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효진의 공책
공효진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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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책을 썼다고 한다. 흥, 내가 서점에서 우연찮게 마주쳤던 연예인들의 책은 그리 호감이 가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약관 20대의 나이에 한껏 멋을 부린 사진으로 도배된 ‘자서전’을 보고 기가 막힌 적이 있었다. (아마 그 책의 주인공들 스스로가 손발이 오글오글 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내용은 패션과 인테리어, 아니면 미용과 다이어트 트렌드에 관련된 흔히 눈에 보이는 시각적 이미지를 최대치로 충족시켜 주는 어찌 보면 속이 비어도 한참 비어버린 강정 같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근래는 많이 다양화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자신의 직종에 맞춘 그 부류의 범주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사상과 철학이 보이는 어느 정도 무게감을 주는 도서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내가 구입을 했던 책은 전무하다.

아마도 리뷰를 쓰는 이 책은 내가 그쪽 직종에 관련된 사람들이 냈던 도서 중엔 최초일 것이다. 이건 다분히 개인적인 호감의 차원을 떠나 요즘 환경관련 책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내 독서방식과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내가 감히 판단하는 배우 공효진은 근래 보기 드문 볼매(볼수록 매력 있는) 레벨에 올라서 있는 배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구입한 책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공효진이란 인물에 대해 다른 각도와 다른 시선을 제공해준다. 환경이라는 테마를 주제로 그녀의 직업군이 가지고 있는 최고 장점인 대중과의 공감을 부담 없이 끌어올려준다. 주제넘게 오버를 한다면 환경이란 골치 아픈 화두를 조금은 편안하고 거북하지 않게 접근할 수 있어 보인다.

급진적 표현이 난무하는 환경서적은 많이 존재한다. 심각한 상황까지 도달했기에 그 시급함에 강력한 문구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들과 갑갑한 현실의 가득함에 숨이 막힌다면 아마도 공효진의 공책은 다급한 현실 속에서 조금은 부드럽게 우리가 직시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해가는 시작을 제공할 수 있어 보인다.  



그것도 볼수록 매력 있는 배우 공효진이 한 손엔 강아지를 안고 생글생글 미소 지으며 ‘우리 함께 해요.’ 라며 손을 내미는데 나 같은 아저씨들은 그 손을 덥석 잡고 네! 라고 대답하는 건 인지상정 아닐까. 오해할까봐 미리 실드 치는데 흑심 따윈 없다규.

뱀꼬리 : 소비지향적인 직종에 있는 그녀로써는 이 책은 일종의 모험이고 무리수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용기에 만세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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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3-0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효진 씨는 임순례 감독의 '소와 여행하는 방법'에 출연하면서 동물과 환경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임순례 씨의 동물사랑운동에도 공감하고...그런데 임순례 씨에게 개고기 민족주의자들이 악플을 많이 달더군요.

Mephistopheles 2011-03-05 16:33   좋아요 0 | URL
제 입장은 "개를 어떻게 먹어 아우 끔찍해..."라며 유난을 떠는 부류도 아니고 "개 먹는 걸 가지고 뭐라 그러는 것들이 이해가 안가!"라는 부류도 아니래요..^^ 지극히 개인의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뿐이라죠. 그러고 보니 공효진씨는 책에서 사람을 보는 기준에서 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일단 좋게 볼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더군요. 누군가의 생명을 책임지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더라고요..^^

하이드 2011-03-04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아시아 편집장(찌라시와 구분되는 리얼 연예 기사 바닥에선 좀 유명한) 이 그동안 인터뷰한 많은 연예인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연예인에 공효진씨를 꼽더라구요. 자기가 만나본 사람들 중 자신의 일에 대해 마인드가 굉장히 뚜렷하고 프로패셔널하다고.

무튼, 그 편집장의 내공도 장난 아니고, 그간의 공력도 장난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꼽는 연예인이 공효진인 것이 대단하게 느껴지더라구요.

Mephistopheles 2011-03-05 16:36   좋아요 0 | URL
아마 공효진이라는 배우에게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녀의 몸에 새겨진 타투을 봤을 꺼에요. 전 발목 쪽에 별은 봤었는데 이 책을 통해 손가락에 있는 "Peace"을 처음 봤더랬죠. 아마도 공효진씨는 은근 히피기질이 강한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똑부러져보여요. 아마 그 편집장이라는 분의 표현이라면 어쩌면 일반 평범한 사람들은 공효진씨 앞에선 그 오오라에 꽤나 흠짓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주 2011-03-04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효진도 환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군요. 저도 쌀뜨물로 설거지하고 쓰레기 적게 만들어내기같은 것들도 열심히 실천하며 살지만 역시 저는 배우가 아니라서 관심을 끌지 못하는군요ㅎㅎ

Mephistopheles 2011-03-05 16:3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냥저냥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연예인이라고 생각했는데....이 책을 보고 관심 그 이상으로 실천을 하는 모습을 보고 완벽한 볼매인으로 공효진씨를 생각하게 되버렸다죠. 그리고 진주님의 환경실천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지라도 배춘몽 여사의 환경실천은 소문이 자자하다는 설이 있습니다...ㅋㅋ

잘잘라 2011-03-0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점에서 이 책 보고 '또 연예인 책 하나 나왔군' 그러고 심드렁하게 지나쳤더랬느데, Mephistopheles(철자 틀릴까봐 타이핑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군요. ㅋㅋ)님의 소감을 읽어보니 제가 섣부른 판단을 했네요. 다음에 서점 갈때 한번 챙겨봐야겠는걸요^^

Mephistopheles 2011-03-06 15:10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서점에서 살짝 읽어보며 살짝 놀랐었다죠. 그냥 관심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방법까지 조목조목 알려주더군요. 단지 연예인이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입견을 가진 것이 순간 부끄러워졌답니다..
 
불청객 - The Uninv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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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스트랄 하다. 한편으론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뱅글뱅글 오묘한 기분이 든다. 어찌 보면 이런 감정이 드는 이유가 접하기 힘든 비주류, B급에 대한 생소함과 국내 통신언어체로 말하자면 덕후가 아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더불어 싼티가 넘치다 못해 줄줄 흐르기까지 한다. 증상이 확대되면 심란한 기분까지 간간히 떠오른다.

이렇게 이 영화는 판단하기 오묘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 같다. 욕이 나와야 하고 후회를 해야 마땅할 영화로 분류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차마 그런 잔인한 짓은 못할 것 같은 묘한 동정이 솟아오르기까지 한다.

분명 이 영화는 막장 중에 개막장,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귤 까먹다 얼어 죽을 만큼의 썰렁함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상식을 파괴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설프지만 공만 들이면 최고 수준의 SF가 될 것이고, 스토리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결론이 예상되는 상투적 전개를 벗어나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소극적인 사회비판을 이 영화에서는 보란 듯이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대 자본에 억눌리는 인간 본성, 출세지상주의, 단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 국내 정치에 대한 서슬 퍼런 비하까지...이 모든 비판을 사회 루저라 칭할 수 있는 백수 삼총사가 하나하나 실현하고 있다. 지금까지 거대 영화사에 출연료 억 소리 나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블록버스터급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모든 표현이 난무한다.  



등 가려워 긁어 달랬더니 여기? 여기? 하며 주변만 살살 긁어 주는 게 아닌 확실한 부위에 손톱을 세우고 박박 시원하게 긁어준다고나 할까. 단 긁어달라는 입장에서 그것이 살 껍데기 벗겨내고 손톱자국 남기는 경우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차마 권하지는 못하겠지만 흔히 통신에서 말하는 DC(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을 즐겁게 볼 수 있는 입장이라면 시청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고 보고 싶다.

이 영화는 담배 한 갑 보다 조금 비싼 현금과 어느 정도의 시간이 아깝다면 외면하는 게 상책이다 그렇지 않다면.....영화를 보며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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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치 2011-01-07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겐 이 영화가 2010년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 극장에서 응 감독 싸인도 받았어요! 길이길이 보전할 생각.

Mephistopheles 2011-01-09 01:42   좋아요 0 | URL
평이 극명하게 갈릴 수 밖에 없는 영화같아요. 또치님 같이 찬사를 아끼는 분들도 있고 최악의 단어를 써가며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메리 크리스마스 - Merry Christma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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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지구상 어딘가 아직도 총알이 날아다니고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상황에서 사람들의 생명은 하나하나 이 땅을 떠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진 않았지만, 더불어 경험해보고 싶지도 않은 전쟁이라는 환경은 경험해본 사람들은 공통적인 단어를 제시하며 표현한다.

지옥.

사람이 사람이 아닌 공간. 정육점에 매달린 고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육체가 산산이 부서지는 공간. 더불어 살아 있어도 영혼마저 파괴되는 공간. 그들은 그렇게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최상급의 학살현장을 지옥과 비유하곤 한다.  

 

영화의 배경인 1914년. 유럽은 이런 지옥이었나 보다. 통칭 제 1차 세계 대전이라고 명명한 이 공간 속 프랑스 북부 지역에선 독일군과 프랑스, 스코틀랜드 연합군이 대치상황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양상이 참호전 이었던 만큼 영화 속 군인들 역시 깊숙한 참호 속에 은신하며 밀고 당기는 지루하고 소모적인 공방전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시계바늘은 돌아간다. 이들이 전선에서 맞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변화가 시작된다. 적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걸 맞는 평화적 방법이 모색된다. 단 하루라는 시한을 걸어 놓은 채로...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존재한다. 바로 어제까지 서로에게 총질을 해대던 인간들이 단지 크리스마스라는 이유 때문에 단 하루의 휴전을 채결하고 총이 아닌 술잔과 음식을 서로 주고받으며 인간적인 정을 나누는 장면은 지옥이라고 표현되는 전쟁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모습을 보여준다. 휴전이 끝난 후 이런 어색함은 최고조를 달린다. 서로에게 포격 시간을 알리고 그 시간만큼 자신들의 참호에 잠시 피신해 있으라는 조언이 오가고 고맙다.를 연발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아무리 영화라지만 지나친 설정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든다.

결국 전쟁 중 이들이 벌인 평화적인 행동은 상부에 적발된 후 각자 다른 전선으로 강제적으로 전출되며 이 짧은 평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더불어 영화의 마지막 시커먼 화면에 남겨진 하얀 글씨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진정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 당시 전쟁 속에서 국적을 떠나 형제애를 나눴던 모든 군인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결국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지나친 묘사가 있을 지라도 그 당시 전선에 배치된 일부 병사들은 크리스마스 날 국적을 떠나 서로를 보듬고 위로해주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실화는 꽤 진한 여운을 남기게 해주었다.

영화를 본 후 뜬금없이 우리나라 소설 중 ‘단독강화’가 떠오른다. 국군병사 ‘양’ 과 인민군 병사 ‘장’의 잠깐의 휴식과 평화. 하지만 소설의 결말은 비극적이었던 기억. 더불어 떠오르는 ‘JSA공동경비구역' 의 허무하며 비극적인 결말.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이 기적 같은 휴머니즘과 우리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 같다. 우리는 지금도 누군가가 주장하는 ’주적‘과 대치상태이며 전쟁을 잠깐 쉬고 있는 시기니까. 더불어 위정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왠지 화해와 평화와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고 있다. 이 영화 같은 기적을 바라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요즘 이 땅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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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0-12-27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영화 감동적이죠. 더군다나 실화라니.

Mephistopheles 2010-12-27 10:01   좋아요 1 | URL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전쟁터에 내팽겨쳐도 로맨스와 휴머니즘이 남아있었나 봅니다. 더불어 적에 대한 예절까지...^^

마녀고양이 2010-12-27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화해와 평화는 점점 멀어지는 듯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죽어라 싸우다 크리스마스 하루 화해한게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요?
다음 날이면 또 죽어라 싸울텐데요. ㅠ

Mephistopheles 2010-12-27 10:00   좋아요 1 | URL
영화는 그 짧은 휴전의 과정을 거친 후 전쟁을 하지 않아요. 다음날엔 무인지대 혹은 자신들의 참호에 방치되어진 전우들의 시신을 서로 챙겨주고 장례를 치뤄줘요. 그 다음날엔 독일군이 연합군에게 10분 후 그쪽 진지에 포격을 가할 예정이니 이리 와서 피하시라고 하고 그 반대 상황 연출되고. 마녀고양이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짧은 휴전 후 그들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하지 않아요..^^
하지만...지금은...아니겠죠..휴전이 뭡니까 그냥 서로 죽어라 싸우겠죠.

노이에자이트 2010-12-27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몇 년 전 책으로 읽었는데 이렇게 평화를 바라는데도 나와 아무 원한이 없는 이를 적이란 이유 하나로 죽여야 하는 전쟁이란 정말...기독교 문화권에서 크리스마스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영화에도 병사들이 어울려 축구경기하는 장면이 나오나요?
2차대전 중 독일군과 미군이 같은 집에서 갑자기 마주치는데 크리스마스 때라 서로 저녁을 함께 한다는 일화가 한때 리더스다이제스트를 통해 널리 퍼졌죠.

Mephistopheles 2010-12-27 17:57   좋아요 1 | URL
볼도 차고 서로 술먹으며 수다 떨고 자신의 아내 사진을 자랑하며 즐겁게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2차 세계 대전에서도 크리스마스 날 독일군과 마주친 미군이 이런 비슷한 평화로운 시기를 가졌던 기록도 존재하더군요. 그리고 비슷한 영화 '세인트 엔 솔져' 도 있습니다. 영화적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전쟁 속에 평화를 갈구하는 병사들을 보여주는 주제만큼은 잘 살렸습니다.

카스피 2010-12-27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실화는 꽤 유명하죠.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사랑의 학교란 책에서 언듯 본 기억이 나네요^^

Mephistopheles 2010-12-28 10:53   좋아요 1 | URL
제 기억이 맞다면 꽤 두꺼웠던 사랑의 학교의 에피소드 중 하나였을 껍니다. 근데 그게 1차 세계 대전 때 이야기인지 2차 세계대전 때 이야기인지 확실하진 않습니다.
 
형사 서피코 - Serpic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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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룩클린 어둡고 지저분한 아파트 복도에 한 남자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다. 불과 몇 분  전에 왼쪽 뼘을 관통하는 총상을 입은 그는 정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의 주변엔 당황한 두 남자가 뒤늦게 구조요청을 한다. 



1960년대 살벌한 브룩클린 뒷골목 어느 아파트에서 서피코 라는 인물은 그렇게 세상을 등질 뻔 했다. 다행히 그의 얼굴을 관통한 총알은 구경이 작아 한쪽 귀의 청력을 앗아가고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는 정도로 그치는 수준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 남자. 형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내면적으로는 만신창이 너덜너덜해진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갱단과의 충돌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형사라는 모습으로 보기에 사연이 깊어 보인다. 이제 영화는 타임머신을 타듯 그의 과거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알파치노 주연, 시드니 루멧 감독의 1973년 작품 ‘형사 서피코’는 이렇게 시작된다. 1972년 경찰을 퇴직한 실제 인물 프랭크 서피코의 짧지만 굵은 일대기를 빌린 영화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사물. 하지만 이 영화 속 형사는 악당들을 쓸어버리는 람보 같은 존 맥클레인(다이하드)도 8인치 매그넘을 휘두르는 쉬크한 해리 캘러한(더티해리) 같은 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실존인물을 조명한 작품이라는 특징 때문인지 지독히 현실적 모습을 보여 줄 뿐이다.

지금도 별반 다를 바는 없어 보이지만 그 시절 미국이라는 나라의 경찰 부패는 하늘을 찔렀나 보다. 범죄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납금을 받아 뒷주머니를 챙기는 경찰들이 거리를 지배했고 그들의 상관 역시 관행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들을 묵인하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본분을 벗어난 행동에 주인공의 교과서적인 모습은 결국 모난 돌이 정 맞는 형태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으로 모자라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수준까지 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그는 결국 정의라는 모토아래 내부고발의 수순을 밟게 된다.

형사 서피코라는 영화는 이렇게 당시 부패한 미국경찰의 패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솔직함을 보여주는 매력을 선보인다. 이는 주연배우 알파치노와 이런 부류의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의 실력이 십분 발휘되었다고 보인다. 더불어 과장된 영웅주의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정의를 실현함에 있어 발생할 수 있는 두려움과 고뇌를 한 인물을 통해 주기적으로 표현하며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오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커다란 개 한 마리와 쓸쓸히 부둣가에 앉아있는 주인공을 배경으로 ‘프랭크 서피코는 1972년 명예롭게 퇴직하였고, 지금은 스위스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 라는 자막은 그가 행한 정의로운 행동이 결코 그에게 있어서 해피엔드만은 아니었다는 느낌을 준다.

어렵게 이 영화를 (EBS 주말명화) 관람한 후 다음 날 장보기 위해 들린 마트 서적 코너의 한 자리를 늠름하게 차지하고 있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대 히트를 기록한 이 도서를 보여 비릿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프랭크 서피코의 시대를 훨씬 지난 지금 저런 책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있어도 ‘정의’는 과연 존재하는지 난 아직 파악조차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뱀꼬리 :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곁을 떠난 애인의 남긴 대사가 기억에 남아 뱀꼬리에 남긴다. 상납금을 거부하고 동료들을 고발하려는 그에게 그녀는 이런 말을 한다.

‘옛날 어느 왕국의 광장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왕국의 모든 사람들이 여기서 물을 마시곤 했지. 그런데 어느 날 마녀가 그 우물에 독을 타버렸지. 다음 날 아침 그 우물물을 마신 왕국의 사람들은 전부 미쳐버렸지. 단 한사람 이 물을 마시지 않은 왕만 미치지 않았었지. 그러자 왕국의 사람들은 국왕이 정신이 나가버렸다고 죽여야 한다고 봉기를 일으켰지. 결국 그들을 피해 우물가에 도착한 왕은 그 물을 마시고 미쳐버렸지. 그러자 국민들은 이제야 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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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0-11-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BS에서 이 영화를 방영한다고 해서 꼭 보고 싶었는데 조카녀석이 그날따라 안 자고 책 읽어달라 하는 바람에 흑. ㅠ_ㅠ;

Mephistopheles 2010-11-19 15:27   좋아요 0 | URL
다음 기회를 노려보심이...간격은 길지만 꼭 다시 해주긴 합니다..^^
 
들어는 봤니? 모건부부 - Did You Hear About the Morgan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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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있다. 그들의 겉모습은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경하는 이상형을 실현화 시킨 모습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먼저 서식처는 뉴욕. 그러니까 그 대단하신 뉴요커시다. 거기다 여자는 잘 나가는 부동산 중계업자, 남자는 역시 잘 나가는 변호사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두 남녀가 부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멋져 보이겠는가. 그걸 강조하기 위해 영화의 캐스팅 또한 노림수를 십분 활용한 것처럼 보인다.  



섹스 엔 더 시티로 전 세계 여성들에게 브런치의 진리와 신발 오덕후의 모습을 선사하신 캐리 브래드 쇼의 잔재를 떨쳐내기 힘든 사라 제시카 파커가 모건부부의 아내 역을 맡았고 영국식 억양이 여전히 남아있는 멋들어지고 젠틀한 신사 이미지의 휴 그렌트가 남편 역을 맡았으니, 어찌 보면 영화 속 잘 나가는 부부의 역할로는 이만한 배우들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최강의 조화를 이룬 두 남녀가 뉴욕이라는 첨단 도시에서 멋지고 아름답게 살고 있다면 애당초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리가 만무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속 이 두 남녀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속은 갈 때까지 가버린 부부관계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정도이다. 모든 원인은 남편의 외도에서 비롯되었고 그 결과에 봉착하기에 앞서 두 사람은 출산문제와 개인 간 오해와 반목으로 별거상태로 영화는 시작되고 있다. 더불어 남자가 지은 죄가 있기에 여자에게 계속 용서를 구하며 어떻게든 원만한 부부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영화 초반에 시종일관 보여준다.

이런 위태위태한 부부의 모습에 살인사건의 목격자라는 변수를 끼워 넣어주면서 결국 이런 영화들의 9할이 넘는 결론인 해피엔딩을 향해 영화는 중반부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하다시피 이 극적인 도피행각 속에 아 임 소리와 아이 러브 유를 남발하며 이 완벽한 두 남녀는 잘 먹고 잘 살았다. 로 끝을 맺는다.

상투적이고 뻔하며 지지부진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정직하게 대입시킨 나머지 영화 제목에 빗대어 말하면 ‘들어는 봤다. 이런 영화’라는 좋지 않은 평가는 불을 보듯 뻔 하지만 이런 영화에서도 건질 수 있는 무언가는 분명 존재한다.  




화려한 주인공 모건부부보다 이들이 증인보호 프로그램으로 인해 텍사스 촌 동네로 대피 후 만나게 된 장년의 보안관 부부들의 모습에서 어쩌면 이 영화에서 그나마 건질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모건부부와는 전혀 다른 오히려 상반되는 모습을 보이는 이 부부는 사는 곳도 촌동네고 행동 또한 전혀 세련되지도 멋지지도 않다. 그러나 그들이 잘나가는 모건부부보다 훨씬 더 부부로서 참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에게 이유와 구실을 대며 비난하고 서로의 사랑에 대해 신용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보안관 지라드의 근사한 참견이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을 뿐이다.

‘당신들은 사랑한다면서 왜 전부를 던지지 않는가?’

주연이 아닌 조연에게 저렇게 멋진 대사와 진리를 주워들었다는 것.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뒤바뀐 것 같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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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0-06-2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도 이런 발랄(?)한 영화를 보는군요...ㅋㅋ 우측에는 무거운 영화만 ...

Mephistopheles 2010-06-21 17:13   좋아요 0 | URL
제가 보는 영화의 기준은 우묵직 좌발랄(?)이랍죠.

머큐리 2010-06-23 06:19   좋아요 0 | URL
좌발랄을 줄이면 좌빨???

Mephistopheles 2010-06-23 13:54   좋아요 0 | URL
어머 그럼 전 이제 빨갱이라는 오명을 쓰고 수사만 받으면 되는 건가요? ㅋㅋ

마녀고양이 2010-06-21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리뷰를 보니 보라고 하시는건지 아니면 말리시는건지 조금 헛갈랍니다만.. ^^

Mephistopheles 2010-06-22 11:52   좋아요 0 | URL
음 그건 각자의 자유의지..(나만 당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