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아니라 학교가 문제다 - 현 교육 시스템에서 아들을 성공시킬 학습 전략 8가지
마이클 규리언.캐시 스티븐스 지음, 고정아 옮김 / 큰솔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 나이가 들었다고 하기에는 어른신들이 야단치실 것 같고, 하지만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조금이 있는 저의 나이에서... 스스로에 대해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생활태도와 사고방식에 변화를 느낍니다. 지금 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왜?’라는 것에 관심을 갖고 살았는데,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로 관심이 이동되었습니다.


 많은 책에서 남녀의 차이, 신체적인 면뿐만 아니라 사고체계 차이에 대해 언급하였고, 이것은 후천적 요인뿐만 아니라 태어날 적부터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 방법에서 있어서도 남녀(아들과 딸)에 차이를 두고 교육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리는 차이와 차별의 한계를 명확하게 긋기 어렵다는 점에서 차별적 교육, 불평등 교육으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교육제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평균화 정책의 유지든 아니면 평준화 폐지든, 그리고 최근 논란이 된 ‘고교 배정 개정안’도 목적은 학생들을 잘 가르쳐 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가르치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요? 50 만명 넘는 수험생 하나 하나에 맞추어 50만개에 해당하는 교육제도가 필요할까요? 우선 남녀가 다르니 남학생을 위한 교육제도와 여학생을 위한 교육제도로 둘로 나눈 것이 타당할까요?


 주위의 아이들(또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 아이의 재능은 어떠어떠하니 어떻게 교육을 시켜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눈에 띄는 아이가 많던가요. 제가 보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평범합니다. 또한 모든 부모님들 현명하여 자신의 아이들의 장단점을 알고 이에 맡게 키울 능력을 가졌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 때문에 제도권 하에 안전한 직업(속된 말로 ‘사’가 들어가는 직업)을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의 사막에도 석유(에너지)를 사용하면 정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장점과 동시에 단점을 갖고 있는데 적절한 노력(부모님의 돈, 시간, 정성을 포함한)이 더해진다면 모든 아이들은 훌륭한 성인으로 자랄 것입니다. 서구에서 교육을 효과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시청각 교재를 사용하였으나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여러 학생들에게 이런 교육 방법은 (이 책의 ‘학습 전략 5 ; 언어 과목 성적부터 올리자’와 유사) 구체적으로 적용되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갖고 견해로는 현대 사회는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적합합니다. 아들, 딸의 교육 제도뿐만 아니라. 결론적으로 아들의 교육은 에너지는 더 소모되는데 성공의 확률은 불확실하다. 어찌하겠습니까? 여성만으로 사회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많은 부모가 아들을 자식으로 갖고 있으니... 저는 다른 결론으로 ‘학교가 문제다’가 아니고 ‘좋은 부모가 됩시다.’가 옳은 결론으로 생각합니다.


 이 책은 아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몇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으니 좋은 부모가 되도록 합시다. 특히 아들에게는 더욱 더 필요한 조건입니다.


 밑줄 긋기 ; p 20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하자’ 
                
 p 63 ‘애착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학습도 가능하다.’


(알라딘 서평단에 뽑혀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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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6-12-21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미리 읽어 놓고도 게을러서 이제 서평을 올려 책을 보내주신 '큰솔' 출판사에게 죄송합니다.
아들 교육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있을 때, 마침 이에 해당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기대가 많았는데, 주제의 적합성에 비해 내용이 2% 부족한 듯합니다.
 
질병 판매학
레이 모이니헌.앨런 커셀스 지음, 홍혜걸 옮김 / 알마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에서 언급된 GSK(글락소 스미스 클라인), 로슈Roche, 쉐링푸라우Schering-Plough등의 제약회사 이름이 너무나 친숙하며 과민성 대장 증후군Irritable bowel syndrome, 고혈압Hypertension의 의학적 용어에 파묻혀 사는 제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의료계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관점으로 의료계를 보나 이 책을 포함한 대중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이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제목만 보아도 무슨 내용인지는 짐작이 갑니다. 질병의 홍보가 제약회사의 약 판매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죽어요> (폴 방키몽 저/김미선 역/서해문집 출판)라는 책을 통해 이미 제약회사의 비판을 읽은 바 있는 저는 이 책의 내용이 충격을 주거나 새롭지 않았습니다. 담담하다는 것이 도덕불감증일까요?

 

 이 책의 맹점을 지적하고자 저의 알라딘 블로그 통해 몇 가지 의학적 내용을 올렸고 비판을 기다렸으나 눈에 띄는 댓글은 없었습니다. 의사유발수요의 단편적인 예를 보여 주기 위해 제왕절개에 관한 투표를 실시하였는데, (단 네분이 투표하였지만) 100% 수술을 하겠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책의 구절구절에 대한 반론을 글로 쓴다면 작은 책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틀린 내용(사실)을 써 놓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보고서를 읽은 적은 없지만 이 내용의 진실성에 동감합니다.


 한 방송 토론에서 의사의 감기(상기도 감염)에 대한 항생제 처방을 보고 시민 단체 대표자분이 의사들의 비도덕성을 비난하였습니다. 의료 체계의 개선보다 의사의 도덕성이 더 중요한 것이라면 학교 운영의 투명성 공정성을 위한 법률 보다는 학교 운영자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요.


 이 책을 읽고 제가 걱정하는 것은 가치판단입니다. 저도 어렵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겠는데, 이 저자는 당당하게 비평을 합니다.


 - ‘이류 유권자가 삼류 정치를 만든다.’ ; 저의 주위 사람이 정치를 비판할 때 저는 위와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류 환자(?)가 삼류 의료 체계(의료인)를 만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류 환자가 아닌 일류 환자를 기대하는 것은 마치 완벽한 도덕성을 갖은 의사를 기대한 것과 뭐가 다른가?’ 이야기하면 역시 저도 논리의 모순에 빠집니다. 그래도 이 책을 읽는 다수 독자가 의료인이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읽게 된다면 다음 몇 가지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의료인은 학문적으로 완벽하지 않으며 의학 역시 학문적으로 완벽하지 않습니다. 물**라는 별명을 갖은 분이 저에게 ‘의사들도 잘 모르데요.’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제가 갖고 있는 교과서를 한 줄로 쌓아 놓으면 저의 키보다 높습니다. 그 많은 내용을 다 이해하고 암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의사는 보통 사람입니다. 성인군자와 같은 의사, 극소수 있습니다. 나쁜 의사, 안타깝지만 역시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는 ‘환자를 잘 치료하고, 그러다 보면 좋은 의사로 소문이 나고, 많은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돈도 벌고.’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진단 - 이것을 원하면 검사가 많이 시행될 수 있고, 완벽한 증상의 호전 - 이것은 과도한 투약을 포함한 치료를 가져오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현대의 질병은 환자의 생활 습관을 바로 잡는 것이 기본입니다. 고혈압은 중풍이나 심장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투약이 필요한데, 더 중요한 것은 금연, 적절한 체중 조절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책의 저자가 비판하는 바가 이것입니다. 전혀 생활적인 면이 조절되지 않는 상태에서 약은 그 치료효과가 매우 미미합니다. 약으로만 치료받으려는 환자, 환자에 동조하는 의사, 환자-의사에게 동조하는 제약회사 그리고 이제는 그 역순.


 노화와 사망에 대한 수긍이 필요합니다. - 이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인데,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늙는다는 것은 슬프고, 죽는다는 것은 무섭습니다. 그러나 첨단의 현대의학으로도,  어떤 훌륭한 의사도 노화와 사망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의학으로 도움을 받을 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라딘 서평단에 뽑혀 이 서평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 ; 이 책에서는 제약회사의 후원을 받아 약을 파는 의사들이 묘사되고 있는데, 나는 출판사의 후원을 받아 (이 책을 무료로 받았으므로) 서평을 쓰고 이 서평은 책을 판매의 홍보자료로 쓰일 테니 정말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제약회사 직원들에게 다음 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 상대편의 반격이 있었다. 그러나 그 반격은 미미하였다.

cf ; 알리딘 블로그 ; 마립간 마이페이퍼 글 ; 질병판매학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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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6-12-04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가지 투표는 4명 참가, 또 다른 투표는 1명 참가... 인기 없는 서재가 서글프다.

marine 2006-12-07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옳은 소리는 원래 인기가 없는 법이죠^^
전 의사들이 대중적인 글들을 더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책은 안 읽어 봤지만 일종의 음모론도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이런 서평을 용감하게 쓰신 마립간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마립간 2006-12-08 0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마린님, 격려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견해가 옳은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인기가 없는 것은 사실인 것 같고, 외면한다고 문제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삼성이 두렵다 - 세계 최강기업
기타오카 도시아키 외 지음, 장서명 옮김 / 책보 / 2006년 1월
절판


일본과 한국은 한국 산업이 일본을 모방해 왔다는 역사적인 경위에서부터 산업이나 제품이 중복되어 경쟁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공생이라든가 시공간을 조화롭게 나누어 살아간다는 속빈 강정 같은 말은 있을 수 없다. 치열한 경쟁이 있을 뿐이고, 어느 한 쪽은 시장에서 쫓겨나야 한다.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격렬한 싸움인 것이다.

by 키타오카 도시아키-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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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공범자들
임지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 기대보다 좋았던 책 -


 처음 대중매체를 통해 이 책을 대했을 때, 인상 깊었던 것이 책 겉표지의 네 인물입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김일성, 그리고 부시와 빈 라덴. 책을 읽지 않아도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연상되었습니다.


 중학교 때 환경 미화를 위해 게시판 사진을 모으던 중이었습니다. 동이 틀 무렵 일터로 나가는 근로자들을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지나가시던 선생님이 이 사진을 보고 ‘천리마 노동에 동원된 북한 동포라고 제목을 부치면 느낌이 어떨까.’라고 하셨습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기도 했고 상대주의에 대한 생각이 많던 때라 매우 인상 깊은 사건이었습니다.


 그 후 박정희 정권과 김일성 정권의 밀월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게 된 적이 있었는데, 김신조씨가 1968년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 1.21사태라 불리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남한의 정치적 상황은 집권층에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오래 지속된 집권으로 말미암아 불만이 증폭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북한에서도 경제적 침체와 역시 장기 집권에 의한 정치적 불안이 있었는데, 1.21사태와 유사한 열차 폭파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통용되는 명칭을 모르고 자료도 찾을 수가 없는데, 알고 계신 알라디너 계시면 알려주세요.) 북한에서는 고 김일성 주석을 암살하기 위한 사건이었다고 대대적 홍보가 있었고 북한 내부의 불안 요소 제거 및 단합을 이루었습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분은 상대의 정치적 위험이 있을 때마다 알아서? 어떤 행동을 했다고 이야기하시도 했습니다. 상대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을 아닐까. 저자가 제시한 새마을 운동과 천리마 운동뿐만 아니라 떠오르는 이미지들의 유사점이 왜 이리도 많은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으로 생각하며 책을 구입했는데, 거기에 또 다른 공범자가 있었으니 바로 국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신정권 하에 경제 개발을 국가 주도하에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선진화된 조국을 바라는 국민이 있었습니다. '독제 등의 정치적 상황은 나의 책임이 아니고 집권층의 도덕적 잘못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경제 개발의 열매에 취하면서 정치적 상황을 묵인하는 국민... 또 다른 공범자. 저자는 만약 공범자의 마음, 즉 국민의 마음속에 조국 근대화라는 열망이 없었다면 위로부터의 강압으로만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생각의 전환은 보수와 진보(좌우)의 개념인데,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갖은 우리나라에서 왜곡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있지만 저의 기준으로 분석하면 측면을 정치적, 경제적, 민족의 가치, 남녀평등, 나이 등의 다면多面(다면)적으로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양분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보수적, 구분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진보적이라는 개념을 주었습니다. 다면적이라기보다 다층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책의 흐름을 이해하면서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점을 지적하면

 양자를 가르려는 의도는 없어도 선택의 시점은 있게 마련이라는 것,

 민족의 개념의 해체라는 것을 받아들기도 감정적으로 어렵고 인성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며,

 처벌은 능사가 아니며 역사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하니 기억을 통해 심판한다고 하지만 일제 식민지 지배에 동조했던 세력들과 한국동란을 일으킨 세력에 대해 관용을 가져야 된다는 것. 처벌이 만능이 아니지만 관용 역시 만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무엇인가 부족했던 개념이 정리되어 책으로 나오니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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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6-07-20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이 '왜 자유와 평등의 선택을 강요했느냐?', 폭력적인 질문인지 알면서. 이 서평이 속편 답변입니다. 저자의 기준에 의하면 선택을 하는 사람이 오른쪽이라면 선택을 거부하는 사람이 왼쪽입니다. 물론 저처럼 선택을 강요한다면 더 오른쪽이 있는 사람이죠. 평등을 택했든, 아니면 분배를 택했든, 북한 지원을 택했든...

마립간 2006-07-20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대적 공범자들> p 197

 정치 공학의 관점에서 볼 때, 폭력과 억압은 사실 그다지 생산적인 방법이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전정한 지지나 성원을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잠재적 지지 세력 또는 회색 지대에서 동요하는 사람들을 소회시키기 때문이다.


* 가을산님 이야기하셨던 진보가 왜 장기적으로 효율적이냐를 증거하는 밑줄 긋기

 
나는 감동을 전하는 기자이고 싶다
김은혜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뉴스는 사실만 전달해야 하는가, 아니면 전달자의 의견이 포함되어야 하는 질문에 하루(春)님 추천을 해 주신 책입니다. 추천해 주신 분은 앵커는 뉴스 전달시 자신의 의견이나 논평을 포함하는 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이 없다.’로 생각합니다. 우습지요. 자신은 답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남에게 해답을 달라고 하니.


 책을 읽고 감상문을 문학적으로 쓰는 소양은 없고 그저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이 저의 재능이니 역시 이 책도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여러 곳에서 목적을 위해 잘못된 방법을 사용된 것을 보입니다.

 첫 번째 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출입할 때 P형사는 경찰대학 졸업생으로 가장시켜 위조해 주었다.’ 명백한 공문서 위조와 P형사를 공범으로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글 ‘지존파’ ‘귀를 바짝 대고 들었지만...’ 이것을 도청이라고 하면 과한 것일까. ‘불길에 뛰어드는 부나비처럼’에서는 울타리를 넘었다. 이는 무단침입입니다. ‘나도 먹자’에서 협박 공갈에 해당하는 내용, ‘기자는 별 걸 다해, 신비의 서류뭉치’에서 남의 책상 함부로 열고 서류를 가져가기. (이것은 무슨 죄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네, 절도?).

 ‘삼풍 무너지다.’에서는 경찰들이 지하입구를 통제하기 위해 겹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것을 분위기가 산만해진 틈을 타서 들어가는 것이 나옵니다. 경찰들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기자들의 출입을 막을까요?


 스스로가 ‘불법인지 적법인지 그 한계가 다소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그 분계선이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때로는 불법 쪽으로 슬쩍 발을 들이밀기도 했던 그 시절의 행동들을 돌아볼 때면...’라고 서술하였습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 어디서 많이 본 문장이 아닌가요. 황우석 박사님이 연구를 위해 난자를 비윤리적으로 채취했을 때, MBC PD 수첩이 황우석 박사님을 취재했을 때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면 85년도(?) 학력고사 후 대학입학 지원 마지막 날 S대 접수창구가 방송에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감시간이 되자 현관문이 닫혀졌고 저 멀리서 한 학생이 뛰어 오면서 들어가려고 했으나 현관문이 닫친 것을 알고 잠시 당황하다가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알게 되었는데, 이 학생은 합격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장면을 두고 다음 날 학교에서는 여러 의견이 오고 갔는데, 뭐 용감했다. 아니다 잘못했다. 어떻게 일 년을 허비하느냐. 당시 선생님 한 분은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내 인생의 일 년을 허비하더라도 돌아갔을 것이다. 저 유리문을 부수는 것은 공공기물 파손의 엄연한 범죄 행위이다. 어떻게 그 학생이 저렇게 행동했는지, 왜 사회에서 그 정도는 용납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 이 말씀은 저의 인생에 또 하나의 가치관이 되었습니다. (뭐 제가 이 기준에 맞게 산다고 할 수 없지만, 그리고 준법선의 가치관이 무법선보다 낫다고 할 수 없지만.)


 스스로가 감동을 전하고 싶어 했지만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에서 무엇이 감동인가 의문을 갖게 합니다. 지존파에서 살아남은 여성에게 인터뷰를 강행하는 것은 시청자나 국민에게 어떤 감동이나 이익을 주었을까. 여성이전에 같은 인간으로서 부담이 되었다고 고백까지 하였지만, ‘그녀가 이겨내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그녀의 심정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 보였다.’ 과연 그 피해자가 기자와 헤어진 뒤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느꼈을까. 백보 양보하여 그 여성의 경우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경우도 동일하게 반응할까.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기자와 사진 기자 사이에 짤막한 대화, ‘선수들끼리 왜 그래?’ ‘조직폭력배와 만남’에서는 영안실 인터뷰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유가족을 붙들고 이리저리 요리저리 인터뷰로 따져 묻는 그 자체가 유가족에게는 고문이다.’ 그리고 ‘허공에 뿌려진 염원’에서 납북인 고상문씨의 아내 조복희씨의 자살.


 ‘의사, 작전에 뛰어들다.’ 의사의 본분은 환자가 아무리 파렴치범이라고 개인의 비밀을 보장하고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다하는 것으로 삼습니다. 심지어 전쟁 중에도 적군을 치료합니다. 만약 특정인이 (이글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비판 받아 마땅하여 위와 같은 의사 본분을 저버린 것은 마치 우리나라의 판례 ‘보호할 필요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와 같은 결론을 갖습니다.


 ‘경찰서 신고식, 조련사 선배, 기자들의 시집살이’ 등에서 보이는 위계질서는 그 상급자가 선한 성향을 가지고 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아니 오히려 더 좋은 방향의 결과를 가져오지만 악의를 갖고 있는 상급자일 경우에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상급자나 조직의 비리를 위계질서로 덮으려는.


 기자의 고뇌와 모순 ‘렌즈 속의 숨은 비극’에 잘 나와 있습니다. 냉정한 역사의식의 전사로서와 휴머니즘이 결여된 영원한 방관자로서의 처절한 가슴앓이. 수단의 기아의 참혹함을 고발하였지만 사진의 주인공 여아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명품의 과소비를 고발하는 뉴스가 더욱 더 명품의 소비를 부채질합니다.


 저는 김은혜 앵커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고 - 제가 MBC 뉴스를 볼 당시에는 트로이카 백지연, 정혜정, 김은주 앵커의 전성시대였습니다. - 이 책을 통해 뛰어난 직관력을 보여 주며(‘지존파’에서 부자를 고르는 방법을 백화점에서 고객명단으로 넘겨짚음. 노태우 전 대통령의 수감 장소를 알아내는 것 등)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날..... 샜다, 맨 얼굴의 힘, 자유라는 이름의 대학 등의 글에서)을 알고 매우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 글을 통해 ‘기자’라는 직업을 싫어한다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해야겠습니다. 영향력이 커서 큰 도덕성이 필요한 직업을 고른다면 아마 정치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 사건에 있어 비도덕적인 일이 발생하였을 때, 별로 놀라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은 도덕적인 사람보다 비도덕적인 사람들이 많고 비도덕적인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역활의 내포된 의미도 도덕성이 두드러지지도 않습니다. 역활의 측면에서 도덕성을 비교하자면 종교계가 더 도덕적이어야 되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비리에 더 흥분해야 되나 종교계의 비리에 접할 기회는 (저에게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기자의 경우는 어떨까. 아마 기자의 역할이 사회의 도덕을 감시하는 역할을 갖기 때문에, 그리고 영향력을 동시에 갖기 때문에, 그 예를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제가 예민해 하는 것 같습니다. 도덕성만 비교하자면 여느 집단, 예를 들면 법조계, 의료계, 종교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영향력과 역할의 도덕적 측면에서 다른 집단과 같은 정도의 도덕성을 갖고 있더라도 저의 부정적 관점이 더욱 크게 보입니다.

 그 영향력에 관한 설명하기 좋은 단편적인 사례가 이 책에 쓰여 있는 ‘명품소비에 관한 고발’입니다. 기자가 명품의 소비를 고발한 것은 명품을 소비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고발은 소비를 더욱 부축입니다. (대부분의 기자가 이것을 모를 만큼 무지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알고도 발표할 만큼 부도덕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부도덕은 제 기준에 의한 것입니다.) 따라서 저의 관점에서는 고발되지 말거나 가능한 한 선정성(및 현장성)을 거의 없애 무덤덤하게 보도(방송)할 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는 시청률(구독률)과 관련 있는 잠재적 황색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가 파급효과를 고려해야 될 것인가는 또 다른 논란이겠지만 과학자가 과학연구만으로 도덕적 면죄를 받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 제가 기자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자들이 감당하기에는 제가 너무나도 높은 도덕성과 지적능력을 기대하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은혜 앵커의 개인적 매력을 느끼게 하는 구절에 밑줄긋기입니다. : 지금까지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라고 꼽는 여성들을 보면 한결같이 도전적이고 공격적이고 독할 정도로 강하다는 이미지가 주류를 이뤘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남성보다 강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여건이 작용해서 그럴 것이고 또 자신에게 혹독하지 않으면, 자신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지 않으면 프로로 살아남을 수 없는 지금의 사회 환경을 역설하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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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대의 변화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8-06-05 11:46 
     제거 어렸을 때 서울우유를 가끔 마셨는데, 그 당시에 포장은 원통형의 유리병으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서주우유에서 carton pak이고 불리는 종이로 만든 포장을 시작했습니다. 임성훈와 최미나씨가 광고 모델이었죠. 우유 종이 포장이 나온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우유의 포장이 종이 포장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우유가 종이 포장으로 바뀌었을 때 충격은 종이 포장이 처음 나왔을 때 이상이었습니다.  
 
 
마냐 2006-01-16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존파, 귀 바짝 대고 듣던 기억이 저도 납니다. '도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데, 형사과장 방이라든지...문 잠그고 뭔가 하면...혹시 뭐라도 건질까 싶어서 문틈에 온갖 기자들이 수직으로 나란히 귀를 대는 거죠. 어쨌든 그 시절엔 그랬슴다. 은혜씨와 같은 시절 경찰서를 돌았는데...그때만해도 형사들 책상, 캐비넷 뻥뻥 걷어차며 기 세우기, 조서 슬쩍하기, 쓰레기통 뒤지기...뭐 그런 불법 및 폭력적 행위들을 할 수 있으면 하라는 분위기였죠. 경찰은 늘 기자의 밥이었기 때문임다. 당시만해도, 경찰은 늘 구린데가 많았고...작심하면 얼마든 목을 날려줄 수 있다는 식이었기 때문에..그런 말도 안되는 우위가 가능했던 모양임다.
제가 알기로 요즘엔 그런 식의 '오버'는 거의 사라진 듯 합니다. 취재 방식도 많이 바뀌었구요. 물론 할 수 있다면, '잠입'하는 것, 서류 '입수'하는 건 여전히 유효할 수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취재에선...무리수를 두는 것도 피해야 하죠. 기자의 도덕성은 취재대상이 간절히 숨기고자 하는 진실 앞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생각하며 유연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원칙은 지켜야죠. 뭐, 비난을 피할 수 생각은 없슴다. 다만 불법을 즐기는 기자가 어디겠슴까. 사안의 심각성, 진실의 무게 등이 판단을 좌우하겠죠. 최근 황교수 사태의 PD수첩 취재진의 취재 방식도 예전엔 드물지 않았던 것이, 최근엔 거의 없어졌다는...수준이겠네요.

황색 저널리즘 지적 앞에선, 참으로 자유롭기 어렵슴다. 보수적 매체든 진보적 매체든...일단 독자의, 시청자의 시선끄는게 먼저다..싶을 수도 있겠죠. 다만, 숨겨진 진실은 늘 짜릿하고, 그 자체로 선정적인 법입니다. 굳이 '초'를 치지 않아도 말이죠. 더 위험한 건, '곡학아세' 부분인데....그건 국내 언론만의 문제도 아니더군요. 거대한 틀에서, 보수와 진보의 싸움으로도 이해할 부분이 있슴다. 암튼, 마립간님...앞으로도 기자를 싫어하시길. 보도의 행간을 읽어주시길. 언론의 목소리를 거르지 않고 무조건 수용하는 것보단 그게 훨 낫슴다. 그런 눈을 키우는데도 언론이 기여할 부분이 있겠지만 말임다........여튼, 그래도 대한민국이 지난 몇십년간 조금이나마 개선된 부분에 있어서, 어떤 기자들은 분명 자부심을 가질겁니다. 지적하신대로 언론의 권력...경계하면서, 잘 활용할 수 있도록..고민하고 또 고민해야겠죠.

하루(春) 2006-01-1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리뷰를 이렇게 쓰시네요. 새롭습니다. 조목조목 짚어주시는 꼼꼼함에 놀랐어요. 꼬집으신 부분에서 제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는 하나, 리뷰를 썼다면 절대 이렇게 못 썼을 거예요. 그럼에도 제가 김은혜 기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스스로에게 꽤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최소한 뭐가 잘못됐고, 뭐가 잘된 건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