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育兒日記 140613

- 아이의 잠자리 독립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주 목요일부터 딸아이는 부모와 다른 방에 자겠다고 했고 아이는 일주일째 혼자 잠을 자고 있다.

 

잠자리 독립의 처음 시작은 1년 전쯤 친구 집을 방문하고 나서 자신의 침대와 책상을 사달라고 했을 때로 볼 수 있다. 나는 사줄 수는 있으나 책상은 공부할 때 필요한 것이니 네가 공부를 할 때 사주겠다고 했고, 침대 역시 부모와 떨어져 혼자 잠을 잘 수 있을 때 사주겠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물건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설명했다.

 

이 이야기 이후 중간 중간 자신만의 가구에 대해 욕심을 냈지만, 아빠가 제시한 조건을 실천할 자신이 없었나 보다. 아이 친구 부모는 잠자리를 독립하면 침대를 사준다고 하지 말고, 침대를 사줌으로써 잠자리 독립을 한다고 하였지만, 믿기질 않았다.

 

아직 완전한 독립은 아니다. 잠은 혼자 자지만, 잠이 들 때까지는 엄마가 옆에서 지켜줘야 한다.

 

안해는 아이의 잠자리 독립에 대해 섭섭한 마음도 있다. 아니 벌써. 나는 담담했다. 예상을 했기 때문에. 아이가 부모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하는 시기가 두 번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사춘기고, 첫 번째는 7살 전후이다. 부모가 첫 번째 독립 시기를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운 7살’이라는 속설이 생겼다.

 

역시 책은 구체적 상황을 제시하지 않지만, 보편적 상황에는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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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6-13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벌써 다른 방에서 자겠다고 선언했어요? 멋진데요...
친구가 본인의 물건을 가진게 꽤나 부러웠나 보네요. 자아 개념이 확실하게 생기고 있군요.

중2인 저희 딸은 아직도, 악몽 꾸면 방 건너 오는데 말이죠. ㅋ

마립간 2014-06-14 07:52   좋아요 0 | URL
잠들기 전에 엄마가 필요하니, 불완전한 독립이죠. 부모 방으로 오기보다 엄마를 불러들이는 전술입니다.

안해가 아이의 잠자리 독립을 보면서 약간 서운한 감정있는 것과 달리. 저는 다른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것이 섭섭함의 다른 표현형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초등학교 입학 1년전 저의 모습이 스틸컷처럼 떠오르거나 몇 가지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는데, 아이가 이제 그 나이가 된 것이죠. 아이의 모습과 제 기억이 오버랩되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 育兒日記 140407

 

내가 아이에 대해 행동을 할 때는 내가 옳다는 믿음을 갖고 했지만, 이번 일은 확신이 없다. 아이가 지난 토요일로 마지막 구구단 7단을 외웠다.

 

실용지능이 없는 내가 빈민층에 있지 않는 것은 학업 성적 때문일 것이다. 전국 등수나 전교 등수를 따질 정도는 아니었고, 치열하게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수도권 대학에 걱정 없이 갈 것을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낙방하고 지방대학을 졸업했다.)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학업 성적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내 생각에는) 순전히 수학 때문이다. 나는 수학 성적을 걱정해 본적이 없다. 흥미를 갖고 공부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성적으로 연결되었다. (이와 같은 것이 가능했던 것은 전두환 대통령 정권하에 사교육이 금지되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수학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는 것은 생물을 제외한 과학 과목 성적도 보장된다. 국사, 세계사, 국어 작문, 영어, 예체능 등의 과목의 내 성적은 나빴다. 학과 공부에서 수학이 빠지던 날이 기억난다. 이제 무엇으로 내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던.

 

그리고 수학은 국어 성적과도 관련을 갖는다. ‘내가 오른쪽 나무 밑에서 5개의 도토리를 주었고, 앞쪽 나무에서 6개를 주었고, 왼쪽 나무에서 7개를 주우면 모두 30개가 된다.’ 처음에 몇 개의 도토리를 갖고 있었는가, 지금은 몇 개의 도토리를 갖고 있는가? 이 문제는 국어 이해능력 없이는 풀이가 안 된다.

 

아이는 분명히 나와 다른 인생을 살 것이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안내할 수 없고 내가 경험한 것에서만 안내가 가능하다. 내가 잘하지 못했던 예체능, 암기과목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조언은 할 수 없지만, 만약 수학을 쉽게 느낄 수 있다면 학창 시절의 학과 공부를 조금은 수월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아이는 구구단을 외기 싫다고 하였고, 나는 구구단 외울 때마다 선물을 하나씩 사주었다. 아이는 선물은 받고 싶고 구구단을 외기 싫은 상태에서 어떤 경우에는 울면서 구구단을 외웠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선물이 필요하니 꼭 외우겠다고 했다. 강제성이 규율사회에서처럼 있는 것은 아니나 성과사회처럼 있었던 것이다.

 

내가 구구단에 집착했던 이유는 산수는 수학이 아님에도 초등학교에서 산수는 중요한 부분이다. 연산에서는 (가감승제 4가지가 아니고) 3가지 덧셈(-뺄셈), 곱셈(-나눗셈), 모듈module이 있다. 아이가 한글, 숫자, 간단한 덧셈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었다. 요즘에는 시각을 알 필요가 생기면서 아날로그 시계 보기를 통해 모듈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있다. 그런데, 곱셈에 관해서는 아이의 동기가 없었다. 그래서 별도의 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물질적으로 동기부여를 하였다.

 

이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판단은 아이가 곱셈에 관해 부정적 감정과 연결되었고, 순수하게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보다 물질적인 것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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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育兒日記 140405

- 지난해 (2013년) 할로윈 날에 딸아이가 지은 글

 

* 무제 by 누고

 

병기에 쉬가 안 나오고

바닥해 흘리내.

 

병기에도 똥을

뿡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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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育兒日記 140217

 

* 7세 남아 ;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생이야. 이때는 이래서 고생이고, 저때는 저래서 고생이고, ... ”

 

* 40년 뒤 그 남아의 딸, 7세 여아 ; “사람은 그 나이에 맞는 좋은 점이 있은 것 같아. 이 나이 때는 이래서 좋고, 저 나이 때는 저래서 좋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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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身邊雜記 140213

 

* 최근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친구에게 한 질문

질문 1 ; (천주교 또는 개신교의) 하나님 아버지는 전지전능하며 공의롭고 자애로운 분인가?

질문 2 ; 죄는 왜, 어떻게 생겨났는가?

 

* 예전 (한 5년전 쯤) 후배와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후배에게 한 질문

질문 1 ; (천주교 또는 개신교의) 하나님 아버지는 완벽/완전하신가? 그리고 인간은 불완전한가? (후배는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뜻을 표현했다.)

질문 2 ; 하나님 아버지와 인간과의 관계는 완전한가, 불완전한가? (후배는 그냥 당황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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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2-13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12)

언젠가는 ....

마립간 2014-02-13 11:20   좋아요 0 | URL
'나는 스피노자가 믿는 신을 믿습니다.' by 아인슈타인

페크pek0501 2014-02-13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세상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게 이상하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이상하고, 세상 속의 질서도 이상하고,
사람들의 무의식이라는 것도 이상하고 .... 다 이상하고...
하하~~ 그래서 종교가 생겨난 것일까요?

마립간 2014-02-13 15:58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세상의 삶과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고,
이 세상 중에서도 우리 나라는 (저의 간접 경험을 비춰보면) 보다 더 나와 잘 맞지 않고,
내가 속해 있는 직업 환경 또는 우리 나라 사회에 일부이기 때문에 저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이런 설교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당신 마음을 모두 채울 수 없다.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면 항상 허전함이 남게 된다. (뒤에 그 허전함을 종교, 개신교의 신앙을 채울 수 있다고 하셨지만,)

저에게는 (개신교를 포함한) 종교로서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