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6년이란 영화가 “드디어” 개봉되었다. 웹툰의 영화화가 그리 낯설지 않지만 이 영화만큼은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포탈에 걸린 영화정보 밑에 주렁주렁 달린 평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공주마마 아버님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심어놓으신 “지역감정”은 징그럽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굳건히 이 나라를 차지하고 있나보다. "그때 다 쓸어버렸어야 이따위 영화는 안나오지." 같은 댓글은 충분히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2. 1년 가까이 몸을 담갔던 일터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사장이란 인간은 베트남 출장이 잦아지고 기간 또한 늘어났다고 한다. 여전히 임금은 체불상태. 다행히 언급했던 “성추행” 사태는 일단락되었으며 재발은 없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일부러 도산 혹은 파산을 신청하고 해외 도주의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받을 돈 받으면 더 이상 신경 안 써도 되겠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무자들은 한겨울을 어찌 보낼까. 가득이나 추워진 날씨에 난방을 전혀 돌리지 않아 손발이 꽁꽁 언다는데. 한여름 빵빵하게 에어컨을 틀어놨던 사장실은 아마 후끈한 히터바람이 팽팽 돌아가겠지. 도덕적 해이. 조금 유식하게 말하면 모럴해저드를 극명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한 번 개인파산한 사람이 또 다시 중복으로 파산이 가능할까?)
3. 얼마 전 건축주를 만나러 이동 중 새로 다니게 된 직장의 소장님과 차안에서 수다를 떨었다. 난 주로 듣고 소장님은 말하는 분위기. 소장님은 현재의 상태가 심히 걱정스럽다고 하신다. 극심해지는 빈부격차. 부도덕을 권장하는 사회. 더불어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교육이 이를 장려하고 있다는 개탄스런 말씀을 열거하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이 지긋하신 소장님은 속칭 “수구”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자연스럽게 나온 투표이야기에서 한마디 명언을 남기셨다. “제 아빠한테 나쁜 것만 배웠다면 볼 짱 다 봤지.”
4.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생각이 많아졌다. 무슨 철학자도 아니면서 말이다. 누가 봐도 악인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너무나 떳떳하게 살아가는 건 아닌 건가라는 의문이 종종 든다. 환경의 지배를 받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 환경을 유지시키며 보수시키는 것 또한 인간의 도리라고 보고 싶은데……. 요즘의 주위환경은 무섭다 못해 끔찍한 지경이다. 엽기를 넘어서 괴기의 세상이 되가는 것 같다.
흉흉한 사건,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요즘. 악인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잣대의 기준이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경계는 여러 가지로 발생할지도 모르겠지만, 통속적인 악이 더 이상 악이 되지 않는 사회인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난 눈이 싫다. 늙기도 늙었지만 비와 달리 눈이 내린 후 지저분한 마무리를 싫어한다. 한바탕 쏟아지는 소나기가 목욕탕 이태리 타월 같은 느낌이라면 펑펑 내리는 눈은 기름때 덕지덕지 낀 냄비를 설거지 한 후 손에 남아있는 불쾌한 미끈거림과 비슷하다. 더불어 눈에 대한 트라우마도 제법 있다 보니 요즘처럼 하루 멀다하고 펑펑 내리는 눈은 전혀 반갑지 않다.
트라우마 #1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 때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해 아침부터 유난을 떨었었다. 통지서를 한 손에 들고 룰루랄라 집을 나서서 저 밑에 있는 초등학교로 내리막길을 달려가고 있을 때. 난 떴다. 마이클 조단이 부럽지 않아요. 아 빌리브 아 캔 플라이 해요. 하는 느낌이 대략 4~5초간 지속되더니 무지막지한 충격음과 더불어 눈 덮인 내리막길에 사정없이 파워 밤이 작렬되었다. (주) 파워밤-프로레슬링 기술로 상대방을 들어 링에 매다 꽂는 기술. 충격도 충격이지만 비주얼과 효과음이 기가 막혀 파워풀한 기술로 통함)
30여초 어버버 벙어리 삼룡이 모습으로 말도 못하고 얼음판에 자빠져 있었고 상태를 지켜보던 지나가던 사람들이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모습까지 연출된다. 어디 크게 다친 건 없었으나 사람이 의식을 놓친다. 란 의미를 몸소 체험했던 첫 번째 경험이었다.
트라우마 #2
눈 온 다음날 운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역시나 내리막길에서 만화 속 이니셜 D의 장면을 연출하며 그대로 앞차를 추돌. 다행히(?)바른 생활 부부를 만나 별 문제없이 보험처리로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눈 깔린 날 도로상황은 마복림 할머니의 신당동 떡볶이의 비결만큼이나 며느리도 모를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트라우마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오는 날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승용차가 아니라 트럭이라는 사실과 이건 미끄러지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전복까지 갈 수 있는 상황. 더불어 고속도로라는 상황에서 어중간한 부상이 아닌 사망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사실. 무슨 무슨 재난영화처럼 눈 덮인 산꼭대기 고속도로에 무릎 밑까지 내린 눈에 차가 파묻혀 4시간을 넘게 갇혀 있었던 이야기. 아주 잠깐 베어 그릴스는 이 눈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환경에서 뭘 잡아먹었더라?를 생각했더랬다. (눈을 퍼 먹는 건 기억나는데 나머진 도통...)
이제 나도 호호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정강이와 팔뚝의 상처를 보여주며 손자에게 들려 줄 “무용담” 정도는 하나 생겼다고 애써 해석하고 싶었단 기간.
그러므로 난 정말 눈이 싫다..우아악.
꿈을 꿨다. 영화 한 편 찍은 기분이다. 장르는 재난 영화.
꿈속의 배경은 시대가 불분명하지만 주변 건물이나 사람들 옷을 보면 현재일 것이다. 단지 “석유”가 고갈 돼 버렸다는 설정이 주제라면 주제일 것이다. 모든 재난 영화에서 그렇듯 꿈 속 등장인물들은 어쩔 줄 몰라 난리들이다. 도시는 통제 불능에 빠지고 사람들은 약탈을 일삼는다. 라면 한 개에 사람이 죽어 나간다. 그 와중에 난 무슨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질서”를 부르짖다 누군가에게 얻어맞기까지 한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이네.) 헬 게이트가 열린 세상이 아마 그런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난 도시를 떠나 피난을 간다. 재미있는 건 전철을 타는데 역에서 딱 다섯 정거장 밖에 못가는 상황이다.(기름이 없어서.) 제비뽑기에 당첨 되어 운 좋게 전철을 타고 다섯 정거장을 가서 이번엔 비행기를 탄다.(지구를 떠날 기세.) 역시 비행기도 일정 거리밖에 날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비행기 티켓을 건네주며 자기 대신 타라고 한다.(이런 류의 영화에 나오는 살신성인 캐릭터 등장) 비행기는 곧 이륙하고 지상의 풍경은 살벌하다. 사방이 불바다에 시체가 널려 있다. 그 시체 위로 사람들은 물건을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옥 같은 도시를 벗어나 한숨을 돌리고 비행기 시트에 몸을 파묻고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는다. 막 잠이 들려는 찰나 스튜어디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시리얼로 드실래요? 김치찌개로 드실래요?”
어라.비행기에서 웬 김치찌개..?? 무시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또 다시 스튜어디스가 고함을 친다.
“늦었어..아침밥 시리얼로 먹을 거야? 김치찌개로 먹을꺼냐고..!!!”
둔부를 사정없이 짓누르는 고통이 엄습한다. 눈을 뜨니 마님이 서슬 퍼렇게 날 밟고 있다. 부랴부랴 아침밥 먹고 주니어 학교 데려다 주고 출근하는데…….자동차 기름등에 불이 켜졌다.
예지몽이었다.
어느 분께 주워들은 이야기로 객지에 나가 먹을 것이 마땅치 않을 땐 비빔밥을 선택하라는 훈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음식만큼은 전국 비슷한 모양새와 대동소이한 평균적인 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비빔밥이 다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강남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 직장 동료와 함께 어느 건물의 지하상가에 들어 한 끼 해결한 적이 있었다. 식당 제목이 아마 “무슨무슨 비빔밥”이던 기억이 난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땅값 비싼 강남 그것도 오피스 거리가 운집한 동네 식당이라고 하기엔 인테리어에 걸맞지 않게 내오는 음식이 비빔밥이라니. 그냥 김밥, 라면 쫄면을 팔면 딱 어울리는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메뉴였었다. 더불어 한참 점심시간에 손님이 정말 뜨문뜨문 민망할 정도로 앉아 있는 모습에서 애당초 기대를 접었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내 앞에 내온 비빔밥은 기대 이상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일단 허연 플라스틱 그릇이 아닌 제법 뜨끈하게 덥혀 논 누르스름한 방짜 유기에 음식이 담겨져 나온다. 밥 위에 올려 진 고명은 때깔도 곱다. 각종 나물들이 각자의 색깔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으며 비비기 전 살짝 집어 먹었던 고명에선 적당한 풋내와 더불어 식감 자체가 제대로 살아있었다. 모든 것이 기대치 이상이었으나 그 기대를 넘어서는 것은 고추장이었다. 밥 위에 올려져 나와 있지 않고 다른 방짜유기 종지에 담겨져 나온 고추장은 일반 고추장과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살짝 찍어 먹어 보니 참 오묘하다. 너무 맵지도 짜지도 달지도 않으면서도 식욕을 확 끌어 당겼다. 고추장을 적당량 섞어 열심히 비벼 정신없이 “퍼”먹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었지만, 음식 맛이 좋다 보니 섭취가 아닌 흡입의 수준이었다.
몇 차례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언제나 그 수준의 맛을 유지해주는 실력을 가졌었기에 입맛 없을 때 종종 찾아 갔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가 그 동네에서 사회생활을 마감했을 때 자연스럽게 발길을 끊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맛있는 비빔밥만 마주친다면 그다지 불만은 없겠으나 그렇지 못한 비빔밥도 종종 마주치곤 한다. 시금치나물이 분명 상했음에도 안상했다 우기는 밥집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모님이 말씀하졌듯 비빔밥은 고만고만 평균 이상은 해줬던 메뉴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비빔밥이 어쩌다 하루아침에 고상과 우아의 상징이 돼 버린 것 같다 사실 말장난의 극치 같기도 하지만 졸지에 구국의 결단, 민족 단결의 상징이 돼 버렸으니 말이다.
“다른 재료들이 고추장과 참기름이 함께 섞여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며 융합해서 하나가 될 때 시너지효과, 새로운 발전. 도약. 아름다움이 나타날 수 있는 비빔밥”
아 이정도면 튀르푸, 캐비어, 푸아그라가 부럽지 않다. 거기다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준의 식재료에서 저런 아름답고 거룩한 뜻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확실히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평범한 비빔밥도 저리 변신할 수 있나 보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수많은 음식들에게 찬란한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몇 개 들어보자.
1)부대찌게-서양의 문물인 햄, 소시지와 일본문화가 원류인 라면과 함께 한국 고유의 양념이 만나 글로벌한 시대에 맞춰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는 한국인의 진취적인 기상을 내포하고 있는 전 세계화된 전대미문의 부대찌개.
2)뼈다귀감자탕-딱딱한 돼지 등뼈 속에 파묻힌 고단백 살코기를 젓가락으로 발췌하여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써 정밀과학과 반도체 산업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위상을 상징할 수 있는 인터내셔널하며 트레지스터한 뼈다귀 감자탕.
3)수제비-밀가루와 물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믹싱 되어 찰진 글루틴의 효과를 100% 뽑아낸 음식으로 이는 우리 민족의 타 문물의 흡수와 더불어 더더욱 업그레이드되어 문화를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을 표현해주는 음식.
이렇게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뱀꼬리 :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정말 화난다.
고백하건데 난 로큰롤 베이비다.(헉!) 내 또래 대부분 남자들이 그러하듯 내 젊은 시절은 헤비메탈과 데스메탈, 하드록까지 소음이라 규정지어질 수 있는 음악 속에서 보냈다. 저항정신이라 말할 수 있는 로큰롤의 시대를 그대로 관통했다. 하지만 세월은 지났고 이제 로큰롤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뒤 이어 보이밴드와 팝이 세상을 점령하더니 이젠 힙합이 대세인 시대를 살고 있다.
음악이라고 별 수 있나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이제 대부분의 가수들은 밴드를 대동하지도 않고 마이크를 붙잡고 공연 앞좌석 청중들에게 아밀라아제 그득한 타액을 흩뿌리지도 않는다. 현란한 댄스가 그 자리를 차지했고 인형 같은 외모가 무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뮤지션은 사라지고 엔터테이너들의 시대가 온 것이다. 더불어 각종 기계의 힘을 빌려 요즘 듣는 노래들은 왠지 그 노래가 그 노래 같아 보인다. 과거로 돌아갈 방법이야 철 지난 앨범을 들으며 흥얼거리는 정도였는데 요즘 불고 있는 복고 바람 덕인지 난 다시 록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응답하는 건 1997년만은 아니었나 보다. 10년을 더 넘어가면 이 영화가 등장한다.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화 하였고 2시간 넘게 흘러나오는 음악은 그 시대를 점령했었을 부류들이다. 뮤지컬 맘마미아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바의 노래로 도배가 되었다면 이 영화 속 노래들은 록의 시대에 쉽게 접하고 귀에 잘 감기는 음악들의 편곡이 돋보인다. 스토리의 진부함이나 결말의 일관적인 형태는 논외로 치고라도 영화 자체는 귀를 즐겁게 해준다. 오리지널 곡이 아닌 기존의 곡을 사용하여 무리수를 줄이고 모험을 배제시켰으나 서로 다른 두곡을 혼합하여 새로운 느낌을 주는 참신함이 존재한다.
맘마미아가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포진시킨데 비해 이 영화는 특별한 주목을 받는 배우는 사실 존재하진 않는다.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아주 퇴폐적이며 느끼하신 톰 아저씨(톰 크루즈)의 존재가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어쩜 그리도 영화에서 현실 속 자기 모습을 비하해주시는지..) 이런 핀 포인트가 확실하게 중심을 잡고 등장하는 인물들은 영화 내내 감칠 맛 나는 음악을 들려준다. 언어 문화권이 틀린 이국에서도 제법 흥얼거릴 정도로 선곡은 꽤 대중적인 포석을 둔만큼 록을 좋아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보인다.
paradise city - Guns N Roses
Just like paradise - David Lee Roth
Nothin' But A Good Time - Poison
Jukebox Hero - Foreigner
I Love Rock & Roll - Joan Jett & the Blackhearts
Hit Me With Your Best Shot - Pat Benatar
More Than Words - Extreme
Heaven - Warrant
Wanted Dead Or Alive - Bon Jovi
I Want To Know What Love Is - Foreigner
I Wanna Rock - Twisted Sister
Pour Some Sugar On Me - Def Leppard
harden my heart - quarterflash
shadows of the night - Pat Benatar
Here I Go Again - Whitesnake
Can't Fight This Feeling - REO Speedwagon
Any Way You Want It - Journey
Every Rose Has Its Thorn - Poison
Rock You Like A Hurricane - Scorpions
We Built This City - Starship
We're not gonna take it - Twisted Sister
Don't Stop Believin - Journey
간만에 영화 한 편 보고 심장이 뜨끈뜨끈해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런가. 난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록 스피릿”으로 충만하다.
We Built This City VS We're not gonna take it
Any Way You Want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