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잠깨어 - 한시로 읽는 다산의 유배일기
정약용 지음, 정민 엮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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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뛰어넘는위대한 정신의 내면풍경을 만나다『주역』에 감지次上란 말이 있다. 물이 흘러가다가 구덩이를 만나면,
구덩이를 다 채워 넘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면 나올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상처만 남는다.
묵묵히 감내하면서 자신이 구덩이에 빠진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하며,
구덩이를 다 채워 흘러 넘칠 때까지 수양하며 기다릴 뿐이다.
다산의 유배 한시는 이렇듯 환난과 역경과 시련 속에 처한 인간이절망과 분노와 좌절을 극복하고 본래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진솔하게 보여준다.
다산의 위대함은 그가 이룩한 놀라운 성취 때문만은 아니다.
그 성취가 이런 절망을 딛고 나온 것이어서 우리는 그에게 더욱 놀라고 경탄한다.
보통은 작은 시련 앞에서도 남 탓하며 세상을 향해 원망과 적의를 품게 마련이다.
좌절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다만 그때의 내 자세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올해는 다산 선생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다.
위대한 다산도 아름답지만, 인간적인 체취도 아름답다.
그도 우리와 같은 보통의 사람이었구나 하는 안도감을 준다.
나는 그간 다산의 자취를 찾아 여러 해를 길에서 헤맸다.
이제는 무심한 시구 속에서도 그의 내면을 훑고 지나가던이런저런 풍경들이 조금씩 보인다.
머리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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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위상학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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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성의 폭력은 부정성이 없는 같은 것의 공간 속에서 발전한다. 부정성의 결여는 긍정적인 것이 걷잡을 수 없이 번성하게 된다. ... ... 그것은 같은 것의 테러다.” p.118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폭력의 위상학(김영사, 2020)>을 읽었습니다.
<폭력의 위상학>이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 책은 폭력의 위상, 즉 자리매김을 통해 폭력의 구조, 역사, 정치, 심리,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화되는 성과사회의 시스템 폭력까지, 폭력에 관한 철학적 분석을 담은 책입니다.
먼저, 1부 폭력의 거시물리학에서는 주권사회에서 근대의 규율사회로, 다시 오늘날의 성과사회로, 사회의 변천과 더불어 그 양상을 달리하고 있는 폭력의 위상학적 변화 과정을 살피고 있습니다. ,
2부 폭력의 미시물리학에서는 시스템, 권력, 긍정성, 투명성, 미디어 드의 폭력이 가지는 내부화, 심리화 등의 특성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사회는 성과지향의 사회입니다. 성과사회는 긍정의 과잉을 불러오고, 개인은 자유롭다고 착각하지만, 긍정의 내면적 폭력에 의해 끝없는 자기착취의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후기근대의 성과주체는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다. ... ... 스스로를 긍정화한다. ... ... 타자에 의한 강제의 자리에 자유를 가장한 자기 강제가 들어선다. ... ... 자기 착취는 ... ... 스스로 불타버릴 때까지 스스로를 착취한다.” pp.20~21
“... ... 긍정성의 폭력은 박탈적인 것이 아니라 포화적이다. 실행이 아니라 소모, 배제가 아니라 충일이 그러한 폭력의 바탕에 있다. 그것은 억압이 아니라 우울로 나타난다.” p.115
“... ... 우리 모두를 호모 사케르로 만드는 것은 ... ... 성과의 추방령이다. ...... 자유롭다고 믿는 성과주체는 스스로 성과위 추방령 속으로 들어가 호모 사케르가 된다.” p.198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신)장유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번아웃될 때까지 착취하고 있습니다. 성과사회의 부품으로... 좀비처럼..
“......죽을 수 있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살 수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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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위상학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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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성의 폭력은 부정성이 없는 같은 것의 공간 속에서 발전한다. 부정성의 결여는 긍정적인 것이 걷잡을 수 없이 번성하게 된다. ... ... 그것은 같은 것의 테러다.” p.118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폭력의 위상학(김영사, 2020)>을 읽었습니다.

<폭력의 위상학>이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 책은 폭력의 위상, 즉 자리매김을 통해 폭력의 구조, 역사, 정치, 심리,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화되는 성과사회의 시스템 폭력까지, 폭력에 관한 철학적 분석을 담은 책입니다.

먼저, 1부 폭력의 거시물리학에서는 주권사회에서 근대의 규율사회로, 다시 오늘날의 성과사회로, 사회의 변천과 더불어 그 양상을 달리하고 있는 폭력의 위상학적 변화 과정을 살피고 있습니다. ,
2부 폭력의 미시물리학에서는 시스템, 권력, 긍정성, 투명성, 미디어 드의 폭력이 가지는 내부화, 심리화 등의 특성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사회는 성과지향의 사회입니다. 성과사회는 긍정의 과잉을 불러오고, 개인은 자유롭다고 착각하지만, 긍정의 내면적 폭력에 의해 끝없는 자기착취의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후기근대의 성과주체는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다. ... ... 스스로를 긍정화한다. ... ... 타자에 의한 강제의 자리에 자유를 가장한 자기 강제가 들어선다. ... ... 자기 착취는 ... ... 스스로 불타버릴 때까지 스스로를 착취한다.” pp.20~21

“... ... 긍정성의 폭력은 박탈적인 것이 아니라 포화적이다. 실행이 아니라 소모, 배제가 아니라 충일이 그러한 폭력의 바탕에 있다. 그것은 억압이 아니라 우울로 나타난다.” p.115

“... ... 우리 모두를 호모 사케르로 만드는 것은 ... ... 성과의 추방령이다. ...... 자유롭다고 믿는 성과주체는 스스로 성과위 추방령 속으로 들어가 호모 사케르가 된다.” p.198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신)자유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번아웃될 때까지 착취하고 있습니다. 성과사회의 부품으로... 좀비처럼..
“......죽을 수 있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살 수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는 것이다.”

#폭력의위상학 #한병철 #김영사 #성과사회 #긍정성과잉 #자기착취 #우울증 #신자유주의 #폭력의거시물리학 #폭력의미시물리학 #피로사회 @ Busan 釜山,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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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고전의세계 리커버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조현진 옮김 / 책세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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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나의 증명을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편견들을 제거하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설명했던 방식으로 사물들의 연쇄를 포착하도록 하는 것을 방해했고 또한 여전히 방해하는 적지 않은 편견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성의 시험대에 그것들을 소환하는 것이 가치 있다.
고 생각한다. 여기서 지적하려고 하는 모든 편견들은 확실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정하는 다음의 것, 즉 모든 자연물들이 자신들처럼목적 때문에 행위한다는 것가정에 의존한다. 실로 그들은 신 자신이모든 것을 어떤 고정된 목적을 향해 가도록 정해놓은 것이 분명하다.
고 생각한다. 즉 그들은 신이 모든 것을 인간 때문에 만들었으며 또한{신이 자신을 공경하게 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따라서내가 고찰할 첫 번째 {논점은 우선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편견에 만족해하며 또한 모든 이들이 왜 같은 것(편견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BENEDICTUS DE SPINOZAETH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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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1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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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로움이 숲의 평화일 터인데, 숲은 안식과 혁명을 모두 끌어안는 그 고요함으로서 신성하다. 시간을 소생시키는숲의 새로움은 퇴계와 로빈후드를 동시에 길러내고도 사람지나간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물리적 자연은 근본적으로몰가치하다. 물리적 자연이 그 안에 윤리적 가치를 내포한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그것은 영원한 인과법칙의 적용을받는 자연과학의 자리일 뿐이다. 이 무정한 자연이 인간을위로하고 시간을 쇄신시켜주는 것은 삶의 신비다. 사람의언어가 숲의 작동 원리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숲이사람을 새롭게 해줄 수 있는 까닭은 숲에 가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숲이 숨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면도는 태안반도의 남쪽으로 길게 뻗은 섬이다. 안면교를 건너서 섬으로 들어온 자전거는 섬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649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섬의 남쪽 끝인 고남리 젓개포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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