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경제가 어렵다는 시국에 웬 부루조아적이며 민심분개적인 제목이겠냐 마는 비싸다는 베이징 덕을 내 돈으로 안 먹는다면 충분히 경제적이며 남는 장사가 되는 제목 되시겠다.
그러니까 저번 주 토요일 새로 직원 두 명이 추가로 투입된 기념으로 회식을 하게 되었다. 하고 많은 요일 중 하필 토요일이 뮝미? 겠지만 워낙 바쁘다 보니 평일 날 회식은 꿈도 꾸지 못하기에 궁여지책으로 토요일로 잡았던 것.
장소는 소장님이 강력 추천하시는 베이징 덕을 전문으로 하는 중화요리집. 종로까지 가야 한다는 수고스러움이 있지만 내 돈으로 안 먹는다면야 어디든 못 가랴. 그리하여 4시에 일을 마치고 예약시간 5시를 맞추기 위해 전철을 타고 일 만 년 만에 종로 땅을 밟게 되었다.
약도를 미리 숙지하고 비오는 날 우산 쓰고 열심히 달려가 주시니 근사한 홀로 안내해준다. 가운데 턴테이블이 있는 둥그런 원탁자리에 짜사이, 단무지, 춘장, 그리고 채 썬 파가 보인다.

베이징 덕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이기에 미리 전화로 4마리의 오리를 화형(?)시켜 달라 주문하였고 메뉴판을 보며 주종을 고르는 사이 요리사 복장을 한 어느 청년이 카트를 끌고 홀에 들어온다. 이어 능숙한 솜씨로 오리를 해체하기 시작. 바로 내 옆자리에서 해체를 하는지라 궁금증에 질문을 던져 보았다.

메피 : '이거 몇 시간 굽나요?'
오리해체요리사 : .........
메피 : '화로에 몇 시간 들어가 있던 오리인가요?'
오리해체요리사 :(열심히 칼을 놀리며 나를 빤히 쳐다보며) .........
아뿔싸.. 아마도 중국 현지에서 스카우트 된 요리사인가 보다. 내 중국어 실력은 중국집에서 '제일싼그(자장면)' 정도를 구사하는 정도인지라 질문을 포기하고 그냥 오리 해체하는 모습만 구경하기 시작했다.

왼쪽이 춘장소스 오른쪽이 핫소스(항개도 안맵다.)
먼저 바삭하게 구워진 시각적인 비주얼을 보여주는 껍질을 포로 뜨기 시작하더니 열심히 살코기를 발라낸다. 그렇게 순식간에 오리 한 마리가 해체된다. 나머지 3마리는 주방에서 이미 해체 시작. 접시에 그득그득하게 구워진 오리가 한 상 가득히 올라온다. 먹는 방법은 앞 접시에 같이 딸려 나온 밀전병을 깔고 춘장소스를 찍은 오리를 올려놓고 채 썬 파를 얹어 말아 먹는 구조.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베이징 덕은 껍데기가 진미라는 말에 재빨리 젓가락을 놀려 껍데기를 올리고 파를 얹고 돌돌 말아 한입 베어 물었는데......

식감이 참 미묘하다. 겉을 싼 전병의 푹신한 느낌이 초반에 느껴지면서 아삭한 파의 분쇄음과 더불어 그 보다 더 바삭한 오리 껍데기의 식감이 천천히 입안에서 퍼져 나오기 시작한다. 기름이 많은 오리고기의 진한 맛을 바삭한 파와 춘장소스로 교묘하게 중화시켜준다. 더불어 부드러운 전병으로 감싸 목 넘김을 좋게 한다. 이거야 원 술을 부르는 음식이 바로 베이징에서까지 날아온 오리고기일줄이야. 더불어 시킨 죽엽청주와 고량주는 독주치고는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왼쪽이 죽엽청주, 오른쪽이 고량주.. 독하지만 음식과 잘 어울린다.
이렇게 1차를 끝내고 이왕 종로까지 나왔기에 향수를 느끼고자 향한 집은 열차집. 배가 부르다는 다수의 의견 때문에 한 바퀴 빙글 돌아 조계사를 거쳐 오기로 루트를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심 한가운데 법당은 제법 종교적인 풍모를 갖추고 있다. 비록 주차장에 근사한 고급차와 외제차가 즐비해도 말이다. 조계사 옆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매점에서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발견하고 책 읽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은 직원 두 명에게 한 권씩 안가고 열차집으로 고고씽.
부드러운 녹두빈대떡에 굴전에 파전까지 분명 1차로 오리고기에 탕수육, 양장피, 깐풍기로 배를 채웠음에도 아주 난리를 치며 막걸리와 더불어 먹어재끼기 시작한다. 아마도 여전히 내리는 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열차집을 나와 주변을 살펴본다.
녹색성장, 그린경제라는 허울 좋은 간판의 이면에 무작위적 개발공사로 내가 아는 이 허름한 골목길은 이제는 허물어진 건물잔해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아마도 인사동을 끼고 있는 피맛골도 조만간 이 꼴이 날 것 같아 보인다. 해는 떨어지고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비싼 음식과 비싼 술을 먹었음에도 이런 모습을 보니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분명 이런 개발의 이면에 배를 두들기는 나와 동종업계의 어떤 기업이나 개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 오늘은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보자며 3차를 향해 달려 나간다.
좀 걸어 시사영어사 뒤편에 있는 경북집으로 달려간다. 비가 와서 그런가. 원, 투, 쓰리까지 확장한 이 가게엔 손님이 버글버글하다. 역시나 백만 년 만에 다시 먹어보는 동그랑땡은 옛맛을 간직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더불어 부속고기가 잔뜩 들은 술국까지 겸비하니 소주가 마구 들어간다. 먹고 마시고 떠들어도 워낙 일찍 시작한 회식인지라 밤 10시를 넘기지 않고 있다. 배가 불러 절반을 남긴 동그랑땡은 포장하여 자취하는 막내에게 안겨주고 각자 집으로 귀환하는 지극히 당연히 결말을 내며 꽤 많이도 마신 회식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