 드립이다. 보아하니 취업 순간을 늦추고 싶어한다. 산업 현장에 빨리 나가면 청춘이 억울하다나. 내가 청춘일 때는 빨리 졸업하고 취업하고 싶었다! 한 세대 차이일 뿐인데, 우리는 확연히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어쩌랴, 우리세대의 업보인 것을.)
어학연수, 인턴, 봉사활동 등 스펙 쌓기란 이유로 대학가의 휴학은 일종의 유행처럼 되어가고 있다. 취업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유예시키고, 공부 압박을 느끼는 청춘을 잠시라도 놓아주고 싶은 욕구 때문에 그렇단다. 대학생이란 신분이 주는 암묵적 보호 그늘을 조금이라도 늘여 사회로 진출하는 시간을 그만큼 미루고 싶어 한다. 취업하기 어려운 이유가 가장 크겠고,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세대라 전반적으로 자신의 물질적, 정신적 성장 속도를 인위적으로 늦추려 하는 점도 없지 않다.
상대적으로 덜 여문 이십대를 양산한 책임은 기성세대에게 있다. 학력․학점․토익점수․어학연수․자격증 등으로 청춘을 줄 세우는 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줄을 늦게 서는 걸로 저항하는 수밖에 없다. 스펙은 이 땅을 사는 청춘들이 안아야 할 커다란 부담이다. 기기나 시스템의 성능 제반을 말할 때 씀직한 스펙이란 말이 인간에게도 접목되는 걸 보니 참으로 비인간적이라는 생각만 든다. 인간 상세 설명서를 메우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하며, 더러 휴학까지 생각하는 청춘들에게 뾰족한 답을 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계적인 이력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를 실현하기 위한 휴학이라면 백만 번이라도 좋으련만.
어미로서 할 수 있는 말이란 게 고작, 휴학은 안 돼, 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