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양꼬치를 먹으며 사무실 입사 후 지갑 열고 사무실 사람들에게 껌 한 통 산 적이 없는 막내를 덤탱이의 늪에 빠트렸던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흘러 약속한 화요일이 왔다. 물론 월요일부터 슬쩍슬쩍 쨉을 날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월요일 상황.
내일.?? 알지 / 예? /(썩소를 날리며) 우리 샤브샤브 먹기로 했잖여? / 아...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익후! 이제 기억했지? 내일 기대하겠어..! /(낯빛이 창백해지며) 아..예..
그리하여 화요일 퇴근하자마자 진격 앞으로 외치며 우르르 몰려갔던 그때 그 집. 하지만 매일 양꼬치만 먹으러 갔지 샤브샤브는 처음이었다. 다행히 일찍 도착하여 한산한 가게. 물론 건너편에 있는 양꼬치 집은 이미 바글바글. 신발을 벗고 자리를 잡으니 일하는 언니가 반갑게 인사한다. 원앙샤부를 주문하니 알겠다며 셋팅 준비 해주신다. 이 집은 자리가 두 종류로 나뉜다. 양꼬치를 먹는 자리와 샤브를 먹는 자리로. 다시 말해 활성탄을 집어넣을 수 있는 탁자와 그렇지 않은 탁자로 나눤다. 는 이야기다 당연히 우린 샤브를 먹기 위해 왔으니 양꼬치는 포기했다. 조금 뜸을 들이자 음식 접시들이 탁자 위에 배열되기 시작한다.
먼저. 야채가 그득한 접시가 들어온다. 야채도 일반 샤브와는 약간 다른 구성이다. 푸성귀는 여태 봤던 것들과 비슷한 종류를 가지고 있으나, 얼린 두부, 건채두부, 고수와 목이버섯, 청경채가 보인다. 더불어 고기가 딸려 온다. 빛깔좋은 붉은 고기. 소고긴가? 일행은 합창을 하니 마침 옆에 지나가며 서빙 하는 언니가 양고긴데? 한다. 아 그렇지 양고기 샤브였지.
생각보다 야채가 제법 푸짐하게 나왔다. 처음 보는 재료도 눈에 띄어 호기심이 발동한다.
언제쯤 고기를 보면 손이 떨리는 증상이 멎게될까.....(사진 흔들린 변명거리)
잠시 후 샤브 냄비가 밖으로 부터 어느 총각의 손에 조심스럽게 들려온다. 생긴 걸 보니 가끔 보는 중국의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에서 봐왔던 그릇이다. 국물 끓는 시간을 못 참고 공복에 참이슬 한 잔을 들이킨다. (아싸라비아!) 중얼중얼 수다를 떨다 보니 국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리고 가뜩이나 소주 한잔 하여 짜르르한 속을 달래고자 걸신들린 듯 야채와 채소 고기를 국물에 풍덩풍덩 담구기 시작했다.
냄비 밑에 아마도 활성탄을 집어 넣은 듯 다 먹을 때까지 여전히 국물은 뜨거웠다는..
냄비는 마치 우리나라 신선로같이 생겼고 가운데 칸막이가 있고 한쪽에 붉은 국물 한쪽엔 허연 국물이 담겨있다. 색깔로 보면 당근 매운 맛/순한 맛으로 보인다. 매운 맛이 얼마나 매울까 해서 살짝 국물을 떠먹어 보니 그다지 맵지 않았다.....가 아니라 몇 초 후 머리에서 땀 한 방울 쪽 떨어지는 뒤끝 있는 매운맛이다.
이것저것 투하하고 찍어 본 사진. 향신료가 제법 들어갔는지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나긴 했지만 못 먹을 정돈 아니다. 매운 국물은 매운 맛대로 순한 국물은 순한 맛대로 나름 고유의 맛을 간직하고 있더라는..(얼린 두부가 은근 맛있더라는 겉은 꾸덕꾸덕 속은 말랑말랑)
이렇게 지지고 볶고 데치며 신나게 먹다보니 소주 3병을 홀라당 발라당 비워버렸다. 뭔가 아쉬워 요리 하나를 시켜봤다. 송화에다 두부, 고수를 버무린 송화두부를 시켜본다. 젓가락으로 먹기 어려울 정도로 부들부들한 음식이지만 기름기 없고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소주 5병 돌파한다. 뭔가 또 심심하다. 밥을 좀 먹자는 일행 중 한 명의 주문에 마파두부와 볶음밥을 시킨다. 마파두부는 매콤하고 볶음밥은 일반 볶음밥보단 맛이 좋다.
비주얼은 참 거시기 하지만 제법 맛있다. 군데 군데 보이는 거무튀튀한 놈은 오리알 삭힌 것(피탄). 술이 어느정도 들어갔기에 먹다가 아차 하며 찍었기에 한 쪽이 비어보인다.
역시나 먹다가 아차 하며 부리나케 찍은 마파두부&볶음밥. 마파두부는 제법 매콤하고 볶음밥은 평균 이상은 된다. 둘이 섞어 먹으면 제법 맛있다.
같이 시킨 이유는 볶음밥에 마파두부 얹어 비벼 먹기 위하여. 기름진 볶음밥에 매콤한 마파두부와의 조화는 제법 어울린다고나 할까. 이렇게 요리 몇 가지와 샤브샤브까지 먹으며 4명이서 소주 6병을 마셔버렸다. 자리를 일어나며 계산을 위해 나가는데 막내가 서둘러 계산한다. (애시 당초 엄포만 놓고 계산은 내가 하리라 생각했는데, 술 먹으며 이런저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성심껏 해줘서 그럴지도..) 알게 모르게 술 먹으며 했었던 뼈 있는 몇 마디가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분 좋게 마시고 2차로 건너편에 있는 콩나물 해장국 집에서 인목대비가 빚었다는 모주 한 양동이에 쌀 파전으로 오늘 먹고 마시기를 마무리 했다.
에필로그
요즘 들어 직장 생활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곤 한다. 사회에서 내 위치가 참 어중간한 위치다. 딱 중간에 끼어 오너의 하소연도 들어줘야 하고 직원들 불만도 들어줘야 하는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을 바가지로 퍼 먹는 그런 자리다.
어찌보면 회색주의자를 추구하는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위치도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내가 하는 몇 마디가 내가 그렇게 질색 팔색 하는 잔소리처럼 어린 직원들에게 들리진 말아야 할텐데 란 염려만큼은 계속 생각하게 된다. 혹시 오늘 막내 직원도 내 잔소리가 지겨워 차라리 내고 만다! 란 심리가 작용하진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면 내가 아니지. 쏘는 건 쏘는 거고 갈굴 땐 갈구고 챙길 땐 확실하게 챙겨주자. 가 내가 지금껏 이 지저분하며 난장판 복마전인 월급쟁이 생활을 지탱해 준 기둥이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