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브라운 - Harry Brow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작년 초 클린트 이스트우드(클간지옹이라고 불린다.) 감독 겸 주연의 영화를 만났었다.  그랜 토리노. 무엇하나 허투루 만드는 일이 없는 이 노장은 팔순의 나이에도 이런 에너지와 아우라를 내뿜을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였다. 한 가지 생각만을 가진 외통수 노인네가 현실사회의 문제를 묵과하거나 지나치지 않고 자기희생적인 모습을 보이며 떳떳하게 맞서는 영화는 감동을 떠나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1년이 조금 더 지난 시점에서 비슷한 주제를 가진 영화를 만난다. 배경은 미국이 아닌 영국. 그랜 토리노에서 보여줬던 사회적 문제를 보다 노골적으로 표현해준다. 마약, 미성년자 매춘, 10대들의 무자비한 폭력. 그럼에도 이들은 사회 제도권에 속해 있지 않은 미성년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공권력의 커버라인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어떠한 규제와 제재가 없으니 그들의 행동은 점점 정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이런 행동이 결국 살인을 부른다. 사회적 약자로 분류 가능한 노인을 괴롭히고 핍박하다 이에 저항하는 그을 집단 린치를 가한 후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권력은 이들에게 어떤 제재도 표현하지 못한다.

이런 배경 속에 영화 제목과도 같은 살해된 노인의 친구인 해리 브라운의 저항이 시작된다. 시작과 동기는 그랜 토리노에서 월트 코왈스키의 모습과 흡사하다. 10대 불량배의 폭력에 희생된 친구를 잃고 분노하는 해리는 그랜 토리노의 코왈스키가 이웃집 유색인종 소녀의 성폭행 사실을 알고 벽에다 주먹질을 해가며 피를 바르는 모습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더불어 그들의 공통점은 전쟁을 겪은 전직 군인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단 해리 브라운은 특전대출신.)

발단은 비슷하게 시작하나 이어져 진행되는 방법론과 결과론에서 확연한 차이점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랜 토리노에서 보여주는 월트의 행동은 자기희생적으로 생명을 산화시키는 결말로 준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반면 해리 브라운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방법을 고수한다.

폭력이 일상이며 마약과 매춘, 섹스로 얼룩진 그들에게 주글주글한 손으로 무자비하게 총알을 박아준다.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직접, 간접적인 인물을 가리지 않고 하나하나 응징해나가는 모습을 피를 칠하면서.. 허술한 공권력을 비웃고 조소하는 그들에게 법 위에 존재하는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며 강력한 응징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분명 비현실적인 모습을 내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대중에게는 표현하지 못하는 크나큰 공감을 불러와준다. 흡사 테이큰 이나 모범시민에서 보여줬던 딸을 찾기 위해, 가족의 복수를 위해 행하는 폭력에 통쾌하고 후련한 감상을 느끼는 것처럼. 



그러나 이런 부류의 영화는 말초적인 공감을 느끼기엔 충분하지만 그 이상 혹은 그 이하 무언가 심어줄 여지는 일찌감치 포기하게 하는 반발력을 가진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어느 순간부터 현실을 간결하게 이입하는 모습을 감상 중에 대입하곤 한다. 이런 경우를 따진다면 해리 브라운 역시 그냥 저냥 시간을 잡아먹기 쉬운 노익장 액션영화로 느껴지게 된다. 

단지 배우가 누구인가 하는 건 중요하게 다가온다. 클간지와 비슷한 연세를 잡수신 ‘마이클 케인(혹시라도 누구? 하시는 분들은 배트맨-다크 나이트,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을 완벽하게 보좌하는 집사 알프레드를 기억하면 될 것이다.)의 연기만큼은 각인시키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인조 강도 - The Robber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아적당조형제(我的唐朝兄弟)

이런 영화들을 종종 만난다. 분류하게 애매하며 지극히 간단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영화. 무협물이라고 하기에는 리얼하고 코미디라고 하기엔 뭔가 씁쓸하다. 블랙코미디라 불리기엔 울림의 강도도 어중간하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영화 자체만으로 많은 것을 내포하는 분위기를 자아내긴 하지만 뭔가 2% 아쉬운 기분도 든다. 그럼에도 영화 자체를 보는데 할애한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대체 정체가 뭐냐!)

시대는 당나라. 어느 외딴 산골마을에 2인조 강도가 들이닥친다. 날렵하고 언변이 유창하며 활쏘기와 무술에 능한 설십삼과 그와는 정반대적인 성향에 어떻게 보면 우직한 진육은 마을에 돌입하자마자 근사하게 어벙한 농부 하나를 털어먹는다. 그도 잠시 그냥 지나가던 관군 두 놈이 이 농부의 여식에 군침을 흘리며 강간을 시도하나 진육의 강도답지 않은 행동으로 여자를 구하내고 관군 둘을 도륙해버린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는 두 명의 강도, 이마에 떡 새겨놓은 꼰대이미지를 대변하는 마을촌장과 겉모습은 순박하나 심지 없이 움직이는 불티같은 마을 주민들이 배배 꼬이는 과정과 결국 풀어내지 못하는 결말을 보여준다.

악으로 묘사된 두 명의 강도보다 사람의 마음 속 깊이 숨겨진 어두운 면이 드러났을 때 그 실상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지 잘도 보여준다. 다행인지 이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거창한 꾸밈이나 은유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고 직설적인 방법을 취하였기에 영화를 보며 머리를 쓰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덜어준다.

단지 너무나 솔직하게 묘사해주기에 당혹할 수 있을 여지는 분명 있어 보인다. 더불어 시시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니까. 이런 아쉬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론 영화적 표현과 은유가 난무하지 않더라도 가볍게 앉아 봤던 영화에서 묵직한 뒷맛을 느끼게 되곤 한다. 아마도 그것 때문인지 이 영화를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지 난감할지도 모르겠다.

뱀꼬리1.
블로거인 어떤 분이 남겨놓은 이 영화를 우리나라 영화인 ‘웰컴 투 동막골’과 비교하는 리뷰를 읽게 되었다. 그 분이 말씀하신 동막골이 ‘백’의 이미지로 이방인을 보여줬다면 이 영화는 ‘흑’의 이미지로 이방인을 묘사하고 있다고 하셨다.(전적으로 동감한다.) 더불어 설십삼의 모습과 진육의 모습에서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하는 그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금은보화나 물질적인 부귀영화 보다 자신의 피곤한 육체를 편안하게 뉘일 수 있는 유기적인 공간을 갈망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뱀꼬리2.
호군이라는 배우가 이제야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거칠고 불량하고 교활하기까지 한 설십삼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매력적인 배우인지 뒤늦게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촌장이 언제나 떠들던 상산 조자룡의 후예라며 자신의 집안에 가보로 걸쳐놓은 갑옷을 뺏어 입는 호군의 모습에서 적벽대전 조자룡을 연기한 그의 모습을 겹쳐 보이며 혼자서 낄낄 웃을 수 있었다.  



깍아 논 조각상이나 아리따운 꽃미남이 아니더라도 그는 충분히 매력이 넘쳐나는 배우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SHIN 2010-01-07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한국 배우 중 누구를 닮은 거 같은데요.ㅋ

Mephistopheles 2010-01-07 12:26   좋아요 0 | URL
누구요 누구..그 많은 한국배우 중 대체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L.SHIN 2010-01-07 18:56   좋아요 0 | URL
그...제가 이름을 몰라서요.-_-
에이, 닮은 사람 있잖아요,왜..그..사람.( -_-)

Mephistopheles 2010-01-10 00:2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무슨 영화요!
 
소년 메리켄사쿠 - Brass Knuckle Boy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2년 전인가 쌀쌀한 날씨에 충청도 지역 출장이 잡혀 아침 일찍부터 서울역에 나갔던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대통령 유세 첫날이었다. 더욱 더 불행한 사항은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 정당의 후보 유세 첫날이었다. 서울역 광장엔 파란 물결이 넘실거리고 지금은 문화부 장관이 되신 양반의 음성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이어서 소개되는 연예계, 스포츠계 인물들이 이른 아침부터 단상에 올라와 유권자를 향해 인사를 한다. 더더욱 안 좋은 상황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역에서 만나기로 한 업체 직원이 조금 늦겠다고 1시간 정도 역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본의 아니게 너무나도 커다란 소음과 인파로 기억되는 그들의 선거 유세를 목전에서 목격하게 되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하는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서울역 광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 듣고 믿겨지지가 않았다. 장르는 펑크이며 주 활동무대가 인디무대였던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가 펑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당의 이미지 송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더불어 가사까지 참으로 지랄 맞게 개사하여 내 귀를 때리기 시작한다.

굉장히 역한 기억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비주류의 대표상직격인 펑크를 표방하는 그룹이 정 반대적인 성향을 가진 정당을 위해 자신들의 노래를 팔았다는 것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인터넷 뉴스와 네티즌들은 노브레인을 굽고 삶고 지지고 볶고 난리가 났었다.

시간이 흘러 근래 노브레인과 관련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핵심멤버가 탈퇴를 했고 꽤 묵직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정당에 이미지 송으로 쓰이게 된 건 나중에 매니저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조금은 비겁한 변명을 내비추고 있었다. 나 역시 인디적인 분위기에 거침없는 가사가 난무하는 펑크로써의 노브레인은 기억하고 싶어도 보수와 수구를 표방하는 정당의 이미지 송을 제공한 노브레인을 더 이상 펑크라고 보고 싶진 않았다. 더불어 그 사건 이후 그들의 음악적 색깔도 단물 빠진 껌 마냥 흐느적거림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본 영화 소년 메리켄사쿠를 보며 우리나라의 펑크밴드 노브래인이 떠올랐다. 차이점이 있다면 비주류에서 주류로 점프해버린 노브레인에 비해 영화 속 밴드는 25년의 간극을 두고 표면은 변모했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은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었다.

음반기획사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로 우연히 웹의 동영상을 통해 펑크밴드 ‘소년 메리켄사쿠’를 발견하고 그들을 섭외하고 전국투어로 상업주의적 성공을 위한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준비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음반기획사 직원이며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칸나는 이 밴드의 동영상이 25년 전, 그것도 해체기념 마지막 무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 버리며 벌어지는 소동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계속해서 확대되고 증폭되어간다.

25년이 지났으나 시대의 주류에 편입 못하고 언저리를 맴도는 나이 든 아저씨들이 된 그들이 과연 젊은 시절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밴드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는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물음표를 떠오르게 한다. 노력과 근성으로 마침내 성공했다. 란 결말을 보여주면 이 영화는 그냥 그런 영화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이미 잡혀진 순회공연에서 그들인 연일 매진보단 연일 망신을 당하는 순서를 밟게 된다. 체력이 받쳐주지 못해 기타를 치다 헥헥거리고 드럼은 번번이 박자를 놓치기 일쑤다. 리드 보컬 지미는 동영상의 그 마지막 공연 때 형제였던 베이스와 일렉기타 리스트의 반목으로 벌어진 폭력사태에 기타로 머릴 강타당한 후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 밴드의 리더 아키오와 그의 동생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보여주며 25년 간극의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현재 50줄의 그들은 완벽한 부활이 아닌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과 본의 아니게 동행하게 된 큐레이터 칸나 역시 그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아의 변화를 보여주며 영화는 점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뻔한 실패와 무모한 객기가 시종일관 펼쳐지며 불편하기도, 안타깝기도 한 이 철없는 장년층 펑크밴드의 모습에서 즐거움과 더불어 조밀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내 개인적 성향 상 철 없는 아저씨만큼 피곤한 존재도 없다는 것이 지론이지만 어느 부분에 대해 정도의 철없음이 묵인되며 용납되어지는 빈틈을 만들어준다. 그것이 허점이 아닌 매력으로 다가오게 만들어 준다. 영화 속 허구의 밴드의 만들어진 모습일 지라도 아마 노브레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세상 참 각박하고 여유 없게 살아가는 이 땅의 아저씨들에게도 말이다. 나는 물론 말할 것도 없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09-12-31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노브레인에게 그런일이 있었군요.

Mephistopheles 2009-12-31 10:33   좋아요 0 | URL
벌써 오래 전 일이긴 하죠. 근데 이들이 라디오스타란 영화에 출연하고 나서 소위 돈 맛을 알아버린 밴드가 되버렸거든요. 그러면서 인디 라는 개념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고 보여져요. 그렇다고 돈맛을 봤다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암튼 노브레인은 지금의 모습보다 옛날이 더 좋았어요.

L.SHIN 2009-12-3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농약을 먹이자' 라니.

Mephistopheles 2009-12-31 10:35   좋아요 0 | URL
저 영화 보면 리드보컬 지미가 노래를 부르면서 후렴구에 보스톤국제마라톤이라고 고함을 지르는데...이게 지미가 발음이 안좋아서 그리 들리는 거고요. 원래 가사대로라면 농약을 먹이자라고 외치는 거였다죠..이걸 영화 속 공중파에서 여과없이 불러재껴버린다는...ㅋㅋ
 
아스트로 보이 - 아톰의 귀환 - Astro Bo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데츠카 오사무의 원작인 아톰은 이런 저런 이유로 역사적인 이목을 받는 작품이다. 현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이라면 난 단연코 아톰을 말하고 싶을 정도로 단순한 만화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아이작 아사모프가 제창한 로봇의 제 3법칙을 충실히 고찰하고 있는 아톰은 그냥 즐겁고 명랑하게 웃을 수만 있는 소년만화는 결코 아니다. 작가의 의도이던 의도가 아니던 소년 풍 만화체에 알게 모르게 현실 사회의 차별과 풍자 부조리까지 꼼꼼하게 무리 없이 담아내는 표현방법이 제대로 녹아있다. 특히 자식의 대용품으로 아톰을 탄생시킨 아버지 겐마의 냉정함에서 이런 사안들은 당황스럽게 노출되곤 한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만화 아톰은 여러 차례 리메이크의 길을 걷는다.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단순한 모노톤의 초창기에서 화려한 색감을 입고, 이제는 3D그래픽의 기술을 차용해 보다 실감나는 아톰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 만들어진 아톰은 역대 아톰의 모습에서 진일보한 발전을 가져왔다. 화려한 3D그래픽과 그와 더불어 다양한 연출방법까지 기술적인 모습에서 최고의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는 건 인정과 함께 수긍할 수밖에 없는 퀼리티를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최대의 장점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아톰은 분명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아톰이 분명하다. 뾰족한 양 뿔을 가진 기름진 헤어스타일이나. 허벅지, 무릎, 장딴지로 이어지는 굴곡이 없는 다리라인까지 생김새 하나하나는 흑백, 혹은 셀화의 아톰보다 섬세함을 보여준다. 단지 그때의 그 아톰에서 느끼지 못했던 육중한 버터 맛이 느껴진다. 단순히 사용된 언어가 영어이며 북미식 3D애니메이션의 표현방법이 차용되었다고 단정지어버린 건 아니다.

이건 아마도 아톰이라는 주인공을 벗어나 주변 인물들의 행동과 모습을 보면 쉽게 감지가 될 수 있어 보인다. 코주부 박사나 겐마 박사. 아톰의 주변 인물들 조금 더 넓게 범위를 잡아보면 스쳐지나가는 지나가는 행인 1 까지 원작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늘을 날고 엉덩이에서 기관총이 나가고 어마어마한 파워를 자랑하는 주인공은 변함없을지 몰라도 그 주위를 받쳐주는 배경과 인물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차라리 아톰의 한 에피소드를 우르사와 나오키가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낸 ‘플루토’나 작품은 틀리나 데츠카 오사무의 다른 원작을 멋지게 애니로 만든 린타로 감독의 ‘메트로폴리스’의 완성도가 더 나아보일 뿐이다. 또 다른 표현방식으로 받아드리기엔 내게 너무나 이질적으로 다가왔던 2009년 아톰이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SHIN 2009-12-2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메피님의 패턴을 참고하자면 (흠,흠, 목에 잠시 힘주고)
에, 또, 메피님은 당연히 버터맛 사탕을 물면서 아톰의 2등분 몸을 보며 즐거워했을
것이라 여겼건만.

Mephistopheles 2009-12-20 20:06   좋아요 0 | URL
순수한 버터라면 고려해보겠지만, 어중간한 중탕으로 영화가 나와버렸어요. 픽사의 애니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마이너적인 오래된 만화영화에 기술적으로는 완벽할지 모르나 분위기가 모호한 CG는 독밖에 안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카사블랑카라는 흑백영화를 색을 입혀 상영한 적이 있었답니다. 완벽하게 색을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흑백영화만 못합니다..^^)

L.SHIN 2009-12-21 11:05   좋아요 0 | URL
그래요, '기술적으로는 완벽할지 모르나 내용이 어중간한 중탕'.
그건 정말이지 '아니올시다'이죠.-_-

비로그인 2009-12-21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고 있는 만화영화입니다. 메피스토님


Mephistopheles 2009-12-21 15:30   좋아요 0 | URL
개개인의 시각차가 존재하는 매체물 중 영화만한 것도 없습니다. 즐겁게 보기에는 어떠한 무리도 없습니다 이 영화..^^
 
선샤인 클리닝 - Sunshine Cleanin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공식적인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 그렇지만 아이는 있다. 아이는 학교에서 계속해서 말썽을 일으킨다. 하나 있는 동생은 하는 일마다 문제를 일으켜 직장에서 잘리기 일쑤다. 아버지 역시 뜬구름 잡는 비즈니스로 여유롭지 않다. 어머니의 존재는 과거기억 속 트라우마로 존재할 뿐이다. 이 여자의 직업은 청소부. 모든 생활고를 양 어깨에 가득 짊어지고 살아간다. 더불어 가족이 있는 유부남의 애인. 이 남자는 결코 가족과 헤어질 이유가 없어 보인다. 희망도 안보이고 웃음은 사치일 뿐이다. 사는 하루하루가 버겁고 힘겨울 뿐이다.

영화제목과 상반되는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은 선샤인과는 지나치게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다크니스면 모를까 선샤인이 가당키나 한가. 생활고에 문제를 일으키는 가족에 거기다가 남자문제까지 제대로 풀리는 건 하나 없는 삶. 어두컴컴한 그녀의 삶에 아이러니하게 조그만 문틈으로 미세하게 빛이 들어온다.

그녀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살아가다 결국 생의 끈을 스스로 놓은 사람이나, 일생일대 최대의 불행한 순간인 범죄의 현장에서 희생당한 흔적을 지우는 직업을 택하게 된다. 같은 청소 업이라 하더라도 기껏 먼지나 털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는 것과는 레벨이 다르다. 그녀가 닦아내는 타인의 살점과 피, 그것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바이오 해저드 급 오염물질들이다. 타인의 흔적을 지우며 그녀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는다. 



생활고의 저 심연 깊숙한 바닥 언저리에서 조금씩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선샤인 클리닝’은 묘미는 그녀가 거쳐 가는 삶의 궤적을 큰 기복 없이 차근차근 보여주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수백억 복권 당첨이나 백마 탄 왕자 따윈 조짐도 안 보인다. 외부적인 도움보다 자기 스스로 차근차근 모든 문제를 서투르고 어설프게 해결해 나간다.  줄리, 줄리아에서 귀엽고 깜찍한 모습을 보여줬던 에이미 아담스는 생활고에 찌든 히노애락이 가득 담긴 극적인 표정이 아닌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 모든 과정을 무리 없이 보여준다.

이 영화는 결코 밝거나 해피하지 않은 영화다. 영화 속 엔딩 역시 희망은 보여주나 극적인 문제해결의 모습에 인색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편하거나 힘겹게 볼 이유는 없어 보인다. 영화 속 배경이나 등장인물은 화려하게 꾸며진 영화적으로 회화된 인물이 아닌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로 인식할 수 있기에 친숙하고 부담 없다.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상처와 아픔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영화 속 그녀를 바라보며 우리도 조금씩이나마 마음속 어둠을 깨끗하게 치워내는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빠 보이진 않아 보인다. 그 과정이 또 다른 상처를 야기 시키고 슬픔을 가져온다고 해도 말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매지 2009-12-2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봤는데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상처를 보듬어주는 게 좋았어요 :)
그러고보니 이 영화 리뷰 쓰는 걸 깜빡했군요 -_-;;

Mephistopheles 2009-12-20 20:03   좋아요 0 | URL
티격태격할 일이 아니라 머리끄댕이 잡고 싸울 일임에도 서로에게 지치고 삶에 지쳐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도 보이더군요..^^

L.SHIN 2009-12-20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런 주름진 벽은 닦기가 참 곤란한데. ㅡ.,ㅡ

어떤 사람들은 '사람 때문에 생긴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된다' 라고 믿는 것 같더군요.
그러나 그것은 메피님 말대로 그 과정이 혹은 결과가 또 다른 상처를 가져오게 되는데
말입니다. 차라리 동물이나 음악, 책, 다른 무언가가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Mephistopheles 2009-12-20 20:03   좋아요 0 | URL
그것들이 낫다는 판정은 사람의 개개인 특성에 따라 틀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누군가는 무생물인 술이나 약으로 상처를 치유하려고 하기도 하니까요..^^

L.SHIN 2009-12-21 11:03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낫다'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견해일 뿐입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이라는 것이죠.

레와 2009-12-21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우리 동네에서 개봉 하지도 않았음.
아놔..;;

Mephistopheles 2009-12-22 00:38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레와님의 주변에는 고릴라와 오랑우탕이 와우우우우우우우 하면서 사는 동네일꺼 같다는 느낌이 모락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