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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칭어, 대립어

 

 제가 ‘반대말 비슷한 말’ 페이퍼에서 ‘대칭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제가 처음으로 만들어 낸 용어가 아니고 어디서 본 (어디서인지가 기억나지 않음) 것입니다. 이 대칭어가 공식적인 용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넷 검색에는 나오지 않으니 공식용어가 아니거나 공식용어였다가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와 ‘아들’ 단어의 관계에 ‘대칭어’라는 용어보다 ‘대립어’라는 용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칭어’라는 것에 어울리는 낱말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1)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의 남편이다.

2)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의 배우자다.

 

 1)번 문장의 두 단어를 바꾸면 ‘보부아르는 사르트르 남편이다.’는 옳은 문장이 아닙니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아내이다.’가 옳은 문장입니다. 2)번 문장의 경우는 두 단어를 바꾸어도 옳은 문장이 됩니다. 저는 이것에 ‘대칭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성에 대해 비대칭인 반면 배우자는 성에 대해 대칭적인 단어라고 할 수 있죠. 복합어를 만들면서 비대칭성 단어에서 대칭성 단어로 된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부, 밤낮 등이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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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말

 초등학교 시절, 학습서에는 낱말 풀이가 있었고 그 끝에 비슷한 말, 반대말이 적혀 있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와 여자, 낮과 밤, 앞과 뒤, 아버지와 어머니 등입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당황하게 된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낱말 쌍을 본 것입니다. 남자와 낮처럼 무관한 단어도 아니면서 아버지의 반대말은 어머니가 있고... 그렇다면 이 두 단어의 관계를 뭐라고 했야지. (그 당시에 찾아본 것으로는) 낱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대칭어라고 합니다. (인터넷 검색에서 대칭어의 정의定義를 찾을 수 없네.)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저의 추론으로 내린 결론은 ‘아버지의 반대말은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앞과 뒤, 밝음과 어둠은 개념적으로 단일 개념이고 이분법이 가능합니다. 남녀와 밤낮은 실제적으로 회색 지대를 갖지만 (즉 양성구유나 해 뜰 무렵, 땅거미 지는 때 등 실제적으로 spectrum를 갖지만) 개념적으로는 단일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남자라는 성별과 출산을 유발시킨 사람의 두 가지 개념이 복합되어 있으니 반대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양성구유 http://blog.aladin.co.kr/maripkahn/12878

 

 오히려 이분법 배중률이 적용되는 것이 대수적 수algebraic number와 초월수transcendental number입니다. (그렇다면 대수적 수의 반대말은 초월수?)

 

* 비슷한 말

 초등학교 시절에는 비슷한 말에도 의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뉘앙스nuance라는 단어를 알고 난 이후 과연 비슷한 말이라고 해야 할 공통점을 어느 범위로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어 단어 책에서 symptom과 sign이 비슷한 말로 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 두 단어는 분명이 다른 의미입니다.

 

cf Definition의 해석, 정의가 왜 定意가 아니고, 定義일까?

* 빨간색의 반대말은 파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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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5-20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늘 궁금한 것이 그겁니다. 아버지의 반대말이 왜 어머니가 되지 ?!!!!!
친구의 반대말이 적인데... 그렇다면 아버지의 반대는 어머니이니 아버지에게 있어 어머니는 적인가 ?
이런 생각 말입니다...ㅎㅎㅎㅎㅎ

마립간 2013-05-20 14:05   좋아요 1 | URL
언어는 일부 논리적이지만, 일부는 논리적이지 않은데, 이 논리적인 것을 지적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사용해요.'라는 답변과 왜 쓸데없이 그런 것을 생각하냐는 지적(또는 비난)에 ... 저는 지적유희로만 즐기고 있습니다. 사실 언어가 가치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꼭 그렇게 무시할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 공자와 주자

 

 공자에 대한 저의 인상은 부정적인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인데, 저는 자연 철학을 인문 철학보다 더 높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다음 문장은 조심스럽습니다.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고등학생 교양 수순으로) 논어를 읽은 후 더 실망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도덕경이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유교를 가볍게 여기거나 매력이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주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자와 공자 중에서 선호하는 한사람을 택하고자 한다면 주자입니다. EBS 강의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님은 공자는 나(도올)보다 훌륭한 사람이지만 주자는 나와 동급이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철학에 문외한인 제가 도올 선생님이나 공자나 주자는 모두 대단한 사람이라 뭐라 평가할 수 없지만 도올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주자보다는 공자가 철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이 의견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한자/한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면 한문은 (다른 어떤 언어/글자보다도) 이중적, 중의적, 애매모호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특징으로부터 원래에 의미와 다른 해석의 여지가 많습니다.

 

* 부부유별 http://blog.aladin.co.kr/maripkahn/571215

 

 이런 해석의 확장을 통한 개념의 변경은 꼭 인문학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질량의 보존의 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확장된 것과 같습니다.

 

* 호흡의 정의 http://blog.aladin.co.kr/maripkahn/469975

 

 공자가 저에게 주는 강력한 매력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 朝聞道, 夕死可矣.”의 가치관입니다.

 

<관중과 공자> p153

공자가 말했다.

“사(자공)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느냐?”

자공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다. 나는 한 가지 도리로써 모든 것을 관통하고 있다. [一以貫之]”

 

 제가 판단하는 바는 공자가 위대한 철학자이지만 소크라테스가 자아의 정체성으로 자신이 속해 있는 폴리스 아테네 밖으로 확장하려 했던 것이나,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의 말씀에 비하면 공자의 보편성은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리고 논어에 생각보다 형이하학形而下學적 이야기가 많은 것으로 느꼈습니다. (형이상학의 반대말은 유물론이나, 자연학(physics)이 맞겠지만, 여기 문맥상의 딱 적합한 어감은 형이하학으로 속어를 그냥 사용합니다.) 이런 형이하학적인 것을 형이상학metaphysics적 사고로 격상시킨 것은 주자라고 생각합니다. 주자학에 대해서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특히 조선시대의 붕당 서인들이 주자에 대해 절대시 하면서 이후의 발전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제 페이퍼의 ‘부부유별’이나 ‘호흡의 정의’에서 중간의 해석에 고착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자의 잘못은 아닙니다.

 

 廐焚 子 退朝曰 傷人乎 不問馬. ; 마구간에 불이 났었는데, 공자께서 퇴근하셔서 "사람이 다쳤느냐?"하고 말씀하시고, 말은 물어 보지 않으셨다."

 

 주자의 해석 ; 공자가 사람의 안부는 묻고 말의 안부를 묻지 않는 것은 사람 생명을 귀히 여기고 말馬의 손실은 재산의 손실로 가벼이 여기 묻지 않으셨다.

 다른 해석 ; 공자가 말이 다쳤는지 물으시려고 했다. (또는 기록에 남지 않았지만 물으셨다.) 공자께서 물으신 연유는 말馬도 생명이라 다치지를 않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다른 해석이 맞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공자는 신분 질서를 중요시 여겼던 분으로 사람 사이에서도 차별이 있었는데, 동물의 생명 가치를 그렇게 높게 여기셨을 것 같지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원전으로 훼손하자는 것이 아니고 다각적인 해석으로 통해 보편성[一以貫之]을 확립할 수 있는데, 그 본격적인 일을 주자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와 논어를 잘 모르는 저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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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결심에 관하여

 

 순오기님께서 댓글을 다셨고 추가 설명이 제 서재를 방문하시는 분께 도움이 될 것 같아 글을 씁니다.

 

 그것을 듣기 전까지 저에게 새해 결심은 1월 1일에 결심하고 잊어버리는 것, 잘 하면 일주일이나 10일 정도 유지하는 것 정도였습니다. 어느 방송 코메디에서 새해 결심을 거창하게 하고 지키지 못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적도 기억이 납니다. 배일집이 새해에는 운동을 하겠다. 배연정은 가계부를 쓰겠다. 담배를 끊겠다. 등

 

 젊은 시절에 1년은 꽤나 긴 시간이고 1월 1일 또는 3월 1일을 기점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따라서 새해 결심으로 무엇인가 거창하고 굉장히 의미있는 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공중파 방송에서 성탄절, 새해 특집도 유별났을 때입니다.

 

 그러던 중 제가 대학생 어느 때인가, 연말이었는데 (아마 라디오로 기억되는데, 아니면 TV나 신문일 수도 있음) ‘새해 결심은 거창한 것으로 하지 마라’라는 내용을 듣게(읽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듣는 순간 마치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 뒤에도 이야기가 지속되지만 이후 이야기는 기억에 남지 않고) 그 ‘새해 결심은 거창한 것으로 하지 마라’라는 내용이 충격에 가까울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후 새해 결심으로 사소한 것을 하기로 하였고 1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한번 결심을 1년간 지속한 경험을 가지니 자존감이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주위에 새해 결심을 1년간 지속한 사람을 볼 수 없을 때였는데, 저는 해낸 것입니다.

 

 그 다음 해의 결심으로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가는 것을 새해 결심으로 하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과는 시험을 잘 못 보면 낙제가 있는 과였기 때문에 시험에 관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고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는 병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교과서에 변비의 대부분의 원인이 ‘습관성 변비’라고 나와 있어 ‘배변 습관을 일정하게 하자’라는 새해 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새해 결심은 직업병으로 얻은 발무좀(쑥스럽네)에 무좀약 매일 1년간 바르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 장갑을 끼고 다니기도 있습니다.

 

 체중을 감량하고 싶을 때, 체중을 빼겠다고 새해 결심을 하면 대개 지키지 못합니다. 그 대신에 ‘저녁 8시 이후 아무 것도 먹지 않기’나 ‘커피와 같은 emptying calorie가 높은 음식 섭취하지 않기’를 먼저 새해 결심으로 한 후, ‘가볍게 운동하기’를 추가하는 방식이 좋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보다 저녁에 일찍 자기가 훨씬 더 실천하기 쉽습니다. 인체는 하루 주기가 25시간 정도에 맞춰져 있습니다. 신체 리듬상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일찍 잠자리에 들면 일찍 일어나게 마렵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정도의 의지는 아니지만 졸렵지 않더라도 잠자리에 드는 의지와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을 때, 잠자리에 일어나는 의지 정도는 필요합니다.

 

 책을 읽는 습관도 책을 읽어야겠다는 결심보다 ‘술값보다 책값을 더 쓴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시간과 돈이 자연히 책으로 쏠리게 되었습니다.

 

 아주 큰 의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3개월 정도 지속하기 쉽고 일단 3개월을 넘기면 생활 습관으로 자리 잡기 때문에 의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1월에 결심한 것이 잘 지켜지면 4월에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체중감량과 같은 것을 순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결심을 했음에도 잘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결심의 조건을 대폭! 완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폭 완화했기 때문에 ‘이정도 결심을 해서 무엇하나, 하지 말자’라는 유혹을 견뎌야 합니다. 너무 완화되었다고 생각되면 3개월 정도 지속한 뒤 조금 강화하면 됩니다. 저는 작심삼일을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3일 정도는, 실천해 보고 이 결심이 실천이 가능한지 테스트 해보는 기간이다.

 

 이런 해도 있었습니다. 만만한 새해 결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새해 결심은 ‘새해 결심이 없는 것이 결심이다.’ 한 달 정도 지난 1월 말이 되니 올해는 이것을 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해의 새해 결심은 1월 말에 결정되었습니다.

 

 순오기님이 제 새해결심의 대부분이 연말까지 지속되는 것이 놀랍다고 하셨는데, 제 의지가 놀라운 것이 아니라 연말까지 지속할 만한 것을 새해결심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더 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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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1-03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보충 설명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래도 연말까지 지속하는 건 대단하고 칭찬받을 만해요.

마립간 2012-01-04 07:48   좋아요 0 | URL
생각의 전환이죠. 새해결심이 연말까지 지속되지 않는 것은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결심이 잘못된 것이다.

순오기 2012-01-06 06:05   좋아요 0 | URL
하하~ 실천은 의지의 문제가 아닌 잘못된 결심이 문제로군요.^^

마녀고양이 2012-01-04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데요.
저는 1월 1일이라고 해서, 계획 같은 것을 잘 하지 않아요.
새해 결심은 잘 지켜지지 않더라구요. 사실 결심을 잘 지키지 못 해요.
그때마다 필요해서 하는 스탈이라서,, 전 제가 계획적인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필요에 의해서 계획적인 스타일일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거 같아요.. ^^

8시 이후 아무 것도 먹지 말기, 이거를 딸아이와 같이 해야겠어요. 1년간, 1년간. ^^

마립간 2012-01-04 17:14   좋아요 0 | URL
Up-grade! 필요할 때, 결심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업그레이드된 것이죠. 꼭 새해일 필요가 있나요.
 
단아한 서평집

* <책탐冊貪>을 읽은 후 몇 가지의 생각들

* 이 책을 읽으면서 명문장을 꼽으라면
‘책은 삶의 속도를 늦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속도를 처지지 않게 하는 보석이다.’입니다. ‘글샘’님은 4기 서평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라고 하셨는데, 저도 ‘서평단 후기’ 작성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저도 이 문장을 꼽았을 것입니다.

* 감정 ; 기쁨과 즐거움

 제가 고등학생 시절에 4단 7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4단은 그럭저럭 이해가 되는데, 7정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냥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慾으로 편하게 외고 있지만 (이 7가지는 제가 고른 것임), 원래는 (유교식) 희, 노, 우憂, 사思, 비悲 경驚, 공恐이나 (불교식) 희, 노, 우, 구, 애, 증憎, 욕
입니다. (옛날 제 국어사전에는.) 따라서 감정에 관해서는 명확한 개념이 없었는데, 저는 사랑愛만 하더라도 단일 감정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친구에게 제가 ‘희락喜樂의 긍정적 감정, 노애怒哀의 부정적 감정의 구분은 명확하고 비교적 노怒와 애哀의 감정 구분은 되는데, 희喜와 락樂은 구분이 잘 안 된다.’고 하면서 물었습니다. ‘희와 락은 어떻게 구분될까?’ 당시 친구는 '희'는 자신의 노력이 들어가서 성취했을 경우, '락'은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친구의 설명은 꽤 통찰력이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저는 생각으로 희와 락을 구분하지, 느끼는 것으로는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맹자感情盲者 특희 희락감정맹자喜樂感情盲者이죠.

p
270 기쁨은 자기 자신의 실천에만 관계되지만 즐거움은 인간세상, 이른바 상호주관적 관계에서 생겨나는 정서다.

문) 복권을 사서 당첨에 되었다. 이때 느끼는 감정은 기쁨인가? 즐거움인가?
- 고등학교 친구의 견해에 의하면 개인적 노력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즐거움에 해당되고 김경집 선생님의 견해에 의하면 상호주의 관점이 적음으로 기쁨에 해당된다.

* 넘쳐도 되는 욕심

- 독서는 과연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예외인가?

 저는 어떤 사람의 인문적 소양을 알아 볼 때 (누워서 침 뱉기다. 사람을 테스트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므로) 여행의 단점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 조차 싫다는 반응도 있고, 잠시 생각하다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몇 가지 언급을 하는 사람도 있고.

 - 여행의 기술의 서평 ‘다양성 즐기기’ (http://blog.aladin.co.kr/maripkahn/733549)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의 부작용을 느낄 만큼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독서의 부작용을 느낄 만큼 독서를 하는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알라딘에서 이런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경험적으로 ‘독서는 넘쳐도 되는 욕심’이 맞습니다. 그러나 합리성에 기초했을 때 분명한 부작용이 있을 것입니다.

문) 과도한 독서의 부작용은 무엇이 있을까?

 저와 같이 (저는 과도한 독서가가 아니고 과도한 책 구매자다.) 읽어야 되는 책을 구입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종이의 과소비가 단점이 되겠지요.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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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1-0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참 좋으셨나 봅니다. 읽고 싶어지는데요?
그런데 저도 보통의 책은 대체로 좋았는데 저 여행의 기술은 좀 지루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흐흐.

마립간 2010-01-02 12:31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도 괜찮고 <여행의 기술>도 좋았습니다.

마립간 2010-01-02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 여러분!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도 잘 되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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