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身邊雜記 180314

 

- 족제비

 

2년 전( 또는 3년 전)에 새벽 운동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여름이라서 새벽이지만 날은 밝아 있었다. 달리기를 하는 길 저 멀리서 뭐가 휙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좁은) 길 한가운데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족제비였다. 청설모를 본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족제비를 야생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달리기를 멈춰야 되나. 나는 속도를 줄였다. 족제비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고, 어느 일정 거리가 되니 풀숲으로 숨어버렸다.

 

집에 와서 이야기를 하니, 아이는 사진이라도 찍지 그랬냐고 했다. 달리기할 때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는다.

 

작년 늦가을, 초겨울이었다. 저녁에 철봉 운동을 하러 초등학교에 갔다. 운동장에는 나만 있었다. 그 때, 족제비 두 마리가 마치 술래잡기 하듯 배수구과 바위틈 사이에서 좇기고 좇고 하고 있었다. 야생 동물이라는 것이 사람의 기척을 느끼면 도망 갈 테니, 나는 모른 척하고 내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마리는 (또는 두 마리는, 나는 그 두 마리를 구분할 수 없으니), 틈틈이 배수구에서 머리만 내밀고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10분 정도는 지속된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족제비들이 도망가지 않기에 나는 몸을 푸는 시늉을 하면서 가방으로 가서 핸드폰을 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기회가 되면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족제비는 다시 눈에 띄지 않았다. 족제비가 내 움직임을 보고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돌아갈 시간이 되어 돌아간 것일까.

 

며칠 전, 해가 진 저녁이었다. 아파트 단지 계단에서 고양이가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우리 단지에는 (캣맘과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가 있다. 그런데 갑자기 까치 울음과 같은 소리가 가까운데서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보통 듣던 까치 소리보다 더 (고음이면서) 청명하게 들렸다. 나는 조금 전 고양이가 까치를 사냥한 줄 알았다. 나는 가던 길이라서 소리 나는 쪽으로 가 보니 족제비 두 마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소리는 족제비 소리였을 것이다.) 곧 두 마리는 차도를 건너 옆 아파트 단지로 사라졌다. (이번에는 족제비가 나를 보지 못하고 나만 족제비를 봤다.)

 

내 어머니의 어린 시절이라면, 시골 생활을 하면서 족제비를 본 것이 아무 일도 아니겠지만, 나는 이 경험을 약간 신비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세 번 모두 나 혼자 있을 때, 족제비()를 봤다. 그리고 내 주위에 야생 족제비를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내게만 특별하게 주어진 혜택처럼 느꼈다.

 

뱀발) 2년 전( 또는 3년 전), 족제비를 보기 전에 새벽을 운동하면서 뱀을 만난 적도 있다.

그 두 마리, 형제였을까, 부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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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14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족제비, 뱀. 제가 군대에 있을 때 한 번쯤 봤던 동물 친구들이네요. ^^

마립간 2018-03-15 07:52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남북통일에 있어 부정적인 면을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부정적인 면의 하나는
DMZ이 사라지면서 멸종 위기 종의 상당 수가 멸종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 기억에는 멸종 위기 종의 절반 이상이 DMZ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讀書記錄 180302

 

강간은 강간이다

- Me too

 

오랫동안 형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수해 왔다.

 

무죄추정의 원칙 無罪推定原則 ; 피고인이 유죄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이다. (위키백과)

 

그런데 이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반대되는 논리 (<- 법리)가 나왔다. 의료 (민사) 소송에서 의사가 의료 과실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증명하지 못하면 (법적이 아닌 윤리적) 유죄가 된다. (유죄를 증명하는 것도 어렵지만,) 무죄를 증명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다.

 

유죄추정의 원칙 有罪推定原則 ; 피고인이 무죄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유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이다. (마립간) 여기서의 유죄는 무과실를 의미한다.

 

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처음 들었을 때, 이 원칙 과연 정의로운가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회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정의와 무관하게) 받아들였다. 의료에서 유죄추정의 원칙이 도입되었을 때도 사회에서 받아들인 것을 뒤집을 (힘도 당연히 없지만) 논리가 없다. 마치 악어 프로젝트에 모든 남자가 잠재적 성범죄자인 것처럼, 모든 의사는 잠재적 범죄자이다.

 

성범죄에 관해서도 유죄추정의 원칙이 도입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에서 그렇게 한다면 나는 (뒤집을 힘도 당연히 없지만) 받아들이겠다.

 

괄호의 파란색 글씨는 단어의 엄밀성을 위해 포스팅 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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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3-02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오랜만입니다.
말씀하신 논지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이야기겠으나, 혹시나 해서 여쭙습니다.

말씀하신 의료소송에서 의사가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해야 무죄가 된다는 법리는 어디서 알게 되셨는지요.

우선,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소송에서의 대원칙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의료소송이라는 것은 의료민사소송이고, 민사소송에서는 무죄 유죄를 논하지 않습니다. 원고의 청구가 이유 있는지를 판단하지요. 병원이 환자측에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해서 병원을 유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애당초 민사소송 영역에 그대로 갖다붙이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 의사가 자신의 과실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례는 민사소송 판례입니다. 이 판례에서도 의사의 과실을 무조건 추정하지 않습니다.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1. 위법한 가해행위, 2. 손해발생, 3.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4. 가해행위자의 고의 또는 과실, 이 네 가지 요건을 환자가 모두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의료소송의 경우 증거가 병원측에 편재되어 있는 경향이 크므로 원고측의 입증책임을 경감하기 위해 사실상 추정을 적용한 것이지요. 때문에, 우선 ˝환자측에서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를 입증하고 그 결과와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게재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증명해야 합니다. 그 경우, 의사가 의료상 과실이 아닌 전혀 다른 원인으로 결과가 말미암은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않으면 의료상 과실과 결과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것이 판례가 제시한 법리입니다. 즉, 민사소송에서도 의사의 과실의 증명 책임은 환자에게 있습니다. 단지 전문적인 증명을 요하지 않고 일반인의 상식 기준으로 했다는 것이지요. 제가 아는 한에서 의료소송에서 입증책임과 관련된 판례는 이렇습니다.

마립간님께서 따로 의료 형사소송에 관한 판례를 접하신 것인지, 혹은 완전히 입증책임을 전환시킨 새로운 민사소송 판례가 새롭게 등장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민사소송 판례가 있다면 저는 반드시 그 판례를 숙지해야 할 상황입니다.

세 번째 문단의 말씀이, 제가 말씀드린 판례나, 그 판례와 유관한 다른 민사소송 판례에서 얻으신 정보를 바탕으로 하신 말씀이라면, 용어 사용과 법리 이해에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마립간님의 주된 의도가 ˝성범죄에 관해서도 유죄추정 원칙이 도입될지도 모르겠고, 그렇다면 받아들이겠다.˝에 담겨 있고, 그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지적이긴 하지만, 제가 아는 한에서는 아직 의료 분야의 소송에서도 ˝유죄추정의 원칙˝ 같은 건 도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악어 프로젝트에 모든 남자가 잠재적 성범죄자인 것처럼, 모든 의사는 잠재적 범죄자이다.˝라는 말씀은, ‘모든 남자가 잠재적 성범죄자라니, 그럼 모든 의사도 잠재적 범죄자겠네? 환자에게 피해 줄 수도 있으니까?‘ 하는 식으로 에돌아 비판하는 방식으로 쓰인 게 아니라면, 법리적으로는 그런 주장 자체를 뒷받침할만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안한 금요일, 이어지는 평안한 주말 보내시길^^

마립간 2018-03-02 22:32   좋아요 1 | URL
한번 ‘아무 말이 막 ...’이라는 댓글 한 번 받았던 터라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제 의견을 남깁니다.

우선 날카로운 지적을 하셨네요.
1) 유죄의 단어가 형사법, 또는 형사 소송에 한정된다는 것.
2) 의료 형사 소송에서 무죄 입증 책임이 의사에 있지 않다는 것.
3) 완전히 입증책임을 전환시킨 새로운 민사소송 판례는 없다.

위 3가지 사항에 대한 syo 주장에 동의합니다.

[칼럼] 판례로 본 법률상담 - 의료사고에서의 입증책임
http://jhealthmedia.joins.com/article/article_view.asp?pno=1192
위 법률안 규정은 일단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의사가 그 책임을 지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의사측에서 불가항력 등의 사유를 입증하는 경우에 면책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사실상 입증책임전환을 통하여 의사측의 무과실책임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반론 또는 제 의견입니다.

용어의 엄밀성을 논하자면
일반적으로 의료소송이라는 것은 의료민사소송이고, ; 제가 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소송은 모두 형사, 민사가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이라는 용어가 임의적이죠.

의료 민사 소송에서 ; 의사의 재판 패소 → 의사의 과실 확인 → 의사의 유죄 ; 가 일반적 인식이라고 한다면, 저의 개인적 경험의 일반화 오류일까요?
‘유죄’를 법률 용어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리 큰 오류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의사의 무과실책임의 원칙, 즉 패소 후에 의사가 죄가 없다고 하면, 과실이 없다고 주장하면, 아마 일반인은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처럼 받아드릴 것입니다. 반면 의사는 술은 안 마셨는데, 음주운전으로 처벌받는 꼴이죠.

일반인의 상식 ; 제가 알고 있는 환자 보호자인 일반인의 상식의 주장은 환자가 병원에 올 때는 살아서 왔고, 병원에 와서 죽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 과실이 있다. 이것이 상식이다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의 (상식적) 주장은, 이 주장만으로 그 결과와의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른 원인에 현대의학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모든 사람이 이렇지 않겠지만, 상식이 얼마나 임의적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 드립니다.

원고 측의 입증책임을 경감하기 위해 사실상 추정을 적용 ; 법의 취지가 실제 판결의 적용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냐는 (syo 님이 법 공부를 하고 계시다면 충분히 알고 계시겠지만,)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판결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법조문은 포괄적이고 일반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판사의 판결은 법조문을 모두 외웠다고 해서 판결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남자가 잠재적 성범죄자라니, 그럼 모든 의사도 잠재적 범죄자겠네? 환자에게 피해 줄 수도 있으니까?’ 하는 식 ; 이와 같은 판단과 감정은 상당수의 의사가 가지고 피해의식입니다. (오히려 성범죄 취급에 대한 남자의 피해의식은 제한적이죠.)

위 글의 논지는 의료 과실의 환자 측의 증명이나 의료 측의 의료 무과실 증명, 둘 모두 곤란한다는 점입니다. 비슷한 구조로 강간 强姦에 대한 피해자 측의 증명이나 피의자 측의 강간이 아닌 것( 예를 들면 화간 和姦)에 대한 증명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적 판결은 편향되기 마렵입니다.

1) 유죄가 반드시 법률용어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2) 완전히 입증 책임을 한쪽에만 넘긴 사례는 없지만, 핵심적인 사항이며 입증이 불가한 사항에 대한 책임을 근거로 판결을 내린 경우는 있다.

‘유죄추정의 원칙’은 (syo 님의 용어 엄밀성에 따라) ‘의료에 있어서 일반인 상식에 따른 과실 있음의 추정 원칙’으로 용어를 바꿔야겠습니다.

syo 2018-03-0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첫 줄에 말씀하신 ˝아무 말이 막...˝ 댓글은 제가 그런 댓글을 달았었다는 말씀인가요? 그랬다면 아마 마립간님의 서재에서 찾아보면 그 댓글이 있겠군요. 근데 전 지금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송구합니다.

저는 형사법은 잘 모르지만, 형사소송에서는 피해자가 소송을 진행하지 않잖습니까? 형사 소송에서는 의사의 과실을 입증해야할 사람이 검사인 셈인데, 아무래도 그 경우는 일반인이 원고로 진행하는 민사소송보다는 증거를 수집하는데 용이하겠죠. 그런 의의에서 의료 민사와 의료 형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형사 소송에서 공권력이 수집해 준 증거로 유죄의 판결이 나면, 그 판결이 민사소송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로 쓰이니까요. 민, 형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말씀이 맞습니다.

‘유죄‘라는 용어를 그렇게 쓰신다면, 말씀하신 패소->유죄가 일반적인 인식이라는 말씀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진짜로 과실이 없었는데 단순히 그 무과실을 증명하지 못해 패소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그래서 실제로도 패소->유죄라는 일반적 판단과 실체적 사실이 거의 어긋나지 않습니다. 일단, 마립간님이 말씀하신 일반 상식 즉, ˝병원에 올 때는 살아서 왔는데 병원에 와서 죽었다˝ 라는 것은 그야말로 주장입니다. 그것이 일반 상식인지 아닌지는 법관의 ˝법률적 판단˝입니다. 그 주장 자체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그 주장과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들이밀어서 법관에게 심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하지요. 말씀하신 그 주장만으로 바로 의사에게 입증책임이 전환되지 않습니다. 판례가 예로 제시하는 일반인의 상식 선의 과실 행위는 의사가 수술에 늦게 참여하고, 피부 절개 후 시간을 많이 경과시켰다는 정도는 되야 합니다. 그리고 환자에게 의료행위 전에 건강상 결함이 없었음도 증명해야 하구요. 그래서 실제로 저런 판례가 등장한지는 한참 되었음에도 환자가 의료소송에서 막강한 변호사의 도움 없이 승소하는 일은 상당히 드뭅니다. 판결문을 읽어보면, 과실이 없는데도 입증을 못해서 의사가 졌네,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는
드물고, 오히려 과실이 있는 것 같은데도 증명을 못해서 환자가 졌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물론 의사들이 그런 피해의식을 가질 수는 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근데 그게 어쨌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기본적으로 입증전환 법리가 없다면,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치료되고 있는 모든 과정을 촬영하거나, 중간중간 다른 의사들에게 교차확인이라도 하지 않는 한은요. 의료소송의 증거가 될 환자의 치료관련 자료들은 모두 병원측이 소유하고 있고, 옳지 않은 일이겠지만 마음만 먹고 들면 위/변조가 어렵지 않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같은 이유에서 의사들이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는 것 역시 어렵긴 하지만, 의료행위에 대한 지식 수준이나 환자 정보의 편향성 등을 고려하면 동등한 수준으로 어렵진 않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의료 소송은 환자가 이기기가 정말 어렵다는 말이 도는 거겠죠. 저 판례가 있음에도요. 법적 판결도 인간이 내리는 거고, 증거력을 평가하는 것도 인간이므로 그런 의미에서 ˝편향˝이라는 용어를 쓰셨다면 동의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쌍방이 입증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인데 의사에게 입증책임을 전환시키는 법리가
일견 불공정할 수 있다는 뜻으로 편향을 말씀하신거라면, 저는 오히려 이 법리가 편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강간과 화간의 증명이 모두 곤란하다는 말씀은 말씀 자체로는 오류가 없지만, 모텔에 같이 따라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강간이 아니라고, 거칠게 반항하지 않았다고 해서 강간이 아니라고 판결하는 재판부가 뻔히 있는 이런 현실에서, 강간 피해자 측의 증명이나 피의자 측의 증명이나 곤란하다, 고 마치 양쪽이 동등하게 어렵긴 마찬가지라는 느낌으로 쓰시면 오히려 피의자측을 두둔하는 것처럼 보이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일반인의 상식에 대한 법관의 판단도 그렇고, 이재용 재판에 대한 법관의 판단도 그렇고 말씀하신 대로 결론은 판사의 심증대로 납니다. 우리는 그 심증이 구체적이고 명확한 증거에 뒷받침 되는 공정한 판결을 이끌어내길 바랄 뿐이지요. 법의 취지가 실제 판결의 적용에서 동떨어져 있는 부분이 있다는 말씀은 백번 옳지만, 법관의 임의적인 판단은 그야말로 ˝임의적˝이다보니 단순 확률적으로 보면 환자에게 더 유리한 판결을 내릴 확률과 의사에게 더 유리한 판결을 내릴 확률 중 어느 쪽이 더 높은지를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재용 판결에서 미루어 보건데, 사회적 경제적 권력을 더 쥐고 있는 이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날 공산이 크지요. 그러다보니 저는 의료행위에서의 무과실책임도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그건 마립간님과 의견이 같은 것 같네요.

이게 뭐라고 거의 한 시간을 댓글을 쓰고 앉았네요...... 으흑;
오타가 있거나 주술이 안 맞거나 한 문장은 핸드폰 어플로 작성하는데 따라 생긴 부작용이니, 양해해주세요.

마립간 2018-03-05 11:07   좋아요 0 | URL
syo 2017년 6월 29일에 제 서재에 남긴 댓글입니다.
‘분명 여기서 한번만 더 댓글을 다시면 저는 눈에 띄게 아무말이나 하게 될 것 같습니다.’
; syo 님이 제 서재의 제 글에 댓글을 쓰신 이후에 제게 남긴 대댓글입니다.

저는 이 댓글로, ‘오류를 집어내거나 비판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칭찬이나 격려만 원하‘는 분으로 syo 님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마립간 2018-03-05 11:08   좋아요 0 | URL
두 가지 실화를 말씀드리죠.

첫 번째는 1998년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한 것이니, 판결은 1998년 초, 아니면 1987년 말에 있었고, 의료소송이 3년 내지 6년 간 진행되니 사건 발생 시점과 사건 번호는 그 정도로 추정할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알게 된 것은 신문기사를 통해서입니다.

환자가 사망을 했고, 의료 소송까지 진행되었는데, 판결문에 의사의 무과실을 명시했음에도 환자의 경제적 사정으로 배상하라고 했던 사건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의사 패소로 기억되지만, 아마도) 의사 일부 승소에 의해 배상금을 지급한 경우입니다. 질병이나 진료 과목, 배상금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1억을 청구하고 의사 일부 승소로 60%를 판결했다면 아무런 의료적 잘못이 없는데, 의사는 환자에게 4천 만원을 지급해야 합니다. 제가 이 사건을 기억하는 것은 의료의 무과실책임 판결의 첫 번째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것입니다. 제약회사의 리베이트를 조사하던 중 영업 직원의 수첩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수첩에는 리베이트를 준 의사와 금액 적혀 있었습니다. 문제는 영업 직원이 자신이 착복한 영업비용을 감추기 위해 돈을 받지 않은 의사의 이름과 금액이 있었는데, 이에 해당하는 의사들이 리베이트를 받지 않았다고 항변을 하니, 리베이트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의사더러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영업 직원이 일부 의사들이 돈을 준 것이 아니라는 진술에도 불구하고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잘못이 없는 의사들은 벌금형, 또는 영업 정지를 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립간 2018-03-05 11:09   좋아요 0 | URL
반론이 너무 많아 바쁜 월요일 아침에 모든 답글을 들릴 수가 없군요. 시간 나는대로 댓글 달겠습니다.

syo 비판에 목적이 있기보다 제 서재에 방문해서 syo 님을 글을 읽고 왜곡된 판단을 할까 두려워 남기는 글입니다.
 

 

* 讀書記錄 180214

 

오두막 도서관 대출

 

나는 누군가 내게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기독교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누구는 나를 기독교인으로 보고, 다른 누군가는 나를 기독교인으로 보지 않는다. 나의 기독교 가치관에 약간의 영지주의 성격, 무교회주의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에 따라 판단이 다르다. 주류와는 격차가 크다.

 

나는 누군가 내게 페미니스트냐고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누구는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보고, 다른 누군가는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보지 않는다. 나의 가치관에 상당한 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Intersectional Feminism ( 또는 트랜스페미니즘 transfeminism)과 어느 정도의 제3세계 페미니즘 Third World Feminism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에 따라 판단이 다르다. 주류와는 격차가 크다.

 

p45 맥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여섯 살 반 밖에 안 된 미시가 지닌 몇 세기 동안 숱한 현자들이 고뇌해온 질문을 던지다니.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질문에 답을 얻을 수는 없다.

 

친구가 영화를 언급했고, 나는 책을 읽었다.

 

삼위일체에 관해, 내가 성경 공부 할 때 구체적으로 질문했던 것에 대해 부정의 답을 얻었던 그 예가 이 책에 그대로 인용되기도. 이야기가 전혀 설득적이지 않음.

 

* 밑줄 긋기

p43 “아빠, 그 아이가 꼭 죽어야 했어요?”/p45 “그런데 왜 그렇게 심술궂은 거죠?” ... “, ‘위대한 영은 공주를 절벽에서 뛰어내리게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했어요. 꽤 심술궂은 것 같아요.”

p45 맥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여섯 살 반 밖에 안 된 미시가 지닌 몇 세기 동안 숱한 현자들이 고뇌해온 질문을 던지다니. ;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질문에 답을 얻을 수는 없다.

p46 “언젠가는 나도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돼요?” “아니, 하나님도 결코 그런 일을 시키지 않으실 거야.”

p235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관계의 반대라는 것을 모르겠어요? ; 이해 안 됨. 모르겠음.

p236 우리는 관계의 원을 창조했는데, ... “여자가 먼저 창조되었다면 관계의 원이 없었을 테고, ...” ; 이해 안 됨. 악순환이라는 것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뭣이 중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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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記錄 180209

 

왜 로봇의 도덕인가 도서관 대출

 

‘EN 시인이라는 누구냐고 어느 알라디너에게 물었다. 퇴근 후 안해에게 물으니 이미 일주일 전부터 실명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소설가 표절에 이은 또 하나의 파괴력이 있는 사건이다. 다 지나간 이야기가 이 글의 본론은 아니고 ....

 

며칠 전 교육기관에 있는 후배를 만났다. 후배는 workshop에 참여했는데, workshop의 제목이 인공 지능 시대에 있어 교육 방향이다. Workshop의 내용과 그 결론이 궁금했다.

 

첫 번째 결론은 A.I. 시대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그에 맞는 교육 방향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잠정적으로 윤리 분야가 A.I.보다 우위에 있다는 언급이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결론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두 번째 잠정적 결론은 설득적이지 않았다.

 

작년 연말에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A.I.의 도덕이 인류 멸종일 경우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A.I.의 윤리-도덕적 판단의 근거.

인간은 ; 1)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고, 환경을 파괴하고 있으며 다른 종의 멸종시키고 있다.

2) 전쟁을 통해 인간 서로를 학살한다.

3) 평화 시에는 자산가가 노동자를 착취하여 양극화를 가져온다.

4) 성폭력을 비롯한 성차별, 성차별을 포함한 각종 차별을 행하고 있다.

 

A.I.의 윤리-도덕적 판단의 결론

; 인간 멸종

 

자연의 위대함 아래, 인간과 A.I.를 동등하게 생각하다면 A.I.의 결론을 반박하기 힘들다. 그러나 자연보다 인간 (인성)이 위대하다고 판단한다면 인간의 우애 fraternité로서 A.I. 판단에 저항할 것이다. 과연 알라디너들은 위 네 가지의 부도덕성에 불구하고, 그리고 네 가지 부도덕성을 끌어안고라도 인류 지속에 지지를 보낼까?

 

뱀발) 멸종이라는 단어가 섬뜩할 수도 있으나 ; 남자의 시대는 끝났다에서 남자의 마지막 역할은 정자 은행을 대체되고 그 외에는 남성의 모든 것이 없어질 것을, 남성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내용적으로 남자의 멸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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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書記錄 180207

 

, 조선 선비의 자존심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의 독후감을 쓰면서 양극화에 대한 언급했는데, , 조선 선비의 자존심에 있는 교육의 방법을 통해 교육의 양극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 마립간의 철학적 관점을 설명하는 핵심어들 http://blog.aladin.co.kr/maripkahn/3459932

24) 자연이 위대한가, 인간이 위대한가.

 

p288 서경덕은 학문하는 방법에서도 정통 성리학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성리학의 태두인 주자의 학문 방법은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 格物致知’, 즉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면 앎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말은 독서를 통해 궁구 궁구하면 마침내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서경덕은 18세 때에 이미 독서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방법을 부정하고, 먼저 궁리와 사색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직접 탐구한 후 독서를 통해 확인하는 방법으로 학문을 했다.

 

인간의 윤리적 관점에서 보자면,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공부하고, 다들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의 편차가 크지 않는 것이 선 이자 정의 正義. (이하 글에서 실력의 편차가 크지 않는 것을 평등적 결과, 줄여서 평등이라고 하자.)

 

첫 번째 교육 모델 1은 선생님이 가르치고 학생들이 따라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창의력, 자율성 등으로 고려하여 교육 방법을, 자율적으로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은 교육 모델 2이다. 심지어는 구구단도 외지 않게 한다. 스스로 구구단의 의미를 깨달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학생 스스로 외게 된다. 이 둘 교육 방법을 비교하면 모델 2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학업 결과가 모델 1보다 성적이 떨어졌다. 반면 선생님이 가르치는 방법으로 볼 수 없었던 성적을 거둔 한 두 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해서 숫자로 비교하면

모델 1의 학급 ; 학급 평균 점수 70, 최상 점수 80, 최하 점수 60

모델 2의 학급 ; 학급 평균 점수 63, 최상 점수 99, 최하 점수 40

북유럽( 어느 나라)에서 자율성이라는 가치관에 따라 교육 방법 모델 1에서 모델 2로 교육 방법으로 바꿨다가 성적 成績 양극화라는 결과로 인해, 다시 평등적 가치관에 따라 모델 1으로 전환하였다.

 

다른 예로, 신인 가수 선발 경연 대회에서 같은 현상을 보인다. 음악 학원을 다닌 우리나라 지원자가 대부분의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우승은 외국에서 거주하던 지원자가 차지한다.

 

인간의 의지로 교육에서 자율성과 평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면, 인간은 자연보다 위대하다. 자연은 자율성과 평등, 둘 중 하나의 가치관을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인류가 (자율성과 평등을 동시에 성취한) 이상적 상황은 없었다.

 

또한 내 기억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모델 2의 교육 방법을 실시했다고 생각된 상황은 없다. 그리고 나는, 모델 2의 교육 방법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부모,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학교 수업과 관계없이) 구구단을 외지 않게 했다는 부모를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대중 매체에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부모라고 소개된 사람은 알고 있다.)

 

학생들이 사교육 때문에 피폐되고, 심지어 가끔 자살도 하지만, 우리는 모델 1의 교육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육 정책을 논할 때, (편견과 편애를 가지고 있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자율성과 평등을 동시에 주장하면서 만들어 낸 정책들이 자율성을 해치고, 양극화를 가져 온 결과를 보게 된다. (나는 정의로운 사람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결국에는 균형을 잡는, 질적 판단이 아닌 양적 판단이다. 그러나 나와 그들의 차이점은 나는 상보적인 것을 전제로 방법을 모색한다.)

 

책으로 돌아오면 조선 사회는 보편적으로 모델 1을 택했고, 서경덕은 모델 2를 택했다.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을 비교하면, 조식은 보다 극단적인 모델 1을 택했다. 조식은 어느 수준에 오르기 전까지, 학생들이 (부족한)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이황은 경서를 통해 선현들의 생각을 배우는 것을 병행하여 학생들이 (부족하지만) 자신들의 의견을 내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p286 서경덕은 독특한 학풍과 여러 기행 기행으로 이황, 조식, 이이와는 또 다른 학문 세계를 구축했다. ... 먼저 서경덕은 성리학학의 정통학설인 이기이원론 理氣二元論과는 다른 기 를 중시하는 이기일원론 理氣一元論의 학설을 주장하였다./서경덕의 이기일원론은... ‘유물론철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나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 조선의 성리학을 조식-이황으로 이분법을, 또는 조식-이황-이이(서경덕) 삼분법을, 또는 조식-이황-이이-서경덕의 사분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들 네 사람이 내게는 사현 四賢이다. 잘 사용하지 않지만 오분법으로 하면, 송강이나 고산이 다섯 번째가 된다./一蠹, 蓑翁, 靜庵, 晦齋 - 東方 四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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