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書齋雜記 180115

- 여명 어스름, 朦影限, Dawning 창작시(를 가장한 패러디)

 

새벽을 생각하다가 윤선도의 오우가 五友歌 대나무가 시조가 생각났다.

오우가를 패러디해서 시조(?)를 짓고 한자로 옮기고 다시 영작해 봤다. (뭐 배우고 지은 것이 아니니, 한자, 영문법 등에 관해 틀린 것이 있다면 지적하셔도 됩니다.)

* 推敲 ; 隱逸士梅花?, like vs love

 

* 신변잡기 180103 몽영한

http://blog.aladin.co.kr/maripkahn/9812427

 

* 黎明 어스름 (마립간 지음)

밤이 가버렸으나 낮도 아닌 것이, 낮이 오지 않았으나 밤도 아니 것이

안개 낀 모습은 蠱惑하기만 한데, 그 살내음은 뉘라서 淸明한가.

山人들을 부르는 눈 속의 隱逸士같아, 선비가 그를 좋아 하노라.

 

* 朦影限 (亶村孤翁 以次韻五友歌 作詩 ; 亶村=謁羅亶村)

夜往而非晝 晝不來而非夜

霧姿態蠱惑 誰體香薰淸明

若雪中隱逸士召仙 令士慕

 

* Dawning (by maripkahn)

It is not day with night being over, it is not night with day not being coming.

Throwing the mist on, you are enchanting. Who you are, whose fragrance is fine, clear.

As an apricot flowers in snow, calling back hermits, the scholar likes you.

 

* 오우가 ; 대나무편 (윤선도)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리 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讀書記錄 180113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독서중, 구매

 

나의 자호 自號는 素山玄月, 줄여서 素玄이다. 중학교 때 素山이란 호를 만들었고, 대학교 때, 玄月이 붙였다. 책 도장으로, 또는 signature로 素山玄月, 素玄(, 素山, 玄月)을 섞어 쓰고 있다.

 

素, (素)山, 玄, 月의 의미에 대해서 다른 글에서 파편적으로 언급했다.

 

가족들조차도 내가 호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는다. (사실 쓸 일이 많지 않으니 잊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어쩌다가 언급하게 되면 가족들, 또는 친구들은 무슨 의미냐고 여러 번 내게 묻는다. (나는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8-01-1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자 공부 안한지 7년 지났는데 기본 한자들의 음이 기억나지 않네요.. ^^;;

마립간 2018-01-15 07:39   좋아요 0 | URL
논리적 사고를 위한 수학공부와 추상적 사고를 위한 한자공부 ; 는 평생 유지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나폴레옹의 전쟁 금언 밀리터리 클래식 2
나폴레옹 지음, 데이비드 챈들러 엮음, 원태재 옮김 / 책세상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p21 ˝... 항상 적용할 수 있는 추상적 진리 같은 것은 없다. 진리란 항상 특별한 경우에만 유효한 것이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8-01-10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폴레옹에게는 책상 위 전략보다 전장이 중요하다는 말로 구현되었겠군요^^: 나폴레옹이 수학을 좋아한 포병 출신이어서인지 몰라도 매우 철학적이라 생각됩니다^^:

마립간 2018-01-10 13:33   좋아요 1 | URL
≪나폴레옹 평전≫의 독후감을 위해 메모해 놓았던 사실입니다. 수학을 좋아했던 위인(?) 나폴레옹.^^

위 말은 나폴레옹의 금언에 대한 (구)소련의 질린 장군의 말입니다.
 

 

* 身邊雜記 180110

 

* 딸과 아버지

- 아빠바라기와 딸바보

 

오랜만에, (언니인) MJ, MS 자매의 소식을 들었다. MS는 딸아이의 절친이었는데, 이 친구 가족이 이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이가 멀어졌다. 안해가 MS 엄마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안해로부터 소식을 접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내게 들려준 이야기 중 하나는, MS 아빠가 MS 엄마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런 적이 없었는데 ... 사정을 알고 보니, 큰 딸인 MJ가 엄마에게 휘둘리는 아빠가 보기 안타까워 아빠는 엄마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말고, 싫으면 싫다고 의사 표시를 하라고 했다고 한다. 또 현재 중학생인 MJ는 엄마가 아빠에게 대하는 태도가 싫어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MS 엄마가 안해에게 이야기하면서 재미를 위해 약간의 과장을 섞었을 가능성을 생각한다. 또는 MS 엄마의 이야기를 안해가 오해했거나 내게 전달하면서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면 MS 엄마가 아빠를 대하는 태도가 싫어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를 가려 하기보다 공부만 채근하는 엄마가 싫어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를 가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두 딸이 엄마보다 아빠를 좋아하는 가족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내 주위에는 딸이 엄마보다 아빠를 좋아하는 가족들이 더 있다.

 

* 예전에 내가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어느 알라디너로부터 남자의 (첫 인상이자 부정적인) 인상을 대개 아버지로부터 받는다는 댓글을 받았다. 최근에는 페이퍼를 통해 아버지와 불편한 관계를 나타내는 두 여성 알라디너의 글을 읽었다.

 

궁금증 1] 딸이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했다. 그 아버지는 양성 평등의 사고와 행동을 보였다. 딸은 이 세상의 남자가 자신의 아빠와 같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마땅히 이 세상의 남자들이 자신의 아빠와 같아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이런 여성이 있을까?

 

궁금증 2] 나는 남녀불평등 세상에서 남성의 동류 同類로서 책임감을 가지라는 독촉에 그리 공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말투에 맞게 능동태로 글을 썼지만, 정확한 의미는 공감되지 않는다.’는 수동태를 뜻한다.) 그러나 부녀 간 불편감을 가진 가족들은 보면 아버지의 동류로서의 책임감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런 나의 심리 상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댓글(8)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8-01-1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있는 주제라서, 핸드폰을 보다가 결국 노트북을 열었네요. ^^
어디까지나 제 주관적인 의견임을 전제하면서 의견 드립니다.

궁금증 1의 여자분은 어릴 때부터 양성 평등의 가치관을 당연한 가치로 여기면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를 어기는 남자들은 만났을 때 자신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한 느낌이 크지 않았을까요? 세상의 남자를 만나는 시점에서 어떤 유형의 남자들이 더 많았는지의 문제가 있을 것이고, 아버님의 양성 평등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도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스트도 신념이니까요. 또한 에너지 수준이나 적극성,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긍정성, 내적 분노 등의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시다시피, 인간의 행동 아래에 요인들은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심리상담사는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려운 직업 중에 하나라고 발표되었습니다.. 아하하.)

궁금증 2. 사회적인 남성 역할에서 하위 요인으로 아버지의 역할이 있겠지요. 남성 동류(아마도 권위주의적이거나 우월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의 책임감에는 거부감을 느끼시지만, 아버지의 역할에는 긍정적인 경험을 하시는 듯 하여 마음이 기쁩니다. ^^ 더불어 저는 모든 남성들이 우월적이고 힘에 있어 불평등함을 행사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경향이 종종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만.)

요즘 제가 독감에 걸려서, 회복기임에도 방콕 중입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알라딘질을 하니 즐겁네요.

2018-01-10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8-01-10 10:55   좋아요 0 | URL
의견 감사합니다.

궁금증 1] 저 개인 경험에서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분들의 일화가 알라딘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그 외의 (예를 들면 ‘민우회‘ 등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아버지와 관계가 궁금했습니다. 여러가지 요인이 관여했겠지만, 아버지와 긍정적인 관계를 가졌던 경험의 페미니스트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2018-01-10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8-01-10 11:20   좋아요 0 | URL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모두 같은 대처 패턴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일반화가 될까 염려됩니다. 아버지와의 부정적 관계가 일반화로 되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누적된 분노나 억울함, 부정적인 정서는 여러 형태로 표출되고, 순수한 사회적 성장을 동기로 가진 분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예전 강의에서 들은 내용입니다만, 정의를 중요시하는 사회운동가의 경우에 내적 분노에서 기인한 사회적 변혁이냐, 아니면 사회 성장을 중요시하는 사회 변혁이냐는 가정에서 가족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집에서 폭력적으로 굴거나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되는 사회운동가도 상당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집안에서 따뜻한 부모나 배우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지요.

아버지와의 부정적인 관계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보다는 어머니와의 부정적인 관계가 종종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부정적인 영향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크지 않습니다. 제 추측에는 더 친밀한 관계이고, 유아동기에 더 중요한 목숨줄이었기 때문으로 사료됩니다.

2018-01-10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8-01-10 11:28   좋아요 1 | URL
제 경험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생긴 궁금증인데,

아버지와의 부정적 관계가 일반화로 되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
라는 문장이 충분히 답변이 된 듯 싶습니다.

2018-01-10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 가요읽기 180109

 

<언니의 일기> - 김인순

 

사랑을 하면서 애태운다면

뭣하러 사람들은 사랑을 할까

 

그이가 보냈다는 메모 쪽지에

파랗게 내려 쓴 낙서를 보고

...

아가씨 내 마음을 믿지마오

그대를 사랑할 수 없다는 말에

...

언니의 사랑을 고백할테야

 

* 메모의 내용을 보면 언니의 사랑은 상대가 모르는 짝사랑이 아니라 상대가 이쪽의 마음을 아는 외사랑이다. 따라서 작중 화자 話者가 대신 고백해서 해결된 문제는 아니다. 특히 그대를 사랑할 수 없다는 구절은 상대 남자가 기혼자가 아니면 사랑하는 여성이 있을 수도 있다.

 

* 오랜만에 들은 이 가요의 가사의 의문점은 아래 가사다.

사랑을 하면서 애태운다면 뭣하러 사람들은 사랑을 할까

 

그러게 말입니다. 뭐 하러 사랑을 할까. 며칠 전 아이의 하소연과 함께, 안해의 하소연을 들어주었다. 아이 친구의 엄마들에게 관한 것들이다. 안해는 무언가를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잘 해주려 했다. 나는 당시에 안해에게 경고했었다. 일방적으로 잘해주려 하면, 오래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고, 나중에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안해는 배려에 대해 답례를 받지 못하거나 속된 말로 선의에 대해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끼는 경우를 당했다.

 

나 역시 알라딘에서 선의로 (그것도 꽤 조심스럽게, 부담을 안고서) 어떤 댓글을 남겼더니, 상대가 분노로 답한 적이 (큰 것만 두 번) 있었다. 그러나 나의 감정적 동요가 적었던 이유는 게임의 이론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나의 답은 이렇다. 애태운다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면, 사랑하지 마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강담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 전서 10:13)

 

김인순의 언니의 일기에서는 뭣하러 사랑을 할까라고 묻는다.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에서는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하겠네.라고 답한다. 마립간은 이렇게 말한다. 논리적 추론의 과정이 참이라고 해서 그 결론이 사실적 참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8-01-09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태우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고 사람을 자극하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 거지요.
그 괴로운 과정을 실은 즐기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무런 자극이 없는 오랜 시간보다는 생생함이 나은게 아닐까 싶구요.

감당할 수 없다면, 기대하지 마라, 단절하라. 는 의미는 아니시지요?
안해분께서는 실망을 많이 하셨겠네요, 약간 상처도 입으셨을 거 같구요. 사람들이 참 내 맘과 같지 않아요.
그리고 이 글에는 마립간님이 안해분의 하소연을 들으시면서 느끼신 안타까움이 제게도 느껴지네요.
가까운 이가 속상해하면 저도 속상합니다.

마립간 2018-01-09 15:02   좋아요 0 | URL
제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애태우는 과정을 즐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사랑에 상처 받은 것이 사랑 한번 못한 것보다 낫다‘고 단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자극 없는 오랜 시간이 생생함보다 열등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감당할 수 없다면, ‘기대하지 마라‘는 제가 의도(의미)하는 바이지만, ‘(인간 관계를) 단절하라‘는 실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제 의도(의미)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녀고양이 2018-01-09 18:40   좋아요 0 | URL
애태우는 게 자극 없는 것보다 더 낫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였어요. ^^

실망과 좌절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인간관계를 단절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기대하지는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모든 기대를 내려놓을 수는 없지만,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한계를 아는 것은 중요한 것 같네요.

마립간 2018-01-09 20:11   좋아요 0 | URL
애태우는 게 자극 없는 것보다 더 낫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 그렇죠.^^ 제가 어감을 오해했습니다.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http://blog.aladin.co.kr/757611146/9826774 글의 마녀고양이 님과 cyrus 님과 댓글에서도 받는 느낌이 우리는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녀고양이 2018-01-09 20:56   좋아요 0 | URL
객관적이려고 노력하는 면이 사이러스님의 매력이지요.
젊은 느낌이 들어서 예뻐요, 사이러스님이 이 말을 들으시면 화내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