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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그림 2점

* 책벌레


* 가난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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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12월, 歲寒圖는 歲閑渡로 재구성하며

세한도를 교과서 그림으로 처음 본 10대 때 국사 선생님이 아무리 완당의 그림을 걸작이라 말해도 나는 콧방귀만 꿨다. 마네와 모네의 빛의 구도와 피카소의 권력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서양회화에서 세한도는 초라한 그림이었다. 붓질 몇 번 하고 왼쪽에 한자로 가득 찬 그림이 뭐가 잘 그렸다는 것인가. 집을 보자. 지붕선과 벽선은 희미하게 끊어질 듯 이어지고 대문은 따로 안 보인다. 동그랗게 앞 벽에 뭔가 구멍 뚫린 게 보이긴 하지만 우리가 양반가에서 볼 수 있는 위엄 높은 솟을대문이나 최소한 반듯한 대문의 형체는 아니다. 어찌 보면 중국식 문처럼 둥근 그것과 더 해독 불가능한 소나무. 왼쪽의 나무 두 그루는 비쩍 마르고 키만 컸지 잎이 성글다. 다 늙어 머리털 몇 올 숭숭한 늙은이의 모양새다. 더 기이한 나무는 오른쪽 나문데, 맨 오른쪽 나무는 제법 기둥이 묵직해 보인다. 그런데 가지가 한쪽으로 휘어있다. 휘어 있는 가지 끝에 잎이 몇 개 겨우 보인다. 꼭 분재에서 볼 수 있는 변이종의 형태를 띤다. 잘 생긴 나무는 없고, 울타리 없는 집도 초라하고, 갓 쓰고 문 앞에 서 있는 노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렘브란트의 대작에 길들인 내 10대의 기억은 말한다. 이 그림이 당췌 어디가 걸작이라는 건가.


이십대에 들어서자 세한도는 약간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치장하지 않은 집과 단출한 소나무는 소박하다. 생략법을 사용한 그림의 소박함은 고상했다. 왼쪽여백을 가득 메운 글씨와 한 쌍의 완벽한 ‘커플’이다. 안정감 있고, 착한 그림. 세한도가 내 가슴 앞까지 확 다가온 것은 그로부터 십 년이 더 흐른 후의 일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견딜 수 없는 상황을 견디고 나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양분으로 성장을 한다. 비로소 내 안의 군더더기들이 죄다 버리고 싶어진다. 알고 보니 금과옥조라 여긴 내면의 부피와 현실의 눈요기들은 침 한 번 뱉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쓰레기더미였던 것이다. 아까울 것이 없다고 한 순간 여긴다. 그런 일을 몇 번, 좀 더 빨리 깨우치는 사람이라면 단 한번의 시련만으로도 무상함을 알게 된다. 무상하다고 하니까 무슨 염세주의를 논하는가 하지만 그건 완전 왜곡의 오류다. 무상은 아무 집착 없는 세계를 말한다. 집착을 줄이고 나면 마음이 고요하다. 태풍이 '사우론'처럼 들이닥쳐도 서두르지 않는다. 요긴하게 써야 할 자신의 '무기'(지혜와 용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런 경지가 언제쯤, 얼마나 많은 불의 산맥을 넘어야 가능할까. 알 수 없지만 세한도를 세 번째 발견한 나의 삼십대는 내 친구들하고는 좀 달랐다. 그 때 내가 입에 달고 다닌 말 중의 하나가 “내 전 인생에서 겪어야 할 일들의 8할을 삼십대에 겪었다”라는 오만 투성이의 성화를 부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저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자기기만이 전혀 없는 육담(肉談)이다. 그렇다고 내가 남달리 고생을 더 많이 했노라는 ‘인간 극장’투의 관심은 사양한다. 누구나 나름의 고유한 세계가 있는 법이다.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상, 하가 아닌 ‘다를 뿐’의 시각으로, 밀레의 풍경과는 판이 다르게 짜인 세한도는 그 당시 '나의 세계'의 그림이 된다. 삼십대에 사회적 성공의 욕망에서 미끄러져 본 사람은 이 세한도가 남달리 보이는 게 당연하지 않던가. 한창 고속도로에 몸을 싣고 달리다가 어느 날 그게 미끄럼틀 위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너무 늦었다. 뭐 달리 방법 없다. 아래로 뚝, 떨어져야지. 그게 속 편하다. 세한도의 주인공도 그걸 알았다. 세상 밖으로 한 번 밀려서 경계 안을 관찰하고 공부를 하는 일도 괜찮았다. 제주도의 바람은 지독하게 사납지만 아무렴, 너와 내가 생각이 다르므로 너는 내 적이라는 배신보다 더 차갑겠냐.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받은 추사 150주년 기념전 도록인 ‘간송 문화 제71호’에서 최완수 선생은 말한다.


“오히려 환로(宦路:벼슬길)와 속사(俗事:세속일)에 급급 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많은 책들을 차분히 읽게 되고 익히지 못했던 서화의 제체(諸體:여러 체)를 체득할 수 있어서 그의 학문과 예술은 그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곳 제주에 있으면서 사우(師友)간에 경의(經義)와 금석고증 및 천문, 지리, 역사, 음운, 문자, 서화 등 각 분야에 걸친 학리(學理)의 토론을 서신으로 주고받으며 당시 불교계의 거장인 백파(白坡, 1767-1852)와는 선리를 왕복 토론함으로써 70년 수도를 자부하는 노덕(老德)을 격동시킨다. 그가 이 시기에 얼마나 독서에 열중했던가는 막내아우 상희에게 보내 줄 것을 독촉한 편지에 수록된 서목으로도 대강 짐작이 가능하다.”-(간송 문화 71호 144쪽)

 




 

 

 

 

 

 

 

 

 

 

 

세한도는 졸박무속(拙樸無俗:서툴고 꾸밈없고 속기 없음)의 경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원래 이 그림은 제주 대정읍의 유배지 거처를 그렸으나, 현재 제주의 추사적거지에는 그림처럼 소나무나 잣나무가 성성하지 않다. 세월의 유고함을 속인들의 재단으로만 추측하건데 적거지는 멀쑥하게 단장한 이층짜리 기념관에 입장표를 끊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기념관은 흰색 벽돌로 지은 정방형으로 길에서 볼 때 뒤 쪽의 적거지를 완전차단하고 있다. 옆에 주차장이 조촐하게 마련되었는데 더 볼썽사나운 것은 그 옆에 화장실 건물이 세한도와 마주 보고 있다는 점이다. 비바람이 몹시 부는 날, 가이드와 단 둘이 찾아간 추사 적거지에서 펄럭이는 우산을 쓰고 한 시간 남짓 돌아보고 나왔다. 적거지 후미에 있는 ‘추사다원’은 폐가가 되어 흉물로 방치되었고, 이층에 마련한 기념 전시관에서는 이렇다할 설명이 배제된 모조 작품으로 이백년의 시간을 침묵하고 있다. 나중에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우르르 파리 떼처럼 몰려 들어와 시장판을 열었다가 폐장하고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나서 바닥은 흙물로 얼룩졌고 카운터에서 졸고 앉았던 젊은 이십대 아해는 얼룩 자국을 보며 얼굴을 찌푸린다. 다시, 세한도 앞으로 다가갔다. 마흔이 넘어서 보니 완당도 나도 얼굴이 두루뭉술해졌다. 각진 얼굴은 둥글게 되고 날 선 언어는 세한도 붓질처럼 희미하게 변했다. 인정이란 무엇일까. 문득, 전 날 아프리카 박물관에서 만난 세 명의 공연자가 생각난다. 먼 이국땅까지 찾아온 그들의 21세기 세한도는 어떨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게 다 세월의 은덕이다.


완당의 제자사랑과 그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는 지면상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다. 문인 이상적은 연경을 다녀올 때마다 완당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부탁을 잊지 않고 책을 구해다 주었다. 그 중『만학집(晩學集)』,『대운산방집(大蕓山房集)』,『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은 완당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니까 이게 내가 완당의 <불이선란>과 <세한도>목판화본을 판화가 류연복님으로부터 받고 며칠동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기뻐했던 일과 거의 동격이다. 좋은 그림을 얻는 일과 좋은 글을 얻는 일, 둘 다 천복(天福)이며 천은(天恩)이다. 일은 사람이 했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인연 닿기 어렵다. 그래서 인연이란 무릇, 물건과 사람을 구분 짓지 아니하고 하늘의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한 감격으로 이어진다. 현상과 실체의 모습만을 논할라치면 이런 감동이란 모른다. 그래서 내가 미국의 ‘실용주의’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보이는 실체 그 뒤의 ‘무언가’를 캐보는 일, 옛사람들의 만남은 고아(高雅)하다. 완당은 <만학집>을 남다른 감회로 만났다. <만학집>의 저자는 ‘계복’이라는 사람으로 완당의 둘 도 없는 금석학의 지기이자 학문 동반자인 ‘옹방강’과 교류할 때 익히 알고 있던 사람이다. 비록 바람 부는 유배지에 위리 안치된 몸이지만 옹방강과의 우정까지 바람에 날려 보낸 것은 아니다. 고달픈 시절에 따듯한 정(情)은 ‘희망’의 불씨를 품고 있는 화톳불이다. 완당은 이상적의 노고에 감격했다. 우정의 산물, 나도 그거 좀 아는 나이가 되었다. 마흔이 넘으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십대의 시련이 나에게 마흔을 예찬하게 만들었다고 늘 떠벌린다. 완당의 감격은 세한도의 발문에 또박또박 정자(正字)로 예의 뜻을 밝힌다.


“지난해에는『만학』과『대운』 두 문집을 보내주더니 올해에는 우경의『문편』을 보내왔도다.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것도 아니고 천만리 먼 곳으로부터 사와야 하며 그것도 여러 해가 걸려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쉽게 단번에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세상은 흐르는 물살처럼 오로지 권세와 이익에만 수없이 찾아가서 부탁하는 것이 세상인데 그대는 많은 고생을 하여 겨우 손에 넣은 그 책들을 권세가에게 기증하지 않고 바다 바깥에 있는 초췌하고 초라한 나에게 보내주었도다.............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松柏)가 여전히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했는데..........지금 그대와 나의 관계는 전이라고 더한 것도 아니요 후라고 줄어든 것도 아니다...........아! 쓸쓸한 이 마음이여! 완당 노인이 쓰다.”-(완당 평전1, 유홍준.394-395쪽) 


유배지의 9년 동안 완당은 책읽기와 학문 연구로 바빴다. 귀양살이는 정적의 책략으로 오래 갈 것을 예감하고 아예 절체절명의 시간을 ‘기회’의 시간으로 역전한 것이다. 고난을 겪어봐야 고난을 극복하는 법을 알고, 변방으로 밀려나봐야 변방의 소외와 한가함을 체득한다. ‘요령’이라는 것은 베이컨이 말을 안했어도 일정한 경험치와 관계한다. 경험철학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란 고약하게도 경험으로 알게 되는 진리가 많다. 세한도는 완당의 마음속에 이미지로 그린 그림이다. 이상(理想)과 현실(現實)의 조화로운 구도다. 속인의 남루함에서 신선의 삶을 동경하는 것이라 해도 좋다. 어느 쪽 해설을 차용하는가는 그림을 보는 관찰자 시점이다. 단, 주의할 사항이 있다. 세한도는 마음으로, 세월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봐야 한다. 구도와 묘사력이 어쩌고 하는 미술사의 측면은 이때 완전히 그림을 보는 시각 밖으로 튕겨 나가고 없다. 지식은 과거에 얻었으니 이제 마음의 눈으로 그림을 보는 일만 남았다. 눈을 뜨는 일, 그게 관건이지. 


세한도(歲寒圖). 차가운 세월의 그림

세한도(歲閑渡). 한가한 세월을 건너다.


비로소 마흔이 넘자 완당의 세한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무 늦게 알았다는 질책 대신에 이제나마 알기 시작했다는 위로를 한다. 다행이지 뭔가. 영 모르고 살다가 갈 뻔했는데. 완당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불혹의 나는 촌구석으로 일찍 숨어 들어와 ‘한가한 세월’을 건너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안빈낙도나 청빈의 미학을 대입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런 허무맹랑한 상찬은 배고픈 뜬구름에게 던져 주자. 내 삶은 여전히 불안하고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완당의 ‘엄정한 정신’은 오늘도 공부 중이다. 고졸(古拙)의 세한도에 연필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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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doctor. Fildes. 1891년 작. The Tate Gallery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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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2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터에 대한 그림도 많나봐요~

마립간 2006-02-20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사실 단순한 의사의 그림이 아니라...
 

* 향수
                                    정지용

고향집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 강촌2
                                                                   김성호


 

 

 

 

 

 

* 싸리꾳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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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5-08-1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그제 홍천을 다녀오면서... 어렸을 때 외가집(문산)에 놀러다니던 시절이 떠 올랐습니다.

물만두 2005-08-15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가집... 늘 정겨운 곳이죠...

파란여우 2005-08-15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인수의 '향수' 듣게끔 하는 글과 사진입니다.

瑚璉 2005-08-16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곳에 다녀오셨군요.

2005-08-24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물만두님이 움직그림을 주셔서, 생각난 김에 자동차 타고 제주도 여행이나 가자.

 (그런데 자동차에 탄 사람, 마립간인가 아니면 마립간 여자 친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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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10-0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오른쪽의 동그란 넘(?)이 마립간님 아녜요?
(그나저나 되게 오랜만이네요. 제가 격조했어요, 그죠?)

물만두 2004-10-09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여자같기도 하고... 하지만 전 마립간님처럼 멋진 남정네라 생각할래요^^ 조끼가 가죽이잖아요. 팔에 문신도 있구... 여행 잘 다녀오세요. 여자친구랑요^^

sweetmagic 2004-10-20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낮인거 같은데 라이트 끄고 가세요 ~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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